지난 화요일(1월 23일) 저녁에 부시 대통령의 2007년 국정연설이 있었다. 이곳 동부시간으로 밤 9시가 넘어 시작된 국정연설을 지켜보며 2007년 미국의 향방을 들어볼 수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이 있었다면 무엇보다 부시 대통령 위에 앉아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낸시 펠로시(Nancy Pelosi)라는 여성으로 지난번 총선 때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하원의장에 오르게 된 사람이었다.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 앞서 낸시 펠로시 여사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오늘 밤, 저는 역사상 처음으로 ‘Madam Speaker’라는 말로 국정연설을 시작하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Tonight, I have the high privilege and distinct honor of my own, as the first president to begin the State of the Union message with these words: ‘Madam Speaker’.")라는 말로 연설 서두를 장식하기까지 하였다.
매년 그렇듯이 이번 국정연설에서도 2007년도 국가운영에 대한 대통령의 청사진을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 다른 해와 달리 그의 임기 중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자 최근 그에 대한 냉담한 여론 등이 있는 가운데 치러진 국정연설이어서인지 왠지 다른 때와는 달리 분위기가 조금은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드는 연설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대통령 잔여 임기를 2년밖에 남기지 않은 데다 국민들의 지지도 역시 30% 안팎의 최악의 상황인 것을 의식한 듯 과거처럼 ‘나를 따르라’는 식의 사령관 스타일에서 벗어나 정치권과 여론의 협력을 호소하는 스타일로 연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경제문제, 의료문제, 교육문제, 에너지 문제, 이민문제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그의 2007년 청사진이 펼쳐지는 가운데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끈 부분이 있었다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었다. 이는 내 조국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어떤 청사진을 펼치느냐에 따라 한반도가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중병에 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금년에도 한반도 상황에 대해 여러 언급이 있었고 북한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긴 했으나 특별히 북한을 자극하거나 북한에 대해 당장 전쟁이라도 일삼을 듯한 이전과 같은 호전적인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도 북한에 대해 “한반도에서 억압적인 정권이 공포와 허기 속에 지내는 주민들을 지배하고 있다”(“On the Korean Peninsula, an oppressive regime rules a people living in fear and starvation.”)고 언급하며 또 북한이 그 동안 세계를 속이고 핵무기를 개발하였다고 비난을 하였다. 그러나 특히 주목할 대목은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외교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America is working with the countries of the region - South Korea, Japan, China, and Russia - to find a peaceful solution.”) 이는 이전에 부시가 북한 정권에 대해 보였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아마도 현재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감안하여 가능한 한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른 때와 달리 그의 국정연설로 인해 한반도가 다시 긴장 상태에 들어가지 않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내 관심과 시선을 끈 것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그의 청사진이었다. 이는 그가 이라크에 파병한 군인들을 철수시키는 발표를 하지나 않을까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여전히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련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미련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이라크에 더 많은 병력을 파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말하기를 향후 5년간에 걸쳐 육군과 해병대 병력을 총 9만 2천명 늘릴 계획이니 의회가 승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철수는커녕 9만 2천명을 더 증원한다고? 그것도 향후 5년간? 이는 앞으로도 5년 이상 계속 이라크에 주둔하겠으며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겠다는 말 아닌가? 그 같은 부시의 연설을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저어야 했다. 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내 입에서 저절로 ‘Stupid President’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가 대통령이기에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하겠지만 해서 그 같은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하겠지만 갑자기 분통이 터지기에 나도 모르게 그 같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작년 말까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미군 전사자만 3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숫자는 9.11 사태로 인해 죽은 숫자를 넘어서는 것이다. 9.11 사태로 사망한 사람은 전부 2,973명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라크에서 죽은 미군 전사자가 그 숫자를 넘어선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이라크 군인들과 민간인들까지 합한다면 그 숫자는 아마도 수만 명에 이를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왜 시작되었는가?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테러 위험국가로 지목하면서 테러를 방지한다고 일으킨 전쟁 아닌가? 그런데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죽은 미군 전사자 숫자가 테러가 일어났을 경우보다 그것도 역사에 남을만한 대형 테러사건으로 인해 죽은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거야말로 아이러니한 결과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아닌가?
지난 2001년도에 있었던 9.11 사태는 사실 누가 보아도 비극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그 참사를 TV를 통해 보면서 경악을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극을 당한 가족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면서 그 같은 일을 저지른 테러집단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래서일까? 부시 대통령이 보복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것을 당연시하기까지 했다. 이는 무고한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한 테러집단을 비호하는 그 같은 나라는 응징 받아 마땅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온 미국 국민들은 한 마음으로 그 같은 생각들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부시 정권에 대해서 모든 국민들은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로 인해 알 고어 민주당 후보를 억지로(?) 이기고 대통령이 된 부시는 하루아침에 전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영웅이 되기까지 했다. 9.11 참사가 비록 국가적으로는 재난이었지만 부시 대통령에게는 보통 효자(?)가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안겨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 때문에 재선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이제 국민들은 진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국민들은 부시 정권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전쟁의 의도를 순수하게 보지 않게 되었다. 즉 그 안에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 경제적인 의도가 깔려있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리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라 할지라도 엄연히 자국의 주권이 있는데, 그리고 그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키거나 다른 나라를 침공한 것도 아닌데 단순히 그들에게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의심(!) 하나만으로 남의 나라를 먼저 침공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깡패 짓이 아닌가? 그것도 정작 대량 살상무기는 미국이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말이다. 물론 그 후 침공의 빌미가 된 대량살상무기는 결코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 그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일지라도, 아무리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나라라 할지라도 결코 그와 같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부시 정권은 지금 세계 평화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정권이 되었다. 세계 여론조사에 의하면 세계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나라로 많은 세계인들이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미국을 첫째로 꼽을 정도이다. 세계 평화의 파수꾼 나라가 이제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깡패 나라가 되어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국민들은 이제 그 같은 실상을 보기 시작했다. 해서 이제는 더 이상 부시 정권을 지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라크 전쟁이 거꾸로 부시 정권을 크게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었다. 작년 11월에 미 전국에서 있었던 중간선거에서 부시 정권의 공화당이 참패를 하고 민주당이 12년 만에 압승을 거두며 하원을 다시 장악하게 된 것이 그 좋은 증거라 하겠다. 게다가 부시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30%대로 곤두박질쳤다. 예전엔 90% 이상을 웃돌던 그 절대적인 지지도가 말이다. 이는 곧 미 국민들이 부시 정권에 등을 돌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에 더 이상 지지를 보내지 않으며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문가들 또한 더 이상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의미가 없으며 가능한 한 빨리 철수하는 것만이 상책이라는 견해들을 내놓고 있다.
그와 같은 여론이 비등한지라 많은 사람들이 이번 국정연설에서 기대한 것이 있다면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실정을 인정하고 이라크에서 완전 철수 혹은 단계별 철수를 발표하리라는 것이었다. 이는 그것이 대세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시의 결정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오히려 군인들의 증파를 결정하였다. 그것도 향후 5년간 10만 명 가까운 군인들을 증파하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아연실색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르호보암’이라는 사람이 생각났다. 그는 그 유명한 솔로몬의 아들이었다. 솔로몬 말년의 실정으로 인해 나라가 엉망이 되었을 때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라는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자 많은 대신들이 그를 찾아와 아버지처럼 폭정을 행하지 말고 제대로 백성들을 배려하는 정치를 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르호보암의 간신배 친구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럴 경우 약한 왕이 되어 신하들에게 휘둘리게 된다고 하면서 그 아버지 솔로몬 때보다 더 백성들을 폭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르호보암은 불행히도 나이 많은 충신들의 말을 외면하고 간신배 같은 친구들의 말을 들었다. 그 결과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민심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로 인해 수백 년간 이스라엘 나라는 분단국가가 되어야만 하였다. 한 왕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말미암아 온 나라가 오랜 세월 큰 고통을 당하였던 것이다.
오늘 부시 대통령을 보며 그 르호보암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는 국민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 왜 그는 그토록 끝까지 이라크 전쟁을 고집하는 것일까? 역사 속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일까? 이대로 계속 간다면 더 끔찍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왜 모를까? 혹은 측근들의 이득을 위해서일까? 자신의 신분이 국가와 세계를 더 생각해야 하는 신분 아닌가? 아니면 그저 고집 때문일까? 글쎄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갈 데까지 가고자 하는 것이다. 문득 답답한 대통령, 불행한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대단한 신앙인이라고 자부한다. 자신이 수행하는 전쟁은 바로 그 신앙심으로 악의 세력들을 응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글쎄다, 어쩌면 그 같은 신앙심으로 계속해서 이라크 전쟁을 가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목사이긴 하지만 나는 결코 그와 같은 부시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이 무슨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해괴한 발상인가? 이 21세기에 종교전쟁이라도 벌이자는 것인가?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내가 믿는 하나님은 결코 그 같은 분이 아니시다. 그는 지금 자신의 전쟁에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부시 대통령이 제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그가 정말 신앙인이라면 정말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알아야 하리라. 그리고 너무 늦기 전에 그 뜻대로 방향을 돌이켜야 할 것이다. 전쟁을 일삼는 것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며 또 고통을 당할 것인가? 비록 국정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이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긴 했지만 조만간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2007년 내에 파병 군인들이 완전히 철수함으로 이라크 땅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비록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비판은 받을지라도 더 이상 수렁에 빠지는 대통령은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르호보암처럼 역사 속에 수치스럽게 남는 대통령은 되지 않을 것이다. 김현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