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4천만의 축제 - 제 41회 슈퍼볼 경기를 보고 -
29-17. 지난 Sunday에 있었던 제 41회 슈퍼볼에서 결국 인디아나 콜츠(Colts) 팀이 시카고의 베어스(Bears) 팀을 12점차로 누르고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는 지난 1971년 이후 36년만의 정상 탈환이라고 한다. 지난 Sunday는 슈퍼볼이 있는 이른바 슈퍼 선데이였다. 슈퍼볼이란 미국의 최강 풋볼 팀 두 팀이 맞붙는 결승전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 프로 풋볼은 아메리칸 컨퍼런스(AFC)와 내셔날 컨퍼런스(NFC)로 이루어져 있다. 이 양대 컨퍼런스 최고의 팀이 맞붙는 경기가 바로 슈퍼볼 경기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는 바로 슈퍼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슈퍼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돈 잔치이기도 하다. 놀라운 사실은 단 한 게임에 지나지 않는 슈퍼볼의 경제 가치가 ‘하계 올림픽’ 전(全) 게임보다 혹은 ‘월드컵’ 전(全) 경기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이는 TV 중계권료, 후원금, 입장수입 등을 종합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월드컵’ 경기의 경우 4년에 한번씩 한 달간에 걸쳐 열리는 그야말로 단일 종목으로서는 지구상 가장 큰 대회로서 그 경제 가치는 1억 3백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역시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전 세계 국가들이 참가하는 지구상의 대잔치 ‘하계 올림픽’은 그 경제 가치가 월드컵보다 훨씬 높은 1억 7천 6백만 달러나 된다. 그러나 슈퍼볼의 경우 단 한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그 경제 가치는 자그마치 3억 7천 9백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여타 경기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이다. 정말이지 가히 상상을 초월할만한 돈 잔치가 아닐 수 없다.
슈퍼볼 경기도 경기이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경기 외적인 요소들이다. 슈퍼볼은 매년 미국 전체 인구의 50퍼센트 가까운 인구가 시청을 한다. 닐슨 미디아 리서치(Nielsen Media Research)의 통계에 의하면 금년에도 모두 9300만 명이 슈퍼볼을 시청했는데 이는 슈퍼볼 사상 두 번째로 많은 인구가 시청한 것이며 TV 시청률로는 사상 세 번째로 높은 것이라고 한다. 일부 시청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모두 1억 4천만 명이 시청을 했는데 이는 미국 인구의 거의 50퍼센트에 이르는 수치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슈퍼볼의 광고 전쟁이 보통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좋은 광고, 가장 효과적인 광고가 무엇이겠는가? 이는 무엇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많이 보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모든 기업들마다 할 수 있는 대로 인기 있는 방송에 광고를 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사 제품을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슈퍼볼은 광고주들에게 있어 결코 놓칠 수 없는 광고 시간대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슈퍼볼 시간대의 광고료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인데 금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CNN이 밝힌 바에 의하면 금년 슈퍼볼 광고료는 30초당 260만 달러였다고 한다. 이는 초당 거의 9만 불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그런데도 일찌감치 모든 광고들이 매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슈퍼볼 중계 시간에 볼거리 중의 하나가 또한 광고이기도 하다. 이는 그 시간대에 방영되는 모든 광고는 다 처음으로 제작되어 방영되는 따끈따끈한 광고들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싼 광고비를 주면서까지 그 시간대를 얻었으니 광고전략상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슈퍼볼 시간대의 광고는 매년 시청자들의 볼거리 중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다가도 광고시간이 되면 대개 다른 방송으로 채널을 돌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슈퍼볼 중계 시간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광고 시간에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는 풋볼 경기 이상으로 광고를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년 슈퍼볼 광고는 다른 해에 비해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는 평범한 광고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금년에 슈퍼볼에서 맞붙은 두 팀은 인디아나 팀과 시카고 팀이었다. 인디아나 팀은 아메리칸 컨퍼런스(AFC)의 우승자로 그리고 시카고 팀은 내셔날 컨퍼런스(NFC)의 우승자로 맞붙게 된 것이다. 이번 슈퍼볼엔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들이 있었는데 우선 흥미롭게도 양 팀 감독이 모두 흑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아울러 이번에 우승한 인디아나 팀 감독은 슈퍼볼 우승컵을 거머쥔 역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폭우 속에서 슈퍼볼이 거행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금년도 슈퍼볼은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의리나 연고로 따지자면 당연히 시카고 팀을 응원해야 했다. 이는 약 10년간 시카고에 살면서 늘 베어스 팀을 응원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디아나 팀의 토니 던지(Tony Dungy) 감독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인 것을 안 뒤부터 자주 인디아나 팀을 응원해오던 터였다. 그는 일찍이 선수시절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한 자로 지금도 늘 감옥 선교(prison ministry)를 하면서 탈선한 젊은이들을 선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한때는 감옥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풋볼 감독을 그만 두려고까지 했다고도 한다. 스포츠를 종교와 결부시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이나 내 신분이 목사인지라 자연히 그 같은 사람이 코치로 있는 팀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꼭 토니 던지(Tony Dungy)만이 아니었다. 시카고 팀의 감독 또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경기 전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들은 슈퍼볼 승패를 떠나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감사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년엔 특별히 어느 한 팀을 응원하기보다 누가 이기든 그저 슈퍼볼 경기를 즐기는 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드디어 슈퍼볼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초반의 주도권은 시카고가 잡는 듯했다. 시카고는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단 14초 만에 터치다운(Touchdown)을 만들어 냈다. 어쩌면 이 또한 슈퍼볼 사상 최단 시간에 이뤄낸 터치다운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시카고는 초반의 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인디아나와의 실력차를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29대 17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실력차가 나는 경기였다. 폭우 속에서 경기가 진행되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아마도 점수차가 훨씬 더 벌어지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로 인디아나가 공수 양면에 걸쳐 시카고를 압도한 경기였다. 특별히 풋볼은 쿼터백의 능력 여하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좌우된다고 할 만큼 쿼터백의 역할이 중요한데 인디아나의 쿼터백인 페이튼 매닝(Peyton Manning)의 경기 운영능력은 인상적이리만큼 뛰어났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인디아나 콜츠(Colts) 팀은 36년 만에 슈퍼볼 우승컵을 안았고 시카고는 21년 만에 우승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시카고로 되돌려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그 뜨거웠던 41회 슈퍼볼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메리칸 풋볼- 정말이지 매력적인 스포츠가 아닌가 싶다. 내가 풋볼에 매료되는 이유는 풋볼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를 연상시켜주듯 서로 땅을 따먹어 들어가는 그 경기가 그렇게 인상적일 수가 없다. 무엇보다 그 안엔 미국의 정신이 배어있다. 풋볼은 사실 매우 거친 스포츠이다. 웬만하면 골절상을 입지 않은 선수가 없을 만큼 온 몸을 던지며 하는 스포츠이다. 그 정도로 정열을 다하는 스포츠가 바로 풋볼이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는 반드시 룰(Rule)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온 몸을 던진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태클을 잘 한다고, 무조건 잘 달린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룰(Rule)을 지켜야 한다. 룰을 잘 지키지 못하면 아무리 수십 야드를 질주했을지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반칙으로 인해 자기 땅을 빼앗겨야만 한다. 온 몸을 던지는 최선을 다하되 반드시 규정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풋볼의 정신이요 그것이 바로 미국의 정신이라 생각한다. 즉 풋볼 경기 안엔 미국적인 모험 정신과 개척자 정신 그리고 준법정신이 모두 담겨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풋볼은 매력이 있는 스포츠이며 그렇기에 그처럼 많은 미국인들이 풋볼에 열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뿐만이 아니다. 풋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결코 경기를 중단하거나 연기하는 법이 없다. 천재지변으로 어쩔 수 없이 경기를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풋볼 경기는 반드시 진행된다. 이번에도 전 세계인이 보는 경기이지만 경기 내내 그렇게 폭우가 심하게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어김없이 풋볼 경기를 진행하였다. 아마 야구 결승전인 월드 시리즈 같았으면 경기가 다음날로 연기되었을 것이다. 결코 중단하지 않는 것, 결코 이유가 없고 변명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풋볼의 매력이다.
풋볼을 보면서 나는 우리 인생이 그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중단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어려워도 세월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어쨌든 우린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삶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결코 중단할 수도, 결코 포기할 수도, 결코 연기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삶이다. 나는 풋볼 속에서 인생을 본다.
풋볼은 공격 팀에 네 번의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그 네 번 안에 10야드만 나가면 또다시 네 번의 공격 찬스가 주어진다. 그렇게 10야드, 10야드를 진행해 가다보면 마침내 골인지점에 터치다운하게 되는 것이다. 네 번 안에 10야드만 나가는 것, 얼마나 쉽게 보이는가? 그러나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10야드를 나가지 못해 번번이 공격권을 상대팀에 넘겨야만 한다. 공격 팀이 네 번 안에 10야드를 나가기 위해 힘쓰는 동안 상대 팀은 놀고 있는가? 상대 팀은 상대 팀대로 어떻게 해서든 10야드를 내어주지 않으려고 온 몸을 내어던진다. 그러기에 10야드는커녕 어떤 땐 1야드도 나가지 못하고 끝나고 만다.
나는 이 같은 풋볼의 규정을 보면서 미국적인 성공방식을 본다. 미국적인 성실함과 최선을 본다. 미국인의 성공방식은 결코 일확천금에 있지 않다. 결코 한번에 터치다운을 욕심내지 않는다. 그보다는 큰 것을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네 번안에 10야드씩 장악해 가는 것이 풋볼의 정석이다. 그러다보면 결국엔 터치다운하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풋볼의 정신이요 그것이 바로 이 미국의 정신이다. 물론 때로는 공을 잡고서 30야드, 혹은 70-80야드를 달리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혹은 한번에 공을 멀리 던져 터치다운을 성공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보편적인 공격방식이 아니다. 게다가 거기엔 상대방에게 공을 빼앗길 수 있다는 큰 위험이 따른다. 이번 슈퍼볼에서도 잃어버린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시카고의 쿼터백이 무리하게 공을 멀리 던진 것이 상대방 손에 넘어가는 바람에 결정적으로 패하게 되었던 것이다. 늘 한방을 노리고 사는 사람 그 같은 사람은 결코 이 미국 땅에서 성공이라는 터치다운에 이를 수가 없다.
그러나 풋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뭐니 뭐니 해도 팀웍(Teamwork)이다. 풋볼을 보다 보면 감독이 헤드폰을 끼고서 쿼터백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쿼터백은 감독으로부터 작전지시를 받고 선수들을 리드하게 된다. 그렇기에 풋볼에 있어서 승패 여부는 감독의 능력에 달려 있으며 또 선수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할 수 있는 쿼터백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무조건 공만 잘 던진다고, 무조건 잘 달리기만 한다고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쿼터백이 이끄는 공격 팀만 잘 한다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 팀이 공격할 때 그들을 잘 막아내는 수비 팀의 팀웍 또한 중요하다. 아무리 공격 팀이 점수를 많이 얻어도 수비 팀이 제대로 못해서 상대 팀에게 더 많은 점수를 허용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렇다면 결코 승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풋볼의 생명은 철저하게 팀웍에 있다. 물론 여러 명이 하는 스포츠 치고 팀웍이 중요하지 않은 경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스포츠 가운데서 가장 팀웍이 요구되는 스포츠가 있다면 단연 풋볼이 아닌가 싶다. 바로 그와 같은 스포츠이기에 전 미국인이, 더 나아가 전 세계인이 그렇게 열광을 하는 것이리라.
나는 슈퍼볼을 시청하면서 그리고 풋볼을 생각하면서 풋볼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경기일 뿐만 아니라 또한 가장 기독교적인 스포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거칠다는 면에서는 조금 고개를 갸우뚱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 자신의 맡겨진 일에 온 몸을 던지는 최선을 다한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보다 룰(Rule)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는 능력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이는 빨리 가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겐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삶이란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과정과 방법을 무시한 삶이란 없다. 원칙대로 사는 사람들, 바르게 사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곧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리 많은 야드를 나갔어도 즉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크게 될지라도 그 삶은 성공한 삶이 아니다. 왜냐하면 심판 되신 하나님께서 결코 그 같은 삶을 인정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과연 풋볼이야말로 가장 기독교적인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풋볼의 팀웍을 생각할 때 더욱 그 같은 생각이 든다. 풋볼에서 감독과 쿼터백 그리고 선수들이 철저하게 팀웍을 이뤄야 하는 것처럼 더 나아가 공격 팀과 수비 팀이 더불어 잘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또한 그러하다. 교회로 치자면 하나님이 감독이요, 목사는 쿼터백이요 성도들은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만 잘한다고 이기는 경기를 펼칠 수 없다. 물론 감독 되신 하나님은 Perfect 하시다. 문제는 쿼터백인 목사와 선수들인 성도들이다. 그들이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그리고 반칙을 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감독과 쿼터백의 경기운영에 따를 때 그 경기는 단연 이기는 경기가 될 것이다. 거기엔 승리만 있게 될 것이다. 각 선수들의 삶에 영광이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감독 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우승을 한 인디아나 콜츠(Colts) 팀의 흑인 감독에게 선수들이 물세례를 붓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이야말로 감독에게 일생 최대의 영광의 순간이 아닐까.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의 경기에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의 물세례를 붓는 그 같은 순간을 보고 싶다.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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