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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Jesus!"
목회자 시/칼럼/칼럼 - 푸른 초장 | 2007년 02월 19일 18시 58분
 

교회에서 찬양을 하다보면 자주 부르는 가사 내용이 있다. “예수, 사랑해요!”라는 것이다. 찬송가에도 그렇고 찬양팀이 인도하는 복음성가에도 그렇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수없이 사랑한다는 고백의 내용이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혹은 처음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거북스럽기 이를 데 없는 고백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종교에서도 자신이 믿는 종교적 대상에 대해 그와 같은 고백을 할까?


  언젠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래전에 도널드 반하우스(Donald G. Barnhouse)라는 선교사가 일본 도쿄의 유명 호텔에 있는 여직원에게 전도를 하게 되었다. 그 여직원은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여성이었다. 한 눈에 상당히 교육받은 여성임을 직감하면서 그 선교사는 그 여직원에게 혹시 예수를 믿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불교 신자’라는 것이었다. 몇 번 질문이 오가는 가운데 그 여직원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들어서 알고 있으며 또 성경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때 그 선교사는 그 여직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부처를 사랑하십니까?” 그러자 그 여직원은 무척 당황해 하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부처를 사랑하다니요? 나는 한 번도 종교를 사랑과 결부시켜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그 같은 대답을 듣고서 그 선교사는 그 여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전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사랑하다니요?” 그 여직원이 던진 당황스런 반문이 아마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이 아닌가 싶다. 그 어느 불교 신자가 ‘부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가? 결코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기엔 결코 사랑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단지 불교만이 아니다. 유교를 믿는 사람 또한 아무도 ‘공자’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회교의 ‘마호메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느 종교도 자신이 신으로 믿는 대상을 결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섬길 뿐이다. 단지 따를 뿐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오직 기독교만이 그러하다. 참으로 별난 종교요, 특이한 종교가 아닌가? 정말이지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겐 받아들이지 쉽지 않은 불편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바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특성과 참 진리가 담겨있다. 우리가 주(主)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 이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분명하게 차별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불교처럼 철학적인 종교가 아니다. 또한 유교처럼 도덕적인 종교도 아니다. 물론 기독교 역시 철학이 있고 도덕을 중시 여기나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 그분과의 관계에 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의 관계에 있다. 즉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을 주고받는 종교 그것이 기독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그분께 엄청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 고백의 근거와 출발점이다. 즉 한 마디로 자신들이 받은 사랑의 응답 혹은 반향(反響)이라고나 할까.

다른 여타 종교들은 단지 인간의 종교성을 충족시킬 따름이다. 즉 인간 안에 내재해 있는 신을 추구하는 본성만을 충족시키는 그와 같은 대상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는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을 말한다. 인간을 위한 신의 희생을 말한다. 성경이 밝혀주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인간의 구원을 진행하시고 계시다. 그리고 때가 되자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을 보내어 계획대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 대신 고난당하게 하시고, 대신 죽게 하셨다. 이것이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베풀어 주신 사랑이다. 우리가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그 같은 사랑을 인정하고 고백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그 같은 사랑을 잘 선포해주는 성경 몇 구절을 보도록 하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6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장8절)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사랑이 아니라 나를 위해 그 아들을 대신 희생시키는 어마어마한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그 같은 사랑을 입은 것을 안다면 어찌 그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그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사랑의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즉 하나
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 고백은 철저하게 기독교의 구원론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사랑 고백’을 가리켜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차별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누구든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연히 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사랑의 고백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와 같은 이유만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또한 우리에게 그와 같이 요구하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특성이다. 다음은 그와 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성경의 구절들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장 5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 직임과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신명기
     11장 1절)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시편 31편 23절)


  성경 안에서 이 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구절들을 찾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는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당신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셨다. 이번엔 그것을 보여주는 구절들을 보자.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요한복음 8장 42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장 15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태복음 10장 37절)


  특히 마지막 구절은 우리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리만큼 우리를 향해 지나친 사랑을 요구하고 계시다.


  이처럼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고 계시나 우리가 주님을 향해 사랑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은 결코 그분의 요구 때문이 아니다. 이는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
리가 그 분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분의 그 같은 사랑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면 그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든 말든 그분을 사랑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함은 물론 거북스럽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희생을 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다면 오히려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욱 이상할 것이다. 이는 곧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누구든 믿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만큼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더 주님에 대해 사랑 고백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만큼 주님의 은혜를 더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며 또 얼마나 사랑 고백을 하느냐를 보고서 그 사람의 신앙 정도를 알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그 사람의 기도하는 삶, 찬양하는 삶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즉 그 사람이 얼마나 뜨겁게 진심으로 주님을 향해 사랑 고백의 기도를 하느냐, 사랑 고백의 찬양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믿음의 정도, 헌신의 정도를 알 수 있다고나 할까.


교회 홈페이지를 보다가 청년부 게시판에 ‘정성영’ 형제에 대한 글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정성영 형제는 한국에서 성균관대학을 다니는 학생으로 지난여름부터 약 6개월간 교환학생 자격으로 UB에서 공부하고 지난 1월 달에 귀국한 청년이다. 단 6개월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영혼이 아름다운 귀한 믿음의 청년이었다. 그 형제가 미국 여행 중에 경험한 이런 글을 보내왔다고 한다.


  성영 형제가 플로리다를 여행할 당시 상공에서 비행기 한 대가 하늘에 글자를 적어가더라는 것이다. 성영 형제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무슨 글자를 적는지 궁금히 여기며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그 비행기가 창공에 다음과 같은 글자들을 적어가더라는 것이다


     J... E... S... U... S...    L... O... V... E... S...    Y... O... U


그 넓고 푸른 하늘에 그와 같은 글자가 새겨지는 것을 보고서 성영 형제는 너무나 큰 감명을 받고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고 한다. 그 같은 글을 읽으며 나 역시 마음에 찡하는 감동이 전해져 왔다. 그 조종사는 자기가 믿는 주님(예수 그리스도)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리라. 해서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리기 위해 그처럼 비행기로 창공에 글씨까지 쓸 생각을 했던 것이리라.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이는 예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그 같은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제 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 역시 그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 글자를 적어간 조종사처럼 이웃을 향해, 세상을 향해 주님의 사랑을 널리 증거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로 그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대하시는 삶이리라.


모두가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나는 과연 주님을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며 증거하며 살고 있는지. 무엇보다 찬양 가운데서, 기도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의 달란트를 사용하며 그리하고 있는지. 바라기는 모두의 삶 속에서 늘 “I LOVE JESUS!”의 고백이 넘쳐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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