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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영웅 - Simon Birch 보기 -
그리스도인의 영화보기 | 2007년 02월 25일 19시 51분
 

이 영화를 구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처음 “Simon Birch"를 보게 된 것은 영어공부의 교재로 구입했던 시리즈 중에 이 영화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보려고 찾아보니 어디 두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러 번 이사하는 와중에 잃어버린 모양이다. 비디오 대여점에는 없었고, 도서관 여러 곳을 뒤져서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별로 인기가 없었던 영화였나 보다. 그래도 Jim Carrey, Ashley Judd와 같은 꽤 유명한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하기야 배우선정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Jim Carrey가 주인공 중 하나인 Joe의 성장한 모습으로 잠깐 선을 보이고는, 줄곧 나레이션 목소리로만 나온다. 알다시피 그는 몸으로 코믹한 연기를 해야만 제 맛이 나는 배우이다. 나레이션을 시킬 양이면 차라리 다른 배우를 선택하는 것이 나았으리라.


Simon으로 연기한 Ian Michael Smith는 다른 영화에선 볼 수 없는 배우이다. 그에게 이 영화는 처음이자 마지막 출연작이었다. 그런데도 꽤 연기를 잘한다. 감독의 역량인가? 아님 머리가 좋아서인가? (그는 2년 전 MIT에 입학했다고 한다) Ian이 많은 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던 데엔 이유가 있다. 그는 선천성 대사질환으로 키가 1미터 남짓밖에 안 된다. 그렇게 작은 키의 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바로 이 특징 때문에 Ian은 영화 “Simon Birch"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었다. 영화 속의 Simon은, 태어날 때부터 손바닥 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크기로 태어난 난쟁이이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뭔가 잘못된 아이, 부모에게는 부끄러움의 대상이었고,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 받고, 늘 골치 덩어리로 취급받는 아이. 하지만 그 장애아가 보여주었던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 겨우 12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오히려 정상인보다 나았던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Simon이 사람들에게 핀잔과 미움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외모와는 전혀 걸맞지 않는 소리를 자꾸 해대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은 기적의 존재라는 둥,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한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둥,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이며 언젠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 것이라는 등등,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자주 지껄이곤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제일 친한 친구인 Joe조차도 그 말에는 정신차리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Simon의 행동거지도 사람들에게 탐탁지 않았다. 주일학교에서는 늘 교실을 시끄럽게 만드는 주범으로 선생님에게 낙인이 찍혔다. 예배시간, 목사님에게 공개적인 말대꾸를 해서 그 얼굴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이성에 대한 생각은 조숙해서, 이제 갓 가슴이 나오기 시작한 여자 친구들에게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하면, 친구 Joe에게는 그의 엄마가 자신이 본 제일 섹시한 여성이라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정도였다. 그런 아이가 하나님의 도구라니...영웅이 될 것이라니...착각도 유분수지.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Joe의 엄마가 사고로 죽은 후 보인 Simon의 태도였다. Joe의 엄마는 바로 Simon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 야구경기 중 Simon이 친 야구공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한 것이다. 그런데 Simon은 그 일을 두고 사고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그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Joe에게 그것은 황당무계한 억지였다. 엄마의 죽음은 사고였고, 또한 그 사고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만일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신다면, 어떻게 내게서 엄마를 빼앗아갈 수 있는가?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엄마만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그 사랑하는 엄마마저 내게서 빼앗아 가실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 하나님이 그런 일을 벌이실 수가 있는가? Joe는 이 일로 믿음을 잃는다.


  그런데, 터무니없게만 들렸던 Simon의 주장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해 겨울, 수련회에 참석한 어린이를 태우고 돌아오던 교회버스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차가운 호수에 빠져 버렸다. 그 버스에는 Simon과 Joe도 봉사요원으로 타고 있었는데, Joe가 아이들을 통제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Simon이 겁에 질린 아이들을 안정시키고 질서있게 구조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자기들만큼 키가 작달막한 Simon의 말을 아이들이 잘 따랐기 때문이다.
마지막 아이를 구하는 순간 버스는 완전히 물에 잠기고 마는데, 그 때 Simon의 작은 체구, 그리고 오랜 잠수실력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 작은 체구 때문에 좁은 창문 틈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Simon은 잠수를 얼마나 오래하나 재보면서 놀기를 좋아했는데, 그렇게 쌓은 실력이 이 때를 위한 것인 줄 누가 알았겠는가?


Simon은 아이들을 구조하다 얻은 병을 이기지 못하고 1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짧은 삶은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믿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다는 소망을 또한 확인시켜주었다. 그가 사랑했던 친구 Joe의 믿음도 회복시켰다. 그리고 그에게 아버지를 찾는 선물도 남겼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는 장면을 그린 교회의 스테인그라스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어부였지만 예수님의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을 받았던 Simon Peter처럼, Simon Birch는 볼품없는 장애아였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고 그것을 성취하는 의미있고 복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어느 날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났다.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이 제자들의 이 무심한 질문은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잘못과 닮았다. 대부분의 우리는 장애인들을 사회에 짐만 되는 존재로 여긴다. 그리고 그들의 장애가 모종의 죄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장애 뿐 아니라 질병이나 사고로 고통을 당하는 이웃에게도 그런 태도로 대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우리의 얄팍한 생각과는 다른 차원의 말씀인가? 실제 우리 주위에서 장애를 지니고서도 정상인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한다. 뇌성마비의 몸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시를 써내는 송명희 시인, 화상으로 온 얼굴이 짓이겨졌는데도 그 누구보다 맑은 웃음과 넘치는 감사로 살아가는 이지선 자매, 두 팔과 다리 한 쪽이 없는 몸으로 천사같이 아름다운 성가를 부르는 레나 마리아, 사지가 마비된 몸으로 장애인들에게 재활의 꿈과 소망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다간 크리스토퍼 리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장애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도구가 되었다. 비록 몸은 일그러졌어도 그들의 영혼은 오히려 더 아름답다. 그들은 진정한 영웅들이다. 일그러진 영웅들이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 속에서 나는 예수님 같은 배역을 발견한다. 성령님도 등장한다. 예수님은 Joe의 엄마인 Rebecca이다. 그녀는 진정으로 Simon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준 존재였다. Simon에게 고맙다고 하고, “너는 완벽한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Simon을 야단치는 이들에게, 이 아이가 당신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꾸짖기도 했
다. 성령님은 그녀의 새로 사귄 남자친구이다. Ben이라는 이 남자친구는 Rebecca가 세상을 떠난 후 Simon과 Joe를 돌보아준다. 이 두 아웃사이더들을 이해하고 조언해주고 길을 인도하는 보혜사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Joe의 양아버지가 되기도 했다.


바리새인들도 나온다. Simon의 부모, 주일학교 교사, 사제 등이다. Simon의 부모는 언제나 자기들의 아이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자식의 외모가 그 인격을 깡그리 무시할 정도로 그리 부끄러웠을까? 주일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떠드는 것은 못 참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걸핏하면 수업을 중단하고 나가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었다. Simon의 작은 실수와 도전에 울그락 불그락 얼굴을 붉히던 사제는, 간음죄를 범한 사람이었다. Joe의 친아버지였던 것이다. 겉모습으로 인격을 판단하는 사람들. 드러난 작은 결함을 들어 한 인간의 전체를 경멸하고 깔아뭉개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사소한 잘못은 그토록 못 참아하면서 자신의 속에는 더 음흉하고 시커먼 죄를 숨기고 사는 사람들. 이들은 바리새인들이다. Joe가 Simon의 아버지에게 말했듯이, 영웅과 걸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바리새인들의 대표적인 심리방어기제는 투사 (Projection)이다. 투사란, 자신 속에 숨어있는, 용납하기 힘든 충동과 욕구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돌려버리는 것을 말한다. 바리새인들이 타인의 죄를 혹독하게 비판한 것은, 정작 그들의 마음속에 동일한 죄, 혹은 더 심각한 죄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자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요구하고, 자기가 비판한 일을 똑같이 범하면서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위장한다. 부모가 자식의 못난 점을 꼬집어 비난하고 야단을 치는 것도 일종의 ‘자기 투사’라고 한다. 아이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가혹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자람, 실수, 실패에 대한 불안을 대신 아이를 윽박지름으로써 해소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의 범주에 속할까? Rebecca 인가? Ben인가? 아니 Simon의 부모, 주일학교 교사, 사제로 대변되는 부류는 아닌가? 나는 스스로 바리새인이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우리 아이들, 친구들, 친척, 교우, 동료, 후배, 이웃에 대한 나의 태도를 찬찬히 살펴보면, 내게 바리새인의 투사가 무척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부디 조금씩이나마 Ben이 되어갔으면. Rebecca가 되어갔으면. 그래서 아직 미숙하지만 영웅이 될 가능성이 있는 우리 아이들, 몇 가지 마음에 안 드는 면이 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좋은 면을 틀림없이 지니고 있을,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 또 다른 많은 일그러진 영웅들, 내가 그 영웅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격미달인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후기) 얼마 전 월마트에서 이 영화를 5불에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DVD를 늦게 반납해 연체료를 상당히 물었는데...아쉬운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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