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영화는 일견 보기에 좀 허황되다. 시쳇말로 뻥이 심한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영웅담과 모험담을 늘어놓는 아버지와 삼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Big Fish에서의 주인공은 그런 아버지를 무척 싫어한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들. 멋모를 땐 속아 넘어갔었는데, 철이 들면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허황된 이야기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시도 때도 없이 해대니 그런 아버지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아들의 약혼식에서도, 또 결혼식에서도 예외 없이 주절주절 그 이야기를 늘어놓고, 며느리에게까지 턱없는 허풍을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Secondhand Lions의 주인공 꼬마는 두 삼촌들의 영웅담을 그리 싫어하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삼촌들의 현재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딴판인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Secondhand lion은 늙은 사자, 즉 이빨도 다 빠지고 사냥할 기력도 없는 사자를 말한다. 영화 중에 늙은 사자가 하나 등장하는데, 주인공 꼬마를 구하려 한 번 용을 썼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퇴물이 다 된 늙은 삼촌들의 모습은 그 사자의 처지와 비슷했다. 촌구석의 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에서 가족도 없이, 친척들은 원수를 보듯 경원시하며, 둘이서만 외롭게 살면서, 하릴없이 물고기를 잡는다며 개울물에 총질이나 해대는 삼촌들은, 힘없는 늙은 사자에 불과했으며, 그들의 모험담은 정말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Big Fish 속의 아버지의 모험담이 전혀 거짓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뻥튀기를 하긴 했지만, 대부분 사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그 허풍들의 근거들이 다 모였다. 아버지가 말했던 거인, 쌍둥이 중국 여인 가수들, 신비스런 작은 마을의 소녀, 갑자기 주식으로 떼돈을 번 시인 등등. 실제 그 거인이 마을의 가축을 다 잡아먹고, 쓰러져 가는 집을 혼자 힘으로 다시 세웠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거인이 서커스 단원으로 일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중국 가수들은 아버지가 말한 대로 상체는 둘이면서 하체가 붙어있는 샴쌍둥이는 아니었지만, 쌍둥이임에는 분명했다. 그 시인이 아버지와 함께 은행을 털었는지 의아스럽긴 했지만, 월가의 부자는 맞았다. 그 작은 마을은 비록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마을에 불과했지만, 아버지가 쓰러져가던 그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사실이었다.
Secondhand Lions의 그 늙은 삼촌들의 영웅담도 다 허풍은 아니었다. 일차세계대전에 우연히 참전하게 되어 아프리카 전선에서 전쟁영웅이 되었다던 삼촌들. 전쟁 이후에는 노예상들에게서 노예를 구하는 일을 했다던 그들. 칼 한 자루로 스무 명 정도의 노예상은 거뜬히 해치웠다던 영화 같은 이야기. 또 그 러브스토리는 어떤가? 삼촌 한 분이 쟈스민이란 이름의 어떤 아리따운 여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는데, 그 여인은 한 부자에게 시집가기로 약정이 되어있었다. 여자를 빼앗긴 그 부자는 자객들을 동원하여 삼촌을 죽이러 쫓아다니는데, 그 부자의 소굴로 제 발로 찾아들어간 삼촌은 그 악한과 맞대결을 벌인 끝에 그 여인도 구하고, 더불어 큰 재산도 빼앗아왔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 참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그 낡은 집 창고 바닥에 숨겨놓은 많은 돈을 발견하긴 하지만, 어떤 사람이 삼촌들은 은행강도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삼촌들이 비행기 사고로 한꺼번에 세상을 뜬 날, 그 현장에 헬기 하나가 내린다. 그 헬기에는 중동의 석유부자가 타고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그의 아버지가 쟈스민이란 여인을 두고 이 삼촌과 대결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이 삼촌을 그가 만난 진정한 영웅이라 늘 말했다고 했다. 삼촌들의 영웅담은 상당부분 사실이었던 것이다.
좀 황당한 이야기인데도, 이 영화에는 왠지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어릴 적 동화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현실세계와는 좀 맞지 않지만 어린 상상력을 자극하던 그 이야기들. 꿈에서라도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았던 환상적인 세계들. 안델센 동화집, 아라비안 나이트, 걸리버 여행기, 삼총사 등, 그림 하나 제대로 없이 누런 종이에 활자로만 찍혀있던 동화였지만, 그 딱딱한 겉표지가 닳도록 읽어도 읽어도 재미있던 이야기들.
동화 뿐 아니라, 가까운 어른들의 인생모험을 듣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호랑이를 만났던 이야기, 밤새 여우한테 홀려 산을 돌아다녔던 일, 도깨비하고 씨름을 하다 넘어뜨리고 나서보니 빗자루였다는 이야기 등,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들. 짙은 겨울밤, 작은 텃방에 앉아 이불 속에 다리를 넣고, 그 특유의 옛 방언을 물어 해석해가며 듣는, 할머니들의 토란토란 이야기는 참 구수한 맛이었다. 또, 그 분들의 사건과 역경이 많았던 삶의 여정과, 그 변화 많은 세월을 헤쳐 왔던 어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왠만한 동화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우리 어른들은 이야기가 많은 시대를 지냈다.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 분들에게는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었다. 시절이 그렇게 만들었다. 나라의 주권이 남에게로 넘어가고, 남의 나라의 이름을 지어야했고, 이런 저런 이유로 부모형제와 떨어지기도 하고, 더 나은 삶을 찾아 일본으로 만주로 돌아다니는 격동의 세월을 보내었다. 그 뿐인가. 해방 후의 혼란, 전쟁을 겪고, 보리 고개를 해마다 넘겨야 했던 세월. 수십 리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통학해야했고, 때로는 매일 한 끼의 밥으로 버텨야했던 고학의 시절. 그 분들은 그런 이야기 많은 시대를 살아왔다.
요즘 시대는 이야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회가 안정되고 기계적인 일상이 자리잡으면서, 이야기 거리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 틀에 박힌 삶에 안주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외부에서 제시하는 규격에 맞추어가기만 하면 된다. 신경 쓸 필요 없다. 괜히 버둥거려 보아야 손해만 볼 것이다. 주어진 삶에 잘 따라가기만 하면 그게 제일 편한 길이다. 이런 것들이 은연 중 우리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생각들은 아닌가?
성경에서는 묵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한다고 했다 (잠언 29:18). 이재철 목사님은 ‘비전의 사람’에서 이를 해석하기를 비전이 없으면 방자해진다고 하였다. 현대를 가리켜 “구도가 사라진 시대”라고도 한다. 가치를 추구하는 삶, 비전을 품고 모험을 감행하는 삶이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자한 삶들이 현대에 늘어가고 있는 것일까?
동화가 어린이들에게 비현실적인 세계를 주입시킨다고 해서 읽히기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동화는 계속 읽히어왔다. 동화가 가치 있는 것은, 참이냐 거짓이냐 이전에, 그 이야기가 전해주는 어떤 긍정적인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대부분의 명작동화들의 특징은 선행을 장려하고,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 명예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일깨운다는데 있을 것이다. 동화는 이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준다. 비전을 품게 한다.
그런 면에서 Big Fish와 Secondhand Lions은 일종의 동화이다. 어른 동화이다. Big Fish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즈음에서야 아버지가 정말 큰 물고기임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돕는 정, 조국에 대한 충성, 아내를 향한 지극한 사랑, 가족을 위한 희생 등,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 온 큰 물고기였다. 비록 지나치게 공상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각색하는 통에, 오랫동안 모든 것이 거짓이라 오해하긴 했지만, 그는 결국 아버지를 통해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깨닫는다. 영원한 것들... 사람들, 가족, 친구들...
Secondhand Lions에서도 삼촌이 꼬마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명예, 용기, 그리고 덕이 가장 중요하단다. 권력과 돈, 돈과 권력? 이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야. 선은 항상 악을 이기게 되어있어. 그리고 이것을 기억해라. 사랑...진정한 사랑은 결코 소멸되지 않아. 꼬마야, 이것을 기억해라. 꼭 기억해. 사실이냐 아니냐는 상관없어. 너 남자는 이것들을 믿어야 해. 그것들은 믿을 가치가 있는 것들이야”라고.
과연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인가? 들려줄 이야기 거리가 있는가? 그들에게 꿈을 심어줄만한 모험담이 있는가? 참다운 가치, 추구할만한 목표를 제시할만한 영웅담이 있는가? 나 자신 만의 동화가 있는가? 삶을 다 산 후에 그냥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하지 말자. 평생을 돌아보며, 손해 안 보고 내 것 잘 챙겨서 내 한 몸 산뜻하게 살아왔다고 밖에 말하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서글픈 인생인가? 후세들의 영혼에 무언가 자국을 남길 만한 이야기를 만들자. 뻥을 치지 않아도, 그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숨을 고르게 만들고, 그들의 눈망울을 반짝이게 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를 만들자. 꿈을 심어주자. 비전을 남기자... 나의 세대를 이야기가 사라진 시대로 만들지 말자.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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