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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2세 남미의 2세
목회자 시/칼럼/칼럼 - 푸른 초장 | 2007년 05월 07일 23시 30분
 

미국에 살면서 내가 늘 고심하면서 관심을 갖는 문제가 있다면 우리 2세들의 정체성 문제이다. 이는 이 땅에 사는 모든 부모들, 특별히 한인 지도자들의 공통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 각국의 2세들을 관찰하자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한인 2세들 가운데서도 남미에 사는 2세들과 미국에 사는 2세들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브라질이나 파라과이 같은 남미에 정착하여 사는 한인 2세들의 경우 우리말을 유창하게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인 2세들만 있는 자리에서는 결코 남미 말을 하지 않고 한국말만 한다는 것이다. 성장하여 중 고등학교 시절에 남미로 이민 간 아이들의 얘기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일지라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미국에 사는 한인 2세들의 경우 자기들끼리도 한국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또 실제로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초등학교 때 미국에 이민 온 아이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한국말을 못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이 아닌가? 남미에 있는 한인들의 경우 특별히 우리말을 신경 써서 잘 가르치고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가? 결코 그것은 아니다. 사실 통계를 보면 남미 쪽에 이민 간 한인들보다 미국 쪽에 이민 온 한인들이 교육수준이나 생활수준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는 교육의 질 문제에서 오는 차이는 아닐 것이다. 교육의 질로 말하자면 남미보다 미국 쪽이 더 앞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남미 쪽으로 이민 간 사람들이 더 민족정신이 뛰어나기 때문인가? 글쎄다.


꼭 남미의 2세와 미국의 2세만의 차이가 아니다. 유럽 쪽 즉 독일이나 프랑스 쪽에 이민 간 아이들의 경우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쪽에 사는 한인 2세들의 경우 남미의 2세들처럼 우리말을 못하는 아이들이 없다고 한다. 현재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들 가운데 말레이시아에서 유학 온 한인학생이 둘이나 있다. 그들은 어렸을 적에 말레이시아에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말을 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1세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한국말을 한다. 도대체 그 차이가 무엇일까? 그것을 비교 연구하는 가운데 한 가지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있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문화수준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문화적 우월감의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남미에 사는 한인들이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사는 한인들의 경우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있기에 그 땅의 문화보다 앞선 혹은 그 땅의 문화보다 훨씬 자부심을 가질만한 우리의 문화, 즉 우리의 말과 글을 잊으면서까지 그들의 삶과 문화에 동화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즉 남미의 경우 그곳에서의 생활을 위해 스페인어(Spanish)를 배우고 사용할망정 우리끼리 있을 때조차 스페인어를 사용할 만큼 남미의 문화에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내가 선교사들을 통해서 듣기론 한국 사람들의 경우 남미 사람들에 대한 호칭은 ‘원주민’이라고 한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미개한 민족을 가리키는 표현이랄 수 있다. 그 미개한(?) 문화의 언어를 위해 그것보다 훨씬 우월한 우리말과 우리글을 잊어버리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한인 2세들은 당연히 우리말과 우리글을 유창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우리 문화가 훨씬 우월하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사는 이 미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비록 우리 한인들이 5천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에 대해 나름대로의 특별한 민족적 자부심이 있기는 하나 솔직히 이 미국이 우리보다 더 선진화 되고 더 앞서가는 나라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더 우월한 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늘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우리말을 잊은 채 영어 문화권에 이끌려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 국가에 사는 한인 2세들이 우리말이나 우리글을 모르는 반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같은 낙후된 지역에 사는 한인 2세들이 유창하게 우리말, 우리글을 잘 하게 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명백히 문화적 우월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옛날에 우리 한국에 왔던 미국 선교사나 영국 선교사의 자녀들을 생각해보라. 그들 가운데 한국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혹은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영어를 잊어버리거나 못하는 자녀들이 있었는가? 나는 한 번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한국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 한글을 잘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한국에서의 생활과 선교를 위한 필요 때문이다. 그들은 영어를 말하고 쓰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자신들의 영어문화권이 한국의 문화보다 더 우수하다는 우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의식에 이끌려 저절로 영어문화권에 붙들린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이 같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말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2세들이 우리말을 잘 하지 못함을 질책하기 위함도 아니다. 부모들에게 2세들에게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을 묻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어떤 땐 우리의 아이들에게 우리말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자랐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이 미국에서 살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미국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왜 한국말이 필요한가?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위와 같은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의식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누구든 보다 우월한 것, 보다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든 상류사회의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할망정 길거리의 홈리스 피플(Homeless People)처럼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 자부심을 가질만한 사람이 될지언정 열등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에겐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가? 그것이 세상의 삶보다 훨씬 더 우월한 삶이요,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이라는 의식이 있는가? 이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에게 기독교와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우월의식이 없다면, 자부심이 없다면 우리의 삶엔 결코 기독교인다운 삶이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자부심을 갖지 않는 삶은, 내가 우월하게 여기지 않는 삶은 내 삶 가운데 드러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이 땅의 2세들이 우리 한국의 문화를 잊고 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거꾸로 우리가 기독교에 대해,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같은 의식은 자연히 겉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즉 그 같은 사람은 당연히 기독교인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삶을 어지간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살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결국 오늘 내 사는 모습이, 내 드러내는 삶의 내용이 내가 기독교에 대해, 주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믿음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같은 사람은 당연히 그 같은 의식이 바깥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그것이 바깥에 표출되지 않겠는가?


우린 한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한 우리의 자녀들에게 한국인의 자긍심을 심어주며 키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자녀들의 정체성을 위해서도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객관적으로 우리 문화의 우월함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민족적 자긍심 그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소홀히 할 때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의 세계에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에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불행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우린 우리의 2세들에게 우리가 믿는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우월한 삶이며 소중한 삶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그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때까지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한다. 그럴 때 그 아이들이 믿음의 세계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것이다. 남미의 2세들, 동남아시아의 2세들이 우리의 것에 자긍심을 느끼며 사는 것처럼 우리 자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2세들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늘 힘쓰는 교우들이 되기를 바란다.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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