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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심 깊은(?) 견공
목회자 시/칼럼/칼럼 - 푸른 초장 | 2008년 07월 23일 08시 37분
 

신앙심 깊은(?) 견공


한번은 신문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읽었다.이는 사람보다 더 신앙심이 깊은 개(?) 에 대한 이야기이다.로이터 통신이 전한 보도인데 포르투갈 북부의‘소브라도’라는 곳에 사는 개가3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주일마다 예배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레타’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개는 매주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가기 위해 혼자서 새벽5시에 집을 나서는데‘프레타’가 소브라도 인근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가야 하는 거리는 무려 16마일이나 된다는 것이다. 16마일이면 우리 교회에서 거의 Lockport까 지의 거리가 아닌가 생각된다.개가 걸어가기엔 참으로 먼 거리가 아닐 수 없다.그 런데도 그 개는 한 번도 교회를 빠지지 않고 개근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를 따 라서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교회를 찾아오는 것이다. 교회에 도착하게 되 면 그 개는 오전 7시 30분에 있는 예배에 맞춰 강단 바로 옆에 마련된 자신만의 지 정 장소에 앉아서 예배를 드린다. 그것도 예배 도중 신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앉을 때마다 그 개도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하고도 희한한 개가 아 닐 수 없다.

예배를 마치게 되면 그 개는 집으로 되돌아간다. 때론 아는 사람의 차를 타고 집으 로 가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절대로 아는 사람의 차가 아니면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정말이지 웬만한 아이보단 더 낫지 않나 싶다.이 개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서 ‘프레타’를 보기 위해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이 개는 그야말로 사 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훌륭한 전도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글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보다 훨씬 낫구먼!” “아니 웬만 한 신자보단 훨씬 낫구먼!” 물론 입 밖으로 내기 조심스런 말이었지만. 가만 보면 신 자들 가운데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나오는 일에 들쑥날쑥 하는가? 믿음이 조금 없는 신자들의 경우,비가 오면 비 때문에,눈이 오면 눈 때문에,몸이 피곤하 면 곤해서,날이 좋으면 또 골프를 치기 위해 교회에 나오지 못하곤 한다.

내가 전에 사역했던 알래스카 훼어뱅스의 경우 그야말로 여름철만 되면 교인들 출 석률이 반으로 줄어들곤 했다. 이는 불과 2-3달밖에 안 되는 알래스카 여름인지라 그 여름을 만끽하기 위해 혹은 골프장으로 혹은 바닷가로 자주 떠나기 때문이다. 특 별히 알래스카의 경우‘연어잡이의 천국’아닌가? 그래서인지 너도 나도 모두가 아주 빈번히 고기잡이를 떠나는 바람에 교회가 자주 비곤 했다. 그들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이는 9개월이나 되는 긴긴 겨울을 버티기 위해서는 여름 한 때라도 그렇게 묵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알래스카의 삶을 만끽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그 여름 한때를 위해서 그 길고도 지루한 겨울을 견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 들이 그처럼 자주 교회를 비우는 것에 대해 별로 탓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이곳의 겨울이 알래스카만큼 길지 않아서인지,아니면 알래스카처럼 신나는‘연어잡이’가 없 어서인지, 혹은 이곳 사람들이 그곳 사람들보다 믿음이 좋아서인지 여름철이 되어도 거의 교회에 빠지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한편으론 감사할 일이요 또 자랑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날씨나 여가 생활 때문에 교회를 빠지는 일은 없을지라도 가끔 보면 ‘시 험’에 들어서, 혹은 ‘건강’이 좋지 못해서, 혹은 누군가와 불편한 일이 생겨서 교회 를 빠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이는 어떻게 보면 개보다 못해서 가 아니라 개보다 낫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야 우리처럼 복 잡한 감정이 없잖은가?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요 또 ‘관계의 존재’ 아닌가? 그렇기 에 자주 ‘감정’ 때문에 혹은 ‘관계’ 때문에 교회생활이 삐꺼덕 거리기도 한다. 그러 나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없다.아니 어떤 의미에서‘감정’이나 ‘관계’ 때문에 자주 믿음생활에 문제가 생기느니 차라리 ‘개의 무감정(無感情)’을 배우는 것이 훨씬 낫다 하겠다.

감정이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한 특성이긴 하지만 가만 보면 그것이 너무 지나쳐 상당수의 사람들이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는 그리스 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그 감정 때문에 자주‘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그 감정 때 문에 자주 ‘상처’를 입기도 하고, 심할 경우 그 감정 때문에 믿음의 세계를 떠나기도 한다. “저 목사가 혹시 나 들으라고 저런 설교를 하는 것은 아닐까?” “왜 늘 나만 이 처럼 교회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 사람이 왜 내 인사를 안 받았을까?” “그 사 람이 무슨 뜻으로 내게 그 같은 말을 했을까?” . . .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는 자주 감정의 갈등과 상처를 경험한다.그로 인해 관계가 훼손되거나 혹은 신앙의 타격을 입게 된다. 그것이 감정을 이용한 사단 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인간이 ‘감정의 존재’인 것이 동물과 다르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린 때론 ‘개의 무감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아니 무감정 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완전 히 죽일 수 있어야 한다.그것이 바른 믿음생활,꾸준한 믿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는 사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에게 끊임없이 죽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우리도 같이 못 박혀 죽은 것 을 뜻하는 것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로마서 6장 3절)

우리 자신의 죄성을 완전히 죽이는 것,그것이 곧 믿음이다.그 안엔 물론 감정(感情)도 포함되어 있다. 감정은 곧 본성의 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감정을 통해 우린 늘 본성에 휘둘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즉 감정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시기하고,아파하고 슬퍼 하고 그래서 결국 더욱 죄를 짓는 가운데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 인은 그 무엇보다 감정에 대해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나를 칭찬하든 혹은 나 를 비난하든 그것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그래야 자신의 본성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그 같은 사람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늘 흔들림 없이 견고하고 꾸준한 믿음의 삶 을 살 수가 있게 된다.물론 앞에서 언급한‘프레타’란 개가 자기 감정을 십자가에 다 못 박은 존재이기에 그처럼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교회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개는 그저 동물로서 본능적인 습관에 따라 늘 교회에 올라오는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은혜 받는 일’에 있어서는 결코 ‘개’의 모습을 본받아서는 안 되리라. 사실 ‘프레타’란 개가 교회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야 대견하다 못해 감탄할만 한 일이긴 하겠지만(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개를 구경하기 위해 그 교회를 찾는 것이겠지만), 그 개가 무슨 하나님의 은혜를 알겠으며 무슨 목사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당연히 결코 못하였으리라.따라서 그 개처럼 교회를 드나들어서도 또한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거꾸로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교회 나오는 꾸준함에 있어서는 ‘프레타’란 개를 본받고, 은혜 받지 못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 개 를 본받지 말아야 하는데, 거꾸로 은혜 받지 못하는 일에 있어선 그 개를 본받고 꾸 준히 교회생활을 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 개를 본받지 못하고 있다. 이야말로 안타까 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결코

이 같은 경우에 해당되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을 보면 ‘개’라는 말이 전부 41곳이 나오는데 거의 대부분 칭찬하는 말이 아니 다. 그러나 ‘프레타’라는 개만큼은 예외가 아닌가 싶다. 이 ‘프레타’라는 개의 신기한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자신의 믿음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꾸준회생활에 있어 그 ‘개’보다는 나은, 아니 적어도 그 ‘개’만큼(?)이라도 갖는 그리스 도인들이 다 되었으면 한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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