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멸망(2) -전쟁이야기(21)-
제국의 멸망(2)
-전쟁이야기(21)-
코르테스 이야기의 계속입니다. 그가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에 입성했다는 것까지
지난번에 말씀드렸지요.
코르테스를 아스텍 전설의 그 신인으로 믿었는가, 국왕은 코르테스의 요구대로
아무 저항도 없이 궁전의 어느 방에 갇히고 맙니다.
이 무렵 코르테스의 방자한 짓거리를 보다 못한 큐바 총독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군대까지 보내게 되는데, 일부의 병력을 이끌고 성밖으로 나간 코르테스는 오히려
그들을 격퇴해 버립니다.
한편, 코르테스가 자리를 빈 사이 수도에선 큰 사태가 벌어지게 되지요. 무엇 때
문인지 수도에 남아있던 코르테스의 부하들이 원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고,
이 일로 노한 원주민들이 대대적인 반 코르테스 폭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부랴부랴
돌아온 코르테스는 유폐된 국왕을 불러내 그들을 무마시키려 했으나 이미 비겁자의
낙인이 찍힌 국왕은 돌과 화살 세례를 받아 중상을 입고 맙니다.
수도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된 코르테스, 간신히 탈출에 성공합니다만 그동안
약탈해 모아두었던 황금과 보물들을 모조리 잃어버렸으니 아마도 그의 눈에선 피눈
물이 흘렀을 터, 더구나 부하까지 1/3이나 피살되고 말았으니. 이 사건이 멕시코 역
사에서 「슬픈 밤( La Noche Triste)」이라 일컫는 유명한 유혈 사태라는데... 이 일
이 왜 슬픈지 이해가 안가네. 아무튼 이 소용돌이 속에서 국왕이 죽게 되고, 그의 아
우 키틀라하우친(Cuitlahautzin)이 새 지도자가 되어 스페인인들에 대한 저항을 시도
하나 불행하게도 천연두가 돌기 시작합니다. 서인도 제도의 인디언들처럼 이 무서운
돌림병으로 키틀라하우친을 비롯해 수많은 원주민들이 죽어나갔지요.
일단 철수했던 코르테스는 군대를 재정비하고 원주민 동맹군들을 더 강화한 다음
수도를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약 10개월 후의 일이었어요. 수도를 포위하여 모든
식품과 물까지 완전 차단해 버렸으니.
아스텍인들은 자존심과 애국심이 매우 강한 백성들, 성 안에 갇혀 전염병으로 죽
어나가고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면서도 계속 싸우고 있었지요. 3개월을 그렇게
버텼답니다. 보다 못한 코르테스마저 그들에게 항복할 것을 간청까지 했다는 이야
기도 있지요.
국왕과 그의 아우가 죽자 그들의 조카인 25세의 청년 쿠아우테마크(Cuauhtemoc)가
지도자가 되어 싸우고 있었던 것. 그러나 그는 결국 스페인 군에게 체포되고 말지
요. 그는 이렇게 최후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임무를 다 했다. 그러나 나는 실패했다.
그러니 코르테스여, 그대의 칼로 나를 죽이라!
스페인 군 600명과 원주민 동맹군 10만을 거느린 코르테스 앞에 결국 무릎을 꿇
고 마는 아스텍인들, 이로써 아스테카 제국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으
니... 1521년 8월 17일의 일이었지요.
아스텍인들은 모두 노예가 되었고, 코르테스는 황금과 보물을 한 배 가득 실어
스페인 왕실로 보냈고.
얼마 후 스페인으로 귀국한 코르테스는 넓은 땅과 많은 노예를 하사 받고 군주
못지않게 살다가 죽었다는데,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닌가 싶네그려. 「악마의 사
도」의 종말이 이렇듯 순탄하다니.
유언대로 그의 시신은 멕시코로 운반되지요.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 2
년이 지난 1823년, 그의 유해는 멕시코 민중의 난폭한 보복을 피해 비밀 장소로 숨겨
지는 수난을 겪게 되었고, 1946년 그것이 다시 발견되자 코르테스를 지지하는 측과
비난하는 측 사이에 격렬한 논쟁까지 불러 일으켰다는 시시한 이야기도 있네요.
피사로, 1474년생인 그도 역시 스페인 산. 코르테스보다 지체가 낮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 이외엔 별로 알려진 게 없는 그의 성장 배경. 젊었을 때 여러번 신
대륙 원정에 참가하면서 이런 저런 소문을 들은 그는 파나마 남쪽 어딘가에 있다는
「황금의 나라」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지요.
1522년, 수도사인 루케(Luque)와 군인인 알마그로(Almagro)와 손을 잡고 첫 탐
험길에 올랐으나 그는 실패의 잔에 고생만 그득 채워서 돌아오고 맙니다.
몇 년 후 다시 도전하는 피사로. 이번에는 페루의 북단에 있는 도시 툼부스
(Tumbus)에 당도할 수 있었지요. 숫한 고난 끝에 이르른 그들을 그곳 주민들을 다행
히도 친절하게 대했으나 상상 외로 큰 성채와 신전 그리고 질서 정연한 도시의 모양
새가 이 나라의 조직력과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어 피사로는 실컷 주눅이 들어 되돌
아오고 말지만, 그러나 그가 어디 이 정도에서 순순히 포기하고 말 인간인가요.
일단 스페인으로 귀국한 그는 스페인 왕을 화롯불에 감자 굽듯 구워삶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원정군 총사령관 겸 정복자 총독 자리를 따내고 마는 것 보세요.
1531년 초, 드디어 피사로는 원정군의 배에 올라 파나마 항구와 작별하게 됩니
다. 코르테스에 비해 빈약하기 그지없는 그의 원정군. 고작 배 3척에 병사 180명,
대포 몇 문과 말 27필이 전부였으니.
에쿠아도르의 북부 해안에 상륙한 그들은 남하하기 시작하여 전에 있었던 툼부스
에 이르게 되었고, 다시 안데스 산맥(Andes Mountains)의 험산 준령을 힘겹게 넘
어 카하마르카(Cajamarca)라는 계곡에 도착하게 됩니다.
코르테스처럼 피사로도 운좋은 사나이.
때마침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후알파(Atahualpa)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거든요.
수도인 쿠스코로부터 천마일도 넘는 이곳에 왜 그가 와 있는지, 얼마 전까지 그의
권좌에 도전해 반란을 일으켰던 그의 아우의 군대를 뒤쫓아 예까지 온 듯 싶기도
하나 책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알 길이 없네요.
아무튼 내란은 겨우 평정됐으나 이 사태로 황제뿐 아니라 그의 부하들까지 모두
지쳐있었고, 나라 형편도 아직은 뒤숭숭하기 그지 없을 때였지요.
이 나라에도 아스테카 제국처럼 하나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어요. 천지
를 창조한 신이 있는데 이 백색 신의 이름은 비라코차(Viracocha). 그가 때가 차면
언젠가 도래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잉카의 황제는, 아스텍 왕이 코르테스를 자기들 전설 속 신인으로 여겨
신성시했던 그런 우를 범치 않네요.
백성들로부터 「태양의 아들」이라 불리며 신으로 추앙받고 있던 그는 자기만이
나라의 유일한 신이라고 믿어왔던 것이고, 또한 이 신적 권위가 그의 절대권력의
밑받침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
하지만, 그는 피사로를, 즉 적을 얕잡아보는 어리석음의 올가미에선 벗어나지 못
하고 맙니다.
「대세계사」의 저자는 이즈음 피사로가 '기지와 용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라고 적
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기지에 찬 속임수의 미끼를 과감하게 잉카인들과 황제에게
던지고 있었기 때문인듯. 자기는 스페인 왕이 보낸 평화의 사절이며 기독교 복음을
전하러 왔을 뿐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낯선 방문객이 하는 소리와 겨우 200도 안되는 숫자를 가볍게 여겨 조롱의
말까지 하면서 피사로와의 면담을 윤허하는 황제. 바로 그 전날 밤에도 밤새 천주
교 미사를 드리는 피사로.
그들의 만남의 곳엔 수도사 한 명 그리고 인디언 안내자 한 명과 함께 피사로가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4000명이나 되는 군대를 거느리고 온 황제가 거만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요상한 손짓을 하는 피사로.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그의 군병들
이 갑자기 벌떼처럼 달려들어 황제를 묶어버리네. 동시에 굉음과 함께 연기를 뿜으
며 대포는 작렬했고, 기마병들은 말발굽 소리도 드높게 지쳐나갔으며, 병사들은 칼
을 높이 들고 일시에 달려나가니 속수무책이라, 난생 처음 보는 대포와 말에 넋을
잃은 잉카 군대는 도망가기에 바쁘네그려. 더구나 그들은 비무장 상태였으니. 이
어리석은 황제가 오만하기 그지없어 군대를 무장도 시키지 않은 채 무슨 소풍이나
가듯 대동하고 왔으니 말입니다. 2000명도 넘는 잉카군의 피로 계곡은 새빨갛게
물들고 마는데, 때는 1532년 11월이라. 스페인군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다니.
포로가 된 황제지만 아직도 백성들은 그를 신으로 여겨 그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피사로는 황제를 교묘하게 이용해 제국을 지배하면서 전국의 황금과
은을 긁어모으기 시작하지요.
피사로는 한 때 이런 거짓 약속을 퍼뜨려 황금을 쉽게 모은 일도 있었답니다. 그
것은 황제가 갇혀 있는 방을 황금으로 가득 채우면 그를 잉카인들에게 돌려주겠다
라는 것이었어요. 이 때 백성들이 바친 황금의 양이 어마어마했답니다.
피사로가 약탈한 것들은 대부분 잉카 문명과 전통을 대표하는 뛰어난 세공품들이
었지요. 그들은 이것들을 가차 없이 용해시켜 버렸으니. 그 중 1/5은 스페인 왕실
로 보내졌고 나머지는 피사로 일행이 차지했고.
그 뒤, 증원 부대가 파나마에서 오게 되자 황제의 필요성이 없게 된 피사로는 그
를 살해해 버립니다. 그를 재판에 부쳐 반역죄라는 누명을 씌워서였지요.
Alister Cooke이 쓴 책 「America」엔 '하나의 잊어버릴 수 없는 이야기(One
unforgettable story)'가 실려 있습니다. 이 잉카 제국의 황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며 죽어갔을 듯싶어 소개합니다.
자기 종교를 부인하고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거부하는 어느 원주민 왕이 분
형(焚刑)에 처해지고 있었다. 장작더미에 불이 붙여져 그의 몸을 불꽃이 휩싸기
시작했을 때, 세례를 받으라는 마지막 권고가 있게 된다.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는 끝내 거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희들은 모르겠지.
내가 세례를 받으면 천국에 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 너희들과 같은 크리스찬들을 또다시 만나게 될 것 아니냐.
나는 그것이 두렵다.
황제를 죽인 피사로는 허수아비 황제를 왕족 중에서 뽑아세운 뒤 남쪽에 있는 수
도를 향해 진군합니다. 가는 곳마다 도시와 농장들을 파괴했으며 닥치는 대로 원주
민들을 살해하거나 노예로 만들었고, 물론 보이는 황금은 모조리 약탈하지요. 원주
민들의 반항이 있었다고 하나 신으로 믿던 황제가 죽어 이미 싸울 의욕을 잃었을
뿐 아니라 엎친데 덮친격으로 천연두마저 돌게 되었으니 그게 무슨 싸움다운 싸움
일 수 있었겠어요.
1537년, 잉카 제국을 완전히 정복한 뒤 원주민의 모든 신전을 파괴하고 그 위에
기독교 교회를 세우는 피사로.
이로써 잉카 제국은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이 땅은 스페인의 영토가
되었으며 아스테카처럼 혼혈의 나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천벌을 받았는가, 피사로의 종말은 코르테스처럼 평안한 것이 아니었지요. 동료
였던 알마그로와 그 사이에 관할권 문제로 분쟁이 일어났어요. 알마그로가 일단 패
해서 추방당합니다. 그러나 1541년 6월 그의 일파가 들고 일어나 피사로를 암살하
고 말았으니까요.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 첫 발을 디딘 후 50년 내에 스페인인들은 전 중미와
페루까지 정복합니다. 「대세계사」는 그들의 식민지 정책과 그 때의 상황을 이렇
게 쓰고 있습니다.
약탈과 살인이 대강 끝나자 그들은 착취를 시작했다. 너나없이 사복을 채우
기에 분주한 스페인인들은 금은광에 손을 대었고, 이로서 원주민들의 비참한
노예 노동이 시작되었다. 광산에서 그들은 과로와 낙반 등의 사고로 수없이
죽어갔다. 멕시코 일대도 페루 방면도 마찬가지였다. 반항하면 박살당하거나
화형에 처해졌다. 반란을 일으킨 마을이나 도시는 보복을 당해 폐허화 되었고
주민들은 모조리 살해당했다.
그 결과, 원주민의 수가 줄어들었다. 정복된 후 40여년만인 1570년대의 보
고는 페루 인구가 1/4로 줄었다고 되어있다.
「미국 민중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악마의 사도」이야기 끝내도록 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에게 행한 그 모든 죽음과 야만 행위로 스페인인
들은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그들은 역사의 극히 짧은 기간 동안 자기 제국
의 영광을 누렸을 뿐이다. 코닝(Hans Koning)은 그의 책 「Columbus: His
Enterprise」에서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금은을 그토록 많이 도둑질해갔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인들은 더 부자
가 된 것은 아니었다. 잠시 왕들이 힘의 균형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
고, 더 많은 용병을 고용해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그 모든 전쟁에서 패했고, 남은 것이라곤 치명적인 인플레
이션과 기아에 시달리는 국민, 빈익빈 부익부와 농민 계급의 몰락뿐이었다.
다음엔 미주 본토로 돌아가 청교도와 인디언 이야기 들려드리지요.
주안에서 샬롬.
✎ 이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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