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요즘, 그동안 살던 집을 시장에 내놓으려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선 집을 팔 때 그
리 복잡하게 준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미국에선 그게 아닌 모양이다. 마치 선을
보는 사람처럼 아주 잘 단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 내놓으면 아예 쳐다보
지를 않는다고. 그 준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집 자체를 수리하고
단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가구나 소품들을 잘 갖추어 놓는 것이다. 집수리야 이리저
리 알아보고 연구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인데, 가구나 소품에 대해선 별로 아는
것이 없는 터라 안목이 있는 분의 도움을 얻어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를 도와주시는 그 분이 앤틱가게에서 좋은 물건 몇 점을 보았다고 구
입을 하자고 권하였다. 앤틱이라면 우리말로 골동품 아닌가? 아 그러면 좀 가격이 싼
중고품을 사나보다 했다. 그런데 왠걸, 아내를 통해 전해들은 가격대가 전혀 예상과
는 다른 것이었다. 오히려 더 비싸면 비쌌지 싸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뭔가 대
단한 것들을 사나보다 했다. 하지만 물건들을 가지러 간 날 그 추측 또한 전혀 틀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 구입한 골동품들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첫 느낌은 그냥 수수
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지나치게 단순해보였다. 가장 밋밋한 느낌의 골동품은 거실
에 둘 탁자용으로 구입한 나무상자였는데, 아무런 장식도 무늬도 없는, 그저 뚜껑달
린 네모난 상자였다. 더구나 뚜껑에는 누가 뜨거운 것을 놓다가 태워먹은 자국도 나
있었고 그 주변에는 시꺼멓게 묵은 때도 앉아있었다. 사실 그 골동품은 물건을 나르
는 사람이 가지고 필자 옆을 지나가길래, 누가 저런 물건을 사나하고 궁금해 하던 것
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산 물건이었다니. 또 어떤 것은 전혀 실용성이
없어보였다. 의자를 하나 샀는데, 높이가 너무 낮아서 앉기에 적당하지 않았고, 또
약해 보여서 앉으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실제로 그 의자는 장식용이니까
앉지 말고 그냥 전시만 하라고 권유를 받았다. 아니 앉지도 않을 의자를 왜 사지?
그런데, 그 골동품들을 집에 가져와 놓아보니, 그것들이 그렇게 귀해보일 수가
없다. 하나같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어딜 갖다놓아도 잘 어울린다. 수수해 보이는
것만도 아니다. 차분한 느낌을 주다가도 작은 술 하나를 달면 금방 눈길을 확 끈
다. 아 이래서 앤틱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사는구나 싶다. 매장에서 만난 한 고객은 그
런 얘기도 했다. 왜 앤틱에 관심을 가지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들에는 많은 이야기들
이 숨어있어 좋다고 대답했다. 앤틱에 나 있는 흠집에, 손때에, 그 물건을 간직했던많은 이들의 역사들이 배어있기에, 그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여겨졌다.
사람들 중에도 골동품 같은 이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일견 화려하지도 않고 귀해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흠도 있고 때묻은 구석도 있지만, 어디에 있어도 잘 어울리는
이들. 어느 곳, 어느 환경에서든 그 곳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없으면 섭섭하고, 나서거나 주도하진 않지만 사회와 조직에 꼭 필요한
이들. 용기를 내어 약간이라도 티를 내면 확 웃음이 꽃피고 주위가 밝아지는 그런 이
들.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골동품 같은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이들 중에는 목사님의 조연시리즈 설교에 등장한 인물들이 이에 속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모세의 부모, 요나단, 아리마대 요셉, 바나바 등등. 우리교회
엔 골동품 같은 분들이 여럿 계시다. 참 다행스런 일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필자
가 세어보기엔 적어도 여성도 중에 세 분, 남자성도 중에 한 분이 있다. 골동품형 사
람은 아무래도 여성에게 더 많은 것 같다. 혹 너무 적은 수가 아니냐고 의문을 가지
실 지도 모르겠다. 청년대학부를 뺀 숫자이다. 청년들을 포함시키면 더 많을 것이고,
필자가 잘 파악하지 못한 분들을 고려해보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우리교회의 골동품 같은 성도들을 다 거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
아닐 것이고 또 혹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이를 무릅쓰고라도 한 분은 꼭 소개해
야겠다. 바로 김민숙 사모님이다. 필자가 볼 땐 골동품 중에 골동품이신 분이다. 계
신듯, 계시지 않은 듯 티가 나지 않는 분이시지만, 교회의 대소사에 사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다. 아니 이 분이 안계시면 일이 잘 진행이 안된다. 말
씀도 별로 안하시지만 속으론 꽉 차있는 느낌을 주시는 분이다. 어쩌다 웃어주시면
주위의 조도가 적어도 서너배는 올라가는 그런 위력을 지니신 분이다. 이런 분을 사
모님으로 둔 우리 교회는 정말 복받은 교회이다.
필자의 가족 중에는 할머님이 골동품 같은 분이셨다. 가진 것 별로 없으셨고, 학
식이나 지위도 내놓을 것이 없는 분이셨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정을 베푸시면
서 사신 분이셨다. 매일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고, 평생 헌신적인 수고로 자
녀들을, 또 손주들을 돌보시던 분이셨다. 늘 수수한 차림이셨지만 그 분의 단아한
모습은 항상 곱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여러굽이 인생의 굴곡을 거쳐오시면서
후손들에게 들려 줄 많은 이야기들을 지니고 계신 분이셨다. 필자의 어머니는 아주
외향적인 분이시라 할머니와는 사뭇 다르셨는데, 생각키로는 필자의 아내가 할머니를좀 닮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그 때문에 필자가 아내에게 프로포즈했던 것이 아
닐까 싶다. (이 정도로도 오늘 저녁에 좀 맛있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골동품같은 이들은 세상에서 별로 각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같이
안목이 없는 이들은 골동품의 가치를 잘 몰라도, 전문가의 눈으로는 그 아름다운 가
치를 파악해내듯이, 하나님은 골동품 같은 이들을 가치있게 보시리라 믿는다. 아니
이 세상의 기준으로 화려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이들보다 훨씬 더 비싼 사람들로 하
나님께서는 이 골동품 같은 이들의 가격을 매기시리라 믿는다. 그래서 필자도 골동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으로 자라가고 싶다. 주어진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
며, 필요한 만큼의 표정은 항상 지니고, 가끔은 시선을 끄는 작은 매력을 발하면서,
들려줄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그런 골동품같은 신앙인이 되어가고 싶다.
✎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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