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지 싶다



  친구 가운데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가 있었다. 경기가 어려워지는 바람에 자금회전이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주위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조금만 자금을 지원해주면 현재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겠다고 하면서. 주위의 친구들이 다 같이 어렵지만 안 되었다 싶은 마음에 힘닿는 데까지 자금을 모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리는 소문이 그 친구의 씀씀이가 보통 헤픈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엔 차도 예전보다 더 좋은 고급차로 바꾸어 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업이 잘 되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크게 상관할 문제가 아니겠지만 사업은 조금도 나아진 것 없이 순전히 자기들이 어렵게 모아준 자금으로 그렇게 흥청망청 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생각과 함께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당사자를 찾아가 물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이 소문과 같았다. 오히려 그 친구는 어이없어 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자기는 본래 살아오던 대로 살고 있을 뿐이라고 하면서 자동차도 자기가 평소 해오던 대로 때가 되어 교체한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기 삶의 수준이 예전만 못한 것에 대해서 불평을 쏟아놓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찾아온 친구들은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같은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참으로 기가 막힌 친구 아닌가?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가정’해서 생각해본 내용이다. 만일에 당신 주위에 정말로 이 같은 친구가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리고 그 친구에게 실제로 당신의 피 같은 돈이 들어갔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 친구에 대해 배신감이 들 것이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그 돈을 돌려받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그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도움은커녕 다시는 상종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정’해도 황당한 일이 얼마 전 실제로 일어났다. 다른 곳이 아닌 이 미국에서, 그것도 개인이 아닌 대형 금융기관들에서, 또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말이다. 다름 아닌 ‘월가’(Wall街)의 얘기이다. 듣는 바로는 월가 금융인들이 지난해 말에 챙겨간 보너스가 자그마치 184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자기들 돈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면 보너스를 받든 돈 잔치를 하든 무슨 상관이랴! 문제는 그들이 나누어가진 돈이 국민들의 혈세로 지원한 구제금융이라는 데 있다. 이를테면 가까운 친구들이 사업자금에 쓰라고 지원해준 돈을 개인 용도로 흥청망청 쓴 것과 같다고나 할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요즘 미국의 경제가 말이 아니다. 특별히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차원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국민들의 혈세로 그들에게 엄청난 금융지원을 했더니만 그 돈으로 자기들끼리 보너스 잔치를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월가’를 향한 미 국민들의 분노와 비난의 화살이 보통이 아니다. 이 같은 국민들의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그들은 변명하기를 이는 월가의 ‘관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몰이해(沒理解)의 소치라고 했다는데... 월가의 오랜 관행은 “실적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으로 회사의 전체적인 실적보다 개인의 성과에 더욱 무게를 두는 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보너스는 일종의 급여의 연장으로 취급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예외 없이 보너스 지급을 했다는 것인데. 글쎄다, 그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지.

  아무리 그럴지라도 ‘때’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액수’라는 것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사가 망해가는 마당에 그리고 망해가는 회사를 회생시키고자 나랏돈을 지원받는 마당에 184억불 보너스가 웬 말인가? 이는 1인당 평균 10만 불이 넘는 금액이라고 한다. 모든 미 국민들이 불경기에 신음하고 일자리 불안에 시달리는 마당에 국민들의 돈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10만 불 이상씩 나누어 갖는 것이 과연 ‘관행’이라는 말로 설명이 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백번 양보해서 생각해도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기가 막힌 것은 대다수의 ‘월가 직원들’이 자기들이 받은 보너스에 대해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년에 자기들이 받은 보너스에 비해 턱없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듣는 바로는 작년에 월가 직원들이 받은 보너스는 모두 329억 달러였다고 한다. 그때야 자기들의 돈으로 돈 잔치를 했겠지만, 지금은 자기들 돈이 아닌 국민들의 혈세 아닌가? 어찌 그것을 자기들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예전만 못하다고 투덜거린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같은 기사들을 보자니 문득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떠올랐다. 정말이지 참으로 뻔뻔한 사람들 아닌가? 아니 ‘후안무치’ 정도가 아니라 이는 ‘범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혈세를 자기들 호주머니에 넣었으니 나랏돈을 횡량한 범죄 아닌가? 비록 정치도 모르고, 경제도 모르고, ‘월가의 관행’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는 나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월가’(Wall街)의 이 같은 후안무치한 관행을 전해 듣고서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이 크게 발끈하며 격노했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관행일지라도 이번 월가의 보너스 지급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하면서 ‘부끄러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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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초장



이라고 성토하였다. 그는 크게 불쾌한 표정으로 “회사의 경영진들이 이익을 내서 보너스를 받던 때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고 하면서 “월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일갈(一喝)하였다. 정말이지 백번 옳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번 ‘월가’의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면서 그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이기적인 사고방식과 자기중심적인 Lifestyle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이 사회야 침몰하든 말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 어쩌면 그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의식이 아닌가 싶다. ‘월가 사람들’은 단지 그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따름이고.

  이번 일을 목격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시대야말로 ‘상식’과 ‘양심’을 상실한 시대라는 것이다. 아무리 관행이라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국민들의 돈으로 거금의 보너스 잔치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들에게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결코 그 같은 일은 저지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십여 년 전에 한국에서 비슷한 일들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IMF 사태로 인해 한국이 무척이나 어려울 때였다. 그때 국가 경제회복을 위해 국민들의 혈세로 많은 회사들에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는데 개중 어떤 회사들은 그 자금으로 자기들의 호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했었다. 그것이 알려졌을 때 온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허탈해 했는지... 정말이지 ‘상식’과 ‘양심’을 상실한 자들이 아닌가?

  또한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 ‘책임’이 결여된 사회인 것을 본다. ‘월가 사람들’은 분명 ‘자신들이 지원받은 돈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가졌어야만 했다. 특별히 그것이 ‘국민들의 혈세라는 생각을 가지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어야만 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어깨에 미국의 경제, 세계의 경제가 달려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임 있게 행동했어야만 했다. 그랬더라면 자기들끼리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후안무치한 행동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그들을 향해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한 것은 매우 적절한 책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책임 의식’을 상실한 자들이 그들뿐이랴! 가만 보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책임’과 담쌓은 삶을 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상식’과 ‘양심’과 ‘책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와 같은 것들이 점점 무너져가거나 상실된 시대이다. 따라서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것들을 회복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상식과 양심과 책임의 삶’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세상 사람들을 능가하는 ‘상식과 양심과 책임의 삶’을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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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초장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에 있어서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너무도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단지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단지 교회만 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이번에 자기들끼리 돈 잔치를 벌인 ‘월가 사람들’ 가운데에도 ‘자칭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가슴 한편에 답답한 생각,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요즘과 같은 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상식과 양심과 책임의 삶’만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희생하는 모습’이 있어야만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란 곧 희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삶을 사셨는가? 그분은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시는 삶을 사셨다. 즉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살리시고자 자신을 희생하셨다. 어느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대신 당하시고,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대신 죽으실 정도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의 삶, 즉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삶은 세상과 역행하는 삶이다. 세상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사회이다. 더 나아가 남을 짓밟으면서까지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악한 사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와는 정 반대의 삶을 사는 자들이다. 물론 그 삶은 결코 쉽지 않은 삶이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소한 그 같은 삶을 흉내라도 내며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 아직은 소망이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지금껏 ‘월가 사람들’의 후안무치한 짓에 대해 성토했지만 그 같은 일을 일삼는 자들은 단지 그들만이 아니다. 가만 보면 “이건 아니지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어쩌면 그만큼 세상이 더 살기 힘들어졌다는 혹은 더 악해졌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럴지라도 아니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정신을 차리고, 세상의 Lifestyle에 타협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어야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가르켜 ‘빛과 소금’이라 하였다. 빛이 꺼진다면 어찌 세상의 어둠을 쫓아낼 수 있겠는가! ‘소금’이 맛을 잃는다면 어찌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겠는가!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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