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오전엔
어제 저녁에 쓴 시를
보고 또 보며
글자 하나를 뺐다.

오후엔
오전에 교정한 시를
살피고 또 살피며
오전에 뺀 글자를
다시 집어넣었다.

집으로 가는 길
온 종일 무얼 했나 돌아보곤
혼자서 기찬 웃음을 웃었다.
온종일 허비한 것도 같고
무언가 이룬 것도 같고

가만 돌아보면
그게 인생인 것을,
그리 안타깝게 잃을 것도
그리 대단하게 이룰 것도
없는

오늘도
공중 나는 새를 보며
들에 핀 꽃을 보며
그 자유함을
그 초연함을
부러워한다. (HJ)

 

죠지, George, 우리의 죠지


오후 2시쯤 지났을까. 교회 밖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바깥에 나가 보니 죠지(George)가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잔디밭의 잡초들을 죽이는 약을 뿌리느라 분주했다. 오늘뿐만이 아니다. 일주일에도 이삼일씩 오후만 되면 교 회에 나와 저렇듯 잔디와 화단을 가꾸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정말 보통 정성이 아니다. 그 같은 죠지의 모습을 바라볼 때 마음에 뭉클한 생각이 밀려든다. 어찌 저렇듯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외국인이면서도 어찌 저렇듯 한국 교회를 섬기며 아름답게 봉사할 수 있는지.


 ‘죠지’는 금년 들어 영어 예배 시작과 함께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된 이태리계 미 국인이다. 그의 Full Name은 죠지 패시피코(George Pacifico). 우리 교회가 영어예 배를 처음 시작하면서 2세 대학생들, 영어권의 한국인들, 더 나아가 주위의 가까운 미국인들까지 초대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된 미국인 중 한 사람이다. 마침 그 전부터 Volunteer로서 우리 교인 한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중에 영어 예배에 초대를 받아 나오게 되었는데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딘 이래 지금 까지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나올 수가 없다. 아니 단지 교회에 나오는 정도가 아니 다. 그렇게 열심히 교회 안팎을 섬길 수가 없다. 정말이지 ‘죠지’ 때문에 영어 예배 가 생기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영어 예배를 통해서 얻게 된 귀한 열매이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우리 교회가 있는 토나완다(Tonawanda)도, 우리 교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앰허스트(Amherst)나 윌리암스빌(Williamsville)도 아니다. 교회 에서 자동차로 30-40분을 달려야 당도할 수 있는 멀리 떨어진 햄버거(Hamburg)이 다. 나 같은 경우 그곳에 노회(Presbytery)가 있었을 때 겨우 한번 가보았을 정도로 거의 가보지 않는 먼 지역이다. 우리 한국 사람일지라도 그처럼 먼 거리에서 교회 에 나오기 어렵겠건만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면서도 교회에 한번 빠지는 일이 없 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도 아니다. 나이도 60대 중반에 이르는 분이다. (물론 겉으 론 그보다 훨씬 젊게 보이지만) 그는 처음 교회 나오던 주일부터 영어 예배의 한 중요 멤버가 되었다. 아니 우리 교회의 중요 멤버가 되었다. 영어 예배뿐만 아니라 영어 예배 후에 바로 이어지는 한국 예배까지 빠지지 않고 늘 참석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 예배를 그렇게 좋아한 다. 통역을 통해 말씀을 들으면서 예배 후엔 늘 ‘Thank you!’와 ‘Great Message!’ 라는 말로 목사에게 감사와 격려를 표하기를 잊지 않는다. 이제는 교회 모임 어디에 서든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니, 그가 보이지 않으면 둘러보면서 찾을 정도이다. 그가 우리 교회 나온 지 단 3-4개월 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어디서 이처럼 귀한 보배를 또 얻을 수 있겠는가!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가진 은사로 교회와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다.


 현재 개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Hobby이자 달란트에 해당하는 분야가 있다면 요 리분야이다. 그것도 이태리계 미국인이어서인지 이태리 요리에 뛰어나다. 여러 사 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처음 우리 교회에 온 그 주일부터 부엌을 기웃거렸 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음식에 감탄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우리 교회 사람들에 게 자신의 이태리 음식을 자주 맛 뵈고 싶어 한다. 놀랍게도 그는 우리 교회 나온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토요일 저녁에 청년들 식사 까지 손수 대접하였다.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있게 되는 청년부 모임을 위한 식사 준비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60-70명에 이르는 청년들을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청년들을 위한 저녁 봉사를 하는데 늘 몇몇 정해진 분들만 봉사하는, 그 정도로 아무나 하기 힘든 그 엄청난(?) 일을 이제 교 회 나온 지 몇 주 되지 않는 죠지(George)가 자원하여 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죠지가 청년들을 대접하겠다는 말을 듣고 혹시 그가 청 년들 숫자를 몰라서 하는 소린가 싶어 여러 차례 숫자를 말해주기까지 하였다. 그 는 문제없다면서 열심히 준비를 하더니만 결국은 혼자 힘으로 청년들에게 멋진 이 태리식 저녁을 대접하기까지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감탄했던지. 하나님께 서 어찌 저런 귀한 일꾼을 보내주셨는지 절로 감사가 연발하였다.


 그때를 시작으로 그는 늘 모임 때마다, 특별히 영어 사역부에서 특별 행사를 가질 때마다 혼자서 훌 륭한 주방장 역할을 담당하곤 한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죠지(George) 덕분에 우리 교회 남선교회 회원들이 생색 을 낼 수 있었던 일이다. 매년 어머니날이 돌아와도 제대로 음식을 할 줄 아는 사 람 하나 없는 남선교회 처지(?)인지라 늘 머쓱하게 지나가곤 했는데, 아니 어머니 날조차 염치없이 여선교회로부터 식사대접을 잘 받곤 했는데 금년엔 비록 한 주 지 난 다음이긴 했지만 그래도 남자들 손으로 어머니들을 대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적으로 죠지(George)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친히 진두지휘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메뉴가 핫도그(Hotdog)였기에 죠지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나, 죠지 덕분에 핫도그뿐만 아니라 ‘cole slow’며 ‘bean’ ‘Mashed Potato’ 등 여러 메뉴들이 아름드리(?) 준비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식사다운 식사를 가졌 다고나 할까. 아마 내년엔 더 크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비단 음식요리만이 아니다. 봄이 되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에게 또 다 른 재주가 있었으니, 바로 화단을 가꾸는 일(Gardening)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죠지 때문에 우리 교회 주위며 화단이 그렇게 보기 흉한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나를 이끌고 일일이 설명하며 지적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지났을 것이다. 교회 입구의 화단만 해도 그가 갖다 심은 꽃들로 만발하다. 작년에 이 은모 장로 님께서 교회 앞 화단에 피튜니아를 아름답게 심으셨기에 금년 역시 화단의 꽃들을 보며 이 장로님께서 갖다 심으신 것으로 알았다. 나중에야 이 장로님께서 죠지 (George)에게 선수를 놓치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Gardening은 Cook과 더불어 죠지가 가장 좋아하는 Hobby요 달란트였다.


 정말이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었다. 사실 우리 교회에 가장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Gardening이었다. 이는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잔디며 꽃나무들이 늘 흉하게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죠지를 보 내셔서 바로 우리들의 그 부족한 부분을 살피도록 하신 것이었다. 요즘 나는 한 구 석씩 잡초들이 사라지고 잔디가 자라나며 또 꽃들이 여기저기 심겨지는 것을 감사 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한다. 죠지(George),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양반이 아닐 수 없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 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듯 우리 교회에 꼭 어울리며 필요한 보배가 나타날 수 있을까. 죠지(George)-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 한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가 제대로 섬기며 일어서는 교회이기를 원하신다. 그렇기 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마다 같은 한국 사람이 아닌 죠지 같은 사람을 보내서라 도 우리 교회의 부족을 채우시며 우리 교회로 하여금 제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죠지 그는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죠지(George)-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우리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임을 발견 한다. 그것이 바로 죠지의 고백이자 죠지가 우리 교회를 사랑하고 우리 교회를 그 토록 기쁨으로 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이 넘치는 교회이기에 우리 또한 그를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지만. 죠지(George)-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우리가 받은 은사가 어떻게 아름답게 사용 될 수 있는가를 발견한다. 내가 보기에 그는 현재 자신의 은사를 100%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가장 멋지게 사용하고 있다. 그가 다른 어디서 자신의 은사를 그처럼 아름답게 발휘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우리 모두에게 큰 격려와 동 기유발을 일으키는 산 증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리 모두가 다 죠지(George)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낮은 자리에서 자 신의 은사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그는 결코 자신의 봉사를 드러내고자 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지도 않는다. 사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아무도 그가 어떻게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도 모든 교인들이 이 글을 읽고서야 ‘죠지’의 존재와 그가 어떻게 우리 교회를 섬 기고 있는지를 비로소 알았을 것이다. 사실 그는 제대로 된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이는 우리 교회야말로 모든 사람들 이 제각기 자신의 받은 은사로 소리 없이 섬기며 봉사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 것이 우리 교회의 자랑이자 목사로서 내가 우리 교회에 대해 늘 자부심을 갖는 부 분이기도 하다.

 앞에서도 언급했거니와 죠지(George)는 일주일에 이삼일씩 오후만 되면 자기 일 을 마치자마자 그 먼 햄버거(Hamburg)에서 그 비싼 Gas를 사용하며 교회까지 달려온다. 오직 화단에 물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잔디들을 손보기 위해서이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자신이 그렇게 교회 주변을 돌 보게 되면 교회가 훨씬 아름답게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이다. 이 얼마나 아름 다운 마음인가! 모두에게 죠지와 같은 마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내 작은 수고가, 내 작은 은사가 교회를 더 아름답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 빛낼 수 있으리라는 중심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 같은 중심만 있다면 교회가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사회 속에서 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 같은 그리 스도인들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현진

신뢰 (2)

신앙과 사색 : 2008/06/26 22:50
 

신뢰 (2)


제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시편 52장 7‐8절)

- 나날이 번성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장 8절)

- 기쁨.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이사야 26장 3‐4절)

- 평화. 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시편 27장 14절)

- 인내.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이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장 14절, 17절, 22절)

- 순종.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장 5‐6절)

- 하나님의 지도에 대한 갈망.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장 4절)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브리서 13장 6절)

- 용기와 확신.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잠언 28장 7절)

- 찬양과 경배의 자세. 제가 어떻게 하면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누가복음 19장 17절)


 당신에게 주어진 일의 중요성을 막론하고 진지하게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십시오.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 인해 당신은 더 큰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신용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민수기 30장 2절)

당신이 행하겠다고 말한대로 약속을 지키십시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잠언 11장 13절)

비밀을 지키십시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장 9‐10절)

권위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십시오.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잠언 24장 26절)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잠언 25장 13절)

당신이 믿을 만하며 정직한 사람임을 꾸준히 증명하십시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 6장 4절)

시종일관 당신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대해 책임을 다 하고 있음을 보이십시오.


믿음직한 사람이 됨으로 인해 받는 이점이 무엇입니까?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디모데전서 1장 12절)

당신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장 29절)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바로가 가로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비를 장사하라.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십 세를 살며. (창세기 50장 5‐6, 22절)


당신에 대한 좋은 평판은 당신에게 권세와 자유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Life’s Questions", Ronald A. Beers & V. Gilbert Beers, 번역:복은임

 

마크가 지녔던 낡은 종이


그 아이는 세인트메리 초등학교에서 내가 처음으로 가르쳤던 3학년 학생들 중의 하나였다. 물론 내게는 그 34명의 학생이 모두 소중했다. 그러나 마크 에클런드는 특별했다. 살아있는 것이 너무 행복해 보이는 그 아이의 단정하고 밝은 모습은 가 끔씩 저지르는 짓궂은 장난들에 대해서조차 웃어넘길 수 있게 해주었다. 또 마크는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해서 나는 허락을 받지 않고 말을 해서는 안 된 다는 사실을 그에게 거듭 되새겨주어야 했다. 그러나 내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은 잘 못을 지적할 때마다 매번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고 말하며 진지 하게 받아들이는 그 아이의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랐 지만 머지 않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말을 듣는데 익숙해졌다.


 어느 날 마크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고 나는 풋내기 교사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마크를 바라보며 “한 마디만 더 하면 입에 다 테이프를 붙여줄거야!” 하고 말해버린 것이다.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다른 학 생이 “마크가 또 말을 했어요!” 하고 불쑥 말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마크를 감시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 벌을 주겠다고 이미 말하고 말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행에 옮겨야 했다.

 나는 마치 그 일이 오늘 아침에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책상으 로 걸어간 나는 아주 의도적으로 책상 서랍을 힘껏 연 다음 테이프를 꺼냈다. 그리 고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마크에게 다가가 잘라낸 두 개의 테이프를 그 아이의 입 위에 엑스(X)자로 붙여주었다. 그리고는 교실 앞으로 돌아갔다. 마크가 어떤지 돌아 보려고 내가 뒤돌아섰을 때 그 아이는 내게 윙크를 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마크의 책상 앞으로 다시 걸어가 테이프를 떼어 내고 어깨 를 으쓱하자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 니다, 선생님!”이었다. 그 해 말부터 나는 중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게 되어 그 아이들과 헤어졌다. 세 월은 쏜 살같이 흘렀고 나는 마크를 우리 반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어렸을 때보다 더 잘 생긴 모습이었고 여전히 공손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그 아이는 수학에 대한 설명을 잘 들어야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때처럼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어느 금요일 그 날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우리는 수학의 새로운 개념을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이 점점 자신들에게 실망하면서 서로에 대해 날 카로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뒤틀린 상황이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번지기전에 막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종이 두 장에 같은 반 친구들의이름을 각각 띄어서 쓰라고 했다. 그런 다음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이름 밑에 그들의 가장 좋은 점들을 적어보게 했다. 그 작업은 남은 수업 시간 내내 계속되었고 학생들은 교실을 나가면서 그 종이를 내게 주었다. 종이를 제출하면서 찰리는 웃었고 마크는 “선생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라고 말했다. 그 주 토요일 나는 각 종이에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쓰고 그 아이에 대해 다른 아이들이 적은 내용들을 옮겨 적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아이들에게 각자의 평가 를 적은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곧 교실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정말?” 속삭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의 이런 점이 정말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어!” “다른 아이들이 날 이렇게 좋아하는 줄 정말 몰랐어!” 그리고 그 쪽지에 대해 다시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업을 마친 후 아이 들이 서로 혹은 부모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게 그건 중 요하지 않았다. 그 일은 목표를 이루었기에 학생들은 다시 자신과 그리고 다른 사 람들과 행복해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 반 아이들은 졸업을 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날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부모님이 나를 공항에서 맞아 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은 여행에 대한 평범한 질문들, 날씨며 건강 등에 대해 물으셨다. 그리 고 대화가 잠시 끊어졌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눈짓을 하며 “여보?”라고 말씀하 셨다. 아버지는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늘 하던 대로 목소리를 가다듬으 셨다. “마크 에클런드가 어젯밤에 돌아왔어!” “어머 그랬어요? 몇 년 동안 통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궁금했었는데” 아버지는 조용히 대답하셨다. “마크는 베트남에서 전사했어. 내일 장례식을 치룰거야. 그 부모님은 네가 참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 하셨어.” 아직까지도 난 아버지가 마크에 대해 말씀하시던 그 때 우리가 지나던 도로의 정확한 지점을 가리킬 수 있다. 나는 그때까지 전사한 군인들을 위해서 마련된 관 속 에 누운 병사를 본 적이 없었다. 마크는 너무 잘 생겼고 완전한 어른이 되어 있었 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에는 ‘마크, 다시 말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테이프를 다 줄거야’ 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교회는 마크의 친구들로 꽉 차있었다. 척의 여동생이 ‘전쟁가’를 불렀다. 그리고 비는 왜 하필 장례식날 오는 건지... 무덤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목사 님은 평범한 기도를 드렸고 나팔수는 음악을 연주했다. 마크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차례로 관 앞으로 걸어가 그 위에 꽃을 얹었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장례식이 진행되 는 동안 관 옆에 서있던 한 병사가 다가와 물었다. “마크의 수학 선생님이셨습니까?”관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크가 선생님 얘기를 많이 했어요.” 라고 말했다. 장례식을 마친 후 마크의 반 친구들 대부분은 점심을 먹기 위해 척의 농가로 향 했다. 마크의 부모님은 자리를 뜨지 않고 나를 기다리며 서계셨다. 마크의 아버지 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씀하셨다.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마크가 전 사했을 때 이게 나왔다는군요. 선생님은 아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갑에서 꺼내 보여준 것은 여러 번 접어 테이프로 붙인 낡은 두 장의 종 이였다. 나는 한 눈에 그것이 마크의 반 친구들이 적어줬던 그의 모든 좋은 점들이 적힌 종이임을 알 수 있었다. 마크의 어머니는 “그렇게 해주셨던 걸 정말 감사드려 요. 선생님도 보셨듯이 마크가 그걸 아주 소중하게 여겼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마크의 옛 친구들이 우리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찰리는 약간 수줍은 듯 미 소 지으며 말했다. “저도 제 걸 아직 가지고 있어요. 우리 집 책상 서랍 맨 위 칸 에 넣어 두었어요.” 척의 아내가 “척은 제게 자기 걸 우리 결혼 앨범에 넣어두자고 했어요.”라고 말하자 메릴린이 “저도 제 걸 가지고 있어요. 제 일기장에 끼워 두었 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비키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지갑을 꺼내더니 낡고 닳은 종이를 꺼내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 이 쪽지를 간직하고 있을 거예요.” 결국 나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마크를 위해 그리고 그를 다시는 보지 못 하게 된 그의 친구들을 위해.


헬렌 로슬라

 

긴급 기도를 요청합니다!


U국의 김요한입니다. 저는 지금 시카고에 나와서 논문 디팬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U국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현지 시간) 금요일 낮에 타쉬켄트 시내에 있는 종교성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황뽈리나 전도사가 불려 갔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지 난번 교회 검색 때에 교회에 두면 안되는 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성에서 하는 말은 소송을 해서 재판을 하든지 아니면 교회가 의논을 해 서 다른 교회로 넘어 가도록 하라고 통보를 했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를 국가가 처리한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교회 등록증을 회수해 갔다고 합니다.

 
 황뽈리나 전도사의 말로는 교회와 유치원을 검색하는 이유는 저 때문이라는 말을 했답니다. 검색 당시(5월 22-23일) 저는 미국에 한 주 전에 나와 있었고 직접 관여 는 되지 않았지만 저의 모든 활동 상황을 알고 조치를 취한 것으로 짐작합니다. 검 색 후 유치원 컴퓨터는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10대) 있지만 교회 컴퓨터는 그때 곧 돌려 줬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교회 일은 안심을 했는데 이상과 같은 상황이 벌 어졌습니다.

 그때 저희 교회 도서실에 있던 책들은 이미 지난번 황뽈리나 전도사가 정기 보고 서에(3달에 한번 종교성에 보고함) 책 제목들을 써서 다 보고를 했답니다. 러시안 으로 된 미국 신앙서적 번역본이었습니다. 그 책들 중의 얼마를 문제 삼고 있다고 합니다. U국에서 읽혀질 수 없는 책이라고 한답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워낙 악화된 상황이어서 그 책들이 문제가 된듯 합니다. 뽈리나가 불려갔을 때는 자기가 보고한 책 리스트는 없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핍박 당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마 지막 때에 U국의 교회가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 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려 하셨 다"(창50:20)는 요셉의 고백처럼 그곳의 교회가 당하는 고난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계획 중에 있는 것을 믿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곳 교회가 이기고 승리하도록 단단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교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은 강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그 교회에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언제 나 승리하셨던 주님께서 이 일로 더욱 교회를 강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곳 만민교회는 모든 핍박을 이미 각오하고 준비해 왔던 교회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20명의 새 가족들이 물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모두다 즐거워하 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도 기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이 오히려 주님의 복음 때문에 고난당하는 자로 합당히 여김을 받는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더욱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며 더욱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 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기도가 요망됩니다. 함께 기도로 동역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곳 만민 교회 는 금식을 선포했답니다. 블라디미르 목사와 황뽈리나 전도사가 지혜롭게 어려움을 잘 헤쳐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전도사들(5명), 모임(유년부, 중 고등부, 청년부, 찬양대, 찬양팀, 한국어예배, 노인학교, 모든 소그룹)의 리더들과 코 이노니아(셀그룹) 리더들이 더욱 기도로 무장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로 교회가 더욱 단단해지며 모이기를 힘쓰도록 기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요한 이순희 올림


 

“BKPC의 한 소망, 묵상모임…”


그토록 고대하던 여름방학이 시작 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과에 지루할 것만 같았던 제 삶속에, 요즘 아침 묵상모임을 통해 한줄기의 빛과 같은 은혜와 기쁨으로 나날이 기대하면서 지내고 있답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어찌나 설레이고 기대되는지요.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의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장 1절 말씀-

 매일 아침 하나님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나와 함께 언제나 역사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내 안에 하나님이 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 영광을 볼 수 있도록 내 맘의 영을 확장시키사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임을, 묵상으로 제게 말씀해주십니다. 특별히 이번 수요일에는 나이아가라폭포 야외묵상모임을 계획했습니다. 그 전날 밤, 다들 피곤한데에도 불구하고 전혀 힘든 줄도 모르고 오로지 한마음, 한뜻으로 내일 아침엔 하나님께서 또 무슨 말씀으로 나에게 은혜주시고 채워주실까... 하는 기대로 김밥을 만들었습니다. 계속되는 장마와 추운 날씨로 인해, 아쉽게도 수요일 야외묵상모임은 나가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선 또 제 아쉬움을 아시고는 더 큰 은혜로 채워주셨습니다.

 요즘 고린도전서를 지나 고린도후서를 묵상하고 있는데, 특별히 고린도후서 7장 말씀 중 10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라는 말씀으로 저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모든 것… 이렇게 아침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난 모든 것을 가진 자인데, 그것을 잊은 채, 공중권세들을 잡으려고 늘 애쓰고 남을 질투하며 시기하고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께 이것도, 저것도 가지고 싶다고 떼쓰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가진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에게, 언제나 큰 은혜와 지혜를 채워주셔서 저를 축복의 통로로 열매맺게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또한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매맺기에 앞서 튼튼하지 못한 나무에게선 좋은 열매가 나올 수가 없듯, 비틀어지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그런 나무가 아닌 기쁨과 감사로 무장된 그런 튼튼한 나무가 되라고… 혼자서 계획하고 매일매일 하기엔 너무 힘든 묵상이었는데, 여러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묵상하고, 나눔으로써 은혜도 두배가 되고, 기쁨도 두배가 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날 그날 다른 말씀으로 은혜를 풍만케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오늘도 묵상모임 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내 딸아, 오늘도 네가 나와 함께하므로, 네가 너무나도 귀하고 귀하단다. 딸아, 네가 나의 가장 큰 기쁨이며, 자랑이다. 사랑한다 내 딸아” 라고 말씀하시며 꼬옥 껴안아 주시네요^^

 
이경진

뒷모습으로만
- 모든 아버지께 드리는 글-


자식이 태어날 때
하늘 향해 가장 환호하는 이는
바로 아버지이다.
그러나 뒷모습으로만 환호할 뿐.
자식이 아플 적에
가장 속이 타들어가는 이는
바로 아버지이다.
그러나 뒷모습으로만 안타까워할 뿐.
자식이 잘못했을 적에
그 자식을 가장 야단치는 이는
바로 아버지이다.
그 사랑은 늘 뒷모습에 담아둔 채.

어느덧 아버지의 젊음도 저물고
지금은 백발이요 거친 주름뿐
다 성장한 자식들이 뿌듯하면서도
언제나 그 공은 어머니 몫이다.
혹 아버지에게 공을 돌릴라치면
아버지는 이내 손사래를 내저으며
오늘도 뒷모습으로만 계실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 같지 않은 뒷모습
아버지. . .
아버지. . .
누구보다 가족들을 끔찍이 사랑했으면서
누구보다 등짝이 무너지게 희생했으면서
언제나 저만치서 뒷모습으로만 계신 분
뒷모습이 늘 외롭고 버거우신 분
그 긴 세월의 뒷모습을 향해 고백한다. “
아버지!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사랑합니다!” (HJ)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 -아버지 날에 부쳐-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영웅’에 환호하는 시대이다. 미국은 더더욱 영웅에 환호 하고 영웅을 갈망한다. 그리고 영웅이 나타났다 싶으면 그 영웅에 한없이 빠진다. 최 근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바락 오바마’가 결정되었는데 그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 는 것 역시 다분히 영웅의 출현을 바라는 미국인의 기대 심리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40여년 전의 존 F. 케네디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무엇보다 미국인의 영웅 선호도를 잘 반영하는 것이 영화라 할 수 있다.

 시중에 나 오는 영화들을 가만 보면 상당수가 영웅 일색인 것을 볼 수 있다. ‘람보’에서부터 시 작하여, ‘스파이더 맨’ ‘다이 하드’ ‘록키’ ‘슈퍼맨’ ‘아이런 맨’ 이제 막 상영한 ‘헐크’ 와 상영을 앞두고 있는 ‘Hancock’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영웅들을 그리고 있다. 그와 같은 영화들을 들자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영화의 주제들이 그와 같다는 것 은 대중이 그만큼 영웅을 선호하고 영웅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제껏 영 웅들을 묘사한 영화 치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않은 영화가 없는 듯싶다. 그러나 영화 속의 영웅들은 허구적인 인물들이며 현실성이 없다. 아니 대부분 터 무니없기까지 하다. 하늘을 난다든지, 거미 인간이 된다든지, 지구를 지킨다든지, 혼자서 수백, 수천의 악인을 처치한다든지... 아무튼 그 내용이 유치하기까지 한 영 웅들 일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영웅들이 그려지는 것은 그것이 사람들 이 요구하는 영웅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 같은 영웅들에 조금도 지루해 하지 않고 매번 그 영웅들에 환호한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갈망을 대리 만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웅은 그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 보다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영웅이야말로 참된 영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참된 영웅인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영웅은 어떤 이들인가? 미국이 낳은 최대의 평론가라 할 수 있는 에머슨(Ralph Emerson)은 그의 ‘대표적인 인물 론’에서 여섯 명의 영웅들을 논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역사 속에 실재했던 이들로 이미 인류사에 큰 기여를 한 이들이기도 하다. 우선 철학자로서 ‘플라톤’을 들고 있으며, 신비가로서는 ‘스웨덴 보르그’를, 회의가로서 는 ‘몽테뉴’를 들고 있다. 그리고 시인으로서는 ‘셰익스피어’를, 한 시대를 떨친 영웅으로 서는 ‘나폴레옹’을, 작가로서는 ‘괴테’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에머슨은 영웅이라고 해 서 상하귀천의 구별이나 인종과 민족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 또한 보편적인 사 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에머슨다운 멋진 영웅론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결국 영웅이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영웅의 실재를 제대로 꿰뚫어본 공감이 가는 영 웅론이 아닐 수 없다. 그 같은 에머슨의 영웅론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나는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최고 의 영웅은 우리 주변에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즉 진정한 영웅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바로 그들이 다.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영웅들이랄 수 있다. 어제 Best-Buy에 들렀다가 그곳 한 모퉁이에 이런 문구가 적혀져 있는 것을 보았다.

“Our Dad is the biggest hero of all.”
(“우리들의 아버지는 모든 영웅들 가운데 최고의 영웅이다”)

 물론 아버지날이기에, 그리고 아버지들에게 선물을 하자는 다분히 상혼이 배인 상투적인 문구이긴 하지만 그날따라 그 문구가 비수처럼 내 마음에 와 박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는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영화 속의 영웅들, 비록 허구의 존재들이긴 하지만 그 영웅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우리를 악에서 건져내며 또 지 켜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스파이더맨’을 보라! ‘배트맨’을 보고, 또 ‘다이 하드’나 ‘슈퍼맨’을 보라! 하나 같이 사람들을 악의 손에서 건져주는 일을 하고 있 지 않은가? 그런데 가만 보라!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분 들이야말로 우리를 날마다의 삶 속에서 보호하며 지켜주며 또 모든 위험에서 건져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대리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버 지를 주셔서 그 아버지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게 하시는 것이다. 즉 하나 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들’이 야말로 바로 우리들의 영웅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허구의 영웅들처럼 그 들에게 초인적인 파워가 없을 뿐. 어떻게 보면 우리의 ‘아버지들’은 허구의 영웅들 보다 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단한 파워도 없으면서 우리를 보호하 고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우리들의 영웅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의 아버지들은 현실성 없는 허구의 영웅들보다 오히려 훨씬 나은 존재들이다. 즉 허구의 영웅들은 단지 우리를 악에서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으로 끝나지만 우리의 실제적인 영웅인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까지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어느 영웅이 우리의 아버지들이 하듯이 우리에게 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며, 우리의 필요를 살펴주는가? 결코 그 같은 영웅들은 없다. 오직 우리의 아버지들뿐 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들’이야말로 모든 영웅 가운데 최고의 영웅, 우리들의 진정 한 영웅 아닌가?


 영웅들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사람들을 위해 그 자신을 기꺼이 혹은 철저하게 희생한다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게 되면 스파이더맨이 기차에 탄 사람들 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온 몸을 기꺼이 내어던지는 그 같은 내용을 볼 수 가 있다. ‘다이 하드’에서는 한 형사가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mission을 수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 죽음조차 불사하며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다. 물론 영웅들이 등장하는 그 밖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들이다. 이처럼 영웅들의 특징은 사람들을 위 해 희생하는 모습이다.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그렇지 않은가? 영웅들이 보여주듯 드라마틱하게 희생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따름이지 우리를 위해 최고의 희생을 아끼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누구인가? 바로 우리의 아버지들이다. 이 세상 어느 아버지가 자식들을 사랑 함에 있어 자신을 아끼는가? 이 세상 어느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지 않으며 또 가장 좋은 것을 주지 않는가? 그 같은 아버지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보여주고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 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마태복음 7장 9절-11절)

 그렇다 악한 자일지라도 그 자식에게 있어 아버지란 ‘영웅’이다. 이는 하나님께 서 모든 아버지를 그와 같이 만드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그 처럼 희생하는 존재라면 그 같은 분이야말로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 을 것이다. 영웅들은 또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바라는 것 을 시원스레 해결해줌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충족감을 안겨주며 카타르시스를 선사 한다. 이것이 영화 속에 나타나는 허구의 영웅들이 보여주는 모습이거니와 각종 스 포츠의 스타플레이어(Star Player)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가히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침으로 일반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며 삶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우리의 아버지들 또한 그 같은 이들이다. 그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가정 안에서 자식들에게 삶의 즐거움과 행복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존재들이다. 이는 하나님 께서 아버지들에게 맡기신 역할이기도 하다. 자식들과 함께 놀아주고, 함께 여행하 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사랑하는 가운데 자식들은 삶의 가치와 즐거움과 만족함 을 얻게 된다. 아버지로 인해서 말이다. 이는 사실 그 어떤 영웅도 해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버지들은 얼마나 대단한, 자상하면서도 실질적인 우 리들의 영웅인가! 영웅들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준 다음 소리 없이 어디론가 사 라질 뿐이다. 만일 영웅이란 자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대가를 바란다면 그는 더 이상 영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렇지 않은가? 어느 아버지가 자식에게 대가를 바라고 그들을 양육하며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가? 어느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들 의 진정한 영웅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아버지날이다. 이 소중한 날에 자식 된 이들이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버지께 ‘공치사’를 드리는 것일까? 혹은 특별한 선물이라도 선사하는 것일까? 우 리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그 같은 것들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할 것이 있다면 그저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감사하며 환호하는 것뿐이다. 나는 영웅들이 나오는 영화들에서 사람들이 때때로 영웅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환 호와 경의를 보내는 것을 보곤 한다. 그때마다 영웅들은 뿌듯한 보람과 긍지를 느 끼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그들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한 일을 인정해주고 감사하고 환호를 보낼 때 힘을 얻곤 한다. 그것이 영웅들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 ‘아버지들’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그분들은 우리에게 아무것 도 바라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영웅들이 그러하듯이 인정해주고 감사하는 그 공치 사마저 원치 않는다. 그럴지라도 자식들은 기꺼이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들의 영웅인 아버지들에게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지친 날개에 힘을 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꼭 그래서가 아니다. 그 분들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희생했고 어떤 삶을 사셨는가를 안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감사와 환호와 경의를 보내야 할 것이다.

김현진

신뢰

신앙과 사색 : 2008/06/26 22:14
 

신뢰



 세 살 된 소년이 수영장 가장자리에 머뭇거리며 서 있습니다. 그 소년의 아버지는 허리 높이의 수영장 안에서 손을 뻗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뛰어 들어오렴. 아빠가 받아줄께!” 그 아이는 아버지께서 자기를 받아 줄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믿음이 없다면 그 아이는 그 수영장 안으로 뛰어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신뢰는 믿음의 절대적 요소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임을 믿고, 그의 의지에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구세주 이심을 믿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 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시편 33장 21절)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장 11절)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당신의 삶을 주관케 하는 것입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이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장 14절, 17절, 22절)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때론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장 22절)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를 통해서 만이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케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장 38절)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의 계획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장 6절)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점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디도서 1장 2절)

하나님께서는 항상 진실만을 말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장 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항상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염두에 두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최상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 입니다. 그로 인해 당신은 당신의 죄가 사함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편 19장 7절)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시편 111장 7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것이 신실되며 공의롭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40장 4절)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시편 118장 8절)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믿는 것은 바르고 또한 필요한 일이지만 당신이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진실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이 믿을 만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 당신을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신 하나님은 당신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회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출애굽기 14장 31절)

하나님의 힘과 능력은 당신과 당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 삶이 변화된다는 명백한 사실을 통해 당신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어내실 수 있는 지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Life’s Questions", Ronald A. Beers & V. Gilbert Beers, 번역:복은임

 

터키에서 -


사랑하는 동역자님! 제가 엄청 게을러진건지 배짱이 늘은건지 아니면 믿음이 좋아진건지... 매일 아 침 편지를 써야한다는 부담을 느끼면서도 계속 미루다가 오늘까지 왔습니다. 이젠 마음에 공포(?)까지 오는 것이 더 미루었다가는 몇몇 되지 않는 동역자마저 다 잃 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 아침 부랴부랴 펜을 들었습니다. 지난 몇 달은 참으로 행복하고 선교지에서 가장 흐뭇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년 10월 말경 더 이상 동역자를 주시지 않으면 터키를 떠나겠다고, 터키에서 제가 할 일이 더 이상 없는 거라고 기도하면서 몇몇 분들과 이일을 나누었는데 그 다음날 아가피아 스쿨을 하는 젊은 선교사님이 학생들에게 수화를 가르쳐 달라는 목적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만나서 얘길 나누다보니 믿음과 열정과 성품과 하나님을 사모하 는 마음과 한 영혼에 대한 부담감, 사역에 대한 비전이 같아서 함께 교제하며 기도 하다가 팀으로 동역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제가 교회를 시작, 개척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분은 교회 개척에 대해서는 내년 안식년을 보내고 결정하기로 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그 목사님은 나 름대로 준비가 되어져 있고 오히려 시간이 늦어지면 그만큼 열정까지도 잃을 것 같 아 기도해 보시라고 권했는데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저희가 생각지도 못하고 계획 도 세울 수 없었던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을 전혀 알지도 못하는 한국의 한 교회에서 그분을 파송선교사로 모시고자 하니 파송예배를 드리러 오라는 연락을 받 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가서 이스탄불 교회 개척에 대한 비전을 나누면 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 일을 인도하고 계시며 기뻐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저희는 드디어 올 9월 이스탄불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뜻을 모으고 기 도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처음으로 선교지에서 동역자를 만나 현재는 같은 현지인 교회를 섬기 며 일주일에 두세번씩 교제하며 기도하며 먼저 교회를 시작한 동료선교사들을 만나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한 목적을 가지고 같이 마음을 모아 교제하 며 기도한다는 것이 이토록 흐뭇하고 행복한지! 사실 선교편지를 써야 하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그 목사님 가족과(네비게이토에서 훈련받아 가르치기를 잘 하는 예쁜 사모와 7살, 3살된 아들, 딸이 하나씩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저희 아들과 같은 74 년생으로 침례교단 목사님이십니다.)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의 행정적인 면(이 면은 현지인 목사님과 같이 동역하기로 하고) 과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을 맡기로 하고 저는 교회의 전반적인 운영과 성도들의 교 제와 하나님께서 보내는 곳에 가서(지금처럼 앉아서 후원자 동역자들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닌) 터키로 힘을 모아 오는 것이 제 사역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야 이 열악하고 사악한 땅 터키에서 교회의 발판이 다져지고 세워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고 인도하셔서 지난 5월 19일 밤에 메릴랜드의 군부대 안 에 사는 둘째딸 혜은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편지를 띄우고 그리고 전화로라도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지난 4월 15일에서 21일까지는 한국의 남서울 은혜교회와 강남대 후원으로 아시 아 농인 선교전략대회에 초청을 받아 가서 대회만 참석하고 왔습니다. 한국인으로 서 아시아에 나가(아시아 외에는 제가 케냐에 있을 뿐입니다) 농아를 대상으로 선 교하는 8분의 선교사님들과 각국의 농인들이 모여 조촐한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후원교회인 남서울 은혜교회가 도전을 받았다고 할까? 그리고 외국에서 온 농인들 이 서울의 대형교회와 서울을 관광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농아들이 성장해서 이제 선교를 할만큼 성숙해진 모습을 보며 농아선교의 대를 잇 는 맥을 바라보는 것 같아 흐뭇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저희 목사님 의 제자들은 지금까지도 설교 중에나 간증 중에 고 문목사님의 사랑과 양육으로 오 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4월말에는 시애틀 형제교회에서 터키 선교사 부부를 위한 행복한 부부세미 나가 열려 부부 선교사만 참석하게 되었었는데 저는 그곳의 여성사역 담당자인 강 영주 전도사님이(그분이 미네소타 교회 집사로 계실 때 제가 그 교회를 방문한 적 이 있었습니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저를 위해 기도하던 분이라 특별히 초청받 아 가게 되었는데 뜻밖에 터키 선교사로서 터키 선교사들 앞에 간증을 하게 되었습 니다. 5-6년 동안 터키의 한인선교사님들과 거의 교제가 없던 저를 하나님께서 선 히 인도하셔서 많은 터키 선교사님들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어 교제를 하게 하셨으 며 또한 시애틀 형제교회에 꼭 다녀가라는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대책을 세우지 않는데, 기도하며 전폭적으 로 하나님만 바라보기로 했는데, 제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일일이 계 획하시고 대책을 세워주시는 것 같아 이 또한 무엇보다 행복하고 감사하답니다. 이래저래 행복하다 보니 이래저래 시간이 흘러 늦게 소식 드림을 다시 한 번 용 서를 바라며 가능하면 곧 뵐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제가 혹 연락을 드리지 못하더라도 한번쯤 연락을 주신다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곧 시작될 이스탄불의 교회를 위하여(월세로 예배드리다가 주인이나 법적인 문제 로 쫒겨나지 않도록, 가능하면 자체 건물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교회 건물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신나고 힘차게 힘을 모아 기도합시다. 아멘 할렐 루야!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으며 바라 봅니다. 아멘

✎ 2008년 5월 30일 이금희 드림

날마다 소중한 삶


날마다

어떻게 하루를 시작하십니까?

날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하루를 여십니까?

날마다

당신이 비중을 두는 것은 무엇입니까?

날마다

당신을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루하루

그저 직장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입니까?

하루하루

그저 돈 버는 즐거움입니까?

하루하루

그저 TV 앞에 넋 놓고 있는 것입니까?

하루하루

그저 "세월만 가라시구려" 입니까?


우리 인생이 그것뿐이라면

아무리 둘러봐도 그것뿐이라면

우린 너무 공허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린 너무 바보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러라고 주어진 삶이 아닌데...


하루를 시작하면서

조용히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펼치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설레는 삶을 살 것입니다!

날마다 가장 소중한 삶을 살 것입니다!(HJ)

 

신대륙과 인디언 전쟁이야기(16)


4. 선교와 황금과 인디언


13세기 초반 몽골 초원의 풍운아 칭기즈칸과 그의 기마군단의 말발굽 소리가 아 시아와 동유럽의 하늘을 진동시켰던 일은 다 알고 계실 터이고, 이 무지막지한 정 복전쟁 후 동서교역의 통로인 비단길(Silk Road)이 오히려 안전하게 되어 황금을 머리에 이고 가도 무사할 정도가 되었다네요. 이로 인해 동서의 왕래와 교역이 잦 아지면서 유럽인들의 마음에 동양의 부와 신비에 대한 동경의 싹이 자라기 시작하 는데, 이 무렵 그들을 한껏 설레게 하는 한권의 책이 나타나지요.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The Book of Ser Marco Polo). 베니스의 17세난 소년 마르코 폴로가 부친과 숙부를 따라 원(元)나라까지 가서 쿠빌라이 칸의 신하가 되 어 17년 동안이나 머물게 되지요. 그가 그동안 경험한 중국 문물과 또 귀국 길에 겪게 되는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풍물까지 곁들여 쓴 여행기입니다. 1298년에 쓰여 진 책으로 ‘동양은 조미료가 철철 넘쳐나고 길거리는 황금으로 덮여 있었다’라고 했으니...


Spice라고 하는 조미료(양념류, 향료) 이야기 좀 해야 되겠네요. 후추, 계피, 박 하 외에도 여러가지인 이 조미료가, 지금은 흔해빠진, 당시 유럽에선 너무나도 희 귀해서 금싸라기 값이었답니다. 예로, 후추를 거래할 때는 밀폐된 방에서 핀셋으로 한 알씩 집어 계산할 정도였다니까요. 조미료가 유럽인들에게 더욱 필요했던 이유 는 그들의 극성스런 육식 때문이었답니다. 토지가 거칠고 일광이 빈약해 곡식농사 가 신통치 않으니 자연히 가축을 많이 길러 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조미 료는 음식 맛을 내게 하고 그 보존에 필요할 뿐 아니라 육식자들의 악성 구취(口 臭, 입냄새)를 없애는데 필수적이었답니다. 사실 동방무역을 재촉한 것은 황금이나 비단같은 것보다 이 조미료 때문이었다는데, 그 원산지는 보르네오와 필리핀 남쪽 에 있는 여러 섬들로 몰루카 군도(Moluccas) 또는 조미료 섬들(Spice Islands)이라 고 불리는 곳이었지요. 이 먼 곳에서 물품이 유럽시장까지 이르는 길엔 수많은 위 험과 장애가 있었답니다. 하여 유럽인들은 새로운 길, 새로운 항로를 찾아나설 수 밖에 없게 되지요.


이로부터 두 세기가 흘러간 뒤 드디어 역사의 무대 위엔 황금과 조미료와 명예에 목숨을 건 사나이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희망봉을 발견하는 디아스 (Bartolomeu Dias), 신대륙을 발견하는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그리고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 항로를 개척하는 다 가마(Vasco da Gama) 등이 15세기 말 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고, 16세기를 거쳐 17세가 초까지 등장하는 인물로는 태평 양을 발견하는 발보아(Vasco de Balboa), 인도양을 지나 필리핀을 발견하고 세계 일주를 하는 마젤란(Ferdinand Magellan), 중미의 아즈텍 인디언 문명을 멸망시키 는 코르테스(Hernado Cartes) 그리고 남미의 인디언 잉카문명을 완전 파괴하는 피 사로(Francisco Pizarro) 같은 사람들이지요.


콜럼버스, 코르테스, 피사로. 이들에게 「악마의 사도」라는 치욕적인 명칭을 붙 이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 알아두시고, 우선 콜럼버스 이야기부터 하지요. 제노아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이태리 이름은 Cristoforo Columbo. 1451년 생. 붉은 머리의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이태리 거인’. 그 무렵 유럽 남자 의 평균 키는 5피트 4인치였는데 그는 6피트였답니다. 그의 사람 됨됨이를 표현하 는 말들이 여럿 있지요. 용기와 집념의 사나이, 위대한 비전을 지닌 자, 과대망상적 아집과 광신적 신앙의 소유자 등등.


그 때까지 유럽인들은 지구가, 우리 교회 권사님이 구운 맛좋은 빈대떡 같이, 평 평하게 생겼다고 믿고 있었지요. 바다 저 끝을 「암흑의 바다(The Sea of Gloo m)」라 했고, 그 곳엔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어 그 속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나지 못 한다고 믿었답니다. 거기가 바로 지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 두려움 때 문에 당시 세계 최고의 항해술을 터득하고 있던 폴튜갈인들도 서아프리카를 개척할 때 깊은 바다로는 가지 못하고 해안선만 타고 오르락 내리락 했다는 것이지요. 콜 럼버스의 일차 항해 때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뱃길의 중간 기점까지는 직선으로 가다가 그 후부터는 직잭(zigzag)으로 항해했다지요. 그 이유는 곧 바로 계속 가다 가 지구 끝 그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게 아닌가 두려워진 선원들이 칼을 들이대면서 콜럼버스를 협박했기 때문이었다네요.


이런 시절에 축구공을 높이 들고 지구는 이렇게 둥글게 생겼다면서 「지구 구형 설(地球舊形設」을 외쳐대는 선구자들이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콜럼버스였지요. 그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심취되어 읽고 또 읽어 완전히 그 이야기를 믿어버리게 되지요.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반드시 인도와 중국 나아가 일본까지 도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스페인 여왕 이사벨을 만나게 되고 그녀를 구워삶지요. 성경 말씀까지 들먹이면서 자기는 이 일을 위해 선택된 자이며, 자기의 목적은 ‘선교와 황금(for Gospel and for Gold)'에 있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보내만 주신다면 그리스도를 위해 이 세상을 구원할 뿐 아니라 왕실의 창고를 황금으로 가득 채우겠나이다.”


열 손가락을 꼽아보며 궁리하던 여왕은 두세번의 왕실 연회비 정도면 될 듯 싶다 는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그에게 하사된 것은, 무어(Moors)와의 전쟁에 쓰던 낡은 배 세 척과 선원 120명. 출항 전 모든 선원에게 고해성사를 받게 하는 콜럼버스. 한 통의 편지를 왕에게서 받아 품에 고이 간직하는데 그게 누구에게 가는 것인지 아시면 실소를 금치 못하 실 거예요. ‘원 나라 황제 앞’이었으니까요.


1942년 10월 12일,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그 땅에 첫 발을 디디게 되지요. 그가 먼저 한 일은 스페인 왕실의 깃발을 꽂으며 이 땅은 스페인 영토라고 선언하는 것 이었지요. 거기 원주민이 버젓이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순진한 인종들은 제 땅 뺏긴 것도 모르고 선물을 들고와 침략자들을 반겼다고 하니 원. 햇볕에 그슬려 구 리빛 살갗을 한 원주민들에게 ‘인디언’이란 명칭을 붙여주는 콜럼버스. 그곳은 그가 철석같이 믿은 동양의 인도가 아니라 캐리비안 해에 있는 바하마(Bahamas) 섬이었 는데.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전후 네 차례나 왕래하지요.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 기가 발견한 땅이 신대륙이라는 것을 몰랐답니다. 첫 번 귀국 때 그는 전시용으로 인디언 몇 명과 진귀한 새들 그리고 인디언에게서 탈취한 소량의 황금을 가지고 오 지요. 최고의 영웅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왕실 창고가 황금으 로 채워지지 않는 것을 눈치챈 스페인 왕실은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 시골로 유폐시 켜 버리는데 그는 그곳 어느 성당에서 병사하고 말지요. 한 시대의 비극적 영웅 콜 럼버스는 이렇듯 쓸쓸하게 역사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맙니다.


수년전 국경일인 「콜럼버스 날(Columbus Day)」, 수도 워싱턴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가 있었던 것 혹 기억하고 계실런지 모르겠네요. 전국에서 모인 인디언들과 이 에 뜻을 같이 하는 백인들까지 합세한 대대적인 궐기대회였지요. 저들이 「콜럼버스 날」을 반대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미국 역사라면 깜깜 밤중 과 같던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아래 소개하는 두 권의 책이 그 해답을 주었습니다. 조찬선의 「기독교 죄악사」와 진(Howard Zinn)의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2000년 한국에서 출판된 「기독교 죄악사」는 기독교 역사 이래 성직자들과 교 회가 범한 과오를 지적하고 있으며, 콜럼버스 외에 많은 개척자들이, 청교도도 포 함해서, 하나님의 뜻을 내세우면서 인디언에게 행한 잔혹한 짓들도 상세하게 서술 하고 있습니다. 저자 조찬선씨는 목사님이십니다.


진 교수의 저술은 한국에서도 「한국 민중 저항사」란 제목으로 1986년에 출판 된 일이 있었는데, 2년 전에 「미국 민중사」란 이름으로 다시 출판되었답니다. 보 스턴 대학교 교수인 그는 올해 89세,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와 더불어 미국 의 양대 비판적․실천적 지성으로 꼽히는 분이지요. 이 책은 콜럼버스 때로부터 1970년대까지의 미국사를 통상적 관점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취급한 선구적 역 사서로 인디언, 흑인 그리고 여성 문제, 야만적 자본주의에 종속된 노동자 문제, 멕 시코 전쟁과 시민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다루고 있어요. 1980년 초판이 나온 후 읽기가 만만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100만부가 훨씬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작년 가을 어느 날 미국 역사 자료 좀 구하려 락포트 공립도서관엘 들른 일이 있 습니다. 책 세일을 하고 있었지요. 미국 역사 이야기란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이토록 귀한 책일 줄이야. 거금 2불을 지불했고. 콜럼버스 일행이 첫 발을 디딘 바하마엔 아라왁(Arawak)이란 토착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훗날 백인에 의해 멸절당하고 마는 이들은 호기심에 찬 모습으로 음식과 물과 선물을 들 고와 이 낯선 침입자들을 환영합니다. 콜럼버스는 그의 일지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녀 모두 벌거벗고 있었다. 여러 가지 선물을 들고 왔으나 무기는 지니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종으로 부리기에 알맞은 훌륭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50명 만으로 그들을 모두 복종시킬 수 있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시킬 수 있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황금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일차 항해에서 돌아온 그는 이렇게 꽝을 놓고 있습니다. ‘꽝을 놓는다’는 말, 이 게 30년 보다 더 전에 쓰던 말인데 요즘도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허풍친다’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지요.


그곳은 기적의 땅이다. 산과 골짜기와 들판은 기름지고 아름답다. 강도 많은 데 대부분은 금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조미료가 있으며 금과 귀금 속이 있는 광도 많이 있다. 그곳 원주민은 친절하고 주기를 좋아하니 기독교 신자로 만들기에 적합하다.


나라 사이의 땅 문제에도 관여할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바티칸의 교황은 선뜻 그 땅이 스페인 영토라고 인정해 줍니다. 콜럼버스는 항해 중에 스페인 왕에게 이런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 소망에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게 항해술과 천문학에 관 하여 필요한 모든 지식을 주셨습니다. …제 계획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믿어주신 분 은 폐하뿐이었습니다. 이 광명은 폐하와 마찬가지로 제게도 성령께서 주신 것 을 누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구하라 주실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무슨 계획이든지 주님께 봉사하려는 신성한 목적을 가진 것이라면 주님의 이 름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는 콜럼버스가 뼛속까지 신앙으로 가득찬 사람이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지 요. 그런데 그가 황금이라는 이름의 악마에게 무릎을 꿇고 드디어 천인공노할 만행 을 저지르게 되다니...


비극의 막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합니다. 주안에서 샬롬. ✎ 이은모

새날을 꿈꾸며


말뚝만 몇 개 박혀 있는

넓은 빈 터

그곳에 큰 건물을 세울 거라며

많은 이들이 기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어떤 건물이 세워질는지.

그 땅 주인도 알지 못하고

기공식에 참석한 이들도 알지 못했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바로 설계사였다.

오직 그만이 한 두 해 후에

어떤 멋진 건물이 어떻게 세워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루터기만 남아있는

버팔로의 빈 터

그곳에 큰 미래를 꿈꾸며

많은 이들이 위임식을 갖고 있다.

새 목자를 세우는.

후일 어떤 세계가 펼쳐질는지

아무도 모른다.

목자로 세움 받는 이도

목자를 세우는 이들도

그저 멋진 새 날을 소원할 뿐-

그러나 아시는 분이 한분 계시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오래전 이곳에 터를 마련하시고

오늘 위임식을 있게 하신 분이시다.

오직 그분만이 장래에

어떤 멋진 일이 어떻게 일어날는지

잘 알고 계시다.


-위임식을 가지며 (HJ)

 

두돌, 또 백일


오늘은 여러가지로 무척 뜻깊은 날이다. 우선 김현진 목사님께서 이 교회에 부임 하신 지 2년이 되어 담임목사로 위임을 받으시는 날이다. 그 세월이 실제의 기간 인 2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지는 만큼, 그동안 우리교회는 크게 부흥했다. 이는 무 엇보다 목사님의 순결한 리더쉽과 헌신적인 섬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하나 님의 특별한 축복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고, 온 성도들의 협력도 빼놓을 수 없는 요 인이겠지만, 김현진 목사님이 오신 이후 큰 부흥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목사님의 노고에 감사와 치하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애기로 치자면 두돌이면 뛰기 시작하는 때이다. 그 리고 문장을 구사하는 시기이다. 또 손가락질을 하는 시기이다. 이를 빗대어 부임 두돌을 맞은 김현진 목사님께 이러한 소망을 개인적으로 품어본다. 부흥을 불러일 으킨 목사님의 사역이 걷는 정도를 지나 이제 뛰는 차원으로 가속화되길 소망한다. 복음과 진리를 설파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늘 충분히 은혜스럽지만, 앞으로 더 심 오한 경지로 승화되길 소망한다. 또 우리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지표와 이 교 회가 나아갈 사명의 목표를 분명하게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어주시길 소망한다. 그 리하여. 교회다운 교회를 만나보기 힘든 이 때에, 우리 교회가 진정 하나님께서 바 라시는 교회, 주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길. 또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사명을 힘차게 수행하는 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온전하게 감당하는 교회 가 되어서, 주위의 생명들을, 나아가 먼 곳의 생명들까지 살리고 풍성하게 성장시 키고 열매맺게 하는 역사를 펼쳐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김현진 목사님의 부임 두돌을 축하함과 동시에, 또한 우리는 쉴만한 물가의 100 호 발간을 기념하게 되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기도 하고, 먼 길을 큰 문제없 이 그런대로 잘 달려왔구나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먼저 좋은 글들을 써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글 한 편을 쓰기가 그리 쉽지 않은 일인지 알기에, 그 시간과 노력을 희생해주신 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래도 그 사랑 때 문에, 그 나눔의 댓가로 많은 분들의 신앙과 삶이 훨씬 더 풍성해졌으리라 믿는다. 또 원고청탁, 수집, 편집, 인쇄, 발송 등 여러가지 일을 위해 애써주신 편집위원들 께 감사를 드린다. 알아주는 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묵묵하게 수고를 감당해오신 이 분들이 없었다면 쉴만한 물가의 백일을 맞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백일이라는 남다른 풍속이 있다. 아시아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적어도 서구에는 없는 풍속이다. 우리 선조들이 왜 백일을 지키기 시작했는지 자세 히는 모르겠다. 무슨 미신적인 요소가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백일에 대해 의미를 두는 해석을 들은 적이 있다. 태어난 후 백일은 사실 그 생명 이 시작한 후 꼭 일 년이 되는 때라는 것이다. 사람의 수태기간은 월력으로10개월, 280일이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월경으로부터 계산해서이다. 수정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 일어난 후부터 따지면, 약 265일 정도가 된다. 그러므로 백일은 수정 이 후 365일, 꼭 일 년이 되는 때이다. 수정된 배아부터 소중한 생명으로 여기는 우리 선조들의 생명존중 사상과 또 그 분들의 정확한 과학지식을 엿볼 수 있는 풍속이라 는 것이다. 정말 그래서 백일을 지켰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해석이었다.


한편, 필자는 백일에 대해서 또 다른 재미있는 과학적인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 한다. 애기는 태어날 때, 엄마에게서 면역항체를 받아 세상으로 나온다. 그렇지 않 는다면 세상에 우글거리는 세균들, 바이러스들 때문에 금방 위험한 지경에 이를 것 인데, 다행히 모체에서 받은 수동면역으로 애기는 그 위험을 견뎌낼 수 있다. 그런 데 생후 백일 근처가 되면 애기의 몸에서 모체수동면역이 점점 소실되어간다. 이 때부터는 애기가 스스로 면역을 획득해가야만 한다. 그래서 예방접종도 이 시기부 터 하는 것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백일은 세상을 스스로 이겨가도록 축복 하고 축하하는 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백일이 지날 즈음이 되면 애기들에 게 이유식도 시작한다. 백일은 엄마 젖을 떼고 보다 다양하고 단단한 음식을 시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쉴만한 물가가 백일이 되었다는 사실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 각해본다. 쉴만한 물가도 이제 자생력을 길러가는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보다 다양한 글로 영양을 높여갈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쉴만한 물가가 몇몇 분 들의 수고에 많이 의존해온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쉴만한 물가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목사님의 면역항체에 많이 기대어왔다. 또 연재를 해주시거나 자주 글을 보내주시는 몇 분 필진의 젖줄에 그 대부분의 영양을 공급받아왔다. 이제 원고마감 시간에 글이 모자라 쫓기는 일이 없는 건강한 모습의, 또 많은 분들의 다양한 글로 채워진 보다 풍성한 모습의 쉴만한 물가로 자라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글을 쓰는 데 대하여 너무 공포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하다보면 다 되게 되어있다. 쓰다보면 자신도 놀랄 정도로 훌륭한 글이 완성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리 문학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매끄러운 글보다 진솔한 글이 더 소중한 글이라 필자는 믿는다. 필자 자신도 이렇게 많은 글들을 쓰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학창시절 국영수 중에서 국어에 가장 자신이 없었던 전력 도 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쓰기 시작했고, 목사님께서 숙제로 주시니까 꾸역꾸역 계속 쓰게 되었다. 그런데 맡겨진 일이니까, 할 수 없이 하다보니, 그 못난 재주로 도 꽤 많은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쉴만한 물가를 보시는 분은 누구나 다 스스로 글을 쓰는 시도를 해보시기를 바란 다. 어떤 글이라도 환영이다 (물론 약간의 검열(?)은 필요하겠지만). 그래서 이제는 보기만 하는 쉴만한 물가가 아니라 쓰는 쉴만한 물가, 참여하는 쉴만한 물가로 삼 으시길 바란다. 숙제를 받아 끙끙거리며 쓰지 마시고 짬짬이 쉬엄쉬엄 글적거려 보 시길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 쉴만한 물가가 더 많은 분들의 다양한 글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이제 백일을 맞은 쉴만한 물가가 스스로 면역력을 키우고 또 이유를 시 작하여, 더 튼튼하게, 더 풍성하게, 크고 장성한 모습으로 빨리 자라가길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 김성민

결정

신앙과 사색 : 2008/06/03 20:54
 

결정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불확실함을 끝내는 해결책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또한, 큰 것, 작은 것, 좋은 것, 나쁜 것 등의 선택 사항들 중에서 고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게는 초콜렛 아이스크림이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것에서 부터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지 또는 어디에서 살 것인지 하는 큰 결정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수백가지 또는 수천가지의 결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당신이 내릴 가장 큰 결정은 바로 예수님에 관한 당신의 입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믿고 당신의 삶을 그에게 맡긴다면, 당신의 현세의 삶과 영생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의 이러한 결정은 당신이 내릴 다른 모든 결정들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로마서 2장 18절)


우선, 기본적인 결정, 즉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것과 같이 바른 것들을 실천하고 옳지 않은 것을 피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기본적인 결정들을 내려보지 않고서는 복잡한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성경이 말하는 기본적인 결정을 통해 진리를 깨달았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욕심나는 직장이 있어도 그 직업이 당신의 출세를 위해 부정을 요구한다면 당신은 쉽게 그 직업을 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시편 25장 4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장 5-6절)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대로 갈 수 있을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곧 속수무책으로 방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누가복음 6장 12-13절)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르십시오. 즉, 하나님의 도움을 먼저 구하기 전에는 어떠한 결정도 내려서는 안됩니다. 당신의 삶에 항상 기도가 넘쳐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과의 대화는 당신의 정신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정화시켜 당신이 하나님의 조언을 들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시편 37잘 30절)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잠언 18장 15절)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이 주는 조언에 귀기울이고 당신이 결정을 내릴 때 그 조언들을 주의깊게 염두해 두십시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태복음 16장 26절)


당신의 개인적 만족을 충족시켜주는 결정을 내리려는 유혹을 떨쳐버리십시오. 그러한 욕망은 당신을 아주 나쁜 결정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제가 결정 내리는 것을 도와주십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장 5절)


어떤 사람들은 간혹 그들이 자신의 문제들로 하나님을 귀찮게 해드린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진실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항상 당신을 도울 방법을 찾으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하나님은 그가 가진 자원들은 당신을 위해 내어주십니다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장 26절)


당신이 당황스럽거나, 혼동되거나 또는 확신이 없을 때 기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러한 때가 당신이 기도하기가 제일 좋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연약해질 때 성령이 우리를 가장 잘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당신이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하십시오.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해결책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제가 내린 결정이 잘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시편 79장 9절)


당신이 내린 결정으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 바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28절)


당신이 항상 최선의 결정을 내리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잘못된 결정을 좋은 결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주저함의 위험은 무엇입니까?


네가 많을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이시야 42장 20절)


실제로 주저함 또한 결정입니다. 당신이 결정내리는 것을 미룰 때, 당신의 삶의 주도권을 잃고 다른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이끌려 살아가게 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4장 15절)


당신의 믿음에 관련된 일에 당신이 주저하게 될 때 당신은 서서히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당신이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을 염두해 두지 않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게 좀더 결정력이 생길까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1장 6-8절)


당신이 하나님께 지혜와 견해를 구할 때 그분은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십니다. 당신이 기도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면 될 수록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세우신 계획은 항상 분명하기 때문에 당신은 여러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좀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이시야 50장 7절)


당신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이 들 때, 그 일이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기를 원한다고 확신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을 때, 그리고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속임수와 같은 부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때, 당신은 단호하게 그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옳은 일을 옳은 방법으로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결정에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브리서 11장 8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당신에게 결단력을 줍니다. 이는 미래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 가는 한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항상 정확히 알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의 결정에 저의 성격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세기 13장 10-11절)


롯의 선택은 그의 이기심을 나타내줍니다. 그는 사악함으로 잘 알려진 곳으로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눈에 가장 좋아 보이는 땅을 선택했습니다. 당신의 선택은 당신의 행동을 결정짓고 이 행동들은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제가 “양털을 내놓아야” 할까요?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사사기 6장 39절)


“양털을 내놓다”는 것은 성경에 나온 기드온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구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당신이 옳은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징표를 보여달라고 부탁드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이러한 부탁을 드릴 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무한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결정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당신의 제한적인 선택 범위 안에 하나님을 놓지 마십시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무한의 가능성들 중에서 당신에게 최선의 결정을 내려주실 수 있습니다.


✎"Life's questions", Ronald A. Beers & V. Gilbert Beers 번역 복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