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나라, 복 받은 나라
-독립 기념일에 부쳐-



1

버팔로에서 보스턴까지 가는 길
달려도 달려도 시원스레 탁 트인 도로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을 듯한
광활한 땅
그것도 모두가 옥토며 유용한 땅
길을 가자니 수목이며 초원이며 농지며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없었다.
왜 이리도 넓은 것이냐 이 땅은
왜 이리도 아름다운 것이냐 이 나라는
괜스레 질투하는 마음이 일었다.
아니 아예 설움과 슬픔마저 밀려들었다.
왜 내 고국은 이렇지가 못한 것인가
왜 내 산하는 그리도 비좁은 것인가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다를까
정말이지 이 나라는 부러운 나라다!
정말이지 이 나라는 복 받은 나라다!


마침 지금은 독립기념일 주간
이맘때만 되면 떠오르는 사람들
-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모두 이 나라의 기초를 든든케 한 사람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그들은
얼마나 위대한 인물들인가 그들은
그들을 생각하니 또다시 질투가 일었다.
또다시 설움과 슬픔이 밀려들었다.
왜 내 고국은 이렇지가 못한 것인가
왜 내 나라는 그리도 인물들이 없는 것인가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정말이지 이 나라는 부러운 나라다!
정말이지 이 나라는 복 받은 나라다!


2

왜 이 나라만 복 받은 것일까
땅이며 사람들이며 부유함이며
왜 이 나라만 온갖 좋은 것을 다 가진 것일까
왜 나는 이렇듯 부러움의 한숨만 쉬어야 하나
마치 놀려대기라도 하듯
하늘은 마냥 청명하게 합창만 해댈 따름이다.

결코 그냥 주어진 게 아닐 게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닐 게다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이었기에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는 자들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복 주신 것이다
부러운 나라로, 복 받은 나라로
그것이 나를 더 질투케 만든다.
그것이 나를 더 절망하게 만든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아름다운 대지
나는 그 대지를 보며
그 속에 박힌 굵직한 뿌리를 본다.
마셔도 마셔도 Fresh한 자유의 향취
나는 그 자유의 기운을 숨쉬며
그 안에 서린 하나님의 숨결을 느낀다.
그렇기에 더욱 부러운 나라
그렇기에 더욱 복 받은 나라

내 나라는 언제 그 같은 날을 볼는지
그 같은 날이 오기나 할는지
부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데
얼마 전 청명했던 하늘은
어느 새 잔뜩 구름 낀 날로 바뀌었다
마치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멀리 보스턴이 막 보일 무렵
이 나라의 독립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나는 내 고국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HJ)

 

‘성 공 ’과 ‘승 리 ’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작가 가운데 아더 밀러(Arthur Miller)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자신의 작품에서 두 가지의 질문을 제기한다. 하나는 “인간 이 성공을 추구할 것이냐”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인간이 승리를 추구할 것이냐”하 는 것이다.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둘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윌리 노만이라는 사람은 성공적인 세일즈맨이었지만 마지막 자살로 자신의 삶을 종결하였다. 즉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나 패배한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성공은 다분히 외면적인 평가이며 세상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에 승리는 그 삶의 내용에 대한 평가이며 세상적인 평가가 아닌 절대적인 평가이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공’은 곧 세상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이요, ‘승리’ 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반드시 네 가지 중 한 가지 부류에 속하게 되어있다. 하나 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 두 번째는 하나님께 인정받으나 사람에게 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세 번째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나 사람에게는 인정받는 사람, 마지막 네 번째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등 이처럼 모 든 사람은 네 가지 중 하나에 반드시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번 가만히 이 땅을 살다 간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사람들이 볼 땐 성공했 지만 실제로 패배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역사에 오점을 남긴 사람들, 권력을 장악하여 하늘을 나는 새조 차 떨어뜨리는 권세를 누렸지만 종국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른 사람들, 세상에서 큰 재물을 모았지만 행복을 모르고 고독하게 살다간 사람들, 그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었는지 모르나 결코 ‘승리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세상 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승리한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즉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혹은 세상적인 기준의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곳에 자기 삶을 온전히 불사르며 살다 간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구약 성경을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라는 자가 그 아버지에게 반역하여 부자 지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결국 양진영이 사활을 건 대전투를 가지게 되는데 그 전쟁에서 다윗 진영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고 압살롬은 비극적인 최후를 마치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 다윗 진영의 사령관인 ‘요압’은 다윗 왕에게 승전보를 전하게 되는데 누구를 보낼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 하면 이는 반란군을 진압했다는 기쁜 소식만 전하는 자리가 아니라 다윗 왕을 슬픔가운데 빠지게 만들 나쁜 소식도 함께 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두 가지를 다 전해야 할 입장에 직면하여 이 소식을 전할 전령을 뽑게 되 는데 이 일을 위해 두 명의 전령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은 꽤 신분이 높 은 ‘아히마아스’라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그저 ‘구스 사람’이라고만 소개되고 있는 사람이다. ‘아히마아스’는 일전에 첩자로서 위험을 무릅 쓰고 압살롬 진영에 숨어 있다가 전쟁의 승리를 다윗 쪽으로 가져오게 한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에 요압 장관은 비록 승전보를 전하는 일이기는 하나 왕의 아들이 죽었다는 나쁜 소식까지 전하는 것이기에 신분이 높고 왕의 총애를 받는 ‘아히마아스’를 보내 기 보다는 구스 사람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그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아 히마아스’가 자신을 보내달라고 극구 고집을 피우자 결국 요압은 그도 보내게 된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이 전령으로 가게 되었는데 ‘아히마아스’는 지름길을 택해 먼저 출발한 구스 사람을 추월하여 다윗 왕에게 먼저 소식을 전하게 된다. ‘아히마아스’로부터 승전보를 전해들은 다윗 왕은 그 승전보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오직 압살롬의 안위만을 물을 뿐이었다. 그때 ‘아히마아스’는 다윗 왕의 물음에 “잘 모 르겠다”고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명백히 거짓말이었다. 그는 분명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일 때문에 요압이 ‘아히마아스’에게 가지 말라고 만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였다. 왜 그랬는가? 그는 왕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자신에게 일절 도움이 안 된다고 생 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히마아스’는 전령으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전령, 실패한 전령이 되고 말았다. 전령이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소식을 제 대로 전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자신의 달음질의 목적을 다른 데 두었기 때문이었다. 즉 자신의 달음질의 목적 을 사명을 잘 수행하는데 두지 않고 오로지 명예와 출세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아히마아스’는 분명 승전보를 전하는 일에 상급이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다윗 왕에게 칭찬을 받고 출세할 수 있는 좋은 길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자신이 나서고자 했던 것 이었다. 그리고 구스 사람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지름길까지 택했던 것이었다.

‘아히마아스’의 행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 인생을 달음질로 표현할 수 있다. 가만 보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아히마아스'처럼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출세와 영화를 위해서 달려가고 있다. 즉 모두가 다 오로지 ‘성공’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조차 가리지 않는다. 마치 ‘아히마아스’가 어떻게 해서든 다윗 왕에게 먼저 나아가기 위해 지름길을택했던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조차 그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기독교인들조차 오직 ‘성공’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하나님 과 믿음조차 자신들의 출세와 성공과 축복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히마아스’처럼 목적이 빗나간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히마아스’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구스 사람’이다. ‘아히마아스’가 다윗 왕에게 압살롬의 안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자 다 윗왕은 그에게 물러나라고 명했고 뒤이어 도착한 ‘구스 사람’이 승전보와 아울러 압 살롬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물론 예상했던 것처럼 다윗 왕은 그 소식을 듣고서 크게 절망하고 슬퍼하지만. 구스 사람은 그것이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 든, 그것이 자신에게 해가 되든 득이 되든 따지지 않고 전령으로서 자신이 전해야 할 소식을 그대로 전했다. 그의 달음질의 목적은 오직 전령의 사명을 잘 수행하는 데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아히마아스’처럼 지름길을 택하는 편법을 사용하 지 않고 정도(正道)만을 달렸다. ‘

아히마아스’와 ‘구스 사람’ 두 사람의 달음질은 같은 달음질이었다. 그러나 그 내 용은 달랐다. 이는 그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은 ‘성공’을 추구한 달음질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승리’한 달음질은 ‘구스 사람’의 달음질이었 다. 겉으로 보기엔 ‘아히마아스’가 성공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구스 사 람보다 더 빨리 달렸기 때문이다. 다윗 왕에게 먼저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다윗 왕이 원하는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구스 사람이었다. 다윗 왕이 볼 때 정 작 성공한 사람은 바로 구스 사람이었다. 나는 다윗 왕이 아히마아스에게 한 말을 주 목하고 싶다.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의 안위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자 다윗 왕이 그에 게 뭐라고 했는가? 성경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왕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섰더라”

여기서 우린 아히마아스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토록 상급 을 원했는데 상급은커녕 오히려 멀찍이 물러서야 하는 비참함, 이것이 바로 빗나간 목적, 빗나간 방법 그리고 부끄러운 달음질을 했던 사람의 결국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승리’가 아닌 ‘성공’만을 추구했던 사람의 결국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물론 ‘성공’과 ‘승리’ 두 가지를 다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해야 할 것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아름다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김현진

 

콜럼버스와 인디언 전쟁 이야기(17)


‘복음과 황금(for Gospel and for Gold)'이란 이름의 양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독 수리와 같았다고나 할까, 콜럼버스. 그가 아뿔사 복음(선교) 쪽 날개를 잃더니 드디 어 지상으로 추락해 황금 쪽 날개만 퍼덕이며 온갖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하는데...

원래 콜럼버스에게는 스페인 왕실과 맺은 계약이 있었지요. 얻게 될 황금 중 열 에 하나는 그의 몫이 되고, 발견할 땅의 총독이 되며, 「대양의 제독(Admiral of the Ocean Sea)」이란 명예로운 호칭을 받는다는 것이었지요. 저번에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네 차례 왕래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492년의 1차 항해 로부터 1504년의 마지막 항해까지 12년에 걸쳐 있었던 일인데, 5개월 만에 귀국한 첫 항해를 빼고는 매 2년마다 그곳에 갔고 2년씩 머물다가 돌아오곤 했네요. 3차 항해까지 그는 캐리비안 해에 있는 모든 섬들을 발견하지요. 바하마(Bahama), 큐바(Cuba), 헤이 티(Haiti), 도미니카(Dominica), 자메이카(Jamaica) 그리고 푸엘토 리코(Puerto Rico) 등 등. 4차 항해 때는 중미의 온듀라스(Honduras)와 파나마(Panama) 그리고 남미의 베네 주엘라(Venezuela)까지 발견하지만 미주 본토엔 그의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고 맙니다.

1차 항해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지요. 원주민으로부터 금부치를 수탈한 일 과 그들 몇 명을 붙잡아 새 땅과 황금 찾는데 길잡이로 써먹은 것 정도였으니까요. 1493년, 1차 항해에서 돌아오기 전 콜럼버스는 스페인에 있는 그의 협조자들에 게 편지체의 「경험수기」를 보냅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팔아먹은 이야기보다 더 꽝 놓는 이 사설이 출판까지 되었는데 어찌나 인기가 충만했던지 여덟 번을 더 찍어내야만 했고, 그것이 전 유럽에 삐라처럼 퍼져나갔다네요. 하여 유럽인들은 그 의 업적에 대해 ‘천지 창조 이후 예수 강림과 십자가 사건 이외에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란 전대미문의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1494년에 떠나는 2차 항해는 정말 굉장뻑적지근 한 것이었지요. 선박이 17척이 나 되었고 1500명의 부하들에다 충분한 식량과 말이며 가축까지 싣고 갔으니까요. 1500명의 남자들 중엔 군인과 일확천금을 노리는 룸펜까지 섞여 있었답니다. 로마 교황청도 교세 확장의 이 호기를 놓칠세라 일군의 신부들을 따라 붙이는데 그들에 게 주어진 임무는 항해가 거룩하게 되도록 축복하는 일과 앞으로 붙잡게 될 노예들 을 개종시키는 것이었답니다.

거룩하신 성삼위의 이름으로 비옵나니 우리로 그곳에 가서 모든 인디언들을 잡아 노예로 팔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2차 항해 도중 그가 드린 기도가 이러했으니... 그의 맘 속에 있던 ‘복음과 황 금’은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엔 ‘노예와 황금(for Slaves and for Gold)'이란 우상 이 아세라 신전의 목상처럼 우뚝 들어서고 말았네요. 사실 그에겐 스페인 왕실 뿐 아니라 그의 항해에 돈을 댄 많은 투자가들에게 진 빚이 있었지요. 아무리 목을 빼고 찾아봐도 그곳엔 기대했던 만큼의 황금이 없다는 것을 벌써 눈치채고 있던 콜럼버스는 인간 황금 즉 노예 장사 쪽으로 눈길을 돌리 게 된 것입니다. 완전 부장한 200명의 부하들과 함께 본격적인 노예사냥에 나서는 콜럼버스. 캐리 비안 해에 있는 섬들을 여기 저기 뒤져 원주민을 잡아들이기 시작합니다.

1495년, ‘최대의 노예 급습(A great slave raid)'이라 불리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라왁 인디언을 1500명이나 붙잡은 것이지요. 여자와 아이들까지 닥치는 대로 붙잡았다 네요. 이들 중 값나갈만한 자들만 500명을 가려내 스페인으로 보내게 되는데, 항해 도중 글쎄 200명이나 죽었답니다. 추위란 것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니 벌거벗은 몸으로 어떻게 뱃길의 추위를 견뎌낼 수 있었겠어요. 살아남은 자들은 물론 노예로 팔려갔고요. 조찬선 목사님의 「기독교 죄악사」엔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1494년 콜럼버스는 500명의 원주민들을 끌고 가서 노예로 팔려고 했는데 이사벨 여왕의 명령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 후에 콜럼버스 일행은 닥치는 대로 잡아서 노예로 매매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노예 수입까 지 하였다. 1498년에는 또 600명의 원주민을 강제로 납치하여 스페인으로 보냈다. 날 벼락을 만난 선량한 사람들은 콜럼버스의 군대를 피하여 마을을 떠나 울면서 원시림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원주민의 마을들은 텅텅 비어갔고, 또 웬일인지 붙잡힌 노예들도 시름시름 앓다 가 많이 죽어버리게 되니 노예장사가 점점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하여 다시 황금 쪽으로 눈을 돌리는 콜럼버스. 헤이티의 어느 지방에 거대한 금광이 있다고 스스로 굳게 믿은 그는 이런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14세 이상의 남자들은 일정 양 의 황금을 3개월 마다 바쳐야 된다는 것이었지요. 황금을 가지고 온 사람의 목엔 구리 목걸이를 걸어주었고, 만약 이 목걸이가 없는 자가 발견되면 그들의 손목을 잘라 피를 흘려 죽게 하는 잔학 행위를 서슴없이 저질렀답니다. 만약 도망자가 있 게 되면 사냥개를 앞세운 수색대가 쫒아가 살해해 버렸고요.

다시 「기독교 죄악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수다한 원주민을 잡아 노예로 혹사한 콜럼버스는 다음과 같은 구실로 자기 의 행동을 정당화하였다. 원주민들은 잔인하고 욕심이 많은 타락한 영혼이기 에 이들을 천주교 신앙으로 무장시켜야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 방법으 로 노예들을 합숙시켜 광산으로 보냈고, 부녀자들은 땅을 개척하여 농사를 짓 도록 하였다. 이는 원주민들에게 가혹한 중노동이었다. 부부가 함께 살면 아기의 출산으로 노동력이 저하될 것이므로 서로 만나지 도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동물처럼 취급되는데 식사는 잡초였다. 영양부족으 로 산모의 젖이 나오지 않아 태어난 아이들도 굶어죽을 수 밖에 없었다. .... 노예들은 과로와 영양부족으로 매일 죽어갔다. 이와 같이 콜럼버스 일행은 복 음전파보다는 원주민들의 재산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살인강도 집단으로 변했다.

「기독교 죄악사」는 콜럼버스 일행의 만행을 증명하는 몇 가지 실화들을 싣고 있지만 그중 하라과(Jaragua) 왕국이 당한 이야기만 들려드리지요.

당시 도미니카 에는 다섯 개의 왕국이 있었답니다. 도미니카 섬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던 이 왕국은 비옥한 땅과 가장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문화와 예절은 그 나라 사람들의 자랑이었다. 여왕은 우아한 미인으로서 인자하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다. 콜럼버스 일행 (천주교도들)이 처음 왔을 때 낯선 손님에게 베푼 호의와 콜럼버스 일행을 수 차 죽을 위기에서 구해준 이야기는 수다하다. 그런데 여기서도 콜럼버스 일행은 그들의 고마움을 배은망덕으로 갚았다. 60 명의 기병과 300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일시에 그들을 불로 태워 죽여버렸다. 계략은 이러했다. 먼저 그 나라의 유력자들 300여 명을 은혜를 갚는다는 구실 로 만찬에 초대하여 몇 채의 가옥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일시에 불을 놓았다. 불을 피해 집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은 사전에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이 창 으로 찔러 죽였다. 도망가다 넘어진 어린애는 칼로 다리를 잘라 버렸다. 그 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어떤 군인이 도망나온 어린애를 살리려고 말에 태우려 하였으나 다른 군인이 그 애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여왕은 경의를 표 시한다며 목매달아 죽였다.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카누를 타고 다른 무인도로 도피해야 했 다. 그러나 콜럼버스 일행의 지휘관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잡으라고 명령하였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악마가 바로 그들이었다.

저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마치 짓밟힌 지렁이가 꿈틀거리듯 최후의 발 악적 싸움을 시도하는 아라왁 젊은이들. 그러나 그것은 싸움이라 불리울 수도 없는 싸움이었어요. 갑옷 입고 장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말까지 탄 자들과 겨우 활과 대 나무 창을 든 자들의 대결이었으니...

포로된 자들은 모두 교수형이나 화형을 당했고. 소망이 사라진 이 불쌍한 인간들은 집단 자살이라는 또 다른 방법의 저항을 하게 되지요. 카사바 독(cassava poison)을 먹고 그렇게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인 에게 죽느니 차라리 자기 손에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부모들은 어린 자식을 스 스로 죽이는 일까지 있었고요. 2년 안에 헤이티의 인구 25만이 그 절반으로 줄었고, 1515년엔 5만으로 그리고 1550년엔 겨우 500명만 살아남게 되었다네요. 1650년엔 이런 끔찍스런 보고까지 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아라왁 계의 원주민은 그 섬에서 완전히 사라져 자취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지요.


인류 역사 상 유례가 없는 이 비극은 물론 콜럼버스와 그의 후계자들이 범한 만 행에 기인하지만, 원주민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몰고간 또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전염병이었지요. 천연두와 홍역. 면역성(Immunity)이 전혀 없는 원주민들은 백인들 이 가져다 준 이 가공할 선물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어요. 2년 내에 인구의 1/3이 쓰러진 곳도 있다는데, 「Inventing America」란 책엔 이런 구절이 있네요. 서인도제도의 어느 부족은 이 수입된 질병으로 스페인들의 도착 이후 1세기 안에 몰살당하고 말았다.(wiped out) 수년 전 남미 페루에서 오신 선교사님의 「선교보고」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 다. 밀림 속에 숨어 사는 원주민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계신 이분의 ‘원주민과 전염병’이란 제목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그들과 접촉할 때는 전염병을 각별히 조심 해야 된다고 하셨지요. 까딱하면 선교는 커녕 그들을 모두 떼죽음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페루에 콜레라가 창퀄했던 일이 있었지요.


내 사랑하는 버팔로 믿음 의 형제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소냐, 돈을 모아 다량의 항생제를 사서 바로 이 선 교사님께 보낸 일도 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을 디딘 후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자 료, 어떤 점에선 유일하기조차 한 라스 카사스(Las Casas)의 「서인도제도의 역사 (History of the Indies)」란 책에서 얻을 수 있다고 「미국 민중사」의 저자 진 교 수(Prof. Zinn)는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량을 인용하고 있네요. 라스 카사스, 그는 본래 카톨릭 신부였답니다. 큐바 침공 때 종군했고, 한 때는 인 디언 노예들을 부리는 큰 농장의 주인이기도 했다는데 개과천선 했는가 그는 스페인 의 잔혹성(Spanish cruelty)에 대한 가장 격렬한 비판자가 되지요. 간추려 봅니다.

원주민에겐 종교가 없어 보였다. 필요에 따라 서로 주고받을 뿐 상업이라는 것이 없었고 금이나 귀금속의 중요성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평화롭고 온유 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 왕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일로 너무나 초조해진 콜럼버스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범하고 말았다. 이 침입자들은 점차 과대망상적 안이에 빠져 길을 갈 때도 큰 거위 날개로 부채질을 받으며 인디언 등에 업혀서 갔다. 심지어 칼의 날 선 것을 시험한다 며 인디언을 서슴없이 베어보는 짓까지 했다. 스스로 크리스찬이라고 하는 자 둘이 길에서 앵무새를 가진 인디언 소년을 만났다. 그들은 새를 뺏고 그 소년 의 목을 잘라버렸다. 모든 것은 잔혹함의 극치였다. 이렇듯 원주민의 완전 장악은 완전 잔혹함으 로 몰고갔던 것이다.(Total control led to total cruelty). 산들은 밑에서부터 산정까지 몇 번이고 파헤쳐졌다. 파여진 흙에서 금을 찾 아내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 대개 6-8개월 일해야 주어진 황금의 양 을 채울 수 있었다. 이 강제노동으로 1/3의 남자들이 죽어나갔다. 한편 아내 들은 농장에서 중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부부가 만나는 것은 겨우 8-10개 월에 한 번 정도였으니 출생율의 저하는 물론이고, 아이가 태어난다 해도 엄 마의 젖 부족으로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내가 큐바에 있을 동안 3개월 안에 7000명의 유아가 죽었다. 어떤 엄마는 절망에 빠져 자기 아이를 물에 빠뜨려 죽이는 일까지 있었다. 내 눈은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 이 참혹한 짓들을 보았다. 나는 지금 이 글 을 쓰면서 떨고 있다. My eyes have seen these acts so foreign to human nature, and now I tremble as I wirte.


원주민 어느 추장은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남을 사랑하고 도우라고 가르치시는데 당신들의 하나님은 남을 죽 이고 빼앗으라고 가르치십니까? 「슬픈 인디언 이야기」보따리엔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네요.

주안에서 샬롬.

이은모

 

중국 돕기 fundraising


5월 12일, 평범하게만 느껴지던 월요일에 100,000명이나 사망자를 내고 5000명 이 넘는 고아를 만든 지진이 일어났다. Central China에 일어나 베트남까지 느껴진 7.9 maganitude의 지진. 하필이면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에 일어나 아이들이 가득 찬 학교들이 쓰러지고 chemical plants가 넘어져 안에 일하던 일꾼들은 물론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다치고 말았다. 모든 아이들이 사랑하는 팬다곰들이 제일 많 이 사는 중국 지역도 역시 지진의 victim이 되어 많은 동물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침 이때 쯤 난 English class에서 내 준 Senior Inquiry Project를 위해 음악 앨 범을 만들고 있었다. 밴드부에서 쓰는 Smartmusic이라는 accompanying computer program을 통해서 피아노 반주자도 없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플롯 연주를 녹음 하고 있었다. 이 Senior Inquiry Project (SIPS)는 12학년들이 졸업하기 전에 자기 가 항상 하고 싶었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프로잭트이다. 기타 배우기, 레슬링 배우기, 옷 만들기, 다큐멘터리 만들기, fundraising, 별모양의 speaker 만들기 등등 아주 재미있는 프로잭트이다. 작년에 두 언니들이 어떤 아이의 수술비를 위해 fundraising을 SIPS로 한 것을 난 참 뜻 깊게 보았었다. 나도 내 SIPS를 위해 fundraising을 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안났었다. 그러다가 내 차례가 와서, 처음에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플룻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곡 한 곡 녹음을 끝낼 때마다 더더욱 fundraising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 러던 중 내 듬직한 친구, Yanxi,가 중국 지진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같이 중국을 위해 fundraising을 하기로 했다. 원래는 Yanxi가 다니는 교회 집사님이 만드신 영화와 함께 내 앨범을 선물로 쓰려 고 했었는데, 그 집사님과 연락이 안되는 바람에 Yanxi가 영화를 만들게 되었고 그 결과는 더욱 좋게 나왔다. 또 앨범 사진들은 간단하게 cover만 하려던 것이 결국에는 삼일 동안 밤을 꼬박 새는 큰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처음 시작할 땐 교회에서만 후 원을 받으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학교, 가게와 식당에서도 후원을 받게 되었다.

 이 fundraising을 하면서 몸은 많이 바쁘고 힘들었지만 (한 때는 일주일 동안 내내 앨범만 만들었다.) 마음은 참 따뜻했다. 내가 English class에게 SIPS를 present한 날 많은 친구들이 와서 격려와 후원금을 내주었다. 며칠 후에는 두 선생님들께서 매일 여 러 classes에 가서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셨다. 교회들은 물론 가게들과 식당들도 기쁘게 도와주셨다. Yanxi 아버님께서 다니시는 회사도 흔쾌히 참여해주셨다.

 한 달 동안 fundraising을 한 결과 우리는 $2000이 넘는 금액을 기부받았다. Yanxi 아버님의 회사가 $1092, Red Peppers Restaurant가 $300, 그리고 우리의 앨범을 사신 분들을 통해 $700을 받았다. Yanxi 아버님의 회사와 Red Peppers는 다 Eastern Hills Wesleyn Chinese Church에 헌금을 해주셨다. CD판매를 통해 받 은 기부금은 $400은 우리 BKPC로, $300은 Eastern Hills Wesleyn Chinese Church로 헌금을 했다.

이번 중국 fundraising을 위해 기증뿐만 아니라 격려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지원

 

환상의 여름성경학교


#첫째날 - 온 교회가 총출동 하다!
 지난 월요일, 드디어 여름성경학교가 시 작되었습니다. 그간 준비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던 Sara 선생님의 지휘 아래 우리 아 이들에게 시원한 "Beach Party"를 선사했습 니다. 예배당 앞쪽에 놓여진 파라솔과 조개 껍데기, 비치볼 등을 보면 쏴~ 파도소리가 들릴 듯했습니다. 이 날 총 19명이 참석했는데 그중에 절반 은 우리 교회 멤버가 아닌 아이들이었습니다. 다른 교회에 나가는 아이들, 혹은 교 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여름성경학교가 바라는 바에 꼭 맞게 우리 교회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아이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시원한 비치 앞에서 신나는 찬양을 하고, 성경공부, 쿠키 만들기, 티셔츠 만들기, 레크레이 션 등을 하면서 아이들은 너무 즐거운 시간 을 보냈습니다. 또한 이 성경학교를 돕기 위해 우리 교회의 거의 모든 부서가 총출동을 해주셨는데 Youth Group인 지영, 지원, 제나는 신나는 찬양 인도 및 쿠기 만들기, 그룹 헬퍼 등을 맡았고, 청년 부인 민성과 스티브 형제는 과자 따먹기 등의 즐거운 게임 진행, 초롱 자매는 파워 포인트를 맡아주었습니다.
 크래프트를 맡아 수고한 이신 자 교우님, 너무 맛있는 점심(불고기 덮밥~)을 준비해주신 초롱 어머니, 지연 어머니, 사 모님, 그리고 우리교회 멤버는 아니시지만 지난번 야외예배때 오셨던 가족(아기 이름이 토마스예요) 전원, 바쁜 시간을 내어 찾아오셔서 함께 식사하며 살펴주신 장로님들... 지극히 작은 자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해 이처럼 Youth 부터 당회까지 몸과 맘으로 함께 돕는 모습이 바로 우리 교회의 너무나 귀하고 아 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둘째날 - 이날은 제가 참석을 못했습니다.^^


#셋째날-내게 너무 특별한 날; 소냐가 오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서 교회에 가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옷을 입자마자 옆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집에는 소냐라는 중학생이 있는데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우리 집 아이들과 너무나 친하게 지내는 아이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이사온 후 지난 4년간 하루도 같이 안만나는 날이 없을 정도로 늘 우리 아이들과 붙어사는 아이입니다. 그 집은 모슬렘 가정으로서 이라크에서 다른 분파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아 키르 기스탄으로 이주했다가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너무 많이 놀아서 어떤 때는 반갑지 않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렇게 우 리집을 자기집 드나들듯 지내다보면 자기 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에 대해 가까워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친절하 게 대하려고 했습니다.
 기독교 국가인 이 곳 미국까지 와서 사는데 하나님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불쌍한가 하 는 생각이 들어서 가끔씩 기회를 타서 예 수님 얘기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재작년부턴가 우리 아이들이 여름성경학교에 다녀오고나면 그 아이에게 여 름성경학교가 너무 재밌다고 함께 가자고 졸라대었습니다. 모슬렘이 뭔지 모르는 아 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소냐에게 성경학교에 가자고 조르고 성경학교에서 배운 노 래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후에도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함께 가자고 졸랐 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도 함께 따라가고 싶어했지만 거의 갈듯 하다가도 이런저런 상황이 생기고, 부모님이 허락을 하지 않아 번번이 가지 못했습니다. 작년 성경학교 때는 이 아이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 애를 썼지만 결국 당일 아침에 아버지의 반대로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내 열심도 식어서 올해는 아무런 기대를 안했습니다. 아이들이 이번에 소냐가 성경학교에 가기로 했다고 하는데도 별로 기대를 안했고 부모님이 보내주겠 는가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셋째날 아침에 아이들이 드디어 소냐를 우리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성 경학교에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놀라고 감격스런 마음에 얼른 그 아이를차에 태우고 교회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차에서 얘기를 나누다보니 소냐는 오늘이 Fantasy Island에 가는 날인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라고 하자 그 아이가 좀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이미 출발한 차를 돌이킬 수도 없고, 물론 돌이킬 마음도 없어서^^ 그대로 교회로 왔습니다. 이 일이 우리에겐 그 아이의 실수 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완벽한 예비하심 가운데 이루신 일이라는 믿음이 왔습니다. 소냐는 찬양시간부터 모든 프로그램에 즐겁게 참여를 했습니다. 마침 이날 성경공 부 시간에는 예수님에 대해 소개하고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느냐는 질문을 하는 시간 이 있었는데 Sara 선생님의 질문에 대해 소냐가 자기도 믿는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 니다. 물론 그 아이가 그 말이 무슨 뜻인 지 제대로 알고 대답했는지 그렇지 않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든 간에 하나님께 서 그 대답을 헛되이 보지 않으시고 반드 시 그 말대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 었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 믿음의 씨앗이 때가 되면 싹이 트고 자라나서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요 제자가 될 것을 믿습니다.
 이제 곧 이사를 하게 되어 그 아이와 헤어져야 하는데, 천진한 아이들의 마음을 통해서 그리고 여름성경학교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소중한 이사선물을 주 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네째날-환상적인 마무리; Fantasy Island에 다녀오다
“아! 하나님 비가 오면 안돼요. 아이들이 얼마나 오늘을 기다렸는지 아시잖아요...” 여름성경학교의 마지막 날, 바로 Fantasy Island에 가는 날인데 아침부터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엊그제부터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많이 올거라 는 일기예보를 보았지만 막상 아침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걸 보니 아! 하는 한숨 이 나왔습니다. ‘이 날씨에 과연 Fantasy Island에 갈 수 있을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좋은 날씨 로 바꿔주실지도 모르지... 하지만 가더라도 물놀이까지는 정말 힘들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 수영복을 챙겼습니다.
 물놀이는 할 수 없을 거란 생각 에 세 장을 챙겨야할 수건은 한 장만 챙기고 선스크린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가보니 당연히 Fantasy Island에 못갈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오지 못한 아 이들도 꽤 있었습니다. 초롱, 지연, 영욱이 어머님들께서 한창 김밥을 싸고 계셨는데 모두들 날씨 얘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곳에 함께 가서 놀다오려고 모인 Youth Group, 주일학교 아이들 모두 한층 부풀었던 기대들이 가라앉아 보였습니다. 진이는 오늘을 너무나 기대했던 터라 새벽부터 일어나서 오늘 Fantasy Island에 갈 수 있을 까를 계속 걱정했다고 합니다. Sara 선생님께 어떻게 하실 건가를 여쭤보니 일단은 기도하면서 점심 먹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결정하자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우렁각시 사모님이 보이지 않으 셔서 어디 계신가 여쭤보니 지금 Fantasy Island에 가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곳 주차장에서 15분마다 전화를 하시면서 날 씨 상황을 전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날씨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대단 하신 우리의 사모님이십니다.
  나중에 점심 시간에 교회로 들어오시는 걸 보니 앞치마 를 두른 채로 차에서 내리시는 것이었습니 다. 아침에 김밥 싸시다가 그대로 달려가 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이런 사모님이 계시니...
 아이들과 함께 찬양 시간을 마친 후 조 금은 실망스런 얼굴로 있는 아이들에게 Sara 선생님이 함께 기도를 하자고 하셨습 니다. ‘우리가 그곳에 너무 가고 싶으니 하나님께서 비가 그치게 해주시라고, 하나님은 그럴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니 도와 주시라고, 하지만 그곳에 가든지 이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 로 주실 터이니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자 하셨습니다. 아이들 모두 너 무 조용히 함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얼마 후, 아이들이 목걸이를 만드는 동안 사모님께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곳에 는 비가 그쳤고 날씨가 환해진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곳 은 오히려 비가 더욱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창문을 내다보면서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러기를 이십여분... 서서히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드디어 비가 그쳤습니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맛있는 김밥 을 먹고 드디어 Fantasy Island로 갔습니다.
 
 Youth 학생들과 함께 총 35명 정도의 인원 이 출발했는데 교회에서 10분 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아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소낙비가 내린 뒤라 날씨가 너무나 청명하고 시원했고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우리는 모든 놀이기구를 조금도 기다릴 필요없이 다 탈 수 있었습니다. 사 람들이 적으니 아이들이 돌아다녀도 잃어버 릴 걱정 없이 느긋하게 따라다닐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Sara 선생님, 사모님, 이 신자 교우님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계속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너무 감사하고 놀랍다고 감탄했습니다. 아침부터 날씨가 좋았다면 이곳에 사람들이 많아서 이처럼 편안하고 즐겁게 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역시 우리의 지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이십니다. 2시가 넘어서자 서서히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모두들 water park으 로 달려가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수건을 한 장 밖에 가져오지 않아서 세 아이가 번 갈아가며 써야 하는 걸 보면서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침에는 물론 이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도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물놀이까지는 안해 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적당히’ 주시지 않고 ‘완벽하 게, 넘치게’ 주신 것입니다. 보이는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항상 하나님께서 최고의 것 으로 주실 것을 믿고 그것을 받아 누릴 최선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 셨습니다.

 아이들 모두 마음껏 즐겁게 놀다가 5시가 되어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4일간의 여름성경학교를 돌아보면서, 아이들뿐 아니라 함께 했던 모든 분들이 하 나님을 좀더 알고 체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수고가 단지 수고만 있는 수고가 아니라 믿음이 있는 수고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다시금 제게 깨우쳐 주신 것에도 감사드립니다.

Sara 선생님을 비롯하여 수고하신 모든 선생님과 봉사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 며 여름성경학교 마지막 날을 너무도 환상적으로 꾸며주신 우리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김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