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감



10만 명 이상을 죽게 하고
수백 만 명을 다치고 만든
중국 쓰촨성 지진
그 강도가 7.9나 되었다 한다
폐허가 된 도시는 흡사 전쟁터 같았다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그 같은 재난이 일어나리라고
그것도 벌건 대낮에
“집이 없어져 버렸어요!
친구들도 사라져 버렸어요!
엄마가 집에 깔려 죽었어요!“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을 보자니
나 역시 절로 눈물이 났다.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피해가 훨씬 적었으련만


지진이 있기 수일 전
수만 마리 두꺼비들이 나왔다 한다
지진을 예감하고 살고자 뛰쳐나왔던 것
두꺼비뿐만이 아니다
갖가지 동물들이 기행들을 보였다 한다
참으로 신기한 미물의 본능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지진을 미리 예감할 수 있었을까
한편으로 그 본능이 부럽기만 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
우린 어떤 예감 본능이 있을까
미물들은 단지 재난을 예감하지만
인간은 시대를 읽는 예감이 있다
그러나 몇 사람이나 될까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특히 시대에 민감한 사람들
그러나 얼마나 될까 그런 그리스도인이 (HJ)

 

‘무지개’를 꿈꾸며


지난 주간 총회 참석차 자동차를 몰고 보스턴으로 가면서 나는 오랜만에 또다시 미국의 넓은 땅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중간에 쉬는 시간까지 포함하 여 거의 10시간 가량 달렸던 것 같다. 처음엔 비행기로 갈 걸 괜히 자동차로 갔다고 하는 후회가 들긴 했지만 그 같은 후회는 아름다운 산천에 이내 녹아들었다. 한참 길 을 달리자니 문득 2년 전 자동차로 알래스카에서 버팔로까지 내려왔던 때가 떠올랐 다. 그 때는 하루에 5백 마일씩 꼬박 10일간을 달려 버팔로에 당도했었다. 버팔로에 서 보스턴까지 약 450마일 가량 되는데 매일같이 그것보다 더 먼 거리를 열흘간 쉬 지 않고 달렸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또다시 하라면 다시는 못할 것 같다. 지금 450마일도 이렇게 힘겨워하는데 말이다.

당시 그토록 먼 거리를 여행하면서 내 입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왔던 말이 있다면 “와, 정말 넓다!”는 것이었다. “땅덩어리 한번 정말 크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 이 아무리 온 종일을 달려도 앞뒤 사방 막힘없는 지평선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자 동차로 서부 지역을 여행한 분들이라면 모두 같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 론 요즘은 기름 값이 워낙 비싸서 그럴 기회를 가져보기 힘들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미국은 ‘복 받은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땅덩어리가 넓은 것도 그렇고, 존경할만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것도 그렇고, 각 주(洲)마다 고르게 잘 개발 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토록 넓은 땅에 도로는 또 얼마나 잘 개발되어 있는가. 정말 여행할 때마다 이 거대한 나라의 도로망에 매번 감탄하곤 한다. 그뿐인 가? 어디를 가든 자연경관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누가 처음 부르기 시작했는 지 모르지만 이 나라를 ‘미국(美國)’이라 부른 것이 꼭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여행을 다녀오던 주간이 독립기념주간이어서인지 이 나라의 탄생이 그렇게 부러울 수 가 없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 나라는 참으로 복 받은 나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청명했던 하늘이 점점 먹구름으로 뒤덮여가는 것을 보면서 내 미국 예찬(?) 은 이내 어두운 색깔로 변해갔다. 이는 요즘의 미국을 보노라면 도무지 미국답지 않 은, 더 이상 부러움이 느껴지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 나 라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시작된 나라요, 하나님의 축복 으로 지금과 같은 나라를 이룬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미국이 점차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전반에 걸쳐 심 지어 신앙조차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본주의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청교도의신앙으로 시작된 이 나라가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건국이념으로 삼은 이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이제는 노골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노골적으로 하나 님을 거부하고 배격하는 현상들을 보이고 있다. ‘


종교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공립학교에서 기도가 폐해진 것은 이미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아니 단지 기도만 폐해진 것이라면 다행이다.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 는 것조차 불법으로 규정되어 학교에서 하나님 말씀을 쫓아낸 지도 이미 오래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그럴듯한 허울을 쓰고 하나님 말씀의 자리 에, 진리의 자리에 대신 앉아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그리스도인 자녀들 이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진화론’을 진리 인 양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 ‘


진화론’을 진리인 양 주장하며 그것을 가르친다는 것 은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같은 끔찍한 일을 다른 나라도 아 닌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 이 미국이, 그것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오늘과 같은 부흥을 이룬 이 미국이 모든 공립학교에서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말 로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악이요,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며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다. 이제는 이 나라가 ‘동성결혼’까지 합법화하고 있다.


동성결 혼에 대한 시비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늘 사회적 골칫거리 가 되어왔던 이슈이다. 그때마다 기독교 국가답게 동성결혼이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 하게 해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보루마저 무너지고 동성결혼이 아예 활개를 펴는 세 상이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이 나라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가다 못해 이제는 노골적으 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뉴스에 의하면 지난 5월 15일에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결혼에 대한 인간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게 대법원 판결 이유라고 한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요 판결인지! 결혼에 대한 인간의 기본 질서와 권리는 당연히 남녀의 결합 아니겠는 가? 이는 인간 질서를 넘어서서 자연 질서이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아니겠는가? 그 런데 그 같은 만고불변의 질서를 ‘인간의 권리’라는 얄팍한 말장난으로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인간이 결정할 차원의 질서도, 인간이 논의할 차원의 질서도 아니다. 인간세계를 뛰어넘는 더 높은 질서의 세계에 속한 이슈이 다.
 

그런데 어찌 일개 법원이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참으 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정말이지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판결 소식은 내게 ‘미얀마’의 태풍 소식보다 중국의 ‘쓰촨성 지진’ 소식보다 더 큰 충격으로 와 닿았다. 이는 자연을 파괴함으로 자연의 큰 심판을 겪고 있는 인간이 이제는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자연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성결혼 합법화를 판결한 자들은 결코 그 같은 사실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창조 질서’가 어디 있겠으며,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심 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믿든 믿지 않던 ‘하나님’은 명백히 존재하시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 또한 명백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성결혼으로 인해 세상에 불어 닥칠 ‘하나님의 심판’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성경 안 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계시며, 경고하고 계시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신문을 보니 전 영화배우 출신인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와츠네거’가 이 같은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을 적극 지지한다고 발표하는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제를 벌이는 사진과, 동성애자들과 함께 뛰면서 기뻐하는 LA 시장(‘비아라이고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과연 그리 기뻐하며 축하할 일인가? ‘인간의 권리’가 진일보하기는커녕 인간질서와 창조질서가 무너지게 되었는데 그리고 그로 인해 인간사회가 재앙 가운데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 는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리도 춤추며 기뻐할 일인 가? 정말이지 그 같은 기사와 사진을 보며 나는 기막힌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 이 미국이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이번 캘리포니아 주의 동성결혼 합법 결정은 미 국에서 두 번째 주에 해당하는 것이다.

첫 번째 주는 ‘매사추세츠’ 주라고 한다. 그러나 이 두 개 주 외에도 버몬트 주와 뉴저지 주, 뉴햄프셔 주, 코네티컷 주 등이 ‘Civil Union’(시 민 결합법)을 통해 동성애자들에게 결혼에 준하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의 경우 동성결혼 합법 결정으로 모두 9500쌍의 동성애자 가정이 나왔고, 캘리포니아의 경우 모두 10만이 넘는 동성연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그들이 합법적으로 커플 로 인정을 받게 될 경우 그 영향은 일파만파 타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우 리가 사는 이 미국 사회는 몇 집 건너 하나씩 온통 동성애자 가정이 넘쳐나는 기형의 세 상, 끔찍한 세상으로 바뀌게 될 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지금 우리가 겪는 자연 재해와 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진노와 심판 가운데 직면케 될 것이다.


이 미국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나라가 어떻게 시작된 나라인데. 이 나라가 어떻게 축복받은 나라인데 이렇게 흘러간단 말인가? 이는 이 나라를 복 주신 하나님 께 너무 배은망덕한 행위이다.나는 이 나라를 보면서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본다. 그들이 어떤 백성인가? 세계 민족 가운데서 특별히 하나님께 뽑힌 민족 아닌가? 그리고 하 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축복을 받았다. 그 결과 그들은 역사 속에서 큰 영광을 누리기 까지 하였다. 다윗 시대와 솔로몬 시대가 그 대표적인 시대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하 나님께서 한번 축복하셨다고 그 축복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하 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또 아무리 현재 큰 축복을 누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 백성 이 하나님을 멀리 할 때 혹은 하나님을 대적할 때 언제든 그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 을 받곤 했다. 실제로 그것이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는 내용이기도 하다. 성경을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봉헌했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큰 축복을 약속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축복만 약속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들이 잘못했을 때 그들에게 임할 저주까지 경고하셨다. 다음은 그것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너희가 만일 돌이켜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숭배하면 내가 저희에게 준 땅에서 그 뿌리를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 하게 한 이 전을 내 앞에서 버려 모든 민족 중에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 리니”(역대하 7장 19-20절) 분명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또 그들이 현재 축복 가 운데 있을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범죄 하게 될 때 언제든 그들을 심판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 말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셨고 오히려 역사 속에서 그들 을 파멸시키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범죄 할 때마다 늘 나타나곤 했던 대표적인 범 죄 중 하나가 동성연애(‘남색’)였다. 그런데 또 동성결혼인가? 인류 사회를 매번 병들 게 만들었던 그 오랜 죄악이 또 다시 판을 치는 것인가? 정말이지 죽여도 죽여도 되 살아나는 참으로 무서운 독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는 스스로 ‘born-again Christian’(구원받은 그리스도 인)을 자처하면서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국가들을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 의 뜻’이라고 하며 오랜 기간 전쟁을 수행 중에 있다. 그것이 미국을 위험에서 지켜 내며 또 세계평화를 지켜내는 길이라고 하며. 그러나 이제는 그 같은 주장을 믿는 사 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제는 미국인들조차 그것이 단지 미국의 국익, 그것도 특정 세력의 이익만을 위한 전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 들과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는가.


만일에 부시가 정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욕심에 눈이 어두운 전쟁을 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작은 위협과 싸우기보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큰 적이 무엇인지, 진 정으로 미국과 세계를 위기 가운데 몰아넣는 것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은 ‘동성결혼’과 같은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는 죄악들을 이 땅에서 제거하는 것이 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미국과 세계를 병들게 만드는,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만드는 독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같은 것엔 전혀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오히 려 특정세력의 이익만을 위해 ‘하나님 뜻’ 운운 하며 계속해서 전쟁을 일삼는 대통령과 이 나라를 보며 이 나라의 어두운 미래에 대해 염려스런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비록 캘리포니아 주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정하긴 했으나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 다. 아직 이 법안을 뒤집을 기회가 남아 있다.


이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이 법안을 부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가운 소식은 실제로 지난 6월 3일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판결을 무효화시키고 대신에 남성과 여성 의 전통적인 결합을 진정한 결혼으로 규정하자는 주민 발의안이 주정부에 제출되었 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결정한 주 대법원의 발표가 있었을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 지하며 이에 반대하는 어떤 수정안도 나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정신 나간 ‘아놀드 슈와츠네거’ 주지사의 공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역시 그는 주어진 대사 나 외우는 영화배우나 할 일이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른 의식을 가지고 바른 결정 을 내려야 하는 정치인에는 전혀 적격자가 못되는 것 같다. 부시를 이 미국의 대통령 으로 잘못 세운 것만큼이나 그를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세운 것 또한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주민 발의안은 현재 주민 110만이 서명함으로 주정부에 상정이 되었고 이로서 오는 11월 4일에 최종적인 판가름이 나게 생겼다. 11월 4일, 그 날은 미국의 운명뿐 아니라 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그래도 아직 캘리포 니아 주민의 의식이 살아있는 듯해서 조금은 다행스런 생각이 들었다. 보스턴을 떠나 버팔로로 돌아오는 길, 그 날은 마침 7월 4일 이 나라의 독립기념 일이었다. 웬일인지 하늘에 잔뜩 먹구름이 끼고 아침부터 하루 종일 궂은비가 내리는 것이 마치 이 나라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나 는 이 미국의 저력을 믿는다. 그리고 아직까지 수많은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으 며, 아직도 뜨겁게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 들이 있는 한 이 나라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결코 쉽게 영적인 싸움에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이 나라는 현재의 위기를 신앙으로 슬기롭게 극복할 것 이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부러운 나라, 축복된 나라’로 남을 것이다. 비록 하늘은 어둡고 계속해서 궂은비가 내렸지만 나는 멀지 않아 ‘무지개’를 보리 라 희망하며 버팔로까지의 먼 길을 달렸다.


김현진

기 쁨(1)

신앙과 사색 : 2008/07/14 23:05
 

기 쁨(1)


기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행복한 이벤트로 인해 일어나는 일시적인 기쁨 과 상황에 상관없이 생기는 지속적인 기쁨입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기쁨은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일로 인한 행 복 또한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지만 우리가 그것으로만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 신을 끊임없이 행복하게 만들어 줄 특별 이벤트를 항상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 님께로 부터의 참 기쁨을 아는 자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이벤트를 만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외적 기쁨이 아닌 내적 인 기쁨을 얻는 법을 압니다. 이것은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상관없이 하나님께 서 그들에게 희망과 도움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이란 무엇입니까?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 는 영원한 즐거음이 있나이다. (시편 16장 11절)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찌어다. (시편 68장 3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장 1‐2절)

기쁨이란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은 예수님과 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주변 상황에 상관 없이 지속되는 내적 인 행복입니다. 기쁨은 하나님 안에서 평안한 것입니다. 기쁨은 예수님이 당신의 구원자이심을 알고, 당신의 죄가 사해지며, 전능하신 하나님과 친구가 되고, 또한 당신이 하나님과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혜택인 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기쁨은 성령으로 하여금 당신의 마음과 정신을 통제토록 할 때 당신의 삶에 일어나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기쁨은 어디에서 부터 오는 걸까요?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46장 5절) 하

나님 자체가 바로 참된 기쁨의 원천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하 나님의 뜻에 따르며 하나님과 같은 삶을 살면 살수록 당신의 기쁨은 더더욱 커집니다. 당신은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을 찾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을 통해 서 지금 이 순간에도 크나큰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헤미야 8장 10절)
너의 하나님 여화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 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터 나옵니다. 이러한 기쁨은 상황이나 당신의 행동 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을 깨닫게 될 때, 당신은 어려움이나 실망으로 인한 좌절감에 쉽게 빠져들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기쁨은 세상의 모든 역경과 고난에서 완전히 당신을 해방시켜 줄 천국에 대한 확 신에서 근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 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1‐2절)

예수님의 삶에 주목하고 그것을 따름으로 인해 당신은 지금껏 당신이 경험한 가장 큰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찌어다. (시편 22:26)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편 40장 16절)

하나님을 당신 삶의 우선에 두십시오. 기쁨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알면 알게 될 수록 당신은 기쁨을 좀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너희 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5,8)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립보서 1장 25절)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당신이 즐거움을 경 험하기 위한 필수 요건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 찼을 때 기쁨은 넘쳐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 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당신의 삶에 성령이 함께 하실 때 기쁨이 생겨납니다. 성령은 당신을 인도하고 당 신이 당신에게 더 큰 기쁨을 안겨다 줄 결정을 내리도록 당신에게 조언해 줍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마태복음 25: 21)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때 깊은 만족감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즐거움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사도행전 2장 46절)

다른 성도들과 함께 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서는 기쁨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Life’s Questions", Ronald A. Beers & V. Gilbert Beers, 번역:복은임

 

예정, 그리고 믿음
The Truman Show 그리고 Stranger than Fiction 보기


십여년 전, 한 신앙의 선배가 “The Truman Show”를 볼 것을 권하셨다.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 계획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삶이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이끌 어 오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그래서 감동스러웠다고 하셨다. 그런데 솔직히 필자는 이 영화에서 그런 감동을 느끼 지 못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세지가 그 선배께서 느끼신 감동과는 정반대의 것이 아닌가 하고도 여겨졌다.


이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큰 방송 스튜디오 안에서 사는 한 사람, Truman 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스 튜디오는 너무나도 크고, 실제 마을처럼 꾸며놓았기 때문에, Truman은 그곳이 기 획된 세상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Truman의 기획된 삶은 환경에 그치지 않았 다. 아내, 직장, 이웃, 아버지의 죽음 등 모두가 다 기획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삶 전체는 TV 드라마로 방송되고 있었다. 그런데, Truman이 자신의 삶에 뭔가 이 상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점점 느끼기 시작하고, 결국 그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영화의 말미에서 Truman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스튜디오를 탈출 한다.


그 종결을 보면서 필자는, 이 영화가 어떤 짜여진 틀에서 탈출하는 인간성의 승리를 홍보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 속박에는 종교, 하나님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영화를 보는 이들이, 필자의 선배가 느낀 감동과는 다른 해석을 많 이들 하지 않을까 추측하였다.


최근 Stranger than Fiction 이란 영화를 보 았다. The Truman Show도 좀 기괴한 내용이 었는데, Stranger than Fiction 의 이야기는 더 황당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두 영화 다 코메디언을 주인공으로 썼다. 내용은 전혀 코메 디가 아닌데.) Stranger than Fiction의 주인공 은 IRS 에서 근무하는 세무원 Harold이다. 그 의 삶은 온통 숫자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그 것 밖에 없었다. 칫솔질도 몇십번으로 딱 정해져 있고, 출근시간, 버스를 타는 곳까지곳까지 걷는 발걸음 수도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다른 삶은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 었고, 취미도 없고 휴가도 전혀 가지 않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노총각이었다.


그런데 그의 삶을 뒤흔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어느날,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대로 낭독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 리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그 소리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 고 있는지 조차 알아내어 낭독을 했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실제, 그 낭독자는 소설가였다. 그녀가 쓰고 있는 소 설의 주인공이 Harold였고, 그 소설의 내용이 그대로 Harold 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소설가의 한 가 지 특징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마지막에 모두 죽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의 현재를 그대로 낭독하는 소리를 이상스럽게만 여기고 있던 Harold는, 소설가의 한마디 언급에 기겁을 한다. 그녀가 무 심코 Harold가 일주일 후에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버린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낭독소리를 듣고만 있을 수 없게된 Harold는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삶을 써가고 있는, 또 자기를 죽게 하려는, 그 소설가를 찾아낸다. 그리고 자신에 대 한 소설초고를 얻어낸다.


하지만 Harold는 그 소설가를 찾도록 도움을 준 한 문학교 수에게서 절망스런 얘기를 듣게 되는데, 그 교수의 말로는 소설 속에서 자신은 죽어 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소설이 제대로 종결되려면 소설가가 쓴대로 자신이 죽지 않 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이 조언에 망연자실하던 Harold는 종국에 그 조언을 받아들인다. 소설가에게 그 초고를 다시 넘겨주면서 그 소설 속의 자신의 얘기가 참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획했던 대로 소설을 마치라고 한다. 자신을 죽이라고 한다.


The Truman Show와 Stranger than Fiction 두 영화 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비슷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한 사람, Truman은 그 삶에서 탈출했고, 또 다른 한 사람, Harold는 그의 예정된 삶, 심지어 죽음까 지 받아들였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을까?


그 들에게 계획된 삶을 비교해보면, Harold의 것이 더 안좋은 결과인데도, 왜 Truman은 거부한 반면 Harold는 그것을 수용하게 되었을까?


필자는 한 가지 이유 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삶을 예정한 자에 대한 믿음 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기획한 자의 의도에 대한 신뢰의 차이이다. Truman은 자신의 삶을 기획한 PD의 의도가, 자기를 이용하여 시청율 높은 드라마 를 만들고 그것으로 광고수입을 올리려는 것임을 알았다 – PD 당사자는 기필코 그 의도가 아니라고, 대신 Truman을 스타로 만들고 행복하게 해주려는 것이라고 핏대 를 높이며 주장했지만. 한편, Harold는 자신에 대한 소설을 읽으며, 그 소설가가 자 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의미있는 삶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한 여인을 사랑 하게 되었고,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꿈인 기타도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일어 날 일 중에는 친구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역할도 있었다. 비록 그리 대단하게 영웅 적인 죽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죽음도 꽤 괜찮았다. 바로 이 점, 즉 자신의 예정 된 삶의 의도, 그 삶을 기획한 설계자에 대한 신뢰 의 차이가 두 영화의 결말을 다 르게 만들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신앙의 주된 주제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하나님의 작정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인간의 제한된 이성으로 가늠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예정론은 여전히 잘 납득이 안되는 영역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자들을 창 세전부터 정해놓으셨다는 구원예정론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개인의 삶을 하나님 께서 미리 정하시고 섭리하신다는 부분에 이르면 좀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해석은 일단 제쳐놓자. 자신의 삶만을 놓고 생각해보아도 하 나님의 작정의 명제가 안겨주는 당황스러움은 충분하다. 굴곡이 많았던 지난 날의 일들이 다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진행되어 왔던 것인가? 현재 겪고 있는 이런저런 어려움과 시련도 하나님의 의도인가? 내가 원하지 않은 일들은 자꾸 생기고 정작 바라는 일들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야 하는가? 미 래를 두고 생각해보면 겁부터 난다. 어떤 내일을 하나님께서는 내게 예정해 놓으셨 단 말인가? 혹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이 전개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Harold처럼 곧, 갑작스레 나의 삶이 끝나버리는 종결이 예정되어있다면, 과연 나는 이를 수긍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 우리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떠날 수도 있다. Truman처럼 탈출하 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Harold 가 그랬던 것처럼. 그 차이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들을 통해 나로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하실 것이 라는, 그 분의 의도에 대한 신뢰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 하셨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들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그리 달가운 일들이 아 니었음을 알게된다. 그것은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등이었다 (35 절).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어려운 일들을 통해 그 분이 의도하시는 목적 이 선한 것이라는 믿음을 지녔다. 그 믿음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세계를 바꾸는 위 대한 선교사가 되게 하였다. 같은 믿음을 많은 신앙의 선조들에게서 발견한다.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에 순종하여 자신의 외아들을 제단에 바치는 아브라함에게서, 형제들에게서 버림받 고 13년간이나 노예로 죄수로 전전하며 살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했던 요셉에게서, 40년 동안 그 변덕스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광야생활을 이끌면서도 한 마디 불평하지 않았던 모세에게서, 질투심에 불타는 사울을 피해 십수년 동안 도망자 생 활을 하면서 수많은 믿음의 시와 찬양을 남긴 다윗에게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 을 통해 선을 이루어 가시리라 신뢰하는, 동일한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더 나아 가 , 우리는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에게서 그 믿음의 절정을 본다. 온 인류의 죄 를 지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그 무서운 일을 예수님께서는 끝내 순종하여 받아들이 셨다. 십자가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선을 바라보셨기 때문이었다. 내게 이런 믿음이 있는가 자문해본다. 당연 그렇지 않다. 하지만, 신앙의 선조들 이 모범을 보인 그 믿음의 부스러기 티끌이라도 내게 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믿 음은 과정인 것 같다.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도 과정을 통해 그 큰 믿음의 분량까지 자랐다. 비록 현재 우리의 믿음이 그 분들에게 비교할 때 턱도 없는 수준이겠지만,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자라가길 소망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던지, 어떤 내일로 이어지던지,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지하 며 순종하는 분량에까지 다다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김성민

 

사랑하는 동역자님께


문안 인사와 함께 T만민 교회와 SEED 유치원의 어려운 문제에 대한 중간보고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심을 감사드리며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지난 두 주 어간에 저희 교회 직원 황뽈리나가 두 번 종교성을 찾아 갔습니다. 첫 번째 찾아가서는 지난 70년간의 고려인들의 고난과 아픔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 곳의 교회가 이러한 고려인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안식과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는 것과 지금도 여전히 어렵지만 그러나 교회가 있으므로 유일한 소망이 된다는 것 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를 제발 문을 닫게는 하지는 말라고 눈물 로 부탁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당장 교회 문을 닫을 것처럼 살기등등했던 당국 요 원들의 마음이 수그러지고 조용히 뽈리나의 말을 끝까지 듣고는 부드러운 말로 모 든 상황을 다시 참작하겠노라고 하며 돌려보냈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두 번째로 찾아 가서 3개월에 한 번씩 하는 보고서를 제출 하면서 또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말을 들은 여자 요원이 너무 걱정 말라 고 하면서 벌금형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했답니다.


할렐루야!!! 그동안 수많은 교회가 이런 식으로 문이 닫혔습니다. 그런데 문이 닫 히지 않고 벌금형으로 끝낼 수 있다고 대답을 들은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공관 요원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주일은 매월 첫 주(7월 6일), 성찬 예배를 드리는 주일 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3지역 교회의 성도들과 다 함께 모여서 합심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했습 니다. 그리고 3일간 전 교회 금식을 선포하고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금식기 도를 드렸습니다. 새벽기도회에도 많은 성도들이 나와서 함께 부르짖고 있다고 합 니다. 교회 등록증을 돌려받도록 모든 성도들이 매어달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T 만민 교회의 등록증을 돌려받는 일과 시드 유치원의 컴퓨터 10대를 돌려받는 일을 위하여 계속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를 대적하고 어지럽히려는 것은 악한 사탄입니다. 예수 그리 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합시다. 오직 기도로만 이 악한 마 귀를 이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곧 그 자체가 선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의 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승리할 때까지 함께 기도로 동역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김요한 이순희 올림

 

The Way To Live, Thy Kingdom Come
-2008 KOSTA를 다녀와서-


안녕하세요~^^ 전..... 민구예요~ 전민구 입니다 오랜만에 또 이렇게 쉴만한 물가를 통해서 인사드리네요 하 하~ 사실 몇 주전 회보에 제가 게시판에 쓴 글이 올라와 있 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랬답니다.(예상을 못해서...) 2008 코스타 장학금을 받게 된 뒤 너무 기쁜 나머지 게시 판에 좀 자랑이기는 했지만 글을 올렸는데 어느 날 회보에 그 글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 좋았어요.. 부탁을 드리 지 않았지만 이렇게 쉴만한 물가를 통해 제 글을 많은 분들과 나누면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 바칠 수 있어서 너무 좋 았답니다. ^‐^ 그게 불과 몇 주 전 이야기인데.. 왜 이리 오래된 것 같은지…

 드디어 6월 30일에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2008 코스타가 "이 시대에 바른 길로‐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는 주제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5일에 걸친 훈련과 하 나님께서 세미나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예배시간에 울려퍼지는 찬양, 그 리고 묵상과 기도!!!!로써 얻게 되는 Amazing Grace를 체험하게 되는 실로 엄청난 영광을 누리고 돌아왔는데 이거 뭐 혼자 간직하고 살자니 너무 찝찝한거 있죠~!!ㅋ 그래서 몇 명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기쁜 제 심정을 나누기는 했지만 이거... 뭐.. 그래도 뭔가 허전한 기분이..... 그래서 이렇게 많은 우리 성도님 형제 자매분들이 랑 나누고 싶어서 간증을 합니다~ 저는 코스타를 신청하기 오래 전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 땅에 와서 교회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생활 시작한 지 2달이 안되서 형들과 누 나들이 무슨 수련회 간다고 5일정도 갔다 오더라고요... 그때는 워낙 제가 아는 것 도 없고 자세히 알려고 노력도 안해서 그것이 뭐 대단한 일인가 했었는데... 갔다 오더니 다들 표정이랑 생활들이 실로 놀랍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그 수련회가 2007 KOSTA 였어요....(그래서 저는 1년 가까이 이 시간만을 기다렸답니다..) 그렇 게 2008 KOSTA를 신청하고 기다리며 기대하며 살아가던 제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되었거든요. 정확히 6월 26일 목요일이네요.


제가 코스타의 예고편을 보기 위해 토론토 코스 타 마지막 저녁 집회를 드리러 형제 자매분들이랑 같이 갔었는데 너무나 뜨거운거예요.. 좋은 말씀도 듣고 찬양과 기도로써 고백을 하기도 하고... 아.. 이게 바로 코스타구나 할 정도로 너무나 기쁘고 신났었는데... 그 기쁜 마음을 뒤로 한 채 집 으로 돌아와서 저의 삶을 되돌아 보는데 교회 생활과 나의 세상의 삶이 너무 다른 것을 보면서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것 같고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에 도전이 딱 생기더 라고요. 불과 코스타 가기 5일을 남겨놓고요.... ^^;;;; 너무나 저한테는 충격이었 어요... 모든 것이 너무 거짓된 거 같고... 특히 저 자신과... 제가 믿고 있는 하나님 이... 내가 진정 드리는 찬양이 내 고백이 되는지... 내가 하는 기도가 하나님께 하 는 것인지... 이런 저런 두렵고 무서운 것들이 제 머리 속을 맴돌다가도 또 다 내려 놓고 세상 것에 휘둘리다 보니 사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머리속은 너무 복잡했는 데, 그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코스타를 가게 되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보여주세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발견해서 이런 헛된 생 각 안들 수 있게 아버지 보여주세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런데 실로 놀라운 일은 코스타 간지 이 틀만에 저는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을 체험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며 나의 아버지요, 또한 동일하신 분임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모세 가 홍해를 가르는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그런 대단할 일도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제 마음을 Touch하심을 분명히 느꼈어요....구원은 어느 누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이 날 느 껴버렸죠.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써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첫 날 저녁설교를 시작으로 시작된 코스타의 말씀의 주제가 "천국의 열쇠"였는데 딱 믿음과 구원에 대한 설교 내용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6:13‐20을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께 고백함으로써 천국의 열쇠를 얻게 되었지요. 또한, 구원의 반대는 사망이 되는데 로마서 6장 23절을 보 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 니라"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의 죄 중에는 우리 안에 '나'가 너무 많고 나를 중심에 두고 단순히하나님은 중심인 나를 위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물론 저도 그 런 사람이었고요. "하나님 저 내일 시험인데 잘 보게 해주세요.. 이번에 못 보면 학 점 떨어져요....제발!!!", "하나님 너무나 피곤해요... 좀 쉬게 해주세요...", "하나 님 용돈이 다 떨어져가요.. 너무 돈이 없는데 채워주세요...제발!!" 이런 기도 하나 하 나가 너무나 제 삶만을 위한 것이었고 전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단 순한 도구로써 생각했던 저의 지난 삶들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저는 저의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 날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다 내려놓았죠. 나의 거짓된 고백, 거짓된 모습, 내 삶의 중심에 있는 나…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자녀의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구원이더라고요. 이 날, 저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면서 자녀의 권세를 얻은 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만지시니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첫째 날부터 엄청 울고 말았는데 그러면서 이 땅이 진정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주시더라고요. 이 땅에서 내가 하고 있는 공부, 내가 교제하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바치며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왜 그리 눈물이 나면서도 기쁜지 이 기쁨은 제가 맛 본 모든 것 중에서 최고의 기쁨이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내 안의 모든 것이 되니 너무 평안하고 자유로우니 다 이루어진 거 같은 기분이더라고요.


저는 5일 동안 보낸 코스타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평생 간직해야만 하는 사 명을 받은 것 같아요. 저한테는 이번 코스타가 제 삶의 Turning Point가 된 거 같 아요. 우선 가장 큰 것은 저의 사고방식이 바뀐 것이랍니다. 주님 한 분 만으로 만 족하는 제 모습!!!! 내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것이 없다는 것!!! 이거면 되는 구 나!!! 저번 주 토요예배때 본 설교에서 목사님이 영광을 본 자만이 진정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한테는 코스타가 너무 영광스럽고 기적과 같 은 일이 되어버려서 이제 내가 믿는 하나님과 담대히 세상에서 동행하며 그분께 영 광 바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거 같아서 너무 행복해요.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오늘은 무엇을 할까요?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오늘은 무엇으 로 하나님께 영광을 바칠까요??" 이 고백 속에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요~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무거운 것만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며 살 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요~^^ 우리 BKPC의 든든한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전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