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08/10/10 하늘글
  2. 2008/10/10 잃어버린 축복
  3. 2008/10/10 제국의 멸망 -전쟁이야기 (20)-
  4. 2008/10/10 사랑하는 동역자님들에게
  5. 2008/10/02 American Site
  6. 2008/10/02 ‘흠집 없는 벽’
  7. 2008/10/02 돈(1)
  8. 2008/10/02 제 3의 삶을 향하여
  9. 2008/10/02 새가족반을 마치고…
  10. 2008/10/02 금융대란
  11. 2008/10/02 도 구
  12. 2008/10/02 여름 이야기 (마지막)
  13. 2008/10/02 인도네시아에서
  14. 2008/10/02 나그네 삶
  15. 2008/10/02 ‘브래들리 효과’
 

하늘글


기역 니은 디귿 리을...
아 야 어 여 오 요...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서
세상 모든 문자 가운데서
유일하게 특정한 사람에 의해
특정한 때에 만들어진 문자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고 또 놀랍다
나는 한글을 생각할 적마다
한국인으로서의 뜨거운 긍지를 느낀다.
한글이 완벽한 음성구조를 따라 만들어진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것을 알면서
한글로 표현 못할 언어가 없음을 알면서
특히 한글 창제의 정신을 알면서
나는 더더욱 경탄과 긍지를 느낀다.
정말 우리는 자랑스러운 선조를 두었다.
세종대왕이라는.

우매한 백성으로 하여금
쉬이 제 뜻을 펴도록 만들어진 한글
이제는 온 세상을 위한 문자
글 없는 민족들을 위한 문자가 되었다.
이는 한글로 표현 못할 언어가 없고
한글처럼 배우기 쉬운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 도처에서 불쌍한 민족들이
한글로 문맹을 깨치고 있다.
한글로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있다.
이토록 경이로운 사건이 또 있을까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한글은 조선인만을 위해서가 아닌
온 누리를 위해 주어진 글임을
이 마지막 때를 위해 주어진 글임을
천민(賤民)을 천민(天民)으로 만들고자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내려주신
하늘글임을. (HJ)
 

잃어버린 축복


빗줄기가 몇차례 흩날리더니 버팔로에 불쑥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은 우리를 을
씨년스럽게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더욱 을씨년스러움을 느낀다. 이는 갑작스레 들
이닥친 ‘금융대란’으로 전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지 금융회사
나 증권가의 문제라면 얼마나 다행이랴! 문제는 그 여파가 서민들의 삶에 큰 위협
을 준다는 데 있다. 실제로 Business를 하는 사람들이 피부에 와 닿게 경제적인 어
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환율폭등으로 인해 유학생들이 공부와 생활
에 큰 지장을 겪고 있다. 우리 교회에 있는 많은 유학생들을 생각할 적마다 마음에
이는 안타까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중에 한국에서 들려오는 최근의 소식은 충격적이고도 우울한 소식들 투성이
이다. 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바람 잘 날이 없는 한국이지만 요즘 들어서
는 더욱 그런 것 같다. 특별히 최근엔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고 있는데 지난 주중엔 한국의 간판급 여배우인 ‘최진실’씨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
이 들려왔다. 한국 뉴스를 열어보았더니 온통 그 소식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약 한달 전쯤엔 ‘안재환’씨라는 또 다른 유명 연예인이 자살을 했
다 하고. 그로 인해 지금 한국 사회는 매우 뒤숭숭한 분위기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 같은 사건들로 인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심약한 사람들의 모방 자살사건이 잇
따르지나 않을까 많은 이들이 염려하는 중에 있다 한다.

정말이지 왜들 그렇게 극단적인 길을 택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죽은 사람들의 경
우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속 깊은 사정들이 있겠지만 그럴
지라도 자살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며 탈출구도 아니다. 이는 그 자신의 삶을 ‘실패’
로 끝내는 것이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지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고 특별
히 유명인의 경우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기도 하다.
뉴스를 보는 가운데 나를 더욱 안타깝게 만든 것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다 ‘그리
스도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자살한 ‘최진실’씨도, 그리고 얼
마 전에 자살했다는 또 다른 연예인인 ‘안재환’씨 역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교회 주관으로 장례식을 갖는 것을 뉴스를 통해 들을 수가 있었다.
정말이지 불행하고도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자살’을 선택한 그들. 그들은 정말 ‘그리스도인’이었
을까? 그들은 어떤 ‘그리스도인’이었을까? 그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살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사는사람들이고(로마서 8:9), 그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을 ‘평강’ 가운데 인도하시기 때
문이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 평강은 좋을 때만 갖는 평강이
아니다. 여건을 초월하여, 심지어 죽음 앞에 직면해서라도 가질 수 있는 ‘평강’이
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순교를 당하는 자리에서도 ‘평강’ 가운데 초연히 죽음을
맞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어찌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단 말인가? 내 생각에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기보다는 단지 ‘교회를 다니
는 사람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만일 그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참으로 불
행한 삶을 산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
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득 ‘오스카 와일드’라는 미국의 유명한 문학가가 쓴 글이 생각난다. 그가 쓴 글
가운데 이런 우화적인 단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그 후 세월이 지나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그 같은 내용의 글이다.
처음에 예수님은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한 주정꾼을 만나게 되었다. 예수님께
서는 그에게 왜 그처럼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원래 앉은뱅이였는데 당신이 일으켜주어서 걷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걸
어 다닌들 뭐하겠소.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찾아보았지만 만
족한 직업이 하나도 없었소. 해서 세상을 비관하며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오.”
그 다음 예수님은 한 창녀가 남자들 틈에서 희롱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
자는 한 때 예수님으로 인해 새 생활을 가지게 된 여자였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다가가 왜 또 이와 같이 생활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 창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창녀의 자리에서 건져주어 새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지만 창녀에
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입니까? 여전히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
았습니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지요. 해서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한 젊은 불량배가 이웃 사람들과 정신없이 싸움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는 그 청년에게 물었다. “이보게 젊은이,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나?” 그때 그 청년은 예수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준, 예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이오. 그러나 눈을 뜨고서
도대체 무엇을 보란 말이오. 처음엔 세상이 아름다운 것 같았는데 점차 보이는 것
들이란 나를 화나게 만들고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들뿐이었소. 해서 결국 나
는 분통을 터뜨리며 아무나 싸움질을 하는 생활을 가지게 된 것이오.”

물론 이상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 한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가상으로
써본 글이다. 사실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이 글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
하면 작가 개인의 상상력으로 주님께서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마음대로 망치고 있
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이 같은 글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부조리와 현실의
어려움을 고발하려고 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 세상은 못 배우고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얼마나 어려운 곳인가?

그러나 무엇보다 이 글이 보여주는 사실이 있다면 주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음에
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랄 수 있다. 주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셨다. 주님께서 걸을 수 있도록 불구의 다리를 고쳐주셨다. 주님께
서 더러운 창녀의 생활에서 건져 주셨다. 그 다음엔 그 자신이 그 축복을 잘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밥상을 차려주었다. 그렇다면 먹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입에 떠서 넣어주는 것까지 기대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가만 보면 마찬가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 ‘평강’에 있어서
그러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가져다 주셨다. 그것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
히 얻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강이며, 세상이 주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고
또 세상이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평강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것이다. 성경 요한복음 14장 27절을 보면 그 같은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
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강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 5장 1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우리 인생들에게 선물
하신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평강’이었다. 다음은 그것을 보여주는 말
씀이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
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한복음 20:19)
즉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일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평강의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이다.
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축복인가! 이제 우리가 할 것이 있다면 주님 안에서 그
평강을 누리기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강’을 제대로 누리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가 않다. 이는 곧 자신이 받은 놀라운 축복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없어서 ‘평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지
못해서, 또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가 잘 되지 않아서 ‘평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
떤 사람들은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식들이 속을 썩여서 ‘평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은 심각한 스트레스에 빠지게 되며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최
근에 자살한 연예인들처럼 극단적인 불행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평안’은 그런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며 외
적인 조건에 의해 생기는 평안이다. 진정한 평안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데서
오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자신이 천국의 시민임을 알게 될 때, 그리
고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평안함’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 가진 것이 없어도, 건강이 좋지 못해도,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남편이나 아내,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늘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어차피 지나가는 것이며 나그네 삶이기 때문이
다. 지나가는 나그네 삶의 불만족이 어찌 최고의 축복을 보장받은 우리에게서 ‘평
안’을 빼앗아 갈 수 있겠는가?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과연 그리스도인답게 ‘평강’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늘 불안과 불만과 스트레스 가운데 살고 있는가? 만일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라고 하면서 ‘평안’을 상실한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장하
신 축복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처럼 불행한 그리스도인
의 삶은 없을 것이다. 바라기는 이 가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모두가 ‘평강의
삶’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성경에 자주 나오는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인사로 글을 끝맺을까 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찌어다"

✎ 김현진

 

제국의 멸망
-전쟁이야기 (20)-



6. 코르테스(Hernon Cort́es)와 피사로(Francisco Pizarro)

스페인의 정복자들인 이 사람들을 「악마의 사도」라 부른다고 앞서 얼핏 언질을
드렸습니다. 「Disciples of Satan」이라고 역번역해봅니다만, 그들에게 이런 흉악
한 명칭이 주어지게 된 까닭은 이들이 인간 구원과 평화의 종교인 기독교를 빙자하
고 또 강요하면서, 오히려 약탈과 파괴와 인간 살상의 잔혹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
렀기 때문이지요. 그들을 「백색의 흡혈귀(吸血鬼)」라고까지 부르기도 하는데 콜럼
버스도 이 명칭의 범주를 물론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글쎄 흥미롭다고나 할까요. 미국 역사가들의 저서에선, 물론 제가 가지고 있는
적은 자료라는 한계가 있지만,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표현(명칭)들이 유독 한국인이
지은 책 속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대세계사(大世界史)」라는 제목의 역사책이지요. 15권짜리 전집으로 「도서출
판 마당」이 1982년에 출판했네요. 웬일인지 저자의 이름이 숨겨져 있고 다만 연
세대 홍의설 교수와 서울대 노재봉 그리고 김승근 교수 등이 감수(監修)했다고만
되어있습니다.
내 친구 김건유 장로의 이민 보따리 속에 점잖이 들어앉아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
온 책, 그 후 이사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결국 8권만 남았으니. "늙어 할
일 없을 때 읽으려고" 가지고 왔다는 이 귀한 것들을 제 「전쟁 이야기」꾸밈에 보
탬이 될 것이라며 건네주었지요.

「근대의 서곡」편인 제 8권, 그 장(章) 하나가 「파도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악마의 사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리상의 발견」에 의한 유럽의 팽창과 세계 정복은 곧 아시아나 신대륙
을 지옥의 공포 속에 휘몰아 넣었다. 특히 초기의 정복자들이 하필이면 스페
인과 포르투갈인들이었다는 것은 아시아나 신대륙을 더 처참하게 했다. 문제
의 정복자들은 말 그대로 「악마의 사도」였다. 파괴와 약탈, 강제 노동과
채찍과 과로와 영양실조만을 피정복자들에게 안겨주었다.
원래 스페인인이나 포루투갈인들에게는 그들의 신앙과 관습을 강제하는 폐
풍이 있었는데 이 폐풍을 강요당하는 쪽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뒤의 네델란드,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예외없이 약탈과 착취를 자행했으나 공공연히 폭력을 구사했다는 점에서는 스페인과 포루투갈이 단연 압
도적이었다.

그런데도 유럽의 학자들은 대개 이때의 팽창과 지배를 장밋빛으로 채색하
고 있다. 우리들 동양인은 그럴 수가 없다.
......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오직 황금뿐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을 가리지 않았다. 불행히도 아스텍과 잉카의 두 문명권은 바로 이런 무리들
한테 정복된다. 그들을 당시에는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 정복자)라고
스스로 불렀는데 신대륙의 대표적인 이 두 문명권을 정복한 유명한 콘키스타
도르는 코르테스와 피사로다.

콜럼버스의 제 2차 항해(1493-1494) 때부터 식민지 건설을 계획해 군대를 보내기
시작한 스페인은 히스파니올라(Hispaniola)라고 이름지어 부르던 현재의 헤이티와 도
미니카 공화국이 있는 섬에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했고, 뒤이어 식민자들이 몰려오게
되는데 이들에게는 토지와 노예가 배당되어 생활은 풍족했으나 그 정도로 만족할 사
람들이 아니었지요. 그들은 황금과 일확천금에 눈이 뒤집힌 자들이었거든요.
캐리비언 섬들, 즉 서인도 제도에선 더 이상 황금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
린 그들은 멕시코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1517년, 멕시코 남부의 유카탄
(Yucatan) 반도를 탐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곳에 하나의 문명이 있고
서인도제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또 그들은 많은 황금을 가지고 있
다는 보고를 큐바 총독에게 하게 됩니다.

2년 후 새로운 탐험대가 조직되지요. 이때 등장하는 자가 바로 코르테스입니다.
총독이 그를 탐험대의 지휘자로 임명한 것입니다.
코르테스, 1485년생이니 그가 이 직책을 맡은 것은 34세 때의 일이네요. 스페인
의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고 19세에 항해열에 들떠 헤이티로 건너갔으며 큐바
정복때 공을 세워 큐바 총독의 눈에 들게 된 것입니다. 그를 따라갔던 디아스
(Bernal Dias Del Castillo)가 쓴 연대기 「멕시코 정복사」에 따르면 코르테스는
시를 쓰는 재능이 있었고 기도와 미사에 굉장히 열심이었으며 여자를 몹시 좋아해
서 여러 번의 목숨을 건 결투까지 했다네요.
이런 자가 시를 썼다니, 허기야 20세기의 인간백정 스탈린도 시를 썼다는 이야기
가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코르테스는 상인들과 지주들의 돈과 자신의 사재를 털어 탐험대를 조직합니다.
당시의 예대로 하나님의 대리인들이 내려준 축복을 듬뿍 받은 것은 물론이지요. 배
11척, 부하 508명, 선원 100명, 말 16필, 대포 10문에 철포 17문.
나중에 코르테스의 지나친 야심을 눈치챈 총독은 코르테스의 임명을 후회하여 그
를 불러들이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어요. 탐험대는 벌써 멕시코 만(The Gulf
of Mexico)을 서서히 항해하고 있었거든요. 1519년의 일이었습니다.
콜럼버스의 뒤를 이어 신대륙으로 건너간 유럽인들은 그곳에 두 개의 큰 제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멕시코에 있던 아스텍(Aztecs)의 왕국 아스테카(Azteca)
와 남미 페루에 있던 잉카제국(Inca)입니다.

구대륙과 아무런 접촉 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
화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것은 옛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 비해 시대적으로 뒤늦은
또 하나의 고대문화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지요.
아스테카 제국은 부계 씨족의 연합체인 나라로 국왕 밑에 씨족장 회의가 있었고
이들 지배 계급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답니다. 태양과 다른 자연을 숭배하는 종교
가 있어서 사제가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지요. 14세기 경에 전성기를 이룬 이 문
명은 이보다 앞서 있던 마야문명(Mayas)이니 돌텍문명(Toltecs) 때문에 「후기 마
야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잉카 제국은 아스텍과 유사한 체제나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나 중앙 집권이 진전
되어 「태양의 아들」이라고 불리던 국왕이 전제정치를 펴고 있었지요. 11세기 경
에 세워졌고 15세기엔 에쿠아도르에서 칠리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이 되었답니다.
이 두 문명은 유사한 점도 많았으나 차이점도 가지고 있었지요. 아스텍은 천문학
이 발달되어 일년을 365일로 나눌 수 있었고 유럽보다 더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
있었으며 심지어 '0의 개념'까지 알아냈답니다. 상형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고요.
잉카 제국은 문자가 없었으나 키푸(Quipu, 결승문자)로 인구나 산업의 실태를 기
록하고 있지요. 지금도 이것을 쓰는 곳이 있다네요.

농업, 도로공사, 건축, 직물 등은 잉카 쪽이 우수한 편이나 도자기, 조각, 회화와
금은과 주석으로 만든 세공품은 양쪽 모두 발달되어 있었답니다.
「황금의 나라」를 찾아서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내려가 잉카 제국에 이르른 스페
인인들은 수도 쿠스코(Cuzco)의 장려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지요. 태양신 신전을 비
롯해 수많은 석조 건물들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답니다.

태양신 신전의 본당엔 보석으로 장식된 두꺼운 황금판에 인간 모습이 새겨진 신상이세워져 있었고, 신전밖엔 순은으로 된 월신상(月神像)이 서 있었지요. 제구나 제물
을 담아두는 항아리 같은 것들은 모두 금은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스페인인들은
이 제국을 정복한 후 이것들을 닥치는대로 약탈해갑니다. 이 나라에선 특히 은(銀)
이 아주 흔했던 모양, 스페인들이 뺏어간 은이 얼마나 많았는지 향후 300년을 쓰고
도 남았을 정도였다니.
아스테카 제국. 코르테스 일행이 이 나라에 도착했을 당시의 일을 디아스는 이렇
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군인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정말 옛 전설에 나오는 환상의 세계 같구나. 이
게 꿈인가 생시인가?" 너무나 황홀해서 이 도시를 표현할 방도를 찾지 못하겠다.
수도인 테노치티틀란(Tenochititlan)은 인구를 30만이나 가지고 있는 도시였고 시
장에선 매일 같이 온갖 종류의 상품들이 거래되고 있었으며 노예도 매매되고 있었
지요. 그런데, 그들의 신전을 돌아본 스페인인들은 그 제단에 사람의 피가 묻어있
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아스테카 제국은 주변 부족들을 공격해 약탈을 일삼았고, 생포한 포로들의 심장
을 꺼내 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때 유럽인들은 신대륙의 인디언들을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s)」이라
고 부른 적이 있었지요. 그들은 자연과 조화된 지극히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부른 것인데 실제로는 이 사람들도 역사상 다른 여느 나라와 마찬가
지로 서로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코르테스 일행은 드디어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북쪽에 있는 베라크루스(Vera Cruz)에
상륙하게 됩니다. 정복자들의 첫 발자국 소리가 하필이면 「성금요일」에 들려오다니...
코르테스는 억수로 운좋은 사나이, 그곳에서 마야어를 할 줄 아는 스페인인을 만
나게 되지요. 아길라(Aguilar)라는 자로 수년 전 표류해 이곳에 와서 마야족과 어울
려 살고 있던 사람입니다. 코르테스는 곧 인디언과 전투를 하게 되고 여자 인디언
몇 명을 붙잡게 됩니다. 그들 중에 뒷날 마리나(Marina)라고 불리게 되는 공주가
있었는데 그녀는 마야어와 아스텍어에 능통했지요. 그녀가 아스텍어를 마야어로 바
꾸면 아길라는 마야어를 스페인어로 통역을 하게 되었으니 이로써 언어의 장벽이
제거된 것입니다. 이들로부터 아스텍에 대한 정보까지 얻게 되었고요. 이 마리나는
후에 코르테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수도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코르테스 앞에 아스테카 국왕이 보낸 100명의 사자
들이 금은으로 만든 화려한 세공품들을 잔뜩 가지고 나타납니다. 그들은 이것을코르테스에게 주면서 조용히 물러가 달라는 왕의 뜻을 전달합니다. 그러나 이 보물이
오히려 코르테스의 황금에 대한 욕망의 불길에 부채질만 한 꼴이 되고 말았네요.
툭하면 쳐들어와 약탈하고 자기들을 잡아다 노예로 삼거나 인신 제물로 삼는 아
스테카, 그들을 향한 부근 원주민 부족들의 원한이 하늘을 찌를 듯할 때 턱 나타난
코르테스. 이런 정황을 알고 있던 그는 원주민들을 굴복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회유
도 하면서 몇몇 부족들과 동맹관계를 맺게 되지요. 하여 수천의 원주민 전사들을
동원하게 되었으니.

아스텍인들 사이엔 하나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지요.
아주 먼 옛날에 이 나라를 다스리던 신인(神人)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케찰
코아틀(Quetzalcoatl). 매우 친절했고 나라를 잘 통치했으며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인가 적들에 의해 어디로인가 추방당하고 말았다. 배를 타
고 떠나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갈대의 해」, 즉 1519년에 나는 반드
시 동방에서 돌아와 원수들을 쳐부수고 다시 이 나라를 다스리겠노라."
철갑옷을 입고 수염이 무성한 백인 남자가 이상한 짐승(말)을 타고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국왕 몬테수마 이세(MontezumaⅡ)는 깜짝 놀라고 말지요. 그는 화가
를 보내어 이 이방인들을 그려오게 합니다. 꾀쟁이 코르테스는 공포심을 한껏 주기
위해 반드시 말 탄 모습을 그리게 했는데 머리와 어깨는 사람이나 몸뚱이는 네 발
가진 괴물처럼 보이기 위해서였지요.
같은 해 10월, 진군하는 도중 비무장한 원주민 3,000명을 죽인 엄청난 학살 사건
이 있었습니다.

전에 인용했던 진교수의 「미국 민중사」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코스테스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죽음의 행진을 시작했다. 그는
속임수를 쓰고, 아스텍인들을 서로 반목하게 만들며, 급작스럽고 소름끼치는
행동으로 그들의 의지를 마비시킨다는 전략 아래 의도적인 살육을 자행했다.
촐클라(Cholcla)에서는 그 부족 지도자들을 광장으로 초대했다. 수천명의 비
무장 신하를 대동하고 그들이 도착했을 때, 광장 주위를 빙 둘러 대포를 배
치하고 석궁으로 무장한 채 말을 타고 있던 코르테스의 소규모 스페인 군대
는 이들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남김없이 살해했다. 그리고는 도시를 약탈하
고 다른 도시로 옮겨갔다.
11월, 마침내 코르테스 일행은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에 입성하게 됩니다.

주안에서 샬롬
 
✎ 이은모

 

사랑하는 동역자님들에게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 그분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띠로 매어진 사랑하는 동역 가
족들에게 문안 올립니다.
저희들은 지금 우국 비자를 기다리면서 토론토에서 열리는 미 ㅈㄷ종족 ㅅㄱ
Strateregy Coordinator Training을 받고 있습니다.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은지가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아직
한 번도 이 좋은 소식을 들어 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종족이 3400개(5억)와, 우리
의 무관심과 미지근함으로 30억이 넘는 인구rk 울타리 밖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
는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시며 안타까와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애쓰며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날로 팽창하는 지구촌의 인구 증가를 능히 따라 잡고도 남을 권능을 주셨고 누룩처
럼 쉽게 퍼져나갈 놀라운 생명의 번식법을(눅10장) 주님께서는 일일이 가르쳐 주셨
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버리고 우리의 머리를 굴리고 만든 우리의 방법을 사용했음
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9월 15일-20일은 이곳 토론토의 큰빛 회사에서 새생명 번식 훈련원 설립 전략
9월 22일-27일은 CPM(T4T, training for trainer) 훈련 by Bill Pudge
9 월 27-10월 1일 Orality Method Training by Ron Green
이상의 프로그램으로 현장에서 25년에서 40년간 씨름하면서 배우게 된 살아 있는
간증들과 case study는 저희들의 사역의 방향을 돌려놓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큰빛 회사의 훈련된 회사원들의 섬김과 사랑은 큰 감동 그 자체였으며 저희들
의 앞으로의 사역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이루지 못했던 만인 제사장의 꿈이 2000년이 넘게 어두움에 갇혀 있
던 백성들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들은 흥분합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가르쳐 주신 최고, 최후의 전략이 기록된 한권의 책이 이미 우리 손
에 들려진지가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책을 두고 우리의 방법을 사
용했음을 회개합니다. 어린아이같이 충분하고도 넘치는 기록된 한권의 책(성ㄱ)만 들
고 가서 그들에게 그 책에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곧 그분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저와 아내는 새로운 부름과 길을 보여 주시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까지 가르
쳐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비자가 되는대로 곧 우국으로 갈려고 하고 있습니다.
T 만민 회사는 우국 대통령의 9월 특사에 의해서 재판도 없이 모든 문제가 지나가
도록 모든 법적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되 그곳 대통령
까지 동원해서 해결해 주시는 우리들의 멋진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아래 몇 가지를 위해 함께 두손 모아 주십시오
SEED 유치원의 법적 문제는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 편지를 쓴 일로
결국 재판을 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 콤퓨터에 ㅊ송가 가사가 나온 것
2. 학부모가 그런 노래를 가르친다는 3통의 편지
3. W 부디렉터가 어린이를 데리고 T회사로 갔다는 편지
4. 유치원 교실에서 이상한 책이 발견된 것

이상 1번 외에는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닌데 문제를 더 크게 만들어서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곧 재판 날짜가 잡히면 W 부디렉터가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
으므로 3년 징역형이 내려지던지 아니면 벌금형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W가 처음에는 밤잠도 못자며 힘들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마음
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전화할 때마다 제게는 늘 염려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재판 날짜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 줄 분은 우리들의 좋
으신 아버지 한 분, 그분 밖에 없습니다.

1. 이 유치원 문제 해결과 함께 비자가 나오도록 두 손 모아 주십시오
2. 우국의 4개의 어물 시장을 위해
3. T 회사가 CPM의 통로가 되도록
4. U 농장 회사 건물 신축
5. 저희들의 건강 충만과 자녀들 결혼
아버지여 우리들을 한번 더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 김요한 이순희
 

American Site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면
두 나라 접경 지역을 맞닥뜨리게 된다.
같은 나이아가라 폭포이건만
American Site에는 사람들이 한산하다.
그러나 Canada Site에는 인산인해이다.
왜 그런 것일까?
양 Site에 모두 폭포가 있는데
정작 멋진 폭포는 America쪽에 있는데...
이는 Canada Site에 가야 American Site에 있는
웅장한 폭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American Site는 늘 한산한데 비해
Canada site는 언제나 인산인해이다.
스물 네 시간 불야성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론 그런 American Site가 안됐다 싶기도 하다.

나 역시 Canada Site에서
America쪽의 웅장한 폭포를 감상하고 있다.
정말이지 그 낙하하는 물줄기가 대단타
흩어지는 물거품은 폭포의 포효와도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스레 묵은 스트레스가 가시는 듯하다.

문득 그리스도인의 삶이
American Site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드러내는 위용은 대단하지만
자신이 가진 진가는 훌륭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영광을 취하지 않는,
오직 남들에게 감동을 주고
오직 남들이 그 진가를 인정해주는.
그러고 보니 오늘 따라 American Site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HJ)
 

‘흠집 없는 벽’


나는 예배당 아래층에 있는 남자 화장실에 들어설 때마다 매번 신기한 생각으로
벽을 바라보곤 한다. 이는 흠집 하나 없는 벽이 너무나 놀랍기 때문이다. ‘흠집 없
는 벽’이 무슨 놀라운 일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는 지난 5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당시 주일 모임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갈 즈음에 남자 화장실에 물이 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얼른 달려가 보았더니 이게 웬 난리인가? 남자 화장실에 홍수가
난 것이 아닌가? 바닥이 온통 물에 잠겨 있었다. 게다가 물이 Hallway까지 새어나
오는 것이 아닌가! 일단 수도를 잠가 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긴
했는데 도대체 어디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 다급히 Plumber(배관공)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그러자 곧바로 Plumber
두 사람이 교회를 찾아왔는데 그들은 수도를 다시 틀고는 물이 새는 여부를 곧 확
인하였다. 그러더니 자기들도 어디서 물이 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사방 벽을 다 뜯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덜컹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보통 대공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급한 대로 그들은 어디서 물이
새는지 나름대로 진단을 하더니 화장실 내 한쪽 벽을 망치로 사정없이 부수는 것이
었다.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속으로 기겁을 하였다. “아니 저렇게 벽을
망가뜨리면 나중에 공사가 커질 텐데..” 내심 걱정이 앞섰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
였다. 그들이 벽을 부수자 그 안에 있는 파이프라인이 드러났는데 정확하게 그 지
점의 파이프가 터져있는 것이었다. 그들 말로는 파이프가 동파(凍波) 되었다는 것이
었다. 즉 겨우내 얼었던 파이프가 봄이 되면서 팽창되어 터졌다는 것이었다. 그들
은 뚝딱뚝딱 파이프를 교체하더니만 30분도 안되어 작업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렇
게 해서 화장실에 물이 새는 문제는 깨끗이 해결이 되었다. 정말이지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할 대단한 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어디가 어떻게 잘못
되어 물이 새는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그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데 30분도 채 걸리
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화장실의 물새는 문제는 무사히 해결을 했는데 이제는 흉하게 훼손된 벽
이 문제였다. 수도관 공사를 마친 기술자들에게 벽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만
자기들은 알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황당한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자기
들은 배관 공사를 하는 사람들일 뿐이고 수도관 수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벽을 부
순 것뿐이니 벽을 수리하는 일은 우리가 알아서 ‘목수’에게 연락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흉하게 뜯겨진 벽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큰 공사가 되겠거니 걱정부터 앞섰다.
내 생각엔 벽을 모두 뜯은 다음 새로 벽을 세워야 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다음날 목수에게 연락을 했더니 바로 목수가 달려왔다. 그는 부서진 벽을 보더니
큰 문제가 아니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에
화장실 벽을 보았더니 말끔하게 깨끗이 고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언제 벽을 부순 적
이 있기나 했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놀랄만한 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목수’란 대단한 기술자구나 나는 혼자서 연신 감탄을 쏟아내었다.
그때 이후 나는 남자 화장실에 갈 적마다 그 고친 벽을 보고는 매번 혀를 내두르곤
한다. 그리고 우리 삶엔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곤 한다.
지난주일 회보에 김성민 장로님께서 ‘도구’란 제목의 칼럼을 적어주셨다.

최근 집을 여기저기 수리하면서 도구(장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너무나 엄청
난 것을 경험하셨다는 내용의 글이었다.(9월 21일 회보 칼럼 참조) 특히
Drive-Way를 수리한 내용에 대해 적어주셨는데 사실 난 그 글을 읽으면서 김 장로
님에 대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전문가도 아니면서, 해본적도 없는
집 앞 Drive-Way를 혼자서 수리할 생각을 다할 수가 있을까? 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다 무조건 사람을 부르고 말았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장로님은 적합한 장비를 가지고 혼자 힘
으로 집 앞 드라이브웨이 공사를 다 끝마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삼 모든 일에
있어 ‘장비’의 있고 없고의 차이가 무척이나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이는
백번 옳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장비’의 있고 없고는 일의 진척여부에 큰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어떤 땐 일의 성사 여부까지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도구(장비)란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비가 있다고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장비도 사용할 줄
알 때 ‘장비’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장비라 할지라도 무용지
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성민 장로님이 홈디퍼(Home Depot)에서 빌
려서 사용했다는 그 장비를 내가 빌렸다면 나 역시 장로님처럼 집 앞 드라이브웨이
를 수리할 수 있었을까? 어림없는 얘기이다. 이처럼 장비도 쓸 줄 아는 사람의 손
에 들려야 제대로 장비구실을 하는 것이다. 또한 장비를 쓸 줄 안다고 해도 모든
일이 다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장비를 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가’란 꼭 필요한 것이다. 이는 일반 사
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전문가’는 훌륭히 해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파이프
공사’나 ‘벽 공사’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이는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얘기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장
비’란 꼭 필요하다. 장비가 있으면 그만큼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얻을 수가 있다.
모든 장비 가운데 가장 유익한 장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꼭 구비해야 할 장비가
있다면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믿음의 유익과 성장에 있어
서 또한 그리스도인이 천로역정을 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장비’보다 더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얻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말했듯이 아무리 장비가 뛰어나도 전문가가 하는 것만 하
겠는가? 이는 영적인 일에 있어 더욱 적용되는 얘기이다. 생각해보라! 세상일조차
‘장비’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수월치 않은데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오죽하겠는
가? 따라서 삶의 문제, 믿음의 문제에 있어선 더더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면 삶의 문제,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찾아야 할 ‘전문가’는 누구인
가? 바로 모든 것의 해결사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못하실 것이란 없는 분
이시다. 그분이 한번 개입하시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깨끗이 해결되고야 만다. 이
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얘기이리라. 그러면 어떻게 ‘전문가’ 되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가? ‘기도’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회보에 김성민 장로님께서 ‘기도’를 믿음생
활의 소중한 장비로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러하다. ‘기도’야말로 모든 장비 가운데
‘최고의 장비’이자 또한 모든 장비를 초월한 최고의 길에 해당하는 것이다. 왜냐하
면 그것은 우리 삶 가운데 모든 것의 전문가 되시는 ‘하나님’을 불러들이는 ‘하늘
직통전화’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도’란 얼마나 굉장한 것인가?

사노라면 우리 삶 가운데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 어떤 땐, 수도가 터져
물 난리가 나듯 우리 삶 가운데 이런 저런 난리가 터질 수도 있다. 혹은 흉하게 부
서진 벽처럼 우리의 삶이 흉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것이 있
다면 스스로 서투른 재주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곧바로 ‘하늘 직통전화(기도)’를 통
해 모든 것의 전문가 되신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요청을 받자마자
곧바로 우리 삶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가 처한 ‘난리’를 수습하시고 우리의 흉한
삶의 상황을 깨끗이 수리하실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최고의
솜씨로 말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최고의 전문가’이시기 때문이다. 그 같은 전문가와
함께 하는 삶은 얼마나 감사하고 신나는 삶인가? 아무나 이 같은 삶을 경험하는 것
이 아니다. 오직 ‘전문가’를 찾는 사람들 그들만이 이 같은 삶을 경험할 수 있다.

✎ 김현진

돈(1)

신앙과 사색 : 2008/10/02 23:15
 

돈(1)


돈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중립적인 매매(賣買)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 전반에 걸쳐 돈을 벌고 빌리고 쓰는 일화들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돈이 부(富)와 권력 그리고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변화되었고, 따라서 엄
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돈
을 탐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우리가 돈을 쫓게 되면 돈은 더 이상 중립적인 것
이 아닌 죄악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돈이 하나님의 적이 될 만한 것이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 참조).

성경은 돈은 다른 천연 자원이나 물품
또는 시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 방해물
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돈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은 무엇일까요?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장 21절)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섬겼던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만 (아브라함, 다윗,
아리마데 요셉, 리디아) 그들이 소유한 부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성경의 초점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질 수 있는지 혹은 가져서는 안 되는 지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지에 있습니다. 예수님께
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돈이 가는 곳에 당신의 마음도 따라간다고 하셨습
니다. 따라서 열심히 일하여 떳떳이 성공하되 그만큼 당신이 번 돈을 가지고 하나
님을 기쁘게 할 만한 일을 찾는데도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장 1절)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
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5장 10절)

돈은 위험한 욕구, 즉 당신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마음을 양
산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것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악순환과도 같
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당신 삶의 최우선이시며 돈만으로는 당신의 마음 속 가장
깊은 욕구들이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늘 상기시키십시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시편 119
장 36절)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3장 5절)

악의 근원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탐욕입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
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
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
라.” (신명기 8장 17‐18절)

부와 번영이 당신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될 뿐더러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상
징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금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도 다른 여러 측면
에서 부유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재물을 허락하셨을 때 당신은 감사
와 겸손의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또한 그 재물을 다른 사람들과 아낌없이 나눠
야 합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
리라.” (잠언 11장 28절)

종종 우리는 공허함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 물건을 삽니다. 하지만 당신은 성경을
통해 당신에게 항상 만족감을 주는 깊고 지속적인 행복을 얻는 방법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진 돈을 가장 잘 관리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
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요한일서 3장 17절)

돈에 대한 탐욕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는 바로 꾸준히 관대하게
베푸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빈곤을 채워줄 수 있었을 때, 당신은 자기자신을
위해 돈을 썼던 그 어떤 때 보다 훨씬 더 깊은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
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장언 3장 9‐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
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장10절)

돈을 당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당신의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
께서 원하시는 대로 쓸 하나님의 것이라고 여기십시오. 이러한 마음가짐을 유지하
는 방법은 하나님께 당신이 받은 돈의 일부를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잠언 21장 20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
희에게 안겨 주리라.” (누가복음 6장 38절)

돈을 적절히 쓰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벌고, 나눠주고, 쓰고, 또한 저축해야 합니
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가족이나 당신의 미래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에 당신이 가진
돈을 아낌없이 쓸 것 또한 원하십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
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디모데전서 6장 17‐18절)

당신이 가진 돈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위탁하신 것이므로 그 돈을 어떻게 쓸 것
인가에 대한 책임은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에 돈을 써야 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그들에게 하나
님의 뜻대로 돈을 벌고, 남들에게 베풀고, 정기적으로 돈을 저축하며, 책임감 있게
돈을 쓰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현세에서 어떻게 돈을 쓰는 지와 그에 비례한 천국
에서의 보상 사이의 연관 관계를 아는 것으로 충분히 동기가 부여될 것입니다.

✎"Life’s Questions", Ronald A. Beers & V. Gilbert Beers, 번역:복은임

 

제 3의 삶을 향하여


사랑하는 동역자님!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는 이 순간까지도 부족한 저와 저희
농아사역에 동역하여 주심을 인하여.
그동안 자주 소식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터키의 사역은 케냐의 사역과 달리 크게
보고할 것도 달라지는 것도 없기에 저는 이곳에서 하나님과 진한 관계를 나누며 또한
이곳 터키의 농아들과 교제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알라의 위치
까지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곳 모슬렘들에게 예수님은 선지자일 뿐이지 절대 알라
신이 될 수 없습니다만.) 그리고 저를 위해서는 예수님께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작년 3월에 한국에서 오신 두분 농아 목사님과 농아 전국청년회장이
터키에 답사겸 방문하셨는데 그분들이 4명의 터키 농아인에게 강도를 당한 일이 생
겼습니다. 또한 제가 처음 이곳에 와서부터 제일 저를 많이 도와주던 농아 청년이
다른 집에 강도 강간을 하여 30년 형을 받는 등 이곳의 모든 농인 청년들이 칼을
차고 다니며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외국인으로서 여
자 혼자 산다는 것이 알려져 그들의 표적이 되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터키 농아협회 회장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한국의 농아들이 터키에서 온 분
이라고 너무 반갑기도 하고 또 제게 잘해주라고 부탁하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제
신분(선교사)을 완전히 노출시키는 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더이상
농아들을 만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선교사라면 죽이거나 추방을 시
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미국의 둘째딸이 초청한 미국 영주권을 신청한 지 두 달만에 받게 되
어서 저는 왜 하나님께서 제게 미국 영주권을 이렇게 급히 주시나 하는 생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 가운데 혹 하나님께서 남미를 가보라고 하시는 듯한 마음이
들어 남미를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들어온 그 다음날 둘째딸의 시
아버님(강준원 목사님)을 따라 8월 4일에 남미 아르헨티나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 제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이제부터는 제가 혼자서 직접 뛰기 보다는 누
군가를 섬겨 세우는 일을 하게 하실거라는 마음과 함께, 이제는 아무 것도 없는 곳
에 저 혼자 뛰어드는 것이 아닌 다 준비되어진 곳에 보내실 것 같은 마음을 주셨습
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정말로 주님께서 세밀하게 기도를
시키신 대로 모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농아선교를 위해 헌신하시는 전동선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 목사님은 8년 전 아르헨티나의 충현교회에 부목사로 부임을 받아 오게 되었는데3년 전 담임목사님이 미국으로 떠나시면서 전목사님도 그 교회를 사임하게 되셨는
데 그 때 20일간 기도하면서 받은 소명이 농아사역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성도 15분 정도 모이시는 조그만 교회를 목회하시면서도 농아선교에 대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 현지인 수화통역사를 모시고 한인과 현지인들에게 수화를 보급
하고 계셨습니다. 평생에 농아를 만나본 적도 없고 농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미
국과 한국의 농아선교단체들에 연락을 했지만 답변이 없고 주님은 추수할 때가 되
었으니 일군을 보내달라는 기도를 지금까지 하신 중에 저를 만난 것입니다.
저는 이미 저의 선교지를 터키에서 아르헨티나로 옮길 것에 대해 하나님께 서원
했기에 새로운 언어와 수화를 배워야 되는 힘들고 어렵고 무섭지만 다시 한 번 선
교지를 옮기는 어려움과 아픔을 겪어야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미국 영
주권을 급히 주시고 미국에 오게 하실 때 전 한국의 삶이 제 1의 삶이라면 케냐,
터키가 제 2의 삶이고 지금부터는 제3의 멋있는 삶이 준비되어져 있을 거라는 기
대가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제 3의 멋있는 삶을 위해서는 또 한번의 희생과 헌신과
결단이 필요하다 하셨습니다.)

정말 터키는 복음의 황무지이지만 아름답고 인정이 있고 과일과 채소가 풍성하
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이곳
을 떠나 새로이 정착을 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 언어와 수화를 새로 배워
야 하고 숟가락부터 모든 살림살이들, 차, 집들을 다시금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섬기며 동역하게 될 목사님은 현재 월 300-500불의 사역비로 어렵게 사시기
때문에 모든 사역비를 제가 다 충당,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서원하게 하셨기에 떠날 준비를 합니다. 케
냐를 떠날 때 모든 것이 끝난 듯했지만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가 이루어졌듯
이, 이번에 터키를 떠나면서도 이곳은 살면서 전도하기는 어렵지만(추방이나 죽일
수도 있지만) 여행하며 한번씩 가서 전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느낀 바대로
하나님께서 터키와도 지속적인 사역을 이루어나가시리라 믿습니다.
세계 어디나 농아선교는 불모지이기에 농아선교를 하는 분이 많지 않기에 (작년
한국의 남서울 은혜교회에서 아시아 농아선교대회를 했는데 총 8명의 선교사가 모
였습니다. 세계농아선교대회를 한다 해도 한 두 분 정도 더 추가되리라 예상할 정
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한 곳에서 계속 머물 수 없었듯이 하나님께서 저도 이곳 저곳으로
옮기게 하신다고 감히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위로를 받습니다.새로운 선교지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제게 힘찬 격려와 동역을 부탁드리며 기도
제목을 나눕니다.

1. 터키에 대한 제 마음과 정리되어져야 할 물건들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은혜
롭게 정리되도록.
2. 새로운 사역지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를.(우습지만 지난번
비행으로 아직도 비행기 공포증이 심합니다. 특별히 이 부분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3. 교회 건물 구입(전목사님이 알아보신 것에 의해 98,000불 정도)
4. 제가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살림살이와 자동차 등이 은혜롭게 마련되어지도록.
5. 전동선 목사님과 그 외의 스탭들과의 동역하는 기쁨과 감사가 늘 이어지도록.
지금까지 믿어주시고 밀어주셨는데 다시 한 번 강하게 동역하여 주셔서 풍성한
추수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아르헨티나 사역이 되어질 것을 믿으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8년 9월 12일 ✎ 임금희 올림
 

새가족반을 마치고…


저는 올 8월에 미국에 입국해서 현재 UB MA ECONOMICS COURSE에서 공부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신앙생활은 부모님이 오래 전부터 교회를 다니셨기에
저도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버팔로 한인장로교회에는 6주 전에 처음 왔습니다. 현재는 4번의 새가족반 모임
과 그 모임에서의 성경공부를 통하여 새가족반을 마치고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오
랜 기간도 아니고 많은 모임도 아니었지만 4번의 새가족반 모임을 통하여 배웠던
것과 느꼈던 부분을 나누고자 합니다.

한달 동안 4번의 새가족반 모임을 가졌습니다. 4번의 모임 동안 공부했던 내용
은 기독교인 됨의 의미, 참된 자기발견, 만선보다 더 큰 축복,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려면…이라는 내용을 공부했습니다. 4개의 주제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본다면
기독교인 됨의 의미를 알면 참된 자기를 발견할 수 있고 참된 자기 발견을 통해서
만선보다 더 큰 축복을 받는 길을 택할 수 있고 그 길을 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
다운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다…라는 흐름의 내용일 것입니다.

사실 각각의 주제에 대한 내용은 중등부 때부터 빠르면 초등부 때부터 배우고
들었던 주제입니다. 너무 익숙해서 귀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내용이기도 합니
다. 이러한 생각이 새가족반 첫 시간부터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마음
은 완전 돌밭이었을 것입니다.

돌밭이 쉽게 옥토가 될 수 없듯이 두번째 시간에도 역시 돌밭과도 같은 마음이
었습니다. 주제의 내용과 관련은 있지만 전체의 내용적 흐름에서 거의 필요 없는
질문들이 오히려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모임 시간 내내 질문 할까 말까를 고민하
다가 모임이 끝났습니다. 아마도 두번째 시간의 제 마음은 돌밭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시 덩굴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세번째 시간이 되었습니다. 만선보다 더 큰 축복의 내용이었습니다. 만선이 뭘까
하여 교재를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
은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통해 만선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떠올
랐던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모나미 153 볼펜 이야기 입니다. 모나미 153 볼펜
에서의 153은 새가족반 세번째 시간에 배운 내용에 발상을 얻어 153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얘기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지시한 곳에 그물을 던지고 153마리의 많
은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면 그
만큼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름의 볼펜인 것입니다.
이제는 어디서 주워 들은 얘기마저 새가족반 공부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네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시간은 주중 저녁에 허찬영 장로님 댁에
서 모였습니다.

배고픈 시간에 모인지라 성경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저
녁으로 준비한 맛있는 음식 냄새가 더욱 방해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네번째 모임의
시간마저 돌밭과 가시덩굴의 마음이었습니다. 오히려 배고픈 육체적 본능의 고통까
지도 더하여졌습니다. 정말 매번의 모임이 점입가경의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네번째 시간 교재에는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내
용은 사영리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전도하러 다닌다고 많이 배웠던 내용이
고 또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읽어 줬던 내용이기도 합니
다. 많이 배우고 읽었으니 이것도 꽤나 익숙한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막 네번째 시
간도 어떤 은혜 없이 그냥 지나가는듯 했습니다. 세종류의 사람 중에서 마지막 종
류의 사람인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묘사된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림 옆에는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나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패배하는 사람
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제 모습이 떠올려 졌습니다.

4번의 모임 모두 옥토가 아닌
돌밭의 마음이었던 이유와 가시덩굴 같은 잡다한 생각이 들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
게 되었습니다. 첫시간 때부터 마지막 네번째 시간까지 각 모임의 교재를 보면서
제가 가졌던 첫 생각은 다 아는 내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지식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알고 있는 부분이 나오니 교만한 마음이 생겼던 것
이었고, 세 종류의 사람 중에서 다른 하나의 종류인 성령의 인도와 능력을 받는 성
령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유학생활을 준비하며 기도했던 기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을 향해 한국을 출국하기전 유학생활을 준비하면서 기도
했던 제목 중에 하나가 낯선 곳으로 어려운 환경의 상황에서 공부를 하고 신앙생활
을 하게 되는데 주님만 붙잡고 의지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하는 기도였습니
다. 교회, 학교를 포함한 생활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적응하고 안정이 되어져 가니
주님 꼭 붙잡고 의지하는 마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약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4주간의 새가족반 공부에 많은 것을 알고 깨닫고 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꼭
잊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품어야 하는 진리를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하
나님만을 붙잡고 하나님 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돌판에
글을 새기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돌판에 새겨진 글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4주간
동안 돌밭과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제 마음이 돌처럼 딱딱한 것이 감사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돌판에 새긴 글씨처럼 제 마음에 하나님만을 붙잡고 의
지해야 한다는 진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를 소망하는 바입니다.

✎김종원

 

금융대란


요즘은 자고 일어나기가 겁난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터질까 두려워서다
정말이지 연일 난리에 난리
연일 놀람과 충격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지진으로 중국에서 수만 명이 죽었단다
지진 소식을 잊을 만하니
이번엔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
고국에서는 연일 촛불집회 소식이 들려오고
미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 때문이란다
이곳에서는 잘도 먹는 고기이건만-
그 소식이 그칠만하니 태풍 Ike가 들이닥쳤다
남부 텍사스를 초토화시키면서.
아직 집들이 한창 물에 잠겨있는 중인데
이번엔 미 굴지의 기업들이 무너졌다
알카에다의 테러도 없었건만 저 혼자서 조용히.
그 결과 월가(Wall街)는 초상집 사태이고
부자 나라 미국은 금융위기에 빠졌다.
그 여파로 세계 경제는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듣는 바론 세계의 수많은 부자들이
하루아침에 천문학적인 손해들을 보았다 한다
그렇게 의지하고 살아왔던 돈이건만
때로는 하나님보다 더 믿어왔건만.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스쳐 지나간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찾으리니
네 가진 것이 다 뉘 것이 되겠느냐?” 1)

월가의 난리를 바라보며 다시금 갖는 생각
역시 재물에 부요하기보다 영혼에 부요할 일이다.
불안정한 세상에 소망을 두기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 일이다. (HJ)

1) 누가복음 12:20
 

도 구


요즘 집수리를 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4년간 현재의 집에 살면서 이곳저
곳 여러가지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언젠가 시간이 나면 해야지 하면서 미루어
두었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 몰아서 한꺼번에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제일 큰 문제거리이다. 한나절이면 되려니 생각하면 하루
꼬박, 하루면 되겠지 하면 이틀 사흘이 걸리는 것이 예사이다. 예상한 시간보다 보
통 두세배는 더 걸리는 것 같다. 미리미리 해둘걸 하는 후회가 막심이다.

지금까지 한 수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콘크리트 드라이브웨이 끝자락을
고친 일이다. 도로와 턱이 있는 탓에 차가 오르내리면서 충격을 많이 주어서인지
이사온 후 얼마 안되어 깨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여러 조각으로 깨져, 지날 때마
다 덜렁덜렁 거렸다. 작은 크기의 수리라 용역을 맡길 수도 없었다. 믹서기 차량
등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크기가 되어야만
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해보기로 했다.

재어보니 12‐3 피트 거리에 8인치 정도 폭으로 얼마 안되는 크기이라 하루 정도면 해
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덜렁거리는 조각은 쉽게 떼어내었는데, 약간이
라도 땅에 묻혀있는 조각은 주위를 호미로 파고, 물로 적셔보고해도 꿈쩍을 하지 않았다.
아들 녀석이 이제는 제법 커서 힘깨나 쓰기 때문에 불러내어 둘이서 힘을 다해 보았는데
도 한계가 있었다. 곡괭이가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
니 윤신원 장로님께 그런 도구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연락드렸더니 와서 필
요한 것들을 가져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달려가 곡괭이와 그외에 장도리 등 쓸모있
을 것 같은 여러 도구들을 빌어왔다. 역시, 그것들을 사용하니 그렇게 단단하게 박혀있
던 콘크리트들이 쑥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아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며 자축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위에 부러진 콘크리트들을 치우고 보니 아래쪽에
또 다른 큰크리트 바닥이 버티고 있었다. 아마 이전 주인이 깨진 콘크리트를 다 파
내지 않고 대충 그 위에 땜빵을 해놓았던 것 같았다. 그러니 그렇게 쉽게 깨어졌
지. 드라이브 웨이 콘크리트는 최소 6인치 깊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상적으로
는 그 아래로 6인치 정도를 더 파서 자갈 등으로 깔아주어야 한다. 이 버팔로 지역
은 겨울에 땅속의 수분이 얼면서 팽창하기 때문에 그냥 땅 위에 콘크리트를 깔면
팽창하는 지반에 밀려 쉽게 깨지게 된다. 파낸 부분을 재어보니 한 4인치 정도 깊
이가 된다. 그러니 그 콘크리트를 깨고 8인치나 더 파야했다.

바닥에 깔린 콘크리트는 망치, 곡괭이 등 손으로 하는 도구로는 끄떡이 없었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보니 시간은 하루 이틀 자꾸 지나가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
어 홈디포의 장비를 빌리는 곳으로 가서 데몰리션 해머라는 기계를 빌렸다. 건물
등을 부술 때 두두두두 하면서 콘크리트를 깨는 장비이다. 영화 등에서나 보았지
실제 그런 종류를 직접 써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작은 것, 큰 것 두
종류 중에 경비를 아끼느라 작은 것을 가져왔더니 이건 콘크리트 표면에 흠집만 내
고 간에 기별도 안가는 것 같았다. 결국 불필요하게 대여료를 축내고 큰 해머를 빌
리고 나서야 작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상적인 깊이로 다 파지는 못하고
한 10인치를 파고는 자갈을 깔고 큰크리트를 덮었다. 그러기를 한 나흘이 걸렸나?
그래도 일을 마치고 나니 뿌듯한 느낌이었다. 덩달아 메일박스의 기초부분도 새로
콘크리트를 했는데, 일을 완성한 기념으로, 차마 드라이브웨이 수리한 부분에는 못
하고, 메일박스의 기초에 필자와 아들의 이름을 새기고 준공(?) 연도를 적고는 작
업을 마무리 했다.

집수리를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도구가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
무리 힘이 세어도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는 반면, 아무리 힘이 약한 사람이라
도 적절한 도구가 있으면 못할 일이 별로 없다. 설사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라
도 도구를 사용하면 더 빨리 더 쉽게 일을 해낼 수 있다. 사실 인류문명의 발전은
도구의 발달과 획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돌로 만든 낫으로부터
현대의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등에 이르기까지, 도구는 인간생활의 규모와 질을
크게 향상시켜왔다. 이를 빗대어서 신앙생활에도 도구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
았다. 스스로 애써서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일이 참 많은데, 신앙의 도구를 잘 사
용하면 더 쉽게 더 빠르게 더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럴만한 신
앙의 도구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기도일 것이다.

필자는 기도를 통해 일이 해결되는 경험을 남과 다르게 많이 해보았다고 여기지
는 않는다. 그래도 기억남는 것이 있다면, 이곳 버팔로로 오기 전, 미국에 더 체류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할 때의 일이었다. 연수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시점
이었다. 아이들은 미국에 남아 교육받고 싶어하고, 사실 필자 자신도 더 훈련받은
후에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기회만 있다면 체류를 연장하
고 싶었다. 몇 군데 지원을 해보았지만 반응이 아예 없거나, 자리가 없다는 반응이
었다. 한군데 인터뷰를 했지만 최종 응답은 자신들이 제시할 수 있는 보수에 비해
자격이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막막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3일 금식기도를 하기로 했
다. 짧은 금식기간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 실제 한 번 해보시라. 삼일이라도 그리쉽지 않다. 끝날 때쯤이면 최종식사 후 72시간이냐, 다음 끼니부터의 72시간이냐로
스스로 따지게 된다. 조금이라도 금식시간을 줄여볼까 하는 심산인 것이다. 아무튼
그 금식기도가 끝난 후 혹시나 해서 반응이 없었던 곳들에 연락을 해보았다. 그런데
버팔로에서 연락이 왔다. 이전의 메일을 못보았다고. 한 번 만나보자고.

기도를 일을 쉽게 해결하는 어떤 도구로 비유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기도는 그저 수단으로 여기기에는 그 차원이 다른 신앙행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통로요, 교제의 장이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면, 기도를 통
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고 그 분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리라. 또한 하나님의
사역의 과정은 우리가 주도하고 하나님께서 힘을 보태어주는 식이 아닐 것이다. 하나
님께서는 그 분의 정하신 뜻을 당신께서 주도하셔서 일을 해가신다. 사실 우리가 신
앙의 삶을 통해 그 분의 행하시는 사역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볼때, 하나님께 구하고 그 분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
또한, 여전히 기도의 주요 기능 중 하나라 여겨진다. 사실 우리는 기도 때마다 하
나님께 무언가를 구한다. 예수님께서도 구하라고 하셨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다.
그럴 때 주실 것이고 문이 열리리라고 약속하셨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
도할 때까지 그 분께서 우리를 통해 하실 일을 조금 미루어두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마도 우리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닐까?

필자는 지금 혹 제대로 된 도구없이 콘크리트를 깨겠다고 무식하게 덤비는 것처
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 반성해본다. 기도없이 내 힘으로 한 번 해보
겠다고, 결과가 뻔한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힘에 버거운 큰 문제들이
당장 눈 앞에 널려있는데, 깊이 기도하지는 않고 어쩔줄 몰라 하며 공연히 힘낭비
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들 문제들을 주신 것은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일텐데.
내려놓고 이야기 하고 듣고 교제하자고 하시는 것일텐데... 아무쪼록 지금 맞닥뜨린
많은 문제들을, 또 앞으로 만나게 될 크고 작은 일들을, 호미로 어떻게 해보겠다고
계속 끌적거리고 있지 말고, 곡괭이, 데몰리션 해머보다 더 강력한 도구인 기도로
해결해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 김성민

 

여름 이야기 (마지막)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1
(4) 다시 물(water)이야기 ...... Adirondack Park를 벗어났다!
언제까지나 머무르고 싶었던 Saranac Lake 주변을 벗어나 우리는 이제 3번 도로
를 타고 달릴 준비를 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산책할 때는 뿌옇게 물안개로
가득하던 호수가 어느새 맑은 얼굴이다. 오늘은 서쪽으로만 달려야 한다. 지도를 보
니 달리는 길에 또 많은 호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수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마을들이 어우러져 있을 것이다.

숲을 뚫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Tupper Lake라는 안내와 함께 강 주변으로 사람들
이 모여 있었다. 일단 차를 세우고 우리도 함께 그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시골 장
터’ 맞다....! 그것은 시골 장터였다. 각각 텐트를 치고 중고 물건부터 시작해 새 물건
까지, 과일에 야채, 햄, 여러 음식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윤하, 재하에게도 용돈을
주고 각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사오게 했다. 또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깊은
산골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했는데 어디서든,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은
잘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되었다.

나와 남편은 자전거로 호수주변을 돌며 이 한가롭기 그지없는 시골 마을을 한 장,
한 장 필름 속에 저장해 갔다.
서쪽 끄트머리, 숙소가 있는 Water Town를 향하면서 드디어 우리는 Adirondack
Park를 벗어났다. ‘...... 언제 그곳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묻는 말에 남편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Water Town에서 우리는 다시 북쪽으로 81번 고속도로를 타고 Alexandria Bay로
달려갔다. 책이나 지도에서만 보았던, 수업시간에 설명으로만 들었던 오대호 중 하나
인 Ontario 호의 입구가 눈앞에 펼쳐 져 있었다. 이곳은 또 다른 ‘신세계’였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지으신 피조물들을 통해 빛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곳은 미국과 캐나다를 사이로 Thousand Islands가 여기저기
에 그림처럼 떠 있었다. 우리는 Two nation Tour라는 미국과 캐나다 사이를 돌아보
는 2시간 15분의 Boat Tour를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서부터 호수인지 알 수가 없었다.버펄로에 와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것은 ‘하늘이 무~척 넓다’는 것이었다. 산도
없고, 높은 건물도 없는 버펄로에서 하늘은 늘 지평선 끝까지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온갖 묘한 그림들을 그려 놓곤 하던 구름과 지는 저녁 노을빛은 나와 남편보다 아이
들이 먼저 환호성을 지르게 하였다. 산책할 때면 난 늘 카메라를 들고 다녔지만 그런
노을 빛 앞에서는 감히 카메라 렌즈를 들이 대고 싶지 않았다. 결코 그 빛깔을 그대
로 옮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는 그 넓디넓은 푸른 하늘도 부족해 저 너머 지평선 끝에
서 또다시 연결되고 있는 또 다른 푸르름.

호수가 하늘같고, 하늘은 호수 같다!
누군가에 의해 매순간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몇 번이고 덧칠을 하여 다시 수정을
하면 더 멋진 그림이 그려지는 유화(oil painting)처럼 끊임없이 덧칠과 수정이 반복
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섬들. 어떤 섬은 그 크기가 딱 집 한 채 지을 정도의 크기인데 정말 그
크기에 맞추어 딱 집 한 채만 지어 놓고 있는 곳도 있었다. 집 주변으로 돌아다닐 틈
도 없었다. ‘아니, 비가 많이 오거나 파도가 치면 저 곳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저
렇게 할 생각을 했지? ’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이곳은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St. Lawrence Seaway 가 이루어져 있고, 거대한
Ontario Lake의 입구인 이곳은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날 걱정도, 파도도, 지진대가
지나는 곳도 아니어서.... 어느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곳이라고 한다. 그 자유로움
속에 마음껏 수상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물 속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나 물
위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가지로 같은 피조물들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이 지으신 이 거대한 자연을 마음껏 누리고 감사할 수만 있다면 이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또한 얼마나 큰 은
혜인가.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그 분이 지어 놓으신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허락하
신 그 은혜 가운데서 풍성히 거하며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실 거라 생각되었다.
서로 다른 나라의 깃발을 꽂고도 자유롭게 어울리며,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이곳
에서 하나님도 함께 기뻐하시리라 생각이 들었다.

“힘차게 부는 바람아, 떠가는 묘한 구름아
저 돋는 장한 아침 해, 저 지는 고운 저녁 놀
하나님을 찬양하여라저 흘러가는 맑은 물 다 주를 노래하여라
땅 위의 꽃과 열매들 주 영광 나타내어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 (찬송가33장)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시편 148:5)

✎이현주
 

인도네시아에서


버팔로 한인장로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신지요.
지난 얼마 동안 미국은 베이징 올림픽의 열기가 가득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
지만 이곳 인도네시아에서는 올림픽 경기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올림
픽에서 베드민턴 외에는 메달을 딸 확률이 거의 없다보니 많은 돈을 주고 중계방송
권을 사지 않아서 인터넷을 통해 결과만 알뿐입니다. 올림픽에 나간 국가대표의 게임
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저희 가정이 하나님의 선택된 선교사로서 올림픽보다 더
멋진 영적인 싸움을 하는 현장을 글로나마 알릴 수 있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1. 가정 이야기
아내인 김미경 선교사는 5월에 갑상선 암의 검사차 잠시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검사해야 하는데 이미 2년이 지났기에 암 검사 차 들어간것입니다. 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항상 저희 가정과 아내를 위해 기도해주신 기도의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요셉, 성빈, 성우는 긴 여름 방학 동안 많이 심심해 했습니다. 제가 사역이 많아서 바쁘다 보니 함께
휴가도 변변하게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아이들끼리 큰 불평 없이 노는 것을 보면서 미안하기도했지만 정말 기특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두 팀의 단기 선교 팀이 왔습니다. 그때마다 저보다 더 열심히 그
들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노동하고, 잠을 자면서 형들과 누나들을 졸졸 쫓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
들이 커서 아빠처럼 선교사의 길을 가면 좋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도합니다. 이렇
게 저희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2. 인도네시아 이야기
한국의 8월 15일이 광복절이라면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보다 이틀 늦은 8월 17
일이 독립기념일인데 이 날은 거의 모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축제로 여기면서 각
시마다 있는 큰 운동장에 모여 여러 경기를 하며 독립일을 기념하고, 인도네시아 사
람으로서 자긍심과 일체감을 느낀답니다. 이를 위해 한 달 전부터 마을을 청소하고,낡은 곳곳의 길가나 집에 페인트칠을 하는데 온 마을사람들이 협동심을 발휘하여
정성스레 독립기념일을 준비합니다.

또한 독립기념일을 전후로 각 마을 마다 크고 작은 여러 경기들이 펼쳐집니다. 마
을대 마을로 축구경기도 하고 시가공연도 여기저기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동네 노래
자랑도 있고...하여튼 흥미있고 재미있는 독립기념일 축제입니다. 특히 lomba pucang
이라는 경기는 무척 흥미 있고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경기 중의 하나입니다.

경기 방법은 대나무를 세운 후 기름칠을 하여올라가기 어렵게 만든 후 맨 위에다가 상품을 걸어 놓은 뒤에 정해진 시간 안에 그 상품(혹은 상품을 적은 종이쪽지)을 떼어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6인1조로 이루어지는 이 경기는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 합니다. 보통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는 편이라 게임 등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아이디어가 얼마나 기발하고 재미
던지 이번에 온 단기팀원들이 게임을 같이 한이후에 너무나 즐거워하며 저보고 그 게임을 정리하여 책을 내라고 하더군요.

3. 단기 선교팀 사역 이야기
7월 1일부터 9일까지 대구 남덕교회의 단기선교팀이 저의 사역지를 방문하여 많
은 교회들을 섬겼습니다. 먼저는 즐라렘 교회 공부방의 건물을 하나 세우고, 아이
들이 놀 수 있는 미끄럼틀을 만들고. 공부방에 아이들이 즐겁고 쾌적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공부방 벽면에 페인트 칠을 하였으며, 플로소 교회의 사택에 페인트 칠
을 하고 타일을 깔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포항 효자교회에서 단기팀이 컴퓨터 7대를 한국
에서 직접 가져와서 압디엘 신학교에 컴퓨터를 설치해 주었으며 슬로르조 교회에
큰 오두막을 세워 아이들이 나뉘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습니
다. 또 다른 교회인 끄랑깽 교회에도 공부방을 할 수 있도록 건물을 세우고 페인트
칠과 환경정리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귀한 교회의 팀원들이 물질을 헌금하여 현지교회에 공부방을 세우고 현
지 아이들 사역을 하며 또 함께 더불어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교회는 통성기도가 없고 세족식이나 그 밖의 한국교회에서는
있는 일반적인 여러 프로그램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두 교회의 단기팀과 더불어현지 목사님들과 압디엘 신학생(60명) 그리고 청소년들(80명)을 대상으로 특별 프
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이번에는 중점적으로 골고다의 길(천로역정과 비슷한)을 하
며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목회자들과 청소년들은 자신의 발을 씻어주는
청년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고, 신학생들은 이번 계기를 통해서 선교사로 나
가겠다고 기도했으며, 몇몇 청소년들은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나
님께 서원했답니다.한국의 교회에서 단기팀이 오게 되면 선교사는 준비할 것이 많아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더 큰 영적인 힘을 얻고 신선한 재충전의 기회도 될 수 있으며 사역에도 많은 도움을 받게됩니다.

작년에 왔던 일산영문교회의 단기팀이 저의사역지를 다녀간 후 즐라렘 교회에서 공부방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두 교회의 팀이 단기 사역을 한 이후에 슬로르조 교회와 끄랑깽 교회에서 공부방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특히 즐라렘 교회의 공부방은 다른 주변의 교회에 소문
이 나면서 즐라렘 교회의 인 유숩목사는 반둥이라는 큰 도시에까지 가서 공부방 사
역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할 계획에 있고, 이를 위해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진정 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시간들입니다. 그리고 압디엘 신학교는 학생들이 그리도 원하던 컴퓨터 방이 생겼
습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

저는 이번 단기팀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저의 사역지에 크게 기름 부어주셨음
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건물이 세워짐과 더불어 개교회들이 부흥하며, 목회자와 신
학생들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언제 버팔로 한인교회
에서도 기회가 되어지면 한번 이곳에 단기팀을 보내주십시오. 할 일이 많답니다.
그런데 솔직히 거리가 멀긴 머네요.

4. 압디엘 신학교 및 이사 알마시 교회 사역
이사 알마시 교회의 총회가 4년 만에 열렸습니다. 한국은 총회가 1년에 한 번 열리
지만 이곳은 4년에 한 번 열려서 총회장을 선출합니다. 이번 총회에서는 자카르타의
라자왈리 교회의 사무엘 목사님이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는데, 너무나 훌륭한 목사님
이 선출되었기에 이사 알마시 교단이 많이 부흥할 것입니다그리고 한국의 통합측 총회장님과 선교부 총무님이 바쁘신 관계로 참석치 못해제가 교단을 대표해서 이사 알마시 교단 목회자들에게 총회장님의 축사를 번역하여대독함으로 인해 많은 현지 교회목회자들이 저를 알게 되었고 그 결과 저의 사역의영역이 더 넓어질 것 같습니다.

저는 4년 동안 이곳에서 시골 지역의 연약한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말씀을 전하
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도우면서 사역을 했는데, 얼마 전에 이사 알마시 교
단의 큰 교회인 독토르 집토 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교회가 개척한 교회들
을 함께 순회하면서 개척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세워가자는 것이었습
니다. 이제까지 홀로 현지교회를 방문하고 사역하던 제가 현지교단의 큰 교회들과
협력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압디엘 신학교에서 이번 학기에는 구약개론과 구약신학 그리고 선교학을 가르칩
니다. 새롭게 선교학을 가르치면서 신학생들 중에서 선교사로 나갈 학생들을 선발
하여 훈련시켜 파송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 알마시 교단이
아직까지 한 명의 선교사도 파송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숨가쁜 하루하루였지만 날씨에 상관없이 쉬지 않고 역사하
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살았던 여름이었습니다.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여름 내
내 온 몸속에 충전시켜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에너지 삼아 힘찬 발걸음을 뗍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
(에베소서 6:24)

✎윤재남, 김미경 선교사
 

나그네 삶


지난주만 해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몇 차례 빗줄기가 날리더니만
이 버팔로에 불쑥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하늘도 바람도 모두 가을색입니다.
문득 달력을 보니
고국에서는 추석 명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도지는 병
갑자기 향수가 밀려듭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억이 아련합니다.
고국을 떠난 세월이 오래여서인지
명절을 잊고 산 지 오래여서인지
‘추석’이란 말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가만히 내가 사는 곳을 둘러봅니다.
하늘은 같은 하늘이로되
더 이상 고국의 하늘이 아닙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이로되
낯선 이방인들뿐입니다.
새삼 나그네임을 실감합니다.
그것도 돌아갈 본향마저 잃은
마음 황량한 나그네-

어차피 고향 잃은 나그네라면
기억조차 희미한 옛 본향보다
그만 새 본향을 바라볼까 합니다.
을씨년스런 계절마다
휘영청 둥근 달을 볼 때마다
노스탤지어 병에 빠지기보다
언젠가 가게 될 미래의 고향
그 하늘 본향을 꿈꾸며 지낼까 합니다. (HJ)
 

‘브래들리 효과’


요즘 미국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이는 대선이 불과 한
달 보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공화당 양당 모두 전당대회를 통
해 정부통령 후보자를 결정한 가운데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하였다. 민주당에서
는 ‘바락 오바마’가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대통령 후보로 공식 추대된
가운데 ‘죠셉 바이든’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첫 흑인 대통령에 도전하였고, 공화
당에서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공식 추대된
속에 ‘세라 페일린’이란 젊은 알래스카 여성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공식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이번 미 대통령 선거는 양당 모두 경선 때부터 전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진행이 되었다. 사실 경선대회에서 가장 파란을 일으킨 사람을 들라면 ‘바락 오바
마’를 들 수 있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선전하기는 하겠지만 결국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리라 생
각했다. 이는 그만큼 경륜이나 능력이나 준비에 있어 모두 ‘오바마’를 능가하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힐러리’가 너무 방심한 탓인가? 뚜껑을 열어본 결과 미국민은 민
주당 대통령 후보로 ‘오바마’를 선택하였다. 이는 그가 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그에게서 미국의 변화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미국민은 ‘변화와 개혁’에
있어 힐러리보다는 오바마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반면에 공화당에서는 보수적 색채가 뚜렷하고, ‘강한 미국의 건설’에 적임자라
생각되는 매케인 상원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무엇보다 그는 테러와의 전
쟁 등을 비롯해서 보수적인 공화당의 정책을 수행할 의지와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
기도 하거니와 사실상 그 외에 마땅히 내세울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
유라고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사실 정가에서는 일찌감치 ‘오바마’가 의외로 쉽게 대
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지 않겠는가 하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이는
‘부시’ 행정부에 실망한 미국민이 이번엔 ‘민주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소위 ‘민주당
대세론’과 ‘오바마’가 변화를 원하는 미국민의 바램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공화당에서는 전당대회를 가지며 의외의 히든 카드를 뽑아들었다.
그것은 부통령 후보로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을 내세운 것이다. 바로 현 알래스카
주지사인 ‘세라 페일린’이라는 젊은 여성을 내세운 것이었다. ‘세라 페일린’은 올해
44세의 젊은 여성으로 지난 2006년에 알래스카 주지사에 당선된 정치 초년생이기도하였다. 공화당의 이 같은 ‘히든 카드’는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세
라 페일린’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마자 곧바로 ‘페일린 신드롬’이라고 부
를 정도로 전 미국이 충격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이제껏 공화당의 큰 약점으로 평가된 것이 있다면 대통령 후보가 너무 나이가
많다는 것과 그 색채가 ‘부시’ 현정부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미국민이 공화당을 외면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해왔던 것
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세라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내세움으로 이 모든 염려들을
일순간에 다 날려버린 것이다. 그녀는 젊을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 주지사에 당선된
후 불과 2년 만에 알래스카 주 정계에 고착화된 관행을 뿌리 뽑는 개혁을 단행할
정도로 ‘개혁적인’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같은 새로운 인물을 내세움으로 현재
미국민들은 공화당에 열광을 하고 있다. 게다가 여성표까지 끌어 모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세라 페일린’으로 인해 공화당은 지금 한껏 고무된
분위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공화당 전당대회 이후 나타난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화
당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럴지라도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전히 민주당의 ‘오바마’ 진영이 앞서고 있는 것
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페일린 효과’로 인해 존 매케인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는 하지만 판세는 ‘오바마’쪽으로 여전히 기울어 있다는 것이다. 11월 4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54일 남겨둔 지난 11일 ABC 뉴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
한 미국 주요 언론들이 분석한 대선 판세에 따르면 매케인 후보가 상승세를 타고
있기는 하나 실제 격전지에서는 여전히 오바마 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모르는 일이다. 비록 여론조사 결과는 ‘오바마’ 후보가 앞서고 있
다고는 하지만 가장 큰 변수가 하나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로 ‘브래들리 효과
(Bradley Effect)’라는 것이다. ‘브래들리 효과’는 지난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
거에서 유래한 말이다. 당시 LA 시장 출신으로 민주당 후보인 흑인 톰 브래들리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의 백인 후보를 앞섰으나 막상 투표한 결과 1.2%라는 근소
한 차로 패하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조사한 결과 백인 유권자들 중에 여론조사
때 ‘브래들리’에게 투표하겠다고 한 사람들이 실제 투표 현장에서는 백인 후보를 선
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많은 백인들이 여론조사 때는 인종편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싫어 흑인 후보를 선택했다가 정작 투표할 때는 백인후보를 선택한 것
이다. 이때부터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지난 1989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흑인 후보인 더글러스 와일더가
출구조사에서 공화당의 백인후보를 10% 이상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개표에서는0.3%의 아슬아슬한 표차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때문에 ‘브래들리 효과’는 다른 말
로 ‘와일더 효과’(Wilder Effect)라고도 한다.

투표를 함에 있어 내가 누구를 찍든 그게 무슨 잘못이겠는가? ‘브래들리 효과’의
문제가 있다면 말과 실제에 있어 다른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하겠다. 특
별히 사람들이 은연중에 인종편견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 그것이 문제라고 하겠
다. 그 같은 ‘브래들리 효과’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이 미국 땅엔 백인들이 더 많으며, 그들 가운데 여전히 많은 사람
들이 은연중에 인종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오바마’ 후
보 진영에선 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브래들리 효과’는 선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브래들리 효과’는 늘 존재하지 않나 싶다. ‘브래들리 효과’란 한 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행동하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을 뜻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이는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
다. 문제는 그 정도가 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만 보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브래들리 효과’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즉
신앙생활에 있어서 말과 실제가 다른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
에서’ 자주 그러한 것을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겠노라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노라고, 하나님 뜻대로 살겠노라고 결심들을 하
곤 하는가? 그러나 가만 보라! 실제 그 결심대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이
야말로 말과 행동이 다른, 즉 겉과 속이 다른 모습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는 ‘브래
들리 효과’와는 조금 다른 것이긴 하다. ‘브래들리 효과’는 다분히 의도적인 배신(?)
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표리부동한 것은 인간의 한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우리의 부족한 인간성 혹은 죄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브래들리 효과’- 이는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중심이
서있지 못한 사람, 편견의 사람, 표리부동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
으로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는 그 같은 현상이 없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인종과
편견을 넘어서서 정말로 적임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그
리스도인들에게 그 같은 현상이 없었으면 좋겠다. 즉 모두가 다 사람 앞에서나 하나
님 앞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며 말한 대로 행동
하고 실천하는 그 같은 사람들이 다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김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