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공포


세계 경제가 엉망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아시아도 남미도 우리 한국도
주식시장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듣자니 대공황이후 최악이란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낸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는지 모르기에-

무엇보다 유학생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러 보유고가 줄어들기 때문-
달러 보유 정도에 따라
날마다 환율은 널뛰기를 한다.
그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학생들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어찌 공부가 제대로 손에 잡히랴!
근심과 한숨으로 밤잠을 설치는 것은
더 이상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개 달러의 위력이 그렇다면
믿음의 위력은 말해 무엇하랴!
믿음의 보유 정도에 따라 그 삶은
폭풍 속의 삶이 되기도 하고
잔잔한 강 같은 삶이 되기도 한다.
천 길 낭떠러지의 삶이 되기도 하고
든든한 요새 같은 삶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세상이 위태위태할 땐
경제보다 환율보다
더욱 믿음을 살필 일이다.
 
(HJ)
 

역사의 새 장을 열다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보며-



1

드디어 이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바락 오바마(Barack Obama)’라는
아프리칸 어메리칸(African American)이 마침내 제 44대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선
출되었다. 나는 밤늦은 시간에 CNN News를 통해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혼자서 감격에 잠겼다. 이는 새삼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력을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미국이 살아있음을 더 나아가 미국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출 개표 실황을 시청하면서 나는4년 전의 개표 실황을 떠올렸다.당시
나는 ‘알래스카’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 알래스카의 깊고 추운 밤에 혼자서 대
통령 선출 개표 실황 중계를 시청하며 얼마나 아쉬워하고 얼마나 분통을 터뜨렸는
지. 당시 비록 투표권은 없었지만 내가 마음으로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는 민주당의
‘케리(Kerry)’ 후보였다. 이는 내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케리가
미국을 위한 최상의 대통령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라, 또 다시 ‘부시’가 대
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내가 볼 때 부시는 잘못된 대통령이었다. 스스로 기독교 신앙인임을 자처하며 하
나님의 이름까지 팔아가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는 더욱 부아가 치밀었었
다. 잘못된 한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하고 있으며 또 전 세
계가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가. 결코 그 같은 사람이 또 다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해서 당연히 ‘케리’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
였다.그를 통해서 전쟁의 종식을 기대하면서.그러나 미국민은 또 다시 부시를 대
통령으로 선택하였다.그 밤 나는 이 미국에 대해서,그리고 미국민에 대해서 너무
나 큰 실망을 하였다.미국에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러우리만큼.

그로부터4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버팔로’에서 4년 전의 좌절과 실망을 깨끗이
치유하고 있다. 미국민에 대한 실망을 그리고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을 깨끗이
치유하고 있다. 아니 실망을 치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진일보한 미국의 민주주
의를 목격하며 한껏 고무된 가운데 있다. 이는 미국민이 이번엔 제대로 대통령을 선
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정말 국민과 국가와 세계를 위해 바른 선택,성숙된 결
정을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엔4년 전과 달리 나도 한 표 행사를 했지만.

나는 이번에 낙선한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에 대해 ‘부시’ 대통령에 대해 가졌던
것과 같은 악감정(?)은 없다. 목사의 입장에서 볼 때 오히려 ‘매케인’이 ‘오바마’보
다 더 안심되는 후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는 ‘오바마’가 꽤 진보적인 사람인
데 반해 ‘매케인’은 보수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신앙고백 또한 ‘매케인’
이 더 분명하고. 그러나 ‘매케인’이 현 부시 대통령과 거의 노선이 같다는 것은 보
통 불안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라크 전쟁을 계속 수행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나로 하여금 그에 대해 고개를 돌리게 했다.미국의 장래를 위해서도,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밝히지만 그 같은 이유로 나는 ‘매케인’이 아닌 ‘오바마’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럴
지라도 내 신분이 목사이기에 공적으로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를 언급할 수는 없었
다. 그럴 경우 개인이나 교회가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된 마당에 더 이상 말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으랴!

2

내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것은 단지위와 같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었다.무엇보다 이야말로‘미국 민주주의의 진일보’를 보여주는 코페르니쿠스적사건이 되리라고 생각되었다. 흑인이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다? 이거야말로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야말로 꿈같은얘기 아닌가? 언젠가 TV 시리즈에서 ‘24시’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 드라마에서 흑인이 대통령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어딘가 어색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드라마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하였다.드라마에서조차‘흑인 대통령’이란 전혀 이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는데 실제로‘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한 일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 우리가 사는 이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요 또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없는
평등한 나라이다. 그러나 잠재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아직 인종차별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가 잘 알듯이 백인들이 여전히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그 같은 이 나라에서 어떻게‘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아무리‘오바마’가 똑똑하고 탁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선거를 하루 앞두고 많은 언론들이 오바
마의 승리를 점치면서도 소위 ‘브래들리 효과’(겉으로는 흑인을 지지하는 백인들이
실제 투표장에서는 백인에게 투표하는 현상)를 우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오바마’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는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미국의 민주주의는 대단하였다.
실제 뚜껑을 열어본 결과 여론 조사를 통해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바마의
압승’이었다. 즉 ‘흑인’인 오바마가 거짓말처럼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
것도 어렵게 당선된 것이 아니었다. 270명의 선거인단만 확보하면 승리하는 선거에
서 오바마는 그보다 훨씬 많은 364명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유권자의
표에 있어서도 수십 년 만에 가장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당선자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엄청난 혁명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써 미국민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더
이상 백인만의 민주주의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더 이상 차별과 편견이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임을 보여주었다.대통령 당선자인‘오바마’ 역시 당선이 확정된 다음 자신
의 정치 고향인 시카고에 운집한 수많은 청중을 향해 행한 연설에서도 그와 같은
말을 하였다. 어쩌면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
른다고.오늘 미국민들이 그들의 의구심에 대해 답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정말이
지 미국 민주주의가 큰 걸음을 성큼 내딛는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이 같은 엄청난 역사적 의미 때문에 나는 ‘오바마’를 지지했던 것이다.

또한 내가 ‘매케인’보다 ‘오바마’를 지지한 것은 ‘오바마’의 당선이 인종간의 화
합, 계층간의 화합 더 나아가 세계의 화합을 가져오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매케
인’은 사실상 ‘부시’ 정권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전쟁을 일으
킴으로 인해, 또한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함으로 인해 얼마나 세계의 화합을
저해하였는가?화합은커녕 갈등과 긴장과 분쟁만을 초래하였다.그 옛날 평화의 사
도였던 미국이 언제부터인가 세계 곳곳에서 분쟁의 당사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로 인해 미국은 진작 세계 모든 나라들로부터 인심을 잃었다. 만일에 ‘매케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 같은 흐름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세계의 평화
와 화합은 계속해서 요원한 문제가 되고 말 것이다.

반면에 ‘오바마’는 그 출신이 ‘케냐’(아버지가 케냐인)이면서 한때 ‘인도네시아’에
서 성장하였고 게다가 흑인이다. 또한 그 자신이 밑바닥의 삶을 경험하였고 대학
을 졸업한 다음엔 오랫동안 빈민층을 위해 봉사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 자신이기독교인이면서 중간 이름으로 ‘후세인’이라는 모슬렘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실 그것 때문에 공화당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의 이름을 선거 전략에 사용하려
애썼던 것도 사실이다.마치 그가 중동의 테러리스트와 연계라도 되는 듯.혹은 그
를 선택할 경우 미국에 큰 위기라도 찾아오는 듯- 해서 그를 언급할 때마다 늘 강
조하여‘바락 후세인 오바마’라고 부르곤 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은 압도
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하였다. 이는 결코 잘못된 흑색선전에 넘어가지 않는 미국민
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생각할 때 나는 ‘오바마’야말로 인종간, 계층간, 국가간의 화합
을 가져올 수 있는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을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게다가 ‘오바마’는 실제로 이 사회와 세계의 화합을
줄곧 자신의 선거 케치 프레이즈로 내걸곤 하였다. 그리고 이제 그 같은 사람이 미
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나는 ‘오바마’야말로 이 사회의 화합과 또한 세계의
화합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세우신 ‘종’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됨으로 미국은 더욱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로 자리매
김하게 될 것이다.미국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무엇인가?‘아메리칸 드림’ 아닌가?
그런데 언제부터부터 그것이 서서히 빛을 잃어간 것이 사실이다. 이 미국마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빈익빈 부익부’요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들은 계속해서 일어
서지 못하는 그 같은 사회가 되어가고 있었다.그런데 밑바닥에서 일어선 사람이,
게다가 이민자의 자식이며 심지어 부모조차 없이 조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이, 혼
자 힘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 그것도 흑인이, 단지 성공한 정도가 아니라 이 나라
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 이거야말로 이제까지의 모든 아메리칸 드림 가운데 절
정의 아메리칸 드림 아닌가? 즉 ‘오바마’는 이제 ‘아메리칸 드림’의 Role model(역
할 모델)이 된 셈이다. 이제 ‘오바마’의 성공 실화는 이 땅에 사는 모든 힘없는 자
들,가진 것이 없고 배경이 없고 미래가 불투명한 모든 사람들,특히 자라나는 2세
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얼
마나 그 의미가 큰 것인가.

끝으로 나는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야말로 모든 흑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내는 역사적 사건이 아닌가 생각한다.흑인들이 누구인가?이 땅에 노예로 붙들려
온 이래 참으로 오랜 세월을 억압과 고난과 굴욕의 삶을 살아온 이들이 아닌가? 듣
기로는 흑인들이 노예 시절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만 1억 명이 넘는
다고 한다.참으로 불쌍한 인종이 아닐 수 없다.그들이 노예의 자리에서 해방된
것이 고작 146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흑인민권운동’을일으킨 것이 불과 45년 전이고. 그 ‘민권운동’이란 것도 의회에서 상하원이 되겠다
는 것도 아니고,잘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그들은 단지 인간다운 삶, 자유
와 평등의 보장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자신들의 자녀들이 백인들의 자녀들과 한
상에서 식사하게 되는 그것만을 소원했을 뿐이었다. 그들 가운데서 누군가 이 나라
의 대통령이 나온다는 것-이는 결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아니, 오랜 세기 동
안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2008년에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것도 억지로 사정해서가 아니라, 인종을 초월하여 압도적인 전국적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정말이지그들이 꿈꾸었던 것보다 너무나 빨리그들 가운데서 대통령이 나왔다. 아니,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레대통령이 탄생하였다. 그 감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이야말로 그들의 한이 한 번에 풀리는 대사건이 아닐 수없으리라.그들의 눈물이 한 번에 닦이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으리라.

오바마가 시카고의 그랜드 팍(Grand Park)에서 당선 연설을 하던 날- 나는 그곳
에 모인 수많은 흑인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토크 쇼의 여왕‘오
프라’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오랜 세월 흑인 민권 운동을 주도했던 ‘제시 잭슨
목사’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그리고 검은 피부색을 원망하며 살았을 수많은 흑
인들 또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
었다. 그 눈물은 오랜 세월 그들이 흘렸던 아픔과 설움의 눈물을 씻어내는 눈물이
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흑인됨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리라. 그렇다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 이 얼마나 엄청난 역사적 의미
가 있는 것인가. 이는 미국이 진 빚을 한 번에 갚는 사건이며 수많은 이들의 한을
한 번에 풀어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3

이제 선거는 끝났다.이제 대통령은 결정되었다.‘바락 오바마’라는 흑인이다. 이
제 남은 것은 맞닥뜨려야 할 냉혹한 현실이다.당장 무너진 경제를 되살려야 하고,
또한 선거로 인해 찢어진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오바마’는이 나라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가 국민들과 한 약속이기 때
문이다. 사실 그가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그가 ‘변화’를 약속했기 때문이고, 또 그가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
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열망’- 그것이 그가 대통령이 된 이유이
다. ‘오바마’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과제이다.

나는 44대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된 ‘바락 오바마’를 보며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생각해본다.우리가 할 것이 있다면 그가 바른 대통령이 되도록‘기도’하는
것이다.사실 이번 선거에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오바마’보다는 ‘매케인’을 더
많이 지지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매케인’이 더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이
유에서였다.어떻게 보면 답답한 사고들이 아닐 수 없다.진정한 신앙은 얼마나 하
나님을 잘 믿느냐,얼마나 성경을 잘 믿느냐가 아니다.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을 두
려워하는 자세’이다. 그 같은 사람이 참된 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사람이 정치할 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고, 그 같은 사람이 대통령을 할 때 바른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나는 보수-진보를 떠나 ‘오바마’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본다. 하나님 앞에
서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겸손한 신앙인이요,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바르게 정치
할 사람이라고 본다.그렇기에 그를 지지하는 것이다.다시 말하거니와 우리가 할
것이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래야 하는 것은 그의 양 어깨에
이 미국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양 어깨에 세계의 평화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바라기는 그가 향후4년간 제대로 나라를 다스림으로 앞으로 4년 뒤에
지금보다 더 전폭적인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재선까지 될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
대해 본다.

✎ 김현진

희 망

신앙과 사색 : 2008/11/12 21:44
 

희 망


사형수에게 사면은 자유에 대한 희망을 안겨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죄로 인
해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최고의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절망적인 것 같아 보일 때 하나님께
서는 우리에게 영구불변의 희망을 가져다주십니다. 우리가 힘든 시기를 참고 견디기
위해서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희망이 없이는 포기하게 되기 마련입니다.희
망을 갖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필수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을 가져다주시는 바로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저의 희망은 무엇입니까?그 희망은 어디서 옵니까?

주여,내가 무엇을 바라리요?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39장 7절)

주 여호와여,주는 나의 소망이시요,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시편 71장 5절)

주님이 바로 우리 희망의 원천이십니다. 주님을 믿고 당신의 미래를 주님께 맡길
때만이 당신의 희망이 커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당신의 복된 미래를 염
두에 두고 당신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장 21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인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희망의 근원입니다. 당신이 하루
하루를 살아갈 때 이를 항상 되새겨야 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
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
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
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 6절)

먼발치에 어떤 한 지점을 정하고 그것에 집중하면 좀더 똑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것
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미래에 펼쳐질 영생의 삶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들은 고통과 슬픔이 없는 천국에서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
었습니다. 당신에게 영생의 삶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당신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
함이나 심지어 슬픔조차도 좀더 쉽게 극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좀더 강한 희망을 갖게 될 수 있을까요?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
니이다…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
이다…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
라나이다…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시편 119장 43, 74, 81, 114, 147절)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당신의 희망을 새로이 하고 굳건히 하십시오. 하나님
의 말씀은 당신의 희망을 북돋아 주는데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 3장 20‐21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희망을 걸지도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우주 만물을 주관하
시는 주님께서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에게 한없는 축복을 내리길 원하신
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일들이 절망적인 것 같아 보일 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사무엘상 1장 10절)

기도하십시오.절망에 빠진 가운데에서도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조금의 희
망이라도 있다면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한나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사도행전
16장24‐25절)

찬송하십시오. 바울과 실라는 주 예수의 말씀을 전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그
들은 영생의 삶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기에도 어떻게 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히브리서 10장 23절)

당신 주변의 모든 일들이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아 보일 때라도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그의 약속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의 모든 희망은 하나님의 완전하
심과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
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한복음16장 33절)

당신이 지금 겪는 어려움들은 하나님께 전혀 놀란 만한 것이 아니며 당신 또한 그렇
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삶의 고통과 어려움은 세상을 살아가는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
다.항상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그분은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미 다 경험하셨을
뿐만 아니라 고통 가운데서도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지를 보이셨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
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
시로다.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
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시편 146장 5‐8절)

당신의 모든 희망은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내신 하나님의 역사
하심에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라도 당신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당신의 기쁨
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역경에서 구해주시거나 또는 당신이 그 역경을 이겨나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소망을 이루어주시지 않아 보일 때,어떻게 계속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시편 71장 5절)

하나님 외에 누가 미래를 관장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 누가 당신이 영원히 살
집을 가지고 있습니까?하나님 외에 누가 당신의 죄를 사하여 줄 수 있습니까?하나
님 외에 누가 당신에게 영생의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망
이심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
라리요. (로마서 8장 24절)

희망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번 어떤 희망
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그것을 소망할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당신이 진정 희망하는
중대한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 보십시오. 하나님의 타이밍은
항상 완벽합니다.

✎"Life’s Questions", Ronald A. Beers & V. Gilbert Beers, 번역:복은임

 

진정한 회개
‐Kite Runner 보기‐


얼마전 이 영화의 동명의 원작소설을 쓴 소설가가 UB에
초청되어 강연을 했다고 들었다. 그 소설가는 Khaled
Hosseini 이란 분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이다. 원래 의사였는데 Kite
Runner 소설이 성공을 거둔 후, 이제는 아예 작가로 활동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집 둘째 아이가 그 강연을 들으러
갔었는데,상당히 상기된 모습으로 돌아왔다.소설과 영화
에 얽힌 뒷이야기들과 차별받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강연
자의 호소를 인상깊게 들었던 것 뿐 아니라, 강연자의 직업
적인 배경에도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우리 둘째는 문학에
꽤 재능이 있는데, 필자는 부모로서 아이가 문학을 전공하는 것에 대해선 조금 우
려를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도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 아이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에 고무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필자도 이 영화를 아주 인상깊게 보았다. 무엇보다 타문화권 배경의 이야
기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
이 좋았다.이 영화는 원작자의 모국인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그러니 그 문화에 대해 보다 깊이있는 묘사가 가능했을 것이다. 보는 이들에게는
배경이 생소한 문화라는 점이 오히려 더 흥미를 일으키는 장점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도 잘 쓰고 또 잘 만들
면,역시 비슷한 좋은 반응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그럼 우리나라 문
화도 보다 깊이있게 전달하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영화의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소년 Amir이다. 아버
지는 정의감으로 꽉 차있는 강직한 분이었는데, Amir의 유약한 성격에 늘 좀 불만스
러워했다. 그런데 Amir는 자신을 출산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믿고 있었다. Amir에게는 끔찍히 자기를 위해주는, Hassan이라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그는 그 가정에서 대를 이어 일해온 하인의 아들이었다.Amir에 대한
Hassan의 무조건적인 충성에 어떤 아이들은 노예근성이라고 놀려대기까지 했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큰 놀이인 연날리기가 있던 날, Amir와 Hassan은 Amir
아버지가 지니고 있었던 기록을 깨며 많은 연들을 끊어내고 큰 승리감을 맛본다.

그런데 이날, 늘 이들을 고깝게 여겨오던 폭력배 아이들이 Hassan을 성추행하고구타한다.승리의 전리품인 연을 내놓으라는 그들의 요구를,그 연은 Amir의 것이라며 Hassan이 거부했기 때문이었다.이 장면을 뒤따라갔던Amir가 목격한다. 하지만 그는 폭력배들에게맞설 용기가 없어 그냥 숨어 지켜보기만 했다. 이후 Amir는 Hassan을미워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죄책감을오히려 미움으로 발산한 것이다. 결국 Amir는 Hassan에게 도둑의 누명을 씌워 집에서 쫓아내고 만다.이후 Amir의 가정은 소련의 침공을 피해 달아나 미국으로 망명하고, Amir는 성년으로 자라 소설가가 되고 결혼도 한다.그동안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그런데 첫 책이 출간되는 날, Amir는 아버지의 옛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그는 Amir의 글솜씨를 알아주고 늘 격려해주던 분이었다.전화에서 그 분은Amir에게 파키스탄에 있
는 자신을 만나줄 것을 청한다.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그 청을 뿌리치
지 못해 그를 찾은 Amir에게 그 아버지의 친구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와 아주 힘든
과제를 Amir에게 남긴다.

우선 Hassan이 자신의 이복형제라는 것이었다. 또 Hassan과 그 아내가 탈레반
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들을 하나 남겼는데, 그 아들을 구해서 미국으로 데려가 달
라는 것이었다.처음엔 그토록 완벽했던 아버지의 외도 사실에 반신반의하고,또
조카의 구출작업에 예상되는 위험 때문에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Amir는, 결국
그 청을 받아들이고 고향으로 잠입한다. 조카는 고아원에서 탈레반 지도자의 성노
리개로 팔려 탈레반 아지트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조카를 구하고자 탈레반 소굴까
지 찾아간 Amir는, 그를 알아본 탈레반 장교 – 그는 Hassan을 성폭행했던 이였다 ‐
에 붙들려 거의 죽을 뻔하기도 하지만,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결국 조카를 구출해
내고 미국으로 무사히 돌아온다.오랫동안 마음을 열지 않던 조카는,어느 날 연을
날리며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는 Amir에게 마음을 열고 한 가족이 된다.

영화의 내용 중에는 약간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너무 서구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도 여겨졌다. 소
련을 침략국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소련군이 난민 중 젊은 아녀자를
골라 성추행하려는 장면을 집어넣은 것이라던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는탈레반의 모습,탈레반의 지도자가 어린 아이들을 성노리개로 삼는 부분 등은,실제로 그런 일들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때문인지 영화에 출연했던 몇 아동배우들이 위험을 느끼고 아랍 에미리트로 망명을 해야했다고 들었다.

하지만,여전히 이 영화에서는 공감을 주는 소재들이 많이 발견된다.완벽주의자
아버지와 유약한 아들 사이의 갈등과 사랑. 아버지는 아들에게 불만이 있고 또 공
공연하게 나무라기도 하지만, 역시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내놓을 정
도로 그를 사랑하는 존재이다. 자신의 잘못을 미움으로 감추려는 어린 마음의 시도
도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문제 아닌가. 그저 완벽하게만 보였던 아버지의 상
상하지 못했던 실수.이 또한 현실이다.이국땅에서 어렵게 살면서 자녀들에게 헌
신하고, 그러면서도 늘 고국을 잊지 못하는 이민의 생활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아프가니스탄이란 중동국의 이국문화가 우리나라의 문화와 유사하다는 점에도 호기
심이 갔다. 남녀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만나는 것을 부모들이 꺼려하고 부모를 통해
결혼승락을 받는 것은, 남녀칠세 부동석 등 우리나라의 얼마 전까지의 풍속과 유사
했다.

연날리기도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놀이문화이지 않은가.이런 여러가지들을 넘어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감동을 주는 장면을 들라면, 역시Amir가 조카를 구출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는 어릴적 Amir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어릴 적이든 어른이든 원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그는 겁많고 소심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놀림을 당하고 심지어 주먹에 맞아도 상대에맞서질 못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 위험천만한 일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일까?그것은 아버지 친구가 했던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는 Amir에게 조카를 구출할 것을 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There is a way to be good again.”

그는 Amir이 Hassan에게 했던 못된 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Amir를
정죄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Amir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는 Amir에
게 자신의 어린 시절 Hassan에게 행했던 잘못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카
를 구출하는 것이 옛날의 잘못을 회복할 기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Amir는 아
버지 친구의 그 한마디 권고에 용기를 내어 회복의 길을 나섰다. 진정한 회개의 길
을 나섰다.크리스챤인 우리는 때로 회개의 의미를 죄를 뉘우치는 선으로 한계지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예수님의 조건없는 용서와 사랑에 너무 취해서일까?죄를 깨
닫고 이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이에 그쳐버
리고 이후에 당연히 뒤따라야 할 죄의 개선이 없다는 것이다. 회개란 죄에 대해 돌
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믿을 뿐만 아니라 개선하지 않는다면 감히 진정으로 회개했
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그래서 어떤 이는“복음은 우리를 율법에서 은혜로 인
도하고,은혜를 체험한 후에는 다시 율법으로 돌아오게 한다”라고도 말했다.

나치정권에 대항하다 처형당했던 신학자 본 회퍼는 순종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를 “값싼 은혜”라고 불렀다. 참된 은혜에는 반드시 올바른 순종이 수반된다.
“은혜에 의해 순종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의해 올바른 순종이 비로소 시
작되는 것이다.” 돌아보면 필자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주위에 값싼 은혜가 넘쳐나
는 것 같다.믿는 이들은 많으나 믿음의 삶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믿는 이들이 더 못됐고 매력이 없
다.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고있고,언제부터인가 크리스챤이라고 밝히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 뿐 아니라,
우리로 회개토록 하신 것이다.우리가 다시 선하게 될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마치
Amir의 아버지 친구가 Amir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되, 회복할 길을 제시해준 것
처럼 말이다.아무쪼록 우리 모두 진정한 회개의 믿음생활을 하길 바란다.용기를
가지고 옛 자아를 직시하고 이에 대항함으로써 옛 사람을 극복하고 이겨가길 바란
다. 그래서 Amir가 오랜 죄책감을 떨쳐버리고 해방을 맛보았듯이 진정한 구속의 기
쁨을 맛보길 바란다.

✎김성민

 

파인애플 이야기(2)


**** 이 『파인애플 이야기』는 네덜란드령 뉴기니아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를 통해 7년에 걸쳐
일어났던 실화입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싱그러운 재미와 함께 성경이 말하는 삶의 기본 원리를 어
떻게 생활에 적용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해 줍니다. ****

마침내3년 다시 흘렀고 열매는 익기 시작했습니다.나는 아
내와 파인애플 과원을 거닐며 감동적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우리도 얼마 안있으면 파인애플을 따먹겠구려.”
우리는 이렇게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
다.그런데 또다시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아십니까?그 열매들을
또 몽땅 도둑맞아 버렸습니다. 나는 낮에 원주민들이 밭에 들어
가 익은 파인애플의 위치를 알아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밤에 바로 그 위치에 가서 파
인애플을 훔쳐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병원문을 다시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번엔 상점문을 닫아버려야겠군.” 이 원주민들은 성냥과 소금, 그
리고 낚시 바늘 등을 내가 경영하는 상점에서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오
랫동안 그런 물건 없이도 살아왔으므로 상점문을 닫는다고 해서 그들의 생활에 치명
적인 지장을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좋소, 이젠 상점문을 닫을
테니 어디 파인애플을 마음대로 훔쳐가 보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상점문을 닫자 그들은“이곳에서 떠납시다.소금도 구할 수 없으니 저 사람
이 이 상점을 더 이상 열지 않겠다면 그와 함께 여기서 살아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역시 우리는 우리가 살던 정글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은 그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나는 파인애플을 먹으면서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없으니 전도할 일도 없
어졌습니다.나는 씁쓸하게 아내에게 말했습니다.“여보, 우리는 미국에서 얼마든지
파인애플을 먹었지 않소. 그런데 여기서는 파인애플을 먹으려고만 하면 이 지경이 되
는구려.”
마침 한 연락자가 왔길래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모두에게 돌아오라고 하시오.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가게문을 열테니까요.”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파인애플을 먹을 수 있을까? 무슨 좋
은 수가 있을 텐데... 옳지!” 마침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세퍼트를 들여놓자!”

나는 섬에서 가장 큰 세퍼트 한 마리를 구해다 풀어놓았습니다. 그들은 개를 무서
워했습니다.그렇게 큰 개는 처음 보기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몸집이 작은 비루먹
은 개들을 키우고 있었으나 그것은 잘 먹이지 않아 모두 병들고 말라 있었습니다. 그
들 가운데 이 건장한 독일산 세퍼트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안보는 틈을 타서 개에게 음식을 줘야 했습니다. 왜
냐하면 개가 먹는 음식을 보고 그들이 분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보다
개가 먹는 음식이 더 좋았던 것입니다. 개가 지키자 아무도 주위를 얼씬거리지 않았
습니다.그러나 상점문을 닫았을 때와 똑같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사람들이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얘기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들의 언어를 가르쳐
줄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또 나는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부락 개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기 시작했고 굶주려 사납고 험악해져
잡종 광견 세퍼트로 변해갔습니다.의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만일 그 개가
당신의 자녀나 다른 사람을 문다면 나는 그 사람들을 치료하지 않겠소.” 의사는 내가
원주민들에게 한 것과 똑같이 나를 대했습니다. 개를 없앤다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
는 일이었지만 결국 나와 아내는 상의한 끝에 개를 없애 버렸습니다.
개가 없어지자 원주민들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따라서 파인애플도 여전히 없어졌습
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런 묘안도 떠오르지 않
았습니다.

그후 안식년이 되어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
다. 나는 거기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
니다. 성경은 “주라, 그러면 받으리라. 자신만을 위해 갖고자 하면 잃게 될 것이다.
네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려라.하나님은 너를 풍족히 채워줄 것이다”라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이것이 기본 원리였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손해볼 것이 없어. 아무래도 나는 먹지 못할
파인애플이지 하나님께 그 파인애플 과수원을 드리자.” 사실 그것은 합당한 희생이
되지 못했습니다. 합당한 희생이란 자신에게 있어서 귀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기보다 그 파인애플 과수원을 하나님께 드려 하
나님께서 그것을 과연 어떻게 관리하시는가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
께서 그것을 어떻게 하시는지 보아야지!” (다음에 계속)

✎파인애플 이야, IBLP-KOREA

 

아름다운 가을은 가고


창으로 내다 본 세상은
여전히 가을 한복판인데
밖을 나서면 쌀쌀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직 단풍 색깔이 곱고
낙엽들이 사방에 뒹구는 것이
그림은 영락없는 가을이로되
실제는 차운 겨울입니다.
바람이 보통 매서운 것이 아닙니다.
벌써 추위에 떨 지경입니다.
가울인지 겨을인지
계절을 잃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경제 재난 때문인지
환율에 떨고 있는 학생들 때문인지
혹은 이국에서의 추위여서인지
체감온도는 더욱 더 겨울입니다.
마음까지 얼어붙는 듯합니다.

문득 믿음의 세계도
그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기에는 아름다운 가을 같지만
빛깔 고운 단풍도 가득하고
사랑하는 삶이 넘치는 가을 같지만
실상은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
계절의 변화가 무쌍한 곳
그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결코 보이는 그림이 다가 아닙니다.
따스한 실내악이 다가 아닙니다.

이제 아름다운 가을은 가고
그만 옷깃을 단단히 여민 채
겨울 준비에 들어서야 할 듯싶습니다.
 
(HJ)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
 -금융 쓰나미를 겪으며-



요즘 두 사람이라도 모이면 예외 없이 나오는 얘기가 ‘경제 걱정’이다. 지금 소위
‘가을 잔치’라 할 수 있는 온갖 스포츠가 한창이건만 스포츠 얘기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다. 게다가 전 미국의 관심사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라 할 수 있는 ‘미
대통령 선거’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건만 그저 방송에서만 연일 떠들어댈 뿐 정작 사
람들의 대화에서는 ‘대통령 선거 얘기’조차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경제 걱정뿐이다. 이는 미국의 경제가 한없이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
다. 더 나아가 온 세계가 ‘금융 쓰나미’ 사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웬
만한 사람들은 크든 작든 다 증권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한다. 그 같은 사람들의 경
우 모두가 이번에 큰 손실을 당했다고 한다. 그 뿐인가? 경기 침체로 인해 비즈니스
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 한숨이 그칠 날이 없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 직장
이 잘못 될까 하루하루 불안한 가운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경제 위기는 결코 미국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예외 없이 하나 같이 중병을 앓고 있다. 유럽을 보아도, 일본을 보아도, 중국을 보아
도, 남미를 보아도 모두가 다 ‘악!’ 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전 세계의 증시가 연쇄
도미노 붕괴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전 세계의 자본이 뿌리째 흔들리
고 있다. 듣는 바로는 그 동안 전 세계 증권 시장에서 시가 총액 10조 달러 이상이
증발되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지난 1930년대 당시의 대공황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
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닌 듯싶다.

물론 우리 한국도 이번 ‘금융 쓰나미’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아니 비켜가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보다 그 타격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이는 한국의 경제
구조 특성상 외국의 자본을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외국 특히 미국
의 경제가 어려울 적마다 한국 경제는 늘 큰 타격을 받곤 하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에 미국이 금융대란을 겪으며 경제적으로 크게 휘청거리자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너
무나 잘 아는 외국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한국 자본시장은
패닉 상태를 지나 거의 공황 상태에까지 빠지고 말았다. 많은 이들이 제 2의 IMF 사
태를 우려했을 정도로.

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다면 다름 아닌 유학생들이다. 이는 졸
지에 ‘환율 폭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많은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당
장 ‘달라 보유 부족 현상’을 빚자 순식간에 환율이 폭등하게 된 것이다. 예전 같으
면 하루에 단돈 10원만 변동이 생겨도 난리였을 텐데 요즘엔 10-20원이 아닌100-200원을 들락거리는 널뛰기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유학생들이
요즘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가운데 있다. 우리 교회에도 유학생들이 많은 바 그들
이 자주 하는 얘기가 요즘엔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환율만 생각하면 걱
정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고, 늘 가슴이 꿍꽝거린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얘기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환율’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조차
연일 안타까운 마음으로 환율을 들여다보곤 한다. 환율이 크게 올라 있으면 나조차
걱정에 마음 졸이고, 환율이 크게 떨어져 있으면 크게 감사한 마음이 들곤 한다. 어
쩌다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금융대란 그리고 글로벌 증시 위기를 지켜보며 몇 가지 귀중한 교훈을 얻는
것이 있다. 우선,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글로벌 증시 위기 사태는 미
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경제에 대해 별 지식이 없는 나지만 자주 언론매체를 통
해 듣는 바로는 지난해 봄에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부터 사실상 현재의
재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즉 부동산 호황의 붐을 타고 능력이 안 되는 많은 사람들
이 너도 나도 집을 사게 되고 나중에 금리가 오르면서 그것을 갚을 능력이 없게 되
자 그 모든 짐을 금융회사들이 떠안게 되면서 그 과부하를 이기지 못해 현재와 같은
엄청난 금융 쓰나미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괜한 욕심을 부려 집을 장만한 것도 문제려니와 또한 많
은 사람들이 집을 담보로 Second 모기지를 얻어 그것으로 여행도 다니며 흥청망청
쓰다가 결국엔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된 그 같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결국 무슨
얘기인가? 자신의 능력과 형편을 생각지 못하고 ‘욕심’에 이끌려 무조건 누리려고만
한 데서 개인의 파산이 찾아오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은 오늘과 같은 전 세계적 재난
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역시 ‘욕심’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개인과 사회를 파멸로 이
끄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의 만고불변의 진리 즉 ‘재물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된
다’는 것을 새삼 배우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재물관(財物觀)’이 있다
면 재물은 ‘필요한 것’이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물을 중요한 것으로 여
기게 될 때 그 사람은 재물의 노예가 되고 만다. ‘욕심’이란 다른 게 아니다. 재물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자세이다. 그러다 보니 그 재물에 소망을 두게 되고, 재물만을
전부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재물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결국 큰 실패와 절망에 이르게 된다. 나는 이번 경제
위기, 특히 금융 쓰나미를 목격하며 재물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이 어
떠한 것인가를 보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혹은 평생 모은 재산이 한 순간에 반 토막 나거나 한줌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
나 많은가? 그들 모두 재물에 소망에 두며 산 사람들이자 또한 욕심에 이끌려 더 많이
벌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
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었다. 재물에 소망을 두며 살아온 사람들의 종국이라고나 할까.
이번 금융 대란으로 큰 손실을 본 사람들 가운덴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재물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이 아니길 바란다. 그럴 경우,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인해 잠시 실망하고 낙담하다가도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
설 것이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재물에 소망을 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경제 위기를 겪으며 ‘이 땅에 재물을 쌓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즉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보이는 곳에 쌓은 재물은 언젠
가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다. 이번에 10조 달러 이상의 가치가 증시에서 증발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 얼마나 아까운 재물인가? 그렇게 잃어버릴 양이라면 좀 더 소중한
곳에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지금 후회해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겠지만. 새삼
우리 주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여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19절-20절)

다른 어떤 때보다 요즘 이 말씀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웬일인가? 가만 보면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할 뿐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은 별로 많은 것 같지 않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다.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빈손이 아니라 우리의 가진 것을 하늘에까지 가지고 가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가진 재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다. 어떻게 하늘에 쌓을 수 있는가? 그것
은 선한 곳에 재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 같은 재
물은 결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고스란히 내 상급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우리의 가진 재물을 하늘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제 위기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정
신을 차리고 그리스도인다운 의식과 삶을 가지고 더욱 이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갔으
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김현진



 

옥수수 국수공장 사업보고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노아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10월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네요. 세월의 흐름을 느낄 때마다 세월의 주관자를 생
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관자를 바라보며 제 삶에 대해 더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려
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 동안도 평안하셨는지요. 미국 금융사태로 생활에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환율폭
등으로 유학생들은 많이 힘들겠네요. 저도 중국에서 살면서 환율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투자해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
드립니다. 그 덕분에 저희 가족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사장님, 해외사업팀 그리고 직원들 모두 평안하신지요? 하시는 사업은 어떠신지
회장님의 도우심으로 잘 진행되고 있을 줄 믿습니다.
이곳 사업을 보고 드리도록 할께요. 이곳 사업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옥수수 국수공장은 잘 운영되어 6월~10월(약 4개월)까지 약 30톤의 국수를 생산
하였습니다. 학교의 학생들 위주로 지원되었고, 주민들에게도 지원되어 대략
2,500~3,000명에게 하루 한 끼씩 지원하였습니다. 총비용으로는 약 $45,000(공장
가동비, 운송료 포함)정도 소요되었고, 지금도 옥수수를 가공하여 가루 및 국수를 생
산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기증한 것에 대한 기증 증서도 받았는데 나
중에 기회가 되면 꼭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곳 주민들과 학생들이 얼마나 좋
아하고 감사해하는지, 먹는 기쁨을 얼마나 누리는지... 그 감격을 대신해서 전해드립
니다. 김사장님 이하 직원들께도 이 소식과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주시기를 부탁드립
니다. 단기간에 이룰 수 있었던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희는 기적 같은
이번 일을 통해 큰 힘이 되었고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끌어 주시고 도
와주신 회장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또 감사한 것은 올해 어떤 태풍피해도 없어서 농사가 풍년이 되었답니다. 아무래도
이 나라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요. 옥수
수 국수사업은 계속 진행됩니다. 옥수수를 가공하거나 국수로 만들어 지원과 판매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곧 겨울이 다가올 텐데 이에 따른 사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생필품과 전기가 부족한데 생필품 사업과 소형자가발전기 사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생필품은 비누, 치약, 수건, 부엌용품 등이고, 소형자가발전기는
전기로도 충전이 가능하고 손으로 1시간 정도 충전하면 작은 전구 6~7시간은 사용
할 수 있고, 라디오는 약 2~3시간 사용할 수 있으며, 가격은 약 45불 정도입니다.
현재는 주로 자동차 밧데리로 사용하는데 약 70~80불 정도에 판매 됩니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일반 주민이 구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가지고 있
는 사람들이 특권층이지요).

소형자가발전기는 그곳에 꼭 필요한 제품입니다. 그러나 45불이면 너무 비싼 가격
이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공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가를 낮추기 위하여 그리
고 경제적이고 장기적인 정착을 위해 그곳에 공장을 설립하여 현지 조달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반값 정도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꼭 긴급하게 필요한 먹는 것과 의약품,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위한 것 외에
는 무상으로 공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최소비용이
라도 받고 판매하는 경제개념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접근하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위 사업에도 계속해서 관심 가져주시고, 동참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옥수수공장
과 생필품사업, 소형자가 발전기 사업비용은 약 5만불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
니다. 이 사업을 위해 회사나 개인들이 투자하시도록 회장님께 계속 말씀 드리고 있
습니다. 귀사에서도 회장님께 꼭 말씀 드려 주시고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귀사의 투자로 인해 사업에 큰 힘을 얻고 사업을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귀사의 투자가 헛되지 않고 이곳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입
니다.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사업을 귀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위 사업을 위하여 회장님께 잘 말씀 드려주셔서 투자자들의 투자와 사업이 잘 진
행될 수 있도록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귀사의 투자와 귀한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임직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의 마음과 사랑을 드립니다.

✎ 김노아
*보안상의 이유로 하나님은 회장님, 김목사님은 김사장, 성도님들은 직원들로 대채했습니다.
 

파인애플 이야기(1)


**** 이 『파인애플 이야기』는 네덜란드령 뉴기니아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를 통해 7년에 걸쳐
일어났던 실화입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싱그러운 재미와 함께 성경이 말하는 삶의 기본 원리를 어
떻게 생활에 적용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해 줍니다. ****

나와 나의 가족은 부락민들과 함께 밀림 깊은 곳에서 생활하
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파인애플 몇 그루를 가져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곳 원주민들은 파인애플에 대해 들어왔고 먹
어보기도 했지만 어디서 구하는지를 몰랐습니다.
나는 다른 선교부로부터 파인애플 나무 100그루 정도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심기 위해 원주민 한 사람을 고용했
습니다. 그는 나 대신 그 묘목을 모두 심어주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에게 품삯을 주
었습니다. 나는 여러 날 동안 일한 그에게 품삯으로 소금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은 무
엇이든지 주었습니다.

파인애플 나무의 새순이 돋고 큰 과목이 되는 데는 매우 오랜 세월이 걸리는 것 같
았습니다. 3년 후 파인애플 나무는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정글 속에서는 싱
싱한 과일이나 채소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신선한 과일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릅니다.
드디어 3년만에 파인애플 열매가 달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다 익
으려면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무렵까지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무렵이 되어야 열매
들이 모두 익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던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익은 파인애플 열매가 있는가를 보기 위해 과수원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밭에 가보니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원주민들이 익
는 족족 몰래 따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채 익기도 전에 따갔습니다. “익기 전에 훔쳐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주인의 것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한 원주민들의 소행이었습니다.
이 지역의 선교사인 나는 이곳 원주민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선교사가 화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화가 났습니다. “이봐요 당신네들! 나
는 이 파인애플 열매를 얻기 위해 3년 동안이나 기다렸소. 그런데 하나도 얻지 못했
소. 앞으로 익는 과일을 또 훔쳐간다면 나는 더 이상 당신들을 위해 병원문을 열지
않을 것이요”

아내는 나의 선교지인 이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에게 약도
무료로 제공해주고 치료비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나와 아내는 그들을 돕고 환자
들을 치료하며 어린아이들을 살리는 일로 거의 지쳐 있었습니다. 하나 둘 파인애플은익어갔지만 계속해서 파인애플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맞서서 내가 그
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원주민들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기 위한 선의라기보다는 나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
었습니다. 즉 그 파인애플을 내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병원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들의 병든 아이들은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관심했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독한 폐렴으로 기침을
심하게 했으며 결국 우리에게 약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돼요, 당신
들이 우리의 파인애플 열매를 훔쳤던 일을 생각해 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나
는 훔치지 않았어요. 다른 녀석들이 훔친 거예요.”라고 꽁무니를 빼는 것이었습니다. 그
들의 기침은 계속되었고 간청도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
었습니다. “좋소, 내일 아침 다시 병원문을 열기로 합시다.” 결국 병원문은 다시 열렸고
그들은 다시 파인애플을 훔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몹쓸 악당들 같으니...!”
결국 나는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알아냈습니다. 그는 바로 파인애플 과목을 심었
던 자였습니다. 나는 그를 불러 꾸짖었습니다. “여보게 이 친구야! 내 파인애플을 훔
쳐서 무엇을 했는가? 자네는 나의 정원사가 아닌가?”

“내 손으로 그것을 심었으니 내가 그것을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그는 말했습
니다. 그것이 이 정글지대의 법칙이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무엇을 심으면 그것은
심은 사람의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품삯을 받고 일했으니까 소유권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저 파인애플 나무는 모두 내 것이요”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아니 뭐라고? 그것은 내 것이야! 나는 자네에게 나무를 심은 수고비를 주었지 않
나?” 하지만 그는 왜 그것이 내 것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생각했
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나. . . 이 부락민의 법이 그렇다니 그들의 법칙을 따를 수밖
에 도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말했습니다. “좋아, 내가 이 밭의 절반을 자네에게 주겠네. 저기에서
여기까지는 모두 자네 것일세. 그 중에 익은 것은 모두 자네 것으로 하게. 그러나 저
편 것은 내 것이야.” 그는 그렇게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파인애플은 여전히 없
어졌습니다.
나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파인애플 나무를 모두 줘버려야 할 것 같군. 그
리고 나는 새로운 것을 심어야겠어.” 그러나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기에 그 정원사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이 파인애플 나무 전부를 자네에게 주고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네. 그 대신 자네는 밭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여기 있는 묘목들을 모두 옮겨가게나. 나는 이곳에 새 파인애플 나무를 심겠네. 자네가 저 과목들을 자네 것으로
여기는 한 내 밭에 있는 과목들을 다 옮겨가란 말일세.”

그러자 그 정원사는 말했습니다. “투-완(원주민 말로 외부인이란 뜻), 그러면 내게
품삯을 주셔야 합니다.” “아니 뭐라고?!” 내가 기가 막혀 되묻자 정원사는 “당신은
방금 우리에게 당신의 파인애플 나무를 옮겨 심어 달라고 부탁했잖아요? 그것은 노
동이니까 품삯을 주셔야지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말대로 그것들은 아직까지는 내 것이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좋소,
하루 일한 품삯을 줄테니 전부 옮겨가게.” 그때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밭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준비하는데도 품삯을 주셔야 하는데요?” “그만두게나!”
나는 진저리를 쳤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어쩔 도리가 없소! 사람을 시켜 파인애플 나무
를 뽑아 쓰레기 더미에 버리게 해야겠소. 그들이 원한다면 모두 가져갈 것이요.” 우
리는 파인애플 나무를 뿌리채 뽑아 풀더미처럼 던져 버렸습니다. 참 어려운 일이었고
또 그렇게 버리기엔 아까운 나무였습니다.
그 후 나는 새 과목을 샀습니다. “자, 여러분! 이제 분명히 합시다! 당신들이 이 나
무를 심는 수고비는 내가 지불하겠소. 대신 이 나무의 열매는 나의 가족만이 먹을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먹어서는 안돼요.”라고 말하자 원주민들은 “그렇게는 할 수 없습
니다. 우리가 심는다면 우리가 먹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다시 말했습니다. “나는 밭을 가꿀 시간이 없고 다른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당신들은 여럿이지만 나는 혼자이지 않소. 나를 좀 도와주시오. 내가 바라는 것은 당
신들이 나무를 심어주되 열매가 내가 먹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요.” 나는 계
속해서 말을 했습니다. “그 대신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드리겠소. 당신
들이 갖고 싶다면 이 멋진 칼을 드릴 수가 있소.”

그들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이 칼을 주는 대신 우리 파인애플을 자기
가 먹겠다고?” 드디어 그들은 승낙을 했습니다. 나는 그 후 3년 동안 새 파인애플
나무를 심은 자에게 계속 우리가 한 약속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이 열매를 누가
먹게 됩니까?” “당신이죠.” “맞습니다. 아직도 그 칼을 가지고 있소?” “예.” 그는 대
답했습니다. “잘 간수하시오.” 만약 그가 칼을 잃어버린다면 나무를 심은 대가가 없
어지므로 나는 다시 파인애플을 도둑맞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 파인애플 이야기. IBLP-KOREA

 

가을 한복판에서



날씨가 며칠 차갑더니만
어느 사이 거리마다 낙엽들이 쌓여갑니다.
깊은 가을임이 분명합니다.
나무들마다 총천연색으로 불타는 것이
꼭 축제의 한마당 같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감흥이 납니다.
그러다 문득 와 닿는 생각
지금은 저리도 멋들어진 잔치이지만
얼마 후면 앙상한 가지들만 남겠지요.
그리고 겨우내 추위에 떨겠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안쓰럽지만
그래도 지금은 전혀 아랑곳없습니다.
추위가 올 땐 오더라도
앙상하게 될 땐 되더라도
지금은 맘껏 화려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맘껏 절정의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가올 종말을 당당히 맞는
오히려 자신을 장렬히 태우며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습니다.
환호하며 박수라도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네 삶도
저 나무들 같았으면 합니다.
항상 제 자리를 지키다가
언젠가 이 땅을 떠날 즈음이 되면
비록 약하고 앙상한 모습이 될지라도
다가올 종말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마지막을 장렬하게 불태우는
자신의 주위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그런 나무들이고 싶습니다.
 
(HJ)

골동품

쉴만한 물가 칼럼 : 2008/11/12 21:20
 

골동품


요즘, 그동안 살던 집을 시장에 내놓으려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선 집을 팔 때 그
리 복잡하게 준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미국에선 그게 아닌 모양이다. 마치 선을
보는 사람처럼 아주 잘 단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 내놓으면 아예 쳐다보
지를 않는다고. 그 준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집 자체를 수리하고
단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가구나 소품들을 잘 갖추어 놓는 것이다. 집수리야 이리저
리 알아보고 연구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인데, 가구나 소품에 대해선 별로 아는
것이 없는 터라 안목이 있는 분의 도움을 얻어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를 도와주시는 그 분이 앤틱가게에서 좋은 물건 몇 점을 보았다고 구
입을 하자고 권하였다. 앤틱이라면 우리말로 골동품 아닌가? 아 그러면 좀 가격이 싼
중고품을 사나보다 했다. 그런데 왠걸, 아내를 통해 전해들은 가격대가 전혀 예상과
는 다른 것이었다. 오히려 더 비싸면 비쌌지 싸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뭔가 대
단한 것들을 사나보다 했다. 하지만 물건들을 가지러 간 날 그 추측 또한 전혀 틀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 구입한 골동품들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첫 느낌은 그냥 수수
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지나치게 단순해보였다. 가장 밋밋한 느낌의 골동품은 거실
에 둘 탁자용으로 구입한 나무상자였는데, 아무런 장식도 무늬도 없는, 그저 뚜껑달
린 네모난 상자였다. 더구나 뚜껑에는 누가 뜨거운 것을 놓다가 태워먹은 자국도 나
있었고 그 주변에는 시꺼멓게 묵은 때도 앉아있었다. 사실 그 골동품은 물건을 나르
는 사람이 가지고 필자 옆을 지나가길래, 누가 저런 물건을 사나하고 궁금해 하던 것
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산 물건이었다니. 또 어떤 것은 전혀 실용성이
없어보였다. 의자를 하나 샀는데, 높이가 너무 낮아서 앉기에 적당하지 않았고, 또
약해 보여서 앉으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실제로 그 의자는 장식용이니까
앉지 말고 그냥 전시만 하라고 권유를 받았다. 아니 앉지도 않을 의자를 왜 사지?
그런데, 그 골동품들을 집에 가져와 놓아보니, 그것들이 그렇게 귀해보일 수가
없다. 하나같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어딜 갖다놓아도 잘 어울린다. 수수해 보이는
것만도 아니다. 차분한 느낌을 주다가도 작은 술 하나를 달면 금방 눈길을 확 끈
다. 아 이래서 앤틱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사는구나 싶다. 매장에서 만난 한 고객은 그
런 얘기도 했다. 왜 앤틱에 관심을 가지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들에는 많은 이야기들
이 숨어있어 좋다고 대답했다. 앤틱에 나 있는 흠집에, 손때에, 그 물건을 간직했던많은 이들의 역사들이 배어있기에, 그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여겨졌다.

사람들 중에도 골동품 같은 이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일견 화려하지도 않고 귀해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흠도 있고 때묻은 구석도 있지만, 어디에 있어도 잘 어울리는
이들. 어느 곳, 어느 환경에서든 그 곳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없으면 섭섭하고, 나서거나 주도하진 않지만 사회와 조직에 꼭 필요한
이들. 용기를 내어 약간이라도 티를 내면 확 웃음이 꽃피고 주위가 밝아지는 그런 이
들.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골동품 같은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이들 중에는 목사님의 조연시리즈 설교에 등장한 인물들이 이에 속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모세의 부모, 요나단, 아리마대 요셉, 바나바 등등. 우리교회
엔 골동품 같은 분들이 여럿 계시다. 참 다행스런 일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필자
가 세어보기엔 적어도 여성도 중에 세 분, 남자성도 중에 한 분이 있다. 골동품형 사
람은 아무래도 여성에게 더 많은 것 같다. 혹 너무 적은 수가 아니냐고 의문을 가지
실 지도 모르겠다. 청년대학부를 뺀 숫자이다. 청년들을 포함시키면 더 많을 것이고,
필자가 잘 파악하지 못한 분들을 고려해보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우리교회의 골동품 같은 성도들을 다 거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
아닐 것이고 또 혹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이를 무릅쓰고라도 한 분은 꼭 소개해
야겠다. 바로 김민숙 사모님이다. 필자가 볼 땐 골동품 중에 골동품이신 분이다. 계
신듯, 계시지 않은 듯 티가 나지 않는 분이시지만, 교회의 대소사에 사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다. 아니 이 분이 안계시면 일이 잘 진행이 안된다. 말
씀도 별로 안하시지만 속으론 꽉 차있는 느낌을 주시는 분이다. 어쩌다 웃어주시면
주위의 조도가 적어도 서너배는 올라가는 그런 위력을 지니신 분이다. 이런 분을 사
모님으로 둔 우리 교회는 정말 복받은 교회이다.

필자의 가족 중에는 할머님이 골동품 같은 분이셨다. 가진 것 별로 없으셨고, 학
식이나 지위도 내놓을 것이 없는 분이셨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정을 베푸시면
서 사신 분이셨다. 매일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고, 평생 헌신적인 수고로 자
녀들을, 또 손주들을 돌보시던 분이셨다. 늘 수수한 차림이셨지만 그 분의 단아한
모습은 항상 곱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여러굽이 인생의 굴곡을 거쳐오시면서
후손들에게 들려 줄 많은 이야기들을 지니고 계신 분이셨다. 필자의 어머니는 아주
외향적인 분이시라 할머니와는 사뭇 다르셨는데, 생각키로는 필자의 아내가 할머니를좀 닮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그 때문에 필자가 아내에게 프로포즈했던 것이 아
닐까 싶다. (이 정도로도 오늘 저녁에 좀 맛있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골동품같은 이들은 세상에서 별로 각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같이
안목이 없는 이들은 골동품의 가치를 잘 몰라도, 전문가의 눈으로는 그 아름다운 가
치를 파악해내듯이, 하나님은 골동품 같은 이들을 가치있게 보시리라 믿는다. 아니
이 세상의 기준으로 화려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이들보다 훨씬 더 비싼 사람들로 하
나님께서는 이 골동품 같은 이들의 가격을 매기시리라 믿는다. 그래서 필자도 골동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으로 자라가고 싶다. 주어진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
며, 필요한 만큼의 표정은 항상 지니고, 가끔은 시선을 끄는 작은 매력을 발하면서,
들려줄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그런 골동품같은 신앙인이 되어가고 싶다.
 
✎ 김성민

우 연

신앙과 사색 : 2008/11/12 21:18
 

우 연


무언가 놀랍거나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린 “도대체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라고 묻곤 합니다. 우리는 캠핑을 떠나기 전 일기예보를 보거나
또는 비가 올 것을 대비해 장비들을 챙깁니다. 그저 운에 맡기고 위험을 감수하고 싶
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행수를 바라며 카지노 슬럿 머신 앞에 몇 시간
씩 앉아있기도 합니다. 운수나 기회 또는 우연을 믿는 것은 마치 바람 부는 대로 이
리 저리 떠도는 것과 같이 분명한 목적이나 계획 없이 사는 것과 같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개개인의 삶을 계획하시고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간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하시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조율(調律)하고 계신다면, 우리의 삶은 단순
히 임의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이어지다 결국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목표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당신의 삶이 무관하다고 믿는 그릇된 생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
다. 하나님께 당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계획하신 일들이
어떻게 당신의 삶에 전개되어 가는지를 직접 체험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좀더
보람되고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통제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일들은 우연으로 발생하기도 합니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세기 1장 3절)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시야 45장 18절)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
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장 3절)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창조하셨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연이 아니라 자애로우신 창조주의 계획하심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니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나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 29장 11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

당신의 삶 속에서 우연인 것 같아 보이는 일들도 모두 당신을 위해 세우신 하나
님의 계획에 의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시지만 그
것을 지나야 하는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만약 모든 일들이 우연에 의해서 일어난
다면, 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 부정하는 것이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분리되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얼마나 암울하고 절망적인 삶
에 대한 관점입니까!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자애로우시며 그의 창조
물을 깊이 사랑하시기에 그가 지으신 이 세계와 인간을 위해 계획을 세워 놓으셨
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계획과 일치하는
지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분명 당신의 삶을 바라보시며 당신을 일
정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
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전서 2장 7절)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구원을 정하셨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
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에베소서 3장 6절)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에는 유대인과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연까지도 관장하십니까?

그러므로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
레를 소에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드릴 금 보물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
난 것인 줄 알리라. (사무엘상 6장 7‐9절)

블레셋 사람들은 역병이 우연히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언약궤
를 빼앗아간 것에 분노하셔서 벌을 내린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블레
셋의 지도자들이 그 해답을 얻을 꾀를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궤를 실은 두
마리의 소가 자신의 새끼들에게 돌아가면 역병은 우연히 발병한 것이요, 그렇지 않고
그 소들이 자신의 새끼들에게 멀어져 딴 길로 가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소들의 자
연 본능을 제어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므로 역병 역시 하나님께서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소들이 본능에 따라 새끼에게로 돌아갈 가능성이 많아 보이지만 이 일화를 통해 하나
님께서는 자연의 순리까지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16장 33절)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요나 1장 7절)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사도행전 1장 26절)

당신은 주사위나 동전을 던져 당신의 결정이나 미래를 택하려 할 지 몰라도 하나
님께서는 그 결과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는 일은 절대 일어
날 수 없습니다.
일들이 그냥 일어난 것같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때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
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
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나이다.'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
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
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룻기 2장 19‐20절)

룻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룻은 남편을 여의였고 그녀의 시어머니를 모시
고 낯선 땅으로 옮겨가 둘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룻은 아마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저 우연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룻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주관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룻은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보아스는 메시아의 조상
이 됩니다. 지금 당장 일들이 잘 풀리지 않고 혼란스러워 보여도 하나님께서 당신
의 삶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마음 속에 되새기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하나님께
서 당신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셔서 당신을 복된 길로 이끄셨는지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운을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
겠느냐?” 하라." (이시야 8장 19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
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6‐7절)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우리가 살아가며 갖게 되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계획하신 일들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여김으로써
하나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Life’s Questions", Ronald A. Beers & V. Gilbert Beers, 번역:복은임

 

OMF 한국부 대표 사역을 앞두고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 하시나이까? (시편 144:3)


사랑하는 기도의 동역자 여러분께
모든 인생의 주권자 되시고 참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찬양 드립니다.
지난 10월 19일 김순희 선교사의 사랑하는 어머님을 갑작스레 천국으로 보내드리
고 슬픔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으므로 위로를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3개월 동안 다음 사역을 위한 연수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
고 나그네 생활 가운데서도 언제나 앞서 가시며 길을 인도하시고, 뜻하지 않은 귀한
만남들도 허락하셔서 큰 격려와 힘을 주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 캐나다 OMF 선교관
에 머물면서 OMF를 더 깊이 이해하고 경험하면서 OMF 가 얼마나 축복된 선교 단체
인지 더 알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이제 11월 3일에 있을 OMF 한국대표 취임식을 앞두고 우리의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의 도우심을 기도합니다.
지금까지도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해 주신 동역자 여러분들의 귀한 동역으로 하나
님의 나라가 더욱 견고하게 세워져 나아갈 것을 기대하며 기도제목들을 나눕니다.

감사제목:
- 연수기간 통해 풍성한 은혜와 배움을 주시고 안전과 건강을 지켜 주신 것.
- 나나에 교회가 새로운 선교사님과 잘 협력하고 은혜 중에 서 있음을 감사.
- 온 가족이 재회하여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감사.

간구제목:
- 취임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은혜의 자리가 되도록.
- 11월 5일부터 한 달간 싱가폴 오엠에프 국제본부에서 있을 나머지 연수기간도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며 잘 준비되는 시간이 되도록.
- 12월에 일본에 있는 이사짐들을 한국으로 잘 부치며 모든 필요가 채워지도록
- 김순희 선교사의 건강을 계속 붙잡아 주시도록.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에 빚진 종, 김승호 김순희 선교사 드림
(* 김승호 선교사는 17년간 일본 선교사(북해도)로 활동하다 금년 말부터 OMF 선교회 한국
부 대표로 섬기시게 된 분으로 지난 10월 5일 주일에 본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신 바 있습니다.)
 

믿음대로


한 백부장이 예수께 찾아와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 청하였다.
함께 집에 가실 필요 없이
말씀만으로 족하다 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몰래 예수님 뒤로 가
그 옷깃을 만졌다.
그러면 병이 나으리라 믿으며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치유와 축복의 원리
그것은 '믿음대로'이다.
때때로 우리의 잔이 작아
하늘의 보화가 닫히곤 한다.
때때로 우리의 분량이 작아
주님의 광대하심이 제한되곤 한다.
당신의 잔은 어떤가?
바다만큼 넓은가?
그러면 무한한 축복을 경험하리라.
손바닥만큼 작은가?
그러면 쬐고만 축복만을 보리라.

어떤 삶을 원하는가?
하늘만큼 바다만큼의 삶인가?
아니면 손바닥만큼의 삶인가?
그것은 오직 '믿음의 크기'에 달려있다.

(HJ)
 

집중현상


미국의 심리학자인 리처드 와이즈만(Richard Wiseman)이라는 사람이 쓴 "고릴라
를 보셨나요?"(Did you spot the gorilla?)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번은 일리노이 대학과 하버드 대학의 두 심리학자가 '집중현상'과 관련한 이런
실험을 하였다고 한다. 일단의 사람들에게 농구 시합을 참관하도록 하면서 한 가지
과제를 내주었는데 이는 한쪽 팀의 사람들이 전부 볼을 몇 번이나 패스하는지, 그리
고 볼을 얼마나 드리볼 하는지(즉 땅에 몇 번이나 볼을 튀는지) 세도록 하는 것이었
다. 그러자 과제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오직 그 일에만 몰두하여 누가
우산을 들고 실내를 지나갔는지, 심지어 일부러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을 그 경기장
옆에 지나가도록 만들기까지 했는데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아니
지나간 정도가 아니라 그 고릴라 변장을 한 사람이 중간에 멈춰 서서 고릴라처럼 가
슴을 두드리기까지 했는데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 볼을 패스
한 횟수와 드리볼한 횟수를 정확하게 세는 사람에게 상금까지 걸었더라면 절반 정도
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가 그 경기장을 오갔는지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사람이 주의를 집중할 경우, 그 집중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다른 것이 보이
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
을 경우 아무리 커다란 움직임이 그 사람 주위에서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음을 보여주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종종 보면 자녀
들 가운데 책에 한번 붙들리면 옆에서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심지어 자기 이름을 불러도 알지 못하고 책 속에 푹 빠지는 그런 아이들이 있다.
모두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갖는 장점이 있다면 두 가지를 들 수가 있다. 하나는 '높은 성취
도'이다. 사실 역사상 큰일을 이룬 사람들, 특히 학문적인 일에 있어 큰 업적을 이
룬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상당한 집중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집중도가 높았기에 그만큼 남보다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고 또 남보다 더많은 것을 깨닫거나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집중도가 높은 만큼 주변 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앞의 실험
이 보여주듯이 자기 일에 특히 몰두하는 사람은 남이 뭐라고 하든 남의 말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환경이 열악하든 말든, 환경이 어렵게 되든 말든 개의치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물론 환경이 좋아진다고 해서 그 하는 일이나 의식이 해이해지지도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뜻한바 자신들의 일을 크게 성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같은 '집중현상'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다른 누구보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
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다음 구절들은
그리스도인의 그 같은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
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로마서 14장 8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든 이제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엔 '집중현상'
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위한 삶'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다
른 모든 주위의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애
쓸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자연히 주위
의 것들 혹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의 고백은 참으
로 의미심장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다.(빌립보서 3장 7-8절 참조) 즉 이제껏 자기 삶에 가장 중요
하게 여겨졌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전혀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함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중현상'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엔 단점 또한 크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주위에 특기할만한 큰 움직임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이기심과 결합될 때에 그 결과는 자못 심각하다.
즉 철저하게 주위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자기밖
에 모르게 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제품이 하나 있다면 iPod라는 것이다. 손 안에 들
어오는 핸드폰 반 토막만한 크기의 작은 전자제품인데 그 안에 수천 곡의 노래를 담을
수 있고 심지어 웬만한 영화까지 그 안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그 같은 기기(器機)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대단한 시대(?) 시대를 살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시대가 시대인
지라 우리 아이들 역시 iPod를 가지고 있는데 늘 그것을 휴대하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함께 차를 타도, 함께 어디를 가도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
이들은 그 iPod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일부러 대화하려면 그 iPod를 끄
게 한 다음에 대화해야 한다. 그 아이들은 '집중현상'으로 인해 바깥 세계와 차단되어
있다. 아니, 이제는 '집중'을 넘어서서 '고립'의 세계에 들어가 있음을 보게 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집중현상'의 장점을 취할 필요는 있지만 이 '집중현상'의 단
점은 철저하게 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
개인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집중현상'을 가져야 하지만 교회생활에
있어서는 '집중현상'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회생활에 있어
집중현상이 나타날 경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자
신만 알게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
스도인다운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만 알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것-
이는 죄성에 사로잡힌 인간의 본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 같은 모습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란 더 이상 죄성에
사로잡힌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잘 가르쳐주고 있다. 다
음은 그것을 보여주는 몇 구절들이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립보서 2장 4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 6장 2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브리서 10장 24절)

이상의 내용들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내용
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교회생활에 있어선 결코 '개인적인 집중현상'을 가져서
는 안 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집중현상'을 가질 것이라면 남들을 돌아보고,
남들의 짐을 지는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 그것
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최첨단의 테크놀로지로 인해 점점 더 '관계'가 사라지고
점점 더 자기에게로 고립되는 그 같은 시대가 되었다. 이 같은 시대 속에서 우린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남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되는 그 같은 삶을 살기가
쉽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시대
와 세월을 역행하는 삶이다. 아니,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우리만의 삶
이다. 그것은 스스로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열
려있는 삶,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돌아보는 삶이다. 모두가 그 같은 삶을 살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칭찬 듣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기를 바란다.

✎ 김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