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소식 전합니다



  버팔로한인장로교회 성도님들 주안에서 평안하신지요? 저는 얼마전에 어머님 병문안차 한국에 다녀온 후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삶은 왜 그리도 빠른지요(미국도 마찬가지지요). 좀 더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사역하면서 살려고 하는데.... 그런데도 시간의 빠르게 지나감 속에서 이제야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우기입니다. 요즘은 하늘에 구멍이 났는가 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립니다. 스마랑이나 자카르타 등 많은 도시에서 홍수로 인하여 고생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700m 이상의 고지대라 홍수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쌀쌀한 날씨와 높은 습도로 인하여 쉽게 피곤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온 가족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그 은혜의 삶을 나누고자 합니다.


1. Kabar keluarku (저희 가정의 이야기)

  며칠전 아이들이 집 앞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다가 점점 불놀이에 재미를 붙여서 집에 있는 신문과 종이 박스를 내다가 태웠습니다. 그랬더니 엄청나게 많은 연기와 재가 일어났다가 아래로 떨어졌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눈이라고 하면서 좋아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지만 결국 저도 즐겁게 아이들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잡으면서 놀았습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감자를 구워 먹었는데 그 맛이 또 일품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신다면 눈 놀이 할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부담이 되는 아이들의 등록금이 하나님의 채워주심 속에 잘 해결이 되어, 이번 학기도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잘 생활하고 있고 아내도 공부하면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현지인들이 비가 많은 우기에 병이 걸려 고생하는데 온 가족이 건강하게 잘 지내니 감사할 뿐입니다.


2. 깔리만탄 섬의 사마린다를 다녀옴

  저는 시간이 허락되는대로 살고 있는 지역과는 많이 떨어진 교회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7시간 이상 떨어진 교회들을 방문하여 현지 교회의 상황을 둘러본 후 함께 협력할 사항에 대해 논의를 하였습니다. 새벽에 출발하여 밤늦게 돌아오거나 며칠 동안 현지 교회에서 잠을 자면서 다녀야 하는 선교여행으로 최대한의 시간을 내어서 제가 살고 있는 자와 섬의 현지교회들을 둘러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1월 중순 중 약 2주 동안 사마린다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가지 않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과 동행을 했습니다. 제가 사마린다 지역을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분들도 요청하여 함께 다녀왔습니다. 항상 혼자 다니던 여행에 몇 분이

선교의 현장



밀림 속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함께 하니 더 정답고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한 교회를 방문하는데 10시간 이상 걸리고(어느 교회는 강을 건너는데도 몇 시간씩 걸리지만), 또 차를 타고 가다가 다시 배로 갈아타고 가야 했지만, 함께 선교여행을 하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현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아픈 분들을 위해 심방 가서 기도해드리고 부항도 해드리고... 현지목사님과 기도하고 위로하니 온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하루에 잠은 2-3시간 정도밖에 못자고, 잠자리는 지저분하고, 먹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선교여행은 저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꽉 차오르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기에 피곤한지도 모르고 다녔습니다. 설교하기 전에 말씀을 준비하면 하나님이 그때의 상황에 가장 적절한 말씀을 주셔서 설교할 수 있었고, 함께 부르는 인도네시아 찬양에 은혜의 눈물을 흘리고.....이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자의 참 기쁨임을 내 삶을 통해 직접 체험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솟아오릅니다

  앞으로 3월이나 4월쯤 해서 깔리만탄의 서쪽 지역이나 슬라웨시 섬을 한 번 더 다녀올 계획입니다. 아마 그때는 저 혼자 갈 것 같은데.... 그때는 가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기도편지를 올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위험한 상황이 저에게 다가오며, 영적으로도 더 강해야하기 때문이지요.


3. 압디엘 신학교 사역

  1월 30일에 압디엘 신학교는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30여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졸업하여 자신의 사역지로 떠났으며,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70명의 전도단을 파송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월 첫 주부터 강의가 시작되었고 이번 학기에서도 구약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1월 중순에는 이사 알마시 교단의 총회장님과 임원들과 회의를 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논의했고, 그 부분을 하나씩 실행해 나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한 4년 동안 제가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사역을 하니 이제 현지 교회에서 저를 찾게 되고 혼자가 아닌 협력을 통해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선교의 현장



4. 공부방 사역

  공부방이 작년까지 3곳이었으나 올 초에 다시 한 곳을 개척하였습니다. 암뻴 교회에 세웠는데 전에는 교회 안에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공부를 가르치다보니 무슬림들이 달가워하지 않다가 교회 마당 한쪽 편에 세워진 공부방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보내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제가 그 교회에 갔을 때는 흉흉하게만 느껴지던 교회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점점 활기가 차고 있고, 단지 공부방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새롭게 변화되어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록 공부방으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정말 중요한 전초기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거라 믿습니다.

  슬로르조 교회의 공부방은 우기 때가 되자 빗물이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옆을 벽돌로 막는 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었지만 지금 잘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건물이 완성이 되면 교회에서 어린이 집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전력이 약한 관계로 LCD 대신 컴퓨터로 영화상영

그리고 즐라렘 교회도 가장 뒤에 있는 공부방이 너무 지저분하고 낡아져서 다시 시멘트로 벽면을 바르고 페인트칠을 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진행하고 있는 컴퓨터교실을 위해 두 개의 모니터가 필요하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램 등이 필요하여 구입할 계획입니다.

  수기와라스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 햄버거 파티를 열었습니다. 현지 아이들은 햄버거를 먹어본 경험이 없어서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끄랑깽의 어린 아이들을 위해 수영장에 데리고 갔습니다. 30여명의 어린 아이들이 높은 산악지대에 살다보니 수영장을 가볼 기회가 없어서 그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가니 얼마나 좋아 하든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안타왔던 일은 제가 예전에 훈련 받던 GEMF 라는 단체에서 LCD를 구입해 주었기에 그것을 가지고 공부방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로 약속을 하였고, 100명 이상 되는 아이들이 모였는데 글쎄 전력이 약해서 LCD를 틀 수 없게 되었답니다. 얼마나 미안하던지.... 할 수 없이 저의 컴퓨터로 보기는 했지만....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전력이 약하니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네요. 그래도 컴퓨터로 보는 영화를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선교의 현장

  



5. 치유를 위한 기도제목

  2월 첫째 주에 암뻴 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현지목사님께서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한 아이는 4살인데 2년 전에 오른쪽 머리에 작은 구멍이 생긴 후 염증이 생기면서 일어서서 걸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주고 부항도 좀 놔주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상태라 CT 촬영을 위한 경비를 주고 다음 주에 검사 결과를 놓고 앞으로의 진료 방법에 대해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로 나음을 받는 것이기에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기도하려고 하오니 모든 분들께서는 이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름은 4살이 된 아이가 요수아(여호수아임)이고 2살된 아이가 다마르입니다.


  2월 16일부터 가나안 교회에서 단기팀이 저의 사역지로 옵니다. 함께 일주일 동안 사역하면서 하나님의 치유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충만한 사역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또한 우기인 상황에서 모두 건강하고 안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좀 더 자주 사역을 보고해야 하는데 점점 더 사역의 장이 많아 지다보니 자주 연락드리지 못함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상 모든 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윤재남, 김미경, 요셉, 성빈, 성우 선교사 올림

 

Let the Nations Be Glad!–The Purpose of Mission(2)

(열방들로 기뻐하게 하라! – 선교의 목적)



(지난호에 이어)

한 가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 누구보다 하나님 자신이 사모한다는 사실이다. 그분의 사모하심과 열정은 그 누구도 비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 안에서 최상의 기쁨을 누리신다. 그래서 그분의 최상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사야 48장 9‐11절‐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누구보다 질투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의 백성을 택하셨다. (에베소서 1:4‐6,12,14)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 (이사야 43:6‐7)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다 (시편 106:7‐8)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사무엘상 12:20‐22)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였다 (요한복음 1:14,18)

예수님은 모든 역사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였다 (요한복음 7:18)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고난을 감당하셨다. (요한복음 12:27,28)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다. (이사야 43: 25)

성령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6:14)

하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모든 자를 심판아래 놓아 두셨다 (로마서 1:23)

마지막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을 비출 것이다. (요한계시록 21:23)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책 “ The Dissertation Concerning the End for Which God Created the World”에서 그는 하나님의 역사의 위대한 목적은 단 한 가지…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나갈 수 없는 죄인들이다. 로마서 3장 23절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죽어 있다.(에베소서 4:18). 결국 우리의 인생의 종착지는 “영원한 형벌”(마태복음 25:46)과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으로부터 영원한 결별 “(데살로니가후서 1:9)이요 “영원한 불못 곧 두번째 사망”(요한계시록 14:11,20:10,21:8)이다.

선교칼럼



하나님의 심판이 이토록 가혹한 것은 자신의 영광을 향한 질투가 얼마나 크신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의 사랑과 상충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향한 질투는 우리가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근원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영광 앞에 나갈 수 없었던 영원한 형벌에 놓인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사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 분 안에서 영원한 기업을 얻고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며 그 영광 가운데 완전한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에베소서 1:3‐14).


로마서 5:1‐2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곧,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인간을 (로마서 3:2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완전하게 회복시키셔서, 그토록 질투하시는 그분의 아름다운 영광가운데 나아와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맛보며 그 근원이 되는 하나님이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향한 질투가 크면 클수록 우리를 향한 사랑이 커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향한 질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예수님은 곧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영광을 보여 주셨다. (히브리서 1:3 ‐ 이(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 자신이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다. 선교는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이다. ‘선교’ 수단을 통하여 온 열방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길 원하신다. 온 열방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길 원하신다. 이것이 ‘선교’의 목적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사모함과 열정으로 충만한 온전한 예배자로 설 때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그분 앞에 온전한 예배자로 서 있는가?

‐‐‐이 글은“Let the Nations Be Glad”(by John Piper) 책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여 필자가 작성함. 임홍선

 

세네카 인디언과 버팔로

전쟁이야기 (26)



무자년(戊子年)에 시작된 「슬픈 인디언 이야기」가 어느덧 기축년(己丑年)의 문턱을 넘어서고 말았네요. 갈길은 ‘상거가 먼데’ 왠지 마음 어깨에 슬며시 내려앉는 무게감, 혹 초조감 같은 것. 복받을 일만 골라 하는 내 독자들에게 정량 미달의 글만 진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맑고 고운 심성과 맛깔스런 손맛을 지닌 우리 교회 자매들, 그들이 끓여내는 국밥, 아 조선의 맛! 제 글에도 그 정도의 풍미는 들어있어야 할 터인데, 이를 어쩐다.

그러나 「소의 해」이니 그 소의 ‘유유자적함’과 나아가 ‘황소고집’을 본받아 느긋이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는 스스로의 응원 소리와 저를 위한 누군가의 기도 소리 또한 들려오고 있으니.


청교도는 슬쩍 옆으로 밀어놓고, 이번엔 「인디언 전설」쪽으로 이야기의 가닥을 잡아보지요.

이 세상에 전설 없는 족속이나 나라가 어디 있겠어요. 북미주의 원주민인 인디언들도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지요. 그들에겐 언어는 있었으나 그것을 글로 표현할 문자가 없었다고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올 수밖에. 다행히 전설연구가들과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상당수의 전설이 문자화 될 수 있었고, 또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도 그들의 글 속에 간혹 인디언의 전설을 싣고 있었답니다.

저 광막한 대지 위에 밀어닥치는 엄청난 자연의 힘, 그 앞에 선 미약한 인간, 그들이 갖게 되는 경외심, 두려움, 때로는 연민의 정. 어떤 전설은 차라리 신화에 가깝네요.

지난 해 5월, 서북부 지역에 살고 있던 오사지 부족의 전설을 소개했었는데 혹 기억하고 계실런지. 해는 아버지요 땅은 그들의 어머니라는 것.


세네카 인디언(Seneca Indian)의 전설을 들려드릴 참인데, 우선 제가 인용하고 있는 책들을 소개하지요.

1. 「영원한 메아리(Lasting Echoes)」, 부루칵(Joseph Bruchac)이라는 인디언 문필가의 책, 「아메리카 원주민의 구전역사(An Oral History of Native American People)」란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2. 「아메리카 민담집(American Folklore)」은 「Life」지의 편집인들이 엮은 책이고.

3. 메릴(Arch Merrill)의 「세네카인들의 땅(Land of Senecas)」

그리스도인과 전쟁



4. 아터(Jack Utter)의 「아메리카 인디언(American Indians)」

5. 비스코(Jim Bisco)의 「대버팔로 회고록(A Greater Look at Greater Buffalo)」

6. 마우(Clayton Mau)의 「중서부뉴욕 발전사(The Development of Central and Western New York)」


세네카란 말은 우리에게 퍽 익숙한 이름이지요. 이 사람들이 쓰던 옛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지명, 호수명, 거리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지.

Geneseo, Ontario, Erie, Niagara, Tonawanda, Cheektowaga, Tuscarora, Gowanda, Delaware, Mohawk, Batavia 등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서부뉴욕이 모두 그들의 땅이었다는 것은 알고 계실터. 그 뿐이 아니지요. 뉴욕주 전체가 그들의 땅이었으니. 적어도 17세기 초까지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막강했으면 그들의 영향력이 일리노이와 캐롤라이나까지 미쳤으리요.

그러나 1797년, 20일간의 모닥불 앞 상담 끝에 그 당시 세네카 추장이던 렏 재켓(Red Jacket)은 1.3백만 에이커의 땅을 단돈 10만불에 팔아넘기고 말았으니 원.

이 사람들의 역사 이야기 언제 자세하게 말씀드릴 짬이 있을 것인가.


Buffalo, 우리의 제 2의 고향, 이 정겨운 이름의 어원(語源)을 한번 짚어보지 않고 넘어갈 재간이 있나. 혹 알고 계세요, 버팔로란 이름이 생기게 된 유래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애매모호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요. 인디언의 말이 아닐까 또는 들소가 영어로 buffalo이니 거기에서 따온 것은 아닐까.

이상하게도 버팔로엔 소와 관련된 이름들이 많네요. 「Buffalo Bills」가 그렇고, 마이너 리그 야구팀의 명칭이 「Bison」이요, UB 축구팀도 「Bulls」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실제로는 이 서부뉴욕 일대에서 들소가 살았다는 기록이 전무하답니다. 놀라셨지요.

「대버팔로 회고록」은 이런 이야기를 싣고 있습니다.


약 250년 전에는 이 지역을 「Buffalo Creek」이라고 불렀다. 1700년대 중반, 서부에서 이곳으로 이사온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Buffaloe」. 인디언과 백인 사이의 혼혈아였던 그는 샛강(Creek) 기슭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초기 이민자들은 그의 거처를 가르켜 「Buffaloe's Creek」이라고 불렀다. 점차 사람 수가 늘어나면서 더 넓은 터전으로 옮겨가게된 이들은 그의 이름 「Buffaloe」에서 ‘e'자를 빼고 그냥 「Buffalo」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과 전쟁



제 조카 최준홍군이 컴퓨터에서 뽑아낸 글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네요.

‘Beau Fleuve Theory(아름다운 강 가설)’ 백인들이 오뉴월 파리 모여들듯 하기 훨씬 전에 프랑스 탐험대가 이곳에 이르렀답니다. 나이아가라 강(Niagara River)을 본 이들은 그 아름다움에 너무나 감격해서 냅다 지른 소리가 있었으니 ‘beau fleuve(beautiful river)!' 이 프랑스 말이 와전(訛傳)되어 Buffalo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Riviere aux Chevaux Theory(River of Horses Theory, 말들의 강 가설)’. 가장 오래된 설로 1825년에 출판까지 되었다네요. 무슨 불법적인 연회가 있었던 모양인데, 그곳에 어디서 훔쳐온 말고기를 들소고기(Bison meat)라고 감쪽같이 속여 팔아먹은 녀석이 있었답니다. 하여, 이 연회 장소를 Buffalo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이지요.

참, buffalo와 bison의 구분이 애매하네요. 사전을 찾아봐도 둘다 그냥 「아메리카 들소」라고만 적혀 있으니.

「세네카인들의 땅」도 비슷한 내용 뿐인데, ‘버팔로라는 말에선 역시 인디언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란 말과 ‘inconclusive(불확정적)’란 단어로 끝을 맺고 있어요. 모두가 가설일 뿐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해답을 주고 있지 않으니, 어허 닭 쫓던 개 먼 산 바라보는 꼴이 되고 말았네그려.


세네카 인디언의 전설입니다. 「하늘 여인(Sky Woman)」이 그 제목. 어린 시절 밤 익기를 기다리며 화롯가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듣던 옛 이야기처럼 엮어볼테니 들어보세요.


먼 하늘나라 그 어딘가에 하늘 주인(Chief of Heaven)'과 대지의 어머니(Earth Mother)가 살고 있었지. 우리말로 옥황상제라고나 할까, 하늘 주인말야. 그들은 흰 집에 살고 있었는데 빛의 나무(Tree of Light)라고 불리우는 거대한 나무가 그 집을 뒤덮고 있었어.

그 때까지 해도 없었고 땅도 없었대. 하늘 아래로는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바다 동물들과 바다 새들이 그 안에서 살고 있었다네.

빛의 나무에는 아름답게 핀 꽃들이 만발해 있었어요. 그 꽃들로부터 찬란한 빛이 나와 해 없는 하늘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거라.

대지의 어머니는 마치 에덴동산의 이브처럼 아주 아주 예뻤대. 그녀가 아기를 가지게 되었지. 하늘 주인의 입김을 한번 마셨는데 고만 임신을 한거야. 그런데 말야, 그토록 고운 대지의 어머니에게도 문제가 있었어. 그녀의 끊임없는 호기심 때문이었지. 한번 의심을 품게 되면 반드시 그 원인을 찾아내야 직성이 풀리고 마니 이 또한 병폐라.

그리스도인과 전쟁



저 빛의 나무 뿌리 밑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글쎄 그 나무 밑을 파기 시작하네. 아무리 빛의 나무라한들 별 수가 있나. 그 큰 나무가 드디어 뿌리째 뽑혀지고 말았지. 뻥 뚫린 구멍, 하늘에 큰 구멍이 생긴거야.

하늘 주인이 노발대발,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네그려. 그렇지 않아도 제 입김 한 번에 임신한 그녀를 질투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런 엄청난 짓까지 저질렀으니.

앞뒤 가릴 것 없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하늘 구멍 속으로 던져버렸지.

큰일났네. 대지의 어머니가 쏜살같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려오고 있으니말야.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여 그녀에게 「하늘 여인」이란 별명이 붙여졌고.

「하늘 여인 구출 작전회의」가 열렸지. 바다 새들과 짐승들이 모두 모였어. 그녀를 받기 위해 수천수만의 새들이 날개를 활짝 펴서 서로서로 겹쳐대니 꼭 쿠션 좋은 양탄자 같이 되었네.

한편, 바다에서도 구출작전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지. 바다 속으로부터 헤엄쳐 올라온 큰 거북이 물 위에 조용히 떠있고, 사향쥐와 두꺼비는 뻔질나게 다이빙을 하는거라.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 흙을 물어와서는 거북이 잔등에 쌓아 올리고 있었던 거지. 별 신기한 일도 다 있네. 흙이 자라나다니. 거북이 등에 쌓인 흙이 점점 커지더니 큰 섬이 된거야.

떨어지고 있는 하늘 여인을 살포시 자기들 날개 위에 받은 물새들은 조심조심 그녀를 섬 위에 내려 놓았지.

임신 중이던 하늘 여인이 딸을 낳았어요. 태어나자마자 어른이 된 그 딸은 정체를 밝히지 않는 연인을 만나 결혼을 하네. 그리고 곧 아기를 가지게 되었지. 쌍둥이 사내아이들이었어. 이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서로 다투고 싸웠다는데, 한 아이는 살결이 희고 선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서 「선한 마음(Good Mind)」라고 불렀고, 다른 아이는 검으튀튀한 용모에 마음씨마저 악해 「악한 마음(Evil Mind)」이라고 불렀다네.

악한 마음은 어서 속히 세상에 나가겠다며 어미의 겨드랑이를 비집고 나왔다지 뭐야. 어미가 어떻게 되었겠어. 죽고 말았지. 슬픔에 젖은 하늘 여인은 쌍둥이들과 함께 야트막한 묘지에 그녀를 장사지냈어요.

그런데 신비로운 일이 또다시 일어나네그려. 그녀의 죽은 몸에서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한 거야.

젖가슴 위 흙으로부터는 옥수수가, 복부에선 호박이, 손가락에서는 콩이, 발가락에서는 감자가 그리고 머리로부터는 담배가.

선한 마음은 하늘나라로 힘들고 먼 여행을 떠났지.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였어.

그리스도인과 전쟁



높은 산꼭대기 위에서 빛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햇님이었어.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을 다 통과케 한 후 햇님은 그를 내 아들이라 불렀지.

지상으로 돌아온 선한 마음은 온갖 종류의 좋은 것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과일도 만들고 동물과 물고기도 만들었지. 반면, 악한 마음은 계속 방해짓만 하고 있었지. 예를 들자면, 물고기에다 작은 가시들을 많이 집어넣는 것 같은 짓이었어. 사람들이 맛있는 생선을 쉽게 먹지 못하도록 그런 고약한 짓을 한거지.

악한 마음은 구약의 가인처럼 선한 마음을 죽이려고 했네. 실패했지. 그러자 그는 사악한 것들을 모두 데리고 깜깜한 지하세계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네.

선한 마음은 인간을 창조하게 되지. 진흙을 빚어서 자기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거야.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그대로 만들었대요.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하지?

이 모든 일이 끝나자 선한 마음은 빛의 줄기를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갔지. 하늘 여인도 하늘의 주인에게로 돌아갔고.

그 때로부터 인디언에게 땅은 어머니가 되었고, 해는 아버지가 되었다는 이야기야.


인디언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세가지가 있다고 하네요. 옥수수, 콩, 호박, 해와 땅이 어울려 빚어낸 이것들을 세 자매라고 부르면서 신성시하고 있는데 특히 옥수수를 귀하게 여기고 있지요. 나중에, 인디언의 옥수수 밭을 불태운 백인들이 있었어요. 인디언은 그들에게 신성모독의 불법자라는 욕을 퍼붓고 있네요.

흔히들 역사를 바꾼 작물로 감자와 옥수수를 들지요. 16세기 중국으로 건너간 옥수수가 한국에 전래된 것은 18세기 초랍니다.

옥수수라는 말의 뿌리는 옥수수의 중국 발음인 위슈슈에서 비롯된 것이고, 별칭인 강냉이는 전래시킨 중국 남부지방의 통칭인 강남에서 비롯되었답니다. 연전에 한국의 옥수수 박사란 분이 옥수수 씨앗을 들고 북한을 방문한다는 기사가 생각나네요.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이 강냉이 죽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좋으련만.

다음엔 「청교도와 인디언」으로 되돌아 갑니다.

주안에서 샬롬.  ✎  이은모

 

성경이 만든 사람(3)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이야기-



제 3부 최고의 평신도 사역자

  사람, 교회, 비즈니스 등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믿었던 워너메이커는 자신의 사업과 주일학교 사역을 통해 이 신념을 입증시켰다. 1858년 27명의 어린이와 함께 시작한 베다니 주일학교가 10년 후에 1천 명을, 15년 후에 2,248명으로 꾸준히 성장하였고, 그가 체신부 장관을 지내던 1892년에는 3천명 이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워너메이커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삶의 원칙이 있었는데, 바로 ‘주일 성수’였다. 그는 주일을 기다리고 주일을 준비하며 주일 예배를 통해 새 힘을 공급받으며 살아가는 신앙인이었다. 당시 해리슨 대통령이 그를 체신부 장관으로 임명하고자 했을 때에 ‘주일 성수를 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장관직을 수락한 일로도 유명하다.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홀히 하면서 국민이나 대통령과의 약속도 지킬 수 있겠느냐’는 말로 신임 장관의 책임감에 대해 비판적인 기자의 질문에 답하였다. 워너메이커는 ‘장관직이 주일학교 교사직만도 못하냐‘는 질문에 주저함 없이 “장관직은 몇 년 하다 말 부업이지만, 주일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 동안 해야 할 본업입니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주중에는 워싱턴 DC에서 장관 업무를 보고, 주말에는 주일학교 사역을 위해 필라델피아로 한 번도 빠짐없이 4년 동안 최선을 다해 헌신하였다.


  그러나 주일성수의 문제로 워너메이커가 큰 아들 토머스와 큰 고통을 겪는 일이 있었다. 토머스가 미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일간지인 The North America를 인수해서 주일자 신문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주일성수를 목숨같이 여기는 아버지 워너메이커에게 굉장한 당혹감과 슬픔을 안겨준 사건이었고, 결국 아들 신문사의 주식을 사들여 주일자 신문을 봉쇄하기까지 했다. 그는 “주일은 사람의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설명하기 위해 이 신문 1면에 자신은 주일자 신문과 주일을 파괴하는 어떤 행위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포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계속 주일자 신문을 발행하였고 워너메이커는 자신이 사랑하고 헌신한 교회에 장로직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고 사표를 제출하였다. 교회 지도자들이 이 사표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워너메이커가 얼마나 주일성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지키며 살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신앙의 거장들



  워너메이커가 주일학교 부흥과 사업 번창, 그리고 장관직 수행까지 이렇게 엄청난 일들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일에 대한 열정과 창조적인 아이디어, 탁월한 조직운영 능력, 큰 믿음과 간절한 기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등의 여러 요인이 있다. 그는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장관직에 오른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교회 사역을 가장 우선시하며, 20살 청년 때나 80살 노인이 되어서도 교회의 어려운 가정을 심방하며 위로하고 도왔다. 그는 65년을 베다니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하였고, 어린이들의 자상한 아버지이며 진정한 친구가 되고자 항상 노력했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바쁜 사람이었지만 그는 주일학교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친근하게 대하였는데, 60회 생일을 맞았을 무렵에는 4천명의 어린이의 이름과 부모의 이름, 직업까지 다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에 대해 각별한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을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한다는 확신을 가진 워너메이커는 복사기가 없던 그 시절, 밤을 새우며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스런 편지를 쓰곤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매일 한 사람이라고 돕는 기회를 가진 것은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어린 영혼들을 위해 나누고 봉사하였다.


  이러한 그의 헌신과 열정에 힘입어 베다니 교회는 1902년 워너메이커 소유의 큰 땅위에 세계적인 규모의 교회 건물을 건축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다니 교회로 몰려들었고, 결국 워너메이커는 20세기의 모델 교회는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음을 예견하게 된다. 그는 베다니의 정신을 가진 새로운 교회를 더 많은 지역에 세워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형제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물질을 아끼지 않고 헌금하여 1902년 10월 필라델피아의 남쪽 지역에 ‘존 챔버스 메모리얼 교회’를 세우고, 1906년에는 ‘베다니 템플 교회’를, 1911년엔 ‘베다니 연합교회’를 세우게 된다. 또한 그는 형제교회가 아니더라도 다른 교회들을 건축하는 일에 재정적으로 도왔고, 오르간, 피아노, 의자, 성찬기 등을 기증하였다. 볼티모어의 ‘바울 교회’와 젠킨타운의 ‘그레이스 교회’가 바로 워너메이커의 헌금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그는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희생적으로 헌신하면서도 즐거움으로 그 멍에를 메게 해주소서.’라고 한 자신의 기도대로 삶을 살았다. 웅장한 베다니 교회를 완공하고 헌당식을 갖던 날 워너메이커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헌금할 돈이 없어 벽돌 몇 장을 드린 저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축복해주셨습니다.” 

  워너메이커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섬기는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베다니 교회의 담임목사인 맥레난의 ‘기도 선집’이라는 세 권의 책을 통해 전해진다.

(10면에서)

워너메이커는‘기도란 하나님과 손을 잡는 것’이라고 믿었고, 기도하는 장소와 진실성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백화점 사업에 열중해 있을 때도 장관직으로 바쁠 때도 그는 항상 매일 아침을 기도로 시작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고자 했다.


  한편 워너메이커는, 당시 여성운동을 벌이고 어머니 사역 클럽을 결성하기도 했던 주일학교 교사인 ‘애나 자비스’의 노력에 감동받아, 1908년 5월 둘째 주에 백화점에서 수천 명의 직원들과 그들의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날‘ 기념행사를 가졌다. 그는 어머니들에게 기념품을 선물하고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이후 워너메이커는 어머니날 제정을 정부에 건의하고 지속적으로 홍보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으로 1914년 윌슨 대통령이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공식 선포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1930년에 청주의 한 교회 주일학교에서부터 어머니날을 기념하기 시작했고,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어머니날로 발표하여 지키다가, 1974년부터는 ‘어버이날’로 개칭하여 오늘날까지 소중히 지켜지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  “성경이 만든 사람-존 워너메이커 ”(전광, 생명의 말씀사) 요약:정재은

 

Now, That's a Good Question!



질문: 구약에서는 기생 라합이나 히브리 산파들 또는 다른 이들이 사람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대가로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이 축복할 만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있지 않을까요?


  간단히 말해 제 대답은 “예”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겠지요. 많은 기독교 윤리학자들이 거짓말에 대한 금지가 절대적이고 어떤 경우로도 선의의 거짓말(White lies)로 불리는 등 정당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다른 이들은 라합과 히브리 조산원들의 예를 들면서 그들의 거짓말이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들의 거짓말에 대해 축복했다든지 용서를 했다든지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없지만 문맥상으로 그들의 부정직에 대해 꾸짖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거역하는 그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야곱의 어미 리브가가 에서보다는 야곱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그 아비 이삭을 속이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결국 에서보다는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라고 하고 이 리브가의 속임수가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나이 많은 이가 나이 어린이를 섬긴다는 것을 이루는데 도움을 줬다고 하며 그 속임수를 정당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리브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도왔다는 것이지요. 결국 가룟유다가 했던 것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적의 손에 넘겨줬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배신에 대해 엄중히 심판하셨습니다. 저는 리브가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또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것은 절대로 거짓말 때문에 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라합도 같은 맥락에서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수세기 동안 교회에서 진리의 윤리학은 정의와 연관되어져서 개발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사실들을 말하도록 해야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정말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거짓말이 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며 그런 상황들은 전쟁이나 살인, 또는 범죄행위와 관련된 분명히 극한 상황일 것입니다. 만약에 한 살인자가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이 침실에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또 그 살인자가 아이들을 죽이리라고 확신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최대한의 기지를 발휘해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한 도덕적 의무일 것입니다.

성경 Q&A



  저는 전쟁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풋볼 게임에서 쿼터백이 상대팀에게 어떤 공격을 할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면 전쟁에서 어떤 사람이 그 적들에게 자기편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절대로 알려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쿼터백은 속임수나 가장하는 행위를 게임을 하는 동안 사용할 수 있지요. 일종의 풋볼구장에서의 전쟁이지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유태인을 보호하기 위해 나치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는 거짓말이 그런 류의 악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Now, That's a Good Question!" R.C. Sproul 번역:유진희

 

이건 아니지 싶다



  친구 가운데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가 있었다. 경기가 어려워지는 바람에 자금회전이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주위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조금만 자금을 지원해주면 현재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겠다고 하면서. 주위의 친구들이 다 같이 어렵지만 안 되었다 싶은 마음에 힘닿는 데까지 자금을 모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리는 소문이 그 친구의 씀씀이가 보통 헤픈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엔 차도 예전보다 더 좋은 고급차로 바꾸어 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업이 잘 되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크게 상관할 문제가 아니겠지만 사업은 조금도 나아진 것 없이 순전히 자기들이 어렵게 모아준 자금으로 그렇게 흥청망청 쓰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생각과 함께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당사자를 찾아가 물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이 소문과 같았다. 오히려 그 친구는 어이없어 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자기는 본래 살아오던 대로 살고 있을 뿐이라고 하면서 자동차도 자기가 평소 해오던 대로 때가 되어 교체한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기 삶의 수준이 예전만 못한 것에 대해서 불평을 쏟아놓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찾아온 친구들은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같은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참으로 기가 막힌 친구 아닌가?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가정’해서 생각해본 내용이다. 만일에 당신 주위에 정말로 이 같은 친구가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리고 그 친구에게 실제로 당신의 피 같은 돈이 들어갔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 친구에 대해 배신감이 들 것이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그 돈을 돌려받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그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도움은커녕 다시는 상종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정’해도 황당한 일이 얼마 전 실제로 일어났다. 다른 곳이 아닌 이 미국에서, 그것도 개인이 아닌 대형 금융기관들에서, 또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말이다. 다름 아닌 ‘월가’(Wall街)의 얘기이다. 듣는 바로는 월가 금융인들이 지난해 말에 챙겨간 보너스가 자그마치 184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자기들 돈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면 보너스를 받든 돈 잔치를 하든 무슨 상관이랴! 문제는 그들이 나누어가진 돈이 국민들의 혈세로 지원한 구제금융이라는 데 있다. 이를테면 가까운 친구들이 사업자금에 쓰라고 지원해준 돈을 개인 용도로 흥청망청 쓴 것과 같다고나 할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요즘 미국의 경제가 말이 아니다. 특별히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차원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국민들의 혈세로 그들에게 엄청난 금융지원을 했더니만 그 돈으로 자기들끼리 보너스 잔치를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월가’를 향한 미 국민들의 분노와 비난의 화살이 보통이 아니다. 이 같은 국민들의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그들은 변명하기를 이는 월가의 ‘관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몰이해(沒理解)의 소치라고 했다는데... 월가의 오랜 관행은 “실적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으로 회사의 전체적인 실적보다 개인의 성과에 더욱 무게를 두는 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보너스는 일종의 급여의 연장으로 취급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예외 없이 보너스 지급을 했다는 것인데. 글쎄다, 그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지.

  아무리 그럴지라도 ‘때’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액수’라는 것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사가 망해가는 마당에 그리고 망해가는 회사를 회생시키고자 나랏돈을 지원받는 마당에 184억불 보너스가 웬 말인가? 이는 1인당 평균 10만 불이 넘는 금액이라고 한다. 모든 미 국민들이 불경기에 신음하고 일자리 불안에 시달리는 마당에 국민들의 돈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10만 불 이상씩 나누어 갖는 것이 과연 ‘관행’이라는 말로 설명이 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백번 양보해서 생각해도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기가 막힌 것은 대다수의 ‘월가 직원들’이 자기들이 받은 보너스에 대해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년에 자기들이 받은 보너스에 비해 턱없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듣는 바로는 작년에 월가 직원들이 받은 보너스는 모두 329억 달러였다고 한다. 그때야 자기들의 돈으로 돈 잔치를 했겠지만, 지금은 자기들 돈이 아닌 국민들의 혈세 아닌가? 어찌 그것을 자기들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예전만 못하다고 투덜거린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같은 기사들을 보자니 문득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떠올랐다. 정말이지 참으로 뻔뻔한 사람들 아닌가? 아니 ‘후안무치’ 정도가 아니라 이는 ‘범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혈세를 자기들 호주머니에 넣었으니 나랏돈을 횡량한 범죄 아닌가? 비록 정치도 모르고, 경제도 모르고, ‘월가의 관행’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는 나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월가’(Wall街)의 이 같은 후안무치한 관행을 전해 듣고서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이 크게 발끈하며 격노했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관행일지라도 이번 월가의 보너스 지급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하면서 ‘부끄러운 일’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이라고 성토하였다. 그는 크게 불쾌한 표정으로 “회사의 경영진들이 이익을 내서 보너스를 받던 때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고 하면서 “월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일갈(一喝)하였다. 정말이지 백번 옳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번 ‘월가’의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면서 그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이기적인 사고방식과 자기중심적인 Lifestyle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이 사회야 침몰하든 말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 어쩌면 그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의식이 아닌가 싶다. ‘월가 사람들’은 단지 그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따름이고.

  이번 일을 목격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시대야말로 ‘상식’과 ‘양심’을 상실한 시대라는 것이다. 아무리 관행이라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국민들의 돈으로 거금의 보너스 잔치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들에게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결코 그 같은 일은 저지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십여 년 전에 한국에서 비슷한 일들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IMF 사태로 인해 한국이 무척이나 어려울 때였다. 그때 국가 경제회복을 위해 국민들의 혈세로 많은 회사들에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는데 개중 어떤 회사들은 그 자금으로 자기들의 호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했었다. 그것이 알려졌을 때 온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허탈해 했는지... 정말이지 ‘상식’과 ‘양심’을 상실한 자들이 아닌가?

  또한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 ‘책임’이 결여된 사회인 것을 본다. ‘월가 사람들’은 분명 ‘자신들이 지원받은 돈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가졌어야만 했다. 특별히 그것이 ‘국민들의 혈세라는 생각을 가지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어야만 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어깨에 미국의 경제, 세계의 경제가 달려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임 있게 행동했어야만 했다. 그랬더라면 자기들끼리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후안무치한 행동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그들을 향해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한 것은 매우 적절한 책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책임 의식’을 상실한 자들이 그들뿐이랴! 가만 보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책임’과 담쌓은 삶을 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상식’과 ‘양심’과 ‘책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와 같은 것들이 점점 무너져가거나 상실된 시대이다. 따라서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것들을 회복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상식과 양심과 책임의 삶’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세상 사람들을 능가하는 ‘상식과 양심과 책임의 삶’을 살아야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에 있어서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너무도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단지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단지 교회만 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이번에 자기들끼리 돈 잔치를 벌인 ‘월가 사람들’ 가운데에도 ‘자칭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가슴 한편에 답답한 생각,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요즘과 같은 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상식과 양심과 책임의 삶’만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희생하는 모습’이 있어야만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란 곧 희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삶을 사셨는가? 그분은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시는 삶을 사셨다. 즉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살리시고자 자신을 희생하셨다. 어느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대신 당하시고,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대신 죽으실 정도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의 삶, 즉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삶은 세상과 역행하는 삶이다. 세상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사회이다. 더 나아가 남을 짓밟으면서까지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악한 사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와는 정 반대의 삶을 사는 자들이다. 물론 그 삶은 결코 쉽지 않은 삶이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소한 그 같은 삶을 흉내라도 내며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 아직은 소망이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지금껏 ‘월가 사람들’의 후안무치한 짓에 대해 성토했지만 그 같은 일을 일삼는 자들은 단지 그들만이 아니다. 가만 보면 “이건 아니지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어쩌면 그만큼 세상이 더 살기 힘들어졌다는 혹은 더 악해졌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럴지라도 아니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정신을 차리고, 세상의 Lifestyle에 타협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어야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가르켜 ‘빛과 소금’이라 하였다. 빛이 꺼진다면 어찌 세상의 어둠을 쫓아낼 수 있겠는가! ‘소금’이 맛을 잃는다면 어찌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겠는가! ✎김현진

 

Airplane Crash


밤 12시가 넘은 시각

TV를 켰더니 웬 뉴스 속보였다.

버팔로 지역에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만 보니 낯익은 지역이었다.

끔찍하게도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한다.

아닌 밤중에 이 웬 날벼락인가

새벽 2시경 사고현장에 달려가 보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애도라도 하고자

현장은 온통 화마에 덮여있었다.

희생자들이 겪었을 고통이 오버랩 되었다.


비행기가 추락한 곳은 민가였다.

비행기가 혹 민가를 휩쓸기라도 했다면

엄청난 인명피해가 일어날 뻔 했다.

천우신조로 지역 희생자는 한 명뿐이라 한다.

주변 집들은 혼비백산했을 게다.

주변 집들뿐이랴!

그 비행기는 내 집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불과 6마일밖에 안 떨어진 곳이었기에

그러고 보면 사람의 살고 죽는 것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비행기는 추락해도 모두 무사한데1)

어떤 비행기는 생존자가 없다 하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사람 목숨 한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살아있으나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낮까지만 해도 따스한 봄이더니

하늘도 대형참사를 슬퍼하는가

온 사방에 저리 눈발이 날리는 것이. (HJ)


  1) 지난 1월 16일 뉴욕 허드슨 강에 비행기가 추락했으나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었다.

 

새로운 선교지를 향하여



사랑하는 동역자님!

지난 8월 남미 아르헨티나를 방문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계획하심이 있음을 깨달았지만 또다른 언어와 수화를 배워야 된다는 부담감과(그것도 이 나이에), 또한번 떠남과 정착을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 중에 구스타프 태풍으로 비행기가 천둥에 맞으며 3-5시간을 곧 추락할 것 같은 공포 속에 요나같은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마침내 하나님께 아르헨티나로 가겠다고 무조건 서원을 했습니다.


미국에 돌아와 몇몇 분들과 아르헨티나 선교 비전을 나누며 아르헨티나로 갈 마음의 준비를 하던 중에 갑자기 한국의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게 되어(대장암이 간까지 전이된 상태) 지난 9월 27일 갑자기 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두 달 동안 식사를 못하시고 계속 혈변을 쏟아내시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였습니다. 저의 남편이 소천하셨을 때 더 잘 못해드렸다는 죄책감이 괴로웠기에 어머니는 그렇게 보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섬겼으나 두 달 만인 11월 22일 주일 밤 11시 20분 어머니께서는 그토록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예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평생을 새벽기도 하시며 전도를 하시고 피아노와 찬양을 즐겨 하시던 멋있는 저의 어머니는 저의 남편 고 문영진 목사님처럼 임종예배 찬양 중에(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소천하셨습니다. 82세 연세로 소천하신 저희 어머니는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하고 은혜롭게 승리의 모습을 보여주셨는지요!!! 할렐루야 !!!)

(제가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길게 말씀드림을 용서해 하시고 이해를 바랍니다. 제가 남편이 없으니 그동안 어머니가 크게 힘이 되고 늘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며 기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1월 24일에 장례를 마치고 28일에는 제가 쓰러져서(쓸개와 췌장에 염증과 간이 부은 증세)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다시 2주 동안 통원치료와 검사를 하며 근 한 달을 보냈습니다. 몸이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1월 11일 전에 터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생겨(제 짐을 다 맡기고 온 선교사님 사모님이 병이 들어 급하게 한국으로 철수하게 되어) 지난 12월 23일 메릴랜드의 딸 집에 도착했습니다.

막 아르헨티나 비전을 나누다가 갑자기 한국으로 가 석 달을 보내고 오니 제 자신도 그리고 동역하는 여러 분들도 황당한 생각이 드셨겠지만 그래도 아르헨티나로 가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이 일이 생겼음을 인하여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선교의 현장


제가 몹시도 좋아하고 그리워하던 터키를 1월 8일에 정리하러 들어가려 했으나 그곳의 날씨도 몹시 춥고 아직 제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여서 무리라 여겨 다음 기회로 마음을 접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이 제 1의 삶이라면 케냐, 터키 선교지의 삶이 제 2의 삶이고, 이제 미국 영주권을 받고 남미를 바라보면서 제 3의 멋있는 삶을 살게 해주시리라는 기대 속에 기도할 때에 이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다시 한 번 희생과 헌신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하셨었습니다. 그런데 급성 췌장염으로 심한 통증 가운데 2주 이상 생사를 드나들며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로 보내고 그 후 지금까지 근 한 달을 보내면서, 제 3의 멋있는 삶을 위해,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저를 깨뜨리시며 새롭게 다듬으셔서 결단시키시는 것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지를 깨닫고 고백하게 하시며 전폭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훈련과 20년 전 처음 선교지를 향해 떠날 때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20년전 아니 30년 전에 주님께서 제게 보여주셨던 비전 그대로 이루어가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비전은 제가 어떤 대양 앞에 서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오대양 육대주로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가 너무 힘들어 하는데 그 때 찬바람이 시원하게 불더니 너무 힘들 때는 이렇게 찬바람을 불어 시원하게 해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비전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제 친구가 이것을 기억하고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유럽)로 그리고 남미로 보내시고자 할 때 제가 순종하며 따라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미약하고 나약하고 육신적으로도 젊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선교지로 가서 새로운 언어와 수화를 배우면서 다시금 정착해야 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주님이 먼저 가시고 준비해 주셔서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아르헨티나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제 몸이 이 모든 일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세계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들을 멋있게 이루어나가시리라 확신하며......

  임금희 선교사, 2008년 12월 30일 메릴랜드에서

 

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선악과 나무를 두셨을까요?



Q) 창세기 2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후에,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따먹을 수도 있는데, 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선악과 나무를 두셨을까요?

A)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자유 의지를 지닌 인격체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조종을 받는 로봇이나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받는 애완동물로서가 아니라, 사람의 주체적인 자유 의지로서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Q) 창세기 3장 1절에서 6절을 보면, 태초의 에덴 동산에서 뱀이 등장합니다. 그 뱀은 혼자 있는 하와에게 다가가서 거짓말로 여자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에덴 동산에서 여자를 유혹한 이 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A) 그 뱀의 정체는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땅으로 내어쫓긴 ‘사탄’입니다. 사탄은 창조의 면류관인 사람을 타락시키려고, 영특한 뱀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여자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2장 9절과 20장 2절을 보면, 사탄을 ‘옛 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Q)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죄를 지은 하와에게 저주를 내릴 때,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A) 장차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메시야 예수’를 가리킵니다. 사람의 타락 이후, 사탄과 여인의 후손은 끊임없는 투쟁 관계에 있는 원수로서, 사탄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임으로써 그의 발꿈치를 잠깐 상하게 할 것이지만,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 영원히 승리하실 것입니다.


Q) 창세기 6장 6절을 보면, 하나님은 대홍수 이전 노아 시대 사람들의 심각한 타락상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자신이 하신 일에 대해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시는 것일까요?

A)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탄이나 근심은 실수나 후회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가지시는 하나님의 실망과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수사학적으로 묘사한 말입니다.  ✎ 존더반 QA성경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글은 「미국장로교회 한인은퇴목사 및 사모회」 회보(2008년 12월 15일자)에 실린  김득렬 목사님의 글입니다. 김득렬 목사님은 지난 1999년 1월부터 10월 초까지 본교회의 임시목사로 사역해 주신 분으로서 본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모든 과정을 극복해 나가는 데에 크게 수고를 감당해 주셨던 분입니다.-편집부



  목사의 교역영역(敎役領域)은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는 인생의 전 역정(歷程)이요, 전인목회(全人牧會)는 개인의 생로병사(生老炳死)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이를 행함이 목자적교역(牧者的敎役)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무덤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 봄, 내가 시무하던 교회의 교우들 중에 교회 묘지에 관한 관심이 증가되었다. 이민생활의 연륜이 더해감에 따라 묘지를 찾는 빈도 또한 잦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 성도들의 그 영혼들은 이미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맞아주시는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나아가지만, 그 유해는 이국(異國)의 묘지 한 모퉁이일지라도 같은 믿음의 공동체였던 교우들이 함께 모여 부활의 나팔소리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묘소들을 조성하여 회중생활의 연장처럼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와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교회에서는 봉사위원회(위원장:김우석 장로)로 하여금 묘지공동구입을 원하는 교우들로부터 신청금을 받게 하였다. 50명의 성도들이 우선 신청하였으므로 김우석 장로는 그 신청금을 가지고 교우들이 자주 가는 ‘오클랜드힐’(Oakland Hill) 묘지 사무소를 찾아갔다. 비록 좌청룡 우백호는 아니더라도 한인들이 선호하는 약간 구릉지고 토양이 건조한 묘지 50기(基)들이 집합되어 있는 한 구역을 본 후 도매가격으로 일괄 구입하였다.


  묘지구입 절차를 마친 김우석 장로는 묘지사무소 책임자에게 농담겸 진담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관행으로는 이만한 거래가 이루어지면 덤으로 한 두 개쯤을 더 주는 법인데 이 회사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까?” 그 말을 들은 담당자는 “무슨 뜻인지요?” 하며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장로는 “다름 아니라 김 목사님 내외도 언젠가는 묘지를 필요로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그 말을 들은 그는 잠시 후 “그러시다면 저희가 묘지 둘을 1불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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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님 내외분께 드리겠습니다.”하고 묘지분양증서를 써 주어서 이렇게 받아 왔으니 나더러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뜻밖의 제의에 “그걸 제가 어떻게 받습니까” 하고 사양하였으나 선물로 받아 온 것이니 받아 두라고 강권하심으로 감사히 받아두기로 하였다.


  얼마 후 김우석 장로는 묘지구입을 신청한 교우들에게 각자가 원하는 묘지 위치를 선정하라고 광고한 후 52기의 묘지 배치도를 바둑판같이 그려가지고 먼저 나에게 와서 원하는 자리를 선정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야 거저 받았으니 대금을 지불하고 구입하신 교우들께서 먼저 다 고르고 나신 후, 남은 것을 저희 내외가 쓰면 됩니다. 그러니 어서 교우들에게 가서 먼저 고르시게 하세요”하였다. 그래도 김장로님은 교우들이 모두 “목사님 내외가 먼저 정한 후에 자기들이 정하겠다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선정하세요.” 하며 그 묘지 배치도를 내 앞에 제시하고 독촉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어서 “정 그러시다면 저희 두 사람의 자리는 묘지 중앙 한복판에 정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김장로님은 묘지배치도 중앙 한복판에 표식 둘을 하신 후 교우들에게 가지고 나가셨다.


  그 후 들은 말로는 김장로님께서 묘지 배치도를 가지고 교우들에게 가서 목사 내외의 자리를 보여 주며 교우들이 원하는 자리들을 택하라고 하였더니, 서로들 “목사 내외와 가까운 자리에 있겠다”고 하였단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어서도 교우들의 목사로서 가까이 있어 달라는 간절한 사랑의 염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사회와 어느 단체에서 생과 사를 초월하여 한결같은 사랑을 이렇게 서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그 깊은 사랑에 감격되며, 깊은 감회에 잠겨 목사 직분의 고귀함을 새롭게 음미하고 과연 성직(聖膱)이라고 부를만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성도들이 기대하는 목사(Poimen:목자)의 사명은 생과 사를 초월하여 저들의 변함없는 선한 목자가 되어 성도들로 하여금 무덤 속에서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나의 목자(목사)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고 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랑과 신뢰의 목자적 관계를 실현해가는 것이라고 확신되었다.


  그때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성도의 장례 행렬을 따라, “오크랜드 힐”에 갔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성도들이 그 자리를 떠나 돌아가기 시작하였을 때, 나는 앞서간 성도들을 찾아보고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묘비들을 보며, 생시의 얼굴들을 회상하고 함께 하였던 일들을 회고하는 묘지심방을 하고 있었다.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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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한 성도가 가까이 와서 “목사님 자리는 어디에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윤계순 성도였다. 그래서 나는 “왜 물으세요?” 라고 반문하였더니 “저는 목사님의 다음 다음 자리예요”라고 하지 않는가!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이 어른이 언젠가는 나의 다음 다음 자리에서 부활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날을 함께 기다릴 분이로구나!!” 하는 감회와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글쎄요 저희 내외의 자리는 우리교회 성도들의 묘지의 중앙 한복판이라고 하였는데요, 그 자리가 어디쯤인지 저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나와 아내의 자리를 알게 되는 날이 왔다. 나와 내 아내는 동갑내기로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사랑의 섭리로 1944년 3월 23일 황해도 사리원 서부교회, 김현정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예식을 올렸다. 우리는 63년 반 동안 해로하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그들의 슬하에서 자라나는 9명의 손자 손녀들과 1명의 증손자의 늠름히 자라감을 감사와 감격으로 지켜보며 주의 일에 힘써 오면서 많은 분들이 누리기 힘들다고 하는 회혼(回婚)도 누렸다.


  그런데 1997년 2월 2일 주일 오후에 집사람과 나는 병원에 입원하여 중한 수술을 받으신 강원기 선생을 심방하고자, “오크욷”(Oakwood)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그곳 차 안에서 집사람에게 중풍 증세가 나타났다. 그래도 우리는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적시에 하여야 하는 응급조치를 못하고, 병원에 도착하여, 병실에 올라가서 강원기 선생을 심방한 후, 집으로 돌아오고만 것이다! 그때 거기서 그 병원의 응급실로 직행하여 응급조치를 취하기만 하였더라면, 집사람은 완치 회복되었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 나의 무지와 실수는 결코 용서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사람은 좌측 팔과 다리가 약간 약한 중풍환자가 되어 보행과 활동이 제약된 생활을 10년 반 동안이나 하여오고 있었다.

  2007년 9월 9일 주일 오후 1시 35분, 아내는 갑자기 혈당이 떨어짐으로써 발생된 골절로 입원하여 있던 “윌리엄 버먼”(Wm.baumont) 병원에서 일종의 의료사고로 인해, 그의 영혼은 내 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때 그이 나이는 80세 반이었다. 그는 실로 나의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다. 38선을 넘고, 6.25전쟁을 겪고, 교수가 되고, 목회를 하는 나의 전 생애는 항상 그와 더불어 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결혼식은 함께 하지만 장례식은 따로 한다는 말이 내게도 사실이 되었다.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오전 10시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 교회장으로, 예배당

신앙인들의 고백



안에서 장례예배를 드린 후, 나의 아내의 긴 장례 행렬은 “오크랜드힐” 성도들의 묘지로 향하게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에, 미풍은 신선하였다. 양지 바른 언덕 중앙 한복판에는 나의 아내의 관을 위해 새로 판 무덤이 기다리고 있었다. 땅은 마르고 흙은 보드라왔다. 바로 그 옆자리는 장차 내가 묻힐 자리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생과 사를 초월하여 이어가는 우리 내외와 디트로이트 한인연한장로교회 성도들의 ‘목자적 교역관계’는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5-3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날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장 51-56절) 

  ✎김득렬 목사(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

 

자녀들의 축복을 위한 멍석

- Joint Service를 시작하며 -



2009년을 시작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이런 저런 소원들이 있는 줄 안다. 가족들을 위한 소원, 생업을 위한 소원, 그리고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 등. 특별히 자녀들을 키우시는 분들의 경우 자녀들을 위한 소원이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우선일 것이다. 이 세상에 자기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우리 한국의 부모들은 타민족의 부모들보다 그런 면에서 더욱 특별하지 않나 생각한다.

문득 자녀들을 위한 부모들의 소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혹 학업 중에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있다면 무엇보다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것이다. 한국 부모들의 대단한 교육열을 생각할 때 그리 틀린 판단은 아니리라.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고, 혹은 직장 다니는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직장생활 잘 하기를 위해서, 결혼 적령기의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금년에 좋은 배우자감을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소원 가운데서 부모들이 정말 가져야 할 가장 귀한 소원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부모라면 말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유일하신 신이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세상에서의 모든 성공과 축복은 당연히 그분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가장 잘 되는 길이 무엇이겠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항목들을 조목조목 들면서 자녀들을 위한 소원을 비는 것도 좋지만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기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소원이요, 또 가장 현실적인 소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그와 같이 양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믿게 할 수 있을까? 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중요한 물음에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솔직한 우리의 형편이다. 특별히 이중 문화권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민교회의 현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우리는 모두 이민자들이다. 즉 우리가 사는 곳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말과 글, 의식, 문화 모든 것이 다른 세계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태어나는 우리의 2세들은 한국인의 피와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미국인으로서 성장한다. 그들은 처음 3-4세까지는 부모를 통해 한국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게 되는 Pre-School 때부터 아이들은 서서히 미국화 되어간다. 이는 학교를 다니면서 더 이상 한국어권의 영향력이 아닌 영어권의 영향 하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을 통해, 또래집단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그 인격과 의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의 자녀들은 본질적 한국인에서 외양적 한국인으로 변화되어간다. 즉 외모만 한국인일 뿐 미국인으로 변화되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아주 미국화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여전히 한국 가정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적 사고를 접하며 생활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자녀들은 철저하게 이중 문화권 속에서 살아간다. 즉 두 문화권의 혼돈 속에서 성장한다. 그 속에서 자녀들은 언어이든, 문화이든, 의식이든 자신이 원하는 한국적인 것은 취하고 자신이 원치 않는 한국적인 것은 버린다.


문제는 ‘신앙’이다. 이 신앙은 결코 한국적 문화도 의식도 아닌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문제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마저 부모 세대에 속한 것처럼, 혹은 한국적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마저 다른 한국적인 것들을 버릴 때 함께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만히 2세들을 관찰하면 그런 차원에서 믿음을 떠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즉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집을 떠나면서 교회도 하나님도 함께 떠나는 2세들이 얼마나 많은가?


2009년에 들어서면서 우리 교회는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란 예배 안에 영어와 우리말이 함께 공존하는 예배를 말하는 것이다. 즉 설교도 영어설교와 우리말 설교가 모두 있고, 다른 순서들도 서로 불편함이 없이 영어권과 한국어권이 자기들의 예배처럼 느끼도록 하는 예배를 말한다. 물론 그 동안 가끔씩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드려왔다. 그러나 이는 1년에 서너 차례 중요한 절기 때마다 가졌던 것이고 이제는 매주 ‘연합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어권과 영어권 모두를 위해서이다.

사실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드리는 가장 큰 이유라면 2세들, 즉 자녀 세대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즉 자녀들에게 믿음의 뿌리를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할까. 가만 보면 한인이민교회들은 늘 1세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다보니 2세들은 예배에서 늘 들러리처럼 소외되어지고,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그 결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조차 ‘들러리 믿음’을 지녀온 것이 사실이다. ‘믿음’에 들러리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들의 위치가 ‘중심’이 아니었다면 이는 어떤 의미에서 ‘들러리’였다는 것이다. ‘Joint Service’는 바로 그와 같은 구습(舊習)을 개정하기 위함이다. 즉 이제는 2세들도 대예배를 자기들의 예배처럼 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앙’을 더 이상 부모 세대의 것으로 혹은 한국적인 유산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그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더라도 ‘믿음’마저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를 가더라도 편안히 ‘예배’에 적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Joint Service’를 드리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자녀 세대를 위해서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Joint Service’를 통해서 더욱 ‘믿음’ 가운데 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된다면 이 ‘Joint Service’는 어떤 의미에서 자녀들의 축복을 위한 참으로 소중한 ‘멍석’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꼭 자녀 세대 즉 2세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 이민 1세와 유학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 살면서, 또 자녀들이 영어권이면서 정작 1세들은 여전히 ‘영어’와 낯선 것이 사실이다. 특별히 영어권 예배에 익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Joint Service’는 모든 1세들을 영어권에 친숙하게 만들고 특별히 영어예배에 친숙하게 만들 것이다. 이 또한 일부러 영어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모든 1세들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귀한 소득이기도 하다.

특별히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는 더욱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다. 때때로 한국에서 갓 유학 온 학생들이 한국 교회에 나가지 않고 미국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들어보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어찌 ‘예배’를 영어교육의 수단으로 삼을 수가 있는가? 이는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는 곳에 한국 교회가 없다면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있다면 내 언어로, 내 의식으로 제대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 내가 100% 이해하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럴지라도 많은 학생들에게 영어권 예배를 경험하고 또 영어로 말씀을 듣고자 하는 바람이 없잖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유학생활 중에나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가 바로 그 목마름을 해결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찬양에도 영어 찬양이 있고, 설교 또한 영어 설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 말 찬양, 우리 말 설교도 제대로 있으니 이 얼마나 안성맞춤인가?


꼭 1세 2세 한국인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는 영어권의 모든 민족에게 예배 문호를 개방하기 위함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우리 교회에 참석하는 미국인 교우들을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위해 ‘동시통역’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통역이었지 ‘영어권 예배’는 아니었다. 이제 누구든 영어만 한다면 그들 또한 한국 사람들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 것이다. 편안하게 ‘영어 설교’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본인들이 원한다면 통역을 통해 한국어 설교도 보너스(?)도 듣게 될 것이고.


그러나 모든 것 가운데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갖는 가장 큰 의미, 또 가장 크게 얻게 될 결실이 있다면 1세와 2세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 되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한 가족이면서도, 또 같은 신앙인이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와 의식의 차이로 인해 신앙마저 Gap(차이)을 느끼고 있었던 1세와 2세가 늘 함께 예배드림으로 서로 ‘하나 됨’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양쪽 그 누구도 예배를 낯설게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자기들의 예배로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게 가족들과 함께 편안히 예배드리는 것이 생활화 된다면 훗날 자녀들이 집을 떠나게 될지라도 ‘교회’나 ‘믿음’을 떠나는 일은 쉬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예배’나 ‘믿음’이 부모 세대 혹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것’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년들과 함께 편안히 예배드리는 대예배 참석이 어느 사이 ‘생활화’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언제든 다시 집에 돌아오더라도 결코 낯설지 않게 편안하게 온 식구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많은 이유와 의도, 바램을 가지고 2009년부터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실험적으로 시도해보는 단계이다. 예배에 실험이 어디 있냐마는 운영방식이나 순서진행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아무쪼록 최소한의 시행착오로 최대한 빨리 1세와 2세가 함께 어우러지는 가장 이상적인 우리만의 예배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자녀 세대들이 더욱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한인 이민교회에 귀한 role model(역할 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현진

 

삶의 고비마다


삶의 고비마다

당신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때때로 갈 길을 몰라 헤맬 적에

당신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똑똑한 머리입니까?

당신의 살아온 경험입니까?

당신이 얻게 될 이득입니까?


당신이 아무리 똑똑할지라도

당신이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그 길이 큰 이득을 얻는 길 같아도

결국 당신이 이르게 될 종국은

허탈한 아침일 것입니다.

빈손의 인생일 것입니다.

혹은 파도 넘실대는 바다에 

맥없이 파선하고 말 것입니다.


삶의 고비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항로가 보일 것입니다.

그 길에 허탈한 아침이란 없습니다.

파선이란 결코 없습니다.

때때로 거친 파도가 일기도 하겠지만

이내 잔잔한 대양

눈부신 햇살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정박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삶의 고비마다

당신이 기대는 것은 무엇입니까? (HJ)

여호와는 나의 목자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에는 목회자도 귀하고 성경도 귀했습니다. 선교사의 발길이 닿는 곳에 교회가 세워지면 한 교회만 돌볼 수 없는 선교사는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서 주일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 외의 집회 때는 교인 중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교인을 뽑아 ‘조사’로 임명하여 그에게 성경을 한 권 맡기고 예배를 인도하게 했습니다. 그 때의 일화입니다.

경상북도 어느 산골의 예배당에 교인들이 모여들어 그 교회 조사님이 예배인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봉독할 순서가 되어 조사님은 시편 23편을 봉독했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산골의 예배당에 전깃불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어두침침한 등잔불 아래에서 두터운 돋보기를 끼고 겨우겨우 읽어 내려갔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한글성경에는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조사님의 한글실력이 모자라는지라 제대로 읽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나.....의...목 자르시니....내가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조사님은 본문을 “여호와는 나의 ‘목 자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잘못 읽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조사님은 비장한 얼굴로 이렇게 설교를 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가 내 목 짜르셔도 내가 부족함이 없씀네다!”

조사님이 큰소리로 외치자 온 교우들이 두 손을 들고 함께 외쳤습니다.

“내두!... 내두!...”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 3:5)

C. T. 스터드의 ‘초콜릿 군병’



C.T.스터드(1860-1931)는 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표상과도 같은 선교사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한 그는, 예나 지금아니 영국 초고의 인기 스포츠인 크리켓 선수로 대학 시절에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믿는 가정에 태어났지만 미지근한 신앙에 안주하며 신앙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형 조지 스터드의 병실을 지키던 중 새롭게 회심하게 된다. 당시 일곱 명의 케임브리지 청년들(세계선교와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케임브리지 7인’)이 중국 내지에서 선교하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의 삶메 큰 도전을 받아 중국 선교에 헌신하게 되는데, 그들 가운데 하나가 스터드였다. 그는 명문 대학의 크리켓 선수로 장래가 보장되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받아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 때문에 그 모든 부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중국 땅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10여년을 섬기는 가운데 그의 육신은 이미 쇠약할대로 쇠약해졌고, 마침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지경이 되어 선교회는 건강이 악화된 그를 영국으로 후송해야만 했다. 언제 완치될지 모르는 막연한 투병생활을 하던 어느 날, 잠깐 외출했다가 보게 된 길가 벽에 붙은 포스터 한 장이 그의 인생을 다시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아프리카의 식인 부족들도 복음을 기다립니다.”

이 포스터를 접한 스터드는 병상에서 일어나 아프리카로 가기로 결심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닌 결정이라며 비판하고 만류했다. 특히 담당 의사는 “만일 이번에 아프리카에 간다면 얼마 못 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최후 통첩과 같은 진단을 내렸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스터드는, 오늘날 WEC선교회의 표어가 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그 어떤 희생이 감히 크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유명한 고백으로 아프리카 행을 확정했다.

출항하는 날 전송 나온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는, “내가 죽으면 내 무덤을 징검다리 삼아 내 후배들이 아프리카의 불쌍한 영혼들에게 찾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내를 영국에 남겨둔 채 병든 몸을 이끌고 홀로 아프리카 콩고로 간 것이다. 이후 스터드는, 가족은 물론 아내와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아프리카 콩고 땅에 자신의 남은 생을 기꺼이 바쳤다. 수주일 안에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의사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20여년을 더 사역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선교 이야기



그의 주도하에 설립된 ‘아프리카의 심장 선교회’(The Heart of Africa Mission)는 이후 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 국제선교회로 이름을 바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콜릿 군병"은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쓴 짧지만 강력한 선교 도전의 글이다.  유병국(WEC 한국본부장)


초콜릿 군병”


'용맹함‘(heroism)은 오늘날 기독교가 상실한 음(音), 잃어버린 화음이다!

진정한 군사는 모두가 용사다! 용맹함이 없는 군사는 실전에 참가하지 않는 군인, 곧 초콜릿 군병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군사다. 그리스도의 군사이자 탁월한 용사다! 그는 가장 용맹스런 자보다 용감한 자이며, 평안을 약속하는 부드러운 유혹의 손길도 거부할 수 있는 자이다. 고난과 질병, 위험, 죽음을 회피하라는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목소리도 거절할 줄 알며, 오히려 그것들을 가장 절친한 친구로 삼는 자이다.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초콜릿 군병이다. 초콜릿 군병은 초콜릿처럼 물에 닳으면 풀어지고 작은 불기운에도 녹아버리고 만다. 달콤하기 그지없는 막대사탕과 사탕과자 같다. 유약한 체질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부드러운 포장지에 싸여 유리병이나 종이상자에 담겨 인생을 살아간다.

여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주신 초콜릿 군병의 초상이 있다.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마 21:29). 그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고 고향땅에 집착하여 붙어 있다.

초콜릿 군병은 가겠다고 말하지만 가지 않는다. 남들에게는 가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가지 않는다. 돌망태를 채우라고 이등병에게 명령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나서서 그 일을 하지 않는 일등병을 본 고든 장군은, 그 일을 하고자 몸소 참호에 뛰어 들면서 그 일병에게 말했다. “네가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말하지 말라!”

초콜릿 그리스도인은 전쟁 생각만으로 갑작스런 오한이 들고, 전투 소집 명령에 온몸이 마비된다. 그들은 말한다. “마음은 굴뚝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하나님은 초콜릿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실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용사다!


선교 이야기



하나님의 용사-바울

우리에게는 멋진 신앙의 선진들이 참으로 많다. 이 모두를 한 사람으로 보아 본다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역설적인 인물인 작은 거인 바울이 될 것이다. 그의 머리는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컸지만, 그의 마음은 그 둘을 합쳐 놓은 것보다도 컸다.

한때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보에 파렴치한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적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자신이 바로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는 “어리석은 자”라고 불렸다. 그의 행동이 인간 이성의 명령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스도와 사람들을 향한 억누를 수 없는 타오르는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이면서도, 그 학문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를 또한 알았다. 그는 세상 지식을 선반에 올려두고 사람들의 지혜가 어리석음을 선포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세상을 180도 뒤집어 놓았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을 위한 끊임없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매일같이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거듭거듭 자신을 해치려는 군중 앞에 두려움 없이 섰다. 왕과 관원들 앞에 섰지만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지옥의 2인자 네로 황제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당한 고난은 끔찍했다. 성경에서 그의 행적을 읽어 보라. 그는 자기의 주인이신 주님의 발자국을 따랐고, 결국 예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았다. 그와 같은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 14:50). 당시에도 초콜릿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초콜릿 그리스도인들도 이렇게 변명했을 것이다. “저렇게 융통성 없는 인물, 광신자처럼 달아오른 어리석은 자와 누가 함께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할 수가 없지요. 설혹 함께 일하려는 사람이 있다 해도 바울이 그들을 못견뎌할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동역했고, 그 둘은 탁월하게 해냈다.) 편법을 몰랐던 열정의 사람, 그는 결과에 개의치 않고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던 자였다. 바울은 거뜬히 영예를, 그것도 최고의 영예를 얻었다. 십자가에 버금가는 영예인 도끼로 참수를 당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성경과 역사 어디를 살펴보아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말로만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 않았던 용기 있는 자의 본보기로, 예수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리요, 오직 하나님께만

선교 이야기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다. 세상과 초콜릿 군병들은, 이들에게 “어리석고 미쳤다”고 외친다. 그러나 천사들은 “맞다. 이들은 미쳤다. 그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리석고 미쳤다고”고 덧붙인다.


그들은 고귀하게 싸웠고 상을 받았다.

천국에 이르는 가파른 절벽을 오르며 위험과 수고와 고통을 거쳤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내리소서. 그들의 뒤를 따르도록.

C.T. 스터드 초콜릿 군병”에서

성경을 사용하라



대전 엑스포가 개최되던 해였다. 어느 교회에서 주일예배 강사로 설교하게 되어 숙소에서 막 나가는데 TV 프로그램이 잠시 내 눈을 끌었다. 그 내용은 여성 경제인 연합회 임원들을 초청하여 인터뷰한 것으로, 여자들이 남자들 못지않게 기업 전선에서 수고하여 성공한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도 시선을 끈 것은 여성 경제인 연합회 부회장인 어느 모자 공장 사장님의 인터뷰였다.

“저희 회사는 오늘까지 전세계에 약 200만 개의 모자를 생산하여 팔았습니다. 이번 엑스포 대회에도 출품했고요.”

“정말 장하시군요. 기업의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요?”

“저는 교회 집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업의 경영자라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로 모든 것을 의논하며 경영했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기업을 성공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간에 그녀는 큰 어려움이 닥쳐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모자가 팔리지 않아 부부도가 나고 회사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몇 개월간 시골로 도망다녔다고 한다.

“어느 주일 아침이었어요. 저는 우연히 시골 조그만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너무 맘이 상하고 지쳐서 그냥 눈물만 나왔어요. 목사님 설교도 눈물로 듣게 되고 찬송도 눈물로 부르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이었어요. 예배당 강단에 십자가가 유난히 눈부시게 보이는 순간, 내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시관 쓰신 사진을 그날 따라 자세히 보게 됐어요. 그러던 중에 머리에 쓰신 가시관의 그 가시들이 순간, 머리 빗는 빗으로 보이는 것이었어요.”


여자들은 모자를 좋아한다. 남자들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모자를 쓰지 않는 이유는 머리가 모자에 눌려 자국이 남을까봐 그런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모자를 써도 머리에 자국이 남지 않고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그것만 해결되면 모자는 잘 팔릴텐데...’ 그녀는 늘 그것을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순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었어요. 그렇다. 모자 안에 동그랗게 빗을 넣어서 만들자. 예수님의 가시관을 봐라.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이 빗을 상징하고 있질 않은가?”


그녀는 단번에 국내 특허를 냈고, 이어서 세계 특허를 냈다. 둥그런 빗이 있는 모자는 그녀만이 만들 수 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녀에게 로열티를 내야 한다. 그녀의 회사는 현재 전세계의 모자 공장에서 200만 개의 모자를 생산하는 탄탄한

감동의 샘터



기업이 되었다. 그녀는 성경은 종교경전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기적의 사업 지침서라고 말했다.

실제로 성경을 실생활에 응용하라. 그러면 거기에 놀라운 기적이 올 것이다.


미국에 모 석유회사 사장이 있는데 그는 크리스천이다. 창세기를 읽다가 노아의 방주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역청’이란 무엇인가. 배에 물이 스며들지 않기 위한 콜타르가 아닌가. 즉 석유, 가스가 아닌가 말이다.

이 사람은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는 아라랏 산 근교를 찾아가서 지질을 조사해 보았다. 실로 그곳은 엄청난 매장량의 유전지대였고, 그 사실을 안 그는 터키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모든 시공은 그의 회사가 맡기로 하고 수입은 터키 정부와 51대 49로 나누기로 했다. 시추공사를 했을 때 엄청난 석유가 터져 나왔고 터키 정부도, 이 사람도 큰 부를 얻게 되었다.


성경을 그냥 지나가는 얘기로 흘려서는 안된다. 성경 안에는 무궁무진한 보화가 있다. 성경을 이용하라. 성경을 각 방면에서 응용하라. 목회자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목회 성장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사업가에게 필요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성공의 비법이 여기에 있다. 주부에게는 가정의 평화와 자녀교유의 비법을 보여주신다. 실생활의 모범 답안이 성경 안에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 박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