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BKPC 청년1부 Leader Training을 마치고…



“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으로 나아온 BKPC 리더들이 여기 있습니다.

언제나 신실함으로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지킴의 리더!” 이근재 회장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청년부를 한결같이 섬기는

“손발의 리더” 전지원 부회장

“깨어있음의 리더!” 양육리더 이수진

“한결 같은 충성의 종!” 새가족 반 팀장 김초롱

2008년 하나님께서 BKPC에게 주신 선물인 “ 화평의 리더! 미소의 리더! ” 총무 김화평

“순종의 리더” 회계 및 족장의 시대를 연 순장 오누리

“성장의 리더” 서기 및 순장, 그리고 우리교회의 얼굴마담 윤은혜

“돌봄의 리더! 섬김의 리더!” 순장 이경진

“카리스마의 리더! 노력의 리더!“  제너럴 순장 정예슬

“찬양하는 리더! 순수한 리더! 성장의 리더! “ 순장 전민구

“무한한 가능성의 리더” 정다예!

“특별한 리더” 송치덕!

그리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품을 소망의 “ 예비 리더들.. “


오늘, BKPC의 리더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축복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원하는 우리 리더들…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함께 품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청년부의 엄마, 아빠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함께 동역하게 하심에 감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게 하심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리더로써 선택 받아진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더욱 사랑할 것입니다.

더욱 한 마음으로 동역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 볼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 어느 곳에 있든지 리더다운 리더, 정말 멋진 리더의 모습으로 영원히 하나님 나라를 이뤄갈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BKPC의 리더들..

당신은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 나라의 너무나 멋진 리더입니다!   ✎ 이참히

 

미전도종족을 향한 사랑의 불씨(1)

-김요한 선교사님 인터뷰-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고 있는 김요한 선교사님께서 지난 몇 달간 버팔로에 머무시게 되어 저희 교우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오셨습니다. 「쉴만한 물가」편집부에서는 선교사님의 삶과 신앙 및 그동안의 사역을 여러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자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Q. 짧은 자기소개 및 가족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김요한 선교사이고, 저희 가족은 아내 이순희 사모, 딸 미리, 아들 천영, 신영 이렇게 다섯 식구입니다. 미리는 여기 버팔로에서 공부하고 있고, 큰 아들은 보스톤에, 그리고 막내는 한국에서 영어선생을 하고 있습니다.


Q. 예수님을 믿게 되신 계기와 신앙생활에 큰 전환점이 있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저는 고향이 경북 영천으로 태백산맥 깊숙한 곳 산속 초가집에서 자랐습니다. 국민학교를 6km 걸어서 다녔는데 처음 학교 갔을 때 전봇대를 보고 놀랐을 정도입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같이 자취하던 친구가 교회에 가자고 졸라대서 따라나가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제가 진실로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고 만난 것은 대학교 3학년때였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죄를 깊이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 후로부터는 성경을 읽는 것이 너무 좋고 찬양하는 것이 좋고 그리고 너무나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온 세상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제가 집안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 후에 할머니께서 예수님을 믿게 되시고 자연스럽게 모든 친척들까지 다 예수님을 믿는 집안이 되었습니다.


Q. 사모님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셨나요?

A. 저는 할아버지 때부터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9살 때 깊이 죄를 회개하면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그 회개한 날 밤에 자면서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오늘 밤에 나를 불러 주세요.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또 죄를 짓게 되니까 오늘 밤 깨끗할 때 나를 불러주세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그대로 있는 나를 보면서 너무나 실망스럽고 막막했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지내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주님이 금방 오실 것 같아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주님 오실날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렸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싶은데 저의 주일학교 선생님이 제 신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선교의 현장



Q. 미국 오시기 전의 생활은 어떠셨는지요?

A. 대학에서는 성악을 전공했는데 오페라에서 주역도 맡고 하면서 훌륭한 오페라 싱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는 그것이 변하여 신학교를 가고 싶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음악 선생을 하였는데 그 때는 제 마음이 굉장히 뜨거워서 아침 조회시간에 늘 30분씩 설교를 했습니다. 그 아이들 중에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된 아이도 있지요. 그러던 중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아내와 저는 같은 교회 대학부 회장, 부회장이었지요.


Q. 어떻게 미국에 오시게 되셨는지, 그리고 이민생활은 어떠셨는지 소개해주세요.

A. 아내가 간호사였는데 결혼 전에 이미 미국으로 이민갈 수속을 다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중에 함께 미국으로 가서 교회음악을 공부하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75년에 미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처음엔 워싱턴에 정착을 했습니다. 첫 직장은 시어즈의 마린파트에서 일했는데 보트를 팔면 바닷가로 끌고 가서 시운전 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생활하기가 힘이 들고 공부를 하려고 하니 돈이 필요해서 뉴욕으로 올라와 채소장사를 1년간 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비즈니스를 했는데 장사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이 들고 자동차 사고를 네 번이나 당해서 그 일을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하려고 필라델리아로 가서 faith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셋째 아이가 태어나자 경제적으로 힘이 들어서 공부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채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가 델리샵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민생활 17년이 지났습니다.  


Q. 어떻게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셨습니까?

A. 당시 제가 워싱턴장로교회에서 음악전도사로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었는데 시카고에서 선교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대회에 우리교회 성가대가 찬양을 맡게 되어서 할 수 없이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회에서 성령님께서 저에게 강하게 역사하셔서 결국 선교사로 헌신하는 시간에 손을 들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내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서 두 달 동안을 서로에게 어떻게 얘기할까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후에 서로 이 사실을 알고서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 저는 15살 때 헌신을 했는데 잊어버리고 살았다가 그 때 다시 생각나서 헌신을 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편집부

관점의 차이

분류없음 : 2009/02/04 20:52
 

관점의 차이

미국의 신발공장들이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할 때의 일입니다. 현지에 파견된 조사관들이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한 회사의 조사관이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신발을 신지 않기 때문에 신발공장을 차리면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회사의 조사관은 완전히 상반된 견해의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지금 신발을 신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로 하여금 신발을 신게 만들면 이 아프리카 땅이야말로 우리 회사의 무궁무진한 판매시장이 될 것입니다."

똑같은 현장에 서있는데도 두 사람의 관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부정적으로 보고 실패를 예견했고, 한 사람은 긍정적으로 보고 성공을 예견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의 견해가 적중했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두 번째 조사관의 견해가 적중하여 오늘날 아프리카는 엄청난 신발 판매 시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똑같은 자리에 서있다 해도 어떤 관점에서 현장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고 열매가 다른 것입니다.


필그림과 인디언

전쟁 이야기(25)



이구한이 엮은 「이야기 미국사」엔 브랫포드가 쓴 이런 글이 실려있습니다.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폭풍이 불어닥친 일도 있었고, 인디언에게 무기를 팔아 우리를 위태롭게 한 배신자도 있었다.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한 그 해 겨울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건강한 사람이라곤 불과 6,7명 뿐이었다. 이들은 불평없이 자진해서 열심히 일했다. 나무를 모아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장만하고, 옷도 빨면서 환자들을 돌보았다. 땅도 개간했고 씨도 뿌렸다.


케이프 코드 반도의 프로빈스타운에서 인디언의 옥수수를 훔쳐 연명하던 필그림들은 그 건너편에 있는 플리머스로 옮겨가게 됩니다.

옥수수를 발견했다고 「Cornhill」, 즉 「옥수수 언덕」이란 이름을 짓고, 그들이 떠나온 영국의 플리머스항을 기념하기 위해 이 새로운 항구에다 같은 이름을 붙이지요.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아직은 마음의 여유가 남아 있었는가 조금은 낭만적이기도 하네.

신년 첫 주 교회 회보에 실렸던 김목사님의 「2009년 사자성어(四字成語」란 글 모두 읽으셨을터. 야구로 치면 적시안타(適時安打)와 같았다고나 할까, 알맞은 때에 알차고 뜻깊은 내용이었으니.

필그림들이 처한 상황을 두고 궂이 사자성어를 붙여본다면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어떨런지? 딱하고 가엾어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형편이란 뜻이니 과히 엇나간 선택은 아닐 듯 싶은데.

상륙한 후 첫 겨울을 나면서 102명 중 절반이 죽어나갔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자유」와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그들의 이 모험적 이민여정을, 이들이 꾸며나가는 역사를, 약속의 땅(Promised Land) 신대륙을 향해 나아가는 「출유럽기」라고 일컬어봅니다만, 그런데 이렇듯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되었으니...


저번에 로웬 교수의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필그림들이 인디언의 식량을 도적질했다는 데까지 말씀드렸지요. 그 책엔 이런 글도 들어있네요. 역시 그들 중 누군가가 쓴 것이랍니다.



그리스도인과 전쟁



그 다음날 아침 묘지 비슷한 곳을 지나게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파보기로 결정했다. 그 속엔 멍석이 있었다. 그것을 들어올리자 매우 훌륭한 활이 보였다. 그 외에 사발, 쟁반, 접시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쓸만한 것들을 취한 후 멍석으로 시체를 다시 덮어주었다.


이건 완전무결한 도굴(盜掘)이네. 허락도 없이 남의 무덤을 파헤치고 물건을 가져가다니. 허기야 그 일대엔 허락받고 말고 할 인디언이 아예 없었지만. 쿠퍼만(Karen Kupperman)이란 학자는 필그림들이 수년 동안 이런 짓을 계속했다는 연구보고를 내고 있습니다.

절호의 기회니 차제에 제 경험담 하나 들려드려야겠네요.


삽과 괭이와 바켓을 든 청년 셋이 산길을 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 제 잠자리를 찾아가자 그 공백 속으로 밀물처럼 몰려드는 어두움. 그믐밤. 휘이익 휘이익 나뭇잎 스쳐가는 바람소리. 간혹 발뿌리에 채여 자갈 뒹구는 소리. 산새도 울지 않는 스산하고 괴괴한 산 속을 아무 소리 없이 서둘러 걷고 있는 이들은 누구며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밥 한 가마를 지어낼 만큼 얼추 시간이 지난 뒤에 그들이 당도한 곳은 메마른 개울가. 큼직큼직한 돌들이 엉성하게 쌓여있는 돌무더기가 거기 있었다. 하나씩 돌을 들어내기 시작하는 그들, 모골이 다 송연한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네. 드디어 건전지 불빛아래 드러난 것, 아 인간의 뼈! 그 돌무더기는 틀림없는 돌무덤이었던 것이다. 후둘거리는 손으로 두개골과 다른 뼈 몇 개를 바켓에 담는다. 다시 돌을 쌓아올린 뒤 그들의 남는 일은 오직 ‘다리야 나 살려라’ 일뿐. 바지가 축축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뒤의 일이었다는 후문까지 있었으니...


의과대학 본과 일학년 때의 일이었어요. 의학공부는 그 첫걸음을 해부학(Anatomy)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게 되지요. 뼈 공부를 먼저 한 다음에 시신을 앞에 두고 하는 사체 해부. 사람의 뼈대에다 웬놈의 이름을 그리도 많이 붙여놨는지, 라틴어로 된 이 단어들을 달달달 외워야 했으니. 간혹 뼈를 가슴에 엊고 깜박 잠에 빠질 때도 있었던 모양. 허니 그 풍광이 어떠했으리요. 가족들은 한동안 내 방에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의학도가 아닌 내 두 친구는 자기들의 용감무쌍함의 테스트를 위해 자원했던 것인데 이 소름끼치는 일 이후 ‘십년 감수했다’라는 소리로 나를 협박해 나로 하여금 몇 번의 ‘한 턱’을 내게 했고.

우리 시대의 의과대학 선생님들은 꼭 무슨 염라대왕 같았어요. 그들은 도대체 의학을

그리스도인과 전쟁



가르치는 것인지 낙제시키기 위해 낙제를 가르치는 것인지 툭하면 낙제요 미역국이라. 창피도 창피하려니와 가난했던 우리들 살림에 1년 유급이란 마치 탄환 없는 총살형과 같은 것, 오죽했으면 내가 그 짓까지 했겠어요. 심지어 한 친구는 권총을 들고 깐깐하기로 이름난 교수 댁을 침입하여 사생결단의 학점애걸 강도짓을 벌인 사건까지 있었으니.

큰 애의 의과대학 입학식에 참석하면서 계속 제 맘속을 맴도는 상념이 있었지요. ‘부럽다. 이 아이들이 참 부럽다.’ 학장은 환영사 중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여기까지 오게 된 이 학생들은 전부 수재들입니다. 잘 가르쳐서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훌륭한 의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필그림들이 무덤을 파헤칠 때 그 주위엔 인디언이 아예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연유에 대한 논설에 열 쪽이나 할애하고 있는 책,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이 책을 좀더 자세하게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참을 더 펼쳐나갈 제 「전쟁이야기」꾸밈에 보탬이 될 자료가 넉넉히 들어있을 뿐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 가고 있는 이 미국역사 배움길에 바른 길잡이가 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Lies My Teacher Told Me」, 저자는 버만트(Vermont) 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로웬(James W. Loewen). 백인 중심의 역사관이 미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끼친 영향을 분석비판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라는 간단한 소개를 지난번에 해드렸습니다.

지난해 11월 어느날 락포트 공립 도서관엘 들른 일이 있었지요. 미국역사책만 모여 있는 곳 그 서가에 글쎄 이 책이 버젓이 꽂혀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반가웠던지. 이 책을 조금은 알고 있었거든요. 언젠가 한국 어느 신문에 실려있던 이 책 소개글을 읽은 적이 있었지요.

참으로 치열한 책입니다.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란 것을 자기 이념과 사상을 위해 멋대로 왜곡하고 생략하는 어줍잖은 역사가들을 겨냥한 하나의 도전장 같다고나 할까.


교과서와 반대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모든 미국 역사 선생님들께 이 책을 바친다.(그들의 수가 늘고 있다.)


책머리에 얹혀져 있는 그의 헌사입니다.

본래 남의 글을 교정하거나 비교분석하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인데, 46명의 저자가 쓴 18권의 역사교과서와 자기가 모은 사료들을 한자리에 놓고 비교검토하는 작업을 장장 20여년이나 했다니.

그리스도인과 전쟁



1995년, 12권을 두고 11년을 씨름한 끝에 초판을 출간하게 되지요. 이 책으로 그는 알리버 칵스의 「반(反) 인종차별주의 상」을 미국 사회학회로부터 받게 되었고. 그로부터 12년 후인 2007년, 이 책의 개정증보판이 나오게 됩니다. 이 기간 중 6권의 새로운 교과서가 연구목록에 추가되지요.

80년대에 그는 미시시피주에서 교편을 잡은 일이 있었답니다. 원래 흑인들이 많은 이 지역에는 라티노와 인디언도 제법 많이 살고 있었는데 도대체 그들의 자녀들이 미국역사하면 ‘무흥미’더라는 것이지요. 소수민족(Ethnic Minorities)인 이 아이들의 미국역사에 대한 무관심, 그것에 대한 원인찾기가 그의 연구의 동인이 되었답니다.

진 교수(Howard Zinn)의 「미국민중사」, 이 책은 1980년에 출간되었으니 저자가 진교수의 영향을 받았을상 싶은데, 거기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고, 오히려 그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극구 읽기를 권하는 진교수의 추천사가 실려 있네요.

우리가 들어보지도 못한, 전혀 예상조차 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수두룩합니다만 안타깝게도 몇 개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으니.

참,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이란 제목, 그게 좀 길어서 매번 쓰고 부르기가 번거롭네요. 하여, 뚝 잘라 「거짓말」이라고만 부를테니 그리 아시기 앙망하옵고.


콜럼버스. 역시 크게 취급하고 있네요. 한 장(章) 전부를 그의 이야기로 채우고 있을 정도니까요. 작년 여름 제 「전쟁이야기」도 그를 네 번(16회-19회)에 걸쳐 다루었는데 기억하실런지.

「선교(복음)와 황금」의 깃발을 휘날리며 신대륙으로 건너간 그가 고만 황금에 눈이 멀어 동분서주 온갖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사연.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거짓말」은 교과서 저자들이 이와 같은 역사적 진실을 묵살하고 그를 영웅화(heroification) 하여 ‘위대한 신대륙 발견자’, ‘용감한 탐험가’, ‘가장 뛰어난 항해사’로 둔갑시켜버렸다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헬렌 켈러(Helen Keller)의 삶을 그린 영화가 오래전에 나왔었지요. 농맹아(聾盲啞)의 3중고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녀, 가정교사였던 살리반이 펌프물을 손바닥에 대주며 ‘물’이란 단어를 적어주자 글자의 의미를 깨닫고 환희하던 모습.

교육가, 저술가, 사회사업가 그리고 무엇보다 인도주의자(humanitarian)였던 그녀. 20세기 중엽 세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여인. 여기까지가 그녀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이고 또 역사교과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만, 「거짓말」은 강하게 ‘아니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헬렌 켈러 여사가 급진적 사회주의자(radical socialist)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전쟁



계급타파를 외치며 치열한 전투적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대학시절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기 시작한 그녀는 1909년 실제로 매사추세츠 사회당에 입당하게 됩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세비키(Bolsheviks) 혁명이 성공하자 새로운 공상주의 국가의 탄생을 축하하며 이런 글까지 썼답니다. 「동녘에 새로운 별이 떴다. 고통과 근심의 옛날은 지나가고 새날이 왔나니, 동무들이여 우리 함께 동터오는 새벽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그녀의 책상 위엔 늘 적기가 꽂혀 있었고.


필그림들이 인디언의 곡식으로 연명하면서 인디언의 무덤을 파헤치고 있을 무렵, 웬일인가 그 일대에는 인디언이 전혀 보이지 않더라는 것까지 말씀드렸습니다.

돌림병(전염병) 때문이었어요. 필그림의 상륙 3년 전인 1617년, 무서운 전염병이 뉴잉글랜드 남부지방을 휩쓸고 지나갔답니다.

대구(cod)가 많이 잡히는 뉴잉글랜드 해안엔 오래전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어부들이 자주 들락거렸다네요. 이들은 잡으라는 고기는 안잡고 인디언들을 잡아 노예로 팔아먹기까지 했다는데, 바로 이 어부들이 전염병을 옮긴 장본인들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답니다.

3년 내에 원주민이 90-96%를 죽음으로 몰고간 전염병.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웃 부족에게로 도망치게 되지요. 이미 병균을 지니고 있는 이들로 인해 전염병은 점점 더 퍼져나갔고. 폐허가 된 마을엔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유골들과 시체들. 도대체 장사지내줄 인간이 없었으니. 물론 먼저 죽은 사람들이야 땅에 묻혔겠지만.

그런데, 당시 영국와 제임스 일세(James I)란 자가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아세요.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께서 이 야만족에게 놀라운 전염병 (Wonderful Plague)을 내려주셔서 제 백성들이 쉽게 정착할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대를 이은 그의 아들 찰스 일세(Charles I)가 청교도였던 크롬웰(Oliver Cromwell)에 의해 목이 잘리고 말았으니, 이 무슨 역사적 아이러니인지.


본래 신대륙 원주민들은 건강체였답니다. 적어도 콜럼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것이지요. 신대륙에는 질병이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원주민들은 기본적인 위생생활, 목욕과 건강한 음식 등등, 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유럽인들은 죽어라 하고 '목욕 않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네요. 목욕이 인체에 해롭다고 여겼으며 또 나체가 되는 것을 부도덕한 일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스운 풍습이 19세기 중엽까지 계속 되었다니. 그러하니 필그림들이 풍기는 냄새가 오죽 했으리요. 스콴토(Squanto)라는 인디언이 필그림을 도우면서 함께 살고 있었지요. 하도 지독한 냄새에 기가 질린 그가 필그림들에게 목욕을 가르치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과 전쟁



한국일보는 작년 말부터 「뉴욕한인 125년」이란 연재물을 싣고 있습니다. 김원모 교수의 완역본 「알렌의 일기」. 알렌(H. Allen)은 1884년 미북장로회에서 파송한 의료선교사요 뒤에 주조선 미국공사가 되었던 분이지요.

조선 초대주미공사 박정양과 그 일행을 수행하여 미국으로 항해하고 있던 1887년 12월 28일, 「오셔닉」호에서 그가 쓴 일기의 한 토막입니다.

그들의 몸에서는 항상 고리타분한 냄새가 풍겨나고 있었다. 목욕하지 않은 몸에서 나는 고린내, 줄담배 냄새, 고약한 조선 음식 냄새가 선실 안을 온통 악취로 가득차게 했다. 승객들은 친절한 척 했으나 이 냄새나는 조선 사절단을 한 방으로 격리시켜준 선장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우리 역사극을 볼 때면 공연히 조상님들의 상투가 걱정이라, 「목욕문화」와 DDT가 없던 시절이니 그 냄새며 드글거릴 서캐며. 짧은 머리를 하신 고종의 사진이 있네요. 임금의 상투가 싹둑 잘리시던 날, 조선 선비들은 저마다의 상투를 움켜쥐고 나라 잃은 슬픔보다 상투 잃을 슬픔으로 거국적 대성통곡을 했을까 말았을까.  주안에서 샬롬. 이은모

낙 심

신앙과 사색 : 2009/02/04 20:50

낙 심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낙심하게 됩니다. 힘겨운 문제나 과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일을 망치고 당혹스럽거나 창피할 때,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을 때,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긋났을 때, 우리가 가진 한계로 인해 높은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가 바로 그런 이유들일 것입니다. 

  우리 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많은 위대한 사람들 역시 낙심하고 괴로워하는 일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자 지도자로서 고뇌하였고,  욥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굳은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자 크게 낙심하였습니다.  낙심하게 되면 하나님, 가족, 직업 그리고 심지어 희망 자체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나를 등지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다고 느껴졌던 일들이 아주 사소하게 보이고, 다시는 기쁨과 행복감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깊은 낙심의 구렁으로 빠지거나 아니면 우리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헤어 나오는 것입니다. 낙심 (discouragement)의 반대는 용기 또는 희망 (encouragement)입니다. 용기나 희망은 바로 우리가 낙심했을 때 필요한 해독제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용기와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곤경에 처하게 된 원인을 찾으십시오. 그런 다음,  회복책을 마련하십시오. 당신이 지금 처한 어려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게 되면 당신은 희망과 함께 기쁨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왜 낙심하게 될까요?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편 73장 2‐3절)

  하나님께서 당신께 주신 것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 만을 볼 때 쉽게 실망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신앙과 사색



않게 하옵소서” (민수기 11장 10‐11절, 14‐15절)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할 때 그들에게 실망하게 되고 점차 그들을 비이성적으로 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대저 저희는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땅에 거하는 자를 거짓말로 모해하며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시편 35장 20‐21절)

  당신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당신에게 등을 돌릴 때 낙심하게 됩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고린도후서 2장 16절)

  당신이 주어진 과업을 성취하지 못할 것 같을 때, 혹은 그 일이 당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낙담하기 쉽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장 8‐9절)

  일상생활에서 찾아오는 마음의 짐과 상처로 인해 낙심하게 됩니다.


제가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장 9절)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늘 함께 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한복음 15장 18절)

  당신이 겪고 있는 일들을 예수님께서도 경험하셨다는 것을 되새기며 마음의 위안으로 삼으십시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시편 119장 25, 28절)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당신과 대화하십니다.


신앙과 사색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장 29‐31절)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힘과 능력을 더하십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니리,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여호수아 23장 10절)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켜 보호하여 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17절)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시편 139장 3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십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8‐39절)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으로써 당신은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낙심하게 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애굽사람이 우리를 학대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신명기 26장 6‐7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시야 38장 2절)

  하나님께 기도로써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실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당신은 하나님을 영접하고 당신이 가진 문제들을 솔직하게 모두 다 고백함으로써 당신이 가진 짐들을 하나님과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신앙과 사색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기 1장 20‐22절)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서 4장 10절)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 하시며, 당신은 하나님의 도움을 늘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장 6‐8절, 11절)

  시련을 통해 값진 열매를 가져다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실망과 좌절을 통해 당신이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당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시는 단 한분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잠시라도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장 22절)

  당신이 진 짐이 너무나 무겁다고 느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진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거나 없애주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은 천국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필요한 지혜, 힘, 마음의 안정 그리고 사리분별력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8장 6절)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까지도 역사하십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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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베드로전서 5장 8‐9절)

  나 자신도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그에게 굳세게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빌립보서 1장 14절)

  당신이 겪은 고난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간증의 기회를 찾으십시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24장 13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12장 3절)

  당신이 낙심하여 포기하면 이는 패배한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사무엘상 23장 16절)

  그들이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 (역대하 32장 8절)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상기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잠언 15장 30절)

  당신의 미소가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줄 것입니다.

  ✎ "Life’s Questions", Ronald A. Beers & V. Gilbert Beers, 번역:복은임

링컨의 반만큼이라도 되라!

-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



2009년 1월 20일. 이 날은 역사 속에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미국 역사에 있어서. 이는 제 44대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날이어서가 아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취임한 날이기 때문이다. ‘흑인 대통령’이 취임한다는 것 이는 곧 이 나라 미국이 어떠한 나라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즉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나라, 인종과 편견을 뛰어넘어 인격과 능력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나라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이번 대통령 취임은 다른 어떤 때보다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오바마’는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만큼 그를 향한 미국민들의 기대가 큼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 게다. 역사상 가장 많은 군중이 국회 의사당 앞 광장에 운집하여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한 이유가. 그래서일 게다. 역사상 가장 많은 세계 인구가 TV를 통해서 ‘오바마’의 취임식을 지켜본 이유가.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10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의 취임식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는 ‘오바마’를 향한 기대가 단지 미국민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라 할 것이다.


그가 취임식을 가진 국회 의사당 앞에는 ‘링컨 기념관’이 있다. 그래서인지 TV 화면엔 자주 링컨 기념관이 비쳐졌다. 그 링컨 기념관을 보는 순간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147년 전에 ‘링컨’이 흑인노예해방을 선언했는데 오늘 그가 해방시킨 흑인 가운데서 미합중국 대통령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46년 전에 저 ‘링컨 기념관’ 앞에서 수십만의 흑인들이 운집한 가운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이라는 명연설을 하며 흑인 민권운동을 가졌는데, 마침내 오늘 그 민권운동이 결실을 맺어 ‘흑인 대통령’을 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과 각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할 때 왼손을 올려놓은 성경이 바로 ‘링컨 대통령’이 사용했던 성경이라고 한다. 그 성경은 지난 1861년 이래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국회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오바마’가 그 성경을 찾아내 자신의 선서식에 사용했다고 한다. 어쩌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만 보면 ‘오바마’가 구체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링컨 따라하기’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실제로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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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초장



언론에 밝히기를 “요즘 링컨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 있다”고 하면서 링컨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존경과 애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오바마’는 그 동안 줄곧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웠는데 이는 ‘링컨’에게서 따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연설’에 있어서도 ‘오바마’는 링컨의 연설을 많이 모방하려 애썼다고 한다. 특히 그는 정적까지 껴안을 수 있는 ‘초당주의’를 역설했는데 이는 링컨의 연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단지 연설문의 모방 정도가 아니다. 이번 대통령 취임식의 주제가 “자유의 새 탄생”(New birth of freedom)인데 이는 링컨의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Gettysburg) 연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는 대통령 취임식을 3일 앞 둔 지난 17일부터 가족들이 함께 필라델피아에서 기차를 타고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워싱턴에 당도했는데 이 또한 ‘링컨 대통령’이 가졌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행한 것이라 한다. 이 정도면 ‘오바마의 링컨 따라하기’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오바마’는 왜 그토록 ‘링컨’을 기대며 ‘링컨’을 따라하는 것일까? 그가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구세주’와 같은 인물이어서 일까? 물론 그 역시 다른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을 추앙하며 존경할 것이다. 그러나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이는 링컨이 미국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 때문이다. ‘링컨’이 어떤 사람이며 또 이 미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과 의미를 갖는 사람인가를 알게 될 때 ‘오바마의 링컨 따라하기’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링컨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1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미국민들로부터 변함없는 추앙과 존경을 받고 있다. 한 인물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가 죽은 다음에 할 수 있는 법이다. 링컨처럼 사후 150년이 지난 후에도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듣는 바로는 미국인 가운데 ‘링컨’에 대한 것이라면 기를 쓰고 수집하는 소위 ‘링컨 마니아’가 수백만은 족히 된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국민들의 추앙과 존경을 받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 수 없다. 링컨의 이름이 붙은 도시, 길 이름, 광장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미국 안에 ‘링컨’ 이름이 붙은 도시만 해도 수십 개는 넘는다. 단지 지명만이 아니다. 단체나 기관, 회사, 호텔, 식당, 자동차, 택시 등등에도 그의 이름이 수없이 붙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스갯말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링컨링컨 가에 있는 링컨 호텔에 링컨 차를 타고 가 링컨 침대에 누워 자고 일어나 링컨 식당에서 링컨 쥬스를 마시고 토스트에 링컨 잼을 발라 먹은 후 링컨 이발관에 가서 머리를 깎고 속이 안 좋으면 링컨 약국에서 약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온다. 도중에 링컨 상점에 들러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살 수도 있고, 현금이 필요하면 링컨 은행에 가서 현금을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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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초장



이 정도면 ‘링컨’이 이 미국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위대한 문호 ‘톨스토이’가 ‘링컨’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 것을 아는가? 그는 지난 1909년에 링컨 탄생 1백 주년을 맞아 이 같은 말을 하였다.

“역사상의 모든 위대한 국민적 영웅과 정치가 중에서 링컨만이 오로지 진정한 거인이다. 알렉산더, 프레데릭 대왕, 나폴레옹, 글레드스톤과 심지어 워싱턴조차도 인격의 크기, 감정의 깊이, 그리고 어떤 도덕적 박력에 있어서 링컨에게 훨씬 뒤떨어진다. 링컨이야말로 한 국민 전체가 자랑할 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축소된 모습이며 인간성을 풍부히 지닌 성자였으니 그의 이름은 오고 오는 세대의 전설 속에서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을  것이다.”

톨스토이가 ‘링컨’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믿겨지는가? ‘톨스토이’다운 뛰어난 문체의 ‘링컨 예찬’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충분히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링컨’이 어느 정도 대단한 사람인지. 특별히 이 미국에서 그가 어느 정도로 사람들의 추앙과 존경을 받는지. 더불어 왜 ‘오바마’가 그토록 ‘링컨 따라하기’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이다. 내 생각에, 그가 링컨을 크게 존경하기에 ‘링컨 따라하기’를 했겠지만 또 한편으론 미국민 뼛속 깊이까지 스며있는 ‘링컨’에 대한 추앙을 십분 활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의도하고서 그렇게 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오바마’에게서 ‘링컨의 그림자’를 보았으며 단지 그것만으로도 그에 대해 열광하였다. 그런 면에서 ‘오바마’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흑인으로서 제 44대 미합중국 대통령에 선출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월 20일 ‘오바마’는 미합중국 제 44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링컨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대통령으로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것에 대해서 일일이 말하자면 아마 열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많은 역사가들이 그에 대해 평가하는 바에 의하면 무엇보다 그는 ‘정직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위인전을 통해 링컨에 대해 늘 듣고 배운 것이 무엇인가? ‘정직한 에이브’ 아닌가? 단지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 세계에서도 그는 정직하였다. 그는 평생을 ‘정직함’으로 살았고 정직이 그의 최대의 무기였다.

또한 그는 ‘신념의 사람’이었다. 그는 인류를 위해, 또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한번 결정한 것에 대해선 굳은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추진하였다. 특히 그의 신념은 그의 민주주의 정신과 직결되어 있다. 바로 그 민주주의 신념 때문에 그는 ‘흑인 노예해방’을 주창하였던 것이다. 다음 내용은 그의 그 같은 신념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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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남의 노예 되기를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내가 남을 지배하는 자리에 서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 말이 나의 민주주의의 이념입니다”

이 민주주의 신념을 위해 그는 ‘남북전쟁’이라는 비극적인 내전을 가지면서까지 결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와 같은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그가 게티즈버그(Gettysburg)에서 행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히 지구상에서 멸망치 않을 것입니다”라는 선언은 그의 민주주의 신념의 꽃과 같은 것이다.


끝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는 ‘링컨의 믿음’을 말하고 싶다. 그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되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했던 사람이었다. 바른 신념을 갖되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했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자주 들어서 아는 것처럼 그는 늘 자신의 집무실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늘 진실하게 경건의 삶을 가졌으며 하나님과 양심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행하려 애썼다. 그랬기에 그는 늘 바른 양심과 바른 신념을 가질 수가 있었고 늘 겸손하고 진실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가 있었다. 나는 그 같은 링컨을 보며 링컨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랑한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랬기에 그는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칭송받으며 역사 속에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가 있었다.


‘오바마’가 바로 그 ‘링컨 대통령’을 따라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야말로 고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오바마가 링컨을 따라한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이 미국과 세계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링컨을 따라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링컨을 본받겠다는 것 아닌가? 링컨의 정직과 링컨의 신념과 링컨의 민주주의 정신을 본받겠다는 것 아닌가? 언젠가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링컨의 통치술에는 지혜와 겸손이 담겨 있다”고. 그래서일까. 나는 어쩐지 그의 모습에서 ‘지혜’와 ‘겸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분명 그는 링컨의 ‘지혜’와 ‘겸손’을 본받으려 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바마’가 링컨을 따라할 수 있기를 원한다. 만일 그가 링컨을 본받되, 단지 일리노이 출신인 것만 본받고, 단지 그의 연설문만 본받고, 단지 기차여행만 본받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링컨을 본받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단지 ‘링컨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보다는 링컨의 ‘인격’을 본받고, 링컨의 ‘민주주의 신념’을 본받고, 무엇보다 링컨의 ‘믿음’을 본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링컨의 ‘반’만이라도 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역시 ‘링컨’처럼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통령 더 나아가 역사 속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그 같은 대통령이 되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바란다.   ✎김현진


온 누리에 새 시대의 햇살이


      1.

수십만

아니 수백만은 되었을 게다.

국회 의사당 앞 광장에 모인 인파가.

44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 동참하고자.

누군들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랴!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들 중 하나이고 싶었다.

그만큼 길이 남을 역사의 현장이기에.

그곳에 운집한 이들을 부러워하며

TV로라도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자

나는 시종 CNN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TV 화면엔 자주 링컨 기념관이 비쳐졌다.

문득 짠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 얼마나 멋진 역사의 조화인가?

147년 전 링컨이 흑인 노예 해방을 선언했는데,

그리하여 모든 흑인들이 자유인이 되었는데,

이제 그가 자유케 한 흑인 가운데서

미합중국 대통령이 나올 줄이야...

아마 링컨조차 상상치 못했으리라.

이 같은 날이 오리라고

그는 단지 흑인들의 자유만을 꿈꾸었을 뿐인데.


46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 링컨 기념관에서 수십만의 군중들을 향해

“I have a dream”이란 위대한 연설을 토하며

흑인들의 평등과 권리를 외쳤는데,

이제 같은 장소에 더 많은 군중들이 운집하여

이처럼 흑인 대통령의 취임을 환호할 줄이야...

아마 킹 목사조차 상상치 못했으리라.

이 같은 날이 오리라고

그는 단지 흑인들의 민권만을 꿈꾸었을 뿐인데.

정말이지 경이로운 역사의 조화에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놀랄 따름이다.



나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며

정의의 위대한 승리를 본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당신 뜻대로 움직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큰 손을 본다.


      2.

금년은 링컨 탄생 2백 주년의 해

그리고 취임식 전날은 마틴 루터 킹 데이였다.

그 같은 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세워진다는 것

이 얼마나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일인가?

오바마가 오른 손을 들어 선서하는 순간

흑인들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아픔과 슬픔을 한꺼번에 씻어내는

모든 맺혔던 한을 녹이는


문득 흑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토록 억압받고 멸시받은 이들이었는데

다른 인종들로부터 자주 무시당하곤 했는데

그들 가운데서 대통령이 나오다니...

이는 저들이 품은 꿈 때문이리라.

비록 링컨 기념관에서 백악관까지 46년이 걸렸지만

결국 저들의 꿈은 이루어지고야 말았다.

자신들이 꿈꾸었던 것보다 더 엄청난 결실로.

우린 언제 저렇게 대통령을 낼 수 있을까?

우린 언제 저들처럼 꿈을 품을 것인가?


취임식을 다 끝내고 집 밖을 나서자

온 누리에 밝은 햇살이 넘치고 있었다.

늘 무겁고 우중충하기만 하던 요즘 날씨였는데

막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듯

다가올 새 시대를 예고라도 하는 듯

눈부시고 아름다운 햇살이었다.

라디오를 켜니 온통 ‘오바마’ 얘기들뿐이었다.

모두들 그에게 큰 기대들을 갖고 있다는

문득 나도 모르게 간절한 바램이 새어나왔다.

“오바마여,

부디 좋은 대통령이 되라!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라!” (HJ)

미전도종족을 향한 사랑의 불씨(2)

-김요한 선교사님 인터뷰-



*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고 있는 김요한 선교사님께서 지난 몇 달간 버팔로에 머무시게 되어 저희 교우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오셨습니다. 「쉴만한 물가」편집부에서는 선교사님의 삶과 신앙 및 그동안의 사역을 여러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자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Q. 왜 U국을 선교지로 택하게 되셨나요?

A. 선교헌신 후 남미 아르헨티나와, 유럽 등으로 단기선교를 다니면서 저희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1991년도에 소련문이 처음 열렸을 때 모스코바 타쉬켄트, 알마타 등에 선교여행을 하면서 그곳에 고려인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 후 다시 U국으로 단기선교를 하러 갔을 때 이 문제로 금식기도를 했는데 그곳을 떠나기 직전에 응답을 받고 U국을 저희의 선교지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시에 자녀분들이 어렸을 터인데 어려움이 없으셨는지요?

A. 당시 아이들이 중학교 2, 3학년,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비즈니스도 다 정리를 못한 상태라 아내가 워싱턴에 남아서 비즈니스 한 곳과 아이들을 돌보았고 저 혼자서 두 차례의 단기선교, 그리고 정식 파송을 받은 이후 3년 동안 혼자 U국에 들어가 일했습니다.

그 러다가 두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 11학년이 된 막내아이를 한 권사님 댁에 맡기고 아내도 함께 U국으로 왔습니다. 아이들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다 성장한 지금도 아이들은 늘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합니다. 선교사 자녀들이 겪는 아픔이지요.

사 모님: 맞아요. 선교사도 선교사 자녀들도 다 여러 가지로 상처들이 참 많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선교대회에서 선교사들과 그 자녀들이 모여서 모임을 가졌는데 마지막 날에 자녀들이 자신들이 가진 아픔 그리고 자부심들을 부모님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다 커서 그 자리에 없었지만 저도 너무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Q. 선교사님들에게는 자녀들 양육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지요?

A. 예. 그래서 많은 지역에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지요. U국의 경우도 미국, 영국 등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이 학교를 운영해 왔는데 지금은

선교의 현장



그 분들이 다 추방되어서 학교 운영이 안되고 있습니다. 한국인 선교사와 자녀들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가르칠 선생님이 없습니다. 이번에 선교사님 한 분이 이 일에 책임을 맡고 미국 전역과 캐나다를 다녔는데 결국은 구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선교사라고 하면 직접 선교사역을 하는 선교사만을 생각하는데 사실 여러 가지 분야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히 선교사 자녀들을 가르치는 사역도 너무 귀합니다. 그들을 잘 가르치면 그들이 다 선교사가 될 수 있지요. 이미 그 문화에 다 적응된 아이들이니까요.


사 모님: 우리 버팔로한인장로교회에도 젊은이들이 많은데 결혼 전에 1년이나 2년 정도 선교사 자녀학교에 교사로 헌신할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어로 가르칠 교사가 필요한데 이곳의 청년들은 다 이 일에 너무나 훌륭한 일꾼들이지요. 


Q. U국에서의 사역을 소개해주세요.

A. 첫째 사역은 교회개척 사역이었습니다. 그곳에 25만의 고려인들이 여러 개의 집단농장을 이루고 있었는데 각각의 집단농장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2기 사역으로는 그 개척된 교회들을 다른 선교사님들에게 맡기고 제가 맡은 만민교회를 셀그룹 교회로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정부에서 외국 선교사들이 더 이상 교회에서 종교비자로 일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후에는 회사를 세워서 비즈니스 비자로 일하면서 그 안에 교육센터를 운영하며 유치원을 열었습니다. 3기도 역시 NGO 및 비즈니스 사역을 하면서 지하교회들을 섬겼고, 4기 사역부터는 완전히 비즈니스 사역으로 전환하여 일했습니다.


Q. 기독교에 대해 강한 반대는 없었습니까?

A. 그곳의 대부분이 고려인들이었는데 모두들 무신론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유교관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특히 청장년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면으로 반대하지는 않았고 우리를 만나면 인사하고 안부 묻고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사역 초반에는 주로 아이들과 노인들만 교회에 가득했는데, 예수초청천국잔치 등을 하면 미국에서 온 선교사(저희들)를 구경하러 청장년 남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천명이 들어가는 문화회관이 꽉 찰 정도였습니다.

복 음사역을 크게 반대한 세력은 U국 정부이지요. 지금도 그렇고요. 모슬렘권 사람들도 우리를 반대하지만 그래도 서로들 인사도 하고 행사 때 초청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한 마당 안에 담 하나를 두고 교회와 모슬렘 사원이 함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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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려인 청장년들이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나요?

A. 저희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열리더군요. 800명이 공부하는 초등학교에 난방시설이 고장나서 아이들이 추위에 떨면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리교회가 헌금을 하여 난방시설을 고쳐주었습니다. 그 학교 교장선생님이 전에는 교회를 싫어하여 아이들을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일 이후로 아이들을 교회에 나가도록 적극 권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에 병원을 지으려고 계획했다가 결국 짓지 못하게 되어 그 일을 위해 마련한 20만불 상당의 엠블란스와 의료기기 등을 동네 병원에 기증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동네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교회가 정착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목표이지만 지역사회를 위해서 그 곳 사람들의 아프고 어려운 곳을 도와주어야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복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사 모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데에는 황만금 집사님이라는 분의 영향도 컸습니다. 그분은 고려인으로서 U국에서 모범적인 집단농장을 이끌어와 노동영웅상까지 받은 유명한 분이셨는데, 그분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고 동네에 있는 회관을 교회당으로 쓰도록 빌려주었습니다. 또한 도지사가 교회 건축을 반대할 때도 그 집사님께서 나서서 도와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분을 주셔서 우리의 사역에 큰 힘을 실어주셨지요.

그 리고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의 청년들을 해외로 많이 내보내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에까지 많은 대학에서 우리교회 출신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원래 그곳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목사님께서 유학생 보내는 일에 적극적이셔서 조그만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수십명의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게 되었지요. 고등학생들도 해마다 나라에서 보내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나가고 있고요. 그러다보니 이것 때문에 교회를 찾아나오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Q. 최근에 사역의 전환이 있으셨지요?

A. 1996년 이후로 U국 정부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세례를 줄 수 없게 만들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2000년까지 세례와 성찬을 계속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U국으로 들어갔을 때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있었습니다. 그간의 편지로 아시다시피 유치원에서 종교교육을 했다는 것과(그들이 학부형들에게 거짓 증언과 편지들을 쓰게 한 것입니다.) 교회에 이상한 문서 즉 전도지가 있다고 하여 교회와 유치원의 문을 닫게 될 뻔 했습니다. 다 저희를 추방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마침 저희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나온 후라 저희를 못잡은 것이지요. 지난 5월에 이 일이 일어나 모두가 정말로 간절히 기도를 해왔는데 9월에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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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범자들을 사면해 주라는 대통령 특사가 내렸습니다. 우리도 ‘초범자’(?)에 해당되는 사람이라 이 특사로 인해 교회도 유치원도 문이 닫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이 일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다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기존의 비자로 U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U국의 교회는 이제 자립할 만큼 성장하여 있으니 제가 그곳에 없어도 큰 어려움 없이 움직여가고 있습니다.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후방에서 도울 계획입니다.

이 일 후로 제가 속한 Seed 선교본부에서는 제게 새롭게 미전도종족 선교동원의 일을 맡겼습니다. 지난 안식년 동안 미전도종족 선교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U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인 것 같습니다.


Q. 미전도종족 선교에 대한 소개와 선교사님의 앞으로의 사역계획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지금 세계 선교사들의 90%가 이미 선교사가 있는 곳에, 또한 선교비의 87%가 이미 선교비가 지출되는 곳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선교사도 교회도 쪽복음이나 예수영화 마저도 전혀 안들어간 곳이 3400여 종족이나 됩니다. 문명의 오지나, 모슬렘권, 혹은 공산주의 지역들이라 선교사들이 들어가기를 꺼리기 때문이지요. 우리 교회들이 크게 회개해야 할 일이라 여겨지고 또한 하나님께서 이들 미전도종족에 대해 얼마나 안타까와 하시는가 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 는 앞으로 이 민족들을 위한 선교 동원사역을 하게 되는데, 교회들을 찾아다니고 선교대회, 세미나 등을 개최하면서 선교사를 모집하고 교회들을 이 사역에 참여시키는 일을 합니다. 올 11월에도 이곳 버팔로에서 3000명 예상의 선교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한 저는 현장사역도 함께 하려고 합니다. U국에도 미전도종족들이 있는데 이 곳부터 시작하려 하고, 인구가 10만이 넘는 미전도종족이 집중된 북인도 지역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일생 동안 몇 개의 종족이 복음을 받고 교회가 세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Q. 저희 버팔로한인장로교회와는 어떻게 연결되셨는지, 그리고 저희 성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나누어주십시오.

A. 제가 버팔로와 인연이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딸이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버팔로한인장로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대해 열정을 갖고 계신 김현진 목사님과, 누리글 선교를 하고 계시는 김석연 박사님은 제게 이 교회에 대한 애정을 더욱 남다르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미전도종족 선교에 헌신하면서 누리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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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듣고 크게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누리글 선교를 시작하신 김석연 박사님을 이 교회에서 만나뵙게 되고 함께 기도모임도 갖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사 모님: 저희는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다보니 교회들마다 받는 인상이 다 다릅니다. 이 버팔로한인장로교회는 우리 같은 이민자들이 처음 미국에 와서 나온 교회, 그러니까 서로들 가족처럼 챙기고 따뜻한 그런 분위기를 느껴서 너무 좋고 편안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변하지 않고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 사님: 저는 이 버팔로한인장로교회가 마지막 때에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해 크게 사용될 것임이 눈에 선하게 보입니다. 미전도종족선교에 너무나 크게 사용될 누리글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얼마 전에 나이아가라에서 열린 미전도종족 선교대회에 2000명의 젊은이가 미국 전역에서 모였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올 11월는 이곳 버팔로에서 3000명 규모의 미전도종족선교대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도시도 아닌 이 버팔로에서 이런 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하심이 있다고 봅니다. 그 중심에 버팔로한인교회가 서있는 것 같습니다. 

일 은 하나님이 이루어가시지만 또한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마음을 다해 기도로 헌신하는 일꾼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시면 산을 움직이십니다. 이것은 바로 기도의 불씨로부터 시작됩니다. 버팔로한인장로교회가 큰 산을 움직이는 불을 붙이는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편집부

성경이 만든 사람(1)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이야기-


제1부 성경 위에 세운 비전

백 화점 왕, 체신부 장관, 세계 주일학교 총재로 잘 알려진 존 워너메이커는 1838년 7월 필라델피아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성실한 벽돌공 아버지와 신앙이 깊은 어머니였다. 존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방과 후 아버지의 공장에서 주급 42센트를 받으며 일을 했고, 12살 이후로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지만 결코 낙담하지 않았다. 어느 날 존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옷감을 사러 갔는데 색깔이 맞지 않아 교환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상점 주인은 불친절한 태도로 그의 요청을 무시했고, 어린 존은 자신이 상점 주인이라면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물건을 바꿔주고 고객을 친절하게 대할 거라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그는 건축가, 저널리스트, 의사, 목사, 사업가 등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직업들을 떠올리다가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결국 돈을 많이 벌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버는 상인이 아닌 고객들을 친절과 정직으로 대하고 행복하게 하는 미래의 거상을 꿈꾸었다.

존 은 어려서부터 장사와 셈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어른들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방법으로 장사를 했다. 하루는 학교에서 파티를 열게 되어 감자를 준비해야 했는데, 그에게는 여력의 돈이 없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개울가의 개구리를 잡아 보기 좋게 포장한 후, 감자가게 주인에게 물물교환을 요청했다. 가게 주인이 미식가임을 알았던 존의 깜찍한 아이디어로 감자를 12개나 마련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에피소드가 존이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인디애나주에서 일어났다. 존이 동생과 함께 할아버지가 경작한 사과를 예쁜 바구니에 담아 팔아 큰 이익을 남겼고, 며칠 뒤에는 인디언을 대상으로 과일과 채소를 팔아 모카신을 구해왔던 것이다. 이 일들로 인해 존의 가족들은 낯선 곳에서 맞는 추운 겨울을 훈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 러나 온 마을에서 탁월한 장사꾼으로 이름난 존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책’이었다. 그는 10살 때부터 랜드래스 주일학교를 다녔는데, 어떤 아이보다 더 말씀 듣기를 좋아하고 성경책을 갖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주일학교 선생님에게서 성경책을 사기로 한 존은 그 동안 모아둔 37센트로 빨간 가죽 성경책을 살 희망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성경책의 가격은 2달러 75센트! 선생님 또한 가난해서 존에게 성경책을 선물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고, 그 역시 자신이 일해서 번 돈으로 성경책을 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하여 존은 1년 반 동안 자신이 번 돈을 모아 주일마다 선생님께 드리는



방 식으로 자신의 첫 성경책을 갖게 되었다. 이런 존의 성실하고 귀한 마음을 아는 부모와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존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성경을 주일에만 사용하는 사람은 나약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존 은 가족과 함께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제일독립교회에 출석하였다. 이 건물은 오래되어 비가 오면 늘 예배당 입구가 지저분해졌고, 이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 존이 매일 벽돌을 한 장 씩 사서 이른 새벽에 교회 입구에 깔기 시작했다. 어느 날 담임목사인 챔버스 목사는 몇 주일째 벽돌을 까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여 일찍 교회에 갔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 주인공이 13살짜리 어린이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존의 정성에 감동받은 챔버스 목사는 ‘하나님, 어린 존이 어른들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을 꼭 축복하셔서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세요.’ 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또한 주일 설교 때 모든 교인들에게 존이 한 일을 이야기했고, 교인들도 존의 신앙과 헌신에 감동받아 새 교회 건물을 짓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존이 벽돌 소년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벽돌 한 장으로 인연을 맺은 챔버스 목사는 존 워너메이커에게 평생 영적 스승인 멘토가 되는데, 존은 훗날 챔버스 목사가 하늘나라에 간 후 ‘존 챔버스 메모리얼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헌당하게 된다.

챔 버스 목사의 주일 설교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과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배우며 성장한 존은 17살부터 주일학교 보조 교사로, 19살부터는 주일학교 정교사로 헌신하였다. 그는 1855년부터 시내의 한 의류점 점원으로 일했는데, 점심시간마다 YMCA 기도도임에 매일 참석하였고, 혹시라도 가게 일에 소홀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출근하고 마지막으로 퇴근하였다. 평일에는 의류점과 YMCA에서, 주일은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하던 어느 날, 존은 의류점에서 폐결핵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그 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시카고와 미네소타의 한적한 지역에서 요양을 하였는데, 이때 그는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인생의 가치에 대해 귀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다행히 그의 건강은 호전되었고,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YMCA총무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존이 관리하는 YMCA는 57명으로 시작하여 1년 만에 2천 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하였고, 기도모임 역시 가장 큰 강당에서 해야만 할 만큼 부흥하게 되었다. 당시 필라델피아에는 타락한 도시생활에 물들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났는데, 존이 YMCA 활동과 금주 금연 서약운동을 벌이며 젊은이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고자 했다. 그해 여름, 도시 곳곳에 300개 이상의 종교 모임을 만들어 청년 부흥운동을 주도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웅장한 YMCA 회관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는 1869년에 단체의 대표 자리를 잇게 되고, 평생 동안



책 임자와 후원자 역할을 감당하였다. 또한 세계 곳곳에 거액의 기부금을 보내어 회관 건립과 운영에 도움을 주었는데, 한국에도 1908년 종로 2가에 YMCA건물이 준공되었다. (그러나 이 건물은 한국 전쟁 때 불타고, 후에 다시 재건되었다.)  

또 한 그는 YMCA에서 사역을 시작한 1858년, 여러 청년들과 함께 허름한 상가의 2층을 세내어 ‘챔버스 선교학교’를 열었고, 1년 후에는 장소를 옮기어 ‘베다니 주일학교’를 세웠다. 초기에는 불량배들의 방해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주일학교 운영은 힘든 상황이었지만 존은 주일학교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주일학교에는 매주 새로운 아이들이 찾아왔고, 5개월 후에는 상가 건물 주변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어린이들의 부모들이 낡은 배의 돛과 천막으로 커다란 천막 예배당을 만들었는데, 그러나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외부에서 예배드리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새 건물을 지어 1년 후 추수감사절에는 교회를 완공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이 때 275명의 어린이와 17명의 교사가 함께 했다. 새로운 베다니 주일학교는 주일 오전, 오후, 그리고 저녁까지 예배와 각종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그 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예배와 찬양, 성경공부를 시도하고, 다양한 특별활동으로 아이들이 좋아하고 기쁘게 참여하는 주일학교를 만들고자 했다. 예배당 의자를 둥그런 말발굽(∩)모양으로 특별 제작하여 학급별로 앉게 했는데, 이것은 공과 공부에 집중하게 하기 위한 존의 아이디어였다. 선생님이 말발굽 의자의 중앙에 있고 아이들이 모두 선생님을 향하도록 되어있어 교육효과는 만점이었다. 이렇게 해서 베다니 주일학교는 사역 말에 1천 2백 개가 넘는 학급, 6000명이 넘는 학생, 1500명이 넘는 교사들이 함께 하는 거대한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존은 학생들의 영적상태에 따라 초급반, 중급반, 상급반으로 분리시켜 관리하고 매주 결석자와 새신자를 심방하도록 격려했다. 그는 어린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뜨거운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것이다. 그는 19살부터 85살까지 67년이라는 세월을 쉬지 않고 충성스럽게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게 된다. 먼 훗날 체신부 장관이 된 존 워너메이커는 ‘큰 기업의 회장, 국가의 봉사자로도 바빴을 텐데 어떻게 4천명이나 되는 주일학교 학생들을 돌보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에게는 주일학교가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입니다. 다른 것은 그저 하나의 일에 불과합니다. 45년 전 저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었고, 이것이 제 헌신의 비밀입니다.”

✎  “성경이 만든 사람-존 워너메이커 ”(전광, 생명의 말씀사) 요약:정재은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 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 러나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쳤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어 그는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연기를 했습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탔습니다.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했습니다. 한 기자가 그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계산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계산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을 때 하나님은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오직 절망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서 가진 것을 세어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동문



왜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시키신 전쟁과

폭력적인 것이 많을까요?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요새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 중 구약에서 기록하고 있는 HEREM 이라는 것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가나안사람들을 상대로 벌이게 하신 전쟁들인데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으로 가서 모든 사람들, 남자건 여자건 아이들이건 살려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전쟁포로로도 남겨두지 말고 완전히 패망을 시켜야 했으며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착 전에 저주를 걸기도 했습니다. 그런 폭력적인 것이 받아들여졌고 분명히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또 그  폭력의 정도에 대해 우리는 간담이 서늘해지곤 합니다. 

  현대 학자들은 구약의 그 같은 이야기들이 실제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는 한 옛날의 피비린내 나는 반유목민이였던 히브리인들이 그들의 신께 자신들의 폭력적인 행위를 승인받기위한 시도로서 우리들은 이런 성경속의 이야기들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이야기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저는 다른 생각입니다. 저는 구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만들어졌으며 실제로 하나님이 유태인들로 하여금 가나안 사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도록 명령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왜 그런 전쟁을 하도록 하셨는지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한 무리의 피에 굶주린 침입자들로 하여금 순진무구한 사람들을 죽이도록 명령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배경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제물로 드리는 등의 무제한적인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때야 말로 비인간성이 그 나라 안에서 극도에 달했을 때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는 너를 이 전쟁에서 이 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한다. 나는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악한 가나안 사람들에게 나의 폭력을 행사할 것이다 ”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들을 진멸시킬 것이다.”(신명기 13:12‐17) 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나는 이 점을 너희들이 분명히 이해하기를 바란다. 나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응당한 벌을 너희를 통해 내리지만 이것은 절대로 너희들이 그들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똑같은 심판을 너희들의 죄를 묻기 위해 내릴 수 있으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내가 하는 일은 절대로 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이것은 하나님이 유태인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나는 나의 자비로 너로 하여금 거룩한 나라를 만들도록 너를 불렀다. 새롭고 또 거룩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는 무너뜨렸고 이 새로운 나라를 도구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축복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구별되길 바라며 어떤 종류의 이교도적인 관습들이 이 새로운 나라에 영향을 주길 원치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설명하신 전쟁의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폭력적인 내용에 대해 불편해 하지만 진실로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면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불순종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인정한다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런 조치들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 "Now, That's a Good Question!" R.C. Sproul 번역:유진희



미션 파서블! 선교바자



#1

바자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나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바자준비로 인해 시간을 많이 빼앗기니 말씀묵상이나, 기도시간에 지장을 받는 것같기도 합니다. 예수님 발앞에 엎드려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되기를 원하는데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분주하고, 말씀보다 일에 열중하는 마르다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나의 정상적 일상생활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선교지에 가고싶다는 꿈을 마음에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지에 가면 불편한 것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날씨가 너무 춥거나 혹은 더울 수도 있고, 깨끗한 물이 귀할 수도 있고, 깨끗한 옷을 못입을 수도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못먹게 될수도 있고, 잠자리가 편치 못할지도 모르고... 

  현지에 가계신 선교사님들은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을 뒤로 하고, 가까운 친지들을 떠나며,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가셨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면 추운 교회에서 바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부끄러워지며 내일 일할 것에 대해 용기를 냅니다.


여러 가지 형편상 바자준비에 동참하지 못하는 분들도 너무 부담 느끼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니까요. 형편에 따라 할 수 있는만큼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입이 얼마이든 간에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한마음으로 준비하는 바자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심을 믿고 나아갑니다. 서경선


#2

드디어 여선교회 회원들이 바빠지는 바자의 계절!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선교바자가 금년에는 지난해보다 한 달 앞당겨 3월 중순에 열릴 예정입니다.

바자때마다 수고하신 선교부장 서경선 장로님께서 올해도 팀장을 맡게 되셨고, 일할 때만 되면 힘이 펄펄한 젊은이가 되시는 권영순 집사님께서도 바자전반을 돕고 계십니다.


BKPC 생생리포트



해마다 바자는 늘 고민과 염려로 시작됩니다. 두 달여의 준비기간이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일할 사람이 너무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인원으로 어떻게 그 큰 바자를...” “올해같은 불경기에 바자 수익이 얼마나 날까...” “선교지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생각하면 안할수는 없고...” “뭔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등등.

하지만 결론도 똑같았습니다. “해보자! 그동안도 할만해서 했나? 하나님께서 그때그때마다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힘을 주셔서 해왔지 않았나!” “하나님 일인데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지! 우리는 그저 시작할 뿐이다!”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의 프로젝트는 만두빚기와 김치담기! 너무도 미끄러운 눈길을 뚫고 많은 분들이 나오셔서 봉사해 주셨습니다. 바자때가 되면 늘 수고해주시는 여러 분들 뿐 아니라,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분들을 보면서 놀라곤 합니다. 지난주의‘비예상 멤버’(?)는 한나회 회원들과 이순희 교우님, 윤수자 교우님이셨습니다. 칼질이나 제대로 할까 싶은 초보주부들이 어쩌면 그리 말도 없이 조곤조곤 일을 잘하는지 다들 깜짝 놀랐고, 오랜 주방경력을 여지없이 발휘해주신 여러 분들께도 ‘역시나’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을 즐겁게 해준 단태와 서윤이도 빼놓을 수 없고, 언제 먹어도 맛있는 권집사님의 고등어조림 점심도 추위를 잊게 해주었습니다.

바자때마다 경험하는 것이지만 날마다 일용할 만나를 주시듯 때때마다 필요한 사람들, 자원들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기쁨이 큽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한 발 한 발 나갈 때 일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는 벅찬 감동이 있습니다. 이 일이 단순한 한 행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지상명령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일임을 알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모든 분들이 다 어느 면으로든 바자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일뿐 아니라 사주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여 파는 것도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일할 수도 있고 혹은 집에서 하실 수도 있고, 아침 시간이나 오후시간, 때로는 저녁시간에 일하실 수도 있습니다. 격려해주시는 분, 기도해주시는 분도 필요합니다. 모든 분들 각자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감동 주시는 대로, 여건 허락하신 대로 헌신함으로 올해의 바자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김귀선

 

Football 경기와 헬멧



  오늘 드디어 전 미국인들이 고대하던, 아니 전 세계인들이 고대하던 제 43회 수퍼볼(Super bowl)이 열리게 된다. 금년엔 내셔널 컨퍼런스(NFC) 챔피언인 아리조나의 카디널스(Cardinals) 팀과 아메리컨 컨퍼런스(AFC) 챔피언인 피츠버그의 스틸러스(Steelers) 팀이 격돌하게 되었다. 특별히 이번 수퍼볼이 우리 한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피츠버그 팀에 한인 혼혈아이면서 미식축구 스타인 ‘하인드 워드’(Hines Ward)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3년 전 제 40회 수퍼볼에서 피츠버그 팀이 우승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하인드 워드가 수퍼볼 MVP가 되는 것을 목격하며 감격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록 그의 외모가 한국인 쪽보다는 흑인 쪽에 훨씬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그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같은 동족애를 느끼며 그가 이룬 인간승리에 크게 감동했었다.


  매번 Football 경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위험천만한 스포츠가 아닐 수 없다. 누구 말마따나 스포츠를 빙자한 격투기 같다고나 할까? 이는 모든 선수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또 물불 가리지 않고 온 몸을 던지며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농구에서도, 야구에서도, 자주 주먹다짐이 일어나곤 하는 아이스하키에서도 Football에서와 같은 장면은 연출되지 않는다. 이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경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떤 땐 “저렇게까지 경기할 필요가 있나” 혹은 “너무 지나치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바로 두주 전의 경기 때만 해도 그렇다. 그 당시 내셔널 컨퍼런스(NFC), 아메리칸 컨퍼런스(AFC) 양쪽 모두 결승전이 있었는데 아메리칸 컨퍼런스(AFC) 결승전 때의 일이다. 피츠버그 팀과 볼티모어 팀이 결승에서 맞붙었는데 경기 종료 2-3분가량을 남겨놓고 양 팀의 두 선수가 크게 충돌을 하였다. 그것도 공중에서 사정없이 머리끼리 부딪쳤다. 결국 두 선수 모두 쓰러졌는데 피츠버그 팀의 선수는 잠시 후 이상 없이 일어섰으나 볼티모어 팀 선수는 결국 들 것에 실려 나가고 말았다. 그래도 손발을 움직이고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긴 했지만 처음엔 목숨이라도 잃지 않았나 크게 염려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헬멧을 썼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최소한 사망이었을 게다.


  그러고 보면 Football 경기에 있어서 ‘헬멧’은 보통 효자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헬멧 덕분에 큰 부상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헬멧 덕분에 더욱 격렬하게 관중을 열광케 하는 플레이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Football 경기를 시청할 때마다 늘 갖는 생각이 있다면 ‘헬멧의 안전성’에 대해서이다. Football 선수들이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착용하는 헬멧은 분명 단단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졌음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자주 머리에 충격을 입는데도 선수들이 멀쩡할 수가 있겠는가? 또 헬멧이 얼마나 안전한가를 알기에 선수들이 저렇듯 몸을 사리지 않고 무대포로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Football 선수들이 착용하는 헬멧은 쉽게 혹은 단순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스포츠 전문가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각종 스포츠 종목에 걸쳐 많은 안전장비들이 개발되었지만 무엇보다 Football 선수들의 헬멧 연구와 개발에 많은 투자가 있어왔고 그 결과 현재와 같은 헬멧을 개발해내기에 이른 것이다.


  듣는 바로는 현재 선수들이 사용하는 헬멧 개발은 ‘딱따구리 새’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딱따구리 새’는 우리가 잘 알듯이 나무를 쪼아 먹이를 잡아먹는 새이다. 딱따구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나무를 쪼아대는 속도는 자그마치 1초에 약 15회나 된다고 한다. 1분이 아닌 1초에 말이다. 이는 기관단총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속도로서 그처럼 빠르게 나무를 쪼기 위해서 딱따구리의 머리는 총알 속도의 두 배 이상의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딱따구리가 머리에 받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하는데... 그런데도 매일 같이 십년 넘게(딱따구리의 수명은 약 15년가량 된다고 한다) 나무를 쪼아대어도 뇌진탕 하나 걸리지 않는다니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한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닐 수 없다.

  헬멧 연구가들은 바로 그 같은 딱따구리 새를 보고서 그 새들이 머리에 충격을 받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연구하게 되었고 마침내 딱따구리 새의 두개골 구조가 오밀조밀한 스펀지 같은 두개골로 이루어져 아무리 큰 충격이라도 잘 흡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연구가들은 바로 그 연구 결과를 토대로 마침내 오늘날의 Football 헬멧을 만들어내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는 지난 1976년 UCLA 연구팀에서 이루어낸 연구 성과라고 한다. 딱따구리 새의 신비도 놀랍지만 그 동물의 특성을 연구하여 안전한 헬멧을 개발해 낸 인간의 지혜 또한 감탄할 만하다 하겠다. 이 같은 연구 결과 Football 선수들은 부상을 염려하지 않고 마음껏 몸을 던질 수 있게 되었으며 심지어 공중에서 상대팀 선수와 머리를 부딪치는 상황조차 개의치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TV를 통해 Football 경기를 시청하면서 그토록 거친 태클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기발한 헬멧 개발 때문이라고나 할까.


  비록 Football 경기가 온 몸을 내던질 정도의 거친 경기라지만 어디 그 같은 격렬한 전투장이 Football 경기뿐이겠는가? 그리고 Football 헬멧이 선수들의 안전을 지켜준다지만 선수들을 지켜주는 헬멧이 어디 Football 헬멧뿐이겠는가?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Football 경기만큼이나 거칠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격렬한 경기가 있다면 바로 ‘인생’일 것이다. Football 선수들이 터치다운을 위해, 즉 승리를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내어 던지듯, 모든 사람들이 이 땅의 성공을 위해, 인생의 승리를 위해 전력투구하지 않는가? 물불 가리지 않고 온 몸을 내어던지는 최선의 삶으로 말하자면 누구 하나 Football 선수 이상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Football 경기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인생의 거친 싸움을 상징하는 스포츠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 이 땅의 인생살이가 Football 경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Football 경기가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한 경기이기에 헬멧이 필요하다면, ‘인생’이라는 더 거친 경기엔 더욱 ‘헬멧’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안심하고 온 몸을 던지는 전력투구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 같은 안전장비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은 것 같지 않다. 단지 ‘몸뚱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토록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기발한 장비를 개발해내면서도 정작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인생’이라는 경기를 위해서는 아무런 안전장비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실상이 아닌가 싶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라는 거친 경기, 격렬한 경기에서 큰 부상들을 입고 여기저기 나뒹굴곤 하는가? 이 땅의 실패한 인생들, 낙오한 인생들, 절망한 인생들, 상처 입은 인생들이 바로 그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면 무엇이 ‘인생’을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는 ‘헬멧’인가? 즉 인생을 위한 ‘안전장비’는 무엇인가? 나는 ‘믿음’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하나님을 나의 ‘지킴이’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위험에서 지켜주고 건져줄 수 있는 존재란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다. 스포츠 연구가들이 연구하고 연구하여 기발한 Football 헬멧을 개발해냈듯이, 정말로 우리 인생을 위한 안전장비가 무엇인가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면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분명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나의 보호자로, 나의 방패막이로 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오늘 열릴 ‘수퍼볼’을 즐길 것이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자신들의 몸을 사리지 않고 터치다운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것을 즐길 것이다. 그들이 격렬하게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특별히 저들이 쓴 ‘헬멧’을 주목하라. 그것이 바로 선수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경기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것이 바로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유이다. 내게도 그런 ‘헬멧’이 있는지, 즉 내 인생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믿음’이라는 ‘인생의 헬멧’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혹 아직 ‘헬멧’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장에 ‘믿음의 헬멧’을 준비하라. Football 경기보다 10배는 더 위험한 전투장에 어찌 ‘헬멧’도 없이 나가려고 하는가? ✎김현진

 

아직은 겨울


눈 눈 또 눈이다.

이제 좀 그치려나 했는데

속절없이 내리는 눈

그 덕에 천지가 눈 세상이다.

바람 바람 또 바람이다.

이제 좀 그만 불려나 했는데

좀처럼 쉬지 않는 바람

추위에 떨고 선 나무들만 애처롭다.


처마 밑의 녹았던 고드름이

백만 년 동굴의 석회암처럼

또 다시 주렁주렁 매달리고


그도 그럴 것이

아직은 겨울이기 때문이다.

이 겨울에 무슨 다른 기대를 가지랴!


산 산 또 산이다.

이제 다 넘었나 싶었는데

성큼 다가선 또 다른 산

언제 평지를 볼 날이 있을 건가.

풍랑 풍랑 또 풍랑이다.

이제 좀 그만 일려나 했는데

좀처럼 쉬지 않는 풍랑

언제 잔잔한 대양을 볼 것인가.


밤새 생채기가 아물었나 싶었는데

뱃전을 때리는 파도처럼

또 다시 새 상처가 패이고


그도 그럴 것이

산다는 것이 다 그렇기 때문이다.

이 인생에 무슨 다른 기대를 가지랴! (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