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선교지를 향하여



사랑하는 동역자님!

지난 8월 남미 아르헨티나를 방문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계획하심이 있음을 깨달았지만 또다른 언어와 수화를 배워야 된다는 부담감과(그것도 이 나이에), 또한번 떠남과 정착을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 중에 구스타프 태풍으로 비행기가 천둥에 맞으며 3-5시간을 곧 추락할 것 같은 공포 속에 요나같은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마침내 하나님께 아르헨티나로 가겠다고 무조건 서원을 했습니다.


미국에 돌아와 몇몇 분들과 아르헨티나 선교 비전을 나누며 아르헨티나로 갈 마음의 준비를 하던 중에 갑자기 한국의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게 되어(대장암이 간까지 전이된 상태) 지난 9월 27일 갑자기 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두 달 동안 식사를 못하시고 계속 혈변을 쏟아내시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였습니다. 저의 남편이 소천하셨을 때 더 잘 못해드렸다는 죄책감이 괴로웠기에 어머니는 그렇게 보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섬겼으나 두 달 만인 11월 22일 주일 밤 11시 20분 어머니께서는 그토록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예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평생을 새벽기도 하시며 전도를 하시고 피아노와 찬양을 즐겨 하시던 멋있는 저의 어머니는 저의 남편 고 문영진 목사님처럼 임종예배 찬양 중에(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소천하셨습니다. 82세 연세로 소천하신 저희 어머니는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하고 은혜롭게 승리의 모습을 보여주셨는지요!!! 할렐루야 !!!)

(제가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길게 말씀드림을 용서해 하시고 이해를 바랍니다. 제가 남편이 없으니 그동안 어머니가 크게 힘이 되고 늘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며 기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1월 24일에 장례를 마치고 28일에는 제가 쓰러져서(쓸개와 췌장에 염증과 간이 부은 증세)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다시 2주 동안 통원치료와 검사를 하며 근 한 달을 보냈습니다. 몸이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1월 11일 전에 터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생겨(제 짐을 다 맡기고 온 선교사님 사모님이 병이 들어 급하게 한국으로 철수하게 되어) 지난 12월 23일 메릴랜드의 딸 집에 도착했습니다.

막 아르헨티나 비전을 나누다가 갑자기 한국으로 가 석 달을 보내고 오니 제 자신도 그리고 동역하는 여러 분들도 황당한 생각이 드셨겠지만 그래도 아르헨티나로 가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이 일이 생겼음을 인하여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선교의 현장


제가 몹시도 좋아하고 그리워하던 터키를 1월 8일에 정리하러 들어가려 했으나 그곳의 날씨도 몹시 춥고 아직 제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여서 무리라 여겨 다음 기회로 마음을 접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이 제 1의 삶이라면 케냐, 터키 선교지의 삶이 제 2의 삶이고, 이제 미국 영주권을 받고 남미를 바라보면서 제 3의 멋있는 삶을 살게 해주시리라는 기대 속에 기도할 때에 이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다시 한 번 희생과 헌신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하셨었습니다. 그런데 급성 췌장염으로 심한 통증 가운데 2주 이상 생사를 드나들며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로 보내고 그 후 지금까지 근 한 달을 보내면서, 제 3의 멋있는 삶을 위해,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저를 깨뜨리시며 새롭게 다듬으셔서 결단시키시는 것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지를 깨닫고 고백하게 하시며 전폭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훈련과 20년 전 처음 선교지를 향해 떠날 때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20년전 아니 30년 전에 주님께서 제게 보여주셨던 비전 그대로 이루어가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비전은 제가 어떤 대양 앞에 서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오대양 육대주로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가 너무 힘들어 하는데 그 때 찬바람이 시원하게 불더니 너무 힘들 때는 이렇게 찬바람을 불어 시원하게 해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비전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제 친구가 이것을 기억하고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유럽)로 그리고 남미로 보내시고자 할 때 제가 순종하며 따라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미약하고 나약하고 육신적으로도 젊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선교지로 가서 새로운 언어와 수화를 배우면서 다시금 정착해야 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주님이 먼저 가시고 준비해 주셔서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아르헨티나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제 몸이 이 모든 일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세계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들을 멋있게 이루어나가시리라 확신하며......

  임금희 선교사, 2008년 12월 30일 메릴랜드에서

 

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선악과 나무를 두셨을까요?



Q) 창세기 2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후에,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따먹을 수도 있는데, 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선악과 나무를 두셨을까요?

A)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자유 의지를 지닌 인격체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조종을 받는 로봇이나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받는 애완동물로서가 아니라, 사람의 주체적인 자유 의지로서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Q) 창세기 3장 1절에서 6절을 보면, 태초의 에덴 동산에서 뱀이 등장합니다. 그 뱀은 혼자 있는 하와에게 다가가서 거짓말로 여자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에덴 동산에서 여자를 유혹한 이 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A) 그 뱀의 정체는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땅으로 내어쫓긴 ‘사탄’입니다. 사탄은 창조의 면류관인 사람을 타락시키려고, 영특한 뱀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여자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2장 9절과 20장 2절을 보면, 사탄을 ‘옛 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Q)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죄를 지은 하와에게 저주를 내릴 때,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A) 장차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메시야 예수’를 가리킵니다. 사람의 타락 이후, 사탄과 여인의 후손은 끊임없는 투쟁 관계에 있는 원수로서, 사탄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임으로써 그의 발꿈치를 잠깐 상하게 할 것이지만,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 영원히 승리하실 것입니다.


Q) 창세기 6장 6절을 보면, 하나님은 대홍수 이전 노아 시대 사람들의 심각한 타락상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자신이 하신 일에 대해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시는 것일까요?

A)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탄이나 근심은 실수나 후회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가지시는 하나님의 실망과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수사학적으로 묘사한 말입니다.  ✎ 존더반 QA성경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글은 「미국장로교회 한인은퇴목사 및 사모회」 회보(2008년 12월 15일자)에 실린  김득렬 목사님의 글입니다. 김득렬 목사님은 지난 1999년 1월부터 10월 초까지 본교회의 임시목사로 사역해 주신 분으로서 본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모든 과정을 극복해 나가는 데에 크게 수고를 감당해 주셨던 분입니다.-편집부



  목사의 교역영역(敎役領域)은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는 인생의 전 역정(歷程)이요, 전인목회(全人牧會)는 개인의 생로병사(生老炳死)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이를 행함이 목자적교역(牧者的敎役)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무덤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 봄, 내가 시무하던 교회의 교우들 중에 교회 묘지에 관한 관심이 증가되었다. 이민생활의 연륜이 더해감에 따라 묘지를 찾는 빈도 또한 잦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 성도들의 그 영혼들은 이미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맞아주시는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나아가지만, 그 유해는 이국(異國)의 묘지 한 모퉁이일지라도 같은 믿음의 공동체였던 교우들이 함께 모여 부활의 나팔소리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묘소들을 조성하여 회중생활의 연장처럼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와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교회에서는 봉사위원회(위원장:김우석 장로)로 하여금 묘지공동구입을 원하는 교우들로부터 신청금을 받게 하였다. 50명의 성도들이 우선 신청하였으므로 김우석 장로는 그 신청금을 가지고 교우들이 자주 가는 ‘오클랜드힐’(Oakland Hill) 묘지 사무소를 찾아갔다. 비록 좌청룡 우백호는 아니더라도 한인들이 선호하는 약간 구릉지고 토양이 건조한 묘지 50기(基)들이 집합되어 있는 한 구역을 본 후 도매가격으로 일괄 구입하였다.


  묘지구입 절차를 마친 김우석 장로는 묘지사무소 책임자에게 농담겸 진담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관행으로는 이만한 거래가 이루어지면 덤으로 한 두 개쯤을 더 주는 법인데 이 회사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까?” 그 말을 들은 담당자는 “무슨 뜻인지요?” 하며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장로는 “다름 아니라 김 목사님 내외도 언젠가는 묘지를 필요로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그 말을 들은 그는 잠시 후 “그러시다면 저희가 묘지 둘을 1불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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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님 내외분께 드리겠습니다.”하고 묘지분양증서를 써 주어서 이렇게 받아 왔으니 나더러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뜻밖의 제의에 “그걸 제가 어떻게 받습니까” 하고 사양하였으나 선물로 받아 온 것이니 받아 두라고 강권하심으로 감사히 받아두기로 하였다.


  얼마 후 김우석 장로는 묘지구입을 신청한 교우들에게 각자가 원하는 묘지 위치를 선정하라고 광고한 후 52기의 묘지 배치도를 바둑판같이 그려가지고 먼저 나에게 와서 원하는 자리를 선정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야 거저 받았으니 대금을 지불하고 구입하신 교우들께서 먼저 다 고르고 나신 후, 남은 것을 저희 내외가 쓰면 됩니다. 그러니 어서 교우들에게 가서 먼저 고르시게 하세요”하였다. 그래도 김장로님은 교우들이 모두 “목사님 내외가 먼저 정한 후에 자기들이 정하겠다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선정하세요.” 하며 그 묘지 배치도를 내 앞에 제시하고 독촉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어서 “정 그러시다면 저희 두 사람의 자리는 묘지 중앙 한복판에 정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김장로님은 묘지배치도 중앙 한복판에 표식 둘을 하신 후 교우들에게 가지고 나가셨다.


  그 후 들은 말로는 김장로님께서 묘지 배치도를 가지고 교우들에게 가서 목사 내외의 자리를 보여 주며 교우들이 원하는 자리들을 택하라고 하였더니, 서로들 “목사 내외와 가까운 자리에 있겠다”고 하였단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어서도 교우들의 목사로서 가까이 있어 달라는 간절한 사랑의 염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사회와 어느 단체에서 생과 사를 초월하여 한결같은 사랑을 이렇게 서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그 깊은 사랑에 감격되며, 깊은 감회에 잠겨 목사 직분의 고귀함을 새롭게 음미하고 과연 성직(聖膱)이라고 부를만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성도들이 기대하는 목사(Poimen:목자)의 사명은 생과 사를 초월하여 저들의 변함없는 선한 목자가 되어 성도들로 하여금 무덤 속에서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나의 목자(목사)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고 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랑과 신뢰의 목자적 관계를 실현해가는 것이라고 확신되었다.


  그때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성도의 장례 행렬을 따라, “오크랜드 힐”에 갔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성도들이 그 자리를 떠나 돌아가기 시작하였을 때, 나는 앞서간 성도들을 찾아보고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묘비들을 보며, 생시의 얼굴들을 회상하고 함께 하였던 일들을 회고하는 묘지심방을 하고 있었다.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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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한 성도가 가까이 와서 “목사님 자리는 어디에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윤계순 성도였다. 그래서 나는 “왜 물으세요?” 라고 반문하였더니 “저는 목사님의 다음 다음 자리예요”라고 하지 않는가!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이 어른이 언젠가는 나의 다음 다음 자리에서 부활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날을 함께 기다릴 분이로구나!!” 하는 감회와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글쎄요 저희 내외의 자리는 우리교회 성도들의 묘지의 중앙 한복판이라고 하였는데요, 그 자리가 어디쯤인지 저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나와 아내의 자리를 알게 되는 날이 왔다. 나와 내 아내는 동갑내기로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사랑의 섭리로 1944년 3월 23일 황해도 사리원 서부교회, 김현정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예식을 올렸다. 우리는 63년 반 동안 해로하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그들의 슬하에서 자라나는 9명의 손자 손녀들과 1명의 증손자의 늠름히 자라감을 감사와 감격으로 지켜보며 주의 일에 힘써 오면서 많은 분들이 누리기 힘들다고 하는 회혼(回婚)도 누렸다.


  그런데 1997년 2월 2일 주일 오후에 집사람과 나는 병원에 입원하여 중한 수술을 받으신 강원기 선생을 심방하고자, “오크욷”(Oakwood)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그곳 차 안에서 집사람에게 중풍 증세가 나타났다. 그래도 우리는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적시에 하여야 하는 응급조치를 못하고, 병원에 도착하여, 병실에 올라가서 강원기 선생을 심방한 후, 집으로 돌아오고만 것이다! 그때 거기서 그 병원의 응급실로 직행하여 응급조치를 취하기만 하였더라면, 집사람은 완치 회복되었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 나의 무지와 실수는 결코 용서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사람은 좌측 팔과 다리가 약간 약한 중풍환자가 되어 보행과 활동이 제약된 생활을 10년 반 동안이나 하여오고 있었다.

  2007년 9월 9일 주일 오후 1시 35분, 아내는 갑자기 혈당이 떨어짐으로써 발생된 골절로 입원하여 있던 “윌리엄 버먼”(Wm.baumont) 병원에서 일종의 의료사고로 인해, 그의 영혼은 내 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때 그이 나이는 80세 반이었다. 그는 실로 나의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다. 38선을 넘고, 6.25전쟁을 겪고, 교수가 되고, 목회를 하는 나의 전 생애는 항상 그와 더불어 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결혼식은 함께 하지만 장례식은 따로 한다는 말이 내게도 사실이 되었다.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오전 10시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 교회장으로, 예배당

신앙인들의 고백



안에서 장례예배를 드린 후, 나의 아내의 긴 장례 행렬은 “오크랜드힐” 성도들의 묘지로 향하게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에, 미풍은 신선하였다. 양지 바른 언덕 중앙 한복판에는 나의 아내의 관을 위해 새로 판 무덤이 기다리고 있었다. 땅은 마르고 흙은 보드라왔다. 바로 그 옆자리는 장차 내가 묻힐 자리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생과 사를 초월하여 이어가는 우리 내외와 디트로이트 한인연한장로교회 성도들의 ‘목자적 교역관계’는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5-3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날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장 51-56절) 

  ✎김득렬 목사(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

 

자녀들의 축복을 위한 멍석

- Joint Service를 시작하며 -



2009년을 시작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이런 저런 소원들이 있는 줄 안다. 가족들을 위한 소원, 생업을 위한 소원, 그리고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 등. 특별히 자녀들을 키우시는 분들의 경우 자녀들을 위한 소원이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우선일 것이다. 이 세상에 자기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우리 한국의 부모들은 타민족의 부모들보다 그런 면에서 더욱 특별하지 않나 생각한다.

문득 자녀들을 위한 부모들의 소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혹 학업 중에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있다면 무엇보다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것이다. 한국 부모들의 대단한 교육열을 생각할 때 그리 틀린 판단은 아니리라.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고, 혹은 직장 다니는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직장생활 잘 하기를 위해서, 결혼 적령기의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금년에 좋은 배우자감을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소원 가운데서 부모들이 정말 가져야 할 가장 귀한 소원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부모라면 말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유일하신 신이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세상에서의 모든 성공과 축복은 당연히 그분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가장 잘 되는 길이 무엇이겠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항목들을 조목조목 들면서 자녀들을 위한 소원을 비는 것도 좋지만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기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소원이요, 또 가장 현실적인 소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그와 같이 양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믿게 할 수 있을까? 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중요한 물음에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솔직한 우리의 형편이다. 특별히 이중 문화권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민교회의 현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우리는 모두 이민자들이다. 즉 우리가 사는 곳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말과 글, 의식, 문화 모든 것이 다른 세계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태어나는 우리의 2세들은 한국인의 피와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미국인으로서 성장한다. 그들은 처음 3-4세까지는 부모를 통해 한국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게 되는 Pre-School 때부터 아이들은 서서히 미국화 되어간다. 이는 학교를 다니면서 더 이상 한국어권의 영향력이 아닌 영어권의 영향 하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을 통해, 또래집단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그 인격과 의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의 자녀들은 본질적 한국인에서 외양적 한국인으로 변화되어간다. 즉 외모만 한국인일 뿐 미국인으로 변화되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아주 미국화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여전히 한국 가정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적 사고를 접하며 생활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자녀들은 철저하게 이중 문화권 속에서 살아간다. 즉 두 문화권의 혼돈 속에서 성장한다. 그 속에서 자녀들은 언어이든, 문화이든, 의식이든 자신이 원하는 한국적인 것은 취하고 자신이 원치 않는 한국적인 것은 버린다.


문제는 ‘신앙’이다. 이 신앙은 결코 한국적 문화도 의식도 아닌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문제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마저 부모 세대에 속한 것처럼, 혹은 한국적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마저 다른 한국적인 것들을 버릴 때 함께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만히 2세들을 관찰하면 그런 차원에서 믿음을 떠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즉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집을 떠나면서 교회도 하나님도 함께 떠나는 2세들이 얼마나 많은가?


2009년에 들어서면서 우리 교회는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란 예배 안에 영어와 우리말이 함께 공존하는 예배를 말하는 것이다. 즉 설교도 영어설교와 우리말 설교가 모두 있고, 다른 순서들도 서로 불편함이 없이 영어권과 한국어권이 자기들의 예배처럼 느끼도록 하는 예배를 말한다. 물론 그 동안 가끔씩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드려왔다. 그러나 이는 1년에 서너 차례 중요한 절기 때마다 가졌던 것이고 이제는 매주 ‘연합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어권과 영어권 모두를 위해서이다.

사실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드리는 가장 큰 이유라면 2세들, 즉 자녀 세대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즉 자녀들에게 믿음의 뿌리를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할까. 가만 보면 한인이민교회들은 늘 1세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다보니 2세들은 예배에서 늘 들러리처럼 소외되어지고,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그 결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조차 ‘들러리 믿음’을 지녀온 것이 사실이다. ‘믿음’에 들러리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들의 위치가 ‘중심’이 아니었다면 이는 어떤 의미에서 ‘들러리’였다는 것이다. ‘Joint Service’는 바로 그와 같은 구습(舊習)을 개정하기 위함이다. 즉 이제는 2세들도 대예배를 자기들의 예배처럼 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앙’을 더 이상 부모 세대의 것으로 혹은 한국적인 유산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그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더라도 ‘믿음’마저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를 가더라도 편안히 ‘예배’에 적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Joint Service’를 드리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자녀 세대를 위해서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Joint Service’를 통해서 더욱 ‘믿음’ 가운데 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된다면 이 ‘Joint Service’는 어떤 의미에서 자녀들의 축복을 위한 참으로 소중한 ‘멍석’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꼭 자녀 세대 즉 2세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 이민 1세와 유학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 살면서, 또 자녀들이 영어권이면서 정작 1세들은 여전히 ‘영어’와 낯선 것이 사실이다. 특별히 영어권 예배에 익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Joint Service’는 모든 1세들을 영어권에 친숙하게 만들고 특별히 영어예배에 친숙하게 만들 것이다. 이 또한 일부러 영어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모든 1세들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귀한 소득이기도 하다.

특별히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는 더욱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다. 때때로 한국에서 갓 유학 온 학생들이 한국 교회에 나가지 않고 미국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들어보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어찌 ‘예배’를 영어교육의 수단으로 삼을 수가 있는가? 이는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는 곳에 한국 교회가 없다면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있다면 내 언어로, 내 의식으로 제대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 내가 100% 이해하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럴지라도 많은 학생들에게 영어권 예배를 경험하고 또 영어로 말씀을 듣고자 하는 바람이 없잖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유학생활 중에나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가 바로 그 목마름을 해결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찬양에도 영어 찬양이 있고, 설교 또한 영어 설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 말 찬양, 우리 말 설교도 제대로 있으니 이 얼마나 안성맞춤인가?


꼭 1세 2세 한국인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는 영어권의 모든 민족에게 예배 문호를 개방하기 위함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우리 교회에 참석하는 미국인 교우들을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위해 ‘동시통역’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통역이었지 ‘영어권 예배’는 아니었다. 이제 누구든 영어만 한다면 그들 또한 한국 사람들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 것이다. 편안하게 ‘영어 설교’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본인들이 원한다면 통역을 통해 한국어 설교도 보너스(?)도 듣게 될 것이고.


그러나 모든 것 가운데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갖는 가장 큰 의미, 또 가장 크게 얻게 될 결실이 있다면 1세와 2세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 되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한 가족이면서도, 또 같은 신앙인이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와 의식의 차이로 인해 신앙마저 Gap(차이)을 느끼고 있었던 1세와 2세가 늘 함께 예배드림으로 서로 ‘하나 됨’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양쪽 그 누구도 예배를 낯설게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자기들의 예배로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게 가족들과 함께 편안히 예배드리는 것이 생활화 된다면 훗날 자녀들이 집을 떠나게 될지라도 ‘교회’나 ‘믿음’을 떠나는 일은 쉬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예배’나 ‘믿음’이 부모 세대 혹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것’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년들과 함께 편안히 예배드리는 대예배 참석이 어느 사이 ‘생활화’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언제든 다시 집에 돌아오더라도 결코 낯설지 않게 편안하게 온 식구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많은 이유와 의도, 바램을 가지고 2009년부터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실험적으로 시도해보는 단계이다. 예배에 실험이 어디 있냐마는 운영방식이나 순서진행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아무쪼록 최소한의 시행착오로 최대한 빨리 1세와 2세가 함께 어우러지는 가장 이상적인 우리만의 예배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자녀 세대들이 더욱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한인 이민교회에 귀한 role model(역할 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현진

 

삶의 고비마다


삶의 고비마다

당신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때때로 갈 길을 몰라 헤맬 적에

당신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똑똑한 머리입니까?

당신의 살아온 경험입니까?

당신이 얻게 될 이득입니까?


당신이 아무리 똑똑할지라도

당신이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그 길이 큰 이득을 얻는 길 같아도

결국 당신이 이르게 될 종국은

허탈한 아침일 것입니다.

빈손의 인생일 것입니다.

혹은 파도 넘실대는 바다에 

맥없이 파선하고 말 것입니다.


삶의 고비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항로가 보일 것입니다.

그 길에 허탈한 아침이란 없습니다.

파선이란 결코 없습니다.

때때로 거친 파도가 일기도 하겠지만

이내 잔잔한 대양

눈부신 햇살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정박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삶의 고비마다

당신이 기대는 것은 무엇입니까? (HJ)

여호와는 나의 목자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에는 목회자도 귀하고 성경도 귀했습니다. 선교사의 발길이 닿는 곳에 교회가 세워지면 한 교회만 돌볼 수 없는 선교사는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서 주일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 외의 집회 때는 교인 중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교인을 뽑아 ‘조사’로 임명하여 그에게 성경을 한 권 맡기고 예배를 인도하게 했습니다. 그 때의 일화입니다.

경상북도 어느 산골의 예배당에 교인들이 모여들어 그 교회 조사님이 예배인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봉독할 순서가 되어 조사님은 시편 23편을 봉독했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산골의 예배당에 전깃불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어두침침한 등잔불 아래에서 두터운 돋보기를 끼고 겨우겨우 읽어 내려갔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한글성경에는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조사님의 한글실력이 모자라는지라 제대로 읽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나.....의...목 자르시니....내가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조사님은 본문을 “여호와는 나의 ‘목 자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잘못 읽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조사님은 비장한 얼굴로 이렇게 설교를 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가 내 목 짜르셔도 내가 부족함이 없씀네다!”

조사님이 큰소리로 외치자 온 교우들이 두 손을 들고 함께 외쳤습니다.

“내두!... 내두!...”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 3:5)

C. T. 스터드의 ‘초콜릿 군병’



C.T.스터드(1860-1931)는 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표상과도 같은 선교사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한 그는, 예나 지금아니 영국 초고의 인기 스포츠인 크리켓 선수로 대학 시절에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믿는 가정에 태어났지만 미지근한 신앙에 안주하며 신앙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형 조지 스터드의 병실을 지키던 중 새롭게 회심하게 된다. 당시 일곱 명의 케임브리지 청년들(세계선교와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케임브리지 7인’)이 중국 내지에서 선교하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의 삶메 큰 도전을 받아 중국 선교에 헌신하게 되는데, 그들 가운데 하나가 스터드였다. 그는 명문 대학의 크리켓 선수로 장래가 보장되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받아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 때문에 그 모든 부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중국 땅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10여년을 섬기는 가운데 그의 육신은 이미 쇠약할대로 쇠약해졌고, 마침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지경이 되어 선교회는 건강이 악화된 그를 영국으로 후송해야만 했다. 언제 완치될지 모르는 막연한 투병생활을 하던 어느 날, 잠깐 외출했다가 보게 된 길가 벽에 붙은 포스터 한 장이 그의 인생을 다시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아프리카의 식인 부족들도 복음을 기다립니다.”

이 포스터를 접한 스터드는 병상에서 일어나 아프리카로 가기로 결심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닌 결정이라며 비판하고 만류했다. 특히 담당 의사는 “만일 이번에 아프리카에 간다면 얼마 못 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최후 통첩과 같은 진단을 내렸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스터드는, 오늘날 WEC선교회의 표어가 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그 어떤 희생이 감히 크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유명한 고백으로 아프리카 행을 확정했다.

출항하는 날 전송 나온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는, “내가 죽으면 내 무덤을 징검다리 삼아 내 후배들이 아프리카의 불쌍한 영혼들에게 찾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내를 영국에 남겨둔 채 병든 몸을 이끌고 홀로 아프리카 콩고로 간 것이다. 이후 스터드는, 가족은 물론 아내와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아프리카 콩고 땅에 자신의 남은 생을 기꺼이 바쳤다. 수주일 안에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의사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20여년을 더 사역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선교 이야기



그의 주도하에 설립된 ‘아프리카의 심장 선교회’(The Heart of Africa Mission)는 이후 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 국제선교회로 이름을 바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콜릿 군병"은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쓴 짧지만 강력한 선교 도전의 글이다.  유병국(WEC 한국본부장)


초콜릿 군병”


'용맹함‘(heroism)은 오늘날 기독교가 상실한 음(音), 잃어버린 화음이다!

진정한 군사는 모두가 용사다! 용맹함이 없는 군사는 실전에 참가하지 않는 군인, 곧 초콜릿 군병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군사다. 그리스도의 군사이자 탁월한 용사다! 그는 가장 용맹스런 자보다 용감한 자이며, 평안을 약속하는 부드러운 유혹의 손길도 거부할 수 있는 자이다. 고난과 질병, 위험, 죽음을 회피하라는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목소리도 거절할 줄 알며, 오히려 그것들을 가장 절친한 친구로 삼는 자이다.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초콜릿 군병이다. 초콜릿 군병은 초콜릿처럼 물에 닳으면 풀어지고 작은 불기운에도 녹아버리고 만다. 달콤하기 그지없는 막대사탕과 사탕과자 같다. 유약한 체질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부드러운 포장지에 싸여 유리병이나 종이상자에 담겨 인생을 살아간다.

여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주신 초콜릿 군병의 초상이 있다.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마 21:29). 그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고 고향땅에 집착하여 붙어 있다.

초콜릿 군병은 가겠다고 말하지만 가지 않는다. 남들에게는 가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가지 않는다. 돌망태를 채우라고 이등병에게 명령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나서서 그 일을 하지 않는 일등병을 본 고든 장군은, 그 일을 하고자 몸소 참호에 뛰어 들면서 그 일병에게 말했다. “네가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말하지 말라!”

초콜릿 그리스도인은 전쟁 생각만으로 갑작스런 오한이 들고, 전투 소집 명령에 온몸이 마비된다. 그들은 말한다. “마음은 굴뚝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하나님은 초콜릿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실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용사다!


선교 이야기



하나님의 용사-바울

우리에게는 멋진 신앙의 선진들이 참으로 많다. 이 모두를 한 사람으로 보아 본다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역설적인 인물인 작은 거인 바울이 될 것이다. 그의 머리는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컸지만, 그의 마음은 그 둘을 합쳐 놓은 것보다도 컸다.

한때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보에 파렴치한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적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자신이 바로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는 “어리석은 자”라고 불렸다. 그의 행동이 인간 이성의 명령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스도와 사람들을 향한 억누를 수 없는 타오르는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이면서도, 그 학문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를 또한 알았다. 그는 세상 지식을 선반에 올려두고 사람들의 지혜가 어리석음을 선포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세상을 180도 뒤집어 놓았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을 위한 끊임없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매일같이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거듭거듭 자신을 해치려는 군중 앞에 두려움 없이 섰다. 왕과 관원들 앞에 섰지만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지옥의 2인자 네로 황제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당한 고난은 끔찍했다. 성경에서 그의 행적을 읽어 보라. 그는 자기의 주인이신 주님의 발자국을 따랐고, 결국 예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았다. 그와 같은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 14:50). 당시에도 초콜릿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초콜릿 그리스도인들도 이렇게 변명했을 것이다. “저렇게 융통성 없는 인물, 광신자처럼 달아오른 어리석은 자와 누가 함께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할 수가 없지요. 설혹 함께 일하려는 사람이 있다 해도 바울이 그들을 못견뎌할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동역했고, 그 둘은 탁월하게 해냈다.) 편법을 몰랐던 열정의 사람, 그는 결과에 개의치 않고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던 자였다. 바울은 거뜬히 영예를, 그것도 최고의 영예를 얻었다. 십자가에 버금가는 영예인 도끼로 참수를 당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성경과 역사 어디를 살펴보아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말로만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 않았던 용기 있는 자의 본보기로, 예수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리요, 오직 하나님께만

선교 이야기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다. 세상과 초콜릿 군병들은, 이들에게 “어리석고 미쳤다”고 외친다. 그러나 천사들은 “맞다. 이들은 미쳤다. 그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리석고 미쳤다고”고 덧붙인다.


그들은 고귀하게 싸웠고 상을 받았다.

천국에 이르는 가파른 절벽을 오르며 위험과 수고와 고통을 거쳤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내리소서. 그들의 뒤를 따르도록.

C.T. 스터드 초콜릿 군병”에서

성경을 사용하라



대전 엑스포가 개최되던 해였다. 어느 교회에서 주일예배 강사로 설교하게 되어 숙소에서 막 나가는데 TV 프로그램이 잠시 내 눈을 끌었다. 그 내용은 여성 경제인 연합회 임원들을 초청하여 인터뷰한 것으로, 여자들이 남자들 못지않게 기업 전선에서 수고하여 성공한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도 시선을 끈 것은 여성 경제인 연합회 부회장인 어느 모자 공장 사장님의 인터뷰였다.

“저희 회사는 오늘까지 전세계에 약 200만 개의 모자를 생산하여 팔았습니다. 이번 엑스포 대회에도 출품했고요.”

“정말 장하시군요. 기업의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요?”

“저는 교회 집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업의 경영자라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로 모든 것을 의논하며 경영했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기업을 성공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간에 그녀는 큰 어려움이 닥쳐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모자가 팔리지 않아 부부도가 나고 회사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몇 개월간 시골로 도망다녔다고 한다.

“어느 주일 아침이었어요. 저는 우연히 시골 조그만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지요. 너무 맘이 상하고 지쳐서 그냥 눈물만 나왔어요. 목사님 설교도 눈물로 듣게 되고 찬송도 눈물로 부르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이었어요. 예배당 강단에 십자가가 유난히 눈부시게 보이는 순간, 내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시관 쓰신 사진을 그날 따라 자세히 보게 됐어요. 그러던 중에 머리에 쓰신 가시관의 그 가시들이 순간, 머리 빗는 빗으로 보이는 것이었어요.”


여자들은 모자를 좋아한다. 남자들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모자를 쓰지 않는 이유는 머리가 모자에 눌려 자국이 남을까봐 그런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모자를 써도 머리에 자국이 남지 않고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그것만 해결되면 모자는 잘 팔릴텐데...’ 그녀는 늘 그것을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순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었어요. 그렇다. 모자 안에 동그랗게 빗을 넣어서 만들자. 예수님의 가시관을 봐라.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이 빗을 상징하고 있질 않은가?”


그녀는 단번에 국내 특허를 냈고, 이어서 세계 특허를 냈다. 둥그런 빗이 있는 모자는 그녀만이 만들 수 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녀에게 로열티를 내야 한다. 그녀의 회사는 현재 전세계의 모자 공장에서 200만 개의 모자를 생산하는 탄탄한

감동의 샘터



기업이 되었다. 그녀는 성경은 종교경전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기적의 사업 지침서라고 말했다.

실제로 성경을 실생활에 응용하라. 그러면 거기에 놀라운 기적이 올 것이다.


미국에 모 석유회사 사장이 있는데 그는 크리스천이다. 창세기를 읽다가 노아의 방주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역청’이란 무엇인가. 배에 물이 스며들지 않기 위한 콜타르가 아닌가. 즉 석유, 가스가 아닌가 말이다.

이 사람은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는 아라랏 산 근교를 찾아가서 지질을 조사해 보았다. 실로 그곳은 엄청난 매장량의 유전지대였고, 그 사실을 안 그는 터키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모든 시공은 그의 회사가 맡기로 하고 수입은 터키 정부와 51대 49로 나누기로 했다. 시추공사를 했을 때 엄청난 석유가 터져 나왔고 터키 정부도, 이 사람도 큰 부를 얻게 되었다.


성경을 그냥 지나가는 얘기로 흘려서는 안된다. 성경 안에는 무궁무진한 보화가 있다. 성경을 이용하라. 성경을 각 방면에서 응용하라. 목회자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목회 성장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사업가에게 필요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성공의 비법이 여기에 있다. 주부에게는 가정의 평화와 자녀교유의 비법을 보여주신다. 실생활의 모범 답안이 성경 안에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 박요한

가인이 죄를 짓고 떠날 때 다른 사람들이 해칠까 두려워했는데 그 때 아담과 하와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존재했습니까?



인류 최초 살인사건이 창세기 4장에 나온다. 죽을 사(死)자를 숫자 4와 연상해 두면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과 창세기 4장을 쉽게 연결시킬 수 있다.

동생을 살인한 가인이 하나님으로부터 그 땅을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라는 벌을 받았을 때 가인은 자기를 만나는 자마다 자기를 죽일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싸인다. 여기까지 성경을 읽다 보면 자연히 의문이 생긴다. 그 당시 세상에 있었던 사람은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의 이름만 성경에 나오는데 그나마 아벨이 죽고 난 지금 아담과 하와 이외에 가인을 해칠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의심이 없는 신앙은 맹신이라고 하였듯이 성경을 읽다가 생기는 의심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마음 속에 찜찜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시원스럽게 풀고 지나가야 한다. 중요한 점은 성경을 읽다가 의문이 생겼는데도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해 상처를 입고 말씀을 멀리하고 그러다가 점차 교회를 떠나게 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가인이 유리하는 동안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를 수학적으로 접근해 보자. 먼저 가인이 쫓겨나자마자 죽임을 당할 위험에 당면한다고 보기보다는 가인이 앞으로 살아갈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두려워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약 800년간이라는 세월을 놓고 계산해 보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800년쯤 된다고 가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성경에는 900년 이상 산 사람들의 이름만도 7명이 나온다.

두번째 고려할 사항은 아담이 가인과 아벨, 그리고 셋째 아들인 셋만 낳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창세기 5장 4절에 아담이 셋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고 하니까 아들은 물론 딸도 낳은 것이다. 노아가 500세에도 자녀를 낳았다고 하니까 아담이 자녀를 몇이나 두었을까 궁금하지만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아담의 딸 중에서나 아니면 조카뻘 되는 여인 중에서 가인이 아내를 택했을 것은 틀림없다.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맬더스(1766-1834)는 그의 역사적 저서인 인구론에서, 만약 전쟁, 기아나 질병 등의 재난이 인구증가를 억지하지 않는다면 아담 당시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자연조건하에서 자연적 인구증가율이 25년 마다 두 배가 되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보면 창조 700년 후에는 인구가 240만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Q&A 성경탐구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으니까 500세까지는 370년이란 세월을 아담이 자녀를 더 낳았을 텐데 몇 명이나 더 낳았을까 하는 문제는 여기서 따지지 않기로 한다. 인구 증가율을 계산할 때는 초기값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초기값보다는 차라리 25년을 더 계산하면 더 큰 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25년이란 세월을 한 번 덜 계산하면 그 값은 절반이 된다. 따라서 240만명의 절반인 120만명이 된다.

만일 인구가 100년에 2배씩 인구가 증가 된다고 가정하면 700년 후엔 16만명이 된다. 따라서 가인이 유리하면서 만날 사람 수는 적어도 16만명에서 많게는 120만명이 된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가인이 유리할 때 만날 수 있는 사람 수가 단지 몇 명일 뿐이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인은 하나님의 표를 갖고 다녀야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인구가 몇 명 되지 않았다면 표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보호하시기 위해 그에게 표를 주시고 가인을 죽인 자는 7배나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은혜를 베푸셨다. 살인자에게까지 은혜를 베푸시고 목숨을 보존케 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믿는 자의 생명은 예수님의 핏값으로 사신 것이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앞길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인 것을 새삼 명심하여야 한다.  

✎ 여인갑, 크리스찬 투데이


“부시여, 안녕!”



드디어 ‘부시’가 떠나간다. 오는 20일 정오를 기해 ‘부시’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자그마치 8년 세월이다. 다른 어떤 대통령 재임보다 길게 느껴진 세월이 아닐 수 없다. 글쎄다, 같은 시간이라도 즐겁고 좋은 일은 빨리 지나가는 데 반해 슬프고 안 좋은 일일수록 더디 가는 듯하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정말 다른 대통령 재임 때보다 왜 그리 길고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진 기간이었는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가는 ‘부시’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무엇일까? 글쎄다, 이는 더 많은 세월이 지나가봐야 알 일이겠으나 모르긴 몰라도 그리 좋을 듯싶지는 않다. 아니 내 개인적인 견해까지 반영하자면 상당히 나쁠 듯싶다. 실제로 막 퇴임을 앞둔 그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그야말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최악이다. 그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는 20%대로 이는 ‘닉슨 대통령’ 이래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 해 역사가 109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단 2명만이 그를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통계로 보자면 2%가 안 되는 수준이다. 일반 여론이 20%인 것만도 최악인데 그보다 더 객관적이고 더 엄격하고 더 정확한 역사가들의 평가가 그렇다면 참담하다 못해 불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약 한달 전쯤엔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부시와 이라크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이라크의 어떤 기자가 부시를 향해 신발을 집어던진 것이다. 그것도 한짝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한짝이 날아들더니만 연이어 또 한짝이 날아들었다. 그로 인해 회견장은 삽시간에 난장판으로 변하고 신발을 던진 기자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신발을 던지는 것은 아랍권에서는 중대한 모욕에 해당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그 기자는 부시에게 “이게 마지막 작별 인사”라는 말과 함께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부시에게 신발을 던졌다고 한다. 아마도 부시가 자기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그 같은 행동을 했던 것 같다.

그 기자가 부시에게 신발을 던진 것, 나는 그것이 부시를 향한 역사의 평가처럼 생각되었다. 부시는 ‘역사’로부터, 그리고 ‘세계’로부터 신발을 맞을 만한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이는 그가 세계에 저지른 범죄(?) 때문이며, 또한 미국의 경제를 망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같은 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마치 anti-Bush라도 되는 듯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코 안티 Bush가 아니다. 단지 그가 대통령 재임시 일으킨 전쟁과 그가 행한 많은 실정 때문에 그와 같이 평가하는 것뿐이다.




사실 ‘부시’는 그 시작부터가 쉽지 않았다. 지난 2000년, ‘엘 고어’ 전 부통령과 법정까지 가는 혈투 끝에 힘겹게 백악관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그는 8년간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격변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 그는 ‘작은 정부’와 ‘온정적 보수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정권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정권 출범 9개월 만에 터진 9.11 사태를 계기로 하루아침에 그는 ‘제왕적 지도자’로 돌변하였다. 9.11 사태는 그 자체로 역사와 미국의 비극이었으나 부시에게 있어서는 보통 효자가 아닐 수 없었다. 이는 9.11 사태로 인해, 턱걸이로 간신히 대통령이 된 사람이 90%가 넘는 압도적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기회였다. 만일 그가 당시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뿐만 아니라 역사와 세계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바르게 지도력을 발휘했더라면 그는 역사 속에 ‘위대한 대통령’으로 그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악수(惡手)를 두기 시작했다. 그는 “악의 세계를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책임”이라고 하면서 마치 도탄에 빠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출현한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처신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미국의 안전을 명분으로 세계를 미국화하려는 ‘깡패 국가’로 돌변했다고나 할까. 정말 그는 ‘깡패’마냥 전 세계를 향해 “우리 편에 서든지 아니면 테러 편에 서든지 하라”고 엄포까지 놓았다. 사실상 그때 이미 그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부시는 ‘악’(탈레반)을 응징한다고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살상시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이듬해(2001년) 그는 이라크로까지 전쟁을 확산시켰다. 당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끝까지 전쟁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무대포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미국을 ‘깡패 국가’로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그 전쟁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그 살상무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에서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전쟁의 명분은 허구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야말로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로 인해 미국의 외교는 개국 이래 가장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는 전 세계 국가들이, 심지어 그 동안 우방으로 여겨졌던 나라들마저 미국에 대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은 만 7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단지 전쟁을 일으킨 것만이 아니다. 그는 미국과 세계의 경제마저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가 일으킨 전쟁이 ‘범죄’라면, 그가 무너뜨린 경제는 엄청난 ‘실정’이 아닐 수 없다. 부시가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을 때만 해도 국가 재정은 2360억불이나 흑자였다. 그런데 2008년 기준으로 그는 그 흑자 재정을 4550억불의 적자 재정으로 바꾸어놓았다. 그 적자규모는 금년 들어 1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나라 살림을 다 말아먹었다고나 할까. 참으로 대단한 재주(?)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이처럼 흑자 재정을 적자 재정으로 바꾸어놓은 데엔 부유층 위주의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그는 부유층의 부의 효과가 일반 국민들에게 확산된다는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유리한 감세정책을 폄으로 엄청난 국가재정의 손실을 초래했고, 사회적으로는 더욱 빈부격차를 늘리는 사회양극화 현상을 초래하였다. 그가 집권할 당시 빈곤층은 640만 명이었으나 현재는 76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의 경제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하였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가 잘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신흥 대국인 중국, 인도와의 관계를 공고히 한 점, 그리고 AIDS 확산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에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 또한 ‘낙제학생방지법’을 제정해 공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업적들은 그의 실정들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지나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부시 정권 8년에 대한 평가는 가혹하리만큼 좋지 않다.

지난 목요일(1월 15일)에 부시는 퇴임 닷새를 남겨 놓고 ‘고별 연설’을 하였다. 아쉽게도 그리고 낯 뜨겁게도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업적을 열거하며 자신의 실정들에 대해 변명만을 늘어놓았다. 특별히 “마음속에 최선의 국가이익을 염두에 두고 항상 행동했으며 내 양심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했다”(I have always acted with the best interests of our country in mind. I have followed my conscience and done what I thought was right.)고 말할 땐 쓴 웃음마저 나왔다. 무엇이 ‘국가 이익’이며, 또 그의 ‘양심’은 어떤 양심인가? 미국을 ‘깡패 국가’로 만드는 것이 국가 이익이며, 거짓에 근거하여 수많은 사람을 살상시키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그의 양심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자리에서조차 나는 그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왜곡된 사고와 양심에 대해서.


나는 부시를 보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맹점, 아니 민주주의 자체의 맹점을 느낀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대다수 구성원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바로 그 민주주의 원칙에 의거해 부시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이다. 특별히 미국은 선거인단이라고 하는 대의원 제도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어 있다. 이 제도 때문에 총유권자 수에 있어 민주당의 ‘엘 고어’ 후보가 더 많은 득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통령은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가 부시가 되었다. 미국이 연방국가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어떻게 보면 불합리한 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같은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의 맹점으로 인해 ‘부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이고, 그 결과 미국이 지금처럼 ‘수렁’에 빠진 나라가 된 것이다.



단지 미국의 민주주의만이 아니다. 나는 ‘부시’를 보면서 민주주의 자체의 허구와 맹점을 목격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방식에 의거해서 부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이나 말이다. 어떻게 부시 같은 사람을 두 번씩이나 대통령으로 세울 수가 있을까? 여기서 나는 민주주의의 맹점이라고 할 수 있는 우중정치의 실상을 본다. 그 결과 미국과 전 세계는 8년이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민주주의가 대다수 구성원들이 원하는 대로 의사를 결정하는 정치라고는 하지만 그것만이 꼭 옳은 방식은 아닌 듯하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기독교는 민주주의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것인데 기독교가 그 기초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가르친다. 즉 모든 인간은 다 동등하며, 또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인권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친다. 민주주의는 바로 그 같은 정신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기독교가 지향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주권주의’이다. 즉 기독교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수의 의사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나님 그분이 원하시는 것, 즉 ‘하나님의 뜻’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뜻에 따라 움직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수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각각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가운데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기독교적인 민주주의이요 또 그럴 때 가장 바람직한 결정, 가장 이상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에 이 나라의 국민들이, 특별히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같은 생각으로 대통령을 뽑았더라면 최소한 ‘부시’ 같은 사람이 재선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민주주의’에 감사한다. 특별히 이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 민주주의 때문에 부시가 물러나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곳이 미국이 아니고, 공산국가나 독재국가였다면 부시 정권하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지냈을 터인데 말이다. 8년이 긴 세월이긴 하지만, 그 8년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뒤틀어지고 망가지긴 했지만, 그래도 8년 만에 ‘부시 정권’이 끝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부시를 떠나보내면서 문득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바른 대통령을 뽑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 등등.

글을 맺으며 그래도 퇴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할 듯싶다. “부시여, 안녕!”  ✎김현진

 

알래스카의 까마귀


요즘처럼 강추위가 올 때면

알래스카의 까마귀들이 생각나곤 한다.

그것들은 영하 50도의 살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교회 앞마당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열심히 먹을 것을 찾곤 하였다.

그 같은 까마귀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그 까마귀들의 운명이


그러다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인가

얼마나 경이로운 새들인가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는

게으름 때문에 굶어죽는 새들도 있다는데

그것들에 비하면

참으로 대단한 새들이 아닌가

과연 알래스카의 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까마귀들로 인해 교회 앞마당이

온통 쓰레기장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차마 그것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먹을거리를 더 던져주고 싶었다.


그리스도인이란

알래스카의 새처럼 강한 생명력의 사람들

어떤 혹한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온 몸이 얼어드는 고감도 추위 속에서도

결코 쓰러지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요즘처럼 강추위가 찾아들 때면

문득 알래스카의 까마귀가 보고 싶어진다. (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