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식(서울 십대선교회(YFC)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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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글 요약: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부모님의 훌륭한 믿음 아래 자라난 전의식 장로는 가난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하고 이십대의 젊은 나이에 조경업을 시작하여 아무런 자본도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 공사를 따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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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노임이 후한 우리 공사에 훌륭하고 부지런한 인력이 많이 모여들었고 자재대금을 선불로 지급하는 만큼 공사에 차질을 빚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건설업자들과 정반대되는 행동이었다. 이것은 공사경험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예상보다 빨리 공사대금이 부족하게 된 나는 또다시 부딪친 자금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기도하던 중 배짱 좋게 김영배 회장을 또 찾아갔다.
“회장님, 저희 회사가 다른 시공회사보다 가장 공사를 많이 진척시켰으며 일도 깨끗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직 공사대금을 주실 날짜가 되지 않았지만 미리 좀 지급해 주시면 공사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김 회장은 공사현장을 직접 둘러본 뒤 아주 만족해하며 비서에게 대금을 미리 지급해 줄 것을 지시했다. 나는 또 한 차례 위기를 넘긴 것이다.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았고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고 일에만 매달렸다.
드디어 1년여 만에 그 엄청난 골프장 공사를 완공시켰다. 그것도 다른 시공업체보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은 공사를 했고, 결국은 공사 진척이 빨라 추가공사 부문을 모두 우리가 맡게 되었다. 나의 데뷔작품은 대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사실 경험도 전혀 없는 내가 이런 대공사를 거뜬히 치루어 낸 것은 지금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같이해 주시고 지혜를 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판단된다.
나는 이 공사로 수천만원의 목돈을 쥘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이 공사로 인해 「부림원」이 조경건설업체 대열에 당당히 낄 수 있는 명성을 얻게 됐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골프장 조경공사하면 부림원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만큼 회사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 나는 늦기 전에 대학에 입학, 공부를 더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성균관 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이번에는 입시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했음에도 합격이 되었다. 나는 사업과 대학공부를 병행하기로 했다. 사업은 계속 승승장구였다. 가만히 있어도 공사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적지 않은 부를 소유한 청년실업가가 된 것이다.
당시에 보기 힘든 외제 고급자가용을 운전기사까지 대동해 타고 다녔던 나는 한없이 높아지는 자만심과 반비례해 신앙은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70년대에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골프장 조경공사의 50%정도를 맡아 시공했다.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 어려움 없이 풀려나갔다. 적지 않은 부를 소유하게 된 나는 사업을 다른 쪽으로도 확장시켜 나갔다. 운수업체를 하나 인수했고 목재사업에도 손을 댔으며 묘목을 키우기 위해 농장 부지를 매입했다. 단자회사의 증권도 상당수 보유했다.
스물세 살의 나이에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며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내 모습을 주위에서는 대단하게 평가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내가 제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대로만 나가면 40대에 가서는 국내 굴지의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가장 능력 있는 것으로 착각했으며 모든 면에 자신이 넘쳐흘렀다. 정계·재계의 내노라는 분들과 교제를 하며 나의 사업적 능력이 오늘의 성공을 이룩한 것으로만 판단했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항상 사업이 우선이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 생각과 의지가 앞섰다.
더구나 남보다 앞서서 쌓아놓은 부가 나에게 우상이 되어 신앙생활이 사업의 성장과는 반비례했다. 그러나 신앙이 나약해질 때마다 무언지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 그것은 부모님의 뜨거운 신앙을 항상 보고 자라 온 탓이었다.
1975년 조선 호텔 조경공사를 맡아 공사를 끝냈다. 그런데 당시 총지배인인 데이비드 씨가 10만 달러가 넘는 공사비가 너무 비싸다며 2만 달러 정도를 깎자고 제의해 왔다. 정식 계약서를 주고받은 상황에 공사비를 깎아 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한국 사람을 무시한 처사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나는 즉시 면회 신청을 해 데이비드를 만났다.
“공식 절차를 밟은 공사가 아닌가. 공사를 잘 끝낸 마당에 이제 와서 공사비를 깎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가능한 일이 아닌가. 다른 공사도 깎은 예가 있다. 너무 비싼 것 같으니 우리가 요구하는 만큼 깎아 달라.”
나는 데이비드의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아는 고자세가 더욱 기분 나빴다.
“나는 단 1원도 깎아줄 수 없다. 당신은 한국인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만약 당신이 공사비를 전액 내놓지 않을 경우 국제변호사를 동원해 당신이 아닌 미국에 있는 조선호텔 체인본부 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
큰 소리를 치고 나오자 데이비드는 몹시 당황한 모습이었다. 전혀 상상치 못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이후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됐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일이 결혼 전 아내와의 교제시절 큰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얼마 후 당시 교제 중이던 현재 아내와 조선호텔 커피숍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이 모습을 수행원을 데리고 순회 중이던 데이비드가 발견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호텔의 총지배인이 내 앞에 와서 깍듯이 인사하며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자 깜짝 놀란 지금의 아내는 나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했던 것이다.
1979년, 30세의 나이로 결혼을 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아내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어려움 없이 자라온 터라 나와는 전혀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낸 처지였다. 결혼할 당시 나는 제법 상당한 수준의 실업가로 부각되었고 재산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으므로 혹시 아내가 물질을 풍족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물질관이 조금은 일반인들과 달랐다.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은 기업주 개인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되며 이웃과 사회, 선교를 위해 쓰이거나 더 큰 사업과 고용증대에 재투자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앞둔 아내에게 우리 가정은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해야 함을 다짐 받음과 동시에 매달 최소한의 생활비만 가계부를 근거로 지급할 것을 이야기했다.
“돈이 없어서 못 쓰는 것은 결코 고통이 아니오. 그러나 있으면서 쓰지 못하는 것은 고통이오. 그 고통을 이겨낼 용기와 자신이 있다면 나와 결혼합시다.”
이 말을 다짐받았던 터라 아내는 결혼 후에 적은 생활비로도 큰 불평을 하지 않았다. 대단한 생활을 할 줄 알았던 친구나 이웃들도 우리 집의 생활규모를 보고 깜짝 놀라곤 했다. 나의 물질관은 이후 몇 번 거듭된 호된 시험을 통해 더욱 변화되었다. 결론은 간단하다. 재물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그 쓰는 방법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방법으로 쓰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업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81년 4월이었다. 고위급 권력기관에 있으며 나와 절친한 관계에 있던 학교 선배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전 사장, 돌아오는 일요일 재계의 거물급 몇몇 회장들과 골프 약속을 했소. 내가 자연스럽게 그 분들을 소개할 터이니 함께 참석하시오. 발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오.”
“죄송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이어서 주일엔 꼭 교회에 나갑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주일 성수가 가장 중요하지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뒤로 미루겠습니다.”
그러나 그 선배는 이미 약속이 다 돼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한 뒤 아침 일찍 만나 골프를 치고 바로 교회에 가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나는 나중에라도 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는 말에 할 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다. 아버님으로부터 주일 성수만큼은 기독교인이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덕목임을 누누이 강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명목으로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난생 처음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된 나의 마음도 개운치 않았다. 원래 계획은 오전 10시 30분경에 골프를 끝내고 교회로 갈 예정이었으나 11시가 훨씬 넘어서야 경기가 끝났다. 교회 행을 포기 할 수밖에 없었고 일행과 함께 점심식사를 위해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내 차의 운전기사가 골프장 입구를 막 벗어나 횡단보도에 잠시 정차해 있는 동행한 모 그룹회장의 차를 사정없이 받아 버린 것이다. 우리 차의 운전기사는 10년 이상의 경력자로 당시 차를 빠르게 운전 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속력을 내어 이런 사고를 낸 것이다. 다행이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차가 대파돼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자동차 충돌 사고로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 소개하려던 분위기가 영 반대로 되고 말았다. 순간 전광석화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통해서 발람에게 경고하신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주일 성수를 하지 않고 사업을 한다고 그것이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오늘 사고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작은 경고일 뿐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날인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때서야 나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었다. 사고로 몸이 다치지 않은 것도 감사했고 깨달음을 갖게 된 것도 감사했다. 이날 이후 나는 그 어떤 중요한 일도, 그 누구의 요청도 주일만은 양보치 않고 거룩하게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 일과 연이어 나는 그 해에 엄청난 시련을 맞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는 예정된 사건이라고 여겨져 감사한 마음을 갖지만, 당시로서는 인생을 포기 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것은 당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J금융 사건에 내가 휘말리게 된 것이다. 그 동안 내가 힘들게 쌓아올리며 벌어들인 수많은 재물이 이 사건으로 인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 이렇게 쉽게 내가 허물어질 수 있단 말인가. 10년 동안 그 누구 보다 빠르게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밤잠을 못자며 괴로워했다. 상대를 믿고 돈을 투자한 것을 후회했으나 현실은 냉정했다.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었다. 처음에 나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내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깊이 성찰하게 됐고 나의 신앙에 문제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됐다.
나는 사업의 계속적인 성공과 발전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란 단순한 생각을 가졌다. 젊은 나이에 막대한 부를 가진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기고만장했고 남 앞에 드러내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교만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두문불출하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이 사건이 나의 자만과 교만을 깨뜨리기 위한 섭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성경을 펼쳤는데 시편 66편 10~12절의 말씀이 크게 클로즈 업 되며 가슴에 빨려들듯 들어왔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집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니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이 고통의 과정이 저의 잘못된 신앙을 깨뜨리고 교만을 버리게 하기 위한 연단인 줄 믿습니다. 인내와 지혜로 이 역경을 극복하게 하시고 참된 믿음을 소유하게 하소서.’
조용히 기도하면서 내 앞에 닥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했다. 내가 빌려준 액수는 모두 잃더라도 내가 남의 돈까지 중계해 빌려준 금액을 모두 책임져야 할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기도할수록 내가 지은 가장 큰 죄는 남보다 앞서 갔다는 교만함과 남보다 많은 것을 쌓아 올렸다는 우월감,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들이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란 성경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겨 넣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늘 기도하는 가운데 신앙적으로 많이 달라지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 무렵 나는 성경을 많이 읽었는데 나의 폐부를 찌르며 감동을 주는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욥기의 마지막 장은 나의 현재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욥이 모든 고난 끝에 여호와께 드리는 이 고백은 바로 나의 고백이었다.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다음에 계속)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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