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글은 「미국장로교회 한인은퇴목사 및 사모회」 회보(2008년 12월 15일자)에 실린  김득렬 목사님의 글입니다. 김득렬 목사님은 지난 1999년 1월부터 10월 초까지 본교회의 임시목사로 사역해 주신 분으로서 본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모든 과정을 극복해 나가는 데에 크게 수고를 감당해 주셨던 분입니다.-편집부



  목사의 교역영역(敎役領域)은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는 인생의 전 역정(歷程)이요, 전인목회(全人牧會)는 개인의 생로병사(生老炳死)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이를 행함이 목자적교역(牧者的敎役)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무덤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 봄, 내가 시무하던 교회의 교우들 중에 교회 묘지에 관한 관심이 증가되었다. 이민생활의 연륜이 더해감에 따라 묘지를 찾는 빈도 또한 잦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 성도들의 그 영혼들은 이미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맞아주시는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나아가지만, 그 유해는 이국(異國)의 묘지 한 모퉁이일지라도 같은 믿음의 공동체였던 교우들이 함께 모여 부활의 나팔소리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묘소들을 조성하여 회중생활의 연장처럼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와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교회에서는 봉사위원회(위원장:김우석 장로)로 하여금 묘지공동구입을 원하는 교우들로부터 신청금을 받게 하였다. 50명의 성도들이 우선 신청하였으므로 김우석 장로는 그 신청금을 가지고 교우들이 자주 가는 ‘오클랜드힐’(Oakland Hill) 묘지 사무소를 찾아갔다. 비록 좌청룡 우백호는 아니더라도 한인들이 선호하는 약간 구릉지고 토양이 건조한 묘지 50기(基)들이 집합되어 있는 한 구역을 본 후 도매가격으로 일괄 구입하였다.


  묘지구입 절차를 마친 김우석 장로는 묘지사무소 책임자에게 농담겸 진담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관행으로는 이만한 거래가 이루어지면 덤으로 한 두 개쯤을 더 주는 법인데 이 회사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까?” 그 말을 들은 담당자는 “무슨 뜻인지요?” 하며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장로는 “다름 아니라 김 목사님 내외도 언젠가는 묘지를 필요로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그 말을 들은 그는 잠시 후 “그러시다면 저희가 묘지 둘을 1불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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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님 내외분께 드리겠습니다.”하고 묘지분양증서를 써 주어서 이렇게 받아 왔으니 나더러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뜻밖의 제의에 “그걸 제가 어떻게 받습니까” 하고 사양하였으나 선물로 받아 온 것이니 받아 두라고 강권하심으로 감사히 받아두기로 하였다.


  얼마 후 김우석 장로는 묘지구입을 신청한 교우들에게 각자가 원하는 묘지 위치를 선정하라고 광고한 후 52기의 묘지 배치도를 바둑판같이 그려가지고 먼저 나에게 와서 원하는 자리를 선정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야 거저 받았으니 대금을 지불하고 구입하신 교우들께서 먼저 다 고르고 나신 후, 남은 것을 저희 내외가 쓰면 됩니다. 그러니 어서 교우들에게 가서 먼저 고르시게 하세요”하였다. 그래도 김장로님은 교우들이 모두 “목사님 내외가 먼저 정한 후에 자기들이 정하겠다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선정하세요.” 하며 그 묘지 배치도를 내 앞에 제시하고 독촉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어서 “정 그러시다면 저희 두 사람의 자리는 묘지 중앙 한복판에 정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김장로님은 묘지배치도 중앙 한복판에 표식 둘을 하신 후 교우들에게 가지고 나가셨다.


  그 후 들은 말로는 김장로님께서 묘지 배치도를 가지고 교우들에게 가서 목사 내외의 자리를 보여 주며 교우들이 원하는 자리들을 택하라고 하였더니, 서로들 “목사 내외와 가까운 자리에 있겠다”고 하였단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어서도 교우들의 목사로서 가까이 있어 달라는 간절한 사랑의 염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사회와 어느 단체에서 생과 사를 초월하여 한결같은 사랑을 이렇게 서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그 깊은 사랑에 감격되며, 깊은 감회에 잠겨 목사 직분의 고귀함을 새롭게 음미하고 과연 성직(聖膱)이라고 부를만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성도들이 기대하는 목사(Poimen:목자)의 사명은 생과 사를 초월하여 저들의 변함없는 선한 목자가 되어 성도들로 하여금 무덤 속에서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나의 목자(목사)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고 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랑과 신뢰의 목자적 관계를 실현해가는 것이라고 확신되었다.


  그때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성도의 장례 행렬을 따라, “오크랜드 힐”에 갔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성도들이 그 자리를 떠나 돌아가기 시작하였을 때, 나는 앞서간 성도들을 찾아보고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묘비들을 보며, 생시의 얼굴들을 회상하고 함께 하였던 일들을 회고하는 묘지심방을 하고 있었다.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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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한 성도가 가까이 와서 “목사님 자리는 어디에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윤계순 성도였다. 그래서 나는 “왜 물으세요?” 라고 반문하였더니 “저는 목사님의 다음 다음 자리예요”라고 하지 않는가!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이 어른이 언젠가는 나의 다음 다음 자리에서 부활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날을 함께 기다릴 분이로구나!!” 하는 감회와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글쎄요 저희 내외의 자리는 우리교회 성도들의 묘지의 중앙 한복판이라고 하였는데요, 그 자리가 어디쯤인지 저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나와 아내의 자리를 알게 되는 날이 왔다. 나와 내 아내는 동갑내기로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사랑의 섭리로 1944년 3월 23일 황해도 사리원 서부교회, 김현정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예식을 올렸다. 우리는 63년 반 동안 해로하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그들의 슬하에서 자라나는 9명의 손자 손녀들과 1명의 증손자의 늠름히 자라감을 감사와 감격으로 지켜보며 주의 일에 힘써 오면서 많은 분들이 누리기 힘들다고 하는 회혼(回婚)도 누렸다.


  그런데 1997년 2월 2일 주일 오후에 집사람과 나는 병원에 입원하여 중한 수술을 받으신 강원기 선생을 심방하고자, “오크욷”(Oakwood)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그곳 차 안에서 집사람에게 중풍 증세가 나타났다. 그래도 우리는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적시에 하여야 하는 응급조치를 못하고, 병원에 도착하여, 병실에 올라가서 강원기 선생을 심방한 후, 집으로 돌아오고만 것이다! 그때 거기서 그 병원의 응급실로 직행하여 응급조치를 취하기만 하였더라면, 집사람은 완치 회복되었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 나의 무지와 실수는 결코 용서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사람은 좌측 팔과 다리가 약간 약한 중풍환자가 되어 보행과 활동이 제약된 생활을 10년 반 동안이나 하여오고 있었다.

  2007년 9월 9일 주일 오후 1시 35분, 아내는 갑자기 혈당이 떨어짐으로써 발생된 골절로 입원하여 있던 “윌리엄 버먼”(Wm.baumont) 병원에서 일종의 의료사고로 인해, 그의 영혼은 내 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때 그이 나이는 80세 반이었다. 그는 실로 나의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다. 38선을 넘고, 6.25전쟁을 겪고, 교수가 되고, 목회를 하는 나의 전 생애는 항상 그와 더불어 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결혼식은 함께 하지만 장례식은 따로 한다는 말이 내게도 사실이 되었다.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오전 10시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 교회장으로,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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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장례예배를 드린 후, 나의 아내의 긴 장례 행렬은 “오크랜드힐” 성도들의 묘지로 향하게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에, 미풍은 신선하였다. 양지 바른 언덕 중앙 한복판에는 나의 아내의 관을 위해 새로 판 무덤이 기다리고 있었다. 땅은 마르고 흙은 보드라왔다. 바로 그 옆자리는 장차 내가 묻힐 자리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생과 사를 초월하여 이어가는 우리 내외와 디트로이트 한인연한장로교회 성도들의 ‘목자적 교역관계’는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5-3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날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장 51-56절) 

  ✎김득렬 목사(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

 

기도가 전부인 사람에게 기적은 일상이다


*** 이 글은지난 6월 말에 전보애 교우께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청년부에서 전해주신 간증 내용입니다.

1. 떠나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마가복음 6:9)

2001년 여름, 유학을 떠나기 전 묵상 중에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둘 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유학을 준비하던 터라 퇴근 후에나 혹은 지하철에서 짬짬
이 토플, GRE 공부를 하는 것 외에는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
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희 안에 소원을 두고 또 이루게 하시는 분이심에 감사하
면서 그 기간을 견뎌낸 것 같습니다. 더 힘든 훈련이 눈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지
요.. 모두가 반대를 했습니다. 아직 기저귀도 안 땐 두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둘 다
공부를 하겠다고 유학을 떠난다고 할때요.그리고 될 거라고,설마 면접에서 떨어지
겠냐고 하면서 믿고 있었던 국비유학생 시험에서 불합격 소식을 듣고는 좀 의아했습
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벌 옷도 준비하지 말라고 하시고선 이게 웬 일입니까?' 하고
요.사실 그때 조금 감 잡았습니다.'아... 이거 좀 호된 훈련코스인가 보다' 하고요.
춥고 눈 많이 오기로 소문난 버팔로로 출발하면서 두벌 옷이 문제입니까? 당연히 파
카에,내복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왔지요.

2. 버팔로에서의 7년: 기적의 일상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제가 오늘 간증의 제목을"기도가 전부인 사람에게 기적은 일상이다"라고 정했는
데요,이 말씀은 제 연구실 책상에 적혀져 있는 문구입니다.힘들고 지칠 때, 저는
이 말씀을 보고 다시 힘을 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역사하실 일을 바라보
았습니다. "크고 은밀한 일"이 다른 말로 하면 바로 '기적'이겠지요. 저는 제가 여기
에 서서 여러분 앞에 간증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저
를 훈련시키시고자 광야로 보내시고 또한 저에게 기적을 매 순간순간 베푸셨다는 걸
여러분과 나누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쁩니다. 너무나 많은 기적들과 하나님의 은혜없
이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지만 그중 몇 가지를 여러분과 이 저녁에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가 처음 유학을 올 때 사실,저희 손에는 첫해1년 정도를 버틸수 있는 돈밖
에는 쥐어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7년을 버텼습니다. 기적이지요. 처음 버팔로에
도착했을 때까지 교회에 연락해 볼 생각을 못 했었습니다. 같은 과에 선배가 있어서
다행히 많은 부분 신세를 지었지요. 그런데 이 선배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데도 근처
에 사는 한 집사님 부부(구자현 집사님이죠.지금은 플로리다로 이주)를 저희에게 소
개시켜 주었습니다. 아직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있던 차라 한번 가보기로 했는데 마
침 그 날 오후 심장로님 댁에서 구역예배를 하는 데까지 초대되었답니다. 그곳에서
유충렬 집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남편의 고등학교 선배님이시더군요. 이야기 중에
지금 유충렬 집사님 프로젝트에서 프로그래머가 급히 필요하다고 지원해 보라고 하
셔서 남편은 부랴부랴 그 다음 주에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일사
천리로 일이 진행되어서 그 주 안에 Research Assistant로 일하기로 결정이 되었답
니다. 그곳에서 3년, 또 다른 연구소에 3년간, 남편은 총 6년간 학위를 마칠 때 전액
장학금에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좀 다른데,저의 믿음의 분량이 작은지라.. 하나님께서 꼭 한 학기 단
위로 등록금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등록금 납부 마감일 하루전날에 과에서 연
락이 와서 갑자기 Teaching Assistant 하기로 했던 사람이 못하게 되어서 제가 대신
TA를 하게 되면서 등록금이 면제되기도 하고, 꼭 등록금 낼 만큼 장학금을 타게 되
기도 하고 하면서 한학기 한학기를 넘겼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너무 드라마틱
한 걸 좋아하신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답니다.제가 김귀선 자매님께 "이번에도 홍해
앞에까지 갔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답니다.그런데 언젠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이
것도 하나님께서 드라마틱한 걸 너무 좋아하셔서 매번 우리를 홍해 앞에까지 끌고
가시는게 아니고, 우리가 완악하여 홍해 앞에까지 가서야 그제서야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전에는 온갖 지혜를 총동원해서 어찌하든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애쓰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님께 구하는 저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십니다.

사실 어제(6월 27일, final dissertation defense)도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습니
다. 저의 박사논문 최종심사 당일 새벽에 그날 할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준비한 파워
포인트 파일을 버튼 하나를 잘못 클릭하면서 다 날려 버리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백업파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최종본이 아니라 일주일전 버전으로 약 50% 정
도 완성본이었습니다. 사실 그 버튼을 누르기 직전 아주 짧은 찰라에 저는 혼자 생각
했습니다. "다 됐다. 이 정도면 정말100%다. 오늘 정말 나의 연구에 대해 100% 자
신있게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정말 그 순간에.. 다 날려버리고 만 것이지
요. 착잡한 마음에 새벽에 차를 몰아 집으로 향하는데 정말 거짓말 같이 제 입에서찬양이 흘러 나왔습니다. "약할 때 강함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나의 모든
것…" 걱정하던 마음이 온데 간데 없어지고 하나님께서 오늘 또 제게 어떤 기적을 베
푸실지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
서9시 정도에 발표장에 도착했습니다.한 시간 남짓 그 50% 정도의 백업파일에 가
능한 한 간략하게 중요한 점들만 몇 가지 첨가를 하고 조용히 기도를 했습니다.

Final defense는 10시에 시작되었고 12시가 좀 못되어서 끝났습니다. 그 두 시간
가량의 시간이 마치 순간처럼 지나가버렸습니다. 1시간가량의 발표와 뒤이어 한 시
간 가량의 질문답변 시간동안 저는 제가 아니었나 봅니다. 질문 답변 후 이례적으로
지도교수님과 모든 교수님들이 잘했다고 축하한다고 그 자리에서 저에게 악수를 청
했습니다. Committee에 있는 세분 교수님 중 두 분은 고칠게 하나도 없다고 그 자리
에서 말씀하셨고 나머지 한분도 몇 가지 오타만을 지적하셨을 뿐입니다. 생각해 볼
때, 제가 만약 100% 저의 자신감으로 이 발표를 했다면 어땠을까? 저는 지금도 그
순간에 찬양이 제 입술에서 흘러나오고 그 순간에 제 마음이 평안해 지고 담대하게
발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3. 다시 떠나며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
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민수기 18:29)"

이제 저는 다음 주면 정들었던 버팔로를 떠납니다.기적이 일상이었던 지난7년…
특히나 남편과 떨어져서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면서, 눈썹 휘날리게 연구소에서 일
하면서,밤새워 박사논문을 쓰던 지난1년은 참으로 강도 높은 하나님의 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다시 떠나는 제게 하나님은 또 다른 빡센(?) 훈련코스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한 매순간 기적들을 저희에게
보여주시리라 생각하니 너무나 기대가 됩니다.

이제 이 간증을 마치며 제가 감히 여기 모인 청년부 여러분에게 도전을 하고자 합
니다. 우리 하나님, 좋은 거 좋아하십니다. 아름다운 거 좋아하십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때,청년의 때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이 말씀은 저희가 젊을 때, 처음
가정을 꾸렸을 때,저희집을 심방하러 오신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이젠
저희도 마냥 젊지는 않지만 (^^)…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의 젊은 날들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것으로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한 청년부 형제 자매님 한분 한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전보애
 

맑은 고딕... 포인트 10!


이 곳 Buffalo에 온 기념으로 남편은 정말 작고 귀여운 노트북을 선물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매사에 덜렁거리는 저는 약 다섯 달 만에 화면(screen)을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말도 못하고 게다가, 특별히 바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도 아
니어서 그냥 깨진 화면을 통해 이것, 저것을 하고 있는데 남편은 그런 제가 안쓰럽
다고 또 새로운 노트북을 선물했습니다. 이번엔 색깔마저 빨갛고 예쁘게 생긴 녀석
이어서 아이들의 질투가,특히 딸아이의 질투는 장난이 아닙니다.

깨어진 화면을 통해 보이는 것들은 모두가 깨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까지도 하나님 앞에 조각난 마음인 것만 같아 때때로
우울했었습니다.하지만 이제 저는 넓고 깨끗한 화면 위에‘맑은 고딕’의 글씨체를
선택하고 포인트는 10으로 설정합니다. 아... 딱 적당하고 너무나 보기에 아름답습
니다! ‘맑은 고딕’으로 글을 쓰고 있으면 그 글자가 영어든 한글이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저는 제가 쓰고 있는 글자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합니다.이름 그대로
맑은 그 모습에 또 한동안 들떠서 마음을 홀딱 주고 맙니다.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담대하게 주를 바라보는 너의 영혼,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
너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 너의 영혼,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
오 할~렐 루~야!”

축복송의 노랫말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의 영혼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저절로 미
소 지어지는 사랑스러움이 있을까... ‘맑은 고딕’ 10포인트의 글자 앞에서 이렇게
즐거워하고 있는 나처럼 하나님도 나를 어여삐 보고 계실까...

물론 전혀 그럴 수 없는 모습인 줄 잘 알지만 늘 실수투성이면서도 또 다시 배시
시 웃으며 다가와 아빠를 안고 볼에 뽀뽀를 해대는 아이들처럼 저도 그렇게 늘 넘
어지면서도 또 다시 일어나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아버지............” 하고 가
만히 부르면 우선 마음이 포근해집니다.그 앞에 응석을 부려봅니다.때로는 온갖
불평도 하고, 울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토라져서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너무나 감사함으로 즐거움으로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남편을 붙잡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두 손 들고 찬양을 합니다.

그 분은,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기댈만한 든든한 나의 언덕이므로,모든 부끄러
움에서 나의 숨을 만한 은신처이므로, 나의 은밀한 모든 죄악까지도 이미 알고 계
시는 유일하신 분이므로 저는 그 안에서 너무나 편안하고 자유롭습니다. 오직 그
분만이 나의 모든 문제를 치유하실 수 있음을 알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나의 연약
함을 처음부터 알고 계시므로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나의 모습이 때로는 마른 나뭇
가지 보다 못할지라도 그런 저를 향하여‘나의 사랑스러운 현주야!' 하고 부르시는
주님을 기억합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시나이까” (시 88:14)

시편 기자의 고뇌에 찬 고백처럼 저도 이 한 주, 아니 오늘 하루... 또 얼마나 많이
스스로 실망하고 하나님 앞에 고민하며 불평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유일
하게 나의 모든 구석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므로
나의 약한 것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들에게 들려주는 엄마의 잔소리들...


1. 친구이야기

...너의 곁에는 지금 어떤 친구가 있니?
아니,다시 돌려 물어볼까?바로 너는 어떤 친구니?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너를 붙잡고 저녁마다 억지로 읽으며 새삼 ‘친구’
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단다.
흔히 세상에서는 말하길 친구에는4가지 분류가 있다고 하더구나.그리고 이렇게
들 분류하는구나.

... 꽃과 같은 친구가 있단다.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온갖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지?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어떠니?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이
자기가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가 있단다
그런 경우를 바로 꽃과 같은 친구라고 하더라.
저울과 같은 친구가 있단다.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기울지 않니?
그와 같이 나에게 이익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가 있단다.
그건 바로 저울과 같은 친구란다.
산과 같은 친구가 있단다.
이 곳 버팔로에는 산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 한국에 많은 산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니?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가 되며
멀리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주지 않니?

그처럼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내가 조금 실수해도 그냥 좀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마음 든든한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란다.
땅과 같은 친구가 있단다.
땅은 많은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대하지?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고...
그런 한결 같은 마음으로 나를 지지해 주는 친구가
바로 땅과 같은 친구란다.
부디... 네가 먼저 하나님 안에서 생명보다 소중한 멋진 친구가 되고, 또한 그런 친구들
을 가질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늘 기억하길 바란다.

2. 살면서 기억해야할 이런 지혜들이 있단다... 아들아!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전쟁터라고 한단다.
그러나 이 전쟁터를 얼마든지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게 있단다.
우선 너의 습관을 최대한 다스려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습관이 너를 지배하게 되니까.
부디 주변을 좀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양말은 땡 도나츠처럼 둘둘 말아 던져 놓지 말길...
산속의 적은 물리치기 쉬워도
마음속의 적은 그렇지 못하지.

남에게 속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남보다 영리하다고 굳게 믿는 것이야
이해가 잘 되니?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단다.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옳은 사람과
자신을 옳다고 여기는 죄인...
아무리 어려움과 곤란에 처해도 당황하지 말아라!
사방이 다 막힌 것처럼 생각되어도 위쪽은 언제나 뚫려있고,
하늘을 바라보면 희망이 생기거든.
젊음은 마음의 상태이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란다.

하나님 주신 너만의 매력은 눈을 놀라게 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행동은 영혼을 사로잡는단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의 모습이 너무 어리지만
우리의 모습이 사실은 죽음과 부활의 기로에 서 있음을 안다면
좀더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우리가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 우리 모두는 시간이라는 모래밭 위에
남겨놓아야 하는 발자국이 있단다.

하나님 앞에 주어진 절대적인 시간 앞에
우리는 어떤 모양의 발자국을 남길까

오늘도...
두려움은 적게 희망은 많이,
먹기는 적게 씹기는 많이,
푸념은 적게 호흡은 많이,
미움은 적게 사랑은 많이 하기를 애를 쓰자, 사랑도 노력하는 것이거든...
오늘 엄마는 스웨덴의 속담을 읽으며 몇 가지 이야기들을 인용하여 이 글을 써본단다.
오늘도 멋진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마... ✎이현주
 

KOSTA가 남긴 것, 하나님의 사랑
-2008 KOSTA를 다녀와서-


“믿으면 살고, 죄 지으면 죽는다” KOSTA 첫 날 김동호 목사님의 저녁 설교 중, 성경을 한 마디로 정의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천국으로 향하는 구원의 열 쇠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열쇠를 가질 수 있다고 다시 한번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서 언제나 불안한 제 믿음에 확신 을 주셨습니다.그리고 그렇게KOSTA의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는 시작되었습니다.


KOSTA 기간이 여름방학인데다 여름학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많은 청년들이 함께 가진 못했지만,가기 전까지 기도로KOSTA를 준비하며 기대했습니 다. 하루하루 KOSTA 기간이 다가올 때마다 얼마나 설레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께선 저희들의 그 설레이는 마음을 아시고 인디에나 목적지까지 무사히 아무런 문 제없이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인디에나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고 짐을 풀기 시작했는데,몸은 한없이 피곤하고 무거웠지만,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로 가득찼습니다.


첫날 저녁설교엔 김동호 목사님의 너무 나도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문을 열 었으며, 둘째날 부터는 매일 아침 새벽기 도와 아침큐티 그리고 여러가지 주제의 세미나로 매일매일 넘쳐나는 은혜로 보냈 습니다. 하루하루 KOSTA 기간에 주시는 말씀과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그 기 쁨으로 피곤한 줄도 모른채 KOSTA는 진 행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세미나가 KOSTA기간 중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세 미나는 바로 선교에 관한 세미나였습니다. 사실 단 한 번도 선교에 관해 깊게 생각 해 본적도 없고,선교라고 하면 늘 막연하고 선교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선교 사로 부름받음 사람만이 하는 것이지,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 만 세미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해야하는 것이 바로 선교라는 것 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프리카나 오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기 위해 가시 는 선교사님들도 많이 계시지만,꼭 그것만이 선교가 아니라,내가 현재 있는 곳, 바로 버팔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한 영혼을 구하는 것부터가 바로선교의 시작이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선교라고 하면 부담부터 먼저 들던 저에게, KOSTA를 통해 어느샌가 저의 비젼, 그리고 제가 공부하고 있는 간호학 또한 ‘나’ 가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며, 선교를 향한 뚜렷한 목표를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세미나 뿐만 아니라 조원들과 함께 한 중보기도 와 셋째날인 수요일날 있었던 찬양의 밤을 통해 하 나님께서는 제게 차고도 넘칠 큰 은혜를 주셨습니 다. 특히, 조원들과 함께 서로 힘든 점과 약함을 드 러내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와중에, 늘 노력조차 해보지 않고 힘들다고 때론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 런 힘든 고난을 주시냐고 원망하면서 빨리 해결해 달라고 하던, 늘 내가 원하는 결과만 중시하고 원하 던 제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졌습니다. 서로 자 신의 약함과 자신의 힘든 삶을 나눔으로써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선 우리의 그 약점까지도 강하게 쓰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약함을 숨기기에 급급해왔던 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그 약함을 다 아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채우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며 가슴깊이 밀려오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국 온지 어언6년이 다되어가는 나름 베테랑 유학생인데,미국은 저에게 있어 서 그저 영어를 배우고 공부하는 통로가 아닌,하나님을 알게 하고,하나님을 만나 게 하는,하나님께서 부르신 축복의 통로임을 깨달았습니다.하나님께서 말씀해주 셨습니다.네가 이 곳 버팔로까지 오게 된 것,그리고 BKPC를 만나게 된 것, 그리 고 이 곳 KOSTA에 온 것까지 모두 다 내가 이미 계획한 일이며, 앞으로도 너를 향 한 나의 계획이 있다고,, 그 순간 알았습니다. 짧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살아 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번 코스타의 주제였던 “THE WAY TO LIVE, THY KINGDOM COME…” 하나님의 나라,천국은 맛본 자만이 그 기쁨을 안다고 합니다.이번 코스타를 통 해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았으며,그 기쁨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게 되었습니다.코스타가 제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였다고,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너무너무 감사드리며, 저에게 이렇게 좋은 믿음의 동역자 BKPC를 주심에 또 한번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서 저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BKPC!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이경진

 

The Way To Live, Thy Kingdom Come
-2008 KOSTA를 다녀와서-


안녕하세요~^^ 전..... 민구예요~ 전민구 입니다 오랜만에 또 이렇게 쉴만한 물가를 통해서 인사드리네요 하 하~ 사실 몇 주전 회보에 제가 게시판에 쓴 글이 올라와 있 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랬답니다.(예상을 못해서...) 2008 코스타 장학금을 받게 된 뒤 너무 기쁜 나머지 게시 판에 좀 자랑이기는 했지만 글을 올렸는데 어느 날 회보에 그 글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 좋았어요.. 부탁을 드리 지 않았지만 이렇게 쉴만한 물가를 통해 제 글을 많은 분들과 나누면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 바칠 수 있어서 너무 좋 았답니다. ^‐^ 그게 불과 몇 주 전 이야기인데.. 왜 이리 오래된 것 같은지…

 드디어 6월 30일에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2008 코스타가 "이 시대에 바른 길로‐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는 주제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5일에 걸친 훈련과 하 나님께서 세미나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예배시간에 울려퍼지는 찬양, 그 리고 묵상과 기도!!!!로써 얻게 되는 Amazing Grace를 체험하게 되는 실로 엄청난 영광을 누리고 돌아왔는데 이거 뭐 혼자 간직하고 살자니 너무 찝찝한거 있죠~!!ㅋ 그래서 몇 명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기쁜 제 심정을 나누기는 했지만 이거... 뭐.. 그래도 뭔가 허전한 기분이..... 그래서 이렇게 많은 우리 성도님 형제 자매분들이 랑 나누고 싶어서 간증을 합니다~ 저는 코스타를 신청하기 오래 전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 땅에 와서 교회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생활 시작한 지 2달이 안되서 형들과 누 나들이 무슨 수련회 간다고 5일정도 갔다 오더라고요... 그때는 워낙 제가 아는 것 도 없고 자세히 알려고 노력도 안해서 그것이 뭐 대단한 일인가 했었는데... 갔다 오더니 다들 표정이랑 생활들이 실로 놀랍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그 수련회가 2007 KOSTA 였어요....(그래서 저는 1년 가까이 이 시간만을 기다렸답니다..) 그렇 게 2008 KOSTA를 신청하고 기다리며 기대하며 살아가던 제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되었거든요. 정확히 6월 26일 목요일이네요.


제가 코스타의 예고편을 보기 위해 토론토 코스 타 마지막 저녁 집회를 드리러 형제 자매분들이랑 같이 갔었는데 너무나 뜨거운거예요.. 좋은 말씀도 듣고 찬양과 기도로써 고백을 하기도 하고... 아.. 이게 바로 코스타구나 할 정도로 너무나 기쁘고 신났었는데... 그 기쁜 마음을 뒤로 한 채 집 으로 돌아와서 저의 삶을 되돌아 보는데 교회 생활과 나의 세상의 삶이 너무 다른 것을 보면서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이 아닌 것 같고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에 도전이 딱 생기더 라고요. 불과 코스타 가기 5일을 남겨놓고요.... ^^;;;; 너무나 저한테는 충격이었 어요... 모든 것이 너무 거짓된 거 같고... 특히 저 자신과... 제가 믿고 있는 하나님 이... 내가 진정 드리는 찬양이 내 고백이 되는지... 내가 하는 기도가 하나님께 하 는 것인지... 이런 저런 두렵고 무서운 것들이 제 머리 속을 맴돌다가도 또 다 내려 놓고 세상 것에 휘둘리다 보니 사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머리속은 너무 복잡했는 데, 그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코스타를 가게 되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보여주세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발견해서 이런 헛된 생 각 안들 수 있게 아버지 보여주세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런데 실로 놀라운 일은 코스타 간지 이 틀만에 저는 믿음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을 체험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며 나의 아버지요, 또한 동일하신 분임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모세 가 홍해를 가르는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그런 대단할 일도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제 마음을 Touch하심을 분명히 느꼈어요....구원은 어느 누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이 날 느 껴버렸죠.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써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첫 날 저녁설교를 시작으로 시작된 코스타의 말씀의 주제가 "천국의 열쇠"였는데 딱 믿음과 구원에 대한 설교 내용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6:13‐20을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께 고백함으로써 천국의 열쇠를 얻게 되었지요. 또한, 구원의 반대는 사망이 되는데 로마서 6장 23절을 보 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 니라"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의 죄 중에는 우리 안에 '나'가 너무 많고 나를 중심에 두고 단순히하나님은 중심인 나를 위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물론 저도 그 런 사람이었고요. "하나님 저 내일 시험인데 잘 보게 해주세요.. 이번에 못 보면 학 점 떨어져요....제발!!!", "하나님 너무나 피곤해요... 좀 쉬게 해주세요...", "하나 님 용돈이 다 떨어져가요.. 너무 돈이 없는데 채워주세요...제발!!" 이런 기도 하나 하 나가 너무나 제 삶만을 위한 것이었고 전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단 순한 도구로써 생각했던 저의 지난 삶들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저는 저의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 날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다 내려놓았죠. 나의 거짓된 고백, 거짓된 모습, 내 삶의 중심에 있는 나…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자녀의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구원이더라고요. 이 날, 저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면서 자녀의 권세를 얻은 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만지시니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첫째 날부터 엄청 울고 말았는데 그러면서 이 땅이 진정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주시더라고요. 이 땅에서 내가 하고 있는 공부, 내가 교제하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바치며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왜 그리 눈물이 나면서도 기쁜지 이 기쁨은 제가 맛 본 모든 것 중에서 최고의 기쁨이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내 안의 모든 것이 되니 너무 평안하고 자유로우니 다 이루어진 거 같은 기분이더라고요.


저는 5일 동안 보낸 코스타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평생 간직해야만 하는 사 명을 받은 것 같아요. 저한테는 이번 코스타가 제 삶의 Turning Point가 된 거 같 아요. 우선 가장 큰 것은 저의 사고방식이 바뀐 것이랍니다. 주님 한 분 만으로 만 족하는 제 모습!!!! 내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것이 없다는 것!!! 이거면 되는 구 나!!! 저번 주 토요예배때 본 설교에서 목사님이 영광을 본 자만이 진정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한테는 코스타가 너무 영광스럽고 기적과 같 은 일이 되어버려서 이제 내가 믿는 하나님과 담대히 세상에서 동행하며 그분께 영 광 바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거 같아서 너무 행복해요.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오늘은 무엇을 할까요?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오늘은 무엇으 로 하나님께 영광을 바칠까요??" 이 고백 속에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요~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무거운 것만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며 살 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요~^^ 우리 BKPC의 든든한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전민구

 

중국 돕기 fundraising


5월 12일, 평범하게만 느껴지던 월요일에 100,000명이나 사망자를 내고 5000명 이 넘는 고아를 만든 지진이 일어났다. Central China에 일어나 베트남까지 느껴진 7.9 maganitude의 지진. 하필이면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에 일어나 아이들이 가득 찬 학교들이 쓰러지고 chemical plants가 넘어져 안에 일하던 일꾼들은 물론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다치고 말았다. 모든 아이들이 사랑하는 팬다곰들이 제일 많 이 사는 중국 지역도 역시 지진의 victim이 되어 많은 동물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침 이때 쯤 난 English class에서 내 준 Senior Inquiry Project를 위해 음악 앨 범을 만들고 있었다. 밴드부에서 쓰는 Smartmusic이라는 accompanying computer program을 통해서 피아노 반주자도 없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플롯 연주를 녹음 하고 있었다. 이 Senior Inquiry Project (SIPS)는 12학년들이 졸업하기 전에 자기 가 항상 하고 싶었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프로잭트이다. 기타 배우기, 레슬링 배우기, 옷 만들기, 다큐멘터리 만들기, fundraising, 별모양의 speaker 만들기 등등 아주 재미있는 프로잭트이다. 작년에 두 언니들이 어떤 아이의 수술비를 위해 fundraising을 SIPS로 한 것을 난 참 뜻 깊게 보았었다. 나도 내 SIPS를 위해 fundraising을 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안났었다. 그러다가 내 차례가 와서, 처음에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플룻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곡 한 곡 녹음을 끝낼 때마다 더더욱 fundraising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 러던 중 내 듬직한 친구, Yanxi,가 중국 지진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같이 중국을 위해 fundraising을 하기로 했다. 원래는 Yanxi가 다니는 교회 집사님이 만드신 영화와 함께 내 앨범을 선물로 쓰려 고 했었는데, 그 집사님과 연락이 안되는 바람에 Yanxi가 영화를 만들게 되었고 그 결과는 더욱 좋게 나왔다. 또 앨범 사진들은 간단하게 cover만 하려던 것이 결국에는 삼일 동안 밤을 꼬박 새는 큰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처음 시작할 땐 교회에서만 후 원을 받으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학교, 가게와 식당에서도 후원을 받게 되었다.

 이 fundraising을 하면서 몸은 많이 바쁘고 힘들었지만 (한 때는 일주일 동안 내내 앨범만 만들었다.) 마음은 참 따뜻했다. 내가 English class에게 SIPS를 present한 날 많은 친구들이 와서 격려와 후원금을 내주었다. 며칠 후에는 두 선생님들께서 매일 여 러 classes에 가서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셨다. 교회들은 물론 가게들과 식당들도 기쁘게 도와주셨다. Yanxi 아버님께서 다니시는 회사도 흔쾌히 참여해주셨다.

 한 달 동안 fundraising을 한 결과 우리는 $2000이 넘는 금액을 기부받았다. Yanxi 아버님의 회사가 $1092, Red Peppers Restaurant가 $300, 그리고 우리의 앨범을 사신 분들을 통해 $700을 받았다. Yanxi 아버님의 회사와 Red Peppers는 다 Eastern Hills Wesleyn Chinese Church에 헌금을 해주셨다. CD판매를 통해 받 은 기부금은 $400은 우리 BKPC로, $300은 Eastern Hills Wesleyn Chinese Church로 헌금을 했다.

이번 중국 fundraising을 위해 기증뿐만 아니라 격려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지원

 

“BKPC의 한 소망, 묵상모임…”


그토록 고대하던 여름방학이 시작 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과에 지루할 것만 같았던 제 삶속에, 요즘 아침 묵상모임을 통해 한줄기의 빛과 같은 은혜와 기쁨으로 나날이 기대하면서 지내고 있답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어찌나 설레이고 기대되는지요.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의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장 1절 말씀-

 매일 아침 하나님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나와 함께 언제나 역사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내 안에 하나님이 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 영광을 볼 수 있도록 내 맘의 영을 확장시키사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임을, 묵상으로 제게 말씀해주십니다. 특별히 이번 수요일에는 나이아가라폭포 야외묵상모임을 계획했습니다. 그 전날 밤, 다들 피곤한데에도 불구하고 전혀 힘든 줄도 모르고 오로지 한마음, 한뜻으로 내일 아침엔 하나님께서 또 무슨 말씀으로 나에게 은혜주시고 채워주실까... 하는 기대로 김밥을 만들었습니다. 계속되는 장마와 추운 날씨로 인해, 아쉽게도 수요일 야외묵상모임은 나가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선 또 제 아쉬움을 아시고는 더 큰 은혜로 채워주셨습니다.

 요즘 고린도전서를 지나 고린도후서를 묵상하고 있는데, 특별히 고린도후서 7장 말씀 중 10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라는 말씀으로 저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모든 것… 이렇게 아침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난 모든 것을 가진 자인데, 그것을 잊은 채, 공중권세들을 잡으려고 늘 애쓰고 남을 질투하며 시기하고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께 이것도, 저것도 가지고 싶다고 떼쓰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가진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에게, 언제나 큰 은혜와 지혜를 채워주셔서 저를 축복의 통로로 열매맺게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또한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매맺기에 앞서 튼튼하지 못한 나무에게선 좋은 열매가 나올 수가 없듯, 비틀어지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그런 나무가 아닌 기쁨과 감사로 무장된 그런 튼튼한 나무가 되라고… 혼자서 계획하고 매일매일 하기엔 너무 힘든 묵상이었는데, 여러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묵상하고, 나눔으로써 은혜도 두배가 되고, 기쁨도 두배가 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날 그날 다른 말씀으로 은혜를 풍만케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오늘도 묵상모임 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내 딸아, 오늘도 네가 나와 함께하므로, 네가 너무나도 귀하고 귀하단다. 딸아, 네가 나의 가장 큰 기쁨이며, 자랑이다. 사랑한다 내 딸아” 라고 말씀하시며 꼬옥 껴안아 주시네요^^

 
이경진

 

수감과 파산 인고의 10년 세월 “성경과 새벽기도로 이겨냈다” -로버트 김, 눈물의 간증 -


미국서 국가기밀 문서를 유출한 혐의로 체포 돼 9년의 수감생활과 1년의 보호관찰을 겪어 야했던 로버트 김(67∙한국명 김채곤)씨가 눈물 의 간증을 했다.


그는 2월13일 CBS TV 프로그램 <이장호 누군가를 만나다>에 출연, 체포당시의 상황과 함께 성경말씀과 새벽기도로 이겨낸 인고의 10년 세월을 이야기했다.


1996년 군사기밀 유출혐의로 체포된 로버트 김은 당시의 사건이 아직도 이해되 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FBI가 체포했을 때 훈방이나 길어야 1∙2년 정도 수감될 수 있겠다는 각오는 했다. 그러나 9년에 이르는 교도소 생활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96년 9월24일 미국 해군정보국 군무원으로 근무할 당시 기밀문서를 유출시 켰다는 혐의를 받아 징역 9년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2005년 10월27일 형 집행정지로 자유의 몸이 됐다.


“체포 이후 우리 가족의 생활은 처참했으며, 결국 1년 만에 파산했습니다. 전업주 부였던 아내는 도자기 페인팅과 가게 점원, 청소부 일등 온갖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후 후원회가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어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한인감리교회 장로였던 김씨는 고난의 세월을 성경말씀과 기도로 견디어 냈다고 고백했다. 성경을 통독했으며, 기도와 함께 지인들이 보내준 신앙서적을 읽 으며 믿음을 키웠다고 털어놓았다. 또 새벽에 물을 끓이는 장소로 나가 홀로 묵상 하며 기도했다고 전했다. 그는“30년간 교회를 다녔지만 그때만큼 기도를 열심히 한 적이 없었다”면서 “나를 풀어 달라는 기도보다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교도소를 주말마다 찾아와 준 아내가 너무나 고마웠다 고 말하며 또 교도소로 면회 온 아버지를 추억할 때는 눈에 맺힌 눈물을 훔쳐내기 도 했다.


현재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는 한 남 은 삶을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 크리스챤 투데이

 

기도의 응답 -Korea Night을 마치고-


금요일 밤. 그날 오후부터 Korea Night을 위해 연습하고 준비하던 몇몇 사람들을 빼고는 텅 비어 있던 교회가 점점 사람들로 차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교인들의 차 를 다른 곳에 주차해야 하는 대이동이 있을 정도로 시끌벅적해졌다. 식탁에도 우리 교회에서 준비한 음식만이 아닌 개인적으로 정성을 들여 손수 만든 음식과 디저트 들이 가득 넘쳐났다. 오직 Korea Night라는 이유 하나로 아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 들이 다 같이 모여서 정답게 음식과 함께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뿌듯하 면서 감사했다.


드디어 Korea Night 시작. 콘서트를 보는 듯 사람들이 끝이 없이 본당을 채우는 데 오직 감사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일층에서 이층까지 그 긴 의자들이 가득 채워 졌다.마치 우리 식당에 걸려 있는 옛 예배사진처럼 말이다.이야말로 하나님의 아 름다운 선물이 아니었을까. 4년 전 BKPC에 처음으로 온 날을 기억해봤다.


Tabernacle이라는 큰 미국교회의 한국 그룹에 있다가 다른 몇 가정들과 함께 BKPC로 옮겨왔다. BKPC에서의 첫날. Tabernacle에서 온 가정들과 같이 앉았는데 도 정말 교회는 텅 비어있었다.정말 비어있었다.큰 교회 건물이 아까울정도로 비 어있었다.나는 그 날 울었었다.왜 이런 곳에 보내주셨냐고.


나에게 Tabernacle은 너무나도 소중한 곳이었다. 그 곳에는 마치 꿈만 같은 기회 들이 많이 있었다. 아주 큰 고등부는 물론, hip hop team, worship team, youth choir, youth 선교회 등등이 항상 나를 기다려줬다. 나는 지영이와 함께 고등부에 들어갔고 오디션을 통해서 hip hop team에 들어갔었다. 그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처음으로 수화와 율동을 통해서도 찬양을 드렸고 많은 미국 고등학생들과 같이 교제했었다. 그야말로 십대들의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곳 같았다.그런데 일년 후 이 빛나고 많은 것이 주어지는Tabernacle을 부모 님을 따라 어쩔 수 없이 떠나 텅빈 BKPC에 오니 어린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었다. BKPC에는 고등부는커녕 아이들을 위한 Sunday school도 없었다. 많은 클래스 룸 들은 오랫동안 쓸 일이 없어 단지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이 교회가 한때는 버팔로 에서 제일 큰 한인교회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몇 달 동안이나 엄마 아빠 에게 나만이라도 Tabernacle에 보내달라고 울면서 떼를 썼었다. 정말 희망이 없다 고 느꼈었다. 한국인이 별로 없는 이 버팔로에 어떻게 고등학생들이 오며 어떻게 다시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어떻게 다시 큰worship team을 볼 수 있을 지.... 하지만 하나님은 기적을 이루셨다. 그리고 Korea Night가 바로 그 기적의 증거이자 열매이었다.


Korea Night이 시작한다는 announcement를 Frank 장로님께서 하시자마자 그 크 고 한때 비었던 본당이 가득 찼다. Steve오빠가 잔잔한 기타연주로 예배 시작. 희 찬이 오빠가 대단한 실력으로 electric guitar을 통해 우리의 입을 벌리게 한 후 Philip과 준홍이의 베이스와 드럼으로 우리의 몸을 흔들게 해주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찬양을 하였다. 찬양이 마치 바다 파도소리 처럼 웅 장하게 들려왔다.주님이 말씀하셨다.이 날이 오기 위해 이곳에 보내신 거라고. Korea Night를 주님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즐기며 나는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기도 응답들을 깊게 느꼈었다.


우선 우리 찬양대.Tabernacle이 좋았던 이유중 하나 가 그 곳의 큰 찬양대였다.특히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Electric guitar, 드럼, 키보드, 베이스 등등이 함께 모여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었다. 그러나 이런 악기 연주자들이 다 모인다는 것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오늘, 우리 교회는 두 개나 되는 worship team들이 있지 않는가. 처음에 왔을 땐 몇몇 없 었던 고등부가 이제는 무럭무럭 커져서 이번 주에 중등부들과 함께 retreat을 갈 정 도로 크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이번 Korea Night에는 youth group이 다 함께 하여 짧은 skit과 body worship등을 했다. 다시는 교회에서 출 수 없을 것 같던 춤도 벌써 몇 번이나 동생들과 함께 “지지태”라는 이름으로 췄었다. 돌아보면 Tabernacle에 대 해 제일 부러워했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더 좋게 나에게 주셨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2:1‐2)”


하셨을 때 아브라함 은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다.그의 나이 칠십오 세였다.그렇 게 말씀을 따라 오니 가나안은 흉년이 심해 아브라함은 이집트로 잠시 피난을 갔다. 하 나님의 지시보다는 인간의 바램을 따라 이동한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를 잠시 이집트 왕에게 빼앗기는 고통을 받았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축복을 내리신다 했는데 도 떠난 아브라함을 보며 우리는 어리석다고 느낄 수 있다. 그는 어리석었다. 하지만 우리 또한 그보다 더 지혜롭지는 못하다. 나 또한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보낸 곳을 나 의 바램 때문에 떠나고 싶어했었다.다행히 나는 주님이 보내신“가나안”에 머물렀고 그로 인해“가나안”이 다시 풍족한 땅이 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처음 Tabernacle을 떠날 때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물었었다. 왜 나를 오 아시스에서 아무것도 놓여져 있지 않는 황야로 보내셨냐고. 마치 맛있고 달콤한 케 이크를 한 입 주고는 쓴 양파를 주신 것 같은 맘이었다.하지만 역시 하나님!“너 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 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11) 주님은 나 에게 양파가 아닌 케이크를 만들 준비물을 주셨다. 주님은 Tabernacle에서 이런 저 런 것을 보고 가르쳐 주신 후 BKPC로 보내주셨다. 주님은 Tabernacle에서 BKPC 를 위해 만들 케이크 레시피를 주셨었다.


혹시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도제목이 있나요?힘든 일이 있나요?걱정 마세요. 지금 힘든 이 순간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계시니까요.


✎김지원

 

나쁜 선생님이야 ! -아들의 입교식을 축하하며-


“엄마,오늘 학교에서 이상한 게임을 했어요.”


“뭐? .... 또 무슨 게임?”


“.....................”


“뭔데?... pc방 갔었니? "


“아니 선생님이......”


퇴근 후 바쁘게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6학년 아들이 잔뜩 화가 난 얼굴에 입술 까지 실룩거리며 다가왔다.그리고는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울음주머니를 터뜨렸다. “엄마아~” 이미 엄마보다 훌쩍 자라버린 녀석이 엄마를 끌어안고 울다니.... 대체 학교 수업 시간에 무슨 이상한 게임을 했기에 저 아이가 저렇게 놀라 있는지 나도 따라 내심 화가 났다. 아들은 자세히 이야기도 하지 않고 도덕 수업을 하셨던 그 선생님은 아 무튼‘나쁜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날 수업시간 주제는 ‘자기 삶에 있어 서 가장 소중한 것 찾기’였다 고 한다.선생님은 먼저 몇 몇 아이들에게 현재 자신 에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질문하셨고 아이들의 산만한 반응을 살핀 후 노트 를 열게 하셨다.그리고는 시간을5분 정도 정해 놓고 현재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10가지 정도 적어 보게 하셨다고 한다. 아들이 적은 10가지는 부모님, 누나, 하나님,친구,게임 아이템,게임 북,돈,자전거,거북이(집에서 키우고 있는 청거북 이), mp3. 정말 하나 같이 아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선생님의 지시는 그 소중한 것들을 배에 실고 가면서 파도를 만날 때 마다 하나씩 버리는 게임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제시하는 파도에 따라 아들도 아까운 것들을 하나씩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 초반전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파도타기를 하는 중 에 결국은 하나님과 부모님만 남아 있는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업시간에 하는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아들은 그 동안 자라오면서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던 문제를 만나게 된 것이다. 너무 곤란해 거기서 그만 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다그 침에 고민 고민하다 부모님 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을 버릴 수는 없었어요...... 엄마...’


당황한 아들은 너무 눈물이 나와 곁에 있는 여자 짝꿍이 보면 놀릴까봐 모자를눌러쓰고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짝꿍은 어디 아프냐며 계속 아들 에게 물었고 그렇게 그 날 수업은 자기에게 너무 최악의 수업이었다는 것이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따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 잘했어 재하야! 당연하지, 그럼......"


“하지만 그런 걸 아이들에게 시키다니... 너무 나쁜 선생님이야! 미리 숙제로 내 주시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선생님에 대해 화가 나 있는 아이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고 돌아서는데 눈 물이 나왔다.자기 친구들은 소중한10가지를 장난치며 부담 없는 것들만 적어 아 무렇지도 않았다는데, 이 녀석은 너무 메뉴를 잘못 골라 마음에 나름 큰 충격을 받 았던 것이다.평소에는 주일 학교도 종종 빠지며pc방에 앉아있던 녀석인데. 아빠에 게 끌려 나온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판단할 수 있었 다니. 그 날 도덕 시간은 뜻하지 않는 아들의 신앙고백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 주일에 아들의 입교식이 있었다.아빠 품안에 안겨서 목사님 앞에‘헌아식’ 을 했던 때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는 벌써 저렇게 자라 스스로 부족하나 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입교식을 하며 선서를 하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아직은 너무나 유약해 보이기만 한 어린 모양이 마음에 안쓰러 웠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아직은 아무런 개념도 없을 텐데...... 아들은 그렇게 손을 들고 선서를 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 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1:8)


포로가 되어 적국 바벨론에 왕의 전리품처럼 끌려온 다니엘과 세 친구들. 이들은 아직 어린 유다의 소년들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결코 세상의 어 떤 것으로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있었다. 그것은 용기가 되 어 무시무시한 적국 왕의 신하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선다.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 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처분 하소서” (단1:12~13)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물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때가 더 많음을 저 손을 들고 서 있는 아 들이 부디 깨달아 알 수 있기를 마음 조이며 바라보았다.순간,순간 무엇인가 행하 고 판단해야 할 때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그리 고 움켜쥐고 있던 부분을 포기하고 용기를 내어 행동했을 때 또 얼마나 큰 자유함 을 얻을 수 있는지도 경험해 갈 수 있으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용기 있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행동하는 이 유다의 소년들,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대하시는가.


“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 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단1:17)


하나님은 이 포로 된 소년들의 믿음의 용기와 기도에 결코 가만있지 않으시고 말 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으로 그들의 장래를 인도해 주심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 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 전체에서 가장 지혜롭고 총명한 자들로 세우시게 된다.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대적되는 이 세상 속에서‘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만만한 일이겠는가. 다니엘과 세 친구들 앞 에도 끊임없이 결단하여 용기를 내고,기도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단지 왕 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지게 되는 상 황까지.그리고 그 속에서도 결코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고 아니,그 모양도 흉내 내 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용기 있는 유다의 소년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때로는 이처럼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켜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선서를 하며 서 있던 아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러한 소년 시절의 믿음의 훈련과 단련은, 다니엘이 바벨론의 전국 총리가 되어 일하던 85세 노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계속된다.


포로로 잡혀온 사람이 인격 면에서나 윤리, 도덕면에서도 오히려 존경을 받으며 새 정권 아래에서도 계속 총리로 일할 수 있게 되자 그를 모함하는 자들은 그의 결 점을 찾고자 애를 쓴다.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자‘황제 숭배법’을 제정하게 왕 을 선동하고 30일 동안에는 왕 외에 아무 신에게도 경배를 하지 못하게 법으로 제 정하게 된다.그리고 그 법을 어긴 자는 누구든‘사자굴’에 던지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과거 소년시절부터 노인이 된 지금까지 늘 하나님 앞에 습관처럼 기도하기 를 즐겨하던 다니엘의 생활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또 다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믿음의 전투.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기간 동안 기도하는 것만 좀 자제하고 있으면, 아니 그 모습만 보이지 않으면 되니까 속으로 숨어서 기도해도 될 것을 노인 다니엘은 어떤 모습으로 또 이 상황 에 맞서는가.


“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 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상황이 어떠한지 이미 알면서도 평소 행하던 대로 열린 창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 는 노인 다니엘. 어찌 하나님께서 사자굴에 던져짐을 당하는 다니엘을 가만 보고 계셨겠는가.그의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게 허락하지 않으셨다.오히려 이방인 왕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강보에 쌓여‘헌아식’을 받으며 목사님 얼굴과 마이크를 만지작거 리던 그 여린 손이, 6학년 도덕 시간에,차마 하나님을 버릴 수 없어 부모님을 버렸다고 엉엉 울며 엄 마를 끌어안았던 손이, 하나님 앞에,목사님 앞에,여러 성도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고 선서를 하며 들어 올린 손이 되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너무나 불안정한 청소년의 때...... 쉽게 흔들리는 감정만큼이나 하루하루 아들의 결단과 용기도 쉽게 깨어지곤 하지만, 장래에 대한 꿈과 믿음도 흔들리겠지만 이제는 그 손을 높이 들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손이 되기를. 믿음의 선진 다니엘처럼 어려서부터 습관을 좇아 무릎 꿇어 기도하는 새벽이슬 같은 청년으로 자라가길. 때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청년으로 자라가길.


...... 부모 된 자들은 항상 자기도 차마 못하는 것들까지 자식에게서 꿈을 꾼다. 아 들의 입교식을 바라보며 나도 그렇게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아들을 향 한 나의 기도이다. ✎이현주

 

청년부 학생들에게


몇 주 전부터 우리교회 청년부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성가 대를 위해 봉사하는 학생이나, 앞장서지 않고도 더 열심히 뒤에서 봉사하는 학생들 을 보면서,참 하나님은 위대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물론 아직 신앙심이 덜 자라 서 의무감으로 오는 학생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것 또한 주님이 미리 예비하신 일 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반쯤 미친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무엇 이 죽도록 필요할 때,설령 그것이 사랑이라고 해도,우리는 그 무엇을 위해 목숨 걸고 뛰어가는 열정이 필요한 나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동무에게는 동 무가 되어주고, 길을 잃고 해매는 방랑자가 있다면 주님의 품 안으로 인도할 수 있 는 그런 젊은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봐야 합니다. 슬퍼보기도 하고 방황도 해보면 서 가능성을 테스트해보시기 바랍니다. 미친 듯이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되기를 원 합니다. 그래서 눈빛들이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참다운 공감대가 형성되는 자신들 의 모습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영어예배 첫 날 지원, 지영, 태윤이가 용감하게 춤추던 모습은 압권이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자신만만하게 자신들의 끼를 마음껏 누려서 우리로 하여금 행복감을 주었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여기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습니 다.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는 우리가 뭘 할 수 있도록 도전의 기회를 주고, 스스로 창조하기를 바라는 나라입니다.좋은 환경에서 안주하지 마시고,기회를 잡 기 바라면 큰 이상과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미국 대통령이 나온다면?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난 ... 아니다 가 아니고, 그래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새롭게 마음가짐을 가지시기 바랍 니다. 내가 한국에서 돌아와 보니 다들 너무 변해서 내 눈을 의심하게 하시고, 우 리 영욱이도 새롭게 변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힘든 상황이면 그것을 기회로 삼고 즐기기 바랍니다. 자신을 쪼그라들어 버리도록 방치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설령 그것이 아픈 사랑이라도,자신들이 사랑으로 인하여 이리저 리 헤매고 다니더라도 우리 가슴 속에 자리 잡을 추억으로 만들기 바랍니다. 주님 은 이런 우리들을 더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신령한 귀를 열어 주시며 진리의 말씀으 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삼십대에 해보지 못한 숱한 일들에 대해서말이죠.그때는 이쁘고 실질적인 삶만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스스로 만든 연극을 연출한 우스꽝스런 역할만을 고집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것이죠. 새로운 것에 대한 신비를 추구하고자 할 때 새로운 꿈도 가능하리라는 이 생각. 여러분도 지성적인 반항이요 내면적인 분노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절을 지키시기 바랍니 다.그렇다면 진지함과 의젓함,체통, 소유 등의 감정이 몰이성적인 멸시들로부터 넘어들어올 수 없는 방벽의 구실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곁에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많이 주셨건만 우리는 그것들을 낭비했고 아무것도 받지 못한 자처럼 살았습니다.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대상부터 우리가 사랑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이 젊은이들에게 희 망과 꿈을 주시어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카사노바가 플름의 감옥을 탈출하여 리바 쉬어보니의 대기를 들이마셨던 아침은 얼마나 아름다운 아침이었는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것처럼, 이 젊은이들에게 특별 한 사랑을 경험하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주님!고통의 늪에서 헤매는 젊은이를 구해 주시고,인간의 정신과 시간 사이에 는 주님만이 존재함을 깨우치게 하옵소서. 이 젊은이들이 새로운 일을 도전할 때마 다 함께 동행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젊은이들에게 주님과 함께 힘찬 응원 보냅니다.아자아자 파이팅!


✎이정희

Dear BKPC

나의 삶/나의 신앙 : 2008/02/11 19:42
 

Dear BKPC


2007년 3월 7일 저녁 버팔로에 도착했던 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살던 곳이 따뜻한 부산이라 날씨에 대해 상당히 긴장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세계에 온다 는 기대감도 더해져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 복잡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부산 동아대 병원 감염내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과 특성상 사람이 별로 없어 저 혼자 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기에 교원으로서 조그만 특권으로 주어지는 외국 장기 연 수를 가기가 어려웠고 그런 기회를 가지는 선배님들이나 동료들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저의 작은 소망을 들으시고 주님 께서 안식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막상 연수를 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좀 막막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 영어 문 제로 미국에 많이 가기에 저도 가보고 싶었지만 오라는 데가 없으니... 그러다가 연 락이 된 분이 김성민 장로님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김성민 장로님과의 인연은 참 특별합니다.처음 뵌 것이 제가 서울 삼성의료원에서fellowship 과정을 할 때 감염 내과 교수님으로 계셨을 때니 벌써 10년 전입니다. 제 고향이 벚꽃으로 유명한 진 해인데 마침 김성민 장로님도 진해가 고향이시라 동향 후배라고 저를 동생같이 돌 보아 주셨지요.그런데 이렇게 안식년으로 버팔로에서 다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영어도 못하는 부산 촌놈인 제가 김성민 장로님이 안 계셨으면 적응하는데 고생했 을 것입니다.주님께 감사할 따름이지요.장로님을 따라 나오게 된 BKPC에서 우리 가정을 가족이상으로 사랑해 주신 목사님, 장로님들, 교우들을 만나게 된 것도 큰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전형적인 Sunday Christian이었습 니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 큰 어려움 없는 삶을 살아서인지 어릴 때는 그냥 부모님 따라 교회를 다녔고 커서는 왠지 안 가면 뭔가 손해 볼 것 같은 막연한 심정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집사람을 만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집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무덤덤했습니다. 집사람이 저를 항상 목석 같다고 하지만 워낙 주변머리가 없고 사회성도 없어 사람을 잘 못 사귀고 혼자만의 세계에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저의 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주님을 만 나고 기쁨으로 뜨겁게 교회생활 하는 분들을 보고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과연 저들 이 느끼는 것이 무엇일까?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기쁘게 만드는 것일까?그래서 성 경도 읽어보고 했지만 도무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안 가면 안되니 스스로 가는 것이 아니고 매사에 끌려 다녔습니다. 집사람이 교회 반주를 하니 명색이 집사인데 봉사는 해야 되겠고, 그냥 폼도 나면서 오히려 묻혀 있으면 되니 편할 것 같아서 성가대에서 봉사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 연수를 가야될 때가 되니 뭔가 다른 영적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 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을 따라서 기도회에 나가기도 하고 믿음이 좋은 분들과 소그 룹 모임에도 나가 보았습니다.그래도 별 효과가 없었죠.그러다가 병원 신우회 선 배 교수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분이Christian인지 몰랐는데 연수를 다 녀오시고 하시는 말씀이 미국에서 주님을 만났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미국 에 가면 주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저로서 는 절박했던 소망을 품게 되었고... 드디어 이 버팔로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몸으로 체험하는 그런 뜨거운 만남은 전혀 아니 었지만, 주님께서 오히려 저에게 딱 맞춰서 저의 방식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 다. 할렐루야!


막상 주님을 만났다고 생각하니 기쁘고 감사하기는 한데 뭔가 허전했습니다. 주 님 목소리도 듣고 싶어졌습니다.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저는 성향이 뭔가에 일단 빠지면 몰입하는 스타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는 편인데, 대학 때는 body building에 미쳤었고, 그러다가 tennis에 빠지고 최근에 golf에 중독이 되었었습니다. 레슨도 받지 않고 혼자 스스로 스윙원리를 찾아보겠다 고 읽은 책이 수십 권입니다. 집 안에서 스윙연습을 하다 보니 천장에 구멍이 날 뻔도 하였고 아이들이 다칠 뻔한 적도 많습니다. 집사람 잔소리는 또 얼마나 심했 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멈추지 않았지요.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 꼈던 것 같습니다. 그 열정으로 성경을 읽었으면 수십 번도 더 읽었을 텐데 말입니 다. 신앙생활도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 면서 우리 김현진 목사님의 비유 설교에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번 졸기도 했지만 차츰 그 설교에 중독되어가는 저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다는 기억 이 나지는 않지만 지난 주 들었던 “씨앗”에 관한 비유 설교를 들으면서 제 속의 뭔 가가 깨지는 듯한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경험이 었습니다.


지난1년 동안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저에게는 완벽한 안식기간이었습니다.영 과 육으로 회복되는 체험을 한 것이 가장 크게 감사할 것이고 개인적으로 모자란 부 분들도 많이 채워졌음을 느낍니다. 가족들과도 그간 가지지 못했던 시간을 가지면서 가족애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이 모든 것이BKPC 사랑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진 심으로 고백합니다.


워낙 글재주가 없어 처음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이제 한국으로 가야 할 시간 이 다가오면서 모든 분들께 편지 형식으로 감사를 표현해 보려고 했었는데 쓰고 보 니 개인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보여주신 여러분들의 사랑에 표현할 감사의 말을 찾기가 정말 어렵네요. 월요일에 서경선 장로님 댁에서 김세훈 씨와 저희 가정의 송별 식사가 있었습니다. 식사 전 예배를 드리는 중에 목사님께 서 야곱에 관한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야곱이 비록 고난의 길을 떠나더라도 주 님께 함께 하셨다는 축복 말씀을 주실 때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저는 야곱처럼 여기가 저의 고향이고 한국으로 잠시 떠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제 가슴에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씨앗을 품고 이제 한국으로 갑니다. 김석연 장 로님의 열정적인 삶이 저에게 많은 도전의 씨앗 역할을 하였고 주님이 주신 비전을 실천해 가시는 많은 BKPC 교우들이 제 도전에 싹을 틔워주셨습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BKPC의 이야기를 달고 살 것 같네요. 여러분 모두의 삶에 하나님께서 놀 라운 축복으로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혁 드림

 

두 아들을 위한 기도


주님 저에게는 아주 귀한 두 아들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자란 이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공부하면서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성실한 청년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흡족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욕심이겠지요 이 욕심으로인해 아이들을 구속하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저 자신이 속물인 것 같아 싫기도 합니다 나를 내려놓고 아이들을 보아야 하는데 주여 제 심령부터 치유케 하소서 제 심령이 근심과 스트레스로 인해 쇠약해지고있습니다 아이들끼리 생활하기에 저가 어디에 있든 가시방석입니다 새벽기도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울었던 그 시간만큼 아이들을 믿음으로 키울 수 있도록 저의 상흔들을 제거해 주소서 주일 예배시간에 긴 유리창으로들어오던 햇살이 아이 머리 위에 비출 때의 그 따뜻함과 목사님의 말씀이 은혜로 다가옴은 아마도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욱이가 이렇게 교회 안에서 사랑받고 또 열심히 봉사하려는 그 아이 눈빛을 보면서 제가 미처 깨 닫지 못한 주님의 다양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주님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 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였습니다 주님의 눈을 응시하면서 저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하소서 이 아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제가 어리석고 부족한 부모라는 이 생각에 가슴이 아픕니다 이 나약한 어미는 기도와 회개로 저 자신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주님 영준이가 교회에 나오지 않아 제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방황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그 아이 마음에 성령 충만함으로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이 아이들이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의 권세와 주님의 다스림과 주님의 사랑 아래에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향하는 마음은 끝까지 변치 않는 마음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와 함께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낙심치 아니하고 주님만 의존하는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주님 보살펴 주소서 엄마라는 이유로 그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저를 내려놓게


주님 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 바른 모습 보여주소서 저로 하여금 주님의 거룩하심에 관한 이야기를 아들들에게 전하게 하소서 그래서 부정적이던 아이들이 주님의 신실함 앞에 회개하는 자녀되게 하소서


주님 이미 오래 전에 주님은 그 아이들을 위해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셨습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흩어 살지 않았다면 우린 주님을 외면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물질적 오만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이웃의 고통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베풀지 못했던 이 마음을 눈처럼 희고 고운 마음으로 변하게 해주신 주님 주님의 사랑이 저의 죄악을 가렸습니다 주님을 의지함으로 제가 영원에 이르는 길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고통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주님의 사랑을 알려주기 원합니다 축복으로 가득 찬 삶마저도 때로는 장애물에 직면하게 됨을 그들이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내 아이들도 바르지 못하고 게으르게 살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몸만 편하기를 원하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저의 가르침이 주님께 미치지 못함을 인정합니다 욕심으로 가득 찬 저의 언행을 고백합니다 버팔로에 있는 동안 봉사와 회개의 시간을 주소서 주님의 은총에 푹 잠기게 하소서 또한 아이들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되게 해주시어 주님을 사랑케 해주소서 이제 나 컴퓨터 앞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주님이 바라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녀되며 고통도 감내해낼 수 있는 성숙한 아이들로 자라게 하소서 이것도 욕심인지요


주님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이 아이들이 장래에 대한 희망찬 미래를 꿈꾸고 조국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주님의 바른 종 되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소서


이 나약한 어미의 소원을 외면하지 마시고 그 아이들을 바르고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주님 닮아가는 자녀되게 하소서 주님 행동으로 옮기게 하소서 무관심의 웅덩이에 빠져 안주하지 못하도록 하소서 끝까지 인내하며 노력하는 아이들이 되도록 주님께서 빛을 비추길 원합니다


주님 이 아이들을 말씀으로 성장케 해주시는 목사님과 장로님 많은 성도님들의 관심에 아이들이 바르게 살고자 했습니다 그분들의 사랑과 친절로 많은 심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들의 믿음을 크게 보시어 축복주시고 그분들을 위한 내기도가 마음으로 전달되게 해주소서


주님 이 글을 통해 아들들이 다시 한 번 주님의 사랑과 어미의 기대가 뭔지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단단히 뿌리 내린 신뢰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시는 주님 모든 것을 믿게 하시고 아이들도 가슴으로 이 어미를 사랑케 해주시는 신실함에 두 손 모아 감사기도 드립니다 아멘


✎ 이정희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 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주시네 위로 하시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어 항상 평화를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 보네

내 맘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 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제가 이 찬양을 좋아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 찬양에는 몇 몇 단어들이 계속 반복되는데요. "숨쉬는"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라는 단어가 그것인데요. 모르긴 몰라도 이 가사를 쓰신 분이 아마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것이 얼마나 매분 매초 일어나는 일인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얼마나 우리에게 매분 매초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쓰셔서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나 저에게 이 단어가 와 닿는 것은 아마 천식이 있는 2살짜리 아들 녀석 때문인 것 같습니다 . 많은 분들이 아이가 천식이어서 마음 졸여 보신 적이 있으셔서 아실 텐데요. 우리에겐  기도밖에 없잖아요. 그 순간 정말 부모가 느끼는 심정은 "helpless "라는 단어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거 같아요.


사실 지난주 목요일에 승표가 한밤중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응급실에 까지 가는 일이 있었답니다. 저녁까지 잘 먹고 잘 놀던 녀석이라 삼촌에게 잠시 맡기고 저는 도서관에 갔었더랍니다. 새벽에 돌아와서 아이가 잘 자나 확인하려고 한번 들여다보았는데 갑자기 숨을 잘 못 쉬고 입술도 파래지고 열까지 나는데 너무나 당황스럽고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주저앉아 울고 싶더라고요 . 남동생이 있기에 망정이지… 지미아빠도 없는데 걱정했던 이런 사태가 결국은 벌어지고 나니까 정말 한밤중에 기가 차더라고요 . 승표가 앓고 있는 이 천식이라는 녀석은  이렇게 갑자기 심해져서 (심지어 이유도 잘 모른 채..) 사람 간을 철렁 내려앉게 하네요. 아무튼, 정신을 가다듬고 한밤중에 이리 저리 전화하고, 지미는 새벽 세시에 옆집 지원이네에 전화해서 맡겨 두고 (그날 제가 여러 사람 한밤중에 깨웠습니다. 김성민 장로님 김귀선 자매님 죄송합니다. -.-) 둘이서 응급실로 차를 달려갔어요.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의사가 가르쳐 준 대로 처치를 해서 도착할 즈음엔 거의 급한 건 어떻게 지나간 거 같더군요. 의사선생님께 응급조치를 잘 했다고 칭찬 받았죠 . 이젠 좀 괜찮은 것 같으니까 상태를 더 지켜보자는 말이 떨어지니까 그때서야 긴장이 풀리는 데 다리에 힘이 다 빠져 나가는 기분이었지요. 나중에는 승표 침대에서 같이 코골면서 잤다는 … ^^


그렇게 정신없이 그날 밤을 응급실에서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뛰어 노는 승표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죠. 이른 아침을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근처 식당에서 먹으면서 제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제 동생에게 물었죠.


"너 어제 밤에  승표 침대에 눕히면서 기도해 줬어 안했어?"

"승표 잠자는 순간순간에도 숨 쉬는 순간순간에도 함께 해 주세요 했어 안했어?"

했더니..

제 동생 왈.."앗! 깜빡했다.   그거 말고 딴 거는 다 기도했는데.. 앗 .. 그걸 빼먹었네.. 이런.."  ^^  그러면서 한참 둘이서 웃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아주 소소한 작은 것까지 모두 아뢰고 기도하고, 또 지켜주시길 기도해요. 승표는 아주 아주 쌩쌩하구요 아침 저녁으로 천식 치료용 산소마스크 비스무리한 거 (네뷸라이저 라고 하는..) 하는 것 때문에 좀 짜증내 하지만 그것 빼고는 아주 잘 지낸답니다.  뭐 계속 조심하고 .. 기도하고 ..그래야죠.


물론 지미도 그렇지만… 정말 승표는 기도로 키워야 할 아이인 거 같아요 . 지미는 가끔 학교에서 시험 치면 하나 둘 틀려 올 때도 있어서 어떨 때는 그걸 갖고 '좀 더 집중해서 해야지 . 실수 하지 말아야지' 뭐 그런 잔소리도 하는데..  제가 상상컨대, 승표는 아마 "아이고 됐다.. 공부고 뭐고.. 아서라 .. 숨만 잘 쉬어라. 분당 20-30회(소아기준) 내외로 숨만 잘 쉬면 된다." 가 될 거 같아요. ^^  그리하야, 저의 18번 찬양이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가 되었답니다.


여러분이 만약 건강한 성인이시라면 분당 12 ∼ 20회 호흡을 하셔야 합니다. (확인해 보시고 이상이 있으신 분은 일단 김성민 장로님께 한번 무료 진료를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게 호흡을 주셔서.. 우리 승표에게 호흡을 주셔서..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 150편 6절) " 라고 말씀하시나 봅니다. 찬양은 호흡이 있는 자의 의무라고.. 말입니다. 이 찬양의 다른 모든 가사들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 "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 "흘러가는 순간순간 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 이 가사들을 생각하며 찬양하며 저는 힘을 낸답니다. 여러분의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여러분의 숨쉬는 호흡의 매분 매초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 전보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