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글은 「미국장로교회 한인은퇴목사 및 사모회」 회보(2008년 12월 15일자)에 실린 김득렬 목사님의 글입니다. 김득렬 목사님은 지난 1999년 1월부터 10월 초까지 본교회의 임시목사로 사역해 주신 분으로서 본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모든 과정을 극복해 나가는 데에 크게 수고를 감당해 주셨던 분입니다.-편집부
목사의 교역영역(敎役領域)은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는 인생의 전 역정(歷程)이요, 전인목회(全人牧會)는 개인의 생로병사(生老炳死)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이를 행함이 목자적교역(牧者的敎役)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무덤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 봄, 내가 시무하던 교회의 교우들 중에 교회 묘지에 관한 관심이 증가되었다. 이민생활의 연륜이 더해감에 따라 묘지를 찾는 빈도 또한 잦아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 성도들의 그 영혼들은 이미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맞아주시는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나아가지만, 그 유해는 이국(異國)의 묘지 한 모퉁이일지라도 같은 믿음의 공동체였던 교우들이 함께 모여 부활의 나팔소리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묘소들을 조성하여 회중생활의 연장처럼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와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교회에서는 봉사위원회(위원장:김우석 장로)로 하여금 묘지공동구입을 원하는 교우들로부터 신청금을 받게 하였다. 50명의 성도들이 우선 신청하였으므로 김우석 장로는 그 신청금을 가지고 교우들이 자주 가는 ‘오클랜드힐’(Oakland Hill) 묘지 사무소를 찾아갔다. 비록 좌청룡 우백호는 아니더라도 한인들이 선호하는 약간 구릉지고 토양이 건조한 묘지 50기(基)들이 집합되어 있는 한 구역을 본 후 도매가격으로 일괄 구입하였다.
묘지구입 절차를 마친 김우석 장로는 묘지사무소 책임자에게 농담겸 진담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관행으로는 이만한 거래가 이루어지면 덤으로 한 두 개쯤을 더 주는 법인데 이 회사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까?” 그 말을 들은 담당자는 “무슨 뜻인지요?” 하며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장로는 “다름 아니라 김 목사님 내외도 언젠가는 묘지를 필요로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그 말을 들은 그는 잠시 후 “그러시다면 저희가 묘지 둘을 1불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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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님 내외분께 드리겠습니다.”하고 묘지분양증서를 써 주어서 이렇게 받아 왔으니 나더러 받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뜻밖의 제의에 “그걸 제가 어떻게 받습니까” 하고 사양하였으나 선물로 받아 온 것이니 받아 두라고 강권하심으로 감사히 받아두기로 하였다.
얼마 후 김우석 장로는 묘지구입을 신청한 교우들에게 각자가 원하는 묘지 위치를 선정하라고 광고한 후 52기의 묘지 배치도를 바둑판같이 그려가지고 먼저 나에게 와서 원하는 자리를 선정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야 거저 받았으니 대금을 지불하고 구입하신 교우들께서 먼저 다 고르고 나신 후, 남은 것을 저희 내외가 쓰면 됩니다. 그러니 어서 교우들에게 가서 먼저 고르시게 하세요”하였다. 그래도 김장로님은 교우들이 모두 “목사님 내외가 먼저 정한 후에 자기들이 정하겠다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선정하세요.” 하며 그 묘지 배치도를 내 앞에 제시하고 독촉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어서 “정 그러시다면 저희 두 사람의 자리는 묘지 중앙 한복판에 정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김장로님은 묘지배치도 중앙 한복판에 표식 둘을 하신 후 교우들에게 가지고 나가셨다.
그 후 들은 말로는 김장로님께서 묘지 배치도를 가지고 교우들에게 가서 목사 내외의 자리를 보여 주며 교우들이 원하는 자리들을 택하라고 하였더니, 서로들 “목사 내외와 가까운 자리에 있겠다”고 하였단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어서도 교우들의 목사로서 가까이 있어 달라는 간절한 사랑의 염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사회와 어느 단체에서 생과 사를 초월하여 한결같은 사랑을 이렇게 서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그 깊은 사랑에 감격되며, 깊은 감회에 잠겨 목사 직분의 고귀함을 새롭게 음미하고 과연 성직(聖膱)이라고 부를만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성도들이 기대하는 목사(Poimen:목자)의 사명은 생과 사를 초월하여 저들의 변함없는 선한 목자가 되어 성도들로 하여금 무덤 속에서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나의 목자(목사)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고 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랑과 신뢰의 목자적 관계를 실현해가는 것이라고 확신되었다.
그때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성도의 장례 행렬을 따라, “오크랜드 힐”에 갔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성도들이 그 자리를 떠나 돌아가기 시작하였을 때, 나는 앞서간 성도들을 찾아보고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묘비들을 보며, 생시의 얼굴들을 회상하고 함께 하였던 일들을 회고하는 묘지심방을 하고 있었다.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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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한 성도가 가까이 와서 “목사님 자리는 어디에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윤계순 성도였다. 그래서 나는 “왜 물으세요?” 라고 반문하였더니 “저는 목사님의 다음 다음 자리예요”라고 하지 않는가!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이 어른이 언젠가는 나의 다음 다음 자리에서 부활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날을 함께 기다릴 분이로구나!!” 하는 감회와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글쎄요 저희 내외의 자리는 우리교회 성도들의 묘지의 중앙 한복판이라고 하였는데요, 그 자리가 어디쯤인지 저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나와 아내의 자리를 알게 되는 날이 왔다. 나와 내 아내는 동갑내기로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사랑의 섭리로 1944년 3월 23일 황해도 사리원 서부교회, 김현정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예식을 올렸다. 우리는 63년 반 동안 해로하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그들의 슬하에서 자라나는 9명의 손자 손녀들과 1명의 증손자의 늠름히 자라감을 감사와 감격으로 지켜보며 주의 일에 힘써 오면서 많은 분들이 누리기 힘들다고 하는 회혼(回婚)도 누렸다.
그런데 1997년 2월 2일 주일 오후에 집사람과 나는 병원에 입원하여 중한 수술을 받으신 강원기 선생을 심방하고자, “오크욷”(Oakwood)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그곳 차 안에서 집사람에게 중풍 증세가 나타났다. 그래도 우리는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적시에 하여야 하는 응급조치를 못하고, 병원에 도착하여, 병실에 올라가서 강원기 선생을 심방한 후, 집으로 돌아오고만 것이다! 그때 거기서 그 병원의 응급실로 직행하여 응급조치를 취하기만 하였더라면, 집사람은 완치 회복되었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 나의 무지와 실수는 결코 용서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사람은 좌측 팔과 다리가 약간 약한 중풍환자가 되어 보행과 활동이 제약된 생활을 10년 반 동안이나 하여오고 있었다.
2007년 9월 9일 주일 오후 1시 35분, 아내는 갑자기 혈당이 떨어짐으로써 발생된 골절로 입원하여 있던 “윌리엄 버먼”(Wm.baumont) 병원에서 일종의 의료사고로 인해, 그의 영혼은 내 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때 그이 나이는 80세 반이었다. 그는 실로 나의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다. 38선을 넘고, 6.25전쟁을 겪고, 교수가 되고, 목회를 하는 나의 전 생애는 항상 그와 더불어 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결혼식은 함께 하지만 장례식은 따로 한다는 말이 내게도 사실이 되었다.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오전 10시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 교회장으로,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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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장례예배를 드린 후, 나의 아내의 긴 장례 행렬은 “오크랜드힐” 성도들의 묘지로 향하게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에, 미풍은 신선하였다. 양지 바른 언덕 중앙 한복판에는 나의 아내의 관을 위해 새로 판 무덤이 기다리고 있었다. 땅은 마르고 흙은 보드라왔다. 바로 그 옆자리는 장차 내가 묻힐 자리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생과 사를 초월하여 이어가는 우리 내외와 디트로이트 한인연한장로교회 성도들의 ‘목자적 교역관계’는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5-3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날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장 51-56절)
✎김득렬 목사(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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