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Fantasy Island
-KOSTA를 다녀와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주제로 4박 5일 동안 시카고에 있는 휘튼칼리지에서 열린 이번 코스타는 어린 아이들 300여명을 포함한 1600명의 참석자가 함께 한 말씀과 예배, 기도와 비전의 축제였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Not to be conformed but to be transformed)'라는 주제 아래, 여러 강사 목사님께서 전해 주신 말씀은 우리는 세상의 영향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의 본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물질주의, 성공주의, 쾌락주의 안에 살아가는 우리들. 나의 삶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세상의 영향 안에 있으며,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고 있는가를 느끼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세상을 등지고 교회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하며 만족하는 믿음생활을 돌아보고, 진정한 신앙생활은 교회가 아니라 이 세상이며, 그 속에서 본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말씀이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가 너무 많지만, 가장 큰 은혜는 저의 진로의 관한 비전을 밝히 보게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Kosta 첫째날에 참석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라는 토론식 세미나에서 한 20여명쯤 되는 Nurse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이 분야가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입은 분야인지 그리고 어떤 비전과 소명의식으로 이 길을 가야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합니다. 아프고, 연약하고, 외로운 자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김으로, 그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향기를 맡고 하나님을 보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라고 합니다.  어느 한 분이 간호사로서 자신이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는 마더 테레사가 남겼던 말을 나눴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나는 몸짓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제가 Nurse가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 감격으로 심장이 뛰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몸짓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더욱더 감사한 것은, 직업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고, 이를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픈 이에게 치료자 되시고, 외로운 이들에게 위로자 되시고,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영원한 평안과 안식이 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담은 우리들이었습니다.

 넷째 날, 북한을 위한 중보기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맑은 눈빛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굶주리고, 아픈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살려달라고, 그들을 도와달라고,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인 복음이 전파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멈추지 않고 흐르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면서 했던 그들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 저를 사용해 달라고 하는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 주님 약하고, 힘든 자들에게 힘이 되시는 주님.. 이 쓰리고 아픈 마음, 주님의 마음이신거죠? 제가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길 원합니다. 주님 사용하여 주옵소서... " 그렇게 기도 가운데 이런 찬양이 흘러 나왔습니다. 이 찬양을 따라 부르며, 눈물로써 주님께 저의 마음을 드렸습니다.

" 하나님 눈길 머무신곳, 그 곳에 내 눈 머물고

 하나님 손길 닿으신곳, 그 곳에 내 손 닿으리

 하나님 마음 두신 그 곳, 그 곳에 내 맘도 두고

 하나님 계획하신 그곳, 그 곳에 내 삶드리리

 나 경배합니다. 주님- 주님만 닮게 하소서

 나 예배합니다. 주님 - 주님만 좇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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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윌로우 크릭 교회 앞에서

마지막 날 금요일 저녁, 선교 헌신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최소 2년 이상, 선교사로서 헌신할 것을 결단하고 나아가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그런 소망은 있었습니다. 일년 중 1달 정도 휴가를 내서 꼭 해외 단기 선교를 갈 것 이라고....  하지만 최소 2년 이상이라는 말씀에 순간 주춤했습니다. 2년? 생각보다 너무 긴 것 같은데.. 괜히 지킬 수 없는 결단을 하는 건 아닌지.. 라는 생각에 주저하고 있을 쯤에.. 제가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능력으론 꿈도 꿔보지 못할 유학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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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
를 마치고 시카고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서 이렇게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그것도 부족해 청년부 회장으로 세워주셔서 영광과 부흥의 현장에 동참케 하여 주시고, 지금 시카고에서 미국 유학생을 위한 컨퍼러스에 와 있는 저..   어느 것 하나 내 생각으로 내 힘으로 된 것은 없었습니다. 나의 헌신의 마음.. 그것으로 하나님껜 족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교를 하는 것이고, 내 계획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순간, 하나님께선 선교를 향한 나의 계획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결단의 마음을 원하시는 거라는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중에 뒤에 계셨던 정민 간사님..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참히야~ 네가 가장 늦게 일어나던데, 무슨 생각을 그리 했냐? "  간사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어찌나 몸이 떨리던지요.. 그저 감사와 감격으로 덮인 시간이었습니다.)

"주님.. 제가 감히 이렇게 일어났습니다.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저의 모든 것 받아주시고, 저를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


헌신의 시간이 끝나고, 앞으로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위해, 우리를 따로 앞으로 불렀습니다. 맨 앞 줄에 서있었던 지라, 조금 앞서 가고 있는데 뒤에서 " 이참! " 하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지은자매였습니다. 그리고 뒤에 따라오던 허연 얼굴의 종휘형제를 발견하고, 그 뒤에 조용히 엄숙한 표정으로 걸어오던 중훈형제를 보며 다시 한번 울컥 했습니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매인바 되고 싶어하고, 자기의 모든 것으로 영광돌리기 원하는 자들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저 감사했습니다. 그저 놀라왔습니다. 이렇게 우리 BKPC청년부 리더들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헌신의 결단을 하게 해주신 주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나중에 인디에나 팀들에게 들은 바로는.. 초롱자매와 근재형제도 헌신의 결단을 했다고 합니다. 코스타에 간 리더들 한 명도 빠짐없이 결단케 하신 주님... ) 그리고, 한 형제는 그 시간이 헌신의 시간인지 모르고, 그저 찬양에 감격해 서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가 서 있었던 것이 헌신의  Calling이었더라고 합니다. 순간 조금 놀랬지만, 이것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으로 믿고, 순종과 결단으로 앞으로 나아왔다고 합니다.


떠나기 전에 Kosta를 통해 만날 하나님을 기대하며, 부어주실 은혜가 무얼까 궁금했습니다. 수련회를 떠나기 한 주 전에 청년들이 Fantasy Island에 놀라갔었는데,  Six Flag에 비해 뒤집어질 만큼 무서운 놀이기구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신나는 놀이기구를 타고, 조그마한 water park에서 물놀이도 하고, 잔잔한 호수에선 몇 명씩 함께 보트도 탔던.... 여유로우면서고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맘의 쉼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이번 수련회는 Six Flag처럼 뒤집어지는 역사가 있는 뜨거웠던 수련회라기보다는, Fantasy Island처럼 잔잔한 은혜들 가운데, 영혼의 휴식을 얻고 온 수련회였던 것 같습니다. 말씀의 water park에서 맘 물장구 치고, 놀이기구를 타고 찬양을 통해 공중을 날며 맘껏 외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호수 위에서 보트를 타듯, 조모임을 통해 평안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던 정말 fantastic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한 목사님의 메세지처럼.. Kosta시간 동안 찬양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정말 즐겁게 놀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의 헌신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의 현장은 이 세상이라는 말을 마음으로 깨달았습니다. Kosta를 마치고, 휘튼 칼리지를 나오며 기도했습니다.

" 주님.. 우리의 영이 다시 새로운 생명력으로 채움 받고, 세상으로 다시 나아갑니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심기워신 씨앗입니다. 우리 안에 채움받은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  ✎이참히

 딸의 졸업식에 다녀와서



지난 주말에 딸아이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고자 시카고를 다녀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와는 달리 둘째 아이까지 집을 떠나 대학에 가고 보니 네 식구가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함께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즐겁고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날씨가 좋았고 고풍스러운 시카고 대학의 캠퍼스에 졸업을 하는 젊은이들의 희망과 기쁨에 찬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더욱이 그 중에 내 딸아이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터져 나왔다. 모두들 자기 자식의 이름이 불리워지며 졸업장을 받는 순간 그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모들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좀 더 나은 자리로 움직이고 눈이 빠져라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환호를 하며 축하하고 기뻐했다. 그 많은 졸업생 가운데 마치 자기 자식만 있는 것처럼.


따가운 햇볕 아래서 그 긴 시간의 졸업식을 보며 참으로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이란 무엇인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인종을 초월하여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저울에 단다면 한 치의 차이도 없을 것 같다. 이기적이고 속 좁은 우리들 속에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은 순수하다는 것이 새삼 하나님의 은혜로 느껴졌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속에 자식에 대해서만큼은 무조건 줄 수 있는 사랑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같은 부족한 사람들이 어찌 그 긴 이십여 년을 한결같이 사랑하며 키울 수 있을까.


축복하시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 자녀 된 우리를 보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겠냐고 하신 하나님, 독생자를 주셨는데 무엇을 아끼시겠냐는 하나님 말씀이 자식을 키우면서 깨달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하던 일을 이제는 아이들이 했다. 호텔이랑 레스토랑 예약이며 지도를 보며 여기 저기 안내도 해주고 오히려 엄마 아빠를 챙기는 것을 보며 정말 아이들이 많이 컸구나 생각하니 부모로서 해야 할 일 중에 반은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자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늘 바쁘고 부족한 부모를 따라주고 사랑해준 아이들에게도 고마웠다. 아이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고자 애쓰고 소원했지만 아이들을 떠나보내면서 미처 가르치지 못하고 부모로서 본이 되어주지 못한 것에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 많았다. 집을 떠나 어떻게 믿음을 지키고 있는지 늘 궁금하고 혹시 하나님을 잊지나 않았나 걱정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부족하고 연약한 믿음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딸아이 말이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는 것이 낯설고 부담스럽단다. 세상에 나가는 스물 한 살의 어린 딸에게 부모인 나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신실한 일꾼으로 어딜 가나 자기 몫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지난 주말 다녀온 짧은 여행은 더없이 감사하고 축복된 시간이었다. 비싼 등록금이 끝난 것도 좋았고 시카고에서 유명하다는 스테이크집의 음식도 좋았고 사이언스 뮤지엄도 재미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이런 저런 생각과 나른한 피곤함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버팔로는 더없이 푸근해 보였고 며칠 계속되는 외식 끝에 먹는 집의 밋밋한 된장찌개는 더더욱 좋았다. 

✎ 고미경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저는 한국에서 잠시 아이들이 생활하는 이곳 버팔로에 와서 버팔로한인교회에 오게 된 것을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새벽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믿음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멀리있는 저로서는 기도밖에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가 바라는대로 되지 않을 때 느끼는 허탈감이나 실망이, 온전히 주님께 맡기지 않고 내 방식대로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요? 주님의 자녀이며 종입니다. 입으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자녀는 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곳 버팔로에 와서는 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을 설득하고 반강제로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미리 예비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전에서 작은 가게를 경영하고 있는데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가장 먼저 주님께 고합니다. 손님과의 분쟁이나, 직원들과의 갈등을 겪을 때마다 내 편에서 위로해주시고 기도로 무장케 해주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저의 허물을 용서해주시고, 제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수요 저녁예배를 마치고 우리 아이들이 교회 마당에 서있을 때는 은혜가 넘쳤습니다. 다들 친절이 우리를 받아주시고, 특별히 기도모임이 주는 편안함이 기도제목마다 우리의 아프게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그늘 밑으로 쉼을 얻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기도하고 핍박받는 북한이나, 중동의 전쟁터의 젊은이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성도의 모습은 천사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기쁨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를 수요예배를 통해서 깨달아 알게해 주시는 우리의 주님입니다.

주님!

연약한 우리 아이들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이 아이들이 세상적인 일에 매여 종노릇하지 않고 의로운 일을 위해 주께 매달리는 믿음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조국과 인류를 위하여 봉사하는 자녀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옵소서. 이웃을 사랑케 하시고, 남을 미워하지 않는, 주님 닮아가는 선한 종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은혜의 마당에 다시 서는 영광을 주님께서 허락하시기를 원하옵고,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우리에게 큰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또한 김현진 목사님께도 특별히 감사 드립니다. 환한 웃음으로 대해주시는 그 마음처럼 새 영의 말씀이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버팔로 한인교회 교인가정에도 은혜와 축복이 가득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이정희

 

모든 벽을 허무시는 주님



2007년 5월 27일, 평소때처럼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저에게 홍정민 간사님께서 부탁을 하셨습니다. 저녁 6시 30분부터 트리니티 교회에서 있을 ISI 집회의 찬양을 위해 베이스 기타를 연주해 달라는, 쉽게 들리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고민이 되는 부탁이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모국어인 한글도 아닌 영어로 찬양집회를 한다니 싫기보다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나의 작은 도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도 잠시, ‘그 낯선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찬양을 할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끊임없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또 내 마음을 아셨는지, 평소라면 남의 장례식에 가야된다 라고까지 하면서 거짓 핑계를 댈 저의 입에서 "물론이죠 간사님! 찬양집회 도와 드릴게요" 라는 말을 하게 하셨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ISI 가 무슨 약자인지도 모르고, 또 그때는 무슨 정신으로 OK 라는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앞으로 있을 짧지만 강렬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 감동과 기쁨으로 수없이 저를 ‘울컥!’ 하게 하였던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찬양집회 연습을 마치고 트리니티 교회에 약간 일찍 도착한 찬양팀과 저는 집회에 앞서서 악기 세팅을 하였고, 집회 준비를 하면서 미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인도인, 아프리카인 등등 많은 곳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을 보자 다시 조금씩 긴장이 되긴 하였지만 집회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곳에 비록 제가 처음 왔고, 또 처음 보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 앞에서 비록 힘들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며 찬양 드리기 원하오니 우리 서로를 막고 있는 언어의 장벽과 고정관념을 허물어 주시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귀중한 시간 갖게 해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드디어 찬양이 시작되자 예배당 안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 되어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기 시작하였고 완벽하진 않지만 주님께 나아가려는 모습을 본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 버팔로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에 처음  다니기 시작한 전지원 형제의 동생 전민구 형제가 두 손을 번쩍 들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참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는 민구형제에게 성령님이 임하심을 보며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큰 감동 속에 마친 찬양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큰 박수와 환호로 보답을 해주었고, 은혜를 많이 받은 저 또한 뿌듯한 마음으로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찬양을 다 마쳤으니 집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이왕 교회까지 온 것, 비록 영어일지라도 목사님의 말씀 한번 듣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찬양팀 모든 멤버들은 자리에 앉아 모두 말씀을 경청하게 되었습니다. 딸리는 영어실력으로 많이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놀라움과 그 세밀함은 어떤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으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일어난 것이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또 다시 마구마구 울컥! 하였습니다.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과학’ 이라는 이름으로, 한없이 좁고 부족한 인간의 지식으로 ‘진실’ 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하던 저에게 있어서 목사님의 말씀은 크나큰 힘이 되었고, 이로 인해 제 믿음이 더욱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큰 은혜 속에 목사님의 말씀이 끝나고, 이젠 집에도 갈겸 너무나 굶주려 있던 배를 좀 채우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니 이게 왠걸! 글쎄 장기자랑 시간을 갖는다고 하니 여간 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큰 은혜가 되었기로서니 이제 본 지 몇 시간도 채 안된 사람들이 앞에 나가서 장기자랑을 하다니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기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시간 가까이 된 장기자랑은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음정무시만으로는 모자라 박자까지 무시해 버리는 한 아프리카에서 온 자매의 찬양을 들으면서 웃음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려는 그 아름다운 마음이 더욱더 빛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작사 작곡까지 마다하지 않은 한 목회자의 어린 아들 역시 너무나 귀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역시 토론토에서 이 집회에 참석한 한국 형제자매들의 축복송을 통해 다시 한 번 강하게 울컥! 하였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아주 유명한 축복송을 그들이 부르기 시작하자, 자리에 앉아있던 저희 버팔로 한인장로교회 찬양팀 역시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 교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두 팔을 벌리고 그들을 위해 축복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아름다운 찬양을 그 교회에 참석한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들었을 리는 없었겠지만 어째서 제 눈에 비친 그 사람들의 모습에는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동을 받아 우는 모습들이 보였을까요? 어째서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축복하기 위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저희에게 벌리고 눈물을 흘리며 축복하시던 미국분이 계셨을까요?

하나님은 2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트리니티 교회의 ISI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 안에 임재하시며 우리 모두를 축복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언어의 장벽과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 너무나 다른 정서와 사상들을 모두 허무시고 얼굴색과 생김새가 너무나 다른 저희들을 하나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그곳에서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고, 이 일을 계기로 하여 내가 받은 하나님의 너무나도 큰 사랑을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쓰이도록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큰 사랑을 우리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버팔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그들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최정원

어머니-
한국에선 Mother’s day가 없어서 조금은 생소하지만
미국은 오늘이 Mother’s day라고 하네요.
그래서 어머니 생각이 나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작년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생각하기도 싫은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남의 일처럼 생각되어졌던..
빛이자 저희 가족의 전부였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타지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아직도 한국에 가면
아버지가 웃으면서 반겨주실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 질 거란 세상 사람들의 얘기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말인 거 같습니다.
우리 가족은 태연한 척 애써 겉으론 웃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가 더욱더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가장 힘든 사람은 어머니겠죠.
하지만 어머니, 우리 조금만 지나면 다 천국에서 만날 거니깐,
그러니 아버지 만나기 전까지 정말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요.
가족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셨던 아버지도 그러길 바라실 거라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항상 아껴주시고 너무나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어머니,
이젠 제가 어머니의 아버지이자 남편이 되겠습니다.
힘들 때 의지가 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어머닌 그저 건강히, 오래오래 제 옆에만 계셔주세요.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2007년 어머니날에 아들 동욱 올림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엄마 ♡  엄마 닮은 딸이야.

요즘은 캐나다가 지낼만 하신가? 늘 들어보면 거기랑 여기랑 날씨가 비슷하던데.
여긴 이제 막 여름의 초입이에요. 거기도 꽃 피고 해 나고, 그러겠다. 흐흐.... 난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참 좋아. 내가 이래저래 변변치 못한 건 아는데.... 그것 때문에 늘 너무 미안해요. 나 때문에 너무 맘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걱정을 안 끼쳐드리고 싶어도 자꾸만 사고치고. 것도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으로.

늘 미안해요.... 근데도 변함 없이 사랑해줘서 늘 감사해요.
난 하나님의 사랑을 엄마를 통해서 처음 알았어.
못견딜만큼 바보 같은 딸이어도 항상 인내해줘서 고마워요. 이제 막 나이는 성인이 됐지만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단 생각을 해요.
최근 들어 부쩍. 엄마는 농담처럼 내가 너무 어려서부터 엄마랑 떨어져서 지내서 심적으로 불안정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ㅋㅋㅋㅋ 정말일지도 몰라.
비록 5년 가까이 떨어져서 살았지만.... 엄마의 염려와 기도로 이만큼 컸답니다. 만날 혼자 자란 척 해도 그건 진심이 아녜요 ㅋㅋㅋㅋ
자식을 키운다는 건, 매일 밥을 해먹이고 저녁에 집에 오면 인사하고.... 그런 것보다 절대 이상으로, 내 마음을 깎는 일인건가 하고.... 엄마를 보면서 생각해요.
여태 엄마 마음 파먹고 자랐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 같지만 엄마. 난 엄마가, 내가 공부를 잘 하거나 예쁘거나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이 건강한 나를 좋아하는 걸 알아서 너무 기뻐.
나중에 나에게도 아이가 생기면, 꼭 엄마가 해준 만큼 해주고 싶어요. 내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제 할머니였으면 좋겠어. 엄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내가 세상에 있는 것에 마음을 묶어둘 수 있는 걸 한 가지만 고르라면, 주저 없이 엄마를 꼽을 거야.
그치만 우리 둘 다, 실은 세상 것엔 아무 것도 매이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ㅋㅋㅋㅋ 생각으로만 그렇게 해요. 소망은 늘 높은 곳에 두자.
엄마 사랑해요, 사랑이란 말로도 모자라요. 보고 싶을 때 맘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늘 건강하세요, 몸도 마음도.

엄마 닮은 딸 다예 드림.
 

하나님, 저희에게 보석같이 귀한 자녀 주심을 감사합니다.

당신의 예정 가운데 고이고이 품고 계시다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로 저희에게 주심을 감사합니다.

때로는 자녀로 인해 세상 그 어떤 행복도 흉내 낼 수 없는 행복을 맛보기도 하고, 또 세상 가장 깊은 절망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행복으로 인해 저희가 우쭐해하지 않게 하시고 또한 그 절망감으로 인해 의기소침해 하지도 않게 하소서.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저희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 당신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아이들이 애초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을 이루시기에 부족함이 없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아비 어미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이 아이들이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가 되길 원합니다.

저희는 연약한 존재인 고로 때론 세상의 방법과 유혹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우리 자녀들을 향한 저희의 이 소망만큼은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게 하소서.

자녀를 키우면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듯이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영적으로 철 든 자 되게 하소서.

그래서 결국은 저희와 저희의 아이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한 마음으로 걸어가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이혁/홍신희

 

2005년 1월 처음 버팔로에 왔을 때 생각이 납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눈밖에 보이지 않는 버팔로에 무거운 이민가방 두 개를 들고 낑낑대며 기숙사로 가던 생각이 납니다. 기대와 설레임도 있었지만 ‘졸업이나 제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기대반 걱정반으로 시작된 캠퍼스 생활이 벌써 끝나간다는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강의실을 못 찾아서 헤매던 일이 1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고, 작년 여름이 불과 몇 달 전인 것 같은데 말이에요. 2년 반 동안 무료한 버팔로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막상 떠나려니까 4년 전 미국유학을 위해 한국을 떠날 때 보다도 몇 배는 더 슬프고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요즘은 이 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버팔로는 저에게 있어서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작년 이 때즘에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때만 해도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정말 하나님이 계실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점점 믿게 되었는데 사실 그 때 당시는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절에 다녀왔고 교회와는 너무 먼 저였기에 처음에 교회에 나올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지금 교회 나가고 있는게 맞는건가?’에서부터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까지 여러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후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생긴 뒤로는 부모님의 강한 반대 때문에 힘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행히 부모님께서 저의 믿음을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전부터 저를 부르셨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막 졸업할 무렵 캐나다로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갔던 곳이 기독교 학교였습니다. 청강생으로 5개월 정도 있으면서 성경공부도 했어야 했고, 제 룸메이트 언니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저에게 성경에 관한 얘기도 해주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당시엔 하나님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저한텐 들리지 않았고 와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속 ‘희정아, 나를 보렴.’하고 부르시는데도 저는 그냥 귀를 막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결국 버팔로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저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리고, 그 믿음이라는 게 어쩌면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버팔로 한인장로교회에서 지난 1년 동안 믿음생활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게 우리 청년부들인데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작년 가을학기엔 지금 청년부의 반도 안되는 숫자가 모여 매주 청년부 모임을 가졌는데 그 때 처음으로 나눔이라는 걸 해봤습니다.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조차도 아직 익숙치 않았었던 그 때 나눔을 하면서 서로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며 울면서 무릎꿇고 처음으로 소리내어 기도하던 것이 정말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갈수록 풍성해져가는 청년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게 놀라울 뿐입니다. 교회 어르신 분들도 한 분 한 분 어쩌면 이렇게 좋으신 분들만 모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이곳으로 불러주시고 귀한 인연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저를 신실한 믿음의 분들이 계신 이 곳 버팔로한인장로교회에 무임승차하게 허락해 주신 여러 형제자매님들 한 분 한 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희정

 

나의 직업은 외교관이다. 흔히 외교관이라고 하면, 세계 각국을 다니며 일하는 화려함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단면에 불과하다. 그 화려함 뒤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행동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고, 주재국 내에서 우리나라의 권익을 옹호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역할도 따른다. 또한 우리나라와 주재국 간의 평화를 유지하는 사도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가 주재국으로부터 신망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각종 행사를 개최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크고 작은 파티에 자주 참석하곤 했다.


  30여 년 전, 외무부에 처음 들어와 연수를 받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술 마시는 예법’이었다. 대외적인 행사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외교 수단으로 작용한다. 특히 외국에서는 파티와 술이 그들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나라별로 다른 술 종류와 예법을 반드시 익혀야 했다. 다양한 술 종류와 술 마시는 예법을 배우는 사이 나도 모르는 새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술을 자주 마시게 되었다. 행사장에서 술을 마시는데다가 외무부에서 근무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도 술을 마셨으니 술 마시는 횟수가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88년에는 일본과의 교섭을 책임져야 하는 동북아 1과장을 맡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한일 관계는 다른 어느 나라의 관계보다 복잡하고 예민했기에, 과거사에 얽힌 일이 언론에 대서특필이라도 되는 날이면 우리는 대책을 마련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가까스로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도 술 한 잔을 걸치지 않고는 도저히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매일같이 술 마시고 새벽에 귀가하는 것이 아예 습관화되었고, 나를 기다리다 못해 지친 아내의 불평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대 술을 끊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술 없이는 새로 만난 타국의 외교관들과 대화의 문을 열 수 없다고 생각했고, 술을 끊으면 친구들이 모두 나를 떠나갈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새벽 넘게 강남의 지하 술집에서 3차까지 하고 나오던 날이었다. 문득 상가에 있는 교회 십자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술고래여도 괜찮은 걸까? 매일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죄를 짓는 이런 삶이 괜찮은 걸까? 마음속에 잠시 죄책감이 들었지만 오히려 나를 이 지경까지 내버려둔 하나님을 원망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잘못으로 돌렸다.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고 부흥회도 참석했지만, 어머니가 이단에 빠지게 되면서 집안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던 터라 학창시절부터 방황을 했던 나였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꼭 가져야 할까?’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술과 담배로 찌든 사회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예배에 빠지지 않았고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봉사했으며 십일조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기에 이러한 것을 보셔서라도 하나님은 나를 천국에 보내주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토요일 밤, 재일 교포 3세의 법적 지위를 세워주기 위해 일본과 벌였던 마지막 교섭을 끝내놓고 자축을 하러 술집에 갔다. 그런 다음 여느 때와 같이 새벽 3,4시쯤 집에 들어가서 잠깐 눈을 붙인 후에 아내와 함께 주일 예배에 참석하러 교회에 갔다. 찬양 시간에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순간 아내가 술 냄새가 나는 내 입을 막으며 일침을 놓았다.


  “집사라고 하는 당신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아니라 교인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군요!”


  순간 뒤통수를 무엇인가로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가 말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나를 기다리신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린 것이다. 나는 그 동안의 삶을 뉘우쳤다. 주중에는 술과 담배에 파묻혀 살다가 주일에만 거룩하게 보이려고 교회에 나왔던 것을 회개했고, 이제부터라도 집사답게 행동하며 믿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1991년, 스위스 제네바의 참사관으로 부임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제네바 행 보딩패스를 받으며 갖고 있던 담배와 라이터을 과감하게 내버렸다.


  “하나님! 지금부터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 금연 학교도 다녀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의 힘으로 담배를 끊는 것이 불가능하오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세요.”


  간절히 기도한 후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부터 담배는 생각조차 나지 않게 되었다. 술과 담배를 끊은 내 입술에 하나님은 영의 양식을 채워주셨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성경 공부반이라고 하면 지루하고 딱딱하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제네바에서 몇몇 가정끼리 성경 공부를 하게 되면서 꿀같이 달고 오묘한 말씀의 세계를 생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예전에 못 느꼈던 행복과 기쁨을 성경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자, 내가 가지고 있던 상처와 회의에 대해 치유를 받을 수 있었다. 내 나이 마흔둘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제네바에서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해외에 있을 때는 제대로 성경을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한국에서는 마음껏 성경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1년에서 1년 반 동안의 국내 임기를 마친 뒤에는 반드시 해외 근무를 해야 하는 외교관 생활의 특성상, 한국에 머물러 있는 짧은 기간 동안 성경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나는 열성적으로 성경공부 반을 찾아 다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녁 약속을 전혀 잡지 않고 오로지 성경만 탐독한 것이다.


얼마 뒤인 1995년, 나는 주중 대사관의 공사로 발령을 받았다. 나는 북경한인교회를 다니며 청년부장으로 섬기고 있었는데 하루는 목사님이 청년들을 한번 가르쳐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해오셨다. 성경을 가르쳐본 적이 없어 무척 당황스러웠으나 청년들에게 “같이 성경을 연구해보자”라고 말한 다음 성경공부반을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청년들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청년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을 즈음, 나는 위암 4기라는 믿기지 않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급히 귀국하여 서울대학병원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 갑자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오해할 때 병을 주시지, 하필 내가 즐겁게 사역할 때 왜 이런 중병을 주십니까?’ 낙담하고 있던 차에 나를 심방하러 오신 담임 목사님을 뵙게 되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고난이 축복이 됨을 알려주시면서 기도하셨고, 나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수술을 받은 나는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항암 치료만 받고 나면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갔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런 중에도 다시 청년부에서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말씀을 붙잡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큰 은사를 내려주셔서 성경구절을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한두 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울 수 있는 은혜를 체험케 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신약성경의 스토리를 자동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고, 해당 성경 구절에 대한 목사님의 예화까지 기억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의 시간을 믿음으로 인내했던 내게 엄청난 선물을 쏟아 부어주셨다. 이전에는 성경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에 불과했던 시간이었지만 그날 이후부터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장년부에 계신 장로님들까지도 내게 강의 요청을 해오셨다. 사실 한 시간조차 앉아 있기도 힘든 중환자의 몸이라 강의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지만 강의를 하는 두 시간 만큼은 새로운 힘이 솟아나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1998년, 외교통상부 아시아 태평양 국장을 맡게 된 나는 다시 국내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성경의 맥을 잡아라’의 강사로 초빙되어 여러 교회를 방문했다. 일을 하면서 사역을 겸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는 이사야서 말씀을 붙잡았다.


  1999년, 나는 뉴질랜드 대사로 발령을 받았다. 오클랜드 한인 목회자협의회의 목사님들께서 평신도인 나에게 정중히 강의 요청을 해오시자 문득 ‘평신도로서 나만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없겠지? 나보다 더 잘할 수는 없겠지?’ 하는 교만한 생각이 들었다.


  공무 시간 이외의 모든 시간은 말씀 전하는 데만 전력했고, 매 주마다 한두 번씩은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에서 오클랜드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성경 공부를 인도했던 터라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던 것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공기 좋고 물 좋고 날씨까지 따뜻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몸은 급속도로 쇠약해지는 점이었다. 병원에서는 암이 재발한 것도 아니고 다른 병에 걸린 것도 아니라고 진단했다. 나는 내가 왜 이토록 기운을 못 차리는지 알고 싶어서 하나님께 물었다.

“네가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하나님의 대답이었다.


  기도하지 않고는 어떤 사역도 할 수 없음을 자각한 순간, 항암 치료를 시작했을 때부터 기도하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각성제 성분이 들어 있는 약 기운으로 인해 눈이 벌겋게 되도록 밤을 새우다가 아침에서야 비로소 눈을 붙이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기도하지 않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기도를 별로 하지 않아도 성도들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명강의라는 칭찬까지 들었으니···.’ 나는 내 영혼이 곤고해진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직접 가르쳐달라고 간구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보고 들은 것과 내 생각으로 기도하려 들지 말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기도하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때부터 내 기도 생활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기도 대신 성령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 되었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 또한 맛보게 되었다.


  나는 고린도전서의 성경 말씀처럼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환상을 보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성령 체험을 한 후로는 내 지식을 의존해서 전했던 성경을 순간순간 그분의 인도하심만을 따르며 가르치게 되었다. 또한 내 마음으로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었으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들을 주의 이름으로 용서하였다. 평화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나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졌고, 화해한 지체들과 주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스위스, 중국,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 귀한 경험을 하였다. 한국에서만 계속 있었다면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한 채 술과 함께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느 나라에 있든지 각양 다른 말씀으로 다가오시며 나를 완전히 변화시켜주셨다. 나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을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이 같은 직업을 나에게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뜻과 인도하심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나는 매일 매일 외교관이라는 나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요즘과 같은 갈등의 시대에 다 함께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외교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평화가 또 하나있다.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생긴 평화이다. 이 평화를 세상에 전하는 것 또한 내게 주어진 귀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내가 이 평화를 전하는 ‘하늘 외교관’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풀을 뜯던 소가

하늘 우러러

음매 음매~

그 이유 몰랐었네


성령을 받은 후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

아멘 아멘~

풀을 뜯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인사 드리네


물을 먹던 병아리가

하늘 우러러

짹짹짹짹~

그 이유 몰랐었네


성령을 받은 후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

할렐루야~

물을 먹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인사 드리네


언덕 위 마른 풀 뜯고도

염소는 머리 숙여

음메엔~ 음메엔~

이제야 알 수 있나요


찌꺼기 구정물을 먹고도

돼지는 머리 숙여

꿀꿀꿀꿀~

이제야 알 수 있나요


  신호현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1


그 날의 예루살렘 거리를

흘러가는 바람같은

들어갈 수 없어 겉으로만 맴도는

우리 심혼을,

세 번씩 서른번이라도 부인할

우리 신앙을,

통곡도 할 수 없는 우리 눈물을

들어가게 하소서.

그 곳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플라스틱 꽃으로 만발한 세기

눈뜨면 사방에 폭탄터지는 소리

나이아가라 폭포만한 무게로

악마는

착한자의 등불을 끄려 하고

우리 죄는

하루만 씻지 않아도 배어나는

땀내음 같은 것,

일상의 머리맡에서 마시는

커피 같은 것,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도 부족하여

당신의 말씀을 지니고도 약하여

“진리가 무엇이냐”

매양 칭얼대는 저 바깥 무리를 외면하고

저녁 햇살처럼 돌아서는

우리를

주여,

아직은 나의 편지2 불러 주소서.


브라이도리온의 뜰 안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당신의 뺨 맞는 소리 듣게 하소서.

당신 얼굴에 흩뿌리는

로마병정의 침 내음케 하소서.

가시관으로 찢기이는

당신의 아픔 느끼게 하소서.

꽃비처럼 흘러내린

당신의 핏자국 만지게 하소서.

드디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로부터

“다 이루었다”로 이어지는

오 위대한 선언!

주여, 아직은

우리를 당신의 선언이라 불러 주소서.

외치게 하소서.

이것이 진리이다!

이것이 길이다!


들어가게 하소서.

브라이도리온의 뜰 안으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가게 하소서.

우리를

우리들의 교회를

하여

당신의 편지로

당신의 선언으로

당신의 가없는 사랑으로 치솟아 올라

마침내 승리하는

찬란한 깃발되게3 하소서.

주여!


1. 마가복음 15:16   2. 고린도후서 3:3   3. 출애굽기 17:15 (여호와 닛시)



이은모

 

 중국으로 누리글 선교행각을 떠나면서 문득 떠오르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외톨이 선교사가 외톨이 기도를 하면서 선교의 외길을 간다면, 그는 “누군가 날 위하여 기도하네” 이런 찬송을 떠올릴 수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 교회 교우님들의 중보기도가 뒤따른다는 걸 느낄 때는 이런 찬송을 부르며 힘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중국의 문맹과 컴맹을 누리글로 깨우치는 것이 일차 사명인 이번 ‘누리글선교행전’ 길에는 <누리글로 음역된 한어신약성서>를 준비하고 떠납니다. 19세기 말에 정음으로 번역된 복음이 들어옴으로써 한글을 깨우치고, 나아가 1907년에 일어난 평양 대부흥을 위시하여 한국땅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난 그 역사가 오늘 중국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선교전략이 ‘누리글행전’입니다.


  참고로 외솔 최현배 선생의 글을 인용합니다. 


 “1900년에 신약전서의 뒤침이 완성되고, 그 뒤 10년(1910)에는 구약전서의 뒤침이 완성되어 혹은 전책으로, 혹은 부분으로 한글의 성서가 조선 13도 방방곡곡에 퍼지어 무수한 조선 민중이 문자적으로 또 심령적으로 밝은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1935년까지에 한글 성서의 우리나라 안에서의 발매 부수가 약 일천 칠백만 부이요, 매년 발매부수가 백 50만 부이요, 그 밖에 신자마다 사용하는 성서공과서와 그 밖의 서적을 합하면 참으로 그 수가 놀랄 만한 것이다. 한국 사람으로서 이 한글보급의 기독교의 위대한 공적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가지지 아니할 이 한 이도 없을 것이다.”


 “이 시기에 있어서 한글 쓰기의 번짐을 직접으로 목적한 운동이 있으니, 그것은 곧 예수 교회와 각 신문사에서 하는 ‘문자 보급 운동’이다. 예수교에서는 주일학교의 하기 아동성경학교를 통하여 한글을 보급시키었다. 주일학교는 예수교가 전래하자 시작된 것인데 1921년부터 이를 전국적으로 조직화하여 크게 그 번짐을 보이어, 1930년 전후는 그 직원, 생도의 총수가 40만을 넘는 놀랄만한 수에 이르렀다. 하기 아동성경학교는 1922년에 비롯되어 1933년에는 그 학교 수가 천여교이요, 교사 수가 8천 명이요, 생도 수가 11만 6천여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숫자는 해마다 자꾸 늘어갔으니 그 공효의 큼도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누리글로 쉽게 문맹을 면하게 될 한족이 누리글로 음역된 성경을 읽게 해주는 선교가 ‘누리글선교’ 사역입니다. 그 동안 수년간의 작업 끝에, 누리글로 완벽하게 음역된 누리글 한어신약성서를 이번에 들고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누리글로 어둠을 깨워서 흑암 속에 복음을 안겨주는 선교는 <출흑암>의 새 역사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노종이지만 주께서 늙은 당나귀 쓰시겠다 하시기로 이 몸 드립니다. 아버지여, 나와 동행하셔서 주신 소명 이루게 하옵소서!” 이것은 외톨이 선교사가 아버지께 드리는 외마디 기도입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이제는 이 찬송이 희망사항이 아니고 나의 삶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치 가슴 벅찬 소식이 있을 때는 또 좋은 소식 전하리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한 형제 된 김석연,  a humble servant of Jesus Christ! 드림

 

안녕하십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이번에 새가족 교육을 마친 초보 유학생 이 근 재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오랫동안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군대에서 나간 군인교회를 제외하고는 쭉 한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땅에서 새 신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저에게는 얼마나 신선하고 귀한 경험인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에 출석한지 이제 겨우 한 달 반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께서도 너무 기뻐하실만한 귀한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만나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감사하네요.

4주간 새가족 교육을 받으며 신앙의 기본이 되는 말씀들을 들으면서, 알고 있었지만 잊고 지내고 있던 하나님의 나를 향한 계획하심과 사랑, 그리고 아들의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을 배우면서 다시 한 번 저의 나태해진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열정 많으신 목사님과 사랑 많으신 어른 성도님들 그리고 순수한 주의 청년들이 모인 버팔로 한인장로교회를 만나게 하신 것은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이자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영적으로도 어리고 유학생 신분으로도 이제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애기 유학생이지만 너무나 귀한 공동체와 함께하게 될 신앙생활과 유학생활이 참 기대가 되고 소망이 생깁니다.

버팔로 한인장로교회를 세우시고 인도하시는 이 교회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근재

 

계획, 실천 그리고 성취. 참으로 오랫동안 내 인생의 중심이 되었던 단어들입니다. 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또 그것을 혼자 끙끙거리며 이루는 과정은 파도가 없는 호수처럼 잔잔해 보였지만 스스로가 만들어낸 올가미에 갇혀 자유하지 못한 삶이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넉넉해 보이는데, 무언가 부족하다 느끼고 온전히 행복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나는 이러 이러하여 행복하다’고 설득하며, 내면의 행복하지 못함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힘겨워 하며 혼자 서려고 하는 저를 보며 주님은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을까요! 하나님을 외면하고 나의 욕심을 채워가며 사는 중에도 주님은 그렇게도 신실하게 저를 주님 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늘 크리스챤 친구들을 곁에 보내 주셔서 그들을 사용하셨고, Vancouver에서 연수하는 동안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외로움 한 번 느끼지 않고 지내게 하셨으며, 주변에는 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외면하는 저를 보다 못한 주님께서는 최후의 방편을 쓰셨습니다. 미국 행 비행기를 태우시고, 한 형제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형제는 정말 병 주고 약 주고를 반복하며 나의 내면을 냉철하게 비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수진아, 너는 네가 착한 줄 알지? 내가 보기엔 욕심과 이기심이 머리끝까지 차있구만. 나는 너의 모든 게 맘에 들지 않는데 자존심 강한 건 더 싫다."  이런 말을 듣는 게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지만, 신기하게도 그 형제와 연락을 끊어버리겠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년을 넘게 시달리다가 2년 전 여름 campus 내에 있는 South Lake 근처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날도 그 형제에게 온갖 꾸지람을 다 듣고 너무 서러워서 South Lake 근처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눈 앞에 펼쳐지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자연을 관장하시는 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과, 늘 나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산다고 했던 그 형제의 말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주님과 저만이 있었고, 마음속에 가득했던 그 형제를 향한 분노는 감사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그. 리. 고. 드디어 지난 주일에 104기 새가족 교육을 마쳤습니다. 미국교회를 1년간 섬기다 버팔로 한인장로교회에 나온 지 꼭 1년 만의 일입니다. 정말 버팔로에는 주님이 특별히 준비하신 ‘수진이를 향한 놀라운 계획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새가족 교육과정은 제가 우리교회에 더 강한 소속감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을 나의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 중심의 삶이 내가 당면한 또는 앞으로 겪게 될 모든 걱정과 고난을 풀어나가는 해결책임을 알았다는 것만 하여도 가슴 벅찬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한다, 내 딸아." 하구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주실 축복에 미리 감사합니다.  이수진 (UB 영어교육학 박사과정)

 

꼬옥 주먹쥐고 잠든 틈에

사알짝 감싸보니

따스하고 보드라운 아기 손자


진주알인양 요리 조리

동글 동글 굴리며 자유 찾으러

꼬물거리는 아기 손자


매끌 매끈 보드랍고

포동 포동한 아기 손자


잠깰라 조심하여 놓아주니

아쉬워라

또다시 사알짝 보듬어 보는 아기 손자


아! 어찌 표현하리요

아! 어찌 그 촉감을 잊으리요


하나님의 귀한 선물 아기 손자를 위해 나는 무엇할까

존귀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리라.


부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소중하게 쓰임받는 손자되기를

부디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넓고 큰 축복의 통로 되기를


아름답고 귀한 아기 손자

하나님의 선물!                                    한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