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날과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장 1-13절)


주님이 오실 것은 확실하나 그게 어느 때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은 아시되 예수님도 모르신다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이때를 위해 대비하는 일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다섯 슬기로운 처녀처럼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밤중 어느 시간이 될지, 소리 없이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등불을 켤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몸은 비록 눈앞의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영원>을 희구하는 절박한 기다림 속에서 나날을 지내온 것 - 이것이 원시기독교인의 귀한 시간체험의 교훈입니다.


우리 현대인은 시간의식을 어느 때보다도 더 뚜렷이 가지고 있다고 자처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앞에 닥쳐올 일들에 대해서 미리 빈틈없이 계획하고 대비하려고 합니다. 그 습성을 기르는 것이 <이성인간>의 덕성 (virtue)으로까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수첩에 새까맣게 기입된 행사, 면회, 기타의 약속시간, 학교생활에서 미리 짜인 학기나 학년도의 시간표, 5년, 십년이 아니라 심지어 백년대계를 위한다는 국가목표의 확립, 거기에 나타난 합리성의 본질이 뭣이겠습니까? 그것은 시간 지배의 의욕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만사를 "우연"에 맡기지 않고 합리적으로 처리하려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우연>을 겁내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시간에 쫓기기를 싫어합니다. 반대로 시간을 줄에 매어 제가는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강아지처럼 다루려는 것이 인간의 욕심입니다.


그러나 시간표에 짜인 시간들은 다 객관적 사물에만 관계되는 시간, 그 자체가 세상적인 <사물>로 전락된 시간입니다. 그것은 미리 예측할 수 있고 때에 따라 우리 뜻대로 변경할 수 있는 "관리 가능한" (manageable) 시간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나를 다리부터 휩쓸고 압도하는 <졸시>의 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운명의 시간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것은 뻔히 올 줄 알고 미리 각오하고 있더라도 막상 그 때가 되면 앞에서 다가오질 않습니다. 오히려 등 뒤에서 깜쪽같이 뒷통수를 때리듯이 닥쳐옵니다. 이처럼 계획대로가 아닌 시간, 나를 놀라게 하고 사로잡는 시간을 키에르케골 (Kierkegaard)은 "순간"이라고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눈깜짝하는 사이>(Augenblick, batting of the eye)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오시는 순간에 대비하는 자세로 자기의 종말을 위해 대비하는 사람은 남보다 덜 놀라는 사람일까요? 그는 자기 수첩에 이 비밀스런 날짜를 살짝 적어둔 사람일까요? 아마도 "진실하고 착한 종"이라면 그 순간이 겁나는 순간이 아닐 것입니다. 그는 별로 어떤 큰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루 하루 말씀위주로 작은 일에 충성하며 착실히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일 것입니다. 등잔에 차있는 기름의 분량, 그것은 그의 하루 하루의 말씀중심의 생활, 영혼의 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영혼에 관계되는 <기다림의 시간>에 이처럼 대비하고 있었다는 뜻에서 "너는 이제 모두 이루었다" 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조가경(철학, UB 교수)

 


저어기

행복이듯 황홀한 꽃수레가 오네.

싱그러운 새벽길

왼갖 고운 모습으로 꽃수레가 오네.

오늘을 기약하여

오늘을 사모하여

모멸찬 삶도 빛스레 인내하더니

자랑겹게 맺어지는 보람이여!


저어기

은은한 축복의 종소리

섭리의 뜰 안에 거하여

가없는 은총에 배부를지니

아, 저어기

나뭇잎 하나씩 문 비둘기 나네.

온누리에 봄 입김 가득한 날

운명보다 더한 운명으로

사랑보다 더한 사랑으로

미쁘게 둥지트는 한 쌍이여!


깃발이듯 찬란한 꽃수레가 오네.

왼갖 고운 음악으로

왼갖 고운 소망으로

저어기 꽃수레가 오네.

행복이듯 황홀한 꽃수레가 오네.

오늘을 기약하여

오늘을 장만하여.

                                  이은모

기 도

나의 삶/나의 신앙 : 2006/11/26 00:00
 

"하나님, 똑똑하게 해주세요."

학생으로서 항상 남을 이겨야 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나가야 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나의 기도가 조금씩 감사보다는 더 구하는 기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나님, 저 이 대학에 가고 싶어요."

"하나님, 저 이번 시험 잘 볼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 예쁘게 해주세요."


하지만 이런 기도가 정말 옳은 걸까? 나의 기도가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았다. 만약 옳지 않다면 어떻게 구해야 되는 걸까?


방황하던 중 몇 주 전 솔로몬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지혜롭기로 유명한 그 솔로몬……. 그는 지혜를 구하였고 하나님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도 나처럼 지혜를 구하였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렇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도록 그리고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지혜를 원하였고 나는 나만의 이익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으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열왕기상 3:8-9).


그의 기도 속에는 백성을 위한 사랑과 하나님 뜻대로 선을 따르기 위한 마음이 담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왜 지혜를 구하는가. 나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알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함인데 나의 이익을 위해 기도함은 내 삶의 방향이 틀리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삶이란 하나님께 스스로 헌신하고 바칠 때 시작이 된다. 내가 단순히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는 것에는 내가 남보다 더 잘나가고 싶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칭찬 받고 싶은 마음만 담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의 기도에 나의 헌신이나 하나님을 위한 마음은 전혀 담겨져 있지 않았다.


난 다시 나 자신에게 왜 진정 지혜가 필요한지 물어보았다. 이는 의사가 되고 싶어서이다. 그럼 왜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가? 이는 의사가 되어서 남을 도우면서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선택한다면 그의 삶의 필요를 뭐든지 다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다(벧후 1:3).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 때부터 나의 기도는 바뀌게 되었다. "하나님,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저에게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가끔씩, 우리 모두 한 번씩은, 우리가 왜 기도하는지 그리고 무엇에 대해 기도하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기도인가, 하나님을 위한 기도인가?


기도가 곧 우리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오늘 한번 조용한 방에서 우리의 기도를 되돌아보자. 만약 내 자신을 위한 기도였다면 다시 한 번 우리 삶의 이유를 되돌아보고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그 빛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자.  김지원 (고등부 학생)


- 2006년 11월 26일 -

 

Welcome to the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at UB!

올해 초, 뒤늦게 대학원에 가기로 결정하고  UB 대학원에 apply 한지 두 달쯤 되었을 때 받은 편지의 첫 문장이었다.  얼떨결에 apply한 학교였고,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기쁘다거나, 큰 고민이 해결됐다거나 하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저 대학교 졸업하고 무언가 확실히 할 것이 생겨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의 한숨 정도. 4년 전 처음 대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가 여섯살 쯤 되었을 때 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교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가족이었다. 아빠가 새로 시작하신 사업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주말이 되면 우리 가족은 여기저기 놀러다니며 삼겹살을 구워먹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즐겁게(?) 지내던 시간도 어느 순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 손에 이끌려 6살 때부턴가 난 교회를 나가게 됐고, 얼마 후 아빠도 엄마 말씀에 못 이기시는 척 교회를 나가시더니, 항상 가족 피크닉을 하던 주말에 하루 종일 교회에서 봉사를 하시질 않나, 신학을 하시더니 사업을 정리하고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중국선교사로 파송 받아 우리 가족은 모두 아빠를 따라 홍콩으로 이민가게 되었다. 불과 우리 가족이 교회를 다닌 지 겨우 6년 만이었다.


홍콩에서 국제학교를 다녀서 모든 공부를 미국교육시스템으로 배웠지만, 대학은 무조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나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선교사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내가 미국에 가서 공부할거라는 생각은 옵션에 둘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더 큰 꿈을 주셨고 하나님을 조그만 박스 안에 가둬뒀던 나를 부끄럽게 하셨다. 현실은 불가능했지만 모든 걸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 가족은 나의 대학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4년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음대 장학금과 선교사 가정을 위한 장학금으로 한국에서 냈을 대학교 등록금만큼, 아니면 더 적게 내면서 다닐 수 있었다.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고, 교회 봉사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것들을 통하여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셨고, 그것들을 통해서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너무 귀중한 것들을 배울 수 있게 해주셨다.


UB 대학원 입학통지서를 받고 그저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없었던 이유 또한 내 현실적인 환경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해놓고도, 미련한 난 또 내 현실을 보고 차라리 대학원에 떨어졌으면 아무 미련 없이 집에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바보 같은 생각까지 했었다. 여름에 중국에 부모님과 있으면서 대학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보여 달라고 집중적으로 기도했다. 하나님의 보내심이 분명하다는 걸 보여주시면 ‘아멘’ 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혹시나 생길 다른 문제들 때문에 후회를 한다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기도하던 중 아빠께서 섬기시는 중경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두 달 동안 중국에 계신 선교사님들을 모시고 하던 선교 훈련에 버팔로한인장로교회 김석연 장로님께서 3일 동안 누리글 강사님으로 오셨다. 버팔로에 아는 사람 한 명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는 줄 알았는데 지구 반대편인 중국, 중경에서 김석연 장로님을 만나게 해주신 건 하나님의 기적이 분명했다. 장로님께서는 내가 버팔로에 도착하기 전부터 와서 이곳에 적응하는 시간 동안 이모저모로 너무 많이 챙겨주셨다. 이 어찌 내 머리로 예측이나 할 수 있었던 것인가.


버팔로에 온 지 이제 두 달 쯤 지났다. 학교도 너무 좋고, 지금 공부하는 음악교육 과목들도 재밌고, 무엇보다 너무 좋은 목사님과 교회 성도님들과 청년부, 그리고 반주할 수 있는 교회를 놓고 기도했는데 주일마다 멋진 찬양팀과 같이 봉사할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이렇게 많은데도, 미련하고 연약해서 매일 흔들리고 낙심하는 나지만 그래도 내가 필요한거 하나하나 그리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까지 너무 세심하게 일일이 다 챙겨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때마다 회개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내가 대학교 일학년 때, 막 대학교 와서 좋다고 노느라 바쁠 때, 엄마께서 미시간으로 보내셨던 편지 중에 잊을 수 없는 구절이 있다.  “배워서 남주자!” 라고. 세상 사람들은 배워서 남주나 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우리 크리스찬들은 배워서 남줘야 된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베풀면서 살아야 된다고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 받은 너무 많은 축복들. 이제는 내가 그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내 자리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자 한다. 정혜승 (청년대학부)


- 2006년 11월 12일 -

 

어제가 미국 전체가 들썩들썩할 정도로 시끌벅적한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예요. 어른이고 애들이고 할 것 없이 커스튬(마녀나 귀신, 해골 등 이상한 분장에서 공주, 만화영화 캐릭터 등등의 분장까지)을 구입하느라 10월 한 달 내내 그리고 이날 10월 31일은 모두 그 커스튬을 입고 학교 가고 또 어떤 사람은 출근도 그렇게 하더군요. 지난 번에 같이 수업 듣는 어떤 학생이 스머프 분장을 하고 왔더군요. (즉, 얼굴 전체를 파란색으로 칠하고 왔다는... 만화에서는 귀여웠는데 실제로 한 스머프 분장은 좀 엽기더군요. ^^) 또 밤에는 아이들이 커스튬을 입고 바구니 같은 걸 하나씩 들고 집집마다 노크하고는 "Trick or Treat" 이라고 하는 놀이를 하죠. 번역을 하자면 "혼날래, 사탕줄래" 정도? 사탕/쵸콜렛 등을 주지 안으면 계란을 창문에 던진다거나 하는 등등의 약간은 애교로 봐줄만한 장난에서부터 신문을 장식할만한 대형 사고까지 다양하답니다. 대개는 사탕을 준비해 두고 있다가 아이들이 오면 그 바구니에 잔뜩 넣어 준답니다. 그래서 할로윈은 엄청난 시장이죠. 커스튬에 사탕에... 요즘 워낙 미국에서 살다가 간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한국도 할로윈을 한다고 난리라고 하더군요.


저는 우리 교회 회보, 쉴만한 물가는 정말 너무 귀한거 같아요. 지난 주일날 할로윈에 대한 박승익 형제님의 글을 보고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속시원하게 ‘그래서 크리스챤은 할로윈 데이에 어떻게 해야 한다 혹은 이렇게 하자’는 말까지는 없어서 좀 아쉬웠지만.. 저희는 나름대로 방도(?)를 찾아보자 그러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어요.. 저도 뭐든지 하나를 하면 뿌리를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어떤 일이든 이걸 크리스챤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것인지 꼭 이에 대한 답을 얻어야 끝이 난답니다.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좀 피곤하죠.. 주변 사람들이.. ^^


작년에는 할로윈데이에 지미는 학교를 가지 않았어요. 할로윈데이에 커스튬을 입고 파티를 하고 퍼레이드를 하는데 우리는 크리스챤이라서 할로윈을 따르지 않으니까 커스튬을 안입고 학교에 가면 오히려 더 뻘쭘하고 어색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예 학교에 가지 않고 옆집 지원이 지수네랑 같이 "할렐루야 데이"를 하러 가자고 했죠.. 우리는 예수님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싫어하는 건 안한다고 못을 박아놔서 지미도 다 알고 있죠. 하지만, 할로윈에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루하게 보낸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 같아서 쇼핑몰에 가서 재미나게 놀이기구도 타고 맥도날드 해피밀에 장난감도 하나씩 사서 쥐어주었죠. 그리고 할로윈이 왜 나쁜지 왜 우리는 그걸 celebrate 안하는지 그리고 왜 오늘이 할렐루야데이인지 알아 듣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설명해 주고 그랬죠..


올해도 어김없이 드디어 올 것이 왔죠. 그래도 올해는 이전과는 달리 커스튬을 많이 제한해 놓았더군요. 어쩌면 저희 같이 작년에 학교에 보내지 않은 크리스챤 부모들이
많아서인지.. 너무 무섭고,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커스튬은 안되고 아이들에게 본이 될만한 영화나 책속의 주인공의 커스튬을 장려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교장선생님이 보내셨더라구요.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할렐루야 데이"를 재미나게 해준다고 해도 고만고만할 때는 또래집단에게 영향을 많이 받쟎아요. 친구들과 한달내내 할로윈 커스튬에 대해 이야기하고 너는 어떤 커스튬을 살거냐 뭐 그러면서 놀 텐데 말이죠. 지미는 작년에 할로윈에 학교 가지 않은 게 너무 큰 상처가 되었나봐요. 두고두고 1년 내내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올해도 예전처럼 커스튬(마녀복장 같은...)을 사지는 않되, 집에 있는 제일 좋은 드레스를 입고 학교에 가자.. 왜냐하면 할로윈은 "holy evening"에서 온 말이니까 그걸 축하하자 하구요.


할로윈 전날 밤 지미 침대에 같이 누워서 한참 동안 할로윈의 기원은 뭐고 왜 사람들이 trick or treat이라고 말하는지...Jack O Lantern은 어떻게 생겨난건지..열심히 설명을 또 했지요. 모르는 거 같아도 안 듣는거 같아도 다 이야기 한 다음에 물어보니 대견하게도 나름대로 이해를 하고 있더라구요.


지미엄마: "왜 사람들이 귀신을 무서워 했을까?"

지미: "귀신들이 trick을 하니까"

지미엄마: "응. 그래서 사람들이 귀신들에게 treat을 주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렇게 한거래"

지미엄마: 왜 사람들이 할로윈에 그렇게 무서운 귀신처럼 하고 다니는 줄 아니?"

지미: "그렇게 하면 진짜 귀신이 무서워서 도망간다고 생각해서"

그러고 나서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하는 말이...

지미: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라서 그래. 그쵸 엄마?"

어이구 기특해라 ^^


아무튼 오늘은 11월 1일... 또 1년 뒤에 이같은 홍역을 또 치루겠지만... 작년보다는 조금 더 자란 지미가 더 잘 이해를 하는 것 같고 또 그만큼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며 흐뭇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의 기도제목처럼 예수님이 자라실 때처럼 날마다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길 기도합니다. 전보애


- 2006년 11월 5일 -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누가복음 5:1-11)


주님께서 주신 새 생명, 시몬 베드로가 주님을 알고 다시 태어났듯 저 또한  주님을 알고 세례를 받으며 다시 태어났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와서 가장 기쁜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사랑이 많으신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고자 많은 분들이 애써주셨습니다.  손을 잡고 기도해 주시고 교회로 이끌어 주시고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에 존재하신다는 것인지 존재하기나 하신 것인지 의구심이 들어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2년 전, ESL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중훈 오빠께서 버팔로 한인장로교회에 나오지 않겠냐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냥 한 번 나가보자’ 이런 생각으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성도분들이 좋아 교회에 계속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신앙심이 없었던 2005년 가을, 세상의 것에 눈이 어두워 교회에 3개월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3개월간 저는 유학생활에서 참으로 힘든 기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 대한 회의와 외로움, 모든 것이 싫어 밤에 전기줄을 벽에 걸고 자살 시도까지 했었으니 참 힘들었나 봅니다. 지금도 그 날 밤 기억이 생생하여 기도를 하면 눈물이 많이 납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께서 저를 살리셨고 새 생명 주셔서 그 후 다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나올 때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살찐 모습에 사람들 만나는 것이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주님께 찬양을 드리는데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내가 있어야 할 곳을 한참 비우고 다시 돌아온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았느냐 다그치시지 않으시고 찬양으로 저를 반겨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위로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 알았습니다.  진정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버팔로 한인 장로교회분들께서도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참 감사하였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점점 치유되어 갔습니다. 지쳐있던 저의 마음과 잃었던 자신감, 외로움들을 주님께서 고쳐주시고 주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저의 마음을 밝혀주셨습니다.  찬양의 한 구절처럼 저의 작은 신음 하나에도 응답하여 주시어 저는 확고히 이제 주님의 힘을 믿습니다.  주님의 정교한 계획아래 우리가 주님께 구하는 것을 아낌없이, 그 이상으로 주시며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날로 날로 번성할 것임을 믿습니다.


눈물로 기도할 때 제 손을 붙들며 기도해 주던 초롱이, 힘들었던 2006년 겨울, 따뜻한 말과 관심을 가져주셨던 지은언니, 참히 언니, 종휘 오빠,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한 오빠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청년부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같은 교회 아래 신실하게 같이 믿음생활 해나가는 우리 버팔로 한인 장로교회 교우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요즘 참 행복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받은 삶이라 하루 하루가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주님을 알게 된 이후 제 삶은 놀랍도록 바뀌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일을 주님의 뜻하신 바에 따라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이 있으니 조급해 하던 제가 이제 삶의 여유를 갖고 하루 하루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주님의 이끄심으로 홍해를 건넜듯 주님의 기적 아래 거하는 저의 삶,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의 삶이 주님의 빛나는 기적 아래 거하는 삶이라 믿습니다.


2007년 5월 졸업 후, 주님께 쓰임 받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성공한 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 늘 주님을 향한 기쁨의 찬양과 말씀이 끊이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늘 감사하며 주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곽현주 (청년부)

- 2006년 10월 29일 -

 

월요일 아침은 생동감이 넘쳐오는 시간이다. 늘 계획한 일들을 시작하는 시간이니까. 그러나 내 본향집 같은 버팔로장로교회에 돌아온 후로는 월요일마다 새로운 기쁨이 나를 흥분시키는 계기로 바뀌었다. 교회 주보에 실린 회보의 글을 읽는 것이 주초의 첫 시작이 되었다. 마치 ‘오늘의 양식’을 읽어오던 때를 방불케 한다. 회보의 글들은 이름난 신앙인들의 명문이 아니라 수수한 우리 교인들, 믿음의 친구요, 한 솥의 점심을 먹으며 친교를 나누어온 신앙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글이 내 심장과 피부에 와서 닿는 박진감이 있다. 


한 주에 설교말씀 한 번 듣고 또 다음 주일을 기다리는 교회가 아니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글들이 일용할 양식만큼이나 소중하다. 고개를 끄떡거리며 수긍이 가는 글들을 읽으며 "그렇지 그렇지" 하고 읽다가 마지막에 허원수 장로의 글을 읽기 시작하니 난 데 없이 눈물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의 겸손과 정직함이 나를 울린 것 같다.


젖어든 눈시울을 닦다가 문득 며칠 전에 받은 갓피플(God People)의 신앙동지가 보내온 글 생각이 나서 나누고 싶어졌다.  


날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가 있다. 가출해서 사흘째 결석하고 있는 그 친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반 친구들에게 화를 냈다. 어제 가출한 친구에게 반 전체가 이메일을 보내자고 했는데 왜 아무도 보내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일주일 뒤 그 친구는 어머니와 함께 학교에 나타났다.

"선생님, 못난 자식 놈 때문에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음식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세요.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더군요.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두들 메일을 보내왔더라구요. 덕분에 이 녀석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알 수가 없었다. 왜 메일을 보내지 않았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는 아무 말도 않더니
…… 반장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선생님께서 메일 주소를 잘못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너무 화가 나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저희가 정확한 메일 주소를 알아서 메일을 보내고 메신저에 등록해서 계속 대화를 나눴거든요."


나는 내 눈물의 기도가 가출했던 아이를 돌아오게 한 줄 알았다. 강당에서 아무도 모르게 매일 삼십 분씩 기도를 한 것만이 큰 힘을 발휘한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메일은 엉뚱한 사람에게 배달되었고, 그 친구는 끈질긴 우리 반 아이들의 사랑 덕에 학교로 돌아온 것이라니, 가출한 친구를 구해준 것은 내가 아니라 소리 없이 움직이던 우리반 아이들이었다니
……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 환자다. 스스로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메시아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 학급의 모든 일의 중심에는 담임선생인 내가 있어야 하며, 반드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환자.  —후기 생략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은 충동이 생긴 나도 메시아 콤플렉스에 걸려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더 실감이 다가온 것이었던 것 같다. 김석연


- 2006년 10월 22일 -

 

“나는 김초롱 양을 사랑합니다.”

“니 인자 뭐라캤노? 일마 정신 나가뿐나? 딸내미같은 얼나 아- 보고 뭐시라?”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을 인용 안하더라도, 사랑에는 인종, 성별, 나이를.... 더욱이 초롱이는 얼굴짱, 몸짱, 게다가 하는 짓까지 사랑스러우니...”

“온- 나, 니 내 잘 만났데이. 너같은 할배는 시껍해야 정신차릴끼다. 아이다. 차-뿌라. 우리 태권도 4단에 합기도 2단 영롱이 글마 당장 델꾸온나. 절마 뼈다구를 뿌시뿌자.”


오해는 마십시오. 재미있으라고 적어본 글입니다. 사실은 모든 게 초롱이 탓입니다. 몇 달 전 주일날 예배 후에 장국밥으로 점심을 잘 든 후에 트림을 억지로 참고 있는 나를 당돌하게 붙들고 어린 사슴 같은 눈망울을 올려 뜨고 원고청탁을 하지만 않았어도 이리 골치 아픈 글발은 쓰지 않아도 됐으련만. 물론 한마디로 거절은 했지만 집에 온 뒤 곰곰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것도 같고, 무엇보다 아버지 되시는 김사장이 이곳 유지시라 뒤도 켕기고, 그분 체면도 지켜드려야 되겠다 싶어 한 줄 올리기는 했습니다만, 사실이지 따로 원고료를 받는 것도 아닐뿐더러 조그만 회보에 장 수도 제한되어 있으니 맘대로 실력발휘도 안 되는 것이 신빨나거나 뭐 그리 영양가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쓰다 보니 우선 주제를 선정해야 했고 틈틈이 살을 붙이려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지에, 휴지쪽에 적어서 책상 한 모퉁이에 모아놓고, 몇 권 서적도 들춰보고 초고 쓰고 수정하고, 그러니 북치고 장구치고 무슨 단편소설 쓰는 시늉은 다 한 것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요샌 툭하면 그리됩니다만 옛날 어릴 적 제가 처음 글이라고 써보던 시절로 회상의 날개를 펼치게 됐습니다.


한참 톨스토이에 열중하던 고교 일학년 때 문예반에 들었습니다. 새로 입반한 신입생들은 무조건 한 작품씩 쓰라는 상급생의 독촉에 한 글을 실었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 때 글 제목이 “인류의 장래”였습니다. 열다섯 짜리가 뭘 안다고 거창한 제목에 매달렸는지 궁금하지만. 잉크 냄새도 가시지 않은 교지를 받아들고 몰래 변소에 가서 내 이름을 보는 순간 슬며시 웃음 짓던 그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잘 썼든 못 썼든 내가 쓴 글이 활자화되어 나온 것을 읽는 기분은 형용하기 힘듭니다. 그것이 권위 있는 월간문예지이든 열 페이지짜리 동아리 프린트물이든 간에 작가가 느끼는 엔돌핀의 희열은 같은 줄 압니다. 그 뒤로 언론계로 진출하려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근래에는 목사와 신문방송기자가 예비 신부들의 희망사항 남편조건 일번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신문기자이셨던 부친께서 하도 박봉에 시달리는
이 안쓰러워서, 문과에서 이과로 전공을 돌렸습니다. 은퇴를 얼마 앞둔 요즈음도 열정에 타고 이상에 가득 차 있던 그 시절이 그립고 언젠가는 소품에서 벗어나 장편 대하소설을 한번 써보겠다는 야망은 작은 불씨로나마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 회보에 고정 칼럼을 갖고 계신 김목사님, 김장로님, 그리고 오지영 자매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올리시는 글들의 수준도 월등하지만 매주 거르지 않고 쓰시는 열정은 드높이 받들어야 합니다. 어쩌다 부탁받은 글도 끙끙대며 주리를 트는데 매주 원고마감 어기지 않으시는 세 분들을 보며 귀감을 삼습니다.


과부설움은 과부가 안다고, 왕년에 주일학교 중등부 부편집장을 지낸 관록이 있는 본인은 세 분의 기막힌 작품들이 오로지 글재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고와 깊은 신앙심에서만이 가능한 것으로 압니다. 작은 작품 하나도, 비록 진통을 거치긴 합니다만, 완성됐을 때 우리에게 이리 큰 기쁨을 줄진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쁨은 얼마나 크셨을까요?
 


믿거나 말거나, 구약 속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하는 서부영화보다 더 손에 땀이 나고 신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천지창조를 다룬 창세기 1장입니다. 3절에 가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멋집니까? 4절로 가면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 뒤로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에 엄청난 창조를 하시면서 그 때마다 매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끝납니다. 마지막 31절에는 절정으로 올라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막을 내립니다. 얼마나 좋으셨으면 1장 1절에서 31절까지 “보시기에 좋았더라”란 구절이 전부 일곱 번이나 나왔을까?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셨으니 하나님께도 메가 엔돌핀이 있으셨겠지요.


추고: 이 글은 아무도 모르게 원고를 써놓으시고 은근히, 초롱이가 지나가며 원고청탁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성도님 여러분들께 바칩니다.   심건일


- 2006년 10월 22일 -

 

논리학 책에 가끔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동네 사람이 외치기를 우리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짓말쟁이고 항상 거짓말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만 책에 인용되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이 동네사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동네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자신 역시 거짓말쟁이고 늘 거짓말만 일삼는 관계로 ‘우리 동네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는 주장이 거짓이 되어 동네 사람들이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조금 복잡해집니다. 동네 사람 모두가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되는 순간 이 외치는 자 역시 동네 사람 중의 한 사람이므로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아니, 그렇다면  동네 사람들 모두가 거짓말쟁이라는 주장이 진실로 둔갑되면서 다시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 같기도 하고 말장난 같기도 한데 도무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아리송하고 머리가 빙빙 돌 지경입니다. 모순이 가득한데 뭐라고 딱 꼬집어서 모순을 지적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그래서 책에 등장하나 봅니다.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이 외치는 자의 의도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자신은 늘 진실만을 추구하면서 살아왔고 악을 행하기보다 선한 일을 하고자 노력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늘 거짓을 일삼으니 참 세상 살기가 힘들구나, 도무지 세상에 믿을 사람 없구나, 다들 나쁜 사람들이야’ 뭐 이런 주장을 하고 싶고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옛말에도 잘못된 것은 모두 조상 탓으로 돌린다는 말도 있듯이 모든 잘못은 다른 사람 탓이요 환경이 나빠서 그런 것이지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 나는 그냥 최선을 다 했을 뿐이야 뭐 이런 의도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일견 수긍이 가는 내용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내용 같아 보입니다. 또한 우리가 경험적으로 종종 발견하는 것은 이 외치는 자가 스스로 그 올무를 뒤집어쓰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즉, 본인이 그 비난하는 자의 모습을 한 문제아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외치는 자의 모습에서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틈만 나면 변명거리를 찾고 자신이 잘못한 일도 그럴싸하게 합리화를 시킵니다. 비슷하게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고자 애를 씁니다. 한마디로 모순이 가득한 모순덩어리 내 자신의 모습이지요.


모순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연유를 살펴보아도 비슷한 내용입니다. 창과 방패를 판매하는 상인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판매하는 창은 너무나도 그 성능이 우수하여 이 세상의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그러고는 쓱 하니 자세를 바꾸어서 이번에는 방패를 하나 들고 비슷한 광고를 외칩니다. 이 방패는 천하무적이어서 어떠한 창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듣고 있던 청중이 묻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창으로 당신이 팔고 있는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하고. 이 상인의 엉터리 주장을 한마디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상인의 주장을 요즈음 말로 표현하면 과대광고이지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사기꾼인 셈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어떠한 창과 방패도 천하무적일 수 없는데 말입니다.


별로 재미없는 내용이고 문제의 초점에서 어긋나지만 호기심이 많은 분들을 위해 논리학 책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의 근본적인 모순은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물론 제 나름대로 분석한 것입니다. 논의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로 가정합니다. 누구든지 이 동네 사람은 진실이 아닌 거짓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래서 우리는 이 동네 사람들의 주장은 반대로 해석하면 진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외치는 자가 소리칩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한단 말이야.’  아니, 이게 웬 일입니까. 거짓말만 해야 되는 사람이 갑자기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우리는 이 동네 사람을 모두 거짓말쟁이로 가정했는데 우리 스스로 그 가정을 무너뜨리고 진실을 외치는 사람을 동원하고 있는 게지요. 간단히 요약하면 주장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기본 가정을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논리적 함정을 야기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자주 볼 수 있는 오류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주장을 할 때 기본 가정을 슬그머니 무너뜨리면 엉터리 결론에 도달한다는 평범한 진리이지요.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가 올바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외치는 자의 이야기의 출처는 성경입니다. 디도서 1장 12절입니다. 모르긴 해도 사도바울께서는 이 이야기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논리적 함정은 전혀 짐작하지 못하신 듯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단지 사도 바울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사악함과 탐욕, 거짓됨을 경고하고 복음의 교리와 경건한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하여 경고하셨지만 세상 사람들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저 자신의 모습을 냉정히 되돌아보면 좀 서글퍼지지만 왜 사람들이 변하기 어려운지 쉽게 이해가 갑니다.


사실 인간은 이 외치는 자의 주장처럼 항상 거짓말만 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꾸로 늘 진실만을 이야기 하는 존재는 더더욱 아닙니다. 수시로 거짓과 진실을 바꾸어가며 본인 편한 대로, 본인에게 유익이 되는대로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는 믿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더욱 고약한 것은 언제 거짓을 말하는 지, 언제 진실을 이야기하는 지 그 입술만 보고는 도무지 알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모순을 태연하게 가장합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지요. 사실 늘 거짓만 말하는 사람은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늘 반대로 생각하면 진실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늘 거짓만 일삼는 사람은 늘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거짓과 진실을 필요에 따라 구사하는 사람이며 많은 경우 말하는 자신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고 우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의 모습에서 이 무서운 사람의 모습을 본 것은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삼심수년간 교회라면 피해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혹시 누가 전도라도 할 듯이 말을 붙이면 옳거니 하면서 궤변을 늘어놓기 일쑤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심히 대적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좀 모자라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핀잔도 주었습니다. 교만이 극에 달하였으나 정작 본인은 구원대상이 아니라고 박박 우기던 모순덩어리였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는 불쌍한 존재였으나 정작 본인만 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숱하게 외치는 자의 대열에 동참하였고 셀 수 없을 정도로 천하무적의 창과 방패를 팔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긴 시간을 인내하시고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에게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허원수 (본교회 장로)

- 2006년 10월 8일 -

 -지난 주 교회 회보에 실린 글들을 읽고-

한국에서 근 석 달의 선교사역을 마치고, 길갈과 같은 내 본고장 교회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게 새로운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그 질곡 속에서 무거운 시름에 겨웠던 납덩어리 흔적은 내 가슴에서 사라지고, 싱싱한 분위기가 감도는 교회에 들어서고 보니, "하나님 아버지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우리 교회를 버리신 줄 알았더니 살아계셔서 친히 역사하시는 교회로 부흥을 일으키셨군요!" 

"딴은! 예배 끝에 고형원 작곡 '부흥!'을 청년들의 인도로 힘차게 불러온 응답이 곧 부흥의 불길로 타오르게 하셨군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청년들이 인도하는 찬양과 경배로 시작하는 이런 예배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주님은 알고 계셨지요. 20년은 젊어진 우리 교회, 사랑합니다. 해골골짜기 같던 우리 교회, 무너진 땅에 생수를 채워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킴 같이, 우리 교회를 다시 일으키시라고 금요일 밤마다 에스겔서를 읽으며 부르짖은 부흥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군요! 오늘 여기까지 함께 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줄기줄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목으로 가슴으로 내리 흐르는 감사가 묵은 아픔을 씻어주는 8 20일 주일 아침은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얼룩진 예배를 드렸다.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올려드릴 감사는 우선 눈물뿐이었다. 무엇보다 성도들의 영혼의 소생을 위해 목회자와 성도님들의 글이 실린 회보가 나와 더더욱 감사한 마음이 넘쳤다.

주일을 거듭하는 동안 점점 두꺼워지는 교회주보를 받고 보면 "이걸 누가 다 읽을까?" 하는 소감도 없진 않았지만 어느새 나는 주보의 글을 읽는 것이 기쁨으로 안겨오는 것을 체험하면서 오히려 메마른 이국생활에서 읽을거리가 궁한 상황에 이렇게 글로 읽는 생명의 양식을, 더구나 교우들의 글까지 곁들여서 읽는 감상은 새로운 감사로 다가왔다.

지난 주 회보를 읽고 받은 바 감동이 커서 몇 자 소회를 적어보았다.

영혼의 소생을 위하여-<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이런 문제를 다룬 자체가 은혜였다. 쉬이 다루지 않고 싶어 하는 문제를 주보에서 다루어준 것은 또 하나의 참 감사였다. 한 가지 언급을 더 한다면 예수의 재림을 모르는 이에게 실감나게 알려주는 일이 곧 선교요 영혼구원 사역이라는 것이다.

장사한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분부를 하러 오신 것이 아닌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면 그때에 내가 다시 너희에게로 오마" 약속하신 그 유언을 이루어드리는 일이 곧 선교의 지상목표다. 하늘의 상급은 영혼구원을 많이 한 자에게 내리는 상이라 하였는데, 상급을 바라는 선교행각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사나 죽으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하는 일이 하나님의 자녀 된 첫째의 의무라 하겠다.

그리스도인의 영화보기: <죽음의 터널 저 편은 어떤 곳일까?> : 김성민 장로

죽음의 터널 저편을 그려준 영화이야기는 죽음 뒤의 일로 번민이 있는 인생들에게 참 실감나게 위로를 주는 글이다. 죽음의 터널 저편의 세계를 알려주는 일이 크리스천의 사명 중의 하나인즉, 사후의 삶에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 영혼 구하는 일에 얼마나 큰 역할이 되는지 실감나게 읽으며, 이런 글을 써갈 수 있는 마음은 부자요, 생명과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장로님으로서 더구나 육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인술을 베푸는 장로님으로서 "참 아름답도다"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영화의 결론이 제작자의 신관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는 별문제로 하고, 죽음 뒤의 문제를 이렇게 아름답게 다루어준 영상물을 소개하면서 죽음 뒤에 오는 위로를 다룬 글은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의 향방과 위로와 용기를 주기에 족하다. 누구나 꼭 읽어보아야 할 글일뿐더러 주보가 이렇게 풍성한 글 잔치로 메우어진다는 자체를 감사해야 할 일이다

▶<놀라운 우주선 지구 이야기-Our Amazing Spaceship Earth(1)> :이은모 장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엄청난 스케일을 다시 상기하면서 문득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쿠루세이드가 기억났다. 그레함 부흥사는 쿠로세이드 집회 시작에 늘 같은 서두로 이야기를 풀어 내린다. "저 밤하늘의 헤아릴 수 없는 별들, 그 많은 갤럭시들, 누가 그 놀랍고 엄청난 별들을 만들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권능과 창조의 솜씨가 우주에 찬 그 창조의 오묘함을 아는 사람은 복 되도다"로 시작한다.

그분의 뜻을 모르는 이는 "왜 늘 같은 내용만 다루는가?" 하겠지만, 빌리그레함 목사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놀라운 창조의 신비와 스케일을 실감나게 전해주기 때문에 빌리그레함 목사님이신 것이다. 나는 많이 부족한 인생이지만,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이 찬송(40)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솟구친다. 더 더욱 솟구치는 대목은 "주 하나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이다. 그레함 목사님의 집회가 이렇게 시작되기 때문에 공감하는 뭇 가슴들이 활짝 열리어 그 대형집회시간이 일관한 감동으로 몰고 가지만 그 하나님이 세상에 다시올 때, 아니 우리 인생이 끝이 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는 날 "당신이 주를 모른다 했으면 하나님도 모른다 하실 것이요, 당신이 주를 시인했으면 주님도 당신을 시인해줄 것이라"는 결론이 쿠루세이드의 결론이다. 진리는 하나요, 복잡하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인 것이다.

이은모 장로님의 글 솜씨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놀라운 우주선 지구 이야기를 다룬 글을 통한 만남은 새로운 감격이요 기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신비를 그렇게 상세히 공부해서 알려준 노력은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사합니다우리 대신 그렇게 열심으로 탐구해서 '지구가 기막힌 우주선으로 설계되어있음'을 실감나게 알게 해주시니..." 하는 한 마디가 새어 나왔다. 우리 주보가 이런 글로 채워질 때 우리 교회를 사모하여 찾아오는 믿음의 친구가 불어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지구'라는 그 기막힌 우주선 이야기 때문에 나는 연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흥얼거리면서 기쁨이 차 올라오는 데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은 바로 밤하늘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을 보다가 얼어붙었던 땅에서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향기가 나고 열매를 맺는 아름다움을 보다가 거기에 나비와 하밍버어드가 날아오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서 감탄하는 글을 쓰다가 그 속에 감추인 초인간적 능력을 발견하고 그 창조의 오묘함을 찬양하는 글을 쓰다가 하나님을 스스로 발견한 문학소녀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주보에 실린 글을 통해서 성도간의 심중의 토로가 번져 나오고, 이 시대에 '버팔로한인장로교회 라는 같은 방주'를 타고 가는 기쁨이 오랜만에 되살아나니 이로써 우리가 다시 누리는 축복을 하나님께 참 감사로 올려드려야 하겠다

선교소식, 교계소식: <탈북자 사역하다 감금된 미국 국적 한인 목사 추방>:

이런 글을 통해서 순교를 각오하는 선교사님들의 심정을 바로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2002년 봄 4월에 중국 남방 오지를 2주간 순례할 때도 붙잡힐 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2006 7월 이번 중국 중경(重慶)에서도 누리글 연수회를 하는 일주일 동안 보안대원이 찾아와서 위기를 겪었다. 생명을 두려워하는 이는 선교를 할 수 없다. 선교사를 돕는 손길도 후원도 안 내밀어질 뿐 아니라 무릎으로 받들어주는 기도도 안 하게 마련이다. 우리 교회도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약속이 부흥의 불길로 타오르게 해주실 것이다.

▶<여러 개의 길, 하나의 길 -달라이라마 강연을 듣고> :전보애 교우

'달라이 라마'를 나도 그 분 이름인 줄 알았더니 김현진 목사님의 지난 주 글을 읽고 바로 알았다. 그 집회에 나도 꼭 가보려 했지만 시간 안에 끝내서 보낼 프로포잘 기한이 있어서 못 갔는데, 대신 가서 잘 듣고 관찰한 내용을 글로 알려줘서 역시 내 할 말은 "고마워요" 한마디다. 내용을 잘 파악해서 능란하고 명쾌한 글 솜씨로 명료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내가 가서 들은 것보다 더 잘 이해가 된 것 같다. '전보애'는 전부터 내가 '전보배'로 불러온 소중하고 사랑스런 교우다. 우리 교회에 이런 젊은이들이 기라성처럼 둘러싸이기를 간구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주실 하나님께 아뢰며 찬양을 올려드립시다.

포도나무 향기: <베어진 고목> :김현진 목사님

주차장에 들어서면 먼저 차를 대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베어진 고목이 있던 그 줄을 오늘도 찾아 들어갔다. 웬일인지 그 자리가 시원스레 넓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회보를 받아보니 드디어 고목이 베어졌다는 것이다. "나무인지 철골 구조물인지 모를 지경의 고목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잘라내고 나니 거기엔 넓은 하늘이 시원스레 열려있다." 는 소감을 읽다가 문득 우리 신앙의 자세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하늘을 가리고 안 보이게 하는 고목 가지나, 거침돌이 되어서 마땅히 봐야 할 하늘과 하나님을 못 보게 하고 있지나 않는지,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한 번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다. 나로 인해서 친구가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고, 나의 진한 사랑과 결곡한 믿음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이웃과 친구를 하나님께로 인도한 기쁨처럼 큰 기쁨이 있을까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신 그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바로 온유한 자다. 온유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불쌍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간절한 마음의 소유자다. 이런 온유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 한 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의 영토를 확장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행여나 내가 베임을 당한 나무처럼 군더더기와 엉성한 철골이 바리케이트처럼 하나님께로 인도되어야 할 영혼을 가리고 있지나 않는지 기도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1973 1월에 창립예배를 본 버팔로한인장로교회에서 지금까지 33년이 넘도록 이 교회를 붙들고 있는 한 부부가 이 교회의 '지키미'로 알고 그 자리를 지키며 버티고 있었던 자세에 뭔가 거침돌이 될 빌미는 없을까?" 이런 자세로 스스로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놓고 반성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이런 글을 읽는 자체를 은혜로 새기고 있다. 김석연 (장로,UB 명예교수)


- 2006년 10월 1일 -

 

한국에 대학 졸업을 앞 둔 가장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의 아버지께서는 친구가 대학교 1학년 때,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식물인간이 되셨다.  지금까지 움직이시지도, 전혀 반응을 보이시지도 않고 계시는데, 친구는 물론 가족 모두 힘들어하는 건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얼마 전, 친구가 나에게 요즘 들어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아빠께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동생들이 낙담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엄마께서 절망하지 않으시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고 얘기했다. 나 역시도 친구 가족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한다. 난 기도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그 동안 내가 소홀했던 사람들의 이름이나 얼굴이 기도 중 문득 나올 때도 있고, 내게 기도제목을 나누어 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있고, 내가 기도를 해주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고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 어디서든지 눈을 감고 나는 기도를 한다.


나는 기도를 하면 자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각난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성당에 다녔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교회에 다니시면서 그토록 우리 가족을 교회로 인도하시려고 애쓰셨다.  수십 년을 새벽기도를 다니시던 두 분이셨는데, 아빠께서는 두 분 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도 새벽기도를 다니신다고 항상 만류하셨다. 내 기억에도 새벽기도를 가시다가 넘어지셔서 다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항상 새벽기도를 다니시면서 우리에게 예수님 말씀만 하셨다. 절대 잊혀지지 않는 게 있는데, 할아버지 댁에서 저녁을 함께 먹을 때면 동생과 나는 항상 지치곤 하였다.  특히 할머니의 식사기도는 절대 끝이 보이지 않는데, 모든 친지들의 이름을 거론하시면서 눈앞에 보이는 그 맛있는 음식들을 외면한 채 몇 십 분씩 기도를 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동생과 나도 눈을 감고 기도를 하다가… 할머니께서 끝내시기만을 기다리다가… 결국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배고파 죽겠는데 먼저 먹으면 안될까?" 그러고는 항상 먼저 먹었다. 결국은 아빠께서 할머니께 그만 진지 드시라고 말씀하시고는 하셨다.


미국으로 이민 오기 한 달 전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는 기독교식으로 지냈는데 그 때 참 많이 생각하고 후회도 하였다. 어린 내가 할아버지와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하나님과의 기도였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놓치고 살아오다 할아버지를 그냥 보내드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근데 마음이 참 편안하였다. 만약 미국에 오고 난 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면 한국에 쉽게 갈 수도 없었을 텐데, 한국에서 장례를 함께 하였다는 것이 엄마, 아빠께는 정말 감사드릴 일이었나 보다.  "요단강 건너가 다시 만나리."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면서 아빠께서 참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셨다. 가끔씩 아빠를 보면 나는 기분이 좋다.  가게 손님들께 교회에 다녀야 한다며 회보 한 권씩 손에 쥐어주시면서 전도에 힘쓰시는 것을 보면 내가 놀랜다. 그렇게 식사기도에 질리신 것 같아 보이시던 아빠셨는데, 난 아직도 식사기도를 놓치지 않고 하시는 – 때로는 밥을 펐던 숟가락을 든 채 식사기도를 하시기도 하는 – 아빠를 보면서 내가 놀랜다. 그 변화가 참으로 은혜스러워서 말이다. 할아버지 덕분인 것 같다.


늦게 시작한 미국생활. 요즘 들어서 더더욱 많이 드는 생각인데, 어쩌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수 십 년 동안 하셨던 그 새벽기도의 응답을 하나님께서 우리가족을 통해서 지금 보여주시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음 주에는 드디어 우리 가족이 이사를 한다.  미국에  ‘우리 집’ 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고 뿌듯한지 모른다. 비록 남들보다 늦게 건너 온 미국이지만 늦게 온 만큼 더 잘하고 싶어서, 실패한 이민생활을 하고 싶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기도하였다.  그러기를 3년, 우리 가족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아리랑 레스토랑’ 과 ‘우리 집’을 얻게 되었다.  이 결과가 눈앞에 보이니 얼마나 주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모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기도하는 것이 있다. 엄마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시고, 아빠도 가게 일 때문에 여유로움을 갖기 힘드시며, 미래에 대해 방황하는 동생을 보면 내가 지금에 절대 만족치 않고 주님께 더 기도하고 간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래도 지금의 우리 가족이 비단 내 기도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많은 분들께서 우리 가족을 위해 해주셨던 기도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우리 가족의 지금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다는 게 정말 슬프지만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그래서 요즘 새벽기도 때 더욱 더 두 분이 생각나는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나는 배웠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 – 주님께서 원치 않는 길을 내가 걷다가 절망하고 다시 새로 또 걸을지도 모르나 나는 믿는다.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끌어주실 주님이시라는 것을.


P.S. 우리 멋진 성도님들! 제가 '쉴만한 물가' 원고 수거 담당자인거 아시죠? 제가 조금만 다가가도 놀라시고, 도망가시고, 대화를 회피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이 계십니다. ^^;  성도님들의 소중한 글 한편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적극 참여해주시고, 저 보면 도망가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김초롱(청년부)


- 2006년 10월 1일 -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몇 교회 다녀보게 되었지만, 새로운 신자는 그 믿음의 정도에 상관없이 일정교육을 이수해야 정식교인이 된다는 말에 걱정 반 설레임 반이었다. 아직 여러모로 성숙하지 못한 나의 속내가 드러날까봐 걱정이었고, 어쩌면 나의 많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설레임이었다. 버팔로 한인장로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지 한 달 여쯤이 지나서였던가, 7월 어느 날 드디어 교육이 시작되었다. 주일 점심 후 약간 졸리울 수 있는 시간, 오후 1시 반, 조그만 방에서 첫 교육이 시작되었다. 교육은 매 주일에 한번, 모두 5번에 걸쳐서 이루어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교육대상자는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모두 10여명쯤. 연세가 많으신 분도, 젊은 사람도 모두 갓 입학한 학생같은 표정으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강사는 쪽집게로 소문난 김현진 목사님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유인물이 돌았고, 그 중에서도 핵심만을 뽑아서 말씀해 주셨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알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이었다. 믿음이 무엇인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건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건지 등등. 그리고 그런 기본적인 내용들이 성경에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를 꼭꼭 집어가시면서 설명해주셨다. 덕분에 제법 졸리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잘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휴가 시기였고 귀국하는 분도 있었는지라 아쉽게도(?) 5주차 교육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개인적인 숙제(?)로 대신하게 되었다. 하루에 성경 2장 읽기.


교육의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대부분 기본전제로 잘 얘기하지 않는 원칙/원리들에 대해서 조금은 그림이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진실한 믿음이 무엇이고 그것이 삶에서 어떻게 투영되어야 하는지. 결국 자아를 위함보다 타자를 위한 언행일치, 신행일치(信行一致)가 아닐런가. 결론적으로, 교육은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문득, TV에서 가끔 보는 광고가 생각난다. Know more, do more, be more!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의 조직문화인 ‘동기(같은 기수)’문화를 많이 살리지 못했던 점이다. 입회동기들 다시 한번 모여 볼까요? 김대종 교우


- 2006년 9월 17일 -

산딸기 있는 곳엔 뱀이 있다고 오빠는 그러지만 의심 많은 누이 동생은 믿지를 못합니다.

인생에 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서를 보면 이 땅에서 오래토록 장수한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들께서 심한 병마에 시달리다 임종하시는 것을 보면 장수하는 것이 진정 축복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임종의 순간에 곧바로 하늘나라로 들려 올라감으로써 죽음을 굳이 멀리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오래 살고 싶어하는 것은 역시 죽음과 썩어가는 육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연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언젠가 찾아 올 그 날 이전에, 알게 모르게, 누구나 서너 번씩 예행연습의 죽음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첫 번째 기억나는 것은 대학 입학 후 어느 여름 날, 친구들과 멱을 감으려고 뚝섬으로 물놀이를 갔을 때입니다.  장마가 지난 지도 꽤 됐건만 물결이 센 듯 싶었습니다.  그런데 근처에서 역시 놀러 나온 여학생 중 한 명이 물살에 밀려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앞 뒤 생각 없이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구조 경험이 전혀 없는 저로서는 그 여학생한테 꼭 붙들려 둘 다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습니다. 그 때 ‘아, 이제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고 별로 무섭다는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마침 수영 잘하는 사람이 근처에 지나가다 둘 다 구조를 받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이혼의 경력이 있는, 그러니까 결혼생활에서는 재수생입니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시험을 보면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었는데, 인생의 큰 관문 – 출생, 결혼, 죽음- 중 두 번째 관문에서 떨어진 격이지요. 자존심이 몹시 상한 것은 물론이고 어찌해야 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부모 형제에게서 떨어져서 이 세상에 홀로 서 있는 기분으로, 그 옛날 물에 빠졌을 때처럼 수렁에 깊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인데 무섭지는 않으나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간의 제 삶이 육은 살았으나 영이 죽어있던 것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지요. 이 때를 계기로 당시 다니던 침례교회에서 처음으로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근래에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은 클리브랜드에서 버팔로로 오는 90번 국도상에서였습니다. 초 봄으로 해가 중천에 떠 있었고, 가로숲이 무성해서 도로 면이 그늘에 가려 있었지요. 전면에 위험이 있으리란 예측을 못한 터에 차가 휙 하고 미끄러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차 바퀴가 ‘ black ice’ 위를 지나고 말았습니다.  차가 눈에 덮인 분리대를 거쳐서 거꾸로 오는 국도를 향해 밀려 나가고 있는 겁니다.  이 때도 옛날 물에 빠져 빨려 들어갈 때처럼 몸은 차 운전대를 잡고 있었으나 마음은 몸에서 분리되어 이상하게 차분한 느낌이었습니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은 고속도로니까 시속 60마일로 계속 지나가는데, 그 사이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서 같은 방향을 향한 채 차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애들은 뒷자리에서 고이 잠들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지요.

저는 대단한 겁쟁이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땐 밤에 화장실에 혼자 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고, 동네 아이들과 싸워 본 기억이 없습니다. 막상 주위에서 부추겨서 싸울 자세를 취했다가도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고, 육상반 단거리 선수로 뽑힐 만큼 뜀박질을 잘했기 때문에 쉽게 위기를 모면하고는 했습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였는데, 몇 번의 가 죽음을 통해서 배운 것은 막상 위기의 순간에 부딪히면 그리 겁이 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걸 닫고 나니까 이제 남은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 같고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 작은 은사 하나를 받았습니다. 두렵고 성령 충만한 순간이었습니다. 허나 어리석게도 그것으로 믿음을 도통하는 줄 착각했습니다. 그 뒤 몇 년 동안 계속 밀려오는 의문, 회의, 시험들은 예전보다 더욱 어려운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차라리 전 날의 미적지근했던 시절이 더 뼈저리게 생각나고는 하였습니다. 결국 느끼고 배운 것이 있다면 우리 삶에서 ‘덤’이란 없다는 겁니다. 헛되이 살아왔다 느꼈던 지난 날은 앞으로 남은 여생을 위한 거름이었거늘, 이제는 잡초를 뽑아주고 잔가지를 쳐서 사뿐히 들려 올라가야 할 줄 압니다.

어느덧 여름은 가고 가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곧 낙엽이 질 것이고 무심코 그 위로 발을 내딛을 때 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낙엽이 들리면,  "아이쿠" 그제야 뱀 조심하라던 오라비 말을 들을 걸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한심한 우리들이고 지극하신 주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심건일 (의사, 집사)


- 2006년 9월 17일 -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YFC(Youth For Christ)란 선교 단체를 통해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따르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원래 미국에서 시작되었는데 김장환 목사님 (수원 중앙 침례교회 원로 목사, 극동 방송/ 아세아 방송 사장)이 한국에 들여와서 많은 청소년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관이었습니다. 매 주 토요일마다 집회를 열어서 예수 믿는 성악가나 유행 가수를 초청하여 공연을 한 후, 김장환 목사님의 짧고도 명쾌한 메시지 혹은 이동원 목사님 (당시 YFC 대표, 현 지구촌 교회 담임)의 핵심을 찌르는 설교로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믿기로 결심하는 상당수의 학생들을 상담해주고 교회로 인도하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이나 그 때나 청소년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기에 고등학교 3년간 이곳은 저의 집과 같았습니다. 건물 안에 실내 농구장, 탁구장, 독서실 등이 구비되어 있어서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이곳으로 직행하곤 했습니다. 이 선교 기관은 당시 수원이라는 중소 도시에 기독교 문화를 전하는 중심에 있었습니다. 복음을 모르던 학생들이 편하게 운동하러 혹은 독서실에 공부하러 왔다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이곳을 통해 일어났고, 상당수의 학생들이 목회자로 결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경연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매주 집회 때마다 학교 대항 성경퀴즈대회를 열어서 성경 암송의 유익을 널리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당시 이해도 잘 못하던 로마서의 상당 구절을 외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더듬 더듬 기억하는 구절의 대부분이 이 시절에 외웠던 내용입니다.


되돌아 보면 이 3년 간의 세월이 주님 앞에 순전하게 헌신했던 시간이라 여겨집니다. 교실마다 다니며 전단을 나누어 주며 친구들과 후배들을 하나님께 인도했었고, 수련회에서 뜨겁게 기도하며 주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많은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시 준비에 바빠서 이러한 선교 단체의 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는 형편이 안타깝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는 말씀과 같이 YFC를 통하여 어린 시절에 주님을 알게 하고 삶을 옳은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허찬영 (본교회 장로)


- 2006년 9월 3일 -

 

WC는 North American Mission Board에서 주관하는 Mission Conference로, 대부분의 주에서 여름마다 열리며,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그 지역 사회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복음의 중요성을 깨닫는 실천 중심의 수련회입니다.


3년째 이 수련회에 참여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감도 있었고, 예전보다 쉬울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뒤엎고 Group leader라는 직책을 맞게 됨과 더불어, 제 모교회인 델라웨어 한인침례교회에서 참가하는 Youth 아이들은 이 수련회에 처음 참가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어서 많은 걱정과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주님께 의지하지 않고, 나의 힘으로 준비하려니, 걱정과 근심이 어느새 맘 가운데 자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버팔로에서 날아오는 독수리 2,4,5호(지은자매, 종휘&병훈형제)가 이 수련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멀리서 오는데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우리 Youth 아이들을 잘 인솔하여 다녀올 수 있을까, 아이들이 다치거나 힘들어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련회를 준비하는 PRE-STUDY 과정 속에서 주님께서 전도서 3:9의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두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 수고하려고 모였는데, 주님께서 개개인의 길을 인도하여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의 자식들이, 그분 위해 헌신하겠다고 무작정 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더불어 그들의 삶을 주님의 축복으로 채워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런 말씀 가운데, 내가 걱정할 것도 염려할 것도 없고, 오직 인도하심 따라 기도와 간구로 따라야겠다는 결심을 되새겼습니다.


Norfolk, Virgina에 도착한 첫째 날, 독수리 2,4,5호와 저 3호, 그리고 델라웨어 교회 Youth Group 아이들은 이전에 알았던 사람들처럼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John형~" "Paul형~"을 외쳐대며 따랐고, 여자 아이들은 지은자매 곁에서 떠날 줄을 몰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됨을 시작으로 우리는 주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WC에서의 하루의 일과는 이렇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자기 crew member들과 각자의 work site로 출발합니다. 그곳에서 QT로 하루를 열고 각자 맡은 일을 하게 됩니다. 지붕 고치는 일, 페인트 칠, 창문을 고치는 일, 휠체어 램프를 만드는 일 등. 이번 WC를 계기로 서로 처음 만난 crew member들이지만, 주님을 위해 모인 만큼 서로 격려하고 기도해주며 주님을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오후 3시에 돌아와 샤워 전쟁을 치른 후 저녁을 먹고, worship center로 향합니다. 우리 교회는 앞쪽에 자리를 잡고, 뜨거운 마음으로 찬양하였고 때로는 단 앞에 나가 서로를 위해 눈물로써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Worship후 들은 설교 말씀도 그날 그날의 상황에 맞기에 너무 은혜가 되었고, 말씀 후 각 교회끼리 갖는 Group devotion시간에는 하루 동안 인도하신 그분의 손길을 나누며 격려하는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전체 삶 중 점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짧았던 일주일이었지만, 주님을
위해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너무나도 놀랍고 감사한 것은 교회 멤버들 사이에 또한 개개인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 왔더니…  주님께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분의 방법대로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우리 개개인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의 것을 버린 그곳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상상치 못한 큰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영적 회복을 기대하며 왔던 한 자매에게는, 영적 회복에 더불어 밝음과 자유함까지 채워주셨습니다. 큰 기대함 없었던 형제였는데, 그에게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하는 담대한 믿음과, 주님을 더욱더 알고 싶어 하는 맘, 주님의 일에 쓰임받기 원하는 소망으로 채우셨습니다. 더불어, 매일 삶 가운데 넘치는 기쁨과 평안을 보너스로 주셨습니다. 어떤 자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써 기도해야 한다는 것과, 그를 주님께 이끌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부담 가운데 왔던 자매에겐 그 걱정들 중 무엇 하나 일어나지 않게 해주시고, 단지 기쁨과 평안 가운데 잘 마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더불어, 이번 기회를 통해 주님 안에서 새로운 동역자들을 발견하는 선물까지 주셨습니다. 또 다른 형제에겐 WC 기간 동안 경험한 주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이 매일의 삶 가운데서도 계속되길 원하는 간절함을 허락하셨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교회 장난꾸러기 다섯 녀석들의 삶에도 주님께서 변화를 주셨습니다. 음식에 까다롭던 아이가 반찬투정을 하지 않게 되고(그곳에서 일주일 내내 미국 음식만 먹어야 했었기 때문이죠), 부모님께 반항의 기미를 보였던 아이가 순종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국말을 잘 못해서 영어 예배에만 참석하던 아이가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수요일 어른 예배에도 참석합니다. 수련회 동안 어떤 한 애가 밉다며 저에게 고자질을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그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배시간에 장난치던 녀석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중 한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예배드리니 진지해지자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무엇을 기대하고 갔는지 기억조차도 잘 나지 않는 우리였는데, WC를 통해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이야기 하자니 끝이 나질 않습니다. WC를 다녀와서 다들 WC blue라는 후유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왠지, 아침 6시면 자기도 모르게 눈이 떠지고, 허물어져 가는 집을 보면 지붕 위에 올라가야 할 것 같고, 아이들을 보면 막 챙겨주고 싶고, 형 누나를 보면 그냥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은 것들.. 그리고 찬양시간이면 왠지 앞에 나가야 할 것 같고, 무엇보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이 때가 주님을 전할 때다 싶어 반가운 마음들…


그분을 위해 비웠던 자리에, 주님께서 약속하셨던 새로운 것들로 채워주신 귀한 이 시간… 다만 한 가지, 그 비웠던 깊이가 너무 얕아 이 채움을 흘려버리거나 다시 나의 것들로 금방 채워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참히(청년부)


- 2006년 8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