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교회 회보에 실린 글들을 읽고-
한국에서 근 석 달의 선교사역을 마치고, 길갈과 같은 내 본고장 교회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게 새로운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 질곡 속에서 무거운 시름에 겨웠던 납덩어리 흔적은 내 가슴에서 사라지고, 싱싱한 분위기가 감도는 교회에 들어서고 보니, "하나님 아버지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우리 교회를 버리신 줄 알았더니 살아계셔서 친히 역사하시는 교회로 부흥을 일으키셨군요!"
"딴은! 예배 끝에 고형원 작곡 '부흥!'을 청년들의 인도로 힘차게 불러온 응답이 곧 부흥의 불길로 타오르게 하셨군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청년들이 인도하는 찬양과 경배로 시작하는 이런 예배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주님은 알고 계셨지요. 한 20년은 젊어진 우리 교회, 사랑합니다. 해골골짜기 같던 우리 교회, 무너진 땅에 생수를 채워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킴 같이, 우리 교회를 다시 일으키시라고 금요일 밤마다 에스겔서를 읽으며 부르짖은 부흥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군요! 오늘 여기까지 함께 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줄기줄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목으로 가슴으로 내리 흐르는 감사가 묵은 아픔을 씻어주는 8월 20일 주일 아침은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얼룩진 예배를 드렸다.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올려드릴 감사는 우선 눈물뿐이었다. 무엇보다 성도들의 영혼의 소생을 위해 목회자와 성도님들의 글이 실린 회보가 나와 더더욱 감사한 마음이 넘쳤다.
주일을 거듭하는 동안 점점 두꺼워지는 교회주보를 받고 보면 "이걸 누가 다 읽을까?" 하는 소감도 없진 않았지만 어느새 나는 주보의 글을 읽는 것이 기쁨으로 안겨오는 것을 체험하면서 오히려 메마른 이국생활에서 읽을거리가 궁한 상황에 이렇게 글로 읽는 생명의 양식을, 더구나 교우들의 글까지 곁들여서 읽는 감상은 새로운 감사로 다가왔다.
지난 주 회보를 읽고 받은 바 감동이 커서 몇 자 소회를 적어보았다.
▶영혼의 소생을 위하여-<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이런 문제를 다룬 자체가 은혜였다. 쉬이 다루지 않고 싶어 하는 문제를 주보에서 다루어준 것은 또 하나의 참 감사였다. 한 가지 언급을 더 한다면 예수의 재림을 모르는 이에게 실감나게 알려주는 일이 곧 선교요 영혼구원 사역이라는 것이다.
장사한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분부를 하러 오신 것이 아닌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면 그때에 내가 다시 너희에게로 오마" 약속하신 그 유언을 이루어드리는 일이 곧 선교의 지상목표다. 하늘의 상급은 영혼구원을 많이 한 자에게 내리는 상이라 하였는데, 상급을 바라는 선교행각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사나 죽으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하는 일이 하나님의 자녀 된 첫째의 의무라 하겠다.
▶그리스도인의 영화보기: <죽음의 터널 저 편은 어떤 곳일까?> 글: 김성민 장로
죽음의 터널 저편을 그려준 영화이야기는 죽음 뒤의 일로 번민이 있는 인생들에게 참 실감나게 위로를 주는 글이다. 죽음의 터널 저편의 세계를 알려주는 일이 크리스천의 사명 중의 하나인즉, 사후의 삶에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 영혼 구하는 일에 얼마나 큰 역할이 되는지 실감나게 읽으며, 이런 글을 써갈 수 있는 마음은 부자요, 생명과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장로님으로서 더구나 육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인술을 베푸는 장로님으로서 "참 아름답도다"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영화의 결론이 제작자의 신관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는 별문제로 하고, 죽음 뒤의 문제를 이렇게 아름답게 다루어준 영상물을 소개하면서 죽음 뒤에 오는 위로를 다룬 글은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의 향방과 위로와 용기를 주기에 족하다. 누구나 꼭 읽어보아야 할 글일뿐더러 주보가 이렇게 풍성한 글 잔치로 메우어진다는 자체를 감사해야 할 일이다.
▶<놀라운 우주선 지구 이야기-Our Amazing Spaceship Earth(1)> 글:이은모 장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엄청난 스케일을 다시 상기하면서 문득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쿠루세이드가 기억났다. 그레함 부흥사는 쿠로세이드 집회 시작에 늘 같은 서두로 이야기를 풀어 내린다. "저 밤하늘의 헤아릴 수 없는 별들, 그 많은 갤럭시들, 누가 그 놀랍고 엄청난 별들을 만들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권능과 창조의 솜씨가 우주에 찬 그 창조의 오묘함을 아는 사람은 복 되도다"로 시작한다.
그분의 뜻을 모르는 이는 "왜 늘 같은 내용만 다루는가?" 하겠지만, 빌리그레함 목사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놀라운 창조의 신비와 스케일을 실감나게 전해주기 때문에 빌리그레함 목사님이신 것이다. 나는 많이 부족한 인생이지만,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이 찬송(40장)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솟구친다. 더 더욱 솟구치는 대목은 "주 하나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이다. 그레함 목사님의 집회가 이렇게 시작되기 때문에 공감하는 뭇 가슴들이 활짝 열리어 그 대형집회시간이 일관한 감동으로 몰고 가지만 그 하나님이 세상에 다시올 때, 아니 우리 인생이 끝이 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는 날 "당신이 주를 모른다 했으면 하나님도 모른다 하실 것이요, 당신이 주를 시인했으면 주님도 당신을 시인해줄 것이라"는 결론이 쿠루세이드의 결론이다. 진리는 하나요, 복잡하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인 것이다.
이은모 장로님의 글 솜씨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놀라운 우주선 지구 이야기를 다룬 글을 통한 만남은 새로운 감격이요 기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신비를 그렇게 상세히 공부해서 알려준 노력은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사합니다! 우리 대신 그렇게 열심으로 탐구해서 '지구가 기막힌 우주선으로 설계되어있음'을 실감나게 알게 해주시니..." 하는 한 마디가 새어 나왔다. 우리 주보가 이런 글로 채워질 때 우리 교회를 사모하여 찾아오는 믿음의 친구가 불어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지구'라는 그 기막힌 우주선 이야기 때문에 나는 연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흥얼거리면서 기쁨이 차 올라오는 데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은 바로 밤하늘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을 보다가 얼어붙었던 땅에서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향기가 나고 열매를 맺는 아름다움을 보다가 거기에 나비와 하밍버어드가 날아오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서 감탄하는 글을 쓰다가 그 속에 감추인 초인간적 능력을 발견하고 그 창조의 오묘함을 찬양하는 글을 쓰다가 하나님을 스스로 발견한 문학소녀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주보에 실린 글을 통해서 성도간의 심중의 토로가 번져 나오고, 이 시대에 '버팔로한인장로교회 라는 같은 방주'를 타고 가는 기쁨이 오랜만에 되살아나니 이로써 우리가 다시 누리는 축복을 하나님께 참 감사로 올려드려야 하겠다.
▶ 선교소식, 교계소식: <탈북자 사역하다 감금된 미국 국적 한인 목사 추방>:
이런 글을 통해서 순교를 각오하는 선교사님들의 심정을 바로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2002년 봄 4월에 중국 남방 오지를 2주간 순례할 때도 붙잡힐 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2006년 7월 이번 중국 중경(重慶)에서도 누리글 연수회를 하는 일주일 동안 보안대원이 찾아와서 위기를 겪었다. 생명을 두려워하는 이는 선교를 할 수 없다. 선교사를 돕는 손길도 후원도 안 내밀어질 뿐 아니라 무릎으로 받들어주는 기도도 안 하게 마련이다. 우리 교회도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약속이 부흥의 불길로 타오르게 해주실 것이다.
▶<여러 개의 길, 하나의 길 -달라이라마 강연을 듣고> 글:전보애 교우
'달라이 라마'를 나도 그 분 이름인 줄 알았더니 김현진 목사님의 지난 주 글을 읽고 바로 알았다. 그 집회에 나도 꼭 가보려 했지만 시간 안에 끝내서 보낼 프로포잘 기한이 있어서 못 갔는데, 대신 가서 잘 듣고 관찰한 내용을 글로 알려줘서 역시 내 할 말은 "고마워요" 한마디다. 내용을 잘 파악해서 능란하고 명쾌한 글 솜씨로 명료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내가 가서 들은 것보다 더 잘 이해가 된 것 같다. '전보애'는 전부터 내가 '전보배'로 불러온 소중하고 사랑스런 교우다. 우리 교회에 이런 젊은이들이 기라성처럼 둘러싸이기를 간구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주실 하나님께 아뢰며 찬양을 올려드립시다.
▶ 포도나무 향기: <베어진 고목> 글:김현진 목사님
주차장에 들어서면 먼저 차를 대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베어진 고목이 있던 그 줄을 오늘도 찾아 들어갔다. 웬일인지 그 자리가 시원스레 넓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회보를 받아보니 드디어 고목이 베어졌다는 것이다. "나무인지 철골 구조물인지 모를 지경의 고목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잘라내고 나니 거기엔 넓은 하늘이 시원스레 열려있다." 는 소감을 읽다가 문득 우리 신앙의 자세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하늘을 가리고 안 보이게 하는 고목 가지나, 거침돌이 되어서 마땅히 봐야 할 하늘과 하나님을 못 보게 하고 있지나 않는지,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한 번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다. 나로 인해서 친구가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고, 나의 진한 사랑과 결곡한 믿음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이웃과 친구를 하나님께로 인도한 기쁨처럼 큰 기쁨이 있을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신 그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바로 온유한 자다. 온유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불쌍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간절한 마음의 소유자다. 이런 온유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 한 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의 영토를 확장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행여나 내가 베임을 당한 나무처럼 군더더기와 엉성한 철골이 바리케이트처럼 하나님께로 인도되어야 할 영혼을 가리고 있지나 않는지 기도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1973년 1월에 창립예배를 본 버팔로한인장로교회에서 지금까지 33년이 넘도록 이 교회를 붙들고 있는 한 부부가 이 교회의 '지키미'로 알고 그 자리를 지키며 버티고 있었던 자세에 뭔가 거침돌이 될 빌미는 없을까?" 이런 자세로 스스로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놓고 반성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이런 글을 읽는 자체를 은혜로 새기고 있다. 김석연 (장로,UB 명예교수)
- 2006년 10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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