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야기 (마지막)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1
(4) 다시 물(water)이야기 ...... Adirondack Park를 벗어났다!
언제까지나 머무르고 싶었던 Saranac Lake 주변을 벗어나 우리는 이제 3번 도로
를 타고 달릴 준비를 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산책할 때는 뿌옇게 물안개로
가득하던 호수가 어느새 맑은 얼굴이다. 오늘은 서쪽으로만 달려야 한다. 지도를 보
니 달리는 길에 또 많은 호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수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마을들이 어우러져 있을 것이다.

숲을 뚫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Tupper Lake라는 안내와 함께 강 주변으로 사람들
이 모여 있었다. 일단 차를 세우고 우리도 함께 그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시골 장
터’ 맞다....! 그것은 시골 장터였다. 각각 텐트를 치고 중고 물건부터 시작해 새 물건
까지, 과일에 야채, 햄, 여러 음식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윤하, 재하에게도 용돈을
주고 각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사오게 했다. 또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깊은
산골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했는데 어디서든,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은
잘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되었다.

나와 남편은 자전거로 호수주변을 돌며 이 한가롭기 그지없는 시골 마을을 한 장,
한 장 필름 속에 저장해 갔다.
서쪽 끄트머리, 숙소가 있는 Water Town를 향하면서 드디어 우리는 Adirondack
Park를 벗어났다. ‘...... 언제 그곳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묻는 말에 남편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Water Town에서 우리는 다시 북쪽으로 81번 고속도로를 타고 Alexandria Bay로
달려갔다. 책이나 지도에서만 보았던, 수업시간에 설명으로만 들었던 오대호 중 하나
인 Ontario 호의 입구가 눈앞에 펼쳐 져 있었다. 이곳은 또 다른 ‘신세계’였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지으신 피조물들을 통해 빛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곳은 미국과 캐나다를 사이로 Thousand Islands가 여기저기
에 그림처럼 떠 있었다. 우리는 Two nation Tour라는 미국과 캐나다 사이를 돌아보
는 2시간 15분의 Boat Tour를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서부터 호수인지 알 수가 없었다.버펄로에 와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것은 ‘하늘이 무~척 넓다’는 것이었다. 산도
없고, 높은 건물도 없는 버펄로에서 하늘은 늘 지평선 끝까지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온갖 묘한 그림들을 그려 놓곤 하던 구름과 지는 저녁 노을빛은 나와 남편보다 아이
들이 먼저 환호성을 지르게 하였다. 산책할 때면 난 늘 카메라를 들고 다녔지만 그런
노을 빛 앞에서는 감히 카메라 렌즈를 들이 대고 싶지 않았다. 결코 그 빛깔을 그대
로 옮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는 그 넓디넓은 푸른 하늘도 부족해 저 너머 지평선 끝에
서 또다시 연결되고 있는 또 다른 푸르름.

호수가 하늘같고, 하늘은 호수 같다!
누군가에 의해 매순간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몇 번이고 덧칠을 하여 다시 수정을
하면 더 멋진 그림이 그려지는 유화(oil painting)처럼 끊임없이 덧칠과 수정이 반복
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섬들. 어떤 섬은 그 크기가 딱 집 한 채 지을 정도의 크기인데 정말 그
크기에 맞추어 딱 집 한 채만 지어 놓고 있는 곳도 있었다. 집 주변으로 돌아다닐 틈
도 없었다. ‘아니, 비가 많이 오거나 파도가 치면 저 곳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저
렇게 할 생각을 했지? ’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이곳은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St. Lawrence Seaway 가 이루어져 있고, 거대한
Ontario Lake의 입구인 이곳은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날 걱정도, 파도도, 지진대가
지나는 곳도 아니어서.... 어느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곳이라고 한다. 그 자유로움
속에 마음껏 수상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물 속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나 물
위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가지로 같은 피조물들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이 지으신 이 거대한 자연을 마음껏 누리고 감사할 수만 있다면 이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또한 얼마나 큰 은
혜인가.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그 분이 지어 놓으신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허락하
신 그 은혜 가운데서 풍성히 거하며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실 거라 생각되었다.
서로 다른 나라의 깃발을 꽂고도 자유롭게 어울리며,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이곳
에서 하나님도 함께 기뻐하시리라 생각이 들었다.

“힘차게 부는 바람아, 떠가는 묘한 구름아
저 돋는 장한 아침 해, 저 지는 고운 저녁 놀
하나님을 찬양하여라저 흘러가는 맑은 물 다 주를 노래하여라
땅 위의 꽃과 열매들 주 영광 나타내어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 (찬송가33장)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시편 148:5)

✎이현주
 

여름 이야기 (3)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1-

(3) 숲(forest) 이야기 ..... Adirondack Park

모두들 흠뻑 젖었다. 함께 보트에 앉아 고생(?)을 했던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정
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 사람들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디 사람뿐인가 이곳 Sacandaga 호수도 Hudson
강줄기도 이 푸르른 숲의 나무들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오늘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남은 시간도 좋은 시간 되세요’라는 인사말과 서로 악수하는 것 외에
더 이상 아쉬움을 나눌 길이 없었다.

우리는 또 다시 87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Adirondack
Northway 이다. 고속도로는 어디를 가도 앞이 탁 트여서 기분 좋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방학 휴가 때면 사실 어느 고속도로를 가도 막히기 일쑤였다.
특히, 우리가 자주 가는 강원도 방향은 더욱 심했다. 그래서 늘 아주 이른 새벽에 일
어나 여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그 복잡함을 조금은 피해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복잡함 속에서도 아이들이 특히 고속도로 여행을 기대하는 데는 큰 이유가 있다. 바
로 고속도로 휴게소이다. 불과 3~4년 사이에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는 놀라울 정
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 미국이나 일본의 고속도로 휴게소와는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일단 크고 넓은 장소에 깨끗하고 예쁘장한 디자인의 건물들. 그리고
온갖 먹거리들. 향기 나는 화장실. 화장실은 그날 화장실을 담당하는 직원의 얼굴이
붙어있고 그 사람은 자기 이름을 걸고 관리한다. 이미 각각 민영화된 휴게소들은 서
로 친절하고 깨끗하게 관리하여 손님을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게 하고자 경쟁체제에
들어서 있다. 좁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우리는 늘 이렇게 온갖 아
이디어를 생각해내며 살아간다. 뉴욕 주 만해도 대한민국의 몇 배는 된다고 하는데
사는 사람 수는 겨우 서울과 경기도에 모여 사는 사람 수 정도가 이곳 뉴욕 주에 살
고 있다고 하니 무슨 말로 이 두 곳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러한 팍팍한 환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강퍅해지
는 답답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게 하는 것일 테고, 어두운 새벽 예배에 2~3만
명이 모여 그 기도소리로, 눈물로 새벽을 깨우는 에너지가 되었을 것이다.
‘길은 길로 연결되어 있다.’ 남편은 늘 운전할 때마다 이 말을 되풀이 한다. 가고있는 길에 확신이 서지 않으면 난, 좀 멈춰 서서 사람들에게 묻거나, 다시 지도를 짚
어가며 확인하면 좋겠는데 남편의 신념(?)은 ... 길은 길로 연결되어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만 한다. 잘못 갔으면 돌아 나오면 된다고. 정말 남편 말대로 이
Adirondack Northway야 말로 길은 또 다른 길이 되어 끝없이 연결되고 있었다. 이대
로 계속 가면 무엇인가 블랙홀이 나와 그곳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갑자기 어렸을
적에 보았던 ‘은하 철도 999’라는 만화 영화가 생각난다. 엄마를 찾아 끝없이 기차
여행을 하던. 아마 마지막 장면에서도 철이의 기차 여행은 끝나지 않았던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과 함께 위로 곧게 뻗은 소나무들. 마치 키가 일정하게 큰 군
인들이 사열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있는 모양이다. 공기에 민감해 오염된 지역에서
는 살기 힘든 참 귀한 나무라고 알고 있는데 이곳에 오니 우리나라 보다 훨씬 더 많
이 있다. 난 참, 어이없게도 ‘소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나무인 줄 알았다.(^^;)
숲은 늘 편안하다.

서로 같은 것 같으면서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너무나 다양한 초록의 빛깔들.
그림 속에서 나무나 산을 그려 숲을 색칠 할 때 한 가지 초록색만으로 표현을 하면
왠지 부자연스럽고 맛깔스럽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빛을 받는 각도에 따
라 또 다른 색깔이 연출되고, 드리워지는 각기 다른 그늘의 모양들. 부는 바람에 따
라 서로 다르게 팔랑거리는 크고 작은 잎사귀들. 그리고 그 서로 다른 다양함이 어우
러져 결국 하나의 숲을 이루고, 온갖 생명을 품어내며, 그 숲이 있어서 그 사이 크고
작은 호수들이 돋보일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그러고 보니 세상 속의 우리들도 참 숲을 닮았구나!
얼마를 달렸을까. 눈앞에 보이는 바위산과 그 아래 작은 호수... 어우러진 그 그림
같은 모양에 너무 홀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간 주변의 모든 것
이 정지된 느낌이다. 한국에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 중 ‘얼음 땡’ 놀이가 있는데 서로
함께 마음대로 움직이다가 술래가 된 사람이 ‘얼음’하고 외치면 순간 멈추어 서야 한
다. 그 때 움직이다 걸리면 술래에게 잡혀 그 사람이 다시 술래가 되는 그런 게임이
있는데 지금 눈앞의 풍경이 바로 그렇다. 누군가가 ‘얼음’하고 외친 모양 같다. 정지
된 고요 속에서 내 숨소리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고요함’ .... 늘 바쁘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의 현대인들은 늘 이
편안하고 부드러운 고요함을 꿈꾼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서
로 대화를 하다 생기는 몇 초간의 침묵도 어색해 하며 참지 못한다. 혼자 있을 때에
도 음악이든 TV 소리든 무엇인가 소리들로 쉽게 공간을 채우고 만다.

이 숲은 참 특이하게도 하얀 속살을 드러낸 듯 서있는 자작나무 숲이다. 바탕에는
바위를 깔고 여러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화려하게 드리워진 사이로 하얗고 가느다
란 아름다운 여인 같은 자작나무들이...... . 아래로는 산이 양팔을 벌려 무엇인가를
조심스레 감싸 안고 있다. 그 품안에 곱게 펼쳐진 작고 투명한 호수. 그 산과 호수는
태어나 한 번도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을 것 같다. 둘은 그렇게 사랑스러움으로 서
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숲과 사람은 참 많이 닮아있었다!
당연하다, 만드신 분이 한 분이시므로.
우리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북쪽으로 더 달렸다. Keene Valley를 지나고 82년도
쯤 엔가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Lake Placid를 지나 숙소가 있는 Saranac Lake에 도
착했다. 또 아들의 ‘배고픔’타령이 요란하다. 아무리 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외
치는 아들. 언제 사람이 될까...... ✎이현주

 

여름 이야기 (1)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1-

(2) 물(water)이야기 1 ...... Adirondack Mountains State Park

배고프다는 아들을 달래며 우리는 일단 먹을 곳을 찾아 숙소를 예약해 둔 Utica
로 향했다. Herkimer Diamond mines에서 북쪽으로 28번 도로를 타고 달리다 West
Canada Creek을 지나 8번을 타고, 다시 12번 을 통해 Utica에 도착했다. 다행이 숙
소 주변에 쇼핑센터와 식당들이 있어서 일단 안심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다시 90번 고속도로 타고 동쪽으로 달려 Albany 근처까지 이르렀
다. 24번 Exit를 통해 나가 87번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이제는 북으로 북으로만 달려
나갔다. 남편은 계속 운전을 하고, 난 지도를 보는 도우미다.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지도를 따라 가는데 그 곳에 지도에 있는 이름의 장소와 길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우리가 지금 달리는 목표지는 Sacandaga Outdoor Center. 그곳은
Sacandaga Lake와 Hudson River가 만나는 곳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Rafting을 하기
로 했다. 한국에서도 강원도 영월의 동강이나 인제 내린천에서 Rafting을 해 본적이
있어서 크게 부담스러운 것은 없었다. 그리고 여름 방학에 특히 아이들에게 이만큼
즐거운 놀이는 또 없다는 생각이어서. 하지만 한국에서는 비가 오지 않으면 금방 바
닥에 바위들이 드러나서 사실 때때로 Rafting이 위험하기도 했다. 보트에서 잘 못 튕
겨 나가면 바위에 부딪칠 수도 있으니까.

도착한 곳은 정말 깊은 숲 속 작은 오두막 같은 장소였다. 그 곳은 이미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목표한 Adirondack Park 내부였기 때문에 그 거대한 숲의 울창함은
차를 타고 달려도 때때로 나를 무섭게 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우
리는 10명 정도의 그룹으로 나누어 보트를 탔다. 우리 보트에는 터번을 쓴 이란인
부부와 윤하 또래로 보이는 두 딸을 데리고 온 미국인 부부, 그리고 우리 가족이 전
부였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보트의 리더 되는 분은 젊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나이
가 6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무척 능숙하고 건장해 보이는 어른이었다. 모두를 향해
young man, young lady...하면서 무척 즐겁게 농담도 잘 하셔서 보트에 오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일단 붙잡아 두는 것 같았다. 역시 기분 좋은 농담이란 나를 낮추고
상대를 올려 줌으로써 만들어지는 농담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일단 노를잡을 사람을 정해야 하는데 우리 배에는 4명만 필요했다. 가장 앞 쪽에 남편이 자원
해 앉고 다음에 이란 아저씨. 맞은편에 미국인 아저씨, 그리고 아들, 재하가 망설이
고 있는 사이 늘 넘치게 적극적인 딸, 윤하가 잽싸게 노를 잡고 앉아 버렸다. 아들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중요한 일 앞에 망설이며 적극적이지 못하면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다는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처음 하는 Rafting이 아닌 데도 왠지 언어와 얼굴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앉아, 흔
들거리는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똑같이 놀라고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며 쓸데없이 생겼던 마음의 빗장이 확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온 습관이 달라 문화가 다르고 말이 다르고 생긴 것이 조금 다를
뿐 사실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서로 조금도 다를 게 없음을 다시 확인했다.
내 옆에는 좀 몸이 거대한 미국 여자 분이 앉았다. 처음에는 배가 흔들려도 아무
것도 붙잡지 않을 것처럼 하더니(나 역시...) 나중에는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만 서로
다를 뿐 서로를 붙잡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야~ ”
“Oh, my God! "

Sacandaga Lake 물은 정말 맑았다. 물결은 비단처럼 부드러웠고, 그 주변을 둘러 싼
숲은 그림 그대로였다. 정말 하나님은 어쩌자고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인간에게 허락하
셨을까. 한국의 ‘동강’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자부했는데, 이곳에 오니 할 말이 없었다. 그
이름이 특이해 물어보니 인디언들이 붙여 놓은 이름이라고 한다. 금방이라도 숲에서 인디
언들이 휘파람을 불어대며 나올 것만 같았다. 아이를 안고 서 있는 젊은 인디언 아내와
카누를 타고 노를 저으며 사냥터에서 돌아오는 활을 맨 건장한 인디언 남편. 그들 가족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물결에 흔들려 비취어 왔다. 적어도 이 호수와 숲은 한 번도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구경했을 것 같지 않은데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탄 보트 맨 뒤에서 전체적으로 보트를 조정하고 있던 리더 아저씨에게 이곳
의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고 했더니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왠지 이 아저씨는 이 호수를
지키는 요정 같다. 아니면, 먼 오래전 이 호수와 숲을 누비고 다니던 인디언의 후손이라
도 되는 걸까? 하나님은 아름다운 자연을 지어 놓으시고 한 번도 우리에게 그것을 정복
하라고 하신 적 없는데, 다만 청지기가 되어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우리에게 있어 자연은
늘 정복의 대상이 되어왔다. 부디 이 호수와 숲이 언제까지나 잘 지켜지고 다스려지길
간절히 기도하였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의 나와 남편의 나이가 되어 자기 가족들과 함
께 다시 찾아 왔을 때에라도 부디 지금의 모습 그대로만 남아 있기를 .

주변 경치에 취해 얼마를 평화롭게 내려가던 보트는 이제 다른 보트와 물싸움을
시작했다. 이것은 참 한국과 똑 같았다. 이제 사람들은 보트에서 물속으로 점프를 하
기 시작했다. 내 옆의 여자 분은 물속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너무 큰 소리를 치며
나를 꽉 안아 내 갈비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숨이 막혔다. 안되겠다 싶어 내가 먼
저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처음 물속으로 뛰어 들 때는 순간 두려움이 몰려온다. ‘앗,
발이 닿지 않는 곳일 텐데... 너무 깊은 곳 아니야? 혹시 물뱀이라도 지나가는 것 아
닐까? 물속에 들어갔다 떠오르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지나가는 건 정
말 순식간이다. 나는 어느새 둥둥 떠 있고, 이제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물속에서 즐
기고 있다.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수영은 절로 된다. 물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면 너무
나 즐겁다. 하지만 때때로 보면 끝까지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
랬다. 아무리 남편이 괜찮다고 해도 나는 끝까지 힘을 빼지 못하고 힘들어 했었다.
그냥 힘을 빼고 있으면 둥둥 뜨는데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 해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
들은 나중에는 입으로 코로 물을 마시고 온갖 두려움과 위기감을 느끼며 즐길 수 있
는 그 즐거움들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은혜들을 주시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모든 근심
걱정들을 있는 대로 다하며 천 가지 만 가지 치밀한 계획들을 세운다. 늘 하나님 앞
에 맡깁니다, 하면서도 영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뭔지 내가 하나님을 도와야 될 것
같은 사명감(?)같은 것 마저 느낀다. 하나님께 만 맡겨 두면 뭔가 잘못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 있는 대로 힘을 주고 꽉 붙잡는다. 손을 놓으면 곧 죽을 것처럼. 그
리고 점점 지쳐간다. 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은가 하고 불평이 나오기 시작한다.
원망도 한다. 이제 정말 지친다. 그러나 무엇인가 붙잡을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순간 드디어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
가 힘을 빼고 오직 하나님께 만 믿고 맡기는 순간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마치
힘을 빼는 순간 구명조끼는 제 역할을 발휘해 내 몸이 둥~실 물 위로 떠오르듯이.
하지만, 구명조끼를 입고서도 물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은 늘 온갖 두려움이 지나가
듯,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데도 정작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면 늘 두려움으로 움츠
려 들고 내 힘을 빼지 못한다.

......언제쯤이면 이러한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마음껏 하나님 은혜를 누릴 수 있을까!
 
✎이현주

 

여름 이야기 (1)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1-

(1) 돌(stone) 이야기

이곳, 버펄로에 온지 7개월이 지났다. 이곳에 와 자동차가 생기자마자 ‘나이아가라
폭포’ 앞으로 달려갔다. 누가 붙잡아 주지 않으면 내 몸이 빨려 내려 갈 것만 같던
그 폭포는 그 이후로도 다섯 차례를 더 달려갔다. 그 곳에 가면 왠지 답답한 마음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은혜들을 깨달아 알게 했다. 절로 불평
하는 마음, 실망스런 마음들이 수그러들었다. 다행이 아이들도 그곳을 좋아했다. 이
폭포 앞에 서면 늘 다윗의 감사 기도가 떠올랐다.

“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
니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
고 하시나이까”(시8:3-4)

하나님은 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 지으신 자연을 통해 이야기 하고 계신다.
그 안에 있으면 마음에 바람이 지나 갈 여유가 생긴다. 온갖 피조물들을 통해 드러내
시는 그 분의 뜻과 생각에 눈길이 가고 귀가 기울여진다.
이곳에서의 이번 여름 여행도 가능한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그 일
정들을 잡았다.

이번 여행은 3박 4일로 잡고 아이들에게는 각자 알아서 자기 물건과 가방을 챙겨
준비하도록 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가니 또 이런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
다. 어렸을 적에는 이것, 저것 사실 아이들 물건 챙기느라 정작 나에게 필요한 것은
꼭 몇 가지 씩 빠트리곤 했었는데 한참 예민한 사춘기에 있는 아이들은 오히려 엄마
보다 더 꼼꼼하게 자기 물건들을 정리하였다. 물론 아직도 아들은 엄마의 잔소리로부
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90번 고속도로를 타고 SYRACUSE를 지나고 UTICA를 지나 30번 EXIT 로
빠져나갔다. 작고 소박한 HERKIMER라는 시골 동네가 나왔다. 그 곳 역시 어딜 가나
넓고 한가로움이 넘실댔다. 크고 작은 집들이 모여 있었지만 모두들 소박한 모습이었
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Herkimer Diamond mines를 찾았다. 분명
지도상에는 우리가 서 있는 지점으로부터 4.1 mile 위치에 있다고 했는데 대략 거리를측정해 달려가 보니 그런 장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그저 덩그런 벌판이 나왔다.
그사이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리고 우리는 다시 우리가 왔던 장소로
나와 지도가 예기한 지점부터 정확히 거리를 측정하기로 했다. 아들이 그 일을 맡았
다. 정확히 4.1 mile 정도의 위치. 아, 그곳은 조금 전 우리가 찾아 왔던 장소에서 정
말 100 m도 떨어져 있을 것 같지 않은 장소였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참고 갔더라면
우리가 찾는 장소였는데 우리는 그 자리를 의심하고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이런 일
이 이곳 버펄로에 와서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얼마나 참지 못하고 쉽게 안달함으로 일을 그릇
되게 하기 쉬운지를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항상 ‘돌’ 이라면, 눈에 힘을 주고 이리 저리 바라보는 남편과 아들은 특히 이곳에
서 crystal 찾기 체험에 흥미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비가 오는데도 땅을 뒤져
가며 그 속에서 자기만의 특이한 보석과 crystal 찾기에 몰두해 있었다. 바로 옆 박물
관에는 온갖 진귀한 돌과 화석, 보석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더욱 흥미와 관심을 유도하고 있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여기, 저기의 돌들을 깨며
살피고 있는 남편과 아들의 모습을 나와 딸, 윤하는 재미있어 하며 필름으로 저장해
갔다. 시간은 또 이렇게 정지된 채로 하나의 파일로 저장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화석이다.

어린 아이도, 조금 성장한 청소년 또래의 모습도, 건장한 모습의 여자, 남자... 힘
이 없어 보이는 노인들 까지도 너무나 열심히들 몰두해 있는 모습. 약간 멀리 떨어져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은 바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늘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몰두하는 우리들의 모습...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교실에선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열심히 찾고 구하는
학생이 사랑스럽고 관심과 눈길이 가듯, 하나님 앞에서도 열심으로 구하고, 찾고, 문
을 두드려 얻기를(마태복음7:7~8) 원하는 자녀에게 주님의 눈길이 머무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늘 바쁘게 움직이며 몰두하여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곳 Herkimer 체험장에서는 crystal 찾기를 힘써하면 되고, 교실에선 그 시간 공
부에 집중하여 알고자 노력하면 되는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평생을 다하여 찾길
힘쓰고, 집중하여 구하길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이 또 몇 차례 비가 오고, 거짓말처럼 개이기를 몇 번 반복했다.지칠 줄 모르고 열중해 있는 남편과 아들을 두고 나와 윤하는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정말 다양한 모습의 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작고 아름다운 돌들은 우리가 흔히보석으로 부르고 있는 것들이었다. 윤하는 푸른빛의 터키석을 보더니 자기의 탄생석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홍옥, 자수정.. 여러 이름도 모를 신비한 보석들. 하지만 그렇게 귀하게 대접받는 보석들이 사실은 우리 발끝에 채이는 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남편의 설명이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그 보석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열과 압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보석
으로 취급받는 다이아몬드는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과 같은 성분인 탄소(원소 기호
로는 C)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너무 볼품이 없고 색깔도 곱질 못해 화단 장식으
로도 대접받지 못하는, 잘해야 연필심으로 사용되곤 하는 그 돌덩이가 바로 다이아몬
드의 본래 모습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돌덩이가 깊은 곳으로 들어가 뜨거운 열과 높
은 압력을 받아 견디어 냈을 때, 그 돌은 더 이상 새까만 돌덩이가 아닌 ‘다이아몬
드’라는 진귀한 보석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여러 다양한 보석들이 하나같이
그러한 과정들을 거쳐서 독특하고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소유한 보석이
될 수 있었다니...

우리 생활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크고 작은 ‘열과 압력’. 그 앞에 우리는
쉽게 힘들어 하고 때로는 하나님 앞에 원망과 불평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은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모습이 점점 더 하나님 앞에 보석으로 다듬어져 갈 수 있
음을, 아니 그것은 보석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임을 오늘은 돌덩이들을 통해 다시
확인케 하신다.

남편과 아들은 무엇인가 돌덩이들을 잔뜩 캐왔다. 어디 공사장에서 일하다 돌아온
사람들 모습이다. 무척 흐뭇해하며 자랑삼아 들이 내미는 돌덩이마다 귀퉁이에 약간
씩 묻어 있는 반짝거리는 보석의 흔적들. 그것만으로도 무척 만족스러워 했다. 몇 개
의 온전한 모습의 crystal조각은 조심스럽게 휴지에 둘둘 말아 싸고 있다. 정말 무슨
보석조각이라도 되는 것처럼.

“ 그래, 나중에 네 여자 친구 목걸이 만들어 줘라!...^^”
“ 배고파~ ”
큰 일(?) 하고 돌아온 아들은 벌써 배고프다고 안달이다.

✎이현주
 

사랑하는 페루(Peru) 할머니


남아메리카에 있는 나라, 페루(Peru) – 너무나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인카(Inca) 제국 의 상징인 마츄피츄(Machu Picchu)가 있는 나라다. 마츄피츄는 옛산(Old Mountain)이 란 뜻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재요 세계 7대 불가사이의 하나로 꼽힌다. 바다보다 7875ft가 높은 산꼭대기에 1450년경에 만들어진 곳이지만 스페인의 정복으로 100년 후 버려졌고 1911년 예일대 역사학 교수인 히람 빙햄(Hiram Bingham)의 필사적인 노력으 로 400-500년간 나무들과 잡초들로 덮여졌던 것을 힘겹게 발견하게 됐다.


사진을 보며 동경하던 그 곳을 보러 가려고 7-8년 전 20여명의 일행과 함께 마 이애미(Miami, Florida) 에서 탄 비행기에 실려 밤새도록 날아가 새벽에 페루의 수 도 리마(Lima)에 도착했다. 밖으로 나오니 안개가 끼고 비가 조금씩 내리는 듯 했 으나 한국인 관광 가이드 마르코의 말대로 금방 멈추고 나자 밝은 햇님이 우리 일 행 모두를 반겨 주었다. 자주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다시금 쿠스코(Cusco)로 가려 고 비행장에서 3-4시간을 기다린 후 아주 작은 비행기를 타고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 위로 2시간 정도 날아가다 조그마한 쿠스코 비행장을 내려다보니 활주로가 어 찌나 작아 보이든지 마치 소꿉장난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행장 같다. 비행기에 서 내리자 곧 관광버스를 타고 약 30분간 달려가니 쿠스코 고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지진이 많은 곳으로 지진으로 말미암아 새로 지은 건물들은 다 무너져도 오히려 500-600년 전 인카 문명 때 만든 바위 벽 –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벽 을 안쪽으로 기울게 하고 ㄹ자 모양으로 크나 큰 바위들을 잘라 여러 층으로 어긋 맞추고 돌과 돌 사이에 구멍을 파서 베아링과 같은 큼직한 구슬을 넣어 두어 지진 이 나서 돌이 어긋났다가도 지진이 끝나면 다시 돌들이 제 자리로 돌아와서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나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그렇게도 큰 바위들을 어떻게 빵 반죽을 잘라내듯 자유자재로 자르고 그토록 무거운 바위들을 어떻게 운반했는지 아직도 그것들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는 위대한 유적들! 감탄사가 절로 난다. 그 토록 위대한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올려지는 것이다. 그토록 커 보이는 지혜도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억만 분의 일도 되지 않으리라. 우리 인 간들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았다면 더 많은 지혜를 주셨으 리라. 시대가 감에 따라 문화는 더 발달하지만 한편으론 조상들에게 있었던 지혜가 많이 줄거나 없어진 것도 있는 것 같다.


관광을 마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에 도착했을 때다. 버스를 내리려는데 2-3미터 떨어진 곳에 연약한 원주민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 - 페루에는원주민이 전 국민의 54%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많다.) 할머니가 아기를 업고 공 중전화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어느 남자 앞에서 손을 내밀고 있지만 전화를 하느라 온 신경을 쓰고 있던 그 남자는 할머니가 앞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했다.


내 주머니엔 잔돈 3불이 있었다. 그 할머니에게 3불을 드리려다 저 할머니는 은행 가기도 쉽지 않을테니 미국 돈을 드린들 무엇 하랴. 페루에선 돈 가치가 미국 보다 몇배 높다니까 비행장에서 90 쎈트를 페루 돈으로 받은 것이 있어 그것을 드렸다. 식당은 꼬불꼬불한 골목으로 한참을 들어갔다. 부페로 잘 차려진 음식을 보자 배 가 고팠던 탓으로 음식이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할머니의 처절한 얼굴이 자꾸 떠올라 3불을 드리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디저트를 먹으 려다 할머니의 가엾은 표정이 다시 생각나서 다이어트도 할 겸 내 몫의 디저트를 종이 네프킨에 싸 들고 나와 그 할머니를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 혹시 동냥을 구하러 가게에 들어 가셨나 싶어 가게마다 기웃거리며 찾았다. ㄱ자로 된 작은 광장에 가게들이 10개 정도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그 할머니는 보이지 않아 속이 상했다. 오랫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입술까지도 하얗게 말라있던 할머니! 슬픔 으로 가득 찬 눈동자! 분명 무슨 기막힌 사정이 있는 듯싶어 더 마음이 아팠다.


할 수 없이 광장 저쪽 끝에서 초라한 차림의 할아버지가 졸고 있어서 그 할아버 지에게 디저트를 보여 드리니 고맙다고 꾸벅 절을 하며 받으신다. 얼마 떨어진 곳 에 또 다른 초라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어서 3불을 드렸다. 그러면 다소 맘이 편해 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용이 없다. 가엾은 그 할머니를 꼭 찾아서 도 와 드려야 할텐데 관광버스가 곧 떠날 테니 마음이 급하다. 그 할머니를 만나면 3 불도 너무 적으니 20불은 드려야겠다며 “그 할머니를 만나게 해주세요." 기도를 해 도 그 할머니는 영영 보이지 않으니 야속하기 까지 했다. “예수님! 인색했던 저를 용서하시고 빨리 만나게 해 주세요.” 그러나 결국 그 할머니를 못 만난 채 떠나야 만 했다. “제가 못 도와 준 대신 예수님께서 그 할머니를 꼭 도와 주세요. 몇 백배 몇 천 배로 도와 주세요. 그 할머니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아 시는 주님!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좋으신 예수님! 제발요.” 계속 기도를 하는데도 그 곳에 있는 동안 내내 그 할머니가 잊혀지지 않고 인색했던 내가 밉기만 했다.


4박 5일의 관광을 다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가이드 마르코가 “원주민들을 보면 너무 불쌍해서 밥이 안 넘어가요.” 라는 그의 말을 듣자 저 사람 이라면 그 할머니 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잘 도와주겠구나 하는 반가운 생각에 내가 본 그 할머니 얘기를 하며 그런 사람들을 위해 꼭 써달라고 5xx불 (하나님 돈이니 아 까운 생각은 떨쳐버리고)을 주고 필요하면 더 보내겠다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었다.더구나 약 600명의 한인들이 모두 경제적으로도 윤택하고 자주 만나 생선회도 만 들어 먹고 자기는 막내둥이로 그 분들을 잘 섬겨 귀여움도 독차지 한다니 그 분들 과도 함께 의논해서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들을 돕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냐 며 그들을 돕는 Seed Money로 써달라고 했다. 마르코 역시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마르코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원주민들을 잘 돕고 있는 지 내가 더 도와 줄 것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 몇 번이나 연락을 해도 7-8년이 지 난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마르코! 가룟유다가 되면 안되는데... 아냐! 그럴 리 없어! 마르코가 늦게라도 그 분들을 위해 많은 일을 꼭 할 거라고 믿는다. 인색 한 나는 3불을 아끼다가 그만 훨씬 더 많이 쓰고도 결국 그 할머니는 돕지도 못하 고... 아! 나는 왜 이리도 어리석을까?


페루를 떠나 미국에 돌아 왔는데도 영영 잊혀지지 않는 할머니! 지금까지도 생각 나는 할머니! 식사를 하다가 문득 그 할머니 생각이 나면 나 혼자만 배 불리 먹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100불 아니 1000불을 드려도 아깝지 않은 할머니! 그때 그 할머니에게 그 5xx불을 직접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 내가 바로 3불을 아까 워하는 가룟유다가 아닌가?


예수님! 그 할머니를 보살펴 주셨지요? 할머니! 지금은 속상하지 않으시지요? 일 용할 양식이 풍부하시지요? 할머니 그때 도와 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러나 우 리의 좋으신 예수님이 도와 주셨죠? 예쁜 할머니! 귀한 할머니! 사랑해요. 등에 업 혀 있든 아기와 더불어 영원히 행복하세요. 아기를 훌륭하게 키우세요. 훌륭한 사 람이 될 거에요. 할머니 힘을 내세요. 할머니---


아기야! 미안하다. 너를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제발 잘 자라다오. 훌륭한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다오. 그리고 꼭 예수님을 믿게 되어 우리 모두 훗 날 천국에서 만나자.


오! 예수님 그 할머니와 그 아이 또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도와 주 세요! 아픔도 슬픔도 죄악도 가난도 억울함도 없는 세상이 하루 속히 오게 해 주세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할머니와 또 그와 같이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혹시 저처럼 어리석고 인색해서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이 없으시길 바래서 부끄러운 고 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티오피아에 갔을 때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곳 돈으로 잔돈을 많이 바꾸어 갖고 다니며 기회 있을 때마다 주었는데 한 사람을 주면 금 방 여러 사람들이 모여 위험한 때도 있었고 같이 다니던 분들을 불편하게 해 드린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후회할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어요.>


(추신)


페루의 Lima (새 도시와 옛 도시, Gold Museum), Cusco, Machu Picchu와 Urbamba, Nazca Lines 등은 꼭 가 볼만한 곳이에요. 남미에 있는 나라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곳이에요. 인터넷을 통해서도 많은 것들을 보실 수 있지만 기왕에 기 회가 있으시면 그 곳에 직접 가셔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아름다움과 무한한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 한애영

 

라인강 선박여행 (Rhine Cruise) (3)


2007년 6월 17일, 일요일 오후 6시에 드디어 라인강 선박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승선한 카 세노비야는 암스테르담 (Amsterdam) 부두를 떠 나 동북쪽으로 항해를 시작하였다. 이 항해는45 마일의 암스테르담 운하를 거쳐 라인강으로 연결 되었는데,암스테르담 운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에 설계되었다고 하며2개의 수문이 있었다.


라인강에 들어간 후 밤새도록 북쪽을 향해 항해한 후 다음날 6월 18일에 도착한 곳은 싼탠 (Xantan)이라는 곳이었다. 2000년 전 로마제국 당시의 전방초소였다고 하며 버스를 타고 약 십분 가는 곳에 있었다. 그 옛날 에는 라인강이 그 성터 옆에 흘렀다고 하며 강물의 흐르는 방향도 변경된다고 들었다. 최근 그 성터자리에서 40 피트 지하로 로마제국 당시의 원형극장이 발굴되었다고 하는 데,발굴이 끝나는 대로 관광객들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싼탠 고적지를 오후에 떠나서 다음날 아침 6월 19일 화 요일에 쾰른 (Cologne)시에 도착하였다. 라인강 유역에 서 제일 큰 도시였으며 세계 2차대전시 미국의 폭격을 별 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쌍둥이 탑(Twin tower)의 대성당 은 700년 이란 긴 시간 동안 지어졌다고 하는데, 300년 동안 짓다가 자금이 모자라 300년을 쉬었다가, 다시 100 년 동안 지어 마무리했다고 한다. 약36개의 큰 대리석 기 둥이 있었으며 많은 관광객으로 교회 안팎이 큰 시장통을 이루고 있었다.


6월 19일 오후 3시쯤 쾰른을 떠나 코블렌츠 (Koblenz) 시를 향하여 출발하였으며 석양에 레마겐 (Remagen)이 란 작은 도시를 지나가게 되었다.이 도시는 세계2차대전시 기록영화인 “레마겐 다리 (Bridge on Remagen)”으로 유명하다. 1945년 3월 7일 진격하던 미군 사단이 라인강 도 강작전을 시작했는데,다른 모든 교량은 폭파되었고,Remagen의 철로교량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독일군이 이 다리도 폭파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고,이 때문에 전선이 미군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 교량의 폭파 책임 독일장교들은 모두 총 살형을 당했다고 하는데, 사진에 보이는 교량의 기둥은 독일인들에겐 가슴쓰린 기억이겠 지만,미국 관광객을 위하여 그 일부를 남겨두었다고 한다.


✎ 윤신원

 

나일강 선박여행 (2)


이번 라인강 선박여행의 상세한 계획은 아들 Daniel이 짰다. 이 여행을 하게 된 이유는 Daniel이 지난해 6월에 5년간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수련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을 축하하며 또 8월초부터 미네소타주 미니아폴리스에서 새롭게 일을 하게 되 어서 그곳으로 이사하기 전에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15일 오후 버팔로에서 출발하여 시카고 O'hara 비행장에서 오후 6시에 British Airbus 비행기를 타고 영국 런던의 Heat throw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 시간으로 1 월 16일 오전 7시 30분이었고 버팔로 시간으로는 새벽 1시 30분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하여 10시 30분에 독일 암스테르담(Amsterdam)에 무사히 도착했다.


암스테르담 비행장에서 승선 예정지인 부두까지 여행하는데 택시로는 60불, 기차 로는 일인당5불이라고 하여 기차를 타고 종착역까지 갔다.그곳에서 5분 거리에 부두가 있었는데 승선 시간이 오후 3시여서 4-5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승선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곳 시가지를 걸어서 산책하였는데 side walk는 보행자보다 자전거 가 우선순위(right of way)가 있다 하고 또한 소매치기도 있다고 하여 산책할 때 신경을 많이 써야만 했다.길거리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은 후 드디어 오후3시에 배를 타게 되었다. 우리가 승선한 배는 "Casenovia"(카세노비야)라는 배였다. 객실 을 배당받은 후6시에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6월 17일 아침 10시에 암스테르담 미술박물관을 관람했다. 그곳에 갈 때는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갔고, 다시 부두에 올 때는 시가지 사이에 있는운하(canal)를 이용하여 작은 배를 타고 돌아왔다. 이태리 Venice에 운하가 많다고 하는데 이곳 암스테르담에도 큰 길거리 사이사이에 운하가 많이 있었다.


이날 오후에는 버스로 한 시간을 여행한 후 네델란드에서 유명한 풍차를 보기 위 해 시외로 나갔다. 또 이 나라의 명물인 나막신(wood shoe)과 치즈공장도 구경하였 다. 풍차는 이 나라가 평균 해수면(sea level)보다 2-3미터 낮아서 물을 품어내야 하는 이유와 곡식을 갈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곳 암스테르담에서 하루 여행을 마 친 후 오후6시에 우리 선박팀은 다시 라인강 항해를 시작했다.


✎ 윤신원

유럽 여행기

-라인강 선박여행(Der Rheinlauf)-


라인강(The Rhine)은 독일 공화국의 서쪽에 있으며 스위스 알프스 산에서 시작되어 북해(North Sea) 즉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을 향하여 흐르고 있는 강이다. 이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50여년 전에 "The song of the Loreley"(로렐라이 언덕)이라고 불리우는 전설적이고 낭만적인 노래를 듣고 배우게 된 때로부터 시작되었다.


로렐라이 언덕 (The Lovely Song)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 가슴 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 강 /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I don't know what it means me being so sad / A tale from olden days won't leave me in peace / The air is cool and it is growing dark and the Rhine is flowing peacefully / The pinnacle of the mountain is sparks In evening sun shine


전설로 내려오는 로렐라이 언덕(Die Lovely)은 라인강의 중간지점에서 좁아지고 깊어지고 구부러지는 곳 즉 마인쓰(Mainz)와 코부란쓰(Koblanz) 사이에 430피트의 암석으로 된 절벽을 말한다. 이곳에서 유령과도 같은 금목거리의 금발미녀가 금으로 된 빗(Golden comb)으로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르는데 이것에 미혹된 뱃사공이 바위에 부딪혀서 물어 빠져 죽어왔다는 전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렐라이 언덕 전면에서 아들 대니(Daniel)과 함께


이 노래의 가사는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가 26세 때 쓴 시에 근거하였다고 하며 자기의 사촌인 아멜리아와 그 자매 테레사를 사모하며 그녀들을 금발의 미녀로 표현하였으며 파선되어 익사한 뱃사공은 하이네 자신이라고 전해진다. ✎윤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