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시/칼럼/시 - 포도나무 향기'에 해당되는 글 130건

  1. 2010/05/03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2. 2010/04/26 사랑의 고백
  3. 2010/04/20 봄이 오는 소리
  4. 2009/02/22 Airplane Crash
  5. 2009/02/05 삶의 고비마다
  6. 2009/02/05 알래스카의 까마귀
  7. 2009/02/04 온 누리에 새 시대의 햇살이
  8. 2009/02/04 아직은 겨울
  9. 2008/11/12 환율 공포
  10. 2008/11/12 아름다운 가을은 가고
  11. 2008/11/12 가을 한복판에서
  12. 2008/11/12 믿음대로
  13. 2008/11/12 시월에
  14. 2008/10/10 하늘글
  15. 2008/10/02 American Site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손가락으로 아이와 함께
더 많이 그림을 그릴지언정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아이에게 눈을 더 많이 향하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배우게 하는데 관심을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을 갖는 법을 배우리라.
함께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함께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함께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함께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엄하게 대하고
더 많이 열린 마음으로 대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다이아나 루먼스)
사랑의 고백

어느 봄날 오후의 묘지
목사가 하관예배를 집례 중이었다.
50년을 함께 산 70대 중반의 노인이
관 위에 엎어지며 소리쳐 울었다.
“여보!난 당신을 정말 사랑했소!”
장례식의 엄숙한 정적이 깨어졌다.
중년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얘들아,난 정말 네 엄마를 사랑했단다!”
노인은 주위의 만류와 위로에도
계속 울부짖을 뿐이었다.

관이 땅으로 내려가고
마지막 그 위에 흙이 뿌려졌다.
노인은 울부짖음은 더욱 커졌다.
목사가 다가와 노인을 위로하였다.
“어르신,고인께서는 좋은 곳에 가셨습니다.
이제 그만 진정하시지요.”
노인은 비통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로 내 아내를 사랑했다오!
그런데 아내가 살아있는 동안
난 한 번도 그 말을 하지 못했소!”

사랑은 장식용이 아니다.
사랑은 색 바랜 앨범이 아니다.
기회 있을 적마다 다정히 손을 잡으라!
그리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라!
무덤에 들어간 후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땐 회한의 눈물만 있을 뿐이다.
쓰라린 통곡만 있을 뿐이다.
아직 살아있고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이
마음껏 사랑을 고백할 때이다. (HJ)

봄이 오는 소리


온 땅에 충만한 햇살
한참을 바라보면
빠질 것 같은 파아란 하늘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창을 열면
새들 지저귀는 소리
싱그러운 꽃나무들의 새싹 내음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앙상했던 가지들에
시나브로 생명이 움트고
수목들의 기지개 펴는 아우성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만나는
주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 격정의 사순절을 깊이 묵상하며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겨우내 갇혔던 심령
사망에 붙들렸던 심령이
두터운 흙더미를 뚫고 일어섬을 보며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봄이 오는 소리
그 속에서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HJ)
 

Airplane Crash


밤 12시가 넘은 시각

TV를 켰더니 웬 뉴스 속보였다.

버팔로 지역에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만 보니 낯익은 지역이었다.

끔찍하게도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한다.

아닌 밤중에 이 웬 날벼락인가

새벽 2시경 사고현장에 달려가 보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애도라도 하고자

현장은 온통 화마에 덮여있었다.

희생자들이 겪었을 고통이 오버랩 되었다.


비행기가 추락한 곳은 민가였다.

비행기가 혹 민가를 휩쓸기라도 했다면

엄청난 인명피해가 일어날 뻔 했다.

천우신조로 지역 희생자는 한 명뿐이라 한다.

주변 집들은 혼비백산했을 게다.

주변 집들뿐이랴!

그 비행기는 내 집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불과 6마일밖에 안 떨어진 곳이었기에

그러고 보면 사람의 살고 죽는 것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비행기는 추락해도 모두 무사한데1)

어떤 비행기는 생존자가 없다 하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사람 목숨 한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살아있으나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낮까지만 해도 따스한 봄이더니

하늘도 대형참사를 슬퍼하는가

온 사방에 저리 눈발이 날리는 것이. (HJ)


  1) 지난 1월 16일 뉴욕 허드슨 강에 비행기가 추락했으나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었다.

 

삶의 고비마다


삶의 고비마다

당신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때때로 갈 길을 몰라 헤맬 적에

당신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똑똑한 머리입니까?

당신의 살아온 경험입니까?

당신이 얻게 될 이득입니까?


당신이 아무리 똑똑할지라도

당신이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그 길이 큰 이득을 얻는 길 같아도

결국 당신이 이르게 될 종국은

허탈한 아침일 것입니다.

빈손의 인생일 것입니다.

혹은 파도 넘실대는 바다에 

맥없이 파선하고 말 것입니다.


삶의 고비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항로가 보일 것입니다.

그 길에 허탈한 아침이란 없습니다.

파선이란 결코 없습니다.

때때로 거친 파도가 일기도 하겠지만

이내 잔잔한 대양

눈부신 햇살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정박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삶의 고비마다

당신이 기대는 것은 무엇입니까? (HJ)

 

알래스카의 까마귀


요즘처럼 강추위가 올 때면

알래스카의 까마귀들이 생각나곤 한다.

그것들은 영하 50도의 살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교회 앞마당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열심히 먹을 것을 찾곤 하였다.

그 같은 까마귀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그 까마귀들의 운명이


그러다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인가

얼마나 경이로운 새들인가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는

게으름 때문에 굶어죽는 새들도 있다는데

그것들에 비하면

참으로 대단한 새들이 아닌가

과연 알래스카의 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까마귀들로 인해 교회 앞마당이

온통 쓰레기장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차마 그것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먹을거리를 더 던져주고 싶었다.


그리스도인이란

알래스카의 새처럼 강한 생명력의 사람들

어떤 혹한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온 몸이 얼어드는 고감도 추위 속에서도

결코 쓰러지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요즘처럼 강추위가 찾아들 때면

문득 알래스카의 까마귀가 보고 싶어진다. (HJ)


온 누리에 새 시대의 햇살이


      1.

수십만

아니 수백만은 되었을 게다.

국회 의사당 앞 광장에 모인 인파가.

44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 동참하고자.

누군들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랴!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들 중 하나이고 싶었다.

그만큼 길이 남을 역사의 현장이기에.

그곳에 운집한 이들을 부러워하며

TV로라도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자

나는 시종 CNN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TV 화면엔 자주 링컨 기념관이 비쳐졌다.

문득 짠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 얼마나 멋진 역사의 조화인가?

147년 전 링컨이 흑인 노예 해방을 선언했는데,

그리하여 모든 흑인들이 자유인이 되었는데,

이제 그가 자유케 한 흑인 가운데서

미합중국 대통령이 나올 줄이야...

아마 링컨조차 상상치 못했으리라.

이 같은 날이 오리라고

그는 단지 흑인들의 자유만을 꿈꾸었을 뿐인데.


46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 링컨 기념관에서 수십만의 군중들을 향해

“I have a dream”이란 위대한 연설을 토하며

흑인들의 평등과 권리를 외쳤는데,

이제 같은 장소에 더 많은 군중들이 운집하여

이처럼 흑인 대통령의 취임을 환호할 줄이야...

아마 킹 목사조차 상상치 못했으리라.

이 같은 날이 오리라고

그는 단지 흑인들의 민권만을 꿈꾸었을 뿐인데.

정말이지 경이로운 역사의 조화에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놀랄 따름이다.



나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며

정의의 위대한 승리를 본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당신 뜻대로 움직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큰 손을 본다.


      2.

금년은 링컨 탄생 2백 주년의 해

그리고 취임식 전날은 마틴 루터 킹 데이였다.

그 같은 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세워진다는 것

이 얼마나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일인가?

오바마가 오른 손을 들어 선서하는 순간

흑인들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아픔과 슬픔을 한꺼번에 씻어내는

모든 맺혔던 한을 녹이는


문득 흑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토록 억압받고 멸시받은 이들이었는데

다른 인종들로부터 자주 무시당하곤 했는데

그들 가운데서 대통령이 나오다니...

이는 저들이 품은 꿈 때문이리라.

비록 링컨 기념관에서 백악관까지 46년이 걸렸지만

결국 저들의 꿈은 이루어지고야 말았다.

자신들이 꿈꾸었던 것보다 더 엄청난 결실로.

우린 언제 저렇게 대통령을 낼 수 있을까?

우린 언제 저들처럼 꿈을 품을 것인가?


취임식을 다 끝내고 집 밖을 나서자

온 누리에 밝은 햇살이 넘치고 있었다.

늘 무겁고 우중충하기만 하던 요즘 날씨였는데

막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듯

다가올 새 시대를 예고라도 하는 듯

눈부시고 아름다운 햇살이었다.

라디오를 켜니 온통 ‘오바마’ 얘기들뿐이었다.

모두들 그에게 큰 기대들을 갖고 있다는

문득 나도 모르게 간절한 바램이 새어나왔다.

“오바마여,

부디 좋은 대통령이 되라!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라!” (HJ)

 

아직은 겨울


눈 눈 또 눈이다.

이제 좀 그치려나 했는데

속절없이 내리는 눈

그 덕에 천지가 눈 세상이다.

바람 바람 또 바람이다.

이제 좀 그만 불려나 했는데

좀처럼 쉬지 않는 바람

추위에 떨고 선 나무들만 애처롭다.


처마 밑의 녹았던 고드름이

백만 년 동굴의 석회암처럼

또 다시 주렁주렁 매달리고


그도 그럴 것이

아직은 겨울이기 때문이다.

이 겨울에 무슨 다른 기대를 가지랴!


산 산 또 산이다.

이제 다 넘었나 싶었는데

성큼 다가선 또 다른 산

언제 평지를 볼 날이 있을 건가.

풍랑 풍랑 또 풍랑이다.

이제 좀 그만 일려나 했는데

좀처럼 쉬지 않는 풍랑

언제 잔잔한 대양을 볼 것인가.


밤새 생채기가 아물었나 싶었는데

뱃전을 때리는 파도처럼

또 다시 새 상처가 패이고


그도 그럴 것이

산다는 것이 다 그렇기 때문이다.

이 인생에 무슨 다른 기대를 가지랴! (HJ)

 

환율 공포


세계 경제가 엉망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아시아도 남미도 우리 한국도
주식시장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듣자니 대공황이후 최악이란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낸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는지 모르기에-

무엇보다 유학생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달러 보유고가 줄어들기 때문-
달러 보유 정도에 따라
날마다 환율은 널뛰기를 한다.
그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학생들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어찌 공부가 제대로 손에 잡히랴!
근심과 한숨으로 밤잠을 설치는 것은
더 이상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개 달러의 위력이 그렇다면
믿음의 위력은 말해 무엇하랴!
믿음의 보유 정도에 따라 그 삶은
폭풍 속의 삶이 되기도 하고
잔잔한 강 같은 삶이 되기도 한다.
천 길 낭떠러지의 삶이 되기도 하고
든든한 요새 같은 삶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세상이 위태위태할 땐
경제보다 환율보다
더욱 믿음을 살필 일이다.
 
(HJ)
 

아름다운 가을은 가고


창으로 내다 본 세상은
여전히 가을 한복판인데
밖을 나서면 쌀쌀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직 단풍 색깔이 곱고
낙엽들이 사방에 뒹구는 것이
그림은 영락없는 가을이로되
실제는 차운 겨울입니다.
바람이 보통 매서운 것이 아닙니다.
벌써 추위에 떨 지경입니다.
가울인지 겨을인지
계절을 잃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경제 재난 때문인지
환율에 떨고 있는 학생들 때문인지
혹은 이국에서의 추위여서인지
체감온도는 더욱 더 겨울입니다.
마음까지 얼어붙는 듯합니다.

문득 믿음의 세계도
그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기에는 아름다운 가을 같지만
빛깔 고운 단풍도 가득하고
사랑하는 삶이 넘치는 가을 같지만
실상은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
계절의 변화가 무쌍한 곳
그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결코 보이는 그림이 다가 아닙니다.
따스한 실내악이 다가 아닙니다.

이제 아름다운 가을은 가고
그만 옷깃을 단단히 여민 채
겨울 준비에 들어서야 할 듯싶습니다.
 
(HJ)
 

가을 한복판에서



날씨가 며칠 차갑더니만
어느 사이 거리마다 낙엽들이 쌓여갑니다.
깊은 가을임이 분명합니다.
나무들마다 총천연색으로 불타는 것이
꼭 축제의 한마당 같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감흥이 납니다.
그러다 문득 와 닿는 생각
지금은 저리도 멋들어진 잔치이지만
얼마 후면 앙상한 가지들만 남겠지요.
그리고 겨우내 추위에 떨겠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안쓰럽지만
그래도 지금은 전혀 아랑곳없습니다.
추위가 올 땐 오더라도
앙상하게 될 땐 되더라도
지금은 맘껏 화려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맘껏 절정의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가올 종말을 당당히 맞는
오히려 자신을 장렬히 태우며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습니다.
환호하며 박수라도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네 삶도
저 나무들 같았으면 합니다.
항상 제 자리를 지키다가
언젠가 이 땅을 떠날 즈음이 되면
비록 약하고 앙상한 모습이 될지라도
다가올 종말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마지막을 장렬하게 불태우는
자신의 주위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그런 나무들이고 싶습니다.
 
(HJ)

 

믿음대로


한 백부장이 예수께 찾아와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 청하였다.
함께 집에 가실 필요 없이
말씀만으로 족하다 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몰래 예수님 뒤로 가
그 옷깃을 만졌다.
그러면 병이 나으리라 믿으며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치유와 축복의 원리
그것은 '믿음대로'이다.
때때로 우리의 잔이 작아
하늘의 보화가 닫히곤 한다.
때때로 우리의 분량이 작아
주님의 광대하심이 제한되곤 한다.
당신의 잔은 어떤가?
바다만큼 넓은가?
그러면 무한한 축복을 경험하리라.
손바닥만큼 작은가?
그러면 쬐고만 축복만을 보리라.

어떤 삶을 원하는가?
하늘만큼 바다만큼의 삶인가?
아니면 손바닥만큼의 삶인가?
그것은 오직 '믿음의 크기'에 달려있다.

(HJ)
 

시월에


시월이면
시공을 어우르는 가을바람에 마음조차
시원하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시정이 절로 솟아남을 느낀다.
시월이면
시마다 우리를 힘들게 한 모든 것들을
시간 속으로 떠나보낸다.
시련도
시험도
시나브로
시냇물에 나뭇잎 떠내려 보내듯

시월이면
시끄러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시집이라도 한권 묵상하는 때
시편을 읽으면서
시와 찬미를 가진다면 더욱 좋고
시라도 하나 적는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시월이면
시커먼 지난날의 터널을 빠져나와
시야를 넓히고
시들해가는 영혼을 살피는 때,
시월이면
시시각각 변하는 시류를 좆지 않고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로 맞추고
시늉만 내던 믿음의 삶을 바로 사는 때

시월이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시편 시인의 복된 삶을 본받고 싶다.
 
(HJ)
 

하늘글


기역 니은 디귿 리을...
아 야 어 여 오 요...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서
세상 모든 문자 가운데서
유일하게 특정한 사람에 의해
특정한 때에 만들어진 문자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고 또 놀랍다
나는 한글을 생각할 적마다
한국인으로서의 뜨거운 긍지를 느낀다.
한글이 완벽한 음성구조를 따라 만들어진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것을 알면서
한글로 표현 못할 언어가 없음을 알면서
특히 한글 창제의 정신을 알면서
나는 더더욱 경탄과 긍지를 느낀다.
정말 우리는 자랑스러운 선조를 두었다.
세종대왕이라는.

우매한 백성으로 하여금
쉬이 제 뜻을 펴도록 만들어진 한글
이제는 온 세상을 위한 문자
글 없는 민족들을 위한 문자가 되었다.
이는 한글로 표현 못할 언어가 없고
한글처럼 배우기 쉬운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 도처에서 불쌍한 민족들이
한글로 문맹을 깨치고 있다.
한글로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있다.
이토록 경이로운 사건이 또 있을까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한글은 조선인만을 위해서가 아닌
온 누리를 위해 주어진 글임을
이 마지막 때를 위해 주어진 글임을
천민(賤民)을 천민(天民)으로 만들고자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내려주신
하늘글임을. (HJ)
 

American Site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면
두 나라 접경 지역을 맞닥뜨리게 된다.
같은 나이아가라 폭포이건만
American Site에는 사람들이 한산하다.
그러나 Canada Site에는 인산인해이다.
왜 그런 것일까?
양 Site에 모두 폭포가 있는데
정작 멋진 폭포는 America쪽에 있는데...
이는 Canada Site에 가야 American Site에 있는
웅장한 폭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American Site는 늘 한산한데 비해
Canada site는 언제나 인산인해이다.
스물 네 시간 불야성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론 그런 American Site가 안됐다 싶기도 하다.

나 역시 Canada Site에서
America쪽의 웅장한 폭포를 감상하고 있다.
정말이지 그 낙하하는 물줄기가 대단타
흩어지는 물거품은 폭포의 포효와도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스레 묵은 스트레스가 가시는 듯하다.

문득 그리스도인의 삶이
American Site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드러내는 위용은 대단하지만
자신이 가진 진가는 훌륭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영광을 취하지 않는,
오직 남들에게 감동을 주고
오직 남들이 그 진가를 인정해주는.
그러고 보니 오늘 따라 American Site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