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을 성공시키려면
- 2010년 어린이 주일에 부쳐 -
이 땅을 사는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소원이 있다면 당연히 그 자녀들이 잘 되고 성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엔 결코 예외란 없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부모 되는 이들 자신들이 그 증거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부모들이 다 그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녀들이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소수만이 잘 되며 소수만이 성공하는 삶을 살 뿐이다. 왜 그럴까? 모든 부모들이 다 자녀들의 성공을 바라는데. 아니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모두가 다 헌신적으로 자녀들을 위해 뒷바라지 하는데 왜 모든 자녀들이 다 성공하지 못하는 걸까.
이 버팔로에는 유학생들이 많다.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니는 유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조기 유학생들도 많다. 그들을 보노라면 그들 뒤의 부모들의 헌신과 희생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하다. 그 부모들 가운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가정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어려운 가운데서 오직 자식 하나 잘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유학을 보낸 가정들이다.
그렇게 해서 자녀들이 잘 되면 다행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부모들이 그렇게 헌신하고 희생한다고 모든 자녀들이 다 잘 되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이는 자녀들의 성공은 ‘투자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성공이 얼마나 많이 투자했느냐에 달려있다면 이 세상에 가진 자들, 부자들만이 자녀들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성공 여부는 결코 얼마나 많이 투자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아니, 투자 여부에 달려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물량 투자’가 아닌 ‘가치 투자’에 달려있다. 즉 자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쏟아 붓는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을 간과한 투자는 아무리 많은 물량을 쏟아 부어도, 아무리 특별한 정성을 쏟아 부어도 대부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 특별히 아무런 의식 없이 그저 이 세상 방식에 편승하여 남들 하는 대로 ‘물량 투자’만을 하게 될 경우 성공은커녕 자녀들을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만들거나 혹은 자녀들 안에 있는 최고의 가능성을 그대로 사장시킬 수가 있다.
그러면 어떤 투자를 해야 자녀들을 성공에 이르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서 먼저 부모들에게 바른 의식이 있어야 한다. 즉 부모 자신이 자녀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며 소중한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자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쏟아 부을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원’이 회사 안에서 잘 되고 성공하기 위해선 ‘기업주’가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주의 마음에 꼭 들게 일을 잘 한다면, 그리고 기업주의 인정을 받는다면 그 회사원의 앞길은 훤히 열리게 될 것이다. ‘정치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일 대통령의 인정을 받는 정치가, 대통령의 마음에 꼭 드는 정치가가 있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그 정치가는 대통령에 의해 각료로 발탁되거나 혹은 대통령을 위해 요직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앞길은 보장이 될 것이다.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자녀들의 성공을 위한 기본 원리’란 바로 이것이다. 이 내용을 이 세상의 삶에 그리고 자녀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해보라.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길이 있다면, 성공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당연히 이 세상을 주관하는 분, 이 세상을 움직이는 분의 인정을 받는 삶이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잘 되는 삶, 성공하는 삶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분이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세상을 주장하시며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운행하고 계시다. 따라서 그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 마음에 들도록 살아갈 때, 특별히 자녀들로 하여금 그 같은 삶을 살도록 할 때 자녀들의 삶은 당연히 잘 되는 삶, 성공하는 삶이 될 것이다.
이제 자녀들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 성공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부모들이 해야 할 것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이 자녀들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 모든 부모들이 쏟아 부어야 할 ‘투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너희 자녀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것이야말로 자녀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축복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 이는 한 마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그 같이 자란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결국 이 땅에서 잘 되는 삶,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말 자녀들을 ‘주 안에서’ 양육하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녀들로’ 살게 하려면 부모 자신들이 본을 보이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다. 결코 그 이상 가는 교육도 투자도 없다. 그러나 그 같은 교육과 투자는 최고의 교육과 투자이면서 또한 가장 어려운 교육과 투자이기도 하다. 그냥 돈만 들여 잘 가르치는 교육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냥 말로만 훈계하고 가르치는 교육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 자신이 본을 보이는 교육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한다고 할 때 거기엔 부모가 본을 보이는 삶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자녀들은 결코 곁길로 가지 않을 것이며 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자녀들을 크게 세우시며 축복하신다.
우리는 ‘다윗’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역사 속에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또 ‘위대한 왕’으로 평가되는 사람이다. 그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함으로 목동의 자리에서 한 나라의 왕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그 같은 대단한 성공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이는 그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다윗조차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배다른 자식들 간에 통간하는 일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형제간에 살육까지 일어났고 심지어 자식 가운데 하나는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자 혈안이 되기도 하였다. 이 얼마나 엉망진창인 가정이며 또 실패한 자녀교육의 실상인가. ‘다윗’ 본인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요 또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평생 크게 쓰임 받았던 사람이었지만 정작 그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들로 양육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면 왜 실패하였는가? 그토록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왜 그 자녀들을 믿음의 자녀들로 양육하는 데 실패하였는가? 그가 자식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인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고 따라서 당연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자녀들에게 수없이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자신이 본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다윗은 가정 안에서 믿음과 삶의 본을 보이는데 실패하였다. 다윗 자신이 많은 처첩들을 거느림으로 이성문제에 있어 자녀들에게 전혀 본이 되지 못했으며 그 결과 가정 안에 늘 불화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그렇게 해서 얻은 많은 자녀들을 제대로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부하 장수의 아내와 간음을 했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그 부하 장수를 살해하기까지 했다. 그 같은 부정과 죄악은 자식들의 믿음과 도덕성을 망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자식들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들이 되지 못했으며 아버지가 저지른 죄악들을 반복하였고 결국 다윗은 자식들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는 쓰라린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다윗’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믿음과 삶에 본을 보이지 못함으로 자녀교육에 실패하고 말았다. 최고의 자녀 교육, 살아있는 자녀 교육, 그것은 부모 자신이 자녀들 앞에서 늘 본을 보이는 믿음과 삶에 있다. 그럴 때 자녀들은 그것을 보고 신실한 믿음과 삶을 배우게 되며 그 결과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하나님 앞에 크게 축복 받는 삶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부모들을 보면 여러 가지의 유형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식들을 바르게 가르친다고 늘 ‘잔소리하는 유형’ 혹은 부모의 권위로서 자식들을 바르게 교육한다고 늘 ‘명령하는 유형’ 혹은 자식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큰 소리 한번 제대로 못하고 자식들에게 늘 ‘끌려 다니는 유형’, 혹은 삶이 너무나 바쁜 나머지 자식들에게 돈만 대줄 뿐 제대로 관심을 두지 못하는 ‘무관심 유형’ 등. 이 가운데 어떤 유형도 결코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하는 유형이라 할 수 없다.
모든 교육 가운데 최고의 교육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자식들과 삶을 나누고 또 자식들에게 가르치고 싶어하는 바를 그 자신이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보고 듣는 대로 배우고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이는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믿음’에 대해 가르치는 것보다 실제로 그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또 어떻게 믿음생활 하는지를 보고 더 많이 영향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이는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비결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삶’이다. 따라서 우리의 자녀들이 정말 성공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삶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그 같은 사실을 아무리 강조하여 가르칠지라도 정작 부모 자신이 그 같은 모습의 믿음과 삶을 보이지 않는다면 자녀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로 끝나고 말 것이다. 부모가 본을 보이지 않는 믿음과 삶의 모습은 결코 자녀들에게 진지한 것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내 자녀가 이 땅에서 잘 되는가 못 되는가 하는 것은, 성공하는 삶을 살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 하는 것은 부모들에게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부모들이 제대로 믿음의 본을 보일 때 자녀들도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고 또 부모들이 제대로 믿음의 본을 보이지 않을 때 자녀들 역시 믿음의 세계에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부모로서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으로 알라! 내 자녀가 장차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삶을 살 것인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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