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출생에 관한 이사야서 7장 14절의 예언을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왜 그는 예수라고 불렸는가?



겉으로 볼 때 이는 전적으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구약성경에 있는 예언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불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 후 신약성경으로 가보자. 신약에서는 그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의 이름이 예수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먼저 이사야가 크게 잘못한 것이라 생각지 말라. 그가 예언한 의미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예수의 생애를 보여주는 이사야 선지자의 상세한 예언 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이 "임마누엘" 예언이 나와 있는 내용으로부터 2장을 더 지나가게 되면 우리는 성탄절 때마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또 다른 친근한 구절들을 만나게 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로 태어나게 될 아이의 또 다른 이름으로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몇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사야는 7장에서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이 될 것이라 했다. 그리고 9장에서는 그의 이름이 평강의 왕, 혹은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될 것이라 했다.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의 글에서 메시아가 다수의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는 예수의 이름을 하나로 제한하려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나는 그가 "이름"이라는 용어를 예수의 집안 이름 혹은 고유한 이름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가 사용하는 이름들은 곧 예수에게 주어지게 될 중요한 호칭들(예수의 속성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러했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은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그의 호칭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를 통해 아기에게 주신 것으로, 그 아버지 요셉으로 하여금 그의 아들의 이름을 그와 같이 짓도록 지시함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버지 요셉에게 주어진 지시에 의하면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다. 그 이름의 뜻은 '구원자'로서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사명, 그의 사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내 생각에 가장 매력적인 연구 중의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속성을 의미하는 이름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번은 한 신학대학원에서 있었던 모임에 참석했는데 한 스위스 신학자가 발표를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 같은 학문적인 모임에서는 대개 아주 기술적이고 복잡하고 지루한 신학논의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 신학자는 일어나서 회중 앞에 나가서는 단지 다음과 같이 예수의 이름들을 열거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알파와 오메가요, 인자요, 유다의 사자요, 흠 없는 어린 양이요,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샤론의 장미요..." 그는 자그마치 45분 동안을 계속해서 그와 같이 하는데 전혀 지치지 않고 신약성경이 예수에 대해서 부여하는 모든 이름들과 호칭들을 열거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많은 호칭을 가진 분이시다.

✎ R.C.Sproul, 편집부 옮김

 

모든 사람이 찾는 것이 있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 어디에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없습니다.

그 땅은 스스로 개척해 가는 곳입니다.

아무리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일지라도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은 척박한 곳입니다.

동토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도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면

그곳이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진정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곳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당신은 어떤 곳에서 살고 계십니까?

여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축복의 땅을 안기고자 준비된 교회입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그 땅을 열어가고 싶습니다.

Stop 사인

영원으로의 초대 : 2007/05/07 23:04

차를 타고 길을 가다보면

자주 Stop 사인을 만나곤 합니다.

그 앞에선 반드시 멈춰 서야만 합니다.

오가는 차량이 전혀 없을지라도

때로는 그것이 번거로울지라도

반드시 멈춰 서야만 합니다.

그래야 아무런 사고가 없게 됩니다.

때때로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할 때

Stop 사인 앞에 서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그곳에서 내 갈 길을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도 Stop 사인이 있습니다.

무조건 달려만 간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때로는 설 때도 있어야 합니다.

아니,설 때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준비된 Stop 사인입니다.

꼭 오십시오!

이곳에서 당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제대로 키우지 못한 자식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자식이

바깥에 나가 큰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남의 가정들을 풍비박산내고

온 세상에 부끄럼을 끼쳤습니다.

보통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자식이 아니라고 외치고도 싶습니다.

버린 지 오래라고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피를 받은 내 자식임이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머리가 땅에 닿도록 사죄할 뿐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용서를 구할 뿐입니다.

지금은 몸을 낮출 때입니다.

지금은 슬픔을 당한 세상과 아픔을 나눌 때입니다.

버팔로 한인장로교회는

세상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교회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과 사회 앞에 다하지 못한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참회하며

조승희 군처럼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는

이 땅의 참된 교회가 되겠습니다.

 

버팔로에 봄이 왔나 했는데

다시 눈이 내렸습니다.

지나간 겨울이 또 왔나 싶었는데

다시금 봄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기온이 50도쯤 되나 했는데

다음 날 20도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40도를 오르내립니다.

정말 버팔로 날씨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가만 보니 봄 구경 없이 여름을 볼 듯합니다.

자연은 이렇듯 늘 변덕스럽습니다.

사람들도 자주 변덕스럽습니다.

어쩌면 자연보다도 더 변덕스럽기도 합니다.

문득 내가 믿는 하나님이 한결 같으심이 좋습니다.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심이 좋습니다.

여기 버팔로 한인 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변함없이 준비된 교회입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늘 동일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제 버팔로에 봄이 왔습니다.

길섶의 눈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젠 겨울옷이 거추장스럽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나무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길고 어두웠던 터널을 나온 듯합니다.

만물은 따뜻한 봄을 맞이했건만

자연은 해빙무드에 한창이건만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요?

우리의 영혼은 어떠한지요?

아직 눈 덮은 계절은 아닌지요?

아직도 어두운 터널 속은 아닌지요?

여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의 영혼에 봄의 찬미를 들려주기 위해

얼어붙은 당신의 영혼을 녹이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된 교회입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봄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3.1 절에

영원으로의 초대 : 2007/03/04 17:05
 

3월이 되면 늘

조국의 독립을 외쳤던

삼일 운동이 생각나곤 합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너무나 많은 분들이 싸우셨습니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희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당당히 독립된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번영된 국가를 이루고 있습니다.

문득 우리의 영혼을 떠올려 봅니다.

과연 우리의 영혼은 독립을 했는지요?

혹 사단의 지배하에 있지는 않은지요?

그것은 일제 압제보다 더 끔찍한 것입니다.

여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의 영혼의 자유함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교회입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참된 자유함을 누리고 싶습니다.

 

저희 집에 햄스터가 한 마리 있습니다.

수명이 2년밖에 안 된답니다

너무 짧게 사는 그 햄스터를 보면

안됐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도 그리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길어야 팔십이요

더 길어야 구십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또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팔십 구십이라고 해야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삶이지요.

그 한순간을 투자해서 영원을 얻을 수 있다면?

정말 괜찮은 투자 아닙니까?

여기 버팔로 한인 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교회입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영원에 이르고 싶습니다.

2월에

영원으로의 초대 : 2007/02/04 16:40
 

2007년의 첫 종을 울린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

벌써 1월의 달력을 떼어 냈습니다.

어느 사이 2월에 들어섰습니다.

정말 세월이 빨라도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열두 번만 보내면

2007년도 끝나는 것이겠지요.

가만 보면 인생이 짧아도 너무 짧은 듯합니다.

어떻게 살아도 지나가버리는 인생

가능한 한 허비하지 않는 것이

차곡차곡 남도록 사는 것이 지혜일겁니다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이라면

세월을 주신 분 뜻대로 사는 것이겠지요.

그것을 알지 못해서 자주 문제이겠지만-

여기 버팔로 한인 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가장 값지게 보내도록,

그분의 뜻을 알도록 준비된 교회입니다.

꼭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소중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김현진)

새해

영원으로의 초대 : 2007/01/07 00:00
 

2007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또다시

새 도화지가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 도화지에

각자가 원하는 그림들을 그리게 됩니다.

이제까지 많은 도화지들을 망쳤습니다.

정작 그려야 할 것은 그리지 못한 채

엉뚱한 것만 그리곤 내어버렸습니다.

이번엔 잘 좀 그렸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도화지를 주신

그분의 뜻대로 그렸으면 합니다.

여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새 도화지에

멋진 그림을 그리도록 준비된 교회입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명작을 만들고 싶습니다.


- 2007년 1월 7일 -

 

지금은 성탄의 계절입니다.

길거리를 지나거나 Mall에 가보면

자주 성탄 노래를 듣게 됩니다.

그 노래들을 듣노라면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괜스레 마음이 들떠집니다.

역시 성탄시즌은 즐거운 시즌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시즌입니다.

그러라고 아기 예수가 오신 모양입니다.

예, 맞습니다!

아기 예수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단지 성탄 시즌의 행복이 아닌

우리의 영원한 행복

우리의 참된 행복을 위해 오셨습니다.

여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의 참된 행복을 위해 준비된 곳입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참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 2006년 12월 10일 -

 

이제 제법 날이 쌀쌀합니다.

겨울 문턱에 들어선 것이 분명합니다.

입는 옷도 제법 두터워졌습니다.

자동차를 타면 저절로 히터에 손이 갑니다.

거리의 나무들도 겨울 채비를 마쳤습니다.

나뭇잎이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젠 눈이 와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젠 날이 추워져도 괜찮다고 합니다.

가만 보면 우리는 자연만 못한 것 같습니다.

자연은 늘 때를 알아차리는데

자연은 늘 알아서 겨울을 준비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는 전혀 때를 모릅니다.

머지않아 시대의 겨울이 올 터인데

우리가 준비하는 것이란 고작 두꺼운 옷뿐입니다

여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찾아올 겨울을 위해 준비된 교회입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인생의 겨울, 시대의 겨울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 2006년 11월 26일 -

 

얼마 전 우린 큰 재난을 겪었습니다.

기대하던 멋진 단풍은 온데간데없이

초유의 눈 폭격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모든 버팔로 사람들이

큰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거리의 나무들은 여전히 부러진 채로

당시의 재해를 생각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시 정상적인 가을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도마냥 갑자기 들이닥친 이번 눈처럼

갑자기 우리 삶에 마지막이 찾아온다면

갑자기 이 세상에 마지막이 찾아온다면

물론 그렇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 날이 올 것이라 했습니다.

당신은 그 때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요.

여기 버팔로 한인 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된 교회입니다

꼭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준비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 2006년 11월 5일 -

 

가을이 되면

늘 생각나는 시인이 있습니다

윤동주라는 시인입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노래했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예민해 했습니다

지금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묵상의 계절 가을입니다

어떻게 살아온 세월이었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삶이었습니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바람 따라 흘러 보낸 세월이었습니까

이제는 그렇게 살기에 너무 아까운 세월입니다

그렇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여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있습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이 가을에

풍성한 삶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 2006년 10월 22일 -

 

모든 사람이 찾는 것이 있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 어디에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없습니다.

그 땅은 스스로 개척해 가는 곳입니다.

아무리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일지라도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은 척박한 곳입니다.

동토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도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면

그곳이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진정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곳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당신은 어떤 곳에서 살고 계십니까?

여기 버팔로 한인장로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축복의 땅을 안기고자 준비된 교회입니다.
오십시오! 당신과 함께 그 땅을 열어가고 싶습니다.

- 2006년 10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