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여, 안녕!”
“부시여, 안녕!”
드디어 ‘부시’가 떠나간다. 오는 20일 정오를 기해 ‘부시’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자그마치 8년 세월이다. 다른 어떤 대통령 재임보다 길게 느껴진 세월이 아닐 수 없다. 글쎄다, 같은 시간이라도 즐겁고 좋은 일은 빨리 지나가는 데 반해 슬프고 안 좋은 일일수록 더디 가는 듯하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정말 다른 대통령 재임 때보다 왜 그리 길고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진 기간이었는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가는 ‘부시’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무엇일까? 글쎄다, 이는 더 많은 세월이 지나가봐야 알 일이겠으나 모르긴 몰라도 그리 좋을 듯싶지는 않다. 아니 내 개인적인 견해까지 반영하자면 상당히 나쁠 듯싶다. 실제로 막 퇴임을 앞둔 그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그야말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최악이다. 그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는 20%대로 이는 ‘닉슨 대통령’ 이래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 해 역사가 109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단 2명만이 그를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통계로 보자면 2%가 안 되는 수준이다. 일반 여론이 20%인 것만도 최악인데 그보다 더 객관적이고 더 엄격하고 더 정확한 역사가들의 평가가 그렇다면 참담하다 못해 불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약 한달 전쯤엔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부시와 이라크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이라크의 어떤 기자가 부시를 향해 신발을 집어던진 것이다. 그것도 한짝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한짝이 날아들더니만 연이어 또 한짝이 날아들었다. 그로 인해 회견장은 삽시간에 난장판으로 변하고 신발을 던진 기자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신발을 던지는 것은 아랍권에서는 중대한 모욕에 해당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그 기자는 부시에게 “이게 마지막 작별 인사”라는 말과 함께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부시에게 신발을 던졌다고 한다. 아마도 부시가 자기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그 같은 행동을 했던 것 같다.
그 기자가 부시에게 신발을 던진 것, 나는 그것이 부시를 향한 역사의 평가처럼 생각되었다. 부시는 ‘역사’로부터, 그리고 ‘세계’로부터 신발을 맞을 만한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이는 그가 세계에 저지른 범죄(?) 때문이며, 또한 미국의 경제를 망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같은 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마치 anti-Bush라도 되는 듯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코 안티 Bush가 아니다. 단지 그가 대통령 재임시 일으킨 전쟁과 그가 행한 많은 실정 때문에 그와 같이 평가하는 것뿐이다.
사실 ‘부시’는 그 시작부터가 쉽지 않았다. 지난 2000년, ‘엘 고어’ 전 부통령과 법정까지 가는 혈투 끝에 힘겹게 백악관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그는 8년간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격변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 그는 ‘작은 정부’와 ‘온정적 보수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정권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정권 출범 9개월 만에 터진 9.11 사태를 계기로 하루아침에 그는 ‘제왕적 지도자’로 돌변하였다. 9.11 사태는 그 자체로 역사와 미국의 비극이었으나 부시에게 있어서는 보통 효자가 아닐 수 없었다. 이는 9.11 사태로 인해, 턱걸이로 간신히 대통령이 된 사람이 90%가 넘는 압도적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기회였다. 만일 그가 당시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뿐만 아니라 역사와 세계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바르게 지도력을 발휘했더라면 그는 역사 속에 ‘위대한 대통령’으로 그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악수(惡手)를 두기 시작했다. 그는 “악의 세계를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책임”이라고 하면서 마치 도탄에 빠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출현한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처신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미국의 안전을 명분으로 세계를 미국화하려는 ‘깡패 국가’로 돌변했다고나 할까. 정말 그는 ‘깡패’마냥 전 세계를 향해 “우리 편에 서든지 아니면 테러 편에 서든지 하라”고 엄포까지 놓았다. 사실상 그때 이미 그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부시는 ‘악’(탈레반)을 응징한다고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살상시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이듬해(2001년) 그는 이라크로까지 전쟁을 확산시켰다. 당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끝까지 전쟁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무대포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미국을 ‘깡패 국가’로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그 전쟁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그 살상무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에서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전쟁의 명분은 허구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야말로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로 인해 미국의 외교는 개국 이래 가장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는 전 세계 국가들이, 심지어 그 동안 우방으로 여겨졌던 나라들마저 미국에 대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은 만 7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단지 전쟁을 일으킨 것만이 아니다. 그는 미국과 세계의 경제마저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가 일으킨 전쟁이 ‘범죄’라면, 그가 무너뜨린 경제는 엄청난 ‘실정’이 아닐 수 없다. 부시가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을 때만 해도 국가 재정은 2360억불이나 흑자였다. 그런데 2008년 기준으로 그는 그 흑자 재정을 4550억불의 적자 재정으로 바꾸어놓았다. 그 적자규모는 금년 들어 1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나라 살림을 다 말아먹었다고나 할까. 참으로 대단한 재주(?)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이처럼 흑자 재정을 적자 재정으로 바꾸어놓은 데엔 부유층 위주의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그는 부유층의 부의 효과가 일반 국민들에게 확산된다는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유리한 감세정책을 폄으로 엄청난 국가재정의 손실을 초래했고, 사회적으로는 더욱 빈부격차를 늘리는 사회양극화 현상을 초래하였다. 그가 집권할 당시 빈곤층은 640만 명이었으나 현재는 76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의 경제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하였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가 잘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신흥 대국인 중국, 인도와의 관계를 공고히 한 점, 그리고 AIDS 확산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에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 또한 ‘낙제학생방지법’을 제정해 공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업적들은 그의 실정들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지나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부시 정권 8년에 대한 평가는 가혹하리만큼 좋지 않다.
지난 목요일(1월 15일)에 부시는 퇴임 닷새를 남겨 놓고 ‘고별 연설’을 하였다. 아쉽게도 그리고 낯 뜨겁게도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업적을 열거하며 자신의 실정들에 대해 변명만을 늘어놓았다. 특별히 “마음속에 최선의 국가이익을 염두에 두고 항상 행동했으며 내 양심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했다”(I have always acted with the best interests of our country in mind. I have followed my conscience and done what I thought was right.)고 말할 땐 쓴 웃음마저 나왔다. 무엇이 ‘국가 이익’이며, 또 그의 ‘양심’은 어떤 양심인가? 미국을 ‘깡패 국가’로 만드는 것이 국가 이익이며, 거짓에 근거하여 수많은 사람을 살상시키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그의 양심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자리에서조차 나는 그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왜곡된 사고와 양심에 대해서.
나는 부시를 보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맹점, 아니 민주주의 자체의 맹점을 느낀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대다수 구성원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바로 그 민주주의 원칙에 의거해 부시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이다. 특별히 미국은 선거인단이라고 하는 대의원 제도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어 있다. 이 제도 때문에 총유권자 수에 있어 민주당의 ‘엘 고어’ 후보가 더 많은 득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통령은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가 부시가 되었다. 미국이 연방국가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어떻게 보면 불합리한 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같은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의 맹점으로 인해 ‘부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이고, 그 결과 미국이 지금처럼 ‘수렁’에 빠진 나라가 된 것이다.
단지 미국의 민주주의만이 아니다. 나는 ‘부시’를 보면서 민주주의 자체의 허구와 맹점을 목격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방식에 의거해서 부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이나 말이다. 어떻게 부시 같은 사람을 두 번씩이나 대통령으로 세울 수가 있을까? 여기서 나는 민주주의의 맹점이라고 할 수 있는 우중정치의 실상을 본다. 그 결과 미국과 전 세계는 8년이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민주주의가 대다수 구성원들이 원하는 대로 의사를 결정하는 정치라고는 하지만 그것만이 꼭 옳은 방식은 아닌 듯하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기독교는 민주주의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것인데 기독교가 그 기초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가르친다. 즉 모든 인간은 다 동등하며, 또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인권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친다. 민주주의는 바로 그 같은 정신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기독교가 지향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주권주의’이다. 즉 기독교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수의 의사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나님 그분이 원하시는 것, 즉 ‘하나님의 뜻’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뜻에 따라 움직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수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각각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가운데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기독교적인 민주주의이요 또 그럴 때 가장 바람직한 결정, 가장 이상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에 이 나라의 국민들이, 특별히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같은 생각으로 대통령을 뽑았더라면 최소한 ‘부시’ 같은 사람이 재선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민주주의’에 감사한다. 특별히 이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 민주주의 때문에 부시가 물러나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곳이 미국이 아니고, 공산국가나 독재국가였다면 부시 정권하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지냈을 터인데 말이다. 8년이 긴 세월이긴 하지만, 그 8년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뒤틀어지고 망가지긴 했지만, 그래도 8년 만에 ‘부시 정권’이 끝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부시를 떠나보내면서 문득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바른 대통령을 뽑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 등등.
글을 맺으며 그래도 퇴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할 듯싶다. “부시여, 안녕!”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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