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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사람
우리가 잘 아는 소설로<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소설이 있다. 지킬 박사는
인간에게 선과 악의 두 가지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두 가지를 구분하기
위한 실험을 가진다. 마침내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약물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지킬 박사는 그 약물을 자신에게 사용하게 되는데 그 순간 지킬 박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그 대신 그 속에 있는 인간의 악한 본성이 강력하게 나타나게 된다.그
악한 인격은 Mr. Hyde로 불리며 반사회적인 행위는 물론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른다.
계속해서 실험을 행하는 가운데, 지킬 박사는 낮에는 지킬 박사로 밤에는 하이드씨
로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Mr. Hyde의 모습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나중엔
Mr. Hyde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지킬 박사는 Mr. Hyde를 없애기 위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이 소설의 줄거리를 차용하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헐
크’(Hulk)라는 영화이기도 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인간 속엔 분명하게
내재하는 선과 악의 공존을 보여주는 story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이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같은 이중적인 존재
가운데 성경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바로 ‘가룟 유다’라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룟 유다는 역사 속에서 배신자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이는 자기
스승을 입맞춤으로 팔아넘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
고 저주 받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성경을 보면 그가 목을 매어 최후를 마친 것으
로 묘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져 곤두박질 쳐지면서 창
자가 바깥으로 다 흘러나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같은 가룟 유다에 대해서 몇 해 전부터 엉뚱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가룟 유다의 복권운동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카톨릭과 성공회의 일부 학
자들에 의해 그런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들에 의하면 유다가 은화 30개를 받고
예수님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는 명백히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서도 결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그가 돈을 받고 자기 스승을 배신한 것도 사실이고,그가 그 벌로 하나
님의 저주를 받아 목매어 죽은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면 가룟 유다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특히 돈
궤를 맡은 사람,즉 회계 일을 맡은 사람이었다.여기서 우린 어렵지 않게 두 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하나는 그가‘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신뢰할 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돈을 맡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지 않겠는가? 그러면 그는 어느 정도로 신임 받는 사람이었는
가?요한복음13장 2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예수님께서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을 말씀하시자 한 제자가 그가 누구
인지 물었다.그때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당신을 팔자가 누구인지 지목해 주셨다.
바로 가룟 유다였다. 물론 말씀으로 지목하지 않으시고 어떤 행위를 통해서 보여주
셨다.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무도‘가룟 유다’에 대해 의심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가룟 유다는 그 정도로 모든 제자들의 신임을 받았다는 것이
다.그런데 실상은 그가 바로 그 스승 예수님을 팔 자였다.
그러면 가룟 유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의 실상을 보도록 하자. 요한복음 12장
6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
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렸다. 그러자 가룟 유다가 왜 이렇게
비싼 향유를 부질없는 짓에 허비하느냐고 그 여인을 나무랐다. 바로 이 대목을 두고서 어떤
사람들은 가룟 유다를 향해‘실용적인 사고를 가진 휴머니스트’, 혹은 ‘사회운동가’로 묘사
하기도 한다.그러나 이는 그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그의 실상이 뭐라고 했는가?
‘저는 도적’이라고 했다. 그가 돈 궤를 맡고 있으면서 그 돈을 훔쳐갔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가 향유를 부은 여인을 책망한 이유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는 그 돈이 탐이 났기 때
문이었다. 마리아가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지 않고 그것을 팔아 예수님께 헌금했
다면 그 돈은 자기 돈이 되었을 것이다.왜냐하면 늘 돈 궤의 돈을 훔쳐갔기 때문이다.이처
럼 그의 정체는 분명‘도적’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가 도적놈인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만큼 교묘했기 때문이었다.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그는 다른 제자들로
부터 신뢰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존경까지 받았다고 한다. 정말 완벽하게 남을 속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도적이었던 가룟 유다는 어떤 일까지 저지르고 말았는가? 돈 때문에 자기 스
승까지 팔아넘기는 짓을 저질렀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에게 붙잡혀 갖은 고
초를 당하시게 되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가룟 유
다란 사람의 실체이다.그런데 어떻게 이 같은 사람을 가리켜‘하나님의 일을 위해악역을 맡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가 있는가?그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사단의 주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그러면 가룟 유다가 어쩌다가 그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는가? 왜 그는 남들에게
신임과 존경을 받으면서 실제로는 도적인 이중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했는가? 왜 그
는 자기 스승까지 파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는가? 이는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
다.그것이 그를 이중적인 사람으로 만들었고,그것이 그를 도적이 되게 만들었고,
결국엔 자기 스승까지 팔게 만들었다.그 모든 것들은 하나 같이 돈 때문이었다.
성경은 그가 자기 스승을 판 대가로 ‘은화 30개’를 받았다고 했다. 이는 노동자
한 달 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바로 그 금액에 자기 스승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 수천 수만의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가 된 사람이 가룟 유다이다. 따라서 그가 제대로 제자의 역할을
다했다면 다른 제자들처럼 역사 속에 그의 이름이 아름답게 남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큰 상급을 받고 천국에서도 놀라운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
나 그는 그 놀라운 자리를 스스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땅의 썩어질 재물 때문
에, 그것도 한 달 봉급에 지나지 않는 돈 몇 푼 때문에 역사 속에 가장 수치스런
이름을 남긴 자,저주 받은 자가 되고 말았다.그랬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그에 대
해서 차라리 나지 않는 것이 좋을 뻔한 사람이라고까지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가룟 유다 한 사람만의 이야기라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러나 불행히도 가
룟 유다는 단지 우리에게 그 대표적인 실례를 보여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이
는 누구든지 재물에 사로잡히게 되면 가룟 유다와 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재물이 그 사람의 섬기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그 사람
은 제대로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그 같은 사람은 재물과 하나님-이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을 때에만 믿음생활을 가진다.그러나 재물이냐 하나님이냐,둘 중 하
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주어지게 되면 결국 재물을 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
람에겐 당연히 재물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상 재물이 자신의 하나
님이기 때문이다. 재물뿐이랴! 명예나 권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누구든 명예나 권
력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면 그 사람 또한 가룟 유다와 마찬가지의 자리에
떨어질 수 있다.
성경을 보면 유월절이 다가올 무렵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갖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다음은 그것을 보여주는 요한복음13장 2절의 말씀이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어떻게 스승을 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는가? 이는 사단이 그 마음속에 그 같은
생각을 넣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사단이 어떻게 그 같은 생각을 넣어줄 수가
있었는가?이는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서였다.사단은 유다가 어떤 사람인가
를 알았고 바로 그것을 이용해서 유다를 자기의 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즉 그는
재물 때문에 사단에게 팔린 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가룟 유다 한 사람에
게만 해당되는 얘기이겠는가?누구든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중히 여긴다면,누구든
주님보다 명예나 권력을 더 중히 여긴다면 마찬가지의 자리에 떨어질 수가 있다.
모두가 잘 아는 유명한 그림으로'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라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마지막으로 그린 제자가 가룟 유다였다
고 한다.가룟 유다에 적합한 모델을 찾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알콜 중독자’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에게 모델을 제안하였다. 돈을 준다는 소
리에 귀가 솔깃해진 그 사람은 쾌히 모델 제안을 수락하였다. 다빈치가 그 사람을
모델로 ‘가룟 유다’를 그리고 있는데 그 사람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말하
는 것이었다.
“선생님! 저를 기억 못하시겠습니까? 언젠가 선생님이 저를 모델로 하여‘예수님’
을 그리지 않았습니까?그런데 이제는 제가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과연 자신이 언젠가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었다. 결국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은 같은 모델을 사용하여 ‘예수님’과 ‘가룟 유다’
를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참으로 충격적인 그리고 의미심장한 이야기 아닌가?
누구든 성령에 붙들릴 때 예수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사단이 우
리를 지배하게 될 때 예수를 본받는 삶이 아니라 예수를 배반하는 삶을 살게 된다.
특별히 가룟 유다처럼 재물에 사로잡히게 될 때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되며, 결국 주
님을 배반하는 그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두 얼굴의 사람’- 이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말하는 것도,‘가룟 유
다’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우리 모두가 다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누구
든 성령이 아닌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될 때 이 같은 자리에 떨어질 수 있다. 그리하
여 우리 또한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는 비극적인 자리에 떨어질 수 있다.
나는 예수님 쪽에 가까운 사람인가 아니면 가룟 유다 쪽에 가까운 사람인가? 하
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겉과 속이 모두 동일한 사람인가? 아니면 겉과 속이 다른 사
람,믿음과 삶이 다른 이중적인 사람인가?이 고난주간에 진지하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시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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