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전도종족을 향한 사랑의 불씨(1) -김요한 선교사님 인터뷰-
미전도종족을 향한 사랑의 불씨(1)
-김요한 선교사님 인터뷰-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고 있는 김요한 선교사님께서 지난 몇 달간 버팔로에 머무시게 되어 저희 교우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오셨습니다. 「쉴만한 물가」편집부에서는 선교사님의 삶과 신앙 및 그동안의 사역을 여러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자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Q. 짧은 자기소개 및 가족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김요한 선교사이고, 저희 가족은 아내 이순희 사모, 딸 미리, 아들 천영, 신영 이렇게 다섯 식구입니다. 미리는 여기 버팔로에서 공부하고 있고, 큰 아들은 보스톤에, 그리고 막내는 한국에서 영어선생을 하고 있습니다.
Q. 예수님을 믿게 되신 계기와 신앙생활에 큰 전환점이 있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저는 고향이 경북 영천으로 태백산맥 깊숙한 곳 산속 초가집에서 자랐습니다. 국민학교를 6km 걸어서 다녔는데 처음 학교 갔을 때 전봇대를 보고 놀랐을 정도입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같이 자취하던 친구가 교회에 가자고 졸라대서 따라나가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제가 진실로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고 만난 것은 대학교 3학년때였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죄를 깊이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 후로부터는 성경을 읽는 것이 너무 좋고 찬양하는 것이 좋고 그리고 너무나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온 세상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제가 집안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 후에 할머니께서 예수님을 믿게 되시고 자연스럽게 모든 친척들까지 다 예수님을 믿는 집안이 되었습니다.
Q. 사모님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셨나요?
A. 저는 할아버지 때부터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9살 때 깊이 죄를 회개하면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그 회개한 날 밤에 자면서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오늘 밤에 나를 불러 주세요.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또 죄를 짓게 되니까 오늘 밤 깨끗할 때 나를 불러주세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그대로 있는 나를 보면서 너무나 실망스럽고 막막했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지내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주님이 금방 오실 것 같아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주님 오실날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렸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싶은데 저의 주일학교 선생님이 제 신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선교의 현장 |
Q. 미국 오시기 전의 생활은 어떠셨는지요?
A. 대학에서는 성악을 전공했는데 오페라에서 주역도 맡고 하면서 훌륭한 오페라 싱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는 그것이 변하여 신학교를 가고 싶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음악 선생을 하였는데 그 때는 제 마음이 굉장히 뜨거워서 아침 조회시간에 늘 30분씩 설교를 했습니다. 그 아이들 중에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된 아이도 있지요. 그러던 중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아내와 저는 같은 교회 대학부 회장, 부회장이었지요.
Q. 어떻게 미국에 오시게 되셨는지, 그리고 이민생활은 어떠셨는지 소개해주세요.
A. 아내가 간호사였는데 결혼 전에 이미 미국으로 이민갈 수속을 다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중에 함께 미국으로 가서 교회음악을 공부하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75년에 미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처음엔 워싱턴에 정착을 했습니다. 첫 직장은 시어즈의 마린파트에서 일했는데 보트를 팔면 바닷가로 끌고 가서 시운전 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생활하기가 힘이 들고 공부를 하려고 하니 돈이 필요해서 뉴욕으로 올라와 채소장사를 1년간 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비즈니스를 했는데 장사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이 들고 자동차 사고를 네 번이나 당해서 그 일을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하려고 필라델리아로 가서 faith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셋째 아이가 태어나자 경제적으로 힘이 들어서 공부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채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가 델리샵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민생활 17년이 지났습니다.
Q. 어떻게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셨습니까?
A. 당시 제가 워싱턴장로교회에서 음악전도사로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었는데 시카고에서 선교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대회에 우리교회 성가대가 찬양을 맡게 되어서 할 수 없이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회에서 성령님께서 저에게 강하게 역사하셔서 결국 선교사로 헌신하는 시간에 손을 들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내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서 두 달 동안을 서로에게 어떻게 얘기할까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후에 서로 이 사실을 알고서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 저는 15살 때 헌신을 했는데 잊어버리고 살았다가 그 때 다시 생각나서 헌신을 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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