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전도종족을 향한 사랑의 불씨(2)

-김요한 선교사님 인터뷰-



*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고 있는 김요한 선교사님께서 지난 몇 달간 버팔로에 머무시게 되어 저희 교우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오셨습니다. 「쉴만한 물가」편집부에서는 선교사님의 삶과 신앙 및 그동안의 사역을 여러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자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Q. 왜 U국을 선교지로 택하게 되셨나요?

A. 선교헌신 후 남미 아르헨티나와, 유럽 등으로 단기선교를 다니면서 저희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습니다. 1991년도에 소련문이 처음 열렸을 때 모스코바 타쉬켄트, 알마타 등에 선교여행을 하면서 그곳에 고려인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 후 다시 U국으로 단기선교를 하러 갔을 때 이 문제로 금식기도를 했는데 그곳을 떠나기 직전에 응답을 받고 U국을 저희의 선교지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시에 자녀분들이 어렸을 터인데 어려움이 없으셨는지요?

A. 당시 아이들이 중학교 2, 3학년,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비즈니스도 다 정리를 못한 상태라 아내가 워싱턴에 남아서 비즈니스 한 곳과 아이들을 돌보았고 저 혼자서 두 차례의 단기선교, 그리고 정식 파송을 받은 이후 3년 동안 혼자 U국에 들어가 일했습니다.

그 러다가 두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 11학년이 된 막내아이를 한 권사님 댁에 맡기고 아내도 함께 U국으로 왔습니다. 아이들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다 성장한 지금도 아이들은 늘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합니다. 선교사 자녀들이 겪는 아픔이지요.

사 모님: 맞아요. 선교사도 선교사 자녀들도 다 여러 가지로 상처들이 참 많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선교대회에서 선교사들과 그 자녀들이 모여서 모임을 가졌는데 마지막 날에 자녀들이 자신들이 가진 아픔 그리고 자부심들을 부모님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다 커서 그 자리에 없었지만 저도 너무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Q. 선교사님들에게는 자녀들 양육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지요?

A. 예. 그래서 많은 지역에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지요. U국의 경우도 미국, 영국 등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이 학교를 운영해 왔는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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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들이 다 추방되어서 학교 운영이 안되고 있습니다. 한국인 선교사와 자녀들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가르칠 선생님이 없습니다. 이번에 선교사님 한 분이 이 일에 책임을 맡고 미국 전역과 캐나다를 다녔는데 결국은 구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선교사라고 하면 직접 선교사역을 하는 선교사만을 생각하는데 사실 여러 가지 분야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히 선교사 자녀들을 가르치는 사역도 너무 귀합니다. 그들을 잘 가르치면 그들이 다 선교사가 될 수 있지요. 이미 그 문화에 다 적응된 아이들이니까요.


사 모님: 우리 버팔로한인장로교회에도 젊은이들이 많은데 결혼 전에 1년이나 2년 정도 선교사 자녀학교에 교사로 헌신할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어로 가르칠 교사가 필요한데 이곳의 청년들은 다 이 일에 너무나 훌륭한 일꾼들이지요. 


Q. U국에서의 사역을 소개해주세요.

A. 첫째 사역은 교회개척 사역이었습니다. 그곳에 25만의 고려인들이 여러 개의 집단농장을 이루고 있었는데 각각의 집단농장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2기 사역으로는 그 개척된 교회들을 다른 선교사님들에게 맡기고 제가 맡은 만민교회를 셀그룹 교회로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정부에서 외국 선교사들이 더 이상 교회에서 종교비자로 일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후에는 회사를 세워서 비즈니스 비자로 일하면서 그 안에 교육센터를 운영하며 유치원을 열었습니다. 3기도 역시 NGO 및 비즈니스 사역을 하면서 지하교회들을 섬겼고, 4기 사역부터는 완전히 비즈니스 사역으로 전환하여 일했습니다.


Q. 기독교에 대해 강한 반대는 없었습니까?

A. 그곳의 대부분이 고려인들이었는데 모두들 무신론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유교관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특히 청장년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면으로 반대하지는 않았고 우리를 만나면 인사하고 안부 묻고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사역 초반에는 주로 아이들과 노인들만 교회에 가득했는데, 예수초청천국잔치 등을 하면 미국에서 온 선교사(저희들)를 구경하러 청장년 남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천명이 들어가는 문화회관이 꽉 찰 정도였습니다.

복 음사역을 크게 반대한 세력은 U국 정부이지요. 지금도 그렇고요. 모슬렘권 사람들도 우리를 반대하지만 그래도 서로들 인사도 하고 행사 때 초청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한 마당 안에 담 하나를 두고 교회와 모슬렘 사원이 함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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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려인 청장년들이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나요?

A. 저희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열리더군요. 800명이 공부하는 초등학교에 난방시설이 고장나서 아이들이 추위에 떨면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리교회가 헌금을 하여 난방시설을 고쳐주었습니다. 그 학교 교장선생님이 전에는 교회를 싫어하여 아이들을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일 이후로 아이들을 교회에 나가도록 적극 권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에 병원을 지으려고 계획했다가 결국 짓지 못하게 되어 그 일을 위해 마련한 20만불 상당의 엠블란스와 의료기기 등을 동네 병원에 기증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동네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교회가 정착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목표이지만 지역사회를 위해서 그 곳 사람들의 아프고 어려운 곳을 도와주어야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복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사 모님: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는 데에는 황만금 집사님이라는 분의 영향도 컸습니다. 그분은 고려인으로서 U국에서 모범적인 집단농장을 이끌어와 노동영웅상까지 받은 유명한 분이셨는데, 그분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고 동네에 있는 회관을 교회당으로 쓰도록 빌려주었습니다. 또한 도지사가 교회 건축을 반대할 때도 그 집사님께서 나서서 도와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분을 주셔서 우리의 사역에 큰 힘을 실어주셨지요.

그 리고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의 청년들을 해외로 많이 내보내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에까지 많은 대학에서 우리교회 출신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원래 그곳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목사님께서 유학생 보내는 일에 적극적이셔서 조그만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수십명의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게 되었지요. 고등학생들도 해마다 나라에서 보내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나가고 있고요. 그러다보니 이것 때문에 교회를 찾아나오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Q. 최근에 사역의 전환이 있으셨지요?

A. 1996년 이후로 U국 정부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세례를 줄 수 없게 만들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2000년까지 세례와 성찬을 계속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U국으로 들어갔을 때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있었습니다. 그간의 편지로 아시다시피 유치원에서 종교교육을 했다는 것과(그들이 학부형들에게 거짓 증언과 편지들을 쓰게 한 것입니다.) 교회에 이상한 문서 즉 전도지가 있다고 하여 교회와 유치원의 문을 닫게 될 뻔 했습니다. 다 저희를 추방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마침 저희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나온 후라 저희를 못잡은 것이지요. 지난 5월에 이 일이 일어나 모두가 정말로 간절히 기도를 해왔는데 9월에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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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범자들을 사면해 주라는 대통령 특사가 내렸습니다. 우리도 ‘초범자’(?)에 해당되는 사람이라 이 특사로 인해 교회도 유치원도 문이 닫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이 일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다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기존의 비자로 U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U국의 교회는 이제 자립할 만큼 성장하여 있으니 제가 그곳에 없어도 큰 어려움 없이 움직여가고 있습니다.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후방에서 도울 계획입니다.

이 일 후로 제가 속한 Seed 선교본부에서는 제게 새롭게 미전도종족 선교동원의 일을 맡겼습니다. 지난 안식년 동안 미전도종족 선교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U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인 것 같습니다.


Q. 미전도종족 선교에 대한 소개와 선교사님의 앞으로의 사역계획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지금 세계 선교사들의 90%가 이미 선교사가 있는 곳에, 또한 선교비의 87%가 이미 선교비가 지출되는 곳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선교사도 교회도 쪽복음이나 예수영화 마저도 전혀 안들어간 곳이 3400여 종족이나 됩니다. 문명의 오지나, 모슬렘권, 혹은 공산주의 지역들이라 선교사들이 들어가기를 꺼리기 때문이지요. 우리 교회들이 크게 회개해야 할 일이라 여겨지고 또한 하나님께서 이들 미전도종족에 대해 얼마나 안타까와 하시는가 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 는 앞으로 이 민족들을 위한 선교 동원사역을 하게 되는데, 교회들을 찾아다니고 선교대회, 세미나 등을 개최하면서 선교사를 모집하고 교회들을 이 사역에 참여시키는 일을 합니다. 올 11월에도 이곳 버팔로에서 3000명 예상의 선교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한 저는 현장사역도 함께 하려고 합니다. U국에도 미전도종족들이 있는데 이 곳부터 시작하려 하고, 인구가 10만이 넘는 미전도종족이 집중된 북인도 지역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일생 동안 몇 개의 종족이 복음을 받고 교회가 세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Q. 저희 버팔로한인장로교회와는 어떻게 연결되셨는지, 그리고 저희 성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나누어주십시오.

A. 제가 버팔로와 인연이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딸이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버팔로한인장로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대해 열정을 갖고 계신 김현진 목사님과, 누리글 선교를 하고 계시는 김석연 박사님은 제게 이 교회에 대한 애정을 더욱 남다르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미전도종족 선교에 헌신하면서 누리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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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듣고 크게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누리글 선교를 시작하신 김석연 박사님을 이 교회에서 만나뵙게 되고 함께 기도모임도 갖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사 모님: 저희는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다보니 교회들마다 받는 인상이 다 다릅니다. 이 버팔로한인장로교회는 우리 같은 이민자들이 처음 미국에 와서 나온 교회, 그러니까 서로들 가족처럼 챙기고 따뜻한 그런 분위기를 느껴서 너무 좋고 편안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변하지 않고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 사님: 저는 이 버팔로한인장로교회가 마지막 때에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해 크게 사용될 것임이 눈에 선하게 보입니다. 미전도종족선교에 너무나 크게 사용될 누리글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얼마 전에 나이아가라에서 열린 미전도종족 선교대회에 2000명의 젊은이가 미국 전역에서 모였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올 11월는 이곳 버팔로에서 3000명 규모의 미전도종족선교대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도시도 아닌 이 버팔로에서 이런 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하심이 있다고 봅니다. 그 중심에 버팔로한인교회가 서있는 것 같습니다. 

일 은 하나님이 이루어가시지만 또한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마음을 다해 기도로 헌신하는 일꾼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시면 산을 움직이십니다. 이것은 바로 기도의 불씨로부터 시작됩니다. 버팔로한인장로교회가 큰 산을 움직이는 불을 붙이는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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