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모 전투
알라모 전투
1830 텍사스는 멕시코에 속해 있었다. 당시 많은 미국인들이 적은 돈으로
넓은 땅을 살 수가 있었기 때문에 텍사스로 이주를 해오고 있었다. 멕시코 정부는 이
주자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로마 가톨릭 교도가 되기를 요구했으며 멕시코 전통
을 따르기를 강요하였다. 텍사스에 미국 이주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자 텍사스 주민
들은 멕시코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하였다.그러나 당시 멕시코의 지도자였던‘산타 아
나’ 장군은 스스로를 절대 권력자로 자처하며 결코 텍사스의 독립을 용납하지 않았
다.오히려 독립을 요구하는 텍사스 주민들을 위협하였다.텍사스 주민들의 독립운동
이 무르익어가자 1836년 마침내 멕시코의 ‘산타 아나’ 장군은 텍사스의 독립을 저지
하기 위해 약7천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텍사스를 침공,텍사스 군대가 후퇴한 ‘알라
모’(Alamo)를 포위하였다.
그때 ‘제임스 본햄’(James Bonham)이라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혈기왕성한 젊
은 변호사가 텍사스에 머물고 있다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텍사스 독립전쟁에 함께
가담하게 되었다.산타 아나 장군이7천의 병사로 ‘알라모’를 포위했을 때 알라모에는
188명의 병사들밖에는 없었다. 이제 그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제임스
본햄은 기적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다른 도시로 달려가 원병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제
임스의 원병 요청을 전해들은 타도시의 장군들은 그 위급함을 인정하면서도 생각해
보겠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그 말은 곧 거절을 뜻하는 것이었다.제임스는 심히 분노
한 얼굴로 말을 타고 다시 알라모로 달려갔다.자기라도 싸워야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는 상당히 똑똑한 젊은 변호사였다. 사태가 얼마나 위급한지 그리고 자신이 돌아
갈 경우 그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얼마든지 다시 돌아가지 않
을 수도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알라모로 돌아갔다.왜냐하면 그곳에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신의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그들만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조
금도 주저하지 않고 다시 포위망을 뚫고서 그 불구덩이 같은 알라모로 들어갔다. 결
국 그는 다른 알라모의 병사들과 전혀 승산이 없는 전투를 벌였고 그곳에서 자신의
최후를 장렬하게 마쳤다.
이는 역사 속에 실제 있었던 그 유명한 텍사스 ‘알라모’ 전투의 이야기이다. 물론
나중에 지원 군대가 알라모에 당도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알라모의 병사들이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전사한 뒤였다. 그러나 알라모 병사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
았다. 알라모 병사들의 장렬한 최후는 모든 텍사스 병사들에게 더욱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게 만들었고, 결국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한
결과 텍사스 군대는 자기들보다 훨씬 전력이 강한 산나 아나 장군의 멕시코 군대를
물리치고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였다. 텍사스 군대가 멕시코와 전쟁할 때 모든 군인
들이 외쳤던 구호는“알라모를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그 같은 구호를 외칠 때마
다 얼마나 그들의 피가 끓었겠는가!
왜 느닷없이 ‘알라모 전투’ 이야기인가? 이는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알라
모 병사들’의 아름다운 희생을 생각하기 위해서이다.그리고 ‘제임스 본햄’이라는 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용기와 헌신을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오늘날의 텍사스가 존재하는
데에는 바로 그들의 아름다운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아름다운
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바로 영적인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우리 교
회의 젊은이들이다.
지난 목요일 저녁 늦은 시간 나는 ‘UB’(바팔로 소재 뉴욕주립대학)를 찾았다. 이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기 때문이었다. 듣는 바로는 학생수가 워낙 많아서 학과별
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이틀에 걸쳐 약 한달 반 가까이 신입생들을 위한 오리엔테
이션이 진행이 되고 있는데 지난 목요일이 그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 달 보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제껏 우리 교회의 Frank 장로님과 교회 젊
은이들이 그 신입생들에게 전도하고 또 교회를 안내하기 위해 수고를 해오고 있던
터였다.참으로 아름답고 귀하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내가 지난 목요일 학
교를 찾은 것은 수고하는 교회 젊은이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저녁9시가 조금 넘자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학생들이 강당에서 쏟아져 나왔다.오
리엔테이션이 있는 건물 로비(Lobby)에는 이미 온갖 써클들, 온갖 기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을 맞으며 자신들의 모임을 소개하는 가운데 학생들
유치에 힘을 쏟고 있었다.그 모습은 흡사 전쟁터와도 같았다.서로 자기들 모임으로
하나라도 더 데리고 가려는. 그 전쟁터 안에는‘버팔로 한인 장로교회’ 젊은이들도
들어 있었다. 우리 교회 젊은이들 역시 이 학생 저 학생을 만나고 대화하며 열심히
전도에 힘쓰고 있었다.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귀하고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텍사스의 독립을 위해 싸운 ‘알라모의 병사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수효는 멕시코의7천명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188명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멕시코의7천을 모두 전멸시키는 기초가 되었다.우리 젊은이들 역시 몇 명 되지 않
았다.그러나 그들의 헌신과 수고로 인해 결국UB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께 나
아오는 큰 역사가 있게 되리라.
또한 그들은 모두 ‘제임스 본햄’과 같은 젊은이들, 아니 그보다 더 귀한 젊은이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 본햄은 텍사스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
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영혼구원은 얼마나 더 귀하고 더
가치 있는 것인가? 한 주(State)의 독립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한 영혼
이야말로 ‘천하’보다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가는 수많은 학생들을 대하며 반짝이
는 눈으로 학생들을 찾고 만나고 대화하며 수고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은 한 영
혼이라도 더 구하고자 하는 구령전쟁(救靈戰爭)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제임스 본햄’이 굳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알라모 전투에 가담할 필요가 없
었듯이, 얼마든지 자신을 위해 더 잘 먹고 잘사는 미래를 가질 수 있었듯이 우리 젊
은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얼마나 좋은 시절인가?얼마나 할 것도 많고 놀 것도 많
은 때인가? 얼마든지 남들처럼 자기들을 위한 다른 일들을 가질 수도 있었건만 그들
은 그 소중한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그 영혼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우리 하나
님께서 그들의 그 같은 중심을 귀히 보시며 축복하시리라.
우리가 사는 세상 곧 ‘영적인 전쟁터’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과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저지하려고 하는 사단과의 전쟁-
그리고 우리들은 바로 그 군사들로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린 과연 얼마나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가! 알라모의 병사들은 항복을 요구하는 멕
시코 군대에“승리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모두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리
고 모든 텍사스의 병사들은“알라모를 기억하라!”고 외치며 비장한 각오로 싸움에 임
하였고 그 결과 자유와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영적인 전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영혼들을 구해내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땅의 전쟁보다 더
비장한 각오로 싸우며 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한 알의 밀
알’이 될 때 그때 많은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비장한 결심과 각오들이 있기를 바란
다. 그럴 때 우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영혼들을 건질 수가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텍사스의 독립이 아닌 사단에게 매인 수많은 영혼들을 독립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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