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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상
지난 달 목장모임의 성경공부 주제가 “갈멜산의 부흥”이었다. 갈멜 산 위에 제단
을 차려놓고 그 제물에 불이 붙도록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했던 유명한 사
건을 다룬 내용이었다.잘 아는대로 이 사건은 바알,아세라 등 온갖 우상을 섬기
던 아합왕과 그 왕후 이세벨,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하나님께서 당신께
서 진정한 살아계신 신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큰 증거가 되었다.
목장성경공부를 하면서 우상이란 무엇일까 토의해보았다. 김석연 장로님께서 아
주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다.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은 모두 우상이다”라
는 말씀이었다.그렇게 본다면 우상은 새긴 조형물이나 자연물,또는 귀신을 섬기
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 재물, 권력, 명예, 건강, 취미, 안락함 등이 다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녀나 부모,가족이 우상일 수도 있다.예수님께서도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
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미워한다는 뜻이 더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무엇
이든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이다.
한편, 더 나아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끈질기게 우상을 섬겼던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우상을 섬기고 타락할 때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겨우 용서를
빌고 회복되고 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서 겪으면서도,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
상 섬기는 일을 그만두지 못했던가 하는 의문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우상에 중독되
게 만들었을까?
교재와 성경본문을 통해 몇 가지 찾아낸 것 중 첫째는, 당시의 우상들이 하나님
보다 더 현실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겼던 것 같다는
점이다. 바알 신은 가나안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우상이라 한
다. 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목민으로 살아갈 때 믿게 된 신이다. 따라
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정착민으로 농사를 짓고 살게되
면서, 하나님 보다는 바알이 그곳 새로운 생활터전에 더 유익이 되는 신이라고 믿
게된 것 같다.또한 바알은 모양이 있어 볼 수 있는 반면,하나님은 형체가 없는
분이다. 그러니 인간적인 생각에 하나님은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 그저 막연한
존재로,바알은 보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신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이는,우리 또한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우리에게 하나님은 애매모호한 존
재로 느껴진다.내 삶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경우란,억지로 끼워맞추지 않
는 한,거의 없다고 우리는 생각한다.성경의 약속은 두리뭉실하고 또 늘 미래형으
로 다가온다. 대신 인간적으로 기댈 만한 것들은 쉽게 눈에 띈다. 돈, 지위, 연줄,
간판 등등. 그래서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더 소중한 위치를 차지
하게 된다.신앙생활은 액서서리로 전락하고 만다.우리는 현실적인 이익을 좇아
우상을 섬기게 된다.
두 번째로,우상숭배의 속성은 재미있다는 것이다.성경은 갈멜산 위에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뛰놀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교재에는 이를
‘미친듯이 뛰었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상의 제사에는 많은 감각적인 요
소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음악, 춤 뿐 아니라 성행위, 환각제 등이 제사의식에
사용되었다고 한다.반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엄숙하기 그지없었다.심지어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이 다시 살아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얼마나 긴장되었겠는가?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재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에 중독되게 하는 한 가지
원인이었다면,이는 우리 또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요소이다.세상에는 재미있
는 것들이 널려있다. 술, 담배 등의 기호, 게임, 영화, TV 등의 오락, 테니스, 골프
등 스포츠 등등. 꼭 죄라 할 수 없어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주위엔 즐
비하다.신앙은 우리에게 그 재미에 대해 절제하라고 요구한다.또 죄와 연관된 것
들은 아예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니 세상은 매력덩어리로 보이고 대신 신앙은 답
답하고 지겨운 종류로 전락한다.우리는 재미를 좇아 우상을 섬기게 된다.
또 한 가지 우상의 특징은 대세라는 점이다.많은 사람들이 추종한다는 것이다.
갈멜산 위에서도 엘리야는 홀로 하나님 편에 서있는 반면,바알의 선지자들은450
명이었다.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
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
라”라고 도전했을 때, 백성들이 한 말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왕도 바알을 섬
기고,바알숭배의 우두머리로 그 서슬 퍼런 이세벨 왕후가 버티고 있고,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대결의 양상도 450대 1인데. 그 상황에서 하나님 편으로 선다는 것
은 대단한 불이익, 또는 위험을 가져다 줄 것이 뻔하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
했을 것이다. 혹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대세를 거스리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주어진다. 하나님을 믿고 그 신앙을 따라 산다는
것은 대세가 아니다.오히려 현실적인 불이익을 가져다주기 일쑤이다.잘못하면 왕
따 당할 수도 있다.그 상황에서 신앙을 지키기란 우둔한 일로 보일 수 있다.남들
다 거짓말하고, 속여먹고, 탈세하고, 자기 것 챙기며 사는데, 나 혼자 정직해 보아
야 무슨 소용이며,기부나 봉사는 또 무슨 쓰잘것 없는 이야기인가?직장에서 혼자
깨끗하게,거룩하게 지내보아야,잘난척한다고 비아냥이나 받지 도움될 일이 무엇
있겠는가?이런 피해를 감지하는 우리는 대세를 따라 우상을 섬기게 된다.
우상을 그토록 질기게 버리지 못하고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때는 이해
가 안되지만,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볼 때,그들의 문제가 그리 생소한 것이 아닌
것임을 깨닫게 된다.현실적인 이익을 따라,재미를 따라, 대세를 따라 살아가고 있
는,우상을 섬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자기도 모르게 우상을
섬기게 만드는 이런 유혹들을 늘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
들과 똑같이 우상을 좇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좀 회개했다가도 또 다시 우상을
따르고 하는 악순환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죄가 아닌 이상,우리는 충분히 즐기고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것들이 하나님을 제끼고 더 우선순위를 차지한다면 문제가 된다. 또한 우리가 수도
원에서 살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웃들과 같이 부대끼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아니 사실 크리스챤으로서 우리는 그들과 더 자주 접촉하고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혹 이웃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이유가 지
고의 목적이 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대세를 따라 그들과 똑같은 모습
으로 살아간다면 이것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크리스챤으로서 한편으론 거룩을 유지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 선한 영향
력을 끼쳐야 할 목적이 서로 조화가 안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느다란 밧줄 위를 걷는 것처럼 자칫 한쪽으로 치우쳐 넘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
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처럼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또 뱀처럼 지혜로와야 할 필요가
있다.그래서 늘 긴장해야 하고 또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의 신앙의 순례길에 시간이 더해갈수록, 우리 모두가 이런 균형을 잘 유
지할만큼 점점 더 성장하고 또 성숙해가길, 그래서 우리를 유혹하는 우상에 빠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그분만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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