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가을잔치
인조 가을잔치
10월의 중순, 이제 본격적인 가을에 들어섰다. 날씨도 완연한 가을 날씨이고 거
리거리마다 나무들의 색깔 또한 화려한 총천연색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아마 한 두
주후면 온 세상이 아름다운 단풍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가을 색깔이 한창인 요즘, 사방팔방에서‘가을잔치’가 분주하다. 무슨 ‘가을잔치’?
이는 각종 스포츠 경기를 이르는 말이다. 요즘 TV를 켜면 채널들마다 온통 스포츠
경기로 도배질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 프로야구가
본격적인 플레이오프(Playoff)를 갖는 중에 있다. 지금 현재 아메리칸 리그(AL)와
내셔날 리그(NL)의 결승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내셔날 리그에서는 LA ‘다
저스’(Dodgers) 팀과 필라델피아의 ‘필리스’(Phillis) 팀이 맞붙고 있고, 아메리칸 리
그에서는 템파 베이의 ‘레이즈’(Rays) 팀과 보스턴의 ‘레드 삭스’(Red Sox's) 팀이
챔피언 결정전을 갖고 있다. 특히 LA 다저스의 경우 우리 한국의 ‘박찬호 선수’가
뛰고 있기에 더욱 더 관심이 가는 경기이기도 하다. 아마 다음 주부터는 양대 리그
의 챔피언이 결정되어 그 유명한 ‘월드시리즈’(World Series)를 가지게 되지 않나
싶다.그렇게 되면 전 미국은 물론 온 세계가 흥분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어디 야구뿐인가? 약 한달 전부터 미 프로 풋볼(Football) 경기가 시작되어 전 미
국이 또한 풋볼 열기로 들썩거리는 중에 있다. 특별히 풋볼은 미국인들의 열정을
담고 있는 가장 미국다운 스포츠 아닌가? 그래서인지 프로 풋볼 시즌의 시작과 함
께 온 매스컴이 난리인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가 사는 버팔로의 경우 요즘 버
팔로 Bills의 성적이 워낙 좋아 온 버팔로 주민들이 크게 흥분한 가운데 있기도 하
다. 현재 성적이 4승 1패라고 한다. 그것도 지난주에 졌기 때문에 4승 1패이지 그
전까지4승을 내리 달려 아주 오랜만에 최고의 성적을 내는 중이라고 한다.이제
시작한 지 갓 한 달밖에 안 되는 프로 풋볼은 가을을 뜨겁게 덥히며 내년 2월에 슈
퍼볼이 있기까지 전 미국을 또한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것이다.
프로 풋볼은 그렇다 치고 ‘대학 풋볼’(College Football)은 또 어떤가? 오히려 TV를
보노라면 대학 풋볼이 프로 풋볼보다 더 뜨거우면 뜨거웠지 결코 그 인기가 프로 풋볼
에 뒤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로 풋볼은 고작해야 일요일과 월요일에만 경기가
열리는데 대학 풋볼은 날마다 그 경기가 TV로 중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팀이
워낙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만큼 대학 풋볼이 인기가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
니겠는가?유명 스포츠 채널인‘ESPN’ 방송사가 아예 채널을 하나 더 늘려서 대학 풋
볼만을 중계해 주는 것을 보면 대학 풋볼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히 짐작케 된다.
야구나 풋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스하키’ 시즌이 이미 막 대장정에 돌입했
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 프로농구’(NBA) 역시 본격적인 시즌을 앞두고 현재
Pre-season 경기를 갖는 중에 있다. 이제 바야흐로 농구팬들의 계절이 왔다고나
할까.그런데도 워낙 큰 스포츠 경기들이 많아 현재 농구Preseason은 TV에 명함
조차 내밀지 못하는 중에 있다.정말이지 엄청나지 않은가?입이 떡 벌어질 만큼
온통 사방팔방에 굵직굵직한 스포츠 경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과연 ‘가을잔치’라 불
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얼마나 흥미진진한 스포츠 경기들이 많은지 요즘 같아서는 TV 앞에 한번 엉덩이를
붙이게 되면 쉽게 일어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볼만한 스포츠들이 끊임없이 줄을 서
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땐 놓치기 아까운 경기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채널을 여
기저기 돌려가며 시청하기까지 할 정도이다.단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한국에
서도 요즘 ‘가을잔치’가 한창인데 이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Post-Season)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일본 역시 마찬가지이고.그러고 보면 ‘가을잔치’는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그 잔치의 내용은 하나같이‘스포츠 경기들’이고.
그러다 번쩍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가을잔치’가 스포
츠 잔치를 이르는 말이 되었단 말인가? ‘가을잔치’란 본디 풍성한 ‘가을의 결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혹은 온 세상을 화려하게 총천연색으로 수놓는‘자연의
잔치’를 이르는 말이 아니었는가?더 나아가 계절의 을씨년스러움을 온 몸으로 호
흡하는 가운데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묵상의 풍성함’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던
가?그것이 어린 시절부터 내가 늘 생각해오던‘가을잔치’의 의미였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그 같은 의미의 가을잔치가 사라지고 철저하게 ‘오락’과 ‘재미’의 가을잔
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우리에게 단지 즐거움만을 안겨주는‘스포츠 경기’가
‘가을잔치’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즉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진정한 가을잔치’,
‘아름다운 가을잔치’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인기와 즐거움으로 포장된 ‘인조 가을잔
치’에 빠져 살고 있다.가뜩이나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인간성이 소외되어 가는데
이제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유일한 계절인 ‘가을’마저 빼앗기게 된 것이다. 정
말이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이 될 적마다 내가 빼놓지 않고 늘 애송하곤 했던 한국의 유명시가 하나 있
다. ‘김현승’님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이다. 아마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시일 것이
다.그 시는 시를 넘어서서‘가을’에 가져야 할 우리네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기도 하다.그 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정말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가을’과 ‘기도’ 아마 그것처
럼 잘 매치가 되는 단어도 없을 듯싶다. 즉 ‘가을잔치’는 우리의 살아온 날을 돌아
보며 ‘반성하는 기도’를 드리는 자리여야 한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
데 베푸신 많은 것들을 돌아보며‘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는 자리여야 한다. 더 나아
가 하나님 그분께‘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드리는 자리여야 한다.
‘가을의 기도’의 두 번째 단락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이 또한 가을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우리 역시 쇳소리 나는 삶을 살기가 쉽다.메마르고 딱딱한 삶을 살기가 쉽다.무
엇보다 ‘사랑’을 상실한 삶을 살기가 쉽다. 아름다운 계절 ‘가을’을 맞으며 무엇보
다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
하고 아름다운 선물이 아닌가 싶다.
‘가을의 기도’의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가을을 가리켜 ‘고독의 계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혼자 있는 계절을 뜻하는 말
이다.이는 곧 혼자서 인생을 생각하며,혼자서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보는 ‘묵상’을
일컫는 말이다. 가을은 역시 ‘묵상’이 제격이다.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다른 것이 있
다면 바로 그 ‘묵상’이 아닌가 싶다. ‘묵상’할 때 우리는 사람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
며, 더 나아가 ‘신의 형상’을 가진 자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가을’은 우리에게 그
잃어버린 ‘묵상’을 회복시켜주는, 이를테면 인간다운 삶을 회복시켜주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을’은 얼마나 소중한 계절이며 축복된 계절인가!
금년 가을은 더 이상 ‘인조 가을잔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즉 아무 생각 없
이 ‘재미’와 ‘오락’에 이 가을을 잃어버리는 불행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 가을에 ‘묵
상하는 삶’을 가짐으로, ‘사랑하는 삶’을 가짐으로, 무엇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 모두가 축복된 이 계절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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