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축복
잃어버린 축복
빗줄기가 몇차례 흩날리더니 버팔로에 불쑥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은 우리를 을
씨년스럽게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더욱 을씨년스러움을 느낀다. 이는 갑작스레 들
이닥친 ‘금융대란’으로 전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지 금융회사
나 증권가의 문제라면 얼마나 다행이랴! 문제는 그 여파가 서민들의 삶에 큰 위협
을 준다는 데 있다. 실제로 Business를 하는 사람들이 피부에 와 닿게 경제적인 어
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환율폭등으로 인해 유학생들이 공부와 생활
에 큰 지장을 겪고 있다. 우리 교회에 있는 많은 유학생들을 생각할 적마다 마음에
이는 안타까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중에 한국에서 들려오는 최근의 소식은 충격적이고도 우울한 소식들 투성이
이다. 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바람 잘 날이 없는 한국이지만 요즘 들어서
는 더욱 그런 것 같다. 특별히 최근엔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고 있는데 지난 주중엔 한국의 간판급 여배우인 ‘최진실’씨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
이 들려왔다. 한국 뉴스를 열어보았더니 온통 그 소식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약 한달 전쯤엔 ‘안재환’씨라는 또 다른 유명 연예인이 자살을 했
다 하고. 그로 인해 지금 한국 사회는 매우 뒤숭숭한 분위기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 같은 사건들로 인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심약한 사람들의 모방 자살사건이 잇
따르지나 않을까 많은 이들이 염려하는 중에 있다 한다.
정말이지 왜들 그렇게 극단적인 길을 택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죽은 사람들의 경
우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속 깊은 사정들이 있겠지만 그럴
지라도 자살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며 탈출구도 아니다. 이는 그 자신의 삶을 ‘실패’
로 끝내는 것이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지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고 특별
히 유명인의 경우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기도 하다.
뉴스를 보는 가운데 나를 더욱 안타깝게 만든 것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다 ‘그리
스도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자살한 ‘최진실’씨도, 그리고 얼
마 전에 자살했다는 또 다른 연예인인 ‘안재환’씨 역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교회 주관으로 장례식을 갖는 것을 뉴스를 통해 들을 수가 있었다.
정말이지 불행하고도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자살’을 선택한 그들. 그들은 정말 ‘그리스도인’이었
을까? 그들은 어떤 ‘그리스도인’이었을까? 그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살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사는사람들이고(로마서 8:9), 그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을 ‘평강’ 가운데 인도하시기 때
문이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 평강은 좋을 때만 갖는 평강이
아니다. 여건을 초월하여, 심지어 죽음 앞에 직면해서라도 가질 수 있는 ‘평강’이
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순교를 당하는 자리에서도 ‘평강’ 가운데 초연히 죽음을
맞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어찌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단 말인가? 내 생각에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기보다는 단지 ‘교회를 다니
는 사람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만일 그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참으로 불
행한 삶을 산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
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득 ‘오스카 와일드’라는 미국의 유명한 문학가가 쓴 글이 생각난다. 그가 쓴 글
가운데 이런 우화적인 단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그 후 세월이 지나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그 같은 내용의 글이다.
처음에 예수님은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한 주정꾼을 만나게 되었다. 예수님께
서는 그에게 왜 그처럼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원래 앉은뱅이였는데 당신이 일으켜주어서 걷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걸
어 다닌들 뭐하겠소.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찾아보았지만 만
족한 직업이 하나도 없었소. 해서 세상을 비관하며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오.”
그 다음 예수님은 한 창녀가 남자들 틈에서 희롱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
자는 한 때 예수님으로 인해 새 생활을 가지게 된 여자였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다가가 왜 또 이와 같이 생활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 창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창녀의 자리에서 건져주어 새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지만 창녀에
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입니까? 여전히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
았습니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지요. 해서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한 젊은 불량배가 이웃 사람들과 정신없이 싸움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는 그 청년에게 물었다. “이보게 젊은이,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나?” 그때 그 청년은 예수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준, 예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이오. 그러나 눈을 뜨고서
도대체 무엇을 보란 말이오. 처음엔 세상이 아름다운 것 같았는데 점차 보이는 것
들이란 나를 화나게 만들고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들뿐이었소. 해서 결국 나
는 분통을 터뜨리며 아무나 싸움질을 하는 생활을 가지게 된 것이오.”
물론 이상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 한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가상으로
써본 글이다. 사실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이 글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
하면 작가 개인의 상상력으로 주님께서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마음대로 망치고 있
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이 같은 글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부조리와 현실의
어려움을 고발하려고 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 세상은 못 배우고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얼마나 어려운 곳인가?
그러나 무엇보다 이 글이 보여주는 사실이 있다면 주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음에
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랄 수 있다. 주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셨다. 주님께서 걸을 수 있도록 불구의 다리를 고쳐주셨다. 주님께
서 더러운 창녀의 생활에서 건져 주셨다. 그 다음엔 그 자신이 그 축복을 잘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밥상을 차려주었다. 그렇다면 먹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입에 떠서 넣어주는 것까지 기대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가만 보면 마찬가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 ‘평강’에 있어서
그러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가져다 주셨다. 그것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
히 얻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강이며, 세상이 주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고
또 세상이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평강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것이다. 성경 요한복음 14장 27절을 보면 그 같은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
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강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 5장 1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우리 인생들에게 선물
하신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평강’이었다. 다음은 그것을 보여주는 말
씀이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
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한복음 20:19)
즉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일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평강의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이다.
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축복인가! 이제 우리가 할 것이 있다면 주님 안에서 그
평강을 누리기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강’을 제대로 누리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가 않다. 이는 곧 자신이 받은 놀라운 축복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없어서 ‘평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지
못해서, 또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가 잘 되지 않아서 ‘평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
떤 사람들은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식들이 속을 썩여서 ‘평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은 심각한 스트레스에 빠지게 되며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최
근에 자살한 연예인들처럼 극단적인 불행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평안’은 그런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며 외
적인 조건에 의해 생기는 평안이다. 진정한 평안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데서
오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자신이 천국의 시민임을 알게 될 때, 그리
고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평안함’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 가진 것이 없어도, 건강이 좋지 못해도,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남편이나 아내,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늘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어차피 지나가는 것이며 나그네 삶이기 때문이
다. 지나가는 나그네 삶의 불만족이 어찌 최고의 축복을 보장받은 우리에게서 ‘평
안’을 빼앗아 갈 수 있겠는가?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과연 그리스도인답게 ‘평강’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늘 불안과 불만과 스트레스 가운데 살고 있는가? 만일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라고 하면서 ‘평안’을 상실한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장하
신 축복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처럼 불행한 그리스도인
의 삶은 없을 것이다. 바라기는 이 가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모두가 ‘평강의
삶’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성경에 자주 나오는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인사로 글을 끝맺을까 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찌어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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