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의 축복을 위한 멍석

- Joint Service를 시작하며 -



2009년을 시작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이런 저런 소원들이 있는 줄 안다. 가족들을 위한 소원, 생업을 위한 소원, 그리고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 등. 특별히 자녀들을 키우시는 분들의 경우 자녀들을 위한 소원이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우선일 것이다. 이 세상에 자기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우리 한국의 부모들은 타민족의 부모들보다 그런 면에서 더욱 특별하지 않나 생각한다.

문득 자녀들을 위한 부모들의 소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혹 학업 중에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있다면 무엇보다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것이다. 한국 부모들의 대단한 교육열을 생각할 때 그리 틀린 판단은 아니리라.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고, 혹은 직장 다니는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직장생활 잘 하기를 위해서, 결혼 적령기의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금년에 좋은 배우자감을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소원 가운데서 부모들이 정말 가져야 할 가장 귀한 소원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부모라면 말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유일하신 신이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세상에서의 모든 성공과 축복은 당연히 그분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가장 잘 되는 길이 무엇이겠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항목들을 조목조목 들면서 자녀들을 위한 소원을 비는 것도 좋지만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기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소원이요, 또 가장 현실적인 소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그와 같이 양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믿게 할 수 있을까? 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중요한 물음에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솔직한 우리의 형편이다. 특별히 이중 문화권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민교회의 현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목회자 칼럼

푸른초장



우리는 모두 이민자들이다. 즉 우리가 사는 곳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말과 글, 의식, 문화 모든 것이 다른 세계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태어나는 우리의 2세들은 한국인의 피와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미국인으로서 성장한다. 그들은 처음 3-4세까지는 부모를 통해 한국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게 되는 Pre-School 때부터 아이들은 서서히 미국화 되어간다. 이는 학교를 다니면서 더 이상 한국어권의 영향력이 아닌 영어권의 영향 하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을 통해, 또래집단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그 인격과 의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의 자녀들은 본질적 한국인에서 외양적 한국인으로 변화되어간다. 즉 외모만 한국인일 뿐 미국인으로 변화되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아주 미국화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여전히 한국 가정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적 사고를 접하며 생활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자녀들은 철저하게 이중 문화권 속에서 살아간다. 즉 두 문화권의 혼돈 속에서 성장한다. 그 속에서 자녀들은 언어이든, 문화이든, 의식이든 자신이 원하는 한국적인 것은 취하고 자신이 원치 않는 한국적인 것은 버린다.


문제는 ‘신앙’이다. 이 신앙은 결코 한국적 문화도 의식도 아닌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문제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마저 부모 세대에 속한 것처럼, 혹은 한국적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마저 다른 한국적인 것들을 버릴 때 함께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만히 2세들을 관찰하면 그런 차원에서 믿음을 떠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즉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집을 떠나면서 교회도 하나님도 함께 떠나는 2세들이 얼마나 많은가?


2009년에 들어서면서 우리 교회는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란 예배 안에 영어와 우리말이 함께 공존하는 예배를 말하는 것이다. 즉 설교도 영어설교와 우리말 설교가 모두 있고, 다른 순서들도 서로 불편함이 없이 영어권과 한국어권이 자기들의 예배처럼 느끼도록 하는 예배를 말한다. 물론 그 동안 가끔씩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드려왔다. 그러나 이는 1년에 서너 차례 중요한 절기 때마다 가졌던 것이고 이제는 매주 ‘연합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어권과 영어권 모두를 위해서이다.

사실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드리는 가장 큰 이유라면 2세들, 즉 자녀 세대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즉 자녀들에게 믿음의 뿌리를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할까. 가만 보면 한인이민교회들은 늘 1세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다보니 2세들은 예배에서 늘 들러리처럼 소외되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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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조차 ‘들러리 믿음’을 지녀온 것이 사실이다. ‘믿음’에 들러리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들의 위치가 ‘중심’이 아니었다면 이는 어떤 의미에서 ‘들러리’였다는 것이다. ‘Joint Service’는 바로 그와 같은 구습(舊習)을 개정하기 위함이다. 즉 이제는 2세들도 대예배를 자기들의 예배처럼 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앙’을 더 이상 부모 세대의 것으로 혹은 한국적인 유산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그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더라도 ‘믿음’마저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를 가더라도 편안히 ‘예배’에 적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Joint Service’를 드리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자녀 세대를 위해서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Joint Service’를 통해서 더욱 ‘믿음’ 가운데 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된다면 이 ‘Joint Service’는 어떤 의미에서 자녀들의 축복을 위한 참으로 소중한 ‘멍석’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꼭 자녀 세대 즉 2세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 이민 1세와 유학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 살면서, 또 자녀들이 영어권이면서 정작 1세들은 여전히 ‘영어’와 낯선 것이 사실이다. 특별히 영어권 예배에 익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Joint Service’는 모든 1세들을 영어권에 친숙하게 만들고 특별히 영어예배에 친숙하게 만들 것이다. 이 또한 일부러 영어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모든 1세들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귀한 소득이기도 하다.

특별히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는 더욱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다. 때때로 한국에서 갓 유학 온 학생들이 한국 교회에 나가지 않고 미국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들어보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어찌 ‘예배’를 영어교육의 수단으로 삼을 수가 있는가? 이는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는 곳에 한국 교회가 없다면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있다면 내 언어로, 내 의식으로 제대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 내가 100% 이해하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럴지라도 많은 학생들에게 영어권 예배를 경험하고 또 영어로 말씀을 듣고자 하는 바람이 없잖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유학생활 중에나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가 바로 그 목마름을 해결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찬양에도 영어 찬양이 있고, 설교 또한 영어 설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 말 찬양, 우리 말 설교도 제대로 있으니 이 얼마나 안성맞춤인가?


꼭 1세 2세 한국인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는 영어권의 모든 민족에게 예배 문호를 개방하기 위함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우리 교회에 참석하는 미국인 교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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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동시통역’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통역이었지 ‘영어권 예배’는 아니었다. 이제 누구든 영어만 한다면 그들 또한 한국 사람들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 것이다. 편안하게 ‘영어 설교’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본인들이 원한다면 통역을 통해 한국어 설교도 보너스(?)도 듣게 될 것이고.


그러나 모든 것 가운데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갖는 가장 큰 의미, 또 가장 크게 얻게 될 결실이 있다면 1세와 2세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 되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한 가족이면서도, 또 같은 신앙인이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와 의식의 차이로 인해 신앙마저 Gap(차이)을 느끼고 있었던 1세와 2세가 늘 함께 예배드림으로 서로 ‘하나 됨’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양쪽 그 누구도 예배를 낯설게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자기들의 예배로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게 가족들과 함께 편안히 예배드리는 것이 생활화 된다면 훗날 자녀들이 집을 떠나게 될지라도 ‘교회’나 ‘믿음’을 떠나는 일은 쉬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예배’나 ‘믿음’이 부모 세대 혹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것’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년들과 함께 편안히 예배드리는 대예배 참석이 어느 사이 ‘생활화’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언제든 다시 집에 돌아오더라도 결코 낯설지 않게 편안하게 온 식구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많은 이유와 의도, 바램을 가지고 2009년부터 ‘Joint Service’(한영연합예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실험적으로 시도해보는 단계이다. 예배에 실험이 어디 있냐마는 운영방식이나 순서진행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아무쪼록 최소한의 시행착오로 최대한 빨리 1세와 2세가 함께 어우러지는 가장 이상적인 우리만의 예배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자녀 세대들이 더욱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한인 이민교회에 귀한 role model(역할 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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