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멸망 -전쟁이야기 (20)-
제국의 멸망
-전쟁이야기 (20)-
6. 코르테스(Hernon Cort́es)와 피사로(Francisco Pizarro)
스페인의 정복자들인 이 사람들을 「악마의 사도」라 부른다고 앞서 얼핏 언질을
드렸습니다. 「Disciples of Satan」이라고 역번역해봅니다만, 그들에게 이런 흉악
한 명칭이 주어지게 된 까닭은 이들이 인간 구원과 평화의 종교인 기독교를 빙자하
고 또 강요하면서, 오히려 약탈과 파괴와 인간 살상의 잔혹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
렀기 때문이지요. 그들을 「백색의 흡혈귀(吸血鬼)」라고까지 부르기도 하는데 콜럼
버스도 이 명칭의 범주를 물론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글쎄 흥미롭다고나 할까요. 미국 역사가들의 저서에선, 물론 제가 가지고 있는
적은 자료라는 한계가 있지만,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표현(명칭)들이 유독 한국인이
지은 책 속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대세계사(大世界史)」라는 제목의 역사책이지요. 15권짜리 전집으로 「도서출
판 마당」이 1982년에 출판했네요. 웬일인지 저자의 이름이 숨겨져 있고 다만 연
세대 홍의설 교수와 서울대 노재봉 그리고 김승근 교수 등이 감수(監修)했다고만
되어있습니다.
내 친구 김건유 장로의 이민 보따리 속에 점잖이 들어앉아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
온 책, 그 후 이사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결국 8권만 남았으니. "늙어 할
일 없을 때 읽으려고" 가지고 왔다는 이 귀한 것들을 제 「전쟁 이야기」꾸밈에 보
탬이 될 것이라며 건네주었지요.
「근대의 서곡」편인 제 8권, 그 장(章) 하나가 「파도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악마의 사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리상의 발견」에 의한 유럽의 팽창과 세계 정복은 곧 아시아나 신대륙
을 지옥의 공포 속에 휘몰아 넣었다. 특히 초기의 정복자들이 하필이면 스페
인과 포르투갈인들이었다는 것은 아시아나 신대륙을 더 처참하게 했다. 문제
의 정복자들은 말 그대로 「악마의 사도」였다. 파괴와 약탈, 강제 노동과
채찍과 과로와 영양실조만을 피정복자들에게 안겨주었다.
원래 스페인인이나 포루투갈인들에게는 그들의 신앙과 관습을 강제하는 폐
풍이 있었는데 이 폐풍을 강요당하는 쪽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뒤의 네델란드,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예외없이 약탈과 착취를 자행했으나 공공연히 폭력을 구사했다는 점에서는 스페인과 포루투갈이 단연 압
도적이었다.
그런데도 유럽의 학자들은 대개 이때의 팽창과 지배를 장밋빛으로 채색하
고 있다. 우리들 동양인은 그럴 수가 없다.
......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오직 황금뿐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을 가리지 않았다. 불행히도 아스텍과 잉카의 두 문명권은 바로 이런 무리들
한테 정복된다. 그들을 당시에는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 정복자)라고
스스로 불렀는데 신대륙의 대표적인 이 두 문명권을 정복한 유명한 콘키스타
도르는 코르테스와 피사로다.
콜럼버스의 제 2차 항해(1493-1494) 때부터 식민지 건설을 계획해 군대를 보내기
시작한 스페인은 히스파니올라(Hispaniola)라고 이름지어 부르던 현재의 헤이티와 도
미니카 공화국이 있는 섬에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했고, 뒤이어 식민자들이 몰려오게
되는데 이들에게는 토지와 노예가 배당되어 생활은 풍족했으나 그 정도로 만족할 사
람들이 아니었지요. 그들은 황금과 일확천금에 눈이 뒤집힌 자들이었거든요.
캐리비언 섬들, 즉 서인도 제도에선 더 이상 황금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
린 그들은 멕시코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1517년, 멕시코 남부의 유카탄
(Yucatan) 반도를 탐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곳에 하나의 문명이 있고
서인도제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또 그들은 많은 황금을 가지고 있
다는 보고를 큐바 총독에게 하게 됩니다.
2년 후 새로운 탐험대가 조직되지요. 이때 등장하는 자가 바로 코르테스입니다.
총독이 그를 탐험대의 지휘자로 임명한 것입니다.
코르테스, 1485년생이니 그가 이 직책을 맡은 것은 34세 때의 일이네요. 스페인
의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고 19세에 항해열에 들떠 헤이티로 건너갔으며 큐바
정복때 공을 세워 큐바 총독의 눈에 들게 된 것입니다. 그를 따라갔던 디아스
(Bernal Dias Del Castillo)가 쓴 연대기 「멕시코 정복사」에 따르면 코르테스는
시를 쓰는 재능이 있었고 기도와 미사에 굉장히 열심이었으며 여자를 몹시 좋아해
서 여러 번의 목숨을 건 결투까지 했다네요.
이런 자가 시를 썼다니, 허기야 20세기의 인간백정 스탈린도 시를 썼다는 이야기
가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코르테스는 상인들과 지주들의 돈과 자신의 사재를 털어 탐험대를 조직합니다.
당시의 예대로 하나님의 대리인들이 내려준 축복을 듬뿍 받은 것은 물론이지요. 배
11척, 부하 508명, 선원 100명, 말 16필, 대포 10문에 철포 17문.
나중에 코르테스의 지나친 야심을 눈치챈 총독은 코르테스의 임명을 후회하여 그
를 불러들이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어요. 탐험대는 벌써 멕시코 만(The Gulf
of Mexico)을 서서히 항해하고 있었거든요. 1519년의 일이었습니다.
콜럼버스의 뒤를 이어 신대륙으로 건너간 유럽인들은 그곳에 두 개의 큰 제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멕시코에 있던 아스텍(Aztecs)의 왕국 아스테카(Azteca)
와 남미 페루에 있던 잉카제국(Inca)입니다.
구대륙과 아무런 접촉 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
화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것은 옛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 비해 시대적으로 뒤늦은
또 하나의 고대문화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지요.
아스테카 제국은 부계 씨족의 연합체인 나라로 국왕 밑에 씨족장 회의가 있었고
이들 지배 계급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답니다. 태양과 다른 자연을 숭배하는 종교
가 있어서 사제가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지요. 14세기 경에 전성기를 이룬 이 문
명은 이보다 앞서 있던 마야문명(Mayas)이니 돌텍문명(Toltecs) 때문에 「후기 마
야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잉카 제국은 아스텍과 유사한 체제나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나 중앙 집권이 진전
되어 「태양의 아들」이라고 불리던 국왕이 전제정치를 펴고 있었지요. 11세기 경
에 세워졌고 15세기엔 에쿠아도르에서 칠리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이 되었답니다.
이 두 문명은 유사한 점도 많았으나 차이점도 가지고 있었지요. 아스텍은 천문학
이 발달되어 일년을 365일로 나눌 수 있었고 유럽보다 더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
있었으며 심지어 '0의 개념'까지 알아냈답니다. 상형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고요.
잉카 제국은 문자가 없었으나 키푸(Quipu, 결승문자)로 인구나 산업의 실태를 기
록하고 있지요. 지금도 이것을 쓰는 곳이 있다네요.
농업, 도로공사, 건축, 직물 등은 잉카 쪽이 우수한 편이나 도자기, 조각, 회화와
금은과 주석으로 만든 세공품은 양쪽 모두 발달되어 있었답니다.
「황금의 나라」를 찾아서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내려가 잉카 제국에 이르른 스페
인인들은 수도 쿠스코(Cuzco)의 장려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지요. 태양신 신전을 비
롯해 수많은 석조 건물들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답니다.
태양신 신전의 본당엔 보석으로 장식된 두꺼운 황금판에 인간 모습이 새겨진 신상이세워져 있었고, 신전밖엔 순은으로 된 월신상(月神像)이 서 있었지요. 제구나 제물
을 담아두는 항아리 같은 것들은 모두 금은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스페인인들은
이 제국을 정복한 후 이것들을 닥치는대로 약탈해갑니다. 이 나라에선 특히 은(銀)
이 아주 흔했던 모양, 스페인들이 뺏어간 은이 얼마나 많았는지 향후 300년을 쓰고
도 남았을 정도였다니.
아스테카 제국. 코르테스 일행이 이 나라에 도착했을 당시의 일을 디아스는 이렇
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군인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정말 옛 전설에 나오는 환상의 세계 같구나. 이
게 꿈인가 생시인가?" 너무나 황홀해서 이 도시를 표현할 방도를 찾지 못하겠다.
수도인 테노치티틀란(Tenochititlan)은 인구를 30만이나 가지고 있는 도시였고 시
장에선 매일 같이 온갖 종류의 상품들이 거래되고 있었으며 노예도 매매되고 있었
지요. 그런데, 그들의 신전을 돌아본 스페인인들은 그 제단에 사람의 피가 묻어있
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아스테카 제국은 주변 부족들을 공격해 약탈을 일삼았고, 생포한 포로들의 심장
을 꺼내 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때 유럽인들은 신대륙의 인디언들을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s)」이라
고 부른 적이 있었지요. 그들은 자연과 조화된 지극히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부른 것인데 실제로는 이 사람들도 역사상 다른 여느 나라와 마찬가
지로 서로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코르테스 일행은 드디어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북쪽에 있는 베라크루스(Vera Cruz)에
상륙하게 됩니다. 정복자들의 첫 발자국 소리가 하필이면 「성금요일」에 들려오다니...
코르테스는 억수로 운좋은 사나이, 그곳에서 마야어를 할 줄 아는 스페인인을 만
나게 되지요. 아길라(Aguilar)라는 자로 수년 전 표류해 이곳에 와서 마야족과 어울
려 살고 있던 사람입니다. 코르테스는 곧 인디언과 전투를 하게 되고 여자 인디언
몇 명을 붙잡게 됩니다. 그들 중에 뒷날 마리나(Marina)라고 불리게 되는 공주가
있었는데 그녀는 마야어와 아스텍어에 능통했지요. 그녀가 아스텍어를 마야어로 바
꾸면 아길라는 마야어를 스페인어로 통역을 하게 되었으니 이로써 언어의 장벽이
제거된 것입니다. 이들로부터 아스텍에 대한 정보까지 얻게 되었고요. 이 마리나는
후에 코르테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수도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코르테스 앞에 아스테카 국왕이 보낸 100명의 사자
들이 금은으로 만든 화려한 세공품들을 잔뜩 가지고 나타납니다. 그들은 이것을코르테스에게 주면서 조용히 물러가 달라는 왕의 뜻을 전달합니다. 그러나 이 보물이
오히려 코르테스의 황금에 대한 욕망의 불길에 부채질만 한 꼴이 되고 말았네요.
툭하면 쳐들어와 약탈하고 자기들을 잡아다 노예로 삼거나 인신 제물로 삼는 아
스테카, 그들을 향한 부근 원주민 부족들의 원한이 하늘을 찌를 듯할 때 턱 나타난
코르테스. 이런 정황을 알고 있던 그는 원주민들을 굴복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회유
도 하면서 몇몇 부족들과 동맹관계를 맺게 되지요. 하여 수천의 원주민 전사들을
동원하게 되었으니.
아스텍인들 사이엔 하나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지요.
아주 먼 옛날에 이 나라를 다스리던 신인(神人)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케찰
코아틀(Quetzalcoatl). 매우 친절했고 나라를 잘 통치했으며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인가 적들에 의해 어디로인가 추방당하고 말았다. 배를 타
고 떠나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갈대의 해」, 즉 1519년에 나는 반드
시 동방에서 돌아와 원수들을 쳐부수고 다시 이 나라를 다스리겠노라."
철갑옷을 입고 수염이 무성한 백인 남자가 이상한 짐승(말)을 타고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국왕 몬테수마 이세(MontezumaⅡ)는 깜짝 놀라고 말지요. 그는 화가
를 보내어 이 이방인들을 그려오게 합니다. 꾀쟁이 코르테스는 공포심을 한껏 주기
위해 반드시 말 탄 모습을 그리게 했는데 머리와 어깨는 사람이나 몸뚱이는 네 발
가진 괴물처럼 보이기 위해서였지요.
같은 해 10월, 진군하는 도중 비무장한 원주민 3,000명을 죽인 엄청난 학살 사건
이 있었습니다.
전에 인용했던 진교수의 「미국 민중사」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코스테스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죽음의 행진을 시작했다. 그는
속임수를 쓰고, 아스텍인들을 서로 반목하게 만들며, 급작스럽고 소름끼치는
행동으로 그들의 의지를 마비시킨다는 전략 아래 의도적인 살육을 자행했다.
촐클라(Cholcla)에서는 그 부족 지도자들을 광장으로 초대했다. 수천명의 비
무장 신하를 대동하고 그들이 도착했을 때, 광장 주위를 빙 둘러 대포를 배
치하고 석궁으로 무장한 채 말을 타고 있던 코르테스의 소규모 스페인 군대
는 이들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남김없이 살해했다. 그리고는 도시를 약탈하
고 다른 도시로 옮겨갔다.
11월, 마침내 코르테스 일행은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에 입성하게 됩니다.
주안에서 샬롬
✎ 이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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