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그림과 인디언 전쟁 이야기(25)
필그림과 인디언
전쟁 이야기(25)
이구한이 엮은 「이야기 미국사」엔 브랫포드가 쓴 이런 글이 실려있습니다.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폭풍이 불어닥친 일도 있었고, 인디언에게 무기를 팔아 우리를 위태롭게 한 배신자도 있었다.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한 그 해 겨울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건강한 사람이라곤 불과 6,7명 뿐이었다. 이들은 불평없이 자진해서 열심히 일했다. 나무를 모아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장만하고, 옷도 빨면서 환자들을 돌보았다. 땅도 개간했고 씨도 뿌렸다.
케이프 코드 반도의 프로빈스타운에서 인디언의 옥수수를 훔쳐 연명하던 필그림들은 그 건너편에 있는 플리머스로 옮겨가게 됩니다.
옥수수를 발견했다고 「Cornhill」, 즉 「옥수수 언덕」이란 이름을 짓고, 그들이 떠나온 영국의 플리머스항을 기념하기 위해 이 새로운 항구에다 같은 이름을 붙이지요.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아직은 마음의 여유가 남아 있었는가 조금은 낭만적이기도 하네.
신년 첫 주 교회 회보에 실렸던 김목사님의 「2009년 사자성어(四字成語」란 글 모두 읽으셨을터. 야구로 치면 적시안타(適時安打)와 같았다고나 할까, 알맞은 때에 알차고 뜻깊은 내용이었으니.
필그림들이 처한 상황을 두고 궂이 사자성어를 붙여본다면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어떨런지? 딱하고 가엾어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형편이란 뜻이니 과히 엇나간 선택은 아닐 듯 싶은데.
상륙한 후 첫 겨울을 나면서 102명 중 절반이 죽어나갔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자유」와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그들의 이 모험적 이민여정을, 이들이 꾸며나가는 역사를, 약속의 땅(Promised Land) 신대륙을 향해 나아가는 「출유럽기」라고 일컬어봅니다만, 그런데 이렇듯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되었으니...
저번에 로웬 교수의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필그림들이 인디언의 식량을 도적질했다는 데까지 말씀드렸지요. 그 책엔 이런 글도 들어있네요. 역시 그들 중 누군가가 쓴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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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아침 묘지 비슷한 곳을 지나게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파보기로 결정했다. 그 속엔 멍석이 있었다. 그것을 들어올리자 매우 훌륭한 활이 보였다. 그 외에 사발, 쟁반, 접시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쓸만한 것들을 취한 후 멍석으로 시체를 다시 덮어주었다.
이건 완전무결한 도굴(盜掘)이네. 허락도 없이 남의 무덤을 파헤치고 물건을 가져가다니. 허기야 그 일대엔 허락받고 말고 할 인디언이 아예 없었지만. 쿠퍼만(Karen Kupperman)이란 학자는 필그림들이 수년 동안 이런 짓을 계속했다는 연구보고를 내고 있습니다.
절호의 기회니 차제에 제 경험담 하나 들려드려야겠네요.
삽과 괭이와 바켓을 든 청년 셋이 산길을 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 제 잠자리를 찾아가자 그 공백 속으로 밀물처럼 몰려드는 어두움. 그믐밤. 휘이익 휘이익 나뭇잎 스쳐가는 바람소리. 간혹 발뿌리에 채여 자갈 뒹구는 소리. 산새도 울지 않는 스산하고 괴괴한 산 속을 아무 소리 없이 서둘러 걷고 있는 이들은 누구며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밥 한 가마를 지어낼 만큼 얼추 시간이 지난 뒤에 그들이 당도한 곳은 메마른 개울가. 큼직큼직한 돌들이 엉성하게 쌓여있는 돌무더기가 거기 있었다. 하나씩 돌을 들어내기 시작하는 그들, 모골이 다 송연한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네. 드디어 건전지 불빛아래 드러난 것, 아 인간의 뼈! 그 돌무더기는 틀림없는 돌무덤이었던 것이다. 후둘거리는 손으로 두개골과 다른 뼈 몇 개를 바켓에 담는다. 다시 돌을 쌓아올린 뒤 그들의 남는 일은 오직 ‘다리야 나 살려라’ 일뿐. 바지가 축축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뒤의 일이었다는 후문까지 있었으니...
의과대학 본과 일학년 때의 일이었어요. 의학공부는 그 첫걸음을 해부학(Anatomy)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게 되지요. 뼈 공부를 먼저 한 다음에 시신을 앞에 두고 하는 사체 해부. 사람의 뼈대에다 웬놈의 이름을 그리도 많이 붙여놨는지, 라틴어로 된 이 단어들을 달달달 외워야 했으니. 간혹 뼈를 가슴에 엊고 깜박 잠에 빠질 때도 있었던 모양. 허니 그 풍광이 어떠했으리요. 가족들은 한동안 내 방에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의학도가 아닌 내 두 친구는 자기들의 용감무쌍함의 테스트를 위해 자원했던 것인데 이 소름끼치는 일 이후 ‘십년 감수했다’라는 소리로 나를 협박해 나로 하여금 몇 번의 ‘한 턱’을 내게 했고.
우리 시대의 의과대학 선생님들은 꼭 무슨 염라대왕 같았어요. 그들은 도대체 의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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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것인지 낙제시키기 위해 낙제를 가르치는 것인지 툭하면 낙제요 미역국이라. 창피도 창피하려니와 가난했던 우리들 살림에 1년 유급이란 마치 탄환 없는 총살형과 같은 것, 오죽했으면 내가 그 짓까지 했겠어요. 심지어 한 친구는 권총을 들고 깐깐하기로 이름난 교수 댁을 침입하여 사생결단의 학점애걸 강도짓을 벌인 사건까지 있었으니.
큰 애의 의과대학 입학식에 참석하면서 계속 제 맘속을 맴도는 상념이 있었지요. ‘부럽다. 이 아이들이 참 부럽다.’ 학장은 환영사 중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여기까지 오게 된 이 학생들은 전부 수재들입니다. 잘 가르쳐서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훌륭한 의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필그림들이 무덤을 파헤칠 때 그 주위엔 인디언이 아예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연유에 대한 논설에 열 쪽이나 할애하고 있는 책,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이 책을 좀더 자세하게 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참을 더 펼쳐나갈 제 「전쟁이야기」꾸밈에 보탬이 될 자료가 넉넉히 들어있을 뿐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 가고 있는 이 미국역사 배움길에 바른 길잡이가 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Lies My Teacher Told Me」, 저자는 버만트(Vermont) 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로웬(James W. Loewen). 백인 중심의 역사관이 미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끼친 영향을 분석비판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라는 간단한 소개를 지난번에 해드렸습니다.
지난해 11월 어느날 락포트 공립 도서관엘 들른 일이 있었지요. 미국역사책만 모여 있는 곳 그 서가에 글쎄 이 책이 버젓이 꽂혀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반가웠던지. 이 책을 조금은 알고 있었거든요. 언젠가 한국 어느 신문에 실려있던 이 책 소개글을 읽은 적이 있었지요.
참으로 치열한 책입니다.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란 것을 자기 이념과 사상을 위해 멋대로 왜곡하고 생략하는 어줍잖은 역사가들을 겨냥한 하나의 도전장 같다고나 할까.
교과서와 반대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모든 미국 역사 선생님들께 이 책을 바친다.(그들의 수가 늘고 있다.)
책머리에 얹혀져 있는 그의 헌사입니다.
본래 남의 글을 교정하거나 비교분석하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인데, 46명의 저자가 쓴 18권의 역사교과서와 자기가 모은 사료들을 한자리에 놓고 비교검토하는 작업을 장장 20여년이나 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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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권을 두고 11년을 씨름한 끝에 초판을 출간하게 되지요. 이 책으로 그는 알리버 칵스의 「반(反) 인종차별주의 상」을 미국 사회학회로부터 받게 되었고. 그로부터 12년 후인 2007년, 이 책의 개정증보판이 나오게 됩니다. 이 기간 중 6권의 새로운 교과서가 연구목록에 추가되지요.
80년대에 그는 미시시피주에서 교편을 잡은 일이 있었답니다. 원래 흑인들이 많은 이 지역에는 라티노와 인디언도 제법 많이 살고 있었는데 도대체 그들의 자녀들이 미국역사하면 ‘무흥미’더라는 것이지요. 소수민족(Ethnic Minorities)인 이 아이들의 미국역사에 대한 무관심, 그것에 대한 원인찾기가 그의 연구의 동인이 되었답니다.
진 교수(Howard Zinn)의 「미국민중사」, 이 책은 1980년에 출간되었으니 저자가 진교수의 영향을 받았을상 싶은데, 거기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고, 오히려 그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극구 읽기를 권하는 진교수의 추천사가 실려 있네요.
우리가 들어보지도 못한, 전혀 예상조차 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수두룩합니다만 안타깝게도 몇 개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으니.
참,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이란 제목, 그게 좀 길어서 매번 쓰고 부르기가 번거롭네요. 하여, 뚝 잘라 「거짓말」이라고만 부를테니 그리 아시기 앙망하옵고.
콜럼버스. 역시 크게 취급하고 있네요. 한 장(章) 전부를 그의 이야기로 채우고 있을 정도니까요. 작년 여름 제 「전쟁이야기」도 그를 네 번(16회-19회)에 걸쳐 다루었는데 기억하실런지.
「선교(복음)와 황금」의 깃발을 휘날리며 신대륙으로 건너간 그가 고만 황금에 눈이 멀어 동분서주 온갖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사연.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거짓말」은 교과서 저자들이 이와 같은 역사적 진실을 묵살하고 그를 영웅화(heroification) 하여 ‘위대한 신대륙 발견자’, ‘용감한 탐험가’, ‘가장 뛰어난 항해사’로 둔갑시켜버렸다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헬렌 켈러(Helen Keller)의 삶을 그린 영화가 오래전에 나왔었지요. 농맹아(聾盲啞)의 3중고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녀, 가정교사였던 살리반이 펌프물을 손바닥에 대주며 ‘물’이란 단어를 적어주자 글자의 의미를 깨닫고 환희하던 모습.
교육가, 저술가, 사회사업가 그리고 무엇보다 인도주의자(humanitarian)였던 그녀. 20세기 중엽 세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여인. 여기까지가 그녀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이고 또 역사교과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만, 「거짓말」은 강하게 ‘아니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헬렌 켈러 여사가 급진적 사회주의자(radical socialist)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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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타파를 외치며 치열한 전투적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대학시절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기 시작한 그녀는 1909년 실제로 매사추세츠 사회당에 입당하게 됩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세비키(Bolsheviks) 혁명이 성공하자 새로운 공상주의 국가의 탄생을 축하하며 이런 글까지 썼답니다. 「동녘에 새로운 별이 떴다. 고통과 근심의 옛날은 지나가고 새날이 왔나니, 동무들이여 우리 함께 동터오는 새벽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그녀의 책상 위엔 늘 적기가 꽂혀 있었고.
필그림들이 인디언의 곡식으로 연명하면서 인디언의 무덤을 파헤치고 있을 무렵, 웬일인가 그 일대에는 인디언이 전혀 보이지 않더라는 것까지 말씀드렸습니다.
돌림병(전염병) 때문이었어요. 필그림의 상륙 3년 전인 1617년, 무서운 전염병이 뉴잉글랜드 남부지방을 휩쓸고 지나갔답니다.
대구(cod)가 많이 잡히는 뉴잉글랜드 해안엔 오래전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어부들이 자주 들락거렸다네요. 이들은 잡으라는 고기는 안잡고 인디언들을 잡아 노예로 팔아먹기까지 했다는데, 바로 이 어부들이 전염병을 옮긴 장본인들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답니다.
3년 내에 원주민이 90-96%를 죽음으로 몰고간 전염병.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웃 부족에게로 도망치게 되지요. 이미 병균을 지니고 있는 이들로 인해 전염병은 점점 더 퍼져나갔고. 폐허가 된 마을엔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유골들과 시체들. 도대체 장사지내줄 인간이 없었으니. 물론 먼저 죽은 사람들이야 땅에 묻혔겠지만.
그런데, 당시 영국와 제임스 일세(James I)란 자가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아세요.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께서 이 야만족에게 놀라운 전염병 (Wonderful Plague)을 내려주셔서 제 백성들이 쉽게 정착할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대를 이은 그의 아들 찰스 일세(Charles I)가 청교도였던 크롬웰(Oliver Cromwell)에 의해 목이 잘리고 말았으니, 이 무슨 역사적 아이러니인지.
본래 신대륙 원주민들은 건강체였답니다. 적어도 콜럼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것이지요. 신대륙에는 질병이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원주민들은 기본적인 위생생활, 목욕과 건강한 음식 등등, 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유럽인들은 죽어라 하고 '목욕 않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네요. 목욕이 인체에 해롭다고 여겼으며 또 나체가 되는 것을 부도덕한 일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스운 풍습이 19세기 중엽까지 계속 되었다니. 그러하니 필그림들이 풍기는 냄새가 오죽 했으리요. 스콴토(Squanto)라는 인디언이 필그림을 도우면서 함께 살고 있었지요. 하도 지독한 냄새에 기가 질린 그가 필그림들에게 목욕을 가르치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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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작년 말부터 「뉴욕한인 125년」이란 연재물을 싣고 있습니다. 김원모 교수의 완역본 「알렌의 일기」. 알렌(H. Allen)은 1884년 미북장로회에서 파송한 의료선교사요 뒤에 주조선 미국공사가 되었던 분이지요.
조선 초대주미공사 박정양과 그 일행을 수행하여 미국으로 항해하고 있던 1887년 12월 28일, 「오셔닉」호에서 그가 쓴 일기의 한 토막입니다.
그들의 몸에서는 항상 고리타분한 냄새가 풍겨나고 있었다. 목욕하지 않은 몸에서 나는 고린내, 줄담배 냄새, 고약한 조선 음식 냄새가 선실 안을 온통 악취로 가득차게 했다. 승객들은 친절한 척 했으나 이 냄새나는 조선 사절단을 한 방으로 격리시켜준 선장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우리 역사극을 볼 때면 공연히 조상님들의 상투가 걱정이라, 「목욕문화」와 DDT가 없던 시절이니 그 냄새며 드글거릴 서캐며. 짧은 머리를 하신 고종의 사진이 있네요. 임금의 상투가 싹둑 잘리시던 날, 조선 선비들은 저마다의 상투를 움켜쥐고 나라 잃은 슬픔보다 상투 잃을 슬픔으로 거국적 대성통곡을 했을까 말았을까. 주안에서 샬롬. ✎ 이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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